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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약산소식지</title>				<!-- RSS의 제목 -->
		<link>http://www.yaksannews.co.kr/?r=s144110</link>				<!-- RSS를 제공하는 사이트의 대표 URL -->
		<description>약산소식지</description>		<!-- RSS파일의 간략한 설명 -->
		<language>ko</language>						<!-- RSS의 언어 타입 (ko => 한글) -->
		<pubDate>2026-09-28 23:42:21</pubDate>		<!-- RSS파일의 생성 시간 -->

		<item>
			<title><![CDATA[&amp; quot;차례상 올려드릴 핏줄 하나 없지만,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이 당신의 자손!“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939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글로벌 에코넷, 2009년 수유리 골짜기부터34회째 이어진 정성다가오는 민족의 대명절,풍성한 한가위를 맞이하여 조국을 위해 귀한 목숨을 바치고도 정작 제사상을 차려줄 후손조차 없는 영웅들을 잊지 않고 기리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되었다.지난19일 토요일 오전부터,국립대전현충원 독립 유공자 제7묘역에 위치한'무후 광복군17위'와 독립 영웅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는 추모식과 추석 합동 차례'를 봉행했다고 밝혔다.무후 광복군 기념사업회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다 함께 모여,명절에도 떡국 한 그릇,송편 한 접시 올려줄 피붙이조차 없는 선열들을 위해 정성껏 차례상을 차리고 무릎을 꿇고 예의를 갖춰 술잔을 올렸다.헌화와 분향,헌작에 이어 애국가,추모사,광복절 노래,독립군가4절 제창,만세삼창이 묘역에 웅장하게 울려 퍼지며,선열들을 향한 한없는 존경심과 추모의 열기가 현장을 가득 채웠다.'무후(無後)광복군'이란,후손이 없다는 뜻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저 멀리 낯선 중국 대륙에서 무장 항일투쟁을 벌이다20대의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 산화하신 항일 열사님들이다.이분들은 너무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미혼이거나 직계 혈육이 끊겨,오늘날까지 제사를 모셔줄 후손이 단 한 명도 없다.광복 이후1965년부터 서울 강북구 수유리의 외진 숲속에 이름 없이 외롭게 잠들어 계셨지만,마침내2022년8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국가의 정당한 예우를 받아 이곳 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되시어 영면에 드셨다.또한,평생을 이역만리 타국에서 차가운 이슬을 맞으며 풍찬노숙하시면서도 오직 조국의 독립과 평화만을 위해 헌신하신'봉오동 전투의 영웅',홍범도 장군님도 대전 국립현충원에 모셔졌다.■채수창 대표&quot;선열들의 숭고한 이름,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에 영원히 새길 것“행사를 주최한 채수창 무후 광복군 기념사업회 대표는 추모사를 통해&quot;후손이 없다는 이유로 영웅들의 이름과 헌신이 역사의 뒤안길로 잊히는 것은 후대의 씻을 수 없는 직무 유기&quot;라고 역설했다.채 대표는&quot;조국을 위해 청춘과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신 광복군 선열들은 국가가 끝까지 예우하고 보살펴야 할 최고의 애국자들&quot;이라며, &quot;오늘 여러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정성으로 차례상을 올린 데 이어,앞으로도 무후 광복군17위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현충 사업과 청소년 역사 선양 교육을 확대해 국가와 국민이 영원히 기억하고 예우하는 보훈 문화를 확립해 나가겠다&quot;고 다짐했다.■김선홍 상임회장&quot;수유리에서 대전까지17년째…벌써34회 째 봉행!지난2009년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1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벌써34번이나 명절 차례상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묵묵히 챙겨온 김선홍 글로벌 에코넷 상임회장(대한민국 순국선열숭모회 상임공동대표)의 결연한 다짐 속에 있다.김선홍 회장은&quot;비바람 몰아치던 수유리 외진 골짜기에서 선열들을 모시기 시작한 작은 정성이 대전현충원으로 이어져 어느덧 제34회를 맞이했다!&quot;라며, &quot;선열들이 목숨 걸고 되찾아주신 번영된 조국에서 살아가는 우리5천만 국민 모두가,바로 이분들의 자손이자 상주(喪主)입니다!&quot;라고 가슴 벅찬 소회를 밝혔다.노태구 평화와 민족통일을 위한 원탁회의 상임의장과 김동원 상임대표는 추모사에서,오늘날 우리가 숨 쉬며 누리는 이 따뜻한 평화와 자유는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다가오는 추석 명절,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환하고 둥근 보름달을 보며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신'무후 광복군17위'선열과'독립영웅 홍범도 장군님'의 숭고한 헌신을 잠시나마 떠올려보는 것은 뜻깊은 추석을 보낼 것이다,고 추모 뜻을 전했다.이날 엄숙하게 치러진 합동 차례는 무후 광복군 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대한민국 순국선열숭모회,글로벌 에코넷,행·의정 감시네트워크 중앙회가 깊은 뜻을 모아 공동으로 주최했다.또한,박철연 고백고 통일연구소 대표,허상수 전 진화위 위원,한상석 평민통 사무총장,이전오 친일청산 한국사복원 운동본부 대표,국민생명안전네트워크,기업윤리경영을 위한 시민단체협의회가 주관하고, (사)공정 산업경제포럼이 뜻깊은 행사에 힘을 보탰다.]]></description>
			<pubDate>Mon, 21 Sep 2026 19:17:5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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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 quot;차례상 올려드릴 핏줄 하나 없지만,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이 당신의 자손!“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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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lt;상해통합임시정부 수립 107주년과 광복군 창설 86주년 기념 기자회견문&gt;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846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amp;amp;lt;상해통합임시정부 수립 107주년과 광복군 창설 86주년 기념 기자회견문&amp;amp;gt;한반도 종전·상호불가침·평화협정 체결하고, 유라시아 상생평화 당기자!오늘 우리는 상해통합임시정부 수립 107주년과 광복군 창설 86주년을 맞이하여, 외세의 수탈에 맞선 항일선열님들께서 남기신 자주독립과 민족자결, 세계평화와 인류공영, 화이부동과 존이구동 등과 같이 고귀한 염원을 창조적이고도 실천적으로 계승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지금 지구촌은 미·중 패권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등이 만들어가고 있는 국제적 지각변동과 신(新)냉전의 격랑 속에 있습니다. 이처럼 전례 없이 엄중한 위기 앞에서 우리 겨레가 나아갈 길은 명확합니다. 한반도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동북아를 넘어 유라시아까지 상생평화의 시대를 활짝 여는 것입니다.우리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밝힌 대북 메시지가 과거의 실패한 ‘선(先)비핵화 요구’에서 벗어난 전향적인 제안이라는 점에서 적극 환영합니다. 다만, 그 한계를 적극적으로 보완하고 실질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역사적 분수령이 되려면, 우리가 발표하는 다음과 같은 3대 제안 및 특별제안을 정부와 국제사회 및 북측 당국이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협상의 목표와 방법 등을 확실하게 밝히기 바랍니다.하나 [제재 완화 및 평화협정 체결] 완고한 압박에서 벗어나 선제적이고 과감한 대북제재 완화로 한반도 종전·상호불가침·평화협정(이하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미 수교 및 북일 수교로 나아가십시오!하나 [군사훈련 유예와 핵 고동화 중지 쌍(双) 중단] 평화협상 기간 동안 한미·한미일 등 군사훈련을 잠정 유예하고, 북측 역시 핵·미사일 고도화 촉진 등을 잠정 중지하는 실용적 '쌍 중단'을 전격 실천하십시오! 서로 적대감과 오해를 부추기는 군사행동을 동시에 멈추는 것이 대화의 출발점입니다. 쌍(双) 중단, 상호동시행동만이 신뢰 구축의 토대입니다.하나 [다중경로 협상 동시병행]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메이커로 자기역할을 한정한 채 북미 회담의 결과만 바라보지 말고, 남·북·미·중 정상이 모두 피스메이커로 참여하는 평화협정 체결협상 다중경로를 동시병행 추진하십시오!분단 현실을 인정하고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 공존을 거치는 단계적 통일'로 가기 위한 법적 토대 정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이에 우리는 엄숙한 마음으로 특별제안을 발표합니다.[특별제안: 상생평화 공존보장 개헌 공론화 요청] 우리는 개헌발의권을 가진 이재명 대통령과 국회를 향해, 헌법 제3조(영토 조항)와 제4조(통일 조항)를 '상생평화 공존보장 규정'으로 개정할 것을 숙의하는 '정부주도 개헌공론마당'을 올해 연말까지 설치할 것을 강력히 요청합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제안하는 평화협상의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이자 북측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결정적인 ‘선제조치’라는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그렇습니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합의를 일궈내고 분단 상태에 있는 남북영토를 현실성 있게 각각 구분하도록 헌법 제3조를 개정하고, '상호존중·상호교류·상호협력·상호신뢰·상호양보·상호합의' 등 상호주의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추진하도록 헌법 제4조를 개정하십시오.그렇게 한다면, 향후 만들어질 민족통일국가의 영토를 분명하게 유지하면서도 이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지 않을 수 있는 취지로 국가보안법 등을 전면 개정할 수 있고, 이북의 정식국호를 명기하면서도 자력안보와 자강외교 등에 기초하여 상생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규정이 마련될 것입니다.만약 정부가 오는 10월 말까지 이 공론화 요구에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는다면, 주권자인 시민사회가 직접 나서 11월부터 독자적인 ‘평화국민광장’을 조직하여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을 것입니다.여기서 우리는 정전(휴전)협정 서명당사자인 미국을 대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주기를 위한 만남이 아니라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회담을 준비할 것을 요구합니다. 최근 북미회담을 중재하겠다고 나선 중국 역시 대국적인 입장에서 한반도 등 유라시아 상생평화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여 협상이 실질적인 결실을 맺도록 중재하기 바랍니다.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식국호로 사용하는 북측이 적대적 2국가 전략 등을 채택한 것에 큰 유감과 함께 깊은 우려를 표명합니다. 밝은 미래를 함께 꿈꾸면서 서로 마음을 열고 지혜와 역량을 모은다면, 분단을 영구화하는 단절적 적대체제가 아니라 평화적 상생체제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조부모 등 항일선열과 선대의 유훈인 민족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첩경이 될 것입니다. 남북 회담 등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시기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역사의 전환점마다 시대를 깨운 것은 언제나 주권자 개인의 결단과 시민사회의 단합된 힘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평화와 상생의 미래를 열기 위한 힘찬 첫걸음을 시작합니다. 뜻을 같이하는 모든 국민 여러분, 함께 연대하여 평화의 길로 나아갑시다!2026년 9월 15일상해통합임시정부 수립 107주년과 광복군 창설 86주년 기념기자회견 동참 시민사회단체 및 개인 주권자 일동첨부 2 &amp;amp;lt;기자회견 동참 시민사회단체 목록&amp;amp;gt;01.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상규명위원회02. 개헌개혁행동마당03. 개혁연대민생행동04. 검경개혁과 법치민주화를 위한 무궁화클럽05. 공익감시 민권회의06. 국민연대 07. 국민주권개헌행동08. 대전고 민주동문회 09. 동북아상생평화 국민비전 대장정 회의10. 민청학련동지회11. 독립운동기념 사업회12. 보안사국가폭력역사관설립범국민준비위원회,13. 사)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14. 사)DMZ평화네트워크15. 사)평화통일시민연대16. 삼청교육대전국피해자연합회17. 5.18서울기념사업회18. 유라시아평화통합연구원19. 의민(義民)특검대20. 전국철거민협의회중앙회21. 접경지역평화 지대화 시민연대(준),22.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23. 80해직언론인협의회24. 투기자본감사센터25.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약칭 중추사),26. 한우리 글로벌 문화교육원28. 행·의정감시네트워크중앙회29. 흥사단첨부 3 &amp;amp;lt;기자 배포용 백(Back) 브리핑 자료&amp;amp;gt;평화보장 개헌(헌법 3·4조) 및 군사훈련 유예 제안의 배경과 근거1. 왜 헌법 제3조와 제4조를 개정·현실화해야 하는가?1) 기존 헌법의 모순 극복: 현행 헌법 제3조(영토 조항)는 북한 지역을 미수복 영토로 보아 북한 정권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반면, 제4조(통일 조항)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정책을 추진한다고 명시하여 남북적대를 내재화하고 긴장대립을 일상화하는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북은 이미 1991년 UN에 동시 가입한 개별 주권국가로 국제사회에서 기능하고 있습니다.2) 서독의 동방정책과 특수 관계 정립 사례:과거 서독은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Ostpolitik)을 바탕으로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하며 동독을 흡수 대상이 아닌 '특수관계의 파트너'로 인정했습니다. 특히, 서독 연방헌법재판소는 이 조약에 대해 '동독은 외국이 아니며 동서독 관계는 특수관계'라는 판결을 내려, 통일이라는 헌법적 목표(당시 기본법 전문 및 제23조의 통일 명령)를 유지하면서도 상호 공존과 교류를 지속할 수 있는 법적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즉, 동·서독이 서로를 국가로 승인하여 적대감을 낮추고 궁극적인 평화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결코 영토권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역사적 지혜를 빌려 '평화 공존을 거치는 단계적 통일'을 위한 법적·헌법적 토대를 닦자는 취지입니다.2. 한미 군사훈련 '잠정 유예'가 안보 공백(무장해제)인가?1) 과거 대화 국면의 전례 존재: 군사훈련 잠정 중단은 영구 폐기가 아닙니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당시에도 한미 양국은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대규모 연합훈련을 잠정 유예한 바 있습니다. 당시 이를 통해 북한의 추가 핵·미사일 도발 모라토리엄(유예)을 이끌어냈습니다.2) 실용적 '쌍(雙)중단(中斷)' 전략: 무조건적인 양보가 아닙니다. 우리가 훈련을 잠정 유예하는 대가로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잠정 중지하도록 맞교환하는 상호주의적 안보 전략입니다. 굳건한 한미동맹의 억제력을 바탕으로 하되, 긴장을 격화시키는 대규모 훈련을 조율하여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실용적 카드입니다.3.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를 깨고 고립을 자초하는 것 아닌가?1) 트럼프 미국 행정부 기조와의 동조화:현재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의 경직된 '선(先)비핵화 요구' 프레임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실리적인 대북 협상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한국 시민사회의 제안은 무조건적인 100% 제재 해제가 아닙니다.2) 신축적 제재 완화(Snapback) 도입:북한이 핵무기·미사일 동결, 감축 등 실제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 단계에 맞춰 제재를 신축적으로 완화하되, 북한이 약속을 어길 시 제재를 즉각 복원하는 '스냅백(Snapback)' 제안입니다. 미 행정부의 정책 변화에 맞춰 우리가 능동적인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취지입니다.]]></description>
			<pubDate>Thu, 17 Sep 2026 22:36: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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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t;상해통합임시정부 수립 107주년과 광복군 창설 86주년 기념 기자회견문&gt;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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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글로벌에코넷, 인천도시공사 향해 &amp; quot;무엇이 적법한 진행인가!&amp; quot;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806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객관적 증빙 자료 즉각 공개 촉구!주민&quot;착공 전 이주 조치 원칙 위반&quot;…환경영향평가 취지 무색 시민단체,인천도시공사에 포획·방사 전 과정 공개 및 공사 구역 긴급 보호 요구환경단체 글로벌에코넷과 행·의정 감시네트워크,기업윤리경영을 위한 시민단체협의회는 검단2일반산업단지의 멸종위기 야생생물2급 금개구리 포획·방사 이행 여부를 투명하게 확인하기 위해,지난9월7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사실확인 및 자료 제출 요구서 등39개 항목의 질의를 접수했다고16일 밝혔다.■&quot;8천 원짜리 순대국밥 영수증은 필수,멸종위기종 이주 증빙은 패스?“글로벌에코넷은 인천도시공사의'검단2일반산업단지 환경영향평가'관련 자료를 정밀 분석한 결과,일반적인 환경 조사 과정에서는 조사원의 차량 운행 일지는 물론,수천 원짜리 고속도로 통행료,편의점 결제 명세,심지어8,000원짜리 가마솥순대국 영수증까지 증빙 자료로 철저히 첨부된 것으로 확인됐다.그러나 엄격한 법적 절차가 요구되는'멸종위기 야생생물2급 금개구리의 포획 및 방사(이주)'와 관련해서는 현장 조사 일지,포획 원본 사진 및 영상,대체 서식지 조성 현장 확인서 등 필수 법적 증빙 자료가 단 한 건도 공개되지 않았다.글로벌에코넷은&quot;조사원들의 식대 영수증까지 꼼꼼히 챙기면서,정작 가장 중요한 멸종위기종 이주 작업에 대해서는 어떤 객관적 증빙도 없이 서류에'완료'라고만 적어 놓은 것은 기만적인 공문서 작성&quot;이라고 맹비난했다.■&quot;이주 끝났다&quot;더니35마리 무더기 출현…앞뒤 안 맞는 조치계획서인천도시공사가 한강유역환경청에 제출한'환경 피해 방지 조치계획서'에 따르면,공사 측은 지난해2025년7월28일부터10월31일까지 금개구리를 임시 대체 서식지로 포획·방사하는 작업을'旣완료'했다고 기재했다.인천도시공사는 지난2026년6월26일 자로 한강유역환경청에 착공(실제 착공일6월15일)통보서까지 제출하며 공사를 강행했다.하지만 조치계획서 스스로도2026년6월29일 사업지구 내부 기존 농수로에서 금개구리 성체 약35개체가 다시 확인되었다고 밝히고 있다.이 개체들이 과거 포획에서 누락된 개체인지,이주 후 되돌아온 개체인지,새로 번식한 개체인지 명확한 조사 결과조차 없는 실정이다.글로벌에코넷 김선홍 상임회장은&quot;우리는 이주가 아예 없었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공공기관이‘旣완료’라고 기록한 내용을 객관적 증거로 증명하라는 것&quot;이라며&quot;언제,어디서,누가,몇 마리를 포획해 어느 장소에 방사했는지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문서를 공개하라&quot;고 강력히 주장했다.■공사 강행하기 위한'시민단체 입틀막 프레임'중단 촉구최근 일부 언론들은 시민단체가 공사 중단을 목적으로 금개구리를 고의 방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이에 시민단체들은공사 강행하기 위한'시민단체 입틀막 프레임'중단을 즉각 촉구했다.또한,사실관계가 확인될 때까지 금개구리가 발견된 농수로와 주변 수변·초지의 훼손 우려 공정을 중지하고 긴급 보호 구역을 설정할 것을 촉구했다.기업윤리 경영을 위한 시민단체협의회는“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이나 포획·방사 허가 조건의 미이행이 확인될 경우 관계기관은 즉시 시정·보완,원상회복 및 공사 중지 등 필요한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며“인천도시공사는 포괄적인 해명이 아니라 문서 번호·작성일·개체수·접수 번호가 명시된 자료로 답해야 한다”고 밝혔다.]]></description>
			<pubDate>Wed, 16 Sep 2026 22:46:1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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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글로벌에코넷, 인천도시공사 향해 &amp; quot;무엇이 적법한 진행인가!&amp; quot;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img.ehom.kr/news/2026/09/16/835d24428f98925f3a118273d2b05d0b224353.png</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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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항일선열 받들어 남북평화협정 등 유라시아 상생평화 앞당기자”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689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상해통합임시정부 수립 107주년(9.11)과 광복군 창설 86주년(9.17)을 맞아, 민청학련동지회(상임대표 강창일)와 중추사(상임대표 이현배) 및 흥사단(이사장 김전승), 그리고 국민연대(상임대표 이근철) 등 22개 시민단체가 오는 9월 15일(화) 오후 2시,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amp;amp;lt;상해통합임시정부 수립 107주년과 광복군 창설 86주년 기념 기자회견&amp;amp;gt;을 공동으로 개최한다.한반도 적대종식과 자주평화 등을 열망하는 20여명이 참석하는 이번 기자회견은 미·중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례 없는 국제적 불안정성 속에서 자주독립과 민족자결, 세계평화와 인류공영, 화이부동과 존이구동 등을 핵심으로 하는 항일선열의 유지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힘차게 실천하고자 마련된 것으로서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이 밝힌 대북 메시지가 “과거의 실패한 ‘선(先)비핵화 요구’에서 벗어난 전향적인 제안”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환영과 지지 의사를 표명함은 물론 그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몇몇 대안을 제안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이들 단체가 고착된 남북관계를 돌파하고자 제안할 대안은 ▲협상기간 내 한미·한미일 등 군사훈련 잠정 중단, ▲완고한 대북 압박 탈피 및 대북제재의 과감하고도 선제적인 해제, ▲종전·상호불가침·평화협정(이하 종전평화협정) 체결 및 조미수교·조일수교 등이며,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북미회담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남·북·미·중 동북아 정상이 모두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한다.이를 위해 단체들은 북미회담, 남북회담, 4자회담, 다자회담 등 다중경로 협상을 동시 병행하라고 강조한다. 특히, 평화협상의 진전과 북측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선제조치’로서 개헌발의권을 갖는 대통령과 국회가 올해 연말까지 헌법 제3조와 제4조를 각각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개정할 것인지 여부 등에 대한 공론광장을 마련하라고 공개적으로 정식 요청한다.▼ 헌법 제3조 개정: 민족통일국가의 영토를 분명하게 유지하되, 통일 이전 분단 상태에서의 남북 영토를 각각 현실성 있게 구분하는 개헌 여부와 실익(이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 등 전면개정) 등▼ 헌법 제4조 개정: 흡수통일을 연상시키는 일방적 정책에서 벗어나, '상호존중·교류·협력·신뢰·양보·합의' 등 상호 조응 행동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추진하는 개헌 여부와 실익(이북의 정식국호를 제4조에 명기하는 등 상생평화체제 구축의 근거 규정) 등아울러 이들 단체들은 “정부와 국회가 10월 말까지 상생평화보장 개헌공론광장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는다면, 시민사회가 11월부터 독자적으로 ‘평화광장’을 조직해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엄숙하게 선언한다.그밖에도 단체들은 정전(휴전)협정 서명당사자인 미국(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보여주기를 위한 만남이 아니라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회담을 준비할 것을, 중국에게는 한반도 등 유라시아 상생평화를 위한 실질적인 협상을 중재할 것을 각각 요청하는 공개 메시지도 발표한다.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식국호로 사용하는 북측이 분단을 강요한 외세는 물론 이와 야합한 분열세력이 저지른 비극적 동족상잔과 지속적 적대행위에 따른 역사적 교훈을 외면하고 적대적 2국가 전략 등을 채택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함께 단절적 적대체제가 아니라 평화적 상생체제로 나갈 수 있고, 그것이 조부모 세대의 유훈인 민족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첩경이라는 입장을 선언한다. 송운학 동북아상생평화 국민비전 대장정 회의 상임의장은 “역사의 전환점마다 시대의 어둠을 깨웠던 것은 언제나 시민사회의 단합된 힘과 주권자 개인의 결단이었다.”면서 “뜻을 같이하는 많은 시민단체와 국민 여러분께서 당일 현장에 참석해 평화와 상생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당일 회견은 사전회람과정을 거쳐 합의된 기자회견문 낭독에 이어, 참석한 참여단체 대표와 주권자 개개인의 자유 발언 및 종전평화개헌 관련 구호 제창 등으로 진행될 예정이다.]]></description>
			<pubDate>Sun, 13 Sep 2026 21:10:2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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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고은리 신청사 공사 중지 10일째… 유물 145점 발견돼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674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사진9월2일 고은리 신청사 조성공사가 대량의 매장유산 발견으로 중지됐다.위 부지는 정밀발굴조사가 완료됐는데도 직경10cm가 넘는 유물들이 밀집 분포한다.(사진제공:중도본부)시민단체 중도본부(대표 김종문)는 고은리 강원도청 신청사 공사현장에서 대량의 유물이 발견돼 공사가 중지된 지10일째인9월11일,국가유산청의 소극적인 대응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강원도청 고은리 신청사 건립사업은 춘천시 동내면 고은리 일원에 부지면적 약10만㎡,지하2층~지상9층 규모로 추진 중인 약5,000억 원 규모의 대형 청사 이전 사업이다지난9월1일 중도본부가 고은리 신청사 공사현장에서 유물로 추정되는 물건97점을 발견했고,이에 따라9월2일부터 공사가 중지됐다.당시 발견된97점 가운데67점은 정밀발굴조사가 완료되어 복토된 부지에서, 30점은 정밀발굴조사가 실시되지 않은 부지에서 발견됐다.중도본부는9월2일 국가유산청에 발견신고를 하고 현장 확인과 보존조치,기존 발굴완료·복토부지 및 미발굴부지에 대한 재확인·재조사를 요구했다.9월6일 추가 발견…현재까지 유물145점그런데9월6일 고은리 신청사 공사현장에서 유물로 추정되는 물건48점이 추가로 발견되면서,현재까지 확인된 물건은 총145점에 달한다.중도본부는“이미97점의 유물이 발견돼 공사가 중지된 상황에서 추가로48점이 발견됐다는 것은 해당 부지의 매장유산 분포와 기존 조사 결과에 대해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특히 이번 발견에는 정밀발굴조사가 완료된 것으로 처리된 복토부지뿐 아니라 정밀발굴조사가 실시되지 않은 부지에서도 유물이 발견된 사실이 포함돼 있다.국가유산청,구체적 조치 묻자“법령에 따라 처리 예정”중도본부는9월2일 국가유산청에 제기한 민원에서 다음을 요청했다.▲국가유산청의 직접 현장 확인▲발견자 참여 현장점검▲발견물 전문가 확인▲67점 발견 복토부지 재확인▲30점 발견 미발굴부지 재조사▲기존 조사 및 정밀발굴 대상지 선정의 적정성 확인그러나 국가유산청은9월9일 회신에서“귀하께서 제기하신 공사중지 등의 조치사항은 매장유산 관련 법령이나 규정 등에 따라 처리할 예정”이라고만 답변했다.중도본부가 요구한 구체적인 보존조치 여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김종문 중도본부 대표는“법령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으로는 시민들의 의문에 답할 수 없다”며“공사 중지10일째인 지금 국가유산청이 현장에서 무엇을 확인했고 어떤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중도본부는 고은리 신청사 부지에서 추가적인 유물 발견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기존 조사 결과만을 전제로 공사 재개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관계기관의 객관적인 현장 확인과 필요한 재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description>
			<pubDate>Sat, 12 Sep 2026 19:43:12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한글과 한국여인문화, 피닉타 축제로 세계를 향한 문화항로의 나침판이 된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673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문화민족선진화위원회, 한국여인생활사박물관, 한글세계화총본부는 12일 한국여인생활사박물관에서 업무협정식을 갖고 한국 여성문화와 한글을 세계적인 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키기 위한 상호 협력에 나선다.이번 업무협정은 우리 역사 속 여성들의 삶과 문화적 유산을 체계적으로 발굴·보존하고, 이를 한글과 결합해 국내는 물론 세계인에게 알리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특히 한국여인생활사박물관 손미경 관장이 오랜 기간 연구하고 재현해 온 전통 가체와 궁중머리, 전통복식 및 장신구 등은 이번 공동사업의 중요한 문화자원이 될 전망이다.손 관장은 오만원권 지폐 신사임당 가채에 참여하였고, 오랜 기간 영화와 드라마 등 사극 분야에서 전통 머리양식에 대한 고증을 재현하여 한국 전통 여성문화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의미를 현대에 전달하는 데 힘써왔다.가체는 단순한 머리장식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여성의 신분과 혼인, 사회적 지위, 미의식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통문화의 한 분야다.세 기관은 이러한 가체와 복식에 담긴 이야기를 한글로 기록하고, 이를 다양한 언어로 소개함으로써 한국 여성문화가 단순한 ‘전통의 재현’을 넘어 세계인이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로 발전하도록 협력할 계획이다.■ 첫 공동사업으로 ‘한글과 축제로 만나는 한국여인문화’ 추진이번 협정의 핵심 공동사업으로는 ‘한글과 축제로 만나는 한국여인문화’ 프로젝트가 제시되고 있다.이 프로젝트는 신사임당을 비롯해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성들의 삶과 정신을 조명하고, 당시의 의생활과 머리모양, 장신구, 생활문화 등을 함께 소개하는 방식으로 추진될 예정이다.특히 전통 가체를 실제로 재현하고 그 제작 과정과 역사적 의미를 기록해 전시·교육·출판·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개발한다는 구상이다.한글세계화총본부는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를 외국어로 확장하고 해외 교육 및 문화교류 사업과 연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문화민족선진화위원회는 정부·지방자치단체·교육기관·문화기관·기업 및 민간단체와의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사업의 전국화와 국제화를 지원할 예정이다.한국여인생활사박물관은 가체와 전통복식, 장신구 등 한국 여성생활문화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고증을 바탕으로 전시와 교육, 체험 프로그램 개발을 담당한다.■ “전통을 보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세계의 문화자산으로”이번 업무협정이 주목받는 이유는 세 기관이 각각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한국여인생활사박물관이 전통문화의 원형과 고증을 담당하고, 한글세계화총본부가 언어와 교육을 통한 세계화를 담당하며, 문화민족선진화위원회가 정책·민관협력·국제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구조다.세 기관은 앞으로 공동 전시회와 학술세미나, 전통문화 체험교육, 출판물 제작, 다국어 콘텐츠 개발, 해외 문화교류 및 순회전시 등 다양한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이번 협정을 계기로 한국의 전통 여성문화가 K-팝과 K-드라마 중심의 한류를 넘어 K-헤리티지와 K-한글이라는 새로운 문화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관장 인사말문화민족선진화위원회 신동이의장「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quot;정한모 시인의 싯구입니다.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위대한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의 협력을 통하여 이 위대함을 세계 만방에 알리고자 합니다.&quot;한국여인생활사박물관 손미경관장“가체 하나에도 우리 여성들의 삶과 시대의 역사, 아름다움과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 전통 가체를 재현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를 직접 경험해 왔습니다. 이제 그 문화가 박물관 안에 머무르지 않고 한글과 '피닉타' 축제를 통해 세계인에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협정이 한국 여성생활문화의 보존과 계승, 그리고 세계화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한글세계화총본부 표경식총재“한글은 한국인의 문자를 넘어 한국문화를 세계와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전통 가체와 여성생활문화에 담긴 이야기를 한글로 기록하고 세계 여러 언어로 전달함으로써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겠습니다. 한글과 전통문화가 함께 세계로 나아가는 의미 있는 사업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진 설명사진 1. 12일 한국여인생활사박물관에서 열린 업무협정식에서 손미경 한국여인생활사박물관장과 문화민족선진화위원회·한글세계화총본부 관계자들이 한국 전통 여성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협력을 다짐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2. 손미경 한국여인생활사박물관장이 전통 가체를 소개하며 가체의 역사와 제작 과정, 시대별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 3. 한국여인생활사박물관에 전시된 전통 가체와 복식. 세 기관은 가체·복식·장신구 등 전통 여성생활문화를 한글 콘텐츠와 결합해 국내외에 알리는 공동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글을 세계로, 한국여인의 전통문화를 세계인의 문화자산으로”이번 협정은 하나의 박물관과 두 민간단체가 손을 잡는 데 그치지 않는다.한국 여성의 삶을 기록하고, 전통문화를 보존하며, 한글로 그 가치를 세계에 전하는 새로운 문화협력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세 기관은 앞으로 한국 여성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콘텐츠 개발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동시에 세계인이 함께 배우고 즐길 수 있는 문화자산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가체에서 시작된 작은 전통문화의 이야기가 한글을 만나 세계로 향한다.12일 한국여인생활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이번 업무협정식이 대한민국 전통 여성문화와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description>
			<pubDate>Sat, 12 Sep 2026 19:37:1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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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글과 한국여인문화, 피닉타 축제로 세계를 향한 문화항로의 나침판이 된다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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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글로벌에코넷, &amp; quot;환경의 진실을 외친 대가는 '가짜뉴스' 사냥감“ 시민단체, 'DK·더피알커뮤니케이션' 여론조작 의혹? 배후 철저 수사 촉구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673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환경단체'글로벌에코넷(상임회장 김선홍)'을 비롯한 연대 시민사회단체들은10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앞에서 대규모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거대 시행사인'DK도시개발'과 대형 홍보대행사'더피알 커뮤니케이션'의 조직적 여론조작 의혹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 줄 것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56분 만에 조작된 가짜뉴스,범인은'대형 홍보대행사'사건의 발단은2023년6월26일 게재된 한 언론의 기사다.이 기사는 타 지역(이천,용인)의 환경단체 금품 요구 사례를 다루었을 뿐, '글로벌에코넷'이나'김선홍'의 실명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그러나 기사 게재 불과56분 뒤,회원232만 명을 보유한 대형 부동산 카페 등을 중심으로&quot;글로벌에코넷이 금전을 갈취하다 체포됐다&quot;는 치명적인 허위 사실이 덧붙여진 게시물16건이 무차별적으로 살포되었다.경찰의IP추적 등 수사 결과,이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유포한 장본인은 검암로열파크푸르지오DK도시개발의 분양 홍보를 대행하던'더피알 커뮤니케이션'의 홍 모 본부장(당시 팀장)으로 밝혀졌으며,현재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서부지검에 송치된 상태다.■&quot;DK의 압박 있었다&quot;스스로 실토한 꼬리 자르기수사망이 좁혀오자,홍모 본부장은&quot;스트레스로 인한 개인적 일탈&quot;이라며 단독 범행을 주장하며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고 있다.그러나 글로벌에코넷이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 따르면,피의자는2026년7월8일 면담에서&quot;DK측으로부터 기사 처리가 안 되느냐는 말을 들었다&quot;고 발언했다.이어9월7일 검찰 형사 조정에서도&quot;업무상 클라이언트들로부터 기사를 왜 막지 못하느냐는 말을 들었다&quot;며 외부의 강한 압박이 있었음을 스스로 자백했다.이는 본 사건이 일개 직원의 홧김에 벌인 실수가 아니라,거대 자본(시행사)의 지시나 사주가 개입된 명백한'청부 여론조작 의혹'임을 시사하는 결정적 증거다.■환경 피해를 덮으려던 거대 자본의'앙갚음'행·의정 감시네트워크,국민연대 등 단체들은 시행사와 대행사가 이토록 무리하게 순수 공익 단체를 범죄 집단으로 매도하려 한 진짜 이유는, '대규모 도시개발의 환경 관련 문제 은폐 의혹'을 끈질기게 파헤쳐 온 시민단체의 입을 막기 위함이라고 지적했다.글로벌에코넷은2020년부터 전국 최초'주거 부적합'판정을 받은 사월마을 코앞에4,805세대의 아파트(검암역 로열파크씨티 푸르지오)가 들어서는 문제와 치명적인 환경 문제 정보 고지 누락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또한, 2021년4.5km에 달하는 아파트 현장의 초대형 불법 옥외광고물 철거를 이끌어냈고, 2022년에는 폭80m, 82만2,806㎡규모의 완충녹지 조성으로 인한 주민 재산권 피해 및 개발업자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입주를 앞둔2023년6월에는 주민 안전을 위해2차 사전검사와 안전 점검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고,우려는 현실이 되어 불과 한 달 뒤인7월11일 집중호우로 해당 아파트의 커뮤니티센터와 지하 주차장이 침수되는 참사가 발생했다.■&quot;진실 규명&quot;,검찰의 성역 없는 압수수색 촉구김선홍 상임회장은&quot;20여 년간 국가나 기업의 후원금을 받지 않고 묵묵히 환경과 이웃을 지켜온 순수한 공익 감시활동이,원 기사에도 없는 범죄 내용까지 날조한 거대 자본의 흑색선전에 의해 처참히 무너졌다&quot;며 진짜 피해자로서의 억울함을 호소했다.검찰·경찰 사법적폐청산 및 김앤장 해체운동본부와 투기자본감시센터 등 연대 단체들은&quot;피의자 개인의 꼬리 자르기 진술에만 의존해 사건을 덮어서는 절대 안 된다&quot;며, &quot;2020년부터 현재까지DK도시개발과 더피알 커뮤니케이션 간의 언론 대응 계약서,비용 지급 내역은 물론,가짜뉴스 유포 전후로 오간 모든 통화,문자,메신저,회의자료를 전면 압수수색 하여 사법 카르텔의 배후를 명명백백히 밝혀 달라&quot;고 서부지검에 강력히 촉구했다.]]></description>
			<pubDate>Sat, 12 Sep 2026 19:27: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comemoration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654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911 Memorial &amp;amp;amp; Museum 반사 연못2026년9월11일은2001년 일어난 뉴욕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지25년이 되는 날이다. 2001년 모두가 여느 날과 다른 없는 일상을 사는 가운데,초고층 상업 건물 두 곳에 비행기가 날아들어 평범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거의3천 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사건이다.미국은 이후 이곳을‘Ground Zero'라는 폭발이 일어난 지점으로 부르며,어떻게 이 지역을 활용할지 고민했다.파괴된 지역 중 일부는 건물을 세우기도 했지만,사고가 발생한 지역에 기억할 수 있는 박물관과 공원도 세웠다.’commemoration'이라는 단어는'co-'라는‘함께’라는 뜻을 가진 접두사와‘memory' ’기억‘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commemorate'라는 동사에서‘commemoration'이라는 명사가 나온 단어이다.직역하면’같이 기리기‘정도일 것이다.우리는’추모‘라는 말을 쓰는데 영어는’같이 기억하기‘또는’같이 기리기‘라는 말로 표현한다.’기억‘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는 영어 단어처럼, ’911‘을 기리는 장소에는 다양한 기억을 위한 노력이 보인다. ‘9/11 Memorial &amp;amp;amp; Museum‘근처에는 반사 연못(reflecting pool)이 있는데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담고 있다.그리고 생존자 나무(Survivor Tree)라고 해서 살아남은 사람을 기리는 장소도 있다.한국 현대사에도 안타까운 목숨을 한 번에 잃은 여러 번의 비극이 있었다.이 중’세월호 참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2014년 일어난 참사로300명이 넘는 이가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었다.그리고 그 중 다수는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이었다.출처: treeplanetvideo 세월호 기억의 숲에 대해 이야기하는 션 헵번 페리2015년 세계적 배우 오드리 헵번의 아들 션 헵번 리가 팽목항 근처에’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기억의 숲‘을 조성했다.그때는 저렇게도 기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어쩌면 영어 단어를 생각하면 그렇게 기리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나무는’911‘을 기리는 장소를 만든 이들도 말하지만,재생이나 다시 살아나는 존재이다.겨울에 죽은 듯 보였던 나무가 봄이 되면 다시 활력을 얻고 여름에 무성한 잎을 피운다.그렇게 인간은 한 번으로 끝나는 생명이 나무는 여러 번 순환한다.또 한국이 겪은 비극은’삼풍백화점 참사‘일 것이다. 1995년 발생한 사고로500명이 넘게 주고900명 넘게 다쳐서 참사라 불린다.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건물 붕괴 재난이라고 한다.이런 사고를 한국은 어떻게 기억하는지 생각해 보면 참 다르다.한국은 이런 비극적 사고가 난 곳에 보통 죽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위령탑‘을 세운다. ’삼풍백화점 참사‘위령탑은 사고가 났던 현장인 서초동에서 약5km정도 떨어진 양재시민의숲에 있다고 한다.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조형작품과 추모 공간이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 조성할 예정이라고 한다.출처: 서울특별시잔해는 난지도로 옮기고 사고가 났던 곳은 현재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되었다고 한다.평형과 층수에 따라 대략30억 원대에서50억 원 이상으로 상당히 고가 아파트 중 하나이다.1999년에는 청소년 수련원에서 화재가 발생해서23명이 숨진 사고도 있었다.이 중19명이 어린이였다.그리고 그 자리에는 카페가 생겨서 영업 중이다. 2021년 수련원 대표이자 카페 대표가 언론사에 나온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한국은 비극적 사고가 난 곳을 기억하기보다 지우려 하는 느낌이 든다.미국’911‘을 기억하고 그때 희생된 분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을 사고가 난 그 현장에 마련했다.돌아가셨든 생존하셨든 희생자라 생각하고 모두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이미 발생한 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최대한 그 당사자나 당사자의 가족이나 친지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게 노력하는 모습도 느껴진다.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그리고 개인적으로 기억하기에 다음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 사고를 생각하며 다음에 비슷한 사고가 나지 않게 노력하는 나라일수록 선진국이라 생각한다.기억하기 위해 해마다 그날이 되면 행사하는 것뿐 아니라,사고가 난 곳에 같이 기억할 수 있는 기념물을 세운다.한국처럼 탑만 세우기보다 나무를 심든 연못을 만든 예술적 사고가 반영된 생각할 거리를 세운다.다시는 그 비극적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강한 열망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삼풍백화점 사후 처리청소년 수련원 참사 후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8609]]></description>
			<pubDate>Sat, 12 Sep 2026 19:16:53 +0900</pubDate>
                        <image> 
              <title>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comemoration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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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654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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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DATA[정가 여신 하윤주가 출연하는 음악극 적로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577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국악방송TV‘적로’ 음악극은 대금 명인 박종기와 김계선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이고, 하윤주가 연기한 ‘산월’은 가상의 인물이라고 한다. 박종기 명인은 진도 출신이지만 서울로 올라와 많은 명인 명창과 공연을 했다고 한다. 대금산조를 최초로 만든 이로 알려져 있다.김계선 명인은 1906년 주전원내취(主殿院內吹), 1908년 장악원내취, 1911년이왕직(李王職) 세악내취(細樂內吹), 1913년 이왕직 아악수로 봉직하다가 1939년에 사퇴했다고 한다. 참고로 내취는 선 후기 선전관청에 속하여 입직, 시위, 연주를 담당한 군영악대라고 한다.출처: 국립국악원 박종기 류 대금 산조출처: 국악음악박물관 김계선 명인 청성곡]]></description>
			<pubDate>Fri, 11 Sep 2026 07:33:3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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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가 여신 하윤주가 출연하는 음악극 적로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youtube.com/watch?v=uF56CCIYRIU</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577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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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독립운동가를 기억하려는 순천시 여행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515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한옥글방 전경 - 약산 소식지 허예주 기자, 잘 보면 오른쪽에 독립운동가 생가터 표지판이 보인다.순천만 습지와 같은 아름다운 자연이나 낙안읍성 선암사 송광사 같은 문화재든 순천은 관광지로 볼거리가 많다.이런 순천에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다.2019년3.1운동10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순천시에서 독립운동 유공자51명의 생가터에 표지판을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했다.그래서 후손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분을 만날 수 있다.오늘은 시내 문화의 거리에 있는 세 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문화의 거리가 있는 곳은 성읍 근처 행동으로 과거에도 중심지 같은 곳이다.먼저 문화의 거리에서 인기 있는 관광명소인 한옥 글방부터 출발한다.한옥 글방 너른 마당에 독립운동가 성동준 선생님 생가터 표시가 있다.성동준 선생님은 학도지원병으로 끌려갔지만,탈출을 택했다.제3전구 충의구국군에 도착하여 미군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광복군에 편입하다가 광복을 맞았다고 한다.말이‘지원병’이지만 사실은‘징병’이다. 1938년부터 시작된 소위‘특별지원병’으로 일제가 전선으로 내몬 조선인 청년의 수는1938∼1943년까지 최소2만5천 명에 이르고1944년4월부터 실시된 징병제에 의해1944∼1945년 사이 육해군 합계2만9천여 명의 조선 청년들이 강제 징집당했다.일제강점기나 독재자나 항상 강제적으로 시키는 일에‘지원’이나‘자원’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말과 실제가 모순되게 한다.명목과 실제가 괴리가 생겨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후대가 헷갈리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성동준 선생님 생가터가 있는 곳에서1분 거리에 또 다른 학도지원병을 탈출한 독립운동가가 한 분 더 있다.박순동 독립운동가이다.이분은 미얀마 전선까지 끌려갔다가 인도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에게 투항했다.대일항전을 자청하여 인도 내에 있던 미군 전략첩보국(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에 넘겨져서 냅코작전을 위한 첩보활동,태업선동,무선연락 등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던 중 해방을 맞았다.박순동 생가터 표지판 -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더 기가 막힌 것은 해방 후 일본군 포로로 분류되어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되게 되었다.나라 없는 백성이 당하는 설움이라고 한다.이 경험을 바탕으로‘모멸의 시대’라는 책을 썼다고 하나50년 전 책이라 절판이고 구하기 쉽지 않다.냅코 작전은 한반도 침투 작전을 준비했다.미군은 재미 한인 중 민간인과 군인,미국 내 포로수용소 출신의 한인 포로,버마(미얀마)에서 탈출한 학도지원병 출신 한인 등을 모집했다.그러나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8월에 하고9월에 해산했다.미군에 입대한 재미 한인들은1945년9∼10월에 제대하였다고 한다.박순동,이종실,박형무 등 포로 출신의 한인6명은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도 없이 하와이 포로수용소로 이송된 후 귀국하였다.한국은 스스로 독립은 이루어 내지 못했다.외부의 힘으로 해방을 맞았고,그 외부의 힘은 한국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해방 후 한국이나 독립운동가가 겪은 여러 가지 일을 이해하려면 그런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다.‘모멸의 시대’라는 책이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서 좀 섭섭했다.이런 책이 계속 나와서 현재를 사는 우리가 독립운동가나 항일운동한 분의 실제를 알고 당시를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든다.학병 탈출 경험기 책 중 장준하 선생님의‘돌베개’와 김준엽 선생님의‘장정-나의 광복군 시절’은 아직도 출판 중이다.신상초 학병 탈출 경험을 담은‘탈출’이라는 책도 있다.또 박순동 선생님은 조정래 작가의 외삼촌으로, ‘태백산맥’등장인물 김범우를 만들 때 참조했다고 한다.또 드라마로 잘 알려진‘여명의 눈동자’대하소설에 나오는 장하림도 박동순 선생님을 바탕으로 만든 인물이라고 한다.순천시 행동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생가터 - 동그라미 표시 세 군데에 독립운동가 표지판이 있다.그리고 박순동 독립운동가 길 맞은편에 또 한 분의 독립운동가가 있다.문경홍 독립운동가는3. 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옥고를 치뤘던 분이다.순천시가 그래도 생가터 표시를 해서 여러 독립운동가를 만날 수 있었다.그리고 성동준 독립운동가 생가터가 아름다운 한옥 도서관이 된 것도 좋았다.독립운동가 생가를 온전히 복원할 수 없으면,이렇게라도 시민들이 자주 올 수 있는 좋은 공간으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학도지원병 실상]]></description>
			<pubDate>Fri, 11 Sep 2026 07:33:4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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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독립운동가를 기억하려는 순천시 여행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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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5155</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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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음악가 -서용석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504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국악TV 서용석류 아쟁산조 - 서영호 1969년에 확대 재구성하여 자신의 대금산조와 아쟁산조를 완성한 이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재직 시 1988년에 민속악단 단원인 박혜선과 정악단 단원인 양경숙에게 구음으로 해금산조 한바탕을 짜서 전수했다고 한다. 여러 국악인이 연주 중 서영석 국악인의 아들 서영호 선생님의 연주이다.출처: 여수시립국악단 서용석류 태평소 시나위셋째 아들 서영훈이 태평소 연주를 하는 영상출처: 빛고을국악전수관넷째 아들 서영민 해금 연주]]></description>
			<pubDate>Fri, 11 Sep 2026 07:33:4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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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음악가 -서용석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gugak.go.kr/ency/topic/view/1052</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504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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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음악가 - 대금이 누나 김지현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458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대금이 누나, 내 나라 대한]]></description>
			<pubDate>Sun, 06 Sep 2026 22:26:13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알바니아 서전 아일랜드 사례를 통해 생각해 본 한국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260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가디언지 지중해 마지막 남은 개발되지 않은 섬 중 하나가 트럼프 가족에게 팔렸다.아드리아해 이탈리아를 마주보고 있는 알바니아 서쪽 섬 하나로 알바니아 시민들이 시위 중이다.서잔 섬(Sazan Island)는 자연보호구역으로 군사 시설이 위치한 개발되지 않은 오래된 지구의 모습을 가진 섬이다.그러나2024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와 남편이 관심을 가지고 리조트 개발을 계획하겠다고 제안했다.이방카 트럼프의 남편이자 현 미국 대통령의 사위인 제러드 쿠쉬너가 지원하는 기업Atlantic Incubation Partners LLC와 Sazan Real Estate Development가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그러나 자연보호구역을 개발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알바니아 시민들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서잔 섬 소유는 알바니아 정부이지 미국 기업은 아니라고 한다.다만 미국 기업은 이 천혜 환경을 가진 곳에 고급 휴양 시설을 짓는 사업을 하고 그 시설로 이윤을 추구하려고 한다.미국 자본주의식 사고에 맞는 행동이라 볼 수 있다.그러나 알바니아 대통령은 군사 시설도 있고 자연 보호도 해야 하는 곳에 왜 개발을 허락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현 알바니아 대통령은 바이람 베가이이고 트럼프와 사이가 좋다.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축전을 보내기도 했고,국제연합 총회에서 만난 후 트럼프가 칭찬을 포함한 긍정적인 인상을 이야기하기도 했다.트럼프도 알바니아 독립기념일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주권 국가에게 영토는 중요하다.선진국일수록 자연 보호에 신경을 쓰고 개발에 조심스러운 것은 장기적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이다.단기적으로 개발이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보이더라도,장기적 관점에서 자연 보호를 하는 것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서잔 섬 사례를 보면서 제주도 곶자왈 개발이 떠올랐다.곶자왈은 제주도만이 가진 독특한 지형이다.숲을 뜻하는 제주어'곶'과 덤불을 뜻하는'자왈‘이 합쳐진 말로 숲덤불이다.척박한 용암 바위 위에 오랜 세월에 걸쳐서 식물이 자라면서 형성된 자연 환경이다.그리고 그 숲에 다양한 생물이 살게 되었다.미로 같은 숲은 여러 식물이 뒤엉켜서 활엽수림이나 침엽수림과는 다른 느낌이 있다.시각적으로만 대단한 것이 아니고 곶자왈은 제주섬의 허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산소를 내뿜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숲이다.그러나 이런 곶자왈의 가치를 무시하고 카지노와 호텔을 짓겠다는 중국 자본에 내 준 도지사가 있다.국내 기업도 아니고 중국 기업이 돈을 벌도록 보호해야 할 자연문화유산을 내 준 사람이 여러번 도지사를 한 곳이 제주도이다.제주도 난개발을 보면 마음이 아플 뿐이다.중국 자본이 땅을 사도록 허가한 후 개발되다 만 아름다운 제주도 땅이 너무 많다.싱가포르는 거주 목적이 아니면 부동산을 소유하기 힘들게 만들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주용이 아니라 여기는 두 번째 부동산 구매부터 누진세가 적용된다.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서울시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나라이다.총면적744.3제곱킬로미터 중357제곱 킬러미터가 녹지대이다.이는 약48퍼센트 정도이다.싱가포르는 녹지대와 상업지구 주택지구를 철저히 구별해서 관리한다.이렇게 녹지대를 충분히 확보하려는 것은 장기적으로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한국은2010년2월 제주도를 시작으로 외국인이 지정된 지역의 휴양 콘도미니엄 등 부동산에 일정 금액(당시5억 원 이상)이상을 투자하면 거주(F-2)자격을 주고, 5년 유지 시 영주(F-5)자격을 부여하는 제도가 있다.문제는 이렇게 영주권을 가진 사람이 일정한 자격만 되면 지방 선거 투표권을 가진다는 데 있다.대한민국 국적자가 아니어도 영주자격 취득 후3년 이상 경과 등의 요건을 갖추면, 국내 외국인 등록대장에 등재된 외국인은 시·도지사,구·시·군의 장,지방의원 등 지방선거에서 투표하는 것이 가능하다.한국 부동산 정책 중 외국인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문제 중 하나는 외국인이 부동산을 구매할 때 한국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를 시행하고 있었다.외국인이 국내 부동산(토지,건축물,분양권 등)을 취득하는 계약을 맺었을 때,계약 체결일로부터60일 이내에 관할 시·군·구청에 신고만 하면 되었다.그러다가 그나마2025년8월21일 이재명 정부에서21일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서울시 전역,인천시7개 구,경기도23개 시·군을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겠다고 했다.앞에 만들어진 제도를 쉽게 바꿀 수 없으니 그나마 일부라도 허가 구역으로 바꾸겠다는 거라도 다행이라고 봐야 하는 형편이다.한국은 산을 밀고 아파트 터널 도로를 짓는 것을 자랑으로 안다. 70퍼센트가 넘던 산지는 이제63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산지를 제외하고 녹지대를 찾아보기 힘든 도시에서 산을 밀고 집을 짓거나 도로를 만드는 것을 당연히 안다.2024년 기준 대한민국의 전국 주택보급률은102.9%로1가구당 집을 한 채씩 충분히 가지고도 남을 만큼 공급이 되어 있다.그러나 정부는 언론은 집을 많이 지어서 공급해야 한다는 소리만 하고 개발을 정당화한다.집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집을 가지고 있는 것과 집의 상태가 거주하기에는 불량한 상태의 집이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아파트를 더 짓겠다고 떠들기보다 쓸데없이 땅을 차지하고 있는 불량 상태의 집부터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오랫동안 방치된 빈집은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동네를 우범지대로 만든다.이런 집부터 정리해서 양질의 집을 늘리고 땅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실거주 안하는 외국인, 서울 등 수도권 주택 구입 불가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47982중국 자본에 팔린 제주도https://www.khan.co.kr/article/201409282222565중국인 특혜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amp;amp;amp;v=m5_XIeSY4RI&amp;amp;amp;t=240신화역사공원 특혜https://www.headlinejeju.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7098곶자왈 파괴https://jeju.ekfem.or.kr/posts/70t6Jv한 번 외국인에게 팔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투자 이민]]></description>
			<pubDate>Sun, 06 Sep 2026 21:50:3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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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알바니아 서전 아일랜드 사례를 통해 생각해 본 한국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facebook.com/CBSNews/videos/documents-reveal-plans-for-jared-kushner-backed-luxury-tourism-complex-in-albani/1449127610567288/</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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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독립운동가 이관술 울산 전시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237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전시관 입구 그림 정봉진 선바위 -신출귀몰 이관술2주도 남지 않은 전시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잊힌 독립운동가 이관술을 알리고,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의 결과물 같은 전시이다.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무죄를 기념하고 국가유공자 서운을 기원하며 열린 전시이다.이번 전시는 이관술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이관술 독립운동가와 같이 독립운동을 했던 많은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전시이다.특히 일제강점기 울산에서 활동했으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에 대해 알 좋은 기회이다.보성학교에서 활동했던 교사들도 있고,수탈의 대상이었던 농민과 노동자계급이 일제강점기 어떻게 저항했는지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사건들도 있다.아마 전시가 울산 노동역사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보니 주로 노동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시된 것 같다.일제강점기 많은 독립운동가가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포기하고,해외로 망명한 후 독립운동을 했다.그러나 남아 있는 사람은 노동자와 농민을 도와서 또 나름의 항일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조금만 독립운동 기미가 보여도 그 싹을 자르려 했던 일제이기에 독립운동을 드러내놓고 할 수는 없었다.전시 책임자분 말대로 어떤 경우는 전혀 관련이 없는 조직의 사람도 같은 지역이라는 이유로 사건을 조작해서라도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 내서 구속했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안명근을 빌미로 평안도 일대 독립운동가를 소탕하려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악사건’과‘신민회 사건’또는‘105인 사건’이라는 유명한 일제강점기 역사적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기 때문이다.일제는1910년10월27일 군자금을 모집하던 안명근을 체포했다.그리고 일제는 안명근 사건과 엮어서 황해도 일대의 김홍량(金鴻亮),김구 등 안악양산학교(安岳楊山學校)관련자와 면학회 및 부호,지식인층160여명을 체포하였다.그래서 안명근사건을'안악사건(安岳事件)'이라고도 한다.일제는 여기서 끝내지 않고1910년12월27일 주모자 이승훈·안태국의 인솔 하에 압록강철교 준공식에 참석한 조선총독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암살하려고 했다'라고 허위의 사건을 조작하고는1911년1월1일부터 신민회 중심인물600여 명을 체포하였다. 1심 재판에서105명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105인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사건이다.이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어도 일제강점기 많은 지역에서 많은 항일운동이 있었다.그리고 어느 독립운동가든 자기 목숨과 삶을 바쳐서 싸웠다.그러나 어떤 독립운동가는 자기 목숨을 잃고 가족을 잃으면서 독립운동을 했는데,해방 후 한국에 사는 필자를 비롯한 후손을 모르는 독립운동가도 있다.그래도 많은 개인이나 단체가 이런 안타까운 독립운동가에 대해 알리려는 노력을 통해 알려진 독립운동가도 많다.필자와 같은 일반인은 이런 전시가 없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많은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전시이다.기회가 되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무리한다.전시는9월12일 토요일까지이다.평일은10시부터6시,토요일은10시에서5시 운영한다고 한다.일요일은 단체 관람객 예약만 개방한다고 한다.예약하려면 울산노동역사관1987(052-283-1987)로 문의하면 된다.미군 방첩대와 정판사 사건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198943조국엔 언제나 감옥이 있었다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2297독립운동가 이관술 죽음에 대한 언론의 책임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984골령골 학살]]></description>
			<pubDate>Sun, 30 Aug 2026 22:24:2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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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독립운동가 이관술 울산 전시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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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237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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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DATA[한국인이 알아야 할 문화 - 강령탈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223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국가유산진흥원 이 공연에서 이재혁 피리 연주가는 악사로 참여하고 있다.황해도탈춤은 황해도의 평산과 기린의 남북을 중심으로 북쪽의 봉산탈춤형과 남쪽의 해주탈춤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강령탈춤은 해주탈춤형으로 분류된다고 한다.사실적인 얼굴 모습을 묘사한 인물탈을 쓰고 장삼춤을 추는 아담하고 부드러운 점이 같은 황해도 탈춤인 봉산탈춤과 다른 특징이라고 한다.출처: 국설당]]></description>
			<pubDate>Sun, 30 Aug 2026 22:24:2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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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인이 알아야 할 문화 - 강령탈춤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youtube.com/watch?v=RuWdE7gCxzs</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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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음악 - 삼현육각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177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국립국악원 삼현육각 삼현육각은 악기편성의 명칭이며,또한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뜻한다고 한다.삼현육각의 기본 악기 편성법은 피리2·대금1·장구1·북1로 편성되며,이는&amp;amp;lt;대풍류&amp;amp;gt;편성과 같다.그러나 경우에 따라 악기의 종류와 편성 인원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amp;amp;lt;삼현육각&amp;amp;gt;과&amp;amp;lt;대풍류&amp;amp;gt;의 차이점은 춤과 관련지을 때는&amp;amp;lt;삼현육각&amp;amp;gt;이 되고,풍류 즉 감상의 성격을 띨 때는&amp;amp;lt;대풍류&amp;amp;gt;가 된다고 한다. 삼현육각을 잘 보여주는 그림으로 김흥도의 무동과 신윤복의 쌍검대무가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홍도의 무동출처: 국가유산청 신윤복의 쌍검대무]]></description>
			<pubDate>Fri, 28 Aug 2026 20:20:18 +0900</pubDate>
                        <image>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음악 - 삼현육각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devin.aks.ac.kr/image/10161b6b-3445-442f-889f-d084fecbf8d1?preset=orig</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177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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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음악가 - 김오현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154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국악방송TV출처: KBS 김태영 진도씻김굿 이수자 ]]></description>
			<pubDate>Fri, 28 Aug 2026 20:20:1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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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음악가 - 김오현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youtube.com/watch?v=9eedCw9h-VY</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1545</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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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예술 -진도씻김굿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153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국가유산진흥원우리 소리 바라지 두 번째 구성원은 조성재 아쟁 연주가이다. 조성재 명인의 어머니도 강민수 대표 아버지만큼 유명한 분이다. 진도씻김굿 무형문화재 송순단 선생님이라고 한다. 송순단 선생님은 딸 송가인이 유명해지면서, 송가인의 어머니로 알려졌다.씻김굿은 죽은 이의 영혼이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풀고서 즐겁고 편안한 세계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굿이다. 진도 씻김굿은 진도 지역에서 전해 내려온 전통이다.진도씻김굿은 죽은 사람 뿐 아니라 산 사람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불교적 성격을 띠고 있는 굿이라고 한다.]]></description>
			<pubDate>Thu, 27 Aug 2026 20:39:06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식품 첨가제로 생각해보는 선진국과 후진국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1402</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CBC NEWS 너의 음식에 뭐가 들어 있니?캐나다 공영방송 기자는 질문을 가지고 있다.유럽에서는 금지하거나 경고문을 붙이는 인공 식품 첨가제가 캐나다에서 사용하고 있다.과연 소비자는 안심하고 그런 성분이 들어가는 제품을 먹어도 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유전자 변형 식품(GMO)또한 먹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표시는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그런데 유럽은 만약 이 식품첨가제를 먹었을 경우 어떤 위험이 있는지까지 표시한다.소비자를 생각하는 그런 태도에서 유럽은 우리보다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든다.먹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내가 먹고 있는 음식에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 밝히는 나라가 있고,아닌 나라가 있다.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그런 맥락에서 정부는 모든 식품의 정보를 정확히 표시하도록 법을 제정하고 단속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그렇다면 캐나다 기자가 계속 이야기했던‘Titanium Dioxide’에 대해 알아보자. ‘농식품 수출정보’에 따르면,소금 알갱이의1만분의1크기의 나노입자로 유럽에서 식품첨가물번호E171로 흔히 알려져 있다.흰색을 내는 색소로 식용색소와 혼합하여 식품의 색깔을 선명하게 하며 식품 외에도 의약품,화장품,페인트 건축자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알려져 가공식품에 널리 사용되었다.그러나2017년1월20일 프랑스 식품환경위생노동청(ANSES)이INRA(Institut national de la recherche agronomique)을 통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이산화티타늄 나노입자를 섭취할 경우 내장세포를 손상시키고,면역체계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며 암까지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출처: 타임지미국의 던킨도너츠는2015년부터 이산화티타늄의 나노입자 성분을 포함한 설탕의 사용을 중지하기도 했다.그 외에 유럽에서 금지하고 있는 첨가제로는Potassium Bromate, Brominated Vegetable Oil (BVO), Azodicarbonamide (ADA), Yellow 5 (Tartrazine) and Yellow 6가 있다.브롬산 칼륨은(Potassium bromate)은 과거 제빵 공정에서 밀가루의 반죽을 강화하고 부풀림을 좋게 만드는 밀가루 개량제(산화제)로 널리 사용되었으나,현재는 강력한 발암 가능성으로 인해 한국을 포함한 국가 대부분에서 사용이 전면 금지된 물질이라고 한다.브롬화 식물성 기름(Brominated Vegetable Oil)감귤류 향 음료나 탄산음료에서 향이 물 위에 뜨지 않고 골고루 섞이도록 돕던 식품 첨가물이라고 한다. 2024년8월2일부터 미국 탄산음료 시장에서는 브롬화 식물성 기름 사용이 금지됐다.그러나 일부가 남아 있는데,큐리그 닥터 페퍼의‘선드롭(Sun Drop)’이라고 한다.브롬화 식물성 기름을 제거하는 대신 대체 유화제로서 사탕무스 아세트산 이소부티레이트(SAIB)및 글리세롤 에스터를 사용해 브롬화 식물성 기름과 동일한 기능을 가지면서도 인체에 더 안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아조다이카본아마이드(Azodicarbonamide)는 보통‘ADA’로 줄여 표시한다.폴리염화비닐(PVC),에틸렌 아세트산 비닐 공중합체(EVA)등 플라스틱과 고무 제품을 만들 때 기포를 발생시켜 스펀지나 요가 매트,신발 밑창,장판 등을 제조하는 데 널리 쓰인다고 한다.그리고 밀가루를 표백하고 반죽의 탄력과 찰기를 높이는 용도로 사용한다. 삼성서울병원(http://www.samsunghospital.com/home/healthInfo/content/contenView.do?CONT_SRC_ID=27848&amp;amp;amp;CONT_SRC=HOMEPAGE&amp;amp;amp;CONT_ID=3787&amp;amp;amp;CONT_CLS_CD=001021002002)에 따르면,국내에서는2006년 이후로 밀가루의 물성을 개량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아조디카르본아미드(ADA)를 생산하거나 수입하지 않는다고 한다.타르트라진(Tartrazine)은 식품,의약품,화장품 등에 널리 쓰이는 선명한 레몬빛 노란색 합성 아조 염료(황색4호)이다.식품 첨가물 코드로는E102, FD&amp;amp;amp;C Yellow 5등으로 불리기도 한다.과자,음료,젤리,사탕,빙과류,시럽 등 다양한 가공식품에 널리 쓰인다.대부분 식품 첨가제는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것 같다.빵 모양이 더 팽팽하게 보이고,과자 색깔이 선명해 보이는 용도가 많다.‘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는 옛 속담은 ‘보기 좋은 가공 식품에는 식품 첨가제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게 현대적 속담인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이 잘 팔리기 위한 노력인 것 같다.그러나 그 첨가제가 인간이 내부로 흡수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면 먹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가능성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한국 정부나 캐나다 정부는 조심스러운 결론을 내리는 것 같다.유럽은 소비자의 안전에 더 중점을 두고 가능성이 높다면 금지하거나 가능성이 있다면 경고문을 표시한다.소비자인 필자로서는 유럽식 엄격함이 조금 더 마음에 든다.아이를 키우는 어떤 지인은 가공식품을 살 때 모르는 성분이 있으면 아예 사지 않는다고 한다.어떤 면에서 피곤할 수 있지만,그렇게까지 엄격한 사람도 있다.영국 희극인 지미 카(Jimmy Carr)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면 좋냐는 질문에,지금이 힘들면 나중이 편하다고 했다.이 생각이 가공식품 고르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처음에 식품 성분을 살펴 보고 살면 피곤하다.뒤에 식품 표시 읽다가 지치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공식품을 전혀 먹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가 조금 엄격한 잣대로 식품첨가물 관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이 늘 신경 쓰고 조심해서 먹는 것도 필요하지만, 식품첨가물이 신체에 해롭다고 정부가 판단을 내려 금지하거나 알려준다면 이 피곤함이 덜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유럽만큼 한국 정부가 아주 엄격하다면 이런 피곤함을 덜 느끼며 살지 않을지 생각해 본다.미국 식품 첨가제 퇴출 움직임https://www.kati.net/board/exportNewsView.do?board_seq=103766&amp;amp;amp;menu_dept2=35&amp;amp;amp;menu_dept3=71녹지 않는 아이스크림]]></description>
			<pubDate>Thu, 27 Aug 2026 20:39: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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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식품 첨가제로 생각해보는 선진국과 후진국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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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진도 다시래기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116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얼씨구TV 강준섭 진도 다시래기다시래기를 국가유산청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다시래기는 진도에서 전승되는 장례놀이다. 진도 다시래기는 우리의 오래된 장례풍속의 모습을 잘 담고 있고 연극적인 짜임새가 각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시래기라는 말의 어원은, ‘다시나기(다시 낳다)’, ‘다시락(多侍樂;여러 사람이 모여서 같이 즐긴다)’에서 나왔다고 설명된다. 이와 같은 뜻풀이는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는 상황과 연결돼 있으므로 예사롭지 않은 풍속임을 말해준다. 또한 다시래기의 이칭으로 ‘대시待時레기’라는 말이 있는데, ‘망자의 영혼이 집에 머물다가 떠나는 시간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노는 놀이다.’라고 풀이된다.https://www.khs.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OiMov36aSfzU5DFgB0Un32WNoaHnnhWwxnn7RIyeP4oKPUTktRvLgOOkb7XJEadO.cha-was02_servlet_engine1?nttId=6442&amp;amp;amp;bbsId=BBSMSTR_1008&amp;amp;amp;pageUnit=10&amp;amp;amp;searchtitle=title&amp;amp;amp;searchcont=&amp;amp;amp;searchkey=&amp;amp;amp;searchwriter=&amp;amp;amp;searchWrd=%EB%8F%99%EB%B0%B1&amp;amp;amp;searchUseYn=&amp;amp;amp;searchCnd=&amp;amp;amp;ctgryLrcls=&amp;amp;amp;ctgryMdcls=&amp;amp;amp;ctgrySmcls=&amp;amp;amp;ntcStartDt=&amp;amp;amp;ntcEndDt=&amp;amp;amp;mn=NS_01_09_01]]></description>
			<pubDate>Thu, 27 Aug 2026 20:39: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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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진도 다시래기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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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음악가 - 우리소리 바라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116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KBS 전주 바라지 비손7명 구성원에 관한 간단한 소개강민수 대표(무형문화재 진도 다시래기 예능보유자 강준섭 선생의 아들)아쟁 조성재(진도씻김굿 무형문화재 송순단 선생의 아들)소리 김태영(진도씻김굿 무형문화재 김오현 명인 아들), 진도씻김굿 이수자대금 정광윤 씻김굿과 삼현육각 전승자피리 이재혁 황해도 강령탈춤 전승자소리 김율희 춘향가 이수자가야금 김민영]]></description>
			<pubDate>Thu, 27 Aug 2026 20:39:06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bigot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071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The Daily Show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bigot 편협한 사람, 꼴통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Scepticism and Tolerance’를 읽으며 김태형 심리학자의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를 생각하며 읽었다. 지방에서 오래 살았고 서울과 외국에 잠시 살아 본 경험으로 지방 사람이 서울과 같은 대도시 사람에 비해 보수적인 것은 인지하고 있다. 나쁘고 좋은 것이 아니라, 변화가 적고 구성원이 잘 변하지 않는 지방은 새로운 것에 대해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리다. 심한 경우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을 표하기도 한다.이 소논문은 원래 1949년 BBC에서 방송되었던 ‘“Why Fanaticism Brings Defeat,”에서 온 글이다. 역사적 사건에서 광기가 이성을 이겼던 사례를 통해 왜 사람들이 편협하게 행동하는 지에 대해 고찰하는 글이다.이 때 편협한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로 ‘bigot’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온라인 캠브리지 영어 사전에 따르면 ‘bigot’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a person who has strong, unreasonable beliefs and who does not like other people who have different beliefs or a different way of life:버트란드 러셀도 비슷한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다.Nothing can be more hopeless than a population of disillusioned bigots, who have lost the capacity to be rational, and have no longer any outlet but despair for their irrationality.‘bigots’라는 단어 뒤 정의를 보면, 이성적일 능력을 상실하고 비인성적 절망만을 표출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편협한 사람은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행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성을 가진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없다.BBC 방송 제목에 쓰였던 ‘Fanaticism’과 어떤 맥락에서 통하는 단어이다. ‘Fanaticism’은 우리말로 광신주의에 해당한다. 온라인 캠브리지 영어 사전 정의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extreme beliefs that may lead to unreasonable or violent behaviour:버트란드 러셀은 이런 광적인 믿을을 가진 사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Fanatics are unwilling to accept scientific discoveries made by their enemies, and therefore soon fall behind those whose outlook is more cosmopolitan.광신도(Fanatics)는 적이 발견한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계시민주적 전망을 가진 사람들보다 곧 뒤쳐지게 된다. 광신도나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나 변화하는 사회를 이해하기보다 과거 사실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은 회의적이기 쉽다. 새로운 세상, 변화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기에 대체적으로 긍정적이고 관용적인 사고를 하기 어렵다고 한다. 주변에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과 어울리기 어렵게 된다. 그러다 보니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고 한다.아주 오래 전에 독재자를 찬양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이야기했던 방송 평론가도 비슷한 농담을 한 적이 있다. 그들과 논리를 가지고 대화할 수 없다. 그들처럼 감정적인 방식으로 대화해야 한다고 했다. ‘네 눈이 어떠니까 넌 그런 사람이야.’라고 한다든지 그들이 공격하듯이 이야기하면 자신은 똑같은 말투로 이야기한다고 했다. 물론 이건 대화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평론가는 반은 농담으로 그들의 비이성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 같다.버트란드 러셀은 이런 편협성과 반대하여 ‘tolerance’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관용’으로 흔히 번역하는 ‘tolerance’는 프랑스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높은 가치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그러나 편협한 류들은 이 관용을 부수려고 해서 서구는 어렵게 이 가치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과학에 기반을 둔 사고로 관용을 배우고 있고, 경험상 관용이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관용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인간은 진보를 해 왔다고 버트란드 러셀은 생각한다.이 생각은 1949년 뿐 아니라 지금도 통하는 생각 같다. 과학의 발전으로 이성이 발달하고 논리적 사고가 발달했다. 하지만 아직도 미신에 매달리고 비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더 문제는 이들이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해서 다른 이들의 생각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데 있다.게다가 이들은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그들의 극단적 행동은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을 방해하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늘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관용을 베풀며 살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만드는 평화를 편협한 생각을 가진 이들은 서슴없이 파괴한다.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는 이런 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부수는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을 방치해야 하는가이다. 올림픽 공원에 모인 사람들로 주변 주민들은 일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의 생각을 전혀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우리는 어디까지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지 질문하고 싶다.시위대에게 몸수색당하는 시민]]></description>
			<pubDate>Thu, 27 Aug 2026 20:39:0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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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bigot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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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 유관순 열사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6034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유관순 열사 사적지 들어가는 입구 -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지난번 안예은 음악가의‘8호 감방의 노래’와 관련된 독립운동가를 이야기하면서,따로 기사를 쓰겠다고 했던 첫 번째 독립운동가는 유관순 열사이다.어릴 때‘유관순 누나’라고 부를 때부터 독립운동가로 알았지만,어른이 되면서 유관순 열사에 대해 더 알수록 더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삼일 만세운동을 하다가 끌려가서 서대문 형무소에 수용되었다.그리고 모진 고문과 열악한 환경으로18살 어린 나이에 순국했다.하지만 필자가 유관순 열사를 만나러 간 날은 해방 후 한국이 독립운동가를 어떻게 대하는지 잘 보여주는 두 가지 일이 있었다.유관순 열사 사적지를 알리는 안내판 앞에 상업 간판이 유관순 열사 사적지만큼 잘 보였다.그리고 다른 일 때문에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유관순 열사 기념관 앞 공놀이를 하는 아이 때문에 기념관 들어가는 길이 막혔다.들어가야 하니까 비켜 달라고 해서 들어가기는 했지만,속으로는 화가 났다.아이들 잘못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제발 공놀이 할 곳과 아닌 곳을 구별했으면 좋겠다.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었다.광주 학생 독립운동 기념관 갔을 때도 기념관 벽을 배경으로 공차기하는 아버지와 아들 때문에 어이가 없었던 적도 있다.독립운동가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까지 바라지 않는다.다만 어떤 장소는 조용히 기리기 위한 곳이지,공놀이를 위한 장소가 아닌 곳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이게 무지의 소산인지 무신경의 소산인지 잘 모르겠다.그러나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장소에서만큼은 공놀이를 비롯한 소란스러운 행위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관순 열사는3·1운동이 발발하기 바로 전날 서명학,김분옥 김희자,국현숙 등4명의 고등과1학년 학생들과 시위 결사대를 조직,만세 시위에 참여하기로 굳게 맹세하였다.드디어3월1일 탑골공원을 나온 만세 시위대가 학교 앞을 지나자,유관순 열사는5명의 시위 결사대 동지들과 함께,프라이 교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뒷담을 넘어 시위운동에 동참하였다.당시 서양 선교부와 본국 공사관 등은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했고,일부 미션스쿨의 외국인 교장들은 일제의 탄압과 학교 폐쇄를 우려해 학생들의 거사를 막으려고 했던 것이 전반적인 상황이었다.일제에 의해 학교에 휴교령이 내리자,유관순 열사는 사촌 언니 유예도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겨서 귀향하였다.그리고 본격적으로 고향에서의 만세 시위운동을 추진하여 갔다.마침내4월1일 아우내 장날 유관순 열사는3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 운동을 벌였다.유관순 열사와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적으로 추진하였던 조인원이 긴 대나무 장대에 매단 큰 태극기를 장터 한가운데 세우면서 아우내 장터의 만세 시위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평화로운 시위를 일제는 폭력으로 진압했다.천안 일본군 헌병분대원들과 수비대원들이 도착하여 총검으로 시위 운동자들을 학살함에 따라 이날19명의 사망자와3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이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 아버지 유중권이“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느냐”고 항의하다가 일본 헌병의 총검에 찔려 순국하였고,이를 보고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고 달려들다가 유관순 열사의 모친마저도 일본 헌병들에게 학살당하고 말았다.헌병들은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시위 군중들을 해산시킨 뒤,유관순 열사와 유중무,조인원·조병호 부자 등 시위 주동자들을 체포하여 천안헌병대로 압송하였다.유관순 열사는 천안헌병대에서 갖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시위 주동자라고 말하면서 죄 없는 다른 사람들을 석방하라고 호통치기도 하였다.이후 공주감옥으로 이송될 때에는 군중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날 때마다 독립만세를 연이어 큰 소리로 외치며 불굴의 독립의지를 표출하기도 하였다.공주감옥에서 선생은 공주 영명학교에 다니면서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잡혀 온 오빠 유우석을 만나게 되었다.오빠 유우석은1919년8월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6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았다.유관순 열사는 경성복심법원에서는 징역3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되었다. 1920년3월1일3·1운동1주년을 맞이해서는 수감 중인 동지들과 함께 대대적인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이로 인해 선생은 지하 감방에 감금되어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게 되었다.선생은 고문으로 인해 방광이 터지는 중상을 입었으나 치료하지 못한 채 고문의 후유증과 영양실조로1920년9월28일 오전8시경,서대문 감옥에서18살의 꽃다운 나이로 순국하고 말았다.이 때 유관순을 고문한 이는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었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는 정수영(鄭壽永)으로 기록되어 있으나,이후 이름을 정춘영(鄭春永)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유관순 열사의 유해를 찾지 못한 것이다.순국 후 이화학당과 정동교회를 통해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했다.그러나1930년대 중후반 인구가 늘어나면서 일제는 대규모 도시 정비에 나섰다.공동묘지가 포함된 이태원 일대는 주택지로 개발되었다. 1935~1936년 공동묘지의 이장이 진행됐다.당시 이태원 공동묘지의 무덤은3만기가 넘었다.그러나 가족이 이장한 유연고 묘는4778기에 불과했다.나머지 무연고 묘2만8000기는 유해를 한데 모아 화장한 뒤 새로 개장한 망우리 공동묘지에 합장했다.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합장비’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8호 감방의 노래 원곡(선죽교 피다리라는 곡에 붙여서 불렀다고 함)유관순을 고문한 정수영유관순 열사 오빠 유우도가 다니던 영명학교유관순 열사 유해https://www.khan.co.kr/article/201909272018025유관순 기념 일제의 흔적이태원 공동묘지에서 유관순 묘역이 사라진 이이태원 역사유관순 조카,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description>
			<pubDate>Tue, 25 Aug 2026 09:41:1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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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 유관순 열사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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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안예은 8호 감방의 노래를 만든 독립운동가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986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프란 안예은 8호 감방의 노래안예은 음악가가 재해석해서 만든 독립운동가의 노래가‘8호 감방의 노래’이다.서대문 형무소라는 끔찍한 곳에 삼일 만세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들어가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여성 독립운동가7인 등이 불렀다고 전해지는 노래이다.유관순 권애라 김향화 독립운동가 정도는 역사에 관심 있으면 들어보았을 이름이다.그래도 소중한 우리 독립운동가이기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 번 따로 쓰려고 한다.이번 기사에서는 조금 이름이 낯선 네 분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소개하려 한다.심명철(沈明哲)독립운동가는 심영식(沈永植)이라는 이름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심영식 독립운동가는 개성의 첫 번째 만세 시위를 권애라 독립운동가와 함께 촉발했다고 한다.이 때 같이 한 분이 신관빈 어윤희 독립운동가이다.개성에는1919년2월28일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으나,배포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채 북부예배당 지하에 은닉되었다.이때 호수돈여학교 부설 유치원의 교사로 있던 권애라 독립운동가가 용감하게 배포하는 일에 앞장섰다.오후2시경 어윤희는 신관빈(申寬彬)과 함께 만월정(滿月町) ·북본정(北本町) ·동본정(東本町)일대의 행인 수십 명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독립선언서 배포 이후 개성의 첫 만세시위는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하였다. 3월3일 오후2시,호수돈여학교 학생35명이 찬송가와 독립가를 부르며 거리에서 만세 시위에 나섰다.시위대의 수는 일반 군중들이 가세하면서1,000여 명까지 늘었다.그리고 권애라 심영식 신관빈 어윤희 삼일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이들이 잡혀간다.이로 인해 심영식 독립운동가는1919년5월6일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10개월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권애라,어윤희,신관빈과 함께 유관순이 감금되었던 서대문 감옥 여옥사8호 감방에서 수감 생활을 하였다. 1919년10월에 가출옥하였다.1920년에3·1운동1주년을 맞아 개성 미리흠여학교 학생들과 만세 시위를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1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6개월 만에 가출옥하였다.투옥 중 간수에게 뺨을 맞아 고막이 터져 평생 한쪽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후유증으로 고생하였다고 한다.신관빈 독립운동가는 당시 호수돈여학교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기독교 전도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3월2일 교회에서 체포되어1919년4월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1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4월11일 만기출옥했다. 《동아일보》1920년4월18일자에 실린‘출옥자 감상문’에 따르면 그는 감옥생활에 대해“사람으로는 받지 못할 만큼 망측한 대접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출옥자 감상문 전문은 다음과 같다.출옥자의 감상신관빈 녀사(여사)의 말별로 이텃타는(이렇다 할)특별한 감상을 말할 것이 없습니다.원래 작년 삼월 이애로 수백명의 녀자가 입옥하얏스나 대개는 방면되고 지금은 소요범인으로 남은 사람은 십여인밧게(십여인 밖에)나지 못하였습니다.옥중에서 지내는 심함은 의례히 그러한줄 아랏스닛가 별로 놀랄 것도 없고,별로 고통을 느길것도 없섯슴니다.저는 작년 삼월 초순에 개성에서 선언서를 배부하고 그 잇흔날(이튿날)례배당에 갓다가 잡히어 옥중에 도텨가 일개년동안 복역하고 나왓습니다.마루바닥위에 다다미를 깔고 그 위에서 자는데 사람 네 며 압헤(앞에)일본이불 한아식(하나씩)을 주옵니다.그러나 엇터케 윈운지 모미 모다 일어서 뇌터지고 압하(아파)참아 견딜수 없섯슴니다.그러 한증 더욱이 간순의 가혹한 풀은 무엇이라 말하야 옳을지 그도 사람인가 인정늘가진 동물인가,의심할만큼 심혹하옵니다.물론 그 속에서 하고지내는 품이나 대우 받는 것은사람으로는 밧지 못할만큼 망측하옵니다.이제 우리의 할일은 아못조록(아무쪼록)청년남녀를 교육을 만히 식하여 수용할 인재를 양성하여야 하겠슴니다.우리가 제일 통철하온긴 것을 우리의 사회에 인재의 결핍이올시다.돈만히 가진 부자들은 쓸데없는 사치를 좋 덜하고 비단옷 좀 덜 입고자동차에 실고 다니는 기성 좀 덜 실고 다니고 아못조록 절약하야 우리의 자매를 교육할 만한 학교를 만히 설립하고 수용할 청년을 뽑아서 해외로 유학을 보내야 하겠습니다.어서어서 우리도 남파간치 배와야 하겠슴니다.조선 사람들의 쓸데업시 관혼상제에 성대히 음식을 준비하고 기성(기생)을 몃식 부르는 것은 보면 참 통분하옵니다.그들은 왜 지금 세상이 엇더한것인지를 세닫지 못하는지요?왜-좀 사람다옵게 살 줄은 모르는지요?스코필드씨가 조선 사람들의 흉을 잘 보지요.그림서 조선 사람들은 그 사람은 조션 사람 흉만 보는 사람이라고 하지요만는 사실이 그런 것을 엇지 하옵니가 도로혀 용서업시 말해주어 우리로 하야금 반성하게 해주는 것이 도로혀 고맙슴니다.출처: 1920년 4월 18일자 동아일보 기사 (띄어 쓰기와 괄호 안 현대어는 필자가 표기한 것임)임명애 독립운동가는 파주의 첫 만세 시위를 주도한 분이다. 1919년 당시 남편 염규호와 함께 구세군으로 활동 중이었다. 1919년3월10일 파주군 와석면 교하리에 있는 교하공립보통학교에서 임신한 몸으로 학생1백여명을 이끌고 앞장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했다.이날 시위 현장에서 체포되어1919년6월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1년6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투옥 당시 임신한 상태로 출산을 위해 잠시 가출옥했다가1919년11월에 재입감되었다. 1920년9월25일에 만기출옥했다.권애라, 심영식, 신관빈, 임명애 지사제암리 학살사건을 알린 스코필드 선교사]]></description>
			<pubDate>Mon, 24 Aug 2026 19:12:5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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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안예은 8호 감방의 노래를 만든 독립운동가들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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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국방부가 불침번 대신 택하겠다는 폐쇄회로텔레비전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986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YTN 야간 불침번 대신 폐쇄회로텔레비전국방부가 불침번 경계 대신 폐쇄회로텔레비전(CCTV)를 활용하겠다고 해서 여러 가지 말이 나오고 있다.듣자마자 이게 가능한 것인지 질문부터 들었고,그리고 정부가 여러 해 동안 해 온 방식을 봤을 때 불안감이 들었다.한국이 폐쇄회로텔레비전이 있어서 범죄율이 낮다고 하지만,안보에 관련된 문제를 일상 안전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이 간다.그리고 한국 정부는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때 생길 수 있는 모든 문제점을 고려해서 꼼꼼하게 정책을 만들지 않는다.상명하달식으로 현장 공무원이 알아서 하라고 일단 시행했다가,문제가 생기면 고치거라 아예 그 정책을 폐지하는 경우가 많다.먼저 폐쇄회로텔레비전이 얼마나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는지 충분한 검토를 거쳤는지 그리고 비용 관련해서 꼼꼼히 생각해 본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폐쇄회로텔레비전은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 신호를 일반 방송망이 아닌 제한된 사설망을 통해 지정된 모니터나 저장장치로만 전송하는 영상 감시 체제를 가리키는 말이다.카메라로 영상을 찍지만,제한된 사람만 볼 수 있기에 폐쇄 회로라는 말이 들어간다.다른 말로 닫힌회로라고 부르기도 한다.텔레비전이지만 우리가 보는 텔레비전과 달리 소리가 없다.현장에 사람은 없지만,어딘가에서 영상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인공지능이 발달해서 인공지능이 식별 작업을 할 수 있겠지만 아직 사람이 관여할 부분이 많다고 한다.보통 이런 폐쇄회로텔레비전은 감시할 곳은 많지만,당장 급하지 않은 경우 여러 지역을 동시에 감시할 때 많이 쓰인다.예를 들어 고 박원순 시장이 시장실에 폐쇄회로텔레비전을 설치해서 서울시에 급한 일이 생길 때 영상을 확인해서 실시간 문제를 처리할 때 사용했다.현장에 가는 시간을 절약해서 실시간 문제를 파악한다는 점에서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국방부는 안보를 책임지는 기관이다.안보는 허점이 드러나는 순간 순식간에 방어망이 뚫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서해를 통해 밀입국하는 불법 침입자도 제대로 못 막는데,폐쇄회로텔레비전으로 안보를 책임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될 뿐이다.이 걱정이 지나치기를 바랄 뿐이다.비용과 관련해서 폐쇄회로텔레비전은 설치할 때 비용뿐 아니라 유지 비용도 상당하다.렌즈와 같은 부품 교체에 드는 비용이 적지 않다고 한다.또 좋은 영상 확보를 위해 주기적 청소가 필요하다고 한다.그러나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인터넷을 사용하기에 당연히 신경 쓰이는 해킹 문제이다.한국은 해킹에서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다.최근 몇 년간 대형 기업에서 고객 정보가 털려서 문제가 되었지만,결말은 흐지부지한 채 지나갔다.국방부는 해킹 관련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한 번 잘못 털려서 필요한 정보가 외부로 빠져나간다거나,해킹을 이용해서 안보에 구멍이 생기는 일이 발생하면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래도 굳이 시행하겠다면,한 번에 시행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한국 정부는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면 일시에 시행해서 현장에 맡기는 경향이 강하다.각 현장의 다른 상황과 여건에 대한 고려는 없다.그러면 현장에 일하는 책임감 강한 누군가가 노력해서 겨우 현장에 도입한다.일명‘불도저식 정책’이라 불리는 독재 시절 방식이 최근까지 남아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민주주의 국가라면 모든 정책은 관계된 모든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불도저식 정책은 일방적으로 독재 방식이다.실제 현장 의견도 들어야 하고,안보 문제 전문가 의견도 다양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출처: 한국 교육 신문 열린 교실 운동 실패 이유 (https://www.hangyo.com/news/article.html?no=92524)불도저식 정책 사례를 볼 수 있는 것이‘열린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미국에서 깡통 교육이라 불리는 것을 본인이 배웠다고 교육부 장관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현장 의견 공청이나 새로운 교육에 대한 충분한 연수 없이 현장에 던졌다.그래서 현장이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열린 교육을 반영한 학교 건물을 만들기로 했다.권위로부터 자유롭게 열린 교육을 하자는 존 듀이 생각 대신 학생들이 교실 사이 벽을 없애거나 다목적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대신했다.그래서 그때 만들어진 학교 건물은 학교 곳곳에 쓰임새가 애매한 유휴 공간이 많다.이미 지은 건물을 부술 수는 없고,다시 재건축할 때까지 그렇게 써야만 한다.출처: NEC 빅토리아역 재건축 과정 협조 이야기 (https://www.neccontract.com/projects/victoria-station-upgrade-london-underground-uk)런던에 빅토리아역이라 불리는 중요한 교통 요충지가 있다.그 주변을 빅토리아 지구라 불리는데,오래된 역이라 개선이 필요했다. 2009년부터2019년에 걸쳐 역을 중심으로 현대화 사업을 진행했다.일방적인 진행이 아닌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회의하고 고쳐나가면서 최대한 효율적인 방식으로 진행하려 노력했다.폐쇄회로텔레비전을 꼭 도입해야겠다면,시범 사업을 철저히 하고 정확한 보고서 작성을 하는 작업을 우선으로 했으면 좋겠다.일부 지역에 실시한 후 부족한 점이 발견되면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며 단계적으로 바꾸어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서해 밀입국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56693폐쇄회로 텔레비전 장점과 단점https://www.gjcwc.org/faq/?bmode=view&amp;amp;amp;idx=17059735불도저식 정책 사례들현장 모르면서 불도저식 정규직화https://www.mk.co.kr/news/economy/81093554대강 사업https://www.mk.co.kr/news/economy/8109355밀어붙이기식 통합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290239.html]]></description>
			<pubDate>Mon, 24 Aug 2026 19:12:5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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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방부가 불침번 대신 택하겠다는 폐쇄회로텔레비전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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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 transition과 회수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946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엠티타카 전시작전권은 회수이다.송영길 국회의원이 국방위에서 전시작전권회수와 관련해서 잘못된 번역에 대해 지적했다. 한국어로는 ‘전시작전권 회수’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transi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나보다. ‘transition’이라는 단어를 캠브리지 온라인 영어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to change, or make someone or something change, from one form or situation to another:출처: 캠브리지 영어 사전 (https://dictionary.cambridge.org/dictionary/english/transition)직역하면 무언가를 하나의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잘 알려진 영화 트랜스포머에 영어 단어 ‘transformer’와 같은 접두어를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trans’는 무언가 바뀌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tranformer는 ‘trans’와 ‘former’가 합쳐져서 모양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로봇에서 자동차로 변신한다.이런 맥락에서 ‘transition’이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trans’와 라틴어 ‘ire’가 합쳐져 변형된 단어이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다는 의미로 확장해서 추상적인 어떤 상황이 변화하는 전환까지도 의미하게 되었다.자주 국방은 주권 국가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권리이다. 이승만이 일방적으로 미국에게 전시작전권을 주었고,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다시 찾는 것이기에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송영길 국회의원은 ‘recovery’로 생각했지만, ‘regaining’이나 ‘retrieving’같은 단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공무원이라면,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이라면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송영길 국회의원이 말했지만 철학은 용어 정의에서 시작한다.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어휘 선택 하나가 공식 문서에서는 나중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조선말 제국주의 외세가 들어올 때 부족했던 것 중 하나가 외교 문서를 쓸 줄 모른다는 것도 컸다. 그 때는 처음 겪는 일이라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국제화(global)’를 외치는 현재에서 외교 문서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미국의 입장에서 일하고 싶으면 한국 국민에게 세금 받는 일을 할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에게 세금 받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정서와 상관없이 전시작전권을 무기한 주어버린 이승만 때문에 한국은 80년가까이 고통을 겪고 있다.출처: 국가법령 정보센터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https://www.law.go.kr/LSW/trtyBInfoP.do?trtySeq=1089)미군은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미국 법정에서 판결을 받는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때문이다. 그래서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도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 중학교 2학년이던 신효순, 심미선 학생이 주한미군 소속의 궤도 차량(장갑차)에 치여 숨졌지만, 이들은 공무로 인정되어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가장 끔찍했던 사건은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지만, 한국에서 미군이 저지른 범죄에 억울한 사람은 너무도 많다. 전시작전권이 없는 나라가 제대로 된 주권국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출처: Global Fire Power (https://www.globalfirepower.com/countries-listing.php#google_vignette)한국은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의 '2026년 세계 군사력 랭킹'에서 조사 대상 145개국 중 세계 5위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미국에 국방을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한국 공무원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자주 국방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국방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국방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의존하고 싶은 이들은 미국 국무부 가서 일했으면 좋겠다.자주 국방이 강한 대표적 나라로 스위스가 있다. 스위스는 산악지대로 이루어진 국가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처럼 농업을 바탕으로 부를 쌓고 강대국이 되기는 어려웠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스위스가 오랫동안 독립국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필자는 자존심으로 본다.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님도 스위스를 이상적인 국가로 보았다. 당시 독립운동가 중 많은 이들이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채호 선생님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스위스가 작은 영토와 적은 인구로도 강한 독립성을 유지하는 모습에 깊은 영감을 받아, 한국도 강력한 민족주의와 민중의 힘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자국에 대한 자존심은 스스로 키우는 것이지 다른 나라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자존심이 강한 국방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내 나라 언어가 자랑스럽고 내나라 자연환경이 소중하고 내나라 사람이 소중한 사람이 지도자나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갔으면 좋겠다.안보강소국 스위스https://www.segye.com/newsView/20121231022367효순이 미선이 사건이승만과 주한미군]]></description>
			<pubDate>Sun, 23 Aug 2026 16:4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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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 transition과 회수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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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946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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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amp; quot;바다에 오염물질 풀고 건져내면 끝인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8932</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만조 때 바다 잠기는 임시도로,침출수 추정 물질로 일부 갯벌 오염 우려!- '오염도 평균치 꼼수'불가. &quot;단1곳이라도 초과 시 불법 매립 간주해야&quot;주장 -환경단체, '해양 투기'소지 지적.시공사 등 해양경찰청 긴급 문제 제기 예고!인천 옹진군 북도면 시도리 앞바다에 조성된 임시진입로(제방)가 건설폐기물 불법 매립 의혹을 넘어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치명적 오염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환경부 비영리 민간단체'글로벌 에코넷(상임회장 김선홍)'과'환경지킴이 장애인 연합회(회장 오석훈)'는19일 옹진군 및 시행·시공사와의 합동 굴착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해당 제방을'해양 생태계를 위협하는 둑'으로 규정하고20일 해양경찰청의 조사를 촉구했다.■주민&quot;물 찼다 빠지면 심각한 해양 오염&quot;.어패류 감소 우려환경지킴이 장애인연합회 오석훈 회장은 주민 촬영 영상과 단체가 제공한 썰물 때 드러난 현장은 참혹했다고 지적했다.약500m길이의 제방은 만조 시 바닷물에 완전히 잠기며,내부로 침투한 해수가 썰물 때 그대로 빠져나가고 있다.오 회장은&quot;폐비닐,플라스틱,폐 철재,유리 조각 등이 바다로 유출될 우려가 크며,굴착 주변 갯벌 일부는 새까맣게 썩어 들어가는 양상&quot;이라고 지적했다.한편,주민이 알려준 제방 위에서는 조류 사체까지 발견되어 수산 자원의 집단 폐사 우려도 커지고 있다.■시공사의'순환 토사'억지 주장에 정면 반박시공사 측은&quot;나중에 철거할 것이니 문제없는 순환 토사&quot;라고 주장한다.하지만19일 오후1시 현장 확인 조사를 취재한 인천일보는 인천 옹진군 북도면 시도 앞바다.포크레인이 바다를 따라 길게 쌓인 토사 더미를 파내기 시작했다.굴착이 이어지자,코를 찌르는 악취가 퍼졌고,흙 속에서는 검은색 폐토사와 도자기 조각 등 각종 이물질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글로벌 에코넷 김선홍 상임회장은&quot;건설 현장 각종 이물질이 마구잡이로 섞인 쓰레기와 정상적인 재생 자원인 순환골재는 하늘과 땅 차이&quot;라며, &quot;바다를 오염시켰다가 건져내면 깨끗해진다는 것은 궤변이며,오염물질이 유출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해양 오염이 될 수 있다&quot;고 비판했다.■'오염도 평균치 꼼수'불가 및 해경 조사 촉구글로벌 에코넷은 토양 시료 검사 시 오염이 심한 흙과 깨끗한 흙을 섞어'평균치'로 적합 판정을 받는 기만행위를 강력히 경고했다.인천 행·의정 감시네트워크는&quot;채취한3곳의 시료를 개별 분석하고,단1곳이라도 기준 초과 시 불법 매립으로 규정하는'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quot;고 촉구했다.기업윤리경영을위한 시민단체협의회는 육상 폐기물의 해양공간 배출을 엄격히 금지한「해양환경관리법」제22조 위반(해양 투기)소지와 공유수면 성토 시 최상층150cm이상을 깨끗한 흙으로 덮어야 하는 환경부 고시 위반 가능성을 지적했다.이어 적합 판정 시 시민단체를 고소하겠다는 시공사의 부적절한 압박을 규탄하며,압도적 물증을 바탕으로 해양경찰청에 시행사와 시공사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할 것을 예고했다.]]></description>
			<pubDate>Thu, 20 Aug 2026 22:09:5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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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 quot;바다에 오염물질 풀고 건져내면 끝인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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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차리석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826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독립기념관 차리석 독립운동가 회갑기념 사진 -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차리석 독립운동가 후손 차용조 선생님이 김용만 국회의원 방송에 나와서 한 말이 가슴에 남는다. ‘아버지가 광복24일 만에 돌아가셔서 다행이다.’라는 말에 필자도 공감한다.출처: 김용만 의원 유튜브‘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고 속담은 말하지만,독립운동가는 해방 후 삶이 일제강점기보다 더 잔혹했다.해방 후에 독립운동가가 겪은 비극적 삶을 생각하면,해방 전 돌아가신 독립운동가 삶이 더 나아 보이기까지 한다.아들 차영조 선생님은 해방 후 어지러운 정국에서 독립운동가 아들로 좋지 못한 일을 당할수도 있다는 우려에 어머니가 성을 바꿔 신영조가 되었다.해방 후 어렵게 아들을 키운 차리석 선생님 부인 홍매영 독립운동가는 뒤늦게2018년 건국포장을 받았다.차리석 독립운동가를 한국 사람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이나 효창공원 의열사에 다녀왔다면 차리석 독립운동가에 대해 알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영상에서 이야기하지만,차리석 선생님은 해방 후 귀국 전 임정의 서류를 정리하는 임무를 맡을 정도로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으니 당연히 독립운동도 활발히 하신 분이다.동암 차리석 독립운동가의 첫 구속은 신민회 사건 때문이다.서북 지방의 항일 비밀결사인 신민회와 기독교계 민족 지도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일제는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 암살 미수 사건을 조작해105명의 애국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했다.이 때 차리석 선생님은 수년간 옥고를 치르고1913년3월20일 석방되었다고 한다.이어서1919년3·1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활동한 뒤,상해(上海)로 망명했다고 한다.같은 해 독립신문 기자로, 1921년에는 독립신문 사장으로 신문 발행일을 했다.1922년에는 임시의정원 평안도 선출 의원이 되어 정치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1930년에 개최된 의정원회의에서 의장에 석오 이동녕이 피선되고 차리석 선생님은 부의장에 피선되어 활동했다. 1933년12월까지 의정원의원으로 재직하였다고 한다.참고로 임시의정원은1919년 상해에서 성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입법 기관이다. 1919년 만들어진 임시정부는 삼권분립을 이미 실시하고 있었고 자체 헌법도 제정했다. 9월11일 발표된「대한민국임시헌법」제5조에는“대한민국의 입법권은 의정원이,행정권은 국무원이,사법권은 법원이 행사한다”라고 규정되었다고 한다.1932년11월28일 개최된 의정원 회의에서 차리석 선생님은 백범 김구,석오 이동녕,청사 조성환,해공 신익희 등과 함께 국무위원에 임명되어 조국이 광복될 때까지 국무위원 또는 국무위원회 비서장으로 임시정부와 운명을 함께 하였다고 한다.1935년 임시정부가 분당 싸움이 거듭되고 국무위원들도 사퇴하였을 때도 끝까지 임시정부를 지키기 위해 여러 사람을 설득하는 등 명맥을 유지키 위하여 적극 활동하였다고 한다.그리고1935년11월13일 위기를 극복하고 임시정부를 사수하여 국무위원 취임식을 거행하게 되는데 이때 주석이 된 분이 석오 이동녕 독립운동가이다.임시정부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고,마지막에 귀국할 때 가져갈 필요한 서류를 정리하다 과로로 순국하셨다고 한다.한국인이 임시정부를 이야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물 중 한 분이다.다행히 김구 선생님이 유해를 모셔 와 효창공원 의열사에 계시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많은 독립운동가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고국에 계신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다만 효창공원이 원래 목적대로 독립운동가를 모시는 장소가 되길 바랄 뿐이다.돌아가신 분이 옆에 경기장을 만든 생각을 한 이는 독립운동가를 존경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뿐이다.효창공원 수난사차리석 독립운동가https://www.minjok.or.kr/archives/101242https://search.i815.or.kr/dictionary/detail.do?searchWord=&amp;amp;amp;reSearchWord=&amp;amp;amp;searchType=all&amp;amp;amp;index=1&amp;amp;amp;id=712독립신문과 관동대지진]]></description>
			<pubDate>Thu, 20 Aug 2026 21:52:1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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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차리석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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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해병대 초대·제2대 사령관 신현준·김석범…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의 근거는 무엇인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763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해병대 초대·제2대 사령관 신현준·김석범…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의 근거는 무엇인가[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대한민국 해병대 초대 사령관 신현준과 제2대 사령관 김석범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해병대 창설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일제강점기 만주국군 및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으로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를 받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된 인물들이기도 하다.이들의 공적과 과오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평가나 주장보다 당시 문헌과 국가기관의 조사보고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국가기관의 공식 결정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5년 출범해 2009년까지 활동했다.위원회는 단순히 일본군이나 만주국군에 복무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관련 법률에 규정된 행위를 대상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증거에 따라 판단했다.연합뉴스가 2009년 위원회 진상규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조선인 장교 가운데 명단이 확인되는 사람은 60여 명이었지만, 당시 법률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가 인정된 사람은 10명이었다. 이 명단에 신현준과 김석범이 포함됐다. (연합뉴스 )사료 1.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가장 중요한 자료는 2009년 발간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다.이 보고서는 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내용을 수록한 공식 기록이다. 특히 김석범에 대해서는 만주국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간도특설대의 주요 간부로서 항일운동을 탄압하고 일본의 침략전쟁에 협력한 행적을 조사·판단한 내용이 담겨 있다. (민족사이트)신현준 역시 만주국군 장교 및 간도특설대 경력과 관련해 보고서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수록됐다. 이후 관련 연구와 보도에서도 신현준이 만주국군 상위 및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경력이 공식 보고서에 기록됐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다음)사료 2. 「만주국군지」또 하나 주목할 자료는 1987년 발간된 「만주국군지」다.이 자료에는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한 조선인 장교들의 명단과 관련 기록이 담겨 있다. 특히 김석범은 간도특설대의 조선인 선임 지휘관으로 활동한 경력이 확인되는 인물이다.「만주국군지」는 이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과정에서도 관련 인물들의 만주국군 및 간도특설대 경력을 확인하는 자료 가운데 하나로 활용됐다. (연합뉴스)사료 3. 간도특설대의 성격간도특설대는 1938년 만주국에서 창설된 조선인 중심의 특수부대로, 만주지역 항일무장세력에 대한 토벌작전에 투입됐다.따라서 간도특설대에서 어떤 직책을 맡았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친일반민족행위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됐다.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간도특설대에 근무했다는 사실 자체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법적 판단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실제 행위와 자료를 바탕으로 각각 판단했다. 실제로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조선인 장교 60여 명 가운데 법률상 친일반민족행위가 인정된 사람은 10명이었다. (연합뉴스)사료 4. 대한민국 정부의 신현준 기록해방 이후 신현준의 경력도 공식 기록으로 확인된다.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따르면 신현준은 1949년 4월 15일 해병대 창설 당시 초대 사령관을 맡았으며, 이후 6·25전쟁 기간 해병대의 주요 전투를 지휘했다. 1961년 국방차관보를 끝으로 군 생활을 마친 뒤 외교관으로도 활동했다.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즉 신현준에게는 일제강점기의 행적과 대한민국 해병대 창설에 기여한 공적이라는 서로 다른 역사적 사실이 동시에 존재한다.김석범도 해병대 제2대 사령관김석범은 1930년대 후반 만주국군 장교가 된 뒤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교육받았으며, 이후 간도특설대의 주요 간부로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그의 만주국군 및 간도특설대 활동을 조사해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했다. (민족 사이트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해병대에 참여해 제2대 해병대 사령관을 지냈다.이 때문에 두 사람을 둘러싼 역사적 평가는 더욱 복잡하다. 대한민국 해병대의 창설과 발전에 기여한 공적과 일제강점기 일본의 식민지 지배 및 침략전쟁에 협력한 행적을 어느 한쪽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기록으로 보는 역사적 평가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판단은 ‘일본군 또는 만주국군에서 복무했다’는 단순한 이력만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관련 법률에 따른 행위와 자료를 중심으로 내려졌다.따라서 신현준과 김석범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대한민국 해병대에서의 공적과 일제강점기 행적을 분리해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특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만주국군지」 등 당시 자료를 함께 검토하면 두 인물의 경력이 단순히 ‘독립 이후 군인’이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공적을 지우는 것도, 과오를 덮는 것도 아니라 당시의 행적을 사료에 따라 정확하게 기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주요 사료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2009년.② 「만주국군지」, 1987년.③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신현준 해병대 초대사령관, 재산 해병대 기탁」, 2004년.④ 연합뉴스, 「일본군 장교 친일행위 판정기준은 독립군 토벌이다?」, 2023년.⑤ 김효순, 「간도특설대」, 관련 문헌 및 연구자료.이 기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담당 기자가 사실확인 및 최종 기사심의를 거쳐 발행했습니다.]]></description>
			<pubDate>Tue, 18 Aug 2026 19:32: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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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해병대 초대·제2대 사령관 신현준·김석범…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의 근거는 무엇인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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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김대중 정부 정리해고 시작]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763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김대중 정부 정리해고 시작]김대중 정부 노동시장 유연화, 비정규직 확대의 출발점이었나외환위기 속 정리해고·파견근로 제도화경제위기 극복 위한 선택이었지만 고용 불안 심화 논란 남겨[약산소식지 = 권용진 알리미]1997년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노동시장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체제에서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기업·금융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시장을 보다 유연하게 만드는 정책도 본격적으로 시행됐다.1998년, 노동시장의 큰 변화김대중 대통령 취임 직전인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요청으로 노·사·정 협의체가 출범했다. 정부 기록에서도 당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계와 경제계, 정부가 구조조정과 고용 문제를 논의한 사실이 확인된다.특히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가 파견근로의 법제화다.「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1998년 2월 20일 제정됐고 같은 해 7월 1일부터 시행됐다.기업이 직접 고용하지 않고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를 일정한 업무에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법적으로 마련된 것이다.정리해고 제도 역시 외환위기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요한 노동 문제로 떠올랐다.경제 회복과 일자리 안정 사이당시 정부가 노동시장 변화를 추진했던 배경에는 심각한 경제위기가 있었다.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정부는 경제를 살리고 기업 경쟁력을 회복해야 일자리도 지킬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국무회의에서도 경제와 기업을 살려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따라서 당시 정책을 단순히 ‘비정규직을 만들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하지만 노동시장 유연화가 장기적으로 고용 형태를 변화시키고 고용 안정성을 약화시켰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실제 비정규직은 얼마나 늘었나여기에서는 통계를 조심해서 봐야 한다.현재와 비교 가능한 정부의 비정규직 공식 통계는 1998년부터 동일한 기준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통계청의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는 2002년 노사정위원회가 합의한 비정규직 정의와 범주를 기준으로 집계해 왔다.통계청 자료를 보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2001년 8월 약 363만5천 명, 2002년 8월에는 약 383만9천 명으로 집계됐다. 이후 2003년 약 460만6천 명, 2004년 약 539만4천 명으로 증가했다.다만 이 증가를 모두 김대중 정부 정책 하나의 결과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외환위기, 기업 구조조정, 산업구조 변화와 이후 정부의 노동정책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다.평가는 공과를 함께 봐야 한다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경제위기 속에서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선택했다.그 과정에서 파견근로가 법제화되고 기업의 인력 운용 방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당시의 절박한 상황은 함께 살펴봐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제도 변화가 이후 한국 사회의 비정규·불안정 노동 확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따라서 **“김대중 정부가 비정규직을 양산했다”고 단순하게 결론 내리기보다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제도화했고, 이것이 이후 비정규직 확대 문제와 연결됐다는 비판을 받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더 가깝다.근거 및 1차 자료국가법령정보센터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 1998년 2월 20일 제정, 7월 1일 시행.통계청 「비정규직 고용 동향 분석」 — 2001년 이후 비정규직 규모 변화 자료.대한민국 정책브리핑 1998년 당시 국정신문 및 노사정위원회 관련 정부 기록.#김대중정부 #비정규직 #외환위기 #노동시장유연화 #파견근로※ 이 기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담당 기자가 사실확인 및 최종 기사심의를 거쳐 발행했습니다.]]></description>
			<pubDate>Tue, 18 Aug 2026 19:15:5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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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신용카드  카드대란  김대중]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763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신용카드 카드대란 김대중]경기 살리려 풀어준 신용카드, 결국 ‘카드대란’으로 돌아왔다김대중 정부 시기 카드 사용 활성화·규제 완화, 카드 발급 급증돌려막기와 과도한 현금서비스 확산…신용불량자 급증과 카드사 부실로 이어져[약산소식지 = 권용진 알리미]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는 침체된 소비와 내수를 살리기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했다.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와 카드복권제 등이 시행됐고, 신용카드 시장에 대한 규제도 완화됐다. 정부가 카드 사용을 소비 활성화와 세원 투명화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당시 정부 정책으로 신용카드 시장이 빠르게 확대됐다는 사실은 정부 정책자료에서도 확인된다.그러나 규제 완화와 카드사들의 과도한 영업 경쟁이 겹치면서 부작용이 커졌다.3년 만에 카드 3,899만 장에서 1억 장 넘어1999년 약 3,899만 장이던 신용카드 발급 수는 2002년 약 1억480만 장으로 급증했다.경제활동인구 한 사람이 가진 신용카드도 같은 기간 평균 1.8장에서 4.6장으로 늘었다.카드사들은 대학생이나 소득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카드를 발급하는 등 회원 확보 경쟁을 벌였다.특히 현금서비스 이용 한도 규제가 폐지되면서 카드대출이 크게 증가했다. 감사원 조사에서도 재정경제부가 카드사의 총차입한도와 현금서비스 이용한도 등을 폐지하면서 충분한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지적됐다.카드빚을 다른 카드로 갚는 ‘돌려막기’문제는 카드값을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까지 신용이 확대되면서 나타났다.2002년 4월에는 1천만 원 이상 현금서비스를 받은 카드 회원이 약 53만 명에 달했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여러 카드의 현금서비스를 이용해 기존 카드빚을 갚는 이른바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는 조사도 나왔다.2002년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이용액은 약 357조 원까지 불어났다.카드빚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카드대출을 이용하고, 제도권 금융에서 돈을 구하기 어려워진 일부 채무자들이 사채나 고금리 사금융으로 밀려나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해졌다.과도한 채무와 생활고가 가정 붕괴와 범죄, 극단적 선택 등으로 이어진 사례도 당시 사회문제가 됐다. 다만 개별 극단적 선택의 원인을 정부의 카드정책 하나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채무·실직·가정문제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결국 2003년 ‘카드대란’카드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카드사도 흔들리기 시작했다.2003년 카드사의 실질 연체율은 **28.3%**까지 치솟았고, 당시 신용불량자 규모는 약 400만 명에 이르렀다. 카드사들은 대규모 부실에 빠졌고 일부 회사는 합병되거나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다.감사원은 이후 카드대란을 조사하면서 카드사들의 무리한 외형 확대뿐 아니라 금융감독기관의 감독 미흡과 정부의 규제 완화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따라서 카드대란을 단순히 “국민들이 카드를 많이 써서 발생한 사건”으로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정부의 급격한 규제 완화와 카드 사용 활성화 정책, 카드사들의 무분별한 발급과 현금대출 경쟁, 금융당국의 감독 부족, 소비자의 과도한 차입이 복합적으로 결합해 발생한 금융·사회 문제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근거 및 1차 자료한국은행 「신용카드시장 규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2003년감사원 카드대란 특별감사 결과금융감독원·여신금융협회 신용카드 발급 및 이용 통계정부 경제정책 자료의 신용카드 사용 활성화 정책※ 이 기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담당 기자가 사실확인 및 최종 기사심의를 거쳐 발행했습니다.#김대중정부 #카드대란 #신용불량자 #신용카드 #약산소식지]]></description>
			<pubDate>Tue, 18 Aug 2026 19:12:2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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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남북정상회담 직전 이뤄진 대북송금…2000년 6월 무슨 일이 있었나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763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남북정상회담 직전 이뤄진 대북송금…2000년 6월 무슨 일이 있었나2000년 6월 9~12일 정상회담 직전 북한으로 거액 송금현금 4억5천만 달러·현물 5천만 달러…특검 수사와 대법원 판결로 확인[약산소식지 = 권용진 알리미]김대중 정부 당시 이른바 ‘대북송금 사건’은 언제,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핵심 시기는 2000년 6월이다.2003년 대북송금 특별검사팀 수사와 이후 법원 판결에 따르면 현대 계열사들은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거액의 자금을 보냈다.정상회담 직전 송금첫 남북정상회담은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다.대북송금은 그 직전인 6월 9일부터 12일 사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특검이 파악한 현대 측의 대북 제공 규모는 총 5억 달러였다.이 가운데 4억5천만 달러는 현금으로 송금됐고, 나머지 5천만 달러는 평양체육관 건설 등 현물지원으로 파악됐다.현대상선 2억 달러, 현대건설 1억5천만 달러, 현대전자 1억 달러 등 현대 계열사 자금이 동원됐다.정부와 정상회담의 관계는?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돈을 보냈는가’와 ‘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구분하는 것이다.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북한에 5억 달러를 송금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실제 자금 송금에는 현대 계열사들이 동원됐다.다만 특검은 정부 관계자들이 송금 과정에 관여했고, 정상회담 추진 과정과 대북송금 사이에 관련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특검 수사에서는 현대가 대북 경제협력 사업권의 대가로 부담한 부분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 성격으로 판단된 부분도 구분됐다.대법원도 불법 송금 부분 판단대법원은 2004년 3월 26일 대북송금 관련 사건에서 판결을 확정했다.법원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와 별개로, 법에서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대북송금 행위까지 사법심사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즉 남북정상회담의 정치·외교적 평가와 불법적인 자금 송금에 대한 법적 책임은 별개의 문제라는 취지다.핵심 날짜2000년 6월 9~12일 — 대북송금 집중2000년 6월 13~15일 — 첫 남북정상회담 개최2003년 — 대북송금 특별검사 수사2004년 3월 26일 — 대법원 관련 판결대북송금 사건을 평가할 때는 정치적 주장보다 특검 수사기록과 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사실관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근거 및 1차 자료대북송금 사건 특별검사 수사결과대법원 2004년 3월 26일 선고 2003도7878 판결남북정상회담 관련 정부 기록※ 이 기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담당 기자가 사실확인 및 최종 기사심의를 거쳐 발행했습니다.#대북송금 #김대중정부 #남북정상회담 #현대그룹 #약산소식지]]></description>
			<pubDate>Tue, 18 Aug 2026 19:08:5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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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역사는 승자의 역사인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760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풍기 광복군 기념공원 약산 소식지 허예주 기자‘역사는 승자의 것이니 그럴 수 있다.’ 이 말이 한동안 필자에게 머물러 있었다. 문화해설사와 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와 해방 후 그를 존재하지 않는 독립운동가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장승원 후손 사이 이야기를 하다 나온 말이다. 문화해설사는 장승업 후손이 한 일을 승자니까 그럴 수 있는 말로 정당화했다.박상진 의사에 대해 기사를 쓴 적이 있다. 풍기에 있는 대한광복단 기념공원을 다녀오고 광복회에 대해서 한 번 기사를 쓰고 싶은데 너무 방대해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지 어려워서 미뤄두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 문화해설사의 말 때문에 조금이라도 광복회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필자는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는 것이지만, 정의로운 사람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는 게 역사라고 생각한다. 해방 후 많은 독립운동가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소수의 정의로운 사람의 무단한 노력으로 많은 독립운동가의 업적이 알려졌다. 그들의 이야기는 소설 영화로도 나와 많은 대중이 알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필자는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약산소식지’라는 언론사를 시작할 때도 미비한 나의 힘이라도 보태서 한 명이라도 더 독립운동가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미비하지만 한 명 한 명의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리고 제대로 듣는 누군가가 있다면 다른 누구가에게 또 알려주길 바랄 뿐이다.풍기에 대한광복단 기념공원이 있는 이유는 광복단의 시작을 풍기광복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풍기 광복단은 1910년대에 경상북도 풍기에서 채기중이 결성한 항일운동단체이다. 경상북도 풍기에서 결성했지만 여러 지역의 의병 출신이나 계몽 운동가들이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을 위해 만든 비밀 단체이다.국권회복을 위해 독립군 양성을 목표로 했고 이를 위해 무기구입과 군자금 모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친일부호를 응징하고 그들에게서 무력적 방법으로 군자금을 모으는 것도 하나의 방편으로 생각했다. 이의 실천을 위해 풍기광복단과 박상진이 참여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에서 정운일(鄭雲馹) 등 의병적 성향의 인사가 합류하여 1915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결성하였다.장승원이 의거의 대상이 된 것은 경북의 대표적 친일파이기도 했지만, 의병장 허위가 의병을 일으킬 때 약조했던 군자금을 제공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박상진의 스승인 허위의 도움으로 경상도 관찰사에 오른 장승원은 후일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면 20만원을 내놓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허위 의병장이 순국하고 약조에 대해 무시했다고 한다. 게다가 광복회 회원들의 정보를 일본 경찰에 넘기려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박상진 의사가 처단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임종국 선생님의 실록친일파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한말에 경북관찰사는 공정가겨이 20만 냥이었다. 이 돈을 바치러 간 장승원은 수령을 거절하는 의정부 참찬 허위에게 말했다. “개인으로는 안 받겠다 하시니 나라에 필요할 때는 말씀하십시오. 득달같이 바치러 오겠습니다.” 경북관찰사를 하면서 장승원은 ‘매천야록’이 “탐학으로 누거만을 쌓았다.”고 기록했을 정도로 가렴주구를 했다. 허위는 의병장을 하다 옥사하고, 그 뜻을 이은 부하들이 군자금을 얻으거 가자 장승원은 밀고할 기세를 보였다. 이리하여 그는 광복단원에게 살해되고 말았다.다음 대상은 충남 아산 도고 면장 박용하였다고 한다. 일제에 협력하며 부를 쌓았을 뿐 아니라 악질 지주로도 알려진 인물이라고 한다.박용하 처단이 끝난 후에는 그 집 처마 끝에 선고문을 묶어놓고 나왔고, 이로써 대한광복회 수사는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사흘 뒤 장두환이 체포된 데 이어 2월 초에는 총사령 박상진이, 6월에는 채기중이 경찰에 붙잡혔다. 박상진과 채기중이 1921년 8월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대한광복회의 활동은 와해됐다.채기중의 비극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그의 집은 악랄한 일제가 생가 바로 앞으로 철도가 지나가게 만들었다.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님의 종가 임청각이 철도길로 반토막 나기 15년 전 일이라고 한다.그러나 단체가 와해된 뒤에도 광복단은 의열단이나 다른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 의열단의 정신적 지주 황상규 선생님과 종로경찰서 김상옥 의사가 있다.왕산 허위 의병장부터 채기중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 김상옥 의사까지 모두 거대한 힘과 싸우고 있는 것을 알았다. 죽을 줄 알지만, 노예로 사느니 죽음을 택한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자유인이다.8월 15일 돌아가신 장준하 선생님을 비롯해서 많은 독립운동가는 회유를 당했다. 돈과 편안한 삶속에서 노예로 사느니 옳은 일을 위해 가시밭길을 택한 분들이다. 독립운동가 관련 기념관에서 일하면서 승자의 역사니 박상진 의사 공적이 해방 후 묻혀도 된다 말하는 것은 이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필자는 후손이 말년에 방송에 나와 자신들이 당한 탄압을 이야기하는데 가슴이 아팠다. 독립을 위해 당당히 순국을 하셨는데, 해방 후 제대로 된 대접도 못 받고 억울한 누명을 쓰면서 폄훼당했다. 그리고 후손은 제대로 삶을 영위하기 힘들 정도로 괴롭힘을 당했다.반면에 일제에 부역하며 같은 민족을 수탈하며 부를 영위한 친일파는 일제강점기 쌓은 부로 자식 교육도 잘 시켜서 해방 후 좋은 자리를 맡았다. 그러나 대부분 독립운동가는 교육은 커녕 먹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죽하면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아들이 가족을 위해 친일파를 했는지 이것 또한 민족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참고로 장승원 아들은 일제강점기 1913년에 영국 에든버러대학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하고 1921년에 귀국하였다. 1930년에 경일은행(慶一銀行) 상무에 취임했으며 청구회(靑丘會) 회장을 지냈다. 청구회는 문화통치기에 내선일체를 선전하고 일제의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는 활동을 한 단체이다.해방 후 수도경찰청장 제1관구 경찰청장을 지냈다. 수도경찰청장으로 재임시 많은 친일파 경찰을 임용했는데 대표적으로 노덕술 같은 인물이 있다. 1948년 초대 외무부장관에 취임했다. 그리고 1950년 고향 칠곡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국회부의장을 지냈다.1950∼1951년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참석하고, 1952년 국무총리가 되었다. 부산정치파동이 일어나자 발췌개헌을 제안해 이승만의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도왔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되었고, 1956년 원내국민주권옹호투쟁위원장을 지냈으며, 1958년 제4대 민의원에 당선되었다.하지만 실제로 박상진 의사를 괴롭힌 것은 딸이라고 한다. 책을 내서 박상진 의사를 살인마로 묘사하며 독립운동을 폄훼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잃었다면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해방 후 한국이 친일파가 지배적이다 보니 그녀의 발언이 독립운동가 발언보다 영향력이 컸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승자의 역사라면 그녀의 관점에서 말한 게 다 옳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세상을 바꾸어 온 것은 권력에 맞서 옳은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는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통행금지 시간 없이 돌아다니는 이런 세상을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를 누리고 있는 모든 사람은 이 현재를 만든 과거의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 사람이 목숨을 바쳤다면 미안할 정도로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대한광복회https://v.daum.net/v/anmytBHxMP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독립운동가박상진 의사 후손장승원 후손https://www.joongang.co.kr/article/2701648]]></description>
			<pubDate>Tue, 18 Aug 2026 19:03:3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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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역사는 승자의 역사인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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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상식적으로 역사 바라보기 - 독립운동가 김원봉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7432</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JTBC 보도연맹을 잘 설명한 영상문화해설사 덕에 또 공부할 거리가 생겼다.문화해설사가 말하길‘6.25때 김원봉이 앞장서서 남침했다.’라고 했다.이건 또 무슨 앞뒤 없는 이야기인지 듣는 순간 황당했다.의열단장 김원봉은 월북했고 그래서 남한에 남아있던 가족이 보도연맹 때 몰살을 당했다.그렇다고 김원봉 독립운동가가 북한에서 인정받았던 것도 아니다.김일성에게 숙청되었다고도 하고 여러 설이 있지만 어쨌든 권력에서 밀려나1958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래서인지 김원봉은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버림받은 독립운동가이다.문화해설사는 역사를 전공할 만큼 공부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다.그렇다 해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야기했으면 좋겠는데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교육을 받는지 궁금하기도 하다.상식적인 수준에서 이야기한다면 김일성이 김원봉에게 권력을 줄 수가 없다.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이 김원봉에게 권력을 줄리가 만무하다. 6.25사변 때 앞장서서 내려오려면 군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어느 왕조나 정부든 군권은 믿을만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체시킨 것이 노덕술과 같은 친일 경찰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고,김창룡을 위해 현충원에 군인이 묻히도록 했다는 말이 있다.이승만이 독립운동가 대신 친일파 노덕술과 김창룡에게 경찰권과 군권을 준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상식적인 한국인이라면 본인이 독립운동했고 한국을 생각한다면 독립운동가가 군권과 경찰권을 가지도록 하는 게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그러나 이승만은 대통령 지위에서 독립운동가 대신 친일파가 군권과 경찰권을 가지도록 했다.이 지점이 항상 의문이었다.왜 이승만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잘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그냥 인간적 상식에서 이승만은 독립운동가보다 친일파 인물이 자기를 더 잘 지켜주리라 믿었던 게 아닌가 싶다.나라나 국민적 정서보다는 자신을 더 중심에 두고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닌지 추정해볼 뿐이다.소련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조만식 선생님 대신 김일성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북한 대표로 앉혔다.그리고 월북한 김원봉이 맡은 직책은 월북 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여 국가검열상과 내각 노동상 등의 고위직이었다.이 두 직책 모두 군과 아무런 관련 없는 직책이다.북한에 월북한 대부분 독립운동가는 김일성 유일 체계 구축 과정에 숙청당했다.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은 월북한 독립운동가의 비참한 최후를 알고 있다.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위험이 되는 요소를 다 제거한 것이다.김일성은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를 택한 인물이다.월북한 독립운동가 중에는 일제강점기 소련의 도움을 받아 독립운동 하거나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독립한 인물도 있다.그러나 김일성이 겉으로는 공산주의를 내세웠을지 몰라도 자식에게 자신의 권력을 넘겨주려 했다.공산주의(共產主義)는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공동 생산주의이다.영어로는‘Communism’이다.공동체를 의미하는‘community'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개인적 자산보다 사회적 자산을 중요시하며 공동 생산해서 공동 분배하자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처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을 때,많은 지식인은 식민 자본주의 폐해를 딛고 뭔가 새로운 좋은 체제가 생길 것으로 기대했다.그러나 버트런드 러셀은 레닌을 만나고 와서 책에서 말했던 이상적 체제는 구현되지 않으리라고 파악했다.그리고’Why I Am Not A Communist(나는 왜 공산주의자가 아닌가)'라는 글에서 생각을 밝혔다.The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 thus came to be the dictatorship of a small committee, and ultimately of one man - Stalin. As the sole class-conscious proletarian, Stalin condemned millions of peasants to death by starvation and millions of others to forced labour in concentration camps. He even went so far as to decree that the laws of heredity are henceforth to be different from what they used to be, and that the germ-plasm is to obey Soviet decrees but that that reactionary priest Mendel. I am completely at a loss to understand how it came about that some people who are both humane and intelligent could find something to admire in the vast slave camp produced by Stalin.출처:버트란드 러셀‘Why I Am Not A Communist’버트런드 러셀은 공산주의를 내세우지만,독재할 것으로 예상했다.실제로 공산주의를 구현하겠다는 많은 나라들은 독재가 되었다.공산주의와 독재를 동의어로 쓰는 사람이 가끔 있는데 이 둘은 다른 어휘이다.국립국어원 표준 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다음과 같다.마르크스와 레닌에 의하여 체계화된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에 입각한 사상.재산의 공동 소유가 옳다고 주장하며 생산 수단의 사회화와 무계급 사회를 지향한다.그리고 독재는 다음과 같다.특정한 개인,단체,계급,당파 따위가 어떤 분야에서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함그래서 독재의 반대말은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다수의 민중이 주인이 되어 결정해 나가는 체제가 민주주의이다.한 명이나 한 당이 독단적으로 일을 결정해서 국가를 운영하면 독재이다.단지'월북자'김원봉의 형제라는 이유만으로 네 동생인 김구봉·김용봉·김봉기·김덕봉 형제는 밀양 지역에서 예비검속으로 체포된 국민보도연맹원300여 명과 함께 집단 학살당했다.같은 시기 사촌형제5명 역시 같은 시기 보도연맹 사건으로 총살당했다.보도연맹은 국가에서 앞으로 북한과 협조할지도 모른다고 국민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이다.끌려간 김원봉의 네 형제는 보도연맹에 가입한 적도 없었다.김원봉 일가의 비극은 이게 끝이 아니다.이후 분단의 역사 속에서 사상 검증이라는 이유로 살아남은 소수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었다.월북했다는 이유로 독립운동 공훈도 못 받는데, 6.25사변 때 남침에 앞장섰다는 누명까지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그 정도로 해방 후 친일파는 김원봉 독립운동가를 지우고 싶은 이유를 모르겠다.친일파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님이 연구하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해방 후 친구에게 백범 김구를 어떻게 생각하냐 했더니 중국 사람이라고 해서 자기도 그렇게 믿었다고 한다.그러나 나중에 김구 선생님의 독립 업적을 알고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연구에 전념했다고 한다.일반인은 떠돌아다니는 말을 그냥 넘길 수도 있다.그러나 남에게 알려주는 일을 한다면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원봉 일가 보도연맹https://www.minjok.or.kr/archives/77038남과 북에서 외면 받은 김원https://v.daum.net/v/4jwuQpmezO?f=p반민특위 와해시킨 이승김창룡노덕술노덕술을 풀어준 이승만]]></description>
			<pubDate>Tue, 18 Aug 2026 11:42:1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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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상식적으로 역사 바라보기 - 독립운동가 김원봉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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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전시관 전시품은 관계자가 정해야 하나 외부자가 가져다 놓아도 되나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729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천호문 공덕비 -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독립운동 기념 장소에서 들은 이야기를 확인하러 또 다른 독립운동 기념관을 방문했다.문화해설사분 말에 의하면,독립운동 기념 장소에 어느 날 못 보던 공덕비 같은 게 기념관에 생겼다고 한다.기념관 관계자 누구도 알지 못한 채,어느 날 밤에 몰래 누군가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폐쇄회로 텔레비전(CCTV)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대범하게 모두가 퇴근한 시간에 숫자로 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놔두고 갔다고 한다.잠금장치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니 내부 관계자거나 기념관과 관련해서 일하는 사람이였다고 한다.가져다 놓은 공덕비는 그렇게 얽힌 사람이라 함부로 치우지도 못하고,그냥 그 자리에 그렇게 놓기로 했다고 한다.그래서 그 공덕비를 찾아서 취재를 갔다.일하는 문화해설사분에게 물어보니 전시실 한 모퉁이에 놓여 있는 공덕비를 알려 주셨다.그러나 그분은 조금 다르게 상황을 이야기했다.어차피 저분도 여기서 일했던 선생님이니 공덕비가 상관이 없다고 했다.참고로 그 독립운동 관련 장소는 지역 유지가 개인의 돈을 바쳐 학교를 세운 것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울산에서 유명한 관광지 일산해수욕장에 있던 예전 학교를 기리기 위해 만든 기념관이다.그 학교는‘보성학교’로 당시 뜻이 있던 성세빈이라는 분이 개인의 사재를 털어1920년부터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한다.그리고1922년 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아4년제 학교를 설립했다고 한다.일제가 폐교시켰다가 다시 재개교하여 운영하다1945년 이후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다.출처:울산저널 i 보성학교 교원명단(https://www.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600179027808)여기서 일했던 선생님으로는 교장 성세빈 선생님을 비롯해 박학규,성세륭,김천해,서진문,장성준,천호문,이효정 등이 있었다.이들 대부분 독립운동가이지만 해방 후 많은 독립운동가가 겪었던 아픔을 겪었다. 출처: 울산저널i 울산보도연맹학살과 군경 학살로 사망한 울산지역 독립운동가와 가족(https://www.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576525592806)박학규는 성세빈 선생님이 보성학교를 세울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독립단체 신간회 울산지회 간사로 활동했다.해방 후 몽양 여운형의 제안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울산 및 지역 활동에 동참했다.그러나 울산보도 연맹 학살 때 비극적인 마지막을 맞았다.성세륭은 성세빈 선생님의 동생으로 태화보통학교와 농소보통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학생들에게 항일정신을 심어주는 교육을 하다 면직당했다.이후 보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신간회 울산지회 창립에도 힘을 실었다고 한다.김천해는 당시 많은 조선인이 겪었던 일본의 수탈을 잘 보여주는 사례를 겪고 가난한 시절을 보내게 된다.아버지가 울기등대에서 일하는 일본인 등대지기에게 고리대금을 빌려 집과 논밭을 샀다가 돈을 변제하려고 그 땅 전부를 저당 잡혔다가 그것을 갚기 위해 더 큰 돈을 빌리는 악순환으로 결국 재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성세빈이 보성 야학을 할 때,김천해는 방어진 야학을 맡았다고 한다.경술국치 이후 방어진과 장생포로 이주해오는 일본인이 늘었고,이들은 원래 살던 조선인과 마찰을 계속 일으켰다고 한다.김천해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자전적 기록을 남겼다.서진문은 일제강점기에 울산 동면 그리고 방어진읍에서 독립운동에 나섰던 이들 중 최초로 정부로부터 인정받았다. 2006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하던 중1923년9월 관동대지진에서 일본인의 폭행으로 크게 다쳐 돌아온다.그때 보성학교에서 야학교사를 맡았다고 한다.그러나1928년 일왕 히로히토의 즉위식을 앞둔 대규모 검속 과정에서 동료들과 함께 연행되었고 이때 고문을 당했다.그래서 이에 항거한 단식도 펼치다가 건강이 악화되자 일본 경찰은11월16일,빈사 상태로 서진문을 보석출옥 시켰다.안타깝게도 단 하루 만에‘대한독립만세’를 포함해3마디 유언만 남기고 세상을 먼저 떴다고 한다.이효정 선생님 덕에 이관술 이재유를 비롯한‘경성 트로이카’가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보성학교 교사이기도 하고,대부분 독립운동가가 해외에서 항일운동을 할 때 살얼음판을 걸으며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한 분 중 한 명이다.자기 선생님이자 친구 이순금의 오빠였던 이관술의 권유로 보성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이효정 독립운동가가1928년 보성학교에 왔을 때,성세빈 교장도 반강제로 학교에서 쫓겨날 시기였고 서진문 교사가 모진 고문 후 순국한 뒤였다고 한다.1929년2월 일본 경찰은 보성학교에 폐쇄 명령을 내리면서,교장 이하 교원 전부를 교체하고 군에서 적당하다고 인정하는 교원을 새로 세우면 인가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이 때문에 성세빈 선생님과 교사들이 물러나고 이영춘으로 교체됐다.이효정 독립운동가는 보성학교에서 졸업생이었던 독립운동가 박두복을 만난다.둘은 결혼했고 가정을 꾸렸다.그러나 남편으로 인해 해방 후 이효정 독립운동가는 모진 고초를 겪는다.일제강점기에도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생 직후,동덕여고보 재학 중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만세삼창을 부르고 백지동맹을 통해 일제에 저항하다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었다.그 후에도 여러 번 체포되고 고문을 겪었다.종연방직 파업 투쟁 등을 지도·지원한 혐의로 체포되어 종로경찰서고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이재유 그룹 관련 활동으로 연루되어 재차 체포되고 고문받았다.항일 격문으로 학생들을 독려하다 체포되었다. '경성지방좌익노동조합 조직준비회'활동으로 검거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약13개월간 옥고까지 치렀다.해방 후에도 월북한 남편으로 수시로 감시에 시달리고,친일 경찰에게 고문받아 손목이 부러지는 일도 겪는다.또한 보도연맹 때 남편의 동생 둘을 잃었다.그 후 이효정 독립운동가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조용히 살았다.세상이 나아졌을 때 시집을 내고,경성 트로이카라 불리는 비밀 독립단체를 증언하는 일을 했다.숨 가쁘게 보성학교에서 일했던 교사들에 대해 이야기를 달려왔다.한 분 한 분에게 하나의 기사를 할애할 만큼 대단한 독립운동가이다.그러나 오늘 기사는 한 교사의 공적비 때문에 시작한 이야기이다.그러나 전시실에서 본 독립운동가에 대해 이야기를 안할 수 없기 때문에 짧게나마 언급해 봤다.이제 그분의 이야기로 마무리하려 한다.천호문이라는 교사가 있었다.그는 명치대학(메이지대학)수학 후 보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고 한다.적은 월급인데도 제자들을 위해 음식과 학용품을 사주기도 했다고 한다.그에게 은덕을 입은 제자들이 공덕비를 세웠다고 한다. 전시실에 있는 것은 모형이다.개인적으로 두 문화해설사분 이야기를 들으며,어느 날 갑자기 생겼다는 것과 그럴 수도 있다는 의견 사이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독립운동가 관련 장소를 다니면 공훈을 받지 못해 서명받는 경우를 꽤 본다.심지어 어떤 독립운동가 후손은 나라에서 인정받기 위해 고문을 하던 친일 경찰에게 증거가 될 자료를 받기 위해 찾아갔다는 이야기까지 있다.일제가 서슬이 퍼런 시절 대부분 독립운동가는 본명이 아닌 가명을 쓰거나 이명을 써서 자신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했다.의열단원은 사진을 잘 찍지도 않았지만,혹 찍게 되면 사진 원판까지 회수해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반대로 일제는 독립운동가를 잡으면 발가벗긴 후 신체 특징까지 다 기록해 놓았다.그런 상황에서 자료가 제대로 남을 리가 없다.만약 해방 직후였고 당시 목격자들이 생존해 있는 상황이라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그러나 광복80년이 넘은 지금 일제강점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그런데도 정부는 개인에게 증명을 요구하는 게 많은 것 같다.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일제는 철저하게 기록을 남겼다.일제는‘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같이 독립운동가를‘요시찰인물’또는‘불령선인’이라 부르며 철저히 기록을 남겼다.그런 자료 속에서 한국 정부는 독립운동을 증명할 수 없는지 의문이 든다.보성학교https://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4550https://www.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577086224842박학규 독립운동가https://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9443김천해, 서진문, 성세빈 독립운동가https://www.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571240983991이효정 독립운동가]]></description>
			<pubDate>Mon, 17 Aug 2026 23:06:4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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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시관 전시품은 관계자가 정해야 하나 외부자가 가져다 놓아도 되나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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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연예인 덕에 생각난 을미사변, 한 나라의 왕비를 죽인 일본 군인과 친일파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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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ABC뉴스 오스트레일리아(https://www.abc.net.au/news/2023-10-05/argentina-is-dealing-with-100-per-cent-inflation-heres-how/102930048)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만들지만,이야기 전개를 위해 필요한 사실만 가져올 수 있고 극적 효과를 위해 어떤 사실은 부풀릴 수도 있다.그래서 지식인이라면 영화는 영화로 느끼고 사실은 사실로 아는 노력이 필요하다.출처: DW뉴스 나치 범죄자가 아르헨티나를 도피처로포클랜드 전쟁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누군가 아르헨티나를 비난하는 사실로 전쟁범죄자 나치의 도피처였다라고 해서 찾아보았다.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300에서 수천 명 정도 나치 전쟁범이 혼란의 시기 유럽에서 신분 세탁을 한 후 아르헨티나로2차 세계대전 후 도피했다고 한다.많은 나라 중 왜 아르헨티나였는지 의견 중 당시 아르헨티나가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현재 우리가 보는 아르헨티나는 이민을 선호할 만큼 부국은 아니지만 당시 아르헨티나는 상당한 부자였다고 한다.그러면 아르헨티나가 현재 경제 수준으로 떨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니 페론 대통령 이야기가 나온다.페론 대통령은 잘 몰라도,마돈나가 주연한1996년 영화‘에비타’덕에 에바 페론은 아는 사람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페론 대통령의 부인으로 자수성가한 인물로 유명한 에바 페론,애칭으로‘에비타’라 불리는 인물은 영화에서는 칭찬할 만한 인물이었다.그러나 실제로 에바 페론은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 중 하나이다.에바 페론의 인생에 대해 간략히 요약하면,사생아 출신으로 태어나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던 중 후안 페론이라는 인물을 만나 결혼하고 영부인이 된 인물이다.가난한 시절을 겪어서 아르헨티나의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는 면에서는 칭찬받는다.그러나 인기영합주의 복지정책은 단기적 효과는 있었을지 몰라도,장기적으로 아르헨티나 경제에는 어려움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다.후안 페론이 첫 집권에 실패한 뒤1952년 에바 페론은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으로 숨진다.일찍 죽은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해져서 그런지 그녀를 아름답게 이야기하는 뮤지컬‘에비타’가 만들어졌고,마돈나 주연 뮤지컬 영화까지 만들어졌다.아르헨티나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르고 영화를 봤을 때는,에바 페론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노력했다는 생각이 남았다.그런데 왜 아르헨티나가 예전의 부를 잃었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에바 페론의 낭비벽을 알게 되었다.가난한 이를 돕기 위해 만든 모금 자원을 자신의 사치품을 사는 데 썼다. ‘대중들은 아름다운 자기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로 자신의 사치를 정당화하려고도 했다고 한다.알면 알수록 그녀가 진심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왔는지 의심이 들었다.그러나 유명한 영화나 뮤지컬이 잘못 인식하게 만든 인물이 에바 페론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한국은 민비가 대표적 포장이 잘 된 인물로 생각한다.뮤지컬‘명성황후’와 사극 드라마 덕에 우리는 그녀의 비극적 마지막과 똑똑한 그녀의 모습을 기억한다.그래서인지 어떤 사람은‘민비’라 부르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명성황후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민비는 살아 생전에 불리던 호칭이고,명성황후는 사후에 붙여진‘시호’이다.이런 논리라면 고종이 아니라‘고종태황제’라고 불러야 한다.그러나 역사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동학이 민비의 잘못된 인사 정책과 사치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조선말 왕보다 더 강했던 외척인 풍양 조씨 안동 김씨의 행태를 흥선대원군은 직접 겪었다.그래서 외척의 세력이 강하지 않을 것 같은 민자영을 아들의 며느리로 생각했다.그러나 고종의 마음을 잡고 조정에 관여하기 시작한 민비는 찾을 수 있는 여흥 민씨 일가는 다 찾아서 벼슬을 주려 했다.이렇게 벼슬을 차지한 민씨 일가 중 무능한데 날벼락 출세를 한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그리고 욕심 많은 이는 벼슬 장사를 하기도 했는데,대표적 인물이 고부군수 조병갑이다.조병갑은 민영준을 매개로 해서 민비에게7만냥을 뇌물로 바쳐 매관매직으로 고부 군수가 되었다.참고로 민영준은 민영휘로1901년 개명했다.민영휘는 민비의 먼 친척 조카뻘로 유명한 친일파 중 하나이다. 1910년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고 은사금을 받았으며,일제강점기동안 재산을 잘 불려서 조선 최고 갑부 중 하나가 되었다.조병갑으로 인해 폭발한 민심은 동학농민혁명운동이 일어나게 했다.민비는 관군이 동학 농민군에게 밀리자,청나라를 끌어들인다.자기가 다스리는 땅에 외세를 끌어들여 자기를 위해 세금을 내고 부역하던 백성을 죽였다.청·일 양국이 조선 파병 시 상호 통보하도록 한 조약인 톈진 조약으로 청나라가 조선에 들어오자,일본도 조선에 들어오게 된다.그리고 동학농민혁명운동을 진압하고 두 나라는 조선 땅에서 청일전쟁을 벌인다.다른 나라가 침략해 오는 전쟁을 막는 것도 백성들이 고통스러운 일이다.그런데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스스로 외세를 끌여들어 자국 영토를 전쟁터로 만든 일을 벌인 것이 민비와 그 일가이다.그리고 관군이 부실해진 것도 민비가 임명한 선혜청 당상 겸 병조판서 민겸호란 인물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선혜청은 당시 세금을 관리하던 기관으로,군인들의 월급을 제때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부를 늘렸던 인물이다.민비 자신도 사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물이다.특히 진령군이라고 작위를 내린 무당에게 바친 돈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그러나 유명한 금강산 기도 비용을 보면,한 번에 그렇게 많은 돈을 썼는지 놀라울 뿐이다.진령군이 금강산1만2천 봉우리마다 쌀1섬과 돈10냥씩을 제수비로 바치게 했다고 한다.출처: 프레더릭 맥켄지 한국의 비극남의 나라 군인이 우리나라 왕비를 죽게 했다는 것은 화가 나는 지점이다.그렇다고 해서 민비가 백성에게 좋은 왕비였는지는 다른 문제이다.그리고 일본 낭인이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 미우라 공사를 비롯한 일본 군인과 한국 친일파가 같이 저지른 일이다.이렇게 한 나라의 왕비를 죽인 일본인은 한국 법정이 아닌 히로시마 재판소에서 재판받았다.이 중 제대로 처벌받은 이는 없다.스스로 권력을 남의 나라에 내준 결과라고 생각한다.외국인이 한국 영토에서 한국인에게 해를 가하는 범죄를 저지르면 한국법으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그게 주권과 영토가 있는 독립국이 가지는 권리이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외국인이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할 수 없는 나라는 자주국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만들지만,이야기 전개를 위해 필요한 사실만 가져올 수 있고 극적 효과를 위해 어떤 사실은 부풀릴 수도 있다.그래서 지식인이라면 영화는 영화로 느끼고 사실은 사실로 아는 노력이 필요하다.민영준 (민영휘)현재도 잘 사는 친일파조병갑 탐관오]]></description>
			<pubDate>Sun, 16 Aug 2026 23:05:3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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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예인 덕에 생각난 을미사변, 한 나라의 왕비를 죽인 일본 군인과 친일파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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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해방 후 한국 군대를 주도한 이는 독립운동가였을까, 친일파였을까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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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오마이티비 신현준독립운동가 기념관 문화해설사 덕에 찾아보는 해방 후 한국의 국군은 친일파가 지배적이었는지 독립군이 주도했는지 알아보는 두 번째 시간이다.지난 기사에서는 육군에 대해서 주로 알아봤다면,이번 기사는 해병대에 알아보려 한다.왜냐하면 해병대는 초대 사령관을 지낸 이부터 친일파이기 때문이다.해병대 초대 사령관은 신현준(申鉉俊)은 간도특설대 출신이다. 2대 김석범도3대 김대식도 간도특설대 출신이다.신현준은 만주국군과 항일 조직 소탕 부대인'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하여1943년 만주국으로부터'훈6위 경운장'을 받았다.김석범은1943.09.15만주국 훈6위 주국장을 받았다. 해방 후 군 장교중에 간도특설대 출신이 많다.그렇다면 간도특설대가 어떤 부대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당시 만주국 간도성장이었던 이범익(李範翊)이 일제에 건의해 만들었다고 한다.이에 따르면 이범익은 일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본군의 치안 환경에 맞추어 조선인을 징모해 항일연군을 토벌하자는 특설부대 창설을 조선총독부에 주동적으로 건의했다.일제는&quot;조선인 항일운동가는 조선인이(때려)잡자&quot;는 이범익의 제안을 받아들여‘간도특설대’창설을 결정했다고 한다.그래서 간도특설대는 이이제이 전략에 따라 대부분 조선인으로 이루어진 부대였다.간도특설대는 부대장을 비롯한 몇몇 간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조선인으로 구성되었다.특히 사병들은 전원 간도 일대 조선인 청년 중에서 보충했다.이범익은 조선총독부 체제가 출범하면서 내무부 지방국 소속으로 이동하였고, 1912년에는 강원도 춘천군 군수로 발탁되었다.이후 경상북도 달성군과 예천군 군수를 거치며 경북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을 겸임하였고, 1921년에는 총독부 사무관으로 승진하였다.총독부 내무국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하다가1924년에 황해도 내무부장으로 발령받았다.이후로도 승진을 거듭하여1927년에 경상남도 참여관이 되었고, 1929년에는 강원도 지사, 1935년에는 충청남도 지사가 되었다. 1928년에는 일제로부터 훈3등 서보장까지 받을 정도로 일본 제국을 일했던 인물이다.이범익은 중추원 참의로 발탁된 것은 물론,중일 전쟁 발발 직후인1937년에 일제가 세운 괴뢰국 만주국 고위 관료로 임용되었다.조선인이 많은 간도 지역을 담당하는 간도성장을 맡았을 정도로 일본 제국의 신임을 받았다.간도성장으로 재직하면서 간도특설대를 설치하는 등,일제 강점기 말기에‘동남지구 특별공작위원회’고문직을 맡았다.만주 지역의 항일 운동을 탄압하는 활동을 총괄했던 인물이라고 한다.출처: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71943)간도특설대는 항일 운동을 하던 독립군만 죽이고 괴롭힌 것이 아니라,간도에 살던 민간인에 대한 만행도 저질렀다.류연산 작가의‘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다’는 책에 나온 간도특설대 만행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1939년5월 야간 토벌 작전 중 산나물을 뜯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불태워 죽였다.–1939년7월 자신들의 충혼비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전사한 항일부대원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빈 통조림통에 넣었다.–1941년 겨울 포로로 잡힌 항일부대원의 머리를 군도로 자르고 잘린 머리채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1941년1월 포로로 잡힌 여성 항일부대원4명을 강간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했다.–1944년4월 팔로군을 숨겨준 마을 원로를 죽인 후 그의 머리를 잘라 솥에 삶은 후 두개골을 장식품을 만들었다.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부대이다.만주국군: 출처 유지아 만주사변 후, 일본의 만주국군 창설과 역할 변화 -만주국군 지도요령을 중심으로-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0731567)해병대5대 사령관 김동하는 일본 제국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의 군대인 만주국군 상위 출신이다.일본 관동군의 보조 부대로 치안 유지와 항일 세력 토벌에 동원되었다.김석범이범익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74406해병대 사령관https://www.minjok.or.kr/archives/114544간도특설대https://www.cb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9815현충원에 있는 간도특설대https://www.minjok.or.kr/archives/142574간도특설대]]></description>
			<pubDate>Fri, 14 Aug 2026 23:25:2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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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해방 후 한국 군대를 주도한 이는 독립운동가였을까, 친일파였을까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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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vigilante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674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디즈니 비질란테 예고편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vigilante을사오적 이완용에 대한 이재명 의사의 의거 자료를 찾다가, 당시 조선인들이 이완용 집을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일제에 강제 병합 될 조짐이 되이는 시점부터 일제강점기 관련 자료에서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매국노를 응징하는 이야기가 꽤 나온다. 이렇게 스스로 법의 정의를 구현하는 사람이나 일을 영어에서 ‘비질란테(vigilante)’라고 한다.2023년 디즈니에서 방영한 한국 드라마 ‘비질란테’덕에 익숙할 수 있고, 원작 웹툰 비질란테로 이미 알 수도 있다. 아니면 그보다 앞서서 2018년도 미국 영화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캠브리지 영어 사전에서 ‘vigilante’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a person who tries in an unofficial way to prevent crime, or to catch and punish someone who has committed a crime, especially because they do not think that official organizations, such as the police, are controlling crime effectively. Vigilantes usually join together to form groups.비공식적으로 범죄를 막거나 범죄를 저지른 이를 잡거나 벌주려는 사람, 특히 경찰과 같은 공식적인 일을 해야 할 곳이 범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대문에 한다. 보통 ‘vigilante’는 조직을 이루어 같이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말로는 ‘자경단’이 제일 맞다. ‘자경단’이라는 단어 자체가 단체를 의미하므로, 개인이 하기보다 여럿이 하는 경우가 많다.한국은 현대로 들어오며 일제강점기처럼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자경단은 거의 사라졌지만 새로운 형태의 자경단이 생겨난 것 같다. 군중이 법의 심판을 대신 했던 역사적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이재명 의사가 저격한 을사오적이 경비를 삼엄하게 했던 이유는, 외출할 때마다 군중이 돌팔매와 오물투척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또 친일 행위로 군중에게 철저히 응징을 당했던 인물로 김홍집을 생각해볼 수 있다. 1896년 2월 아관파천으로 김홍집 내각이 붕괴되고 친러 정권이 수립되자 ‘왜대신(倭大臣)’으로 지목되어 광화문 앞에서 군중들에 의하여 타살되었다고 한다물리적으로 응징을 한 마지막 사례는 박기서 선생의 정의봉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1996년 10월 23일, 버스 기사였던 박기서 선생이 '정의(正義)를 세우는 몽둥이'라는 뜻의 정의봉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40cm 길이의 나무 둔기로 안두희를 처단했다.평범한 시민이였던 박기서 선생은 ‘백범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를 죽임으로써 역사가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결행 후 자수했다. &quot;이 하늘 아래에서 안두희와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quot;면서 &quot;안씨가 진실을 밝히지 않아 분개를 느껴 범행했다&quot;고 밝혔다.백범 시해범 안두희는 처단받을 당시 79세로 천수를 누리고 있었다. 민족 대표 독립운동가를 살해한 인물이 천수를 누릴 수 있는 나라가 해방 후 대한민국이다. 처음에 안두희는 총살형을 구형 받았다. 하지만 선고에서 종신형을 받고 육군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러나 안두희는 복역 3개월 만인 1949년 11월 징역 15년으로 감형됐다. 이듬해인 발발한 6.25 덕에 그는 풀려나 현역에 복직했다. 6월 27일, 육군정보국 김창룡 소령이 안두희가 수감 중인 대전 육군형무소에 찾아와 육군형무소장에게 국방부장관의 잔형집행정지처분 명령서를 전했다. 그리고 1952년 12월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으로 1계급 특진 후 육군 소령으로 예편했다.예편하고 그의 인생은 더 잘 풀렸다고 볼 수 있다. 양구에다 ‘신의기업사’라는 군납공장을 차렸다. 1956년 10월에 설립하여 약 10년간 운영했습니다. 그는 강원도에서 두 번째로 세금을 많이 낼 정도로 부유하게 살았다. 참고로 안두희는 일제강점기 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1934년 신의주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의주와 신의주의 금융조합 서기를 지냈다. 1939년 일본 메이지대(明治大) 전문부 법과에 입학하였으나 중도에서 포기하였다. 회남에서는 일본군 관리기관인 군납품판매조합의 이사로 일했고, 서주에서는 요식업을 했다. 1945년 1월 귀국해서 용암포 군청에서 하급 사무직인 고원(雇員)으로 근무했다.마지막 자경단은 물리적 방법이 아닌 발달한 정보 기술을 이용한 ‘알리기’로 볼 수 있다. 누구나 사용하는 인터넷에 처벌 받지 않은 범죄자에 대해 알려서 스스로 반성하게 만들려는 노력이다.2025년 밀양 피해자가 불구속 입건되는 일이 발생했다. 2004년 전국을 놀라게 했던 일명 ‘밀양 사건’의 피해자이다. 중학생 소녀가 44명의 남학생에게 몹쓸 짓을 1년 여간 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그 자체도 놀랍지만, 가해자 중 아무도 처벌 받은 이가 없어서 더 놀라운 사건이다.잊혀지는 듯 했던 이 사건이 20여년이 지난 시점부터 유튜브를 통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정의로운 유튜버들이 가해자가 현재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알리면서 또 다른 공분을 사게 만들었다. 현재 이 자경단들은 법적 구속 상태에 놓이거나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자경단은 법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지점에서 생긴다. 법이 제대로 구현된다면 사람들은 법적 제재를 응당 기대하며 현재를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한국에서 법이 제일 필요한 사람은 ‘법 도 없이 살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법을 지키며 살아가고, 법을 어길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한 성실한 소시민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법을 어기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며 사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런 경우가 일제강점기만 있는 게 아니라 현대에도 있다는 게 문제이다.일제강점기 자기 땅에서 평생 농사 짓던 사람이 문서를 읽을 줄 몰라 땅을 빼앗긴 이야기가 무수히 많다. 법 없이 살 사람에게 땅을 탐내는 법을 잘 아는 이가 나타나 어이없이 빼앗아 간 것이다. 현대라고 크게 달라졌는지 생각해 볼 사건이 늘 일어난다. 1인 시위하는 사람을 가끔 보면 다들 일상을 살다가 날벼락을 맞은 이들이 참 많다.밀양 여중생의 경우는 조금 다른 일상을 살았다. 부모가 이혼했고 자식을 잘 못 챙기는 아버지 밑에서 의지할 때 없이 살았다. 밀양 여중생이 겪은 일을 볼 때마다 ‘출산률’ 이야기 그만하고, 태어난 아이들이나 잘 챙기라는 말이 늘 튀어나온다. 미성년자는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시기이다. 그런 시기에 보호자를 잘 못 만나면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보낼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 받은 물리적 정신적 상처는 평생 남는 것이다. 밀양 여중생 피해자가 오죽하면 20년이 지나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개인 정보를 넘기다가 불구속기소까지 되었는지 필자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아프다.그녀가 겪은 아픔에 대해 이름 바뀐 ‘성평등가족부’든 세금 받는 어느 여성 단체든 제대로 신경 썼다면, 20년 넘게 그녀가 억울하게 살다가 불구속 기소가 되었을지 묻고 싶다.법이 원리원칙대로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면 자경단은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본다. ‘참교육’ 같은 드라마를 보고 속시원해 하는 것도, 그만큼 우리 사회가 억울한 사람이 많고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다.박기서 선생님https://www.minjok.or.kr/archives/146831부자가 된 안두희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78138]]></description>
			<pubDate>Fri, 14 Aug 2026 17:00:2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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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vigilante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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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674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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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을사오적 이완용을 살린 의사와 매국노를 처단하려던 의사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667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머니투데이 을사오적 이완용을 살린 의사2026년 광복절을 앞두고 한 여배우 덕에 한국인은 친일파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증조부에 대한 친일 행위가 나오면서,매국노 이완용을 살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을사오적의 대표적 인물이 이완용이다.한국인은 이완용을 친일파로 기억하지만,그는 친청파였다가 친미파였다가 친러파를 거쳐 최종적으로 친일파로 변신한 인물이다.좋게 말해서 기회주의자이고,자기에게 도움이 될 만한 권력을 가진 곳이면 어디든 가서 붙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해 줄 인물이었다.그러나 이렇게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가 하는 것은 이완용뿐 아니라 대부분 친일파도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일제강점기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처럼 행동하고,조선인에게 한국어를 전면 금지하고 일본어를 국어로 삼자고 강력히 주장한 이들도 이런 유형의 인간들이었다.이완용은1882년에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보는 시험인 증광별시(增廣別試)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지(承旨)·주서(注書)를 거쳐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검교(檢校)·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동학교수·우영군사직·의정부검상(議政府檢詳)·해방영군사마(海防營軍司馬)와 같은 조선에서 주요한 직책을 거쳤던 관료이다.1886년 육영공원(育英公院)에 들어가 영어와 신학문을 배웠다.그리고1887년 주미특파전권공사(駐美特派全權公使)박정양(朴定陽)을 따라 참찬관(參贊官)으로 미국에 건너갔다.청국의 허락 없이 차관협상 등을 진행한 것이 문제가 되어 박정양이 소환당하자,서리공사로 임명되었다.그러나1888년5월 병으로 귀국하였고,귀국 후에는 승정원동부승지(同副承旨)·이조참의(吏曹參議)·외무참의(外務參議)·전보국회판(電報局會辦)등을 지냈다.같은 해 다시 주차미국참찬관(駐箚美國參贊官)으로 미국에 갔으며, 12월 대리공사로 승진하고1890년 귀국하였다.당시 이완용은 친미개화파 인물로 알려졌고,알렌과도 친분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미국에서 돌아온 후에도 고종의 신임을 얻어,내부참의(內部參議)·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형조참판(刑曹參判)·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전환국총판(典圜局總辦)·육영공원판리(育英公院辦理)·교환서총판(交換署總辦)등에 임명되었다.내부,형조,의금부,한성부 등 상당수의 관직을 스스로 사직하였고,시강원검교사서(侍講院檢校司書),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로 조선 정부에서 일했다.친일개화파에 잠시 밀리던 이완용은1895년 박정양내각이 들어서자 학부대신이 되어 친미개화파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그리고 친러파의 중심인물인 이범진(李範晉)과 손을 잡고 친미,친러 연합세력인‘정동파(貞洞派)’를 이끌었다.고종의 신임으로 외무대신이 된 이완용은 반러시아적 입장으로 물러나야 했다.외부대신에서 물러난 이완용은 학부대신(學部大臣)으로 전임하였지만, 1897년9월 평안남도 관찰사로 좌천되며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졌다.그러다가1905년9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학부대신으로 재등장하였다.관직에 다시 등장한 이완용은 과거 배일(排日)친미주의자에서 친일파로 변신하였다.정계에 복귀한 이완용은1905년11월‘을사늑약’체결에 앞장서며,친일파로서의 입지를 강화하였다.을사늑약 체결 직후 의정대신 서리로 승진하였고,참정대신 겸 농상공부대신 서리를 거쳐1907년에는 내각 총리대신(總理大臣)으로 친일 내각의 수반이 되었다. 1909년 안중근(安重根)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자, 3일간 춤과 노래를 금지시키고 한국 정부 대표로서 중국 다롄(大連)까지 가서 조문하였다.이완용은 병합조약 강행에 앞장서 궁내부(宮內府)에 딸린 시종원(侍從院)의 경(卿)윤덕영(尹德榮)으로 하여금 순종을 협박하여 강제로‘병합조약’에 날인하도록 사주하였다.이완용이 일제의 식민 침탈에 앞장선 만큼,당시 조선 사회는 친일파의 핵심인 이완용을 누구보다도 증오하였다고 한다.장지연(張志淵)은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에서 을사오적을 개돼지만도 못하다고 표현했다.噫彼豚犬不若之所謂我政府大臣者,希覬榮利,恇怯假嚇,逡巡然觳觫然,甘作賣國之賊,三千里疆土,五百年宗社,奉獻于他人之手,二千萬生靈,敺作他人之奴隷,彼等豚犬不若之外大朴齊純及各大臣장지연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일부출처:한국사료총서(https://db.history.go.kr/diachronic/level.do)고종의 퇴위를 강압한 후,그의 집은 군중들에 의하여 불탔다. 참고로 그의 집은 독립운동가 홍재설 선생님이 주도한 결사대가 한 응징이었다. 1907년 7월 20일 홍재설·홍재칠 형제는 동우회 회원들과 함께 서울 대한문 앞 석고단에서 대규모 시위를 전개했다. 결사대를 조직한 이들은 매국노 이완용의 가택에 불을 지르고 일진회 기관지인 국민신문사를 습격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홍재설 선생님은 평리원 재판에서 내란죄로 유형 10년을 선고받아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에 유배되었다. 1909년12월 이재명 의사가 이완용을 처단하려고 했다.이완용이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 참열(參列)하였다 돌아갈 때였다.이재명 의사는 인력거를 타고 앞으로 지나갈 때 비수를 들고 달려들었다.그리고 제지하려는 차부를 한칼에 찔러 거꾸러뜨리고 이어 이완용의 허리를 찔렀다.선생의 공격에 혼비백산한 이완용이 도망하려 하자 다시 어깨 등3곳을 더 찔렀다.의거 직후 이완용은 당시 최고 병원이었던 한성의원으로 옮겨졌고 구사일생으로 살았다.한성병원(漢城病院)은 조선에서 일본인이 세운 최초의 병원이다.국사관논총 자료에 따르면 당시 일류 의사들이 그를 치료했다고 한다.그 중이 거론된 의사 한 명이 연예인 증조부이다.그리고漢城病院의鶴田의사,安東병원장大韓병원의菊池院長,高階副院長,典醫 朴宗桓,安商浩(안상호)등 당시 일류 의사들의 치료에 의하여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출처:국사관논총(https://db.history.go.kr/diachronic/level.do)괄호 안 한자음 표기는 필자가 한 것임이재명 의사는1887년 평안북도 평양군 평양성에서 태어났다.평양의 일신학교(日新學校)를 졸업한 뒤, 1904년 미국 노동 이민회사의 모집에 응하여 하와이로 갔다. 1906년 미국 본토로 옮겨갔는데,공립협회에 가입하여 항일 민족운동에 함께 했다고 한다.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일제는 고종의 퇴위를 강요하였다.일제는 고종 퇴위 후‘정미7조약’을 강제 체결하였고,대한제국 군대까지 해산시켰다.이런 상황에서 공립협회는 공동회를 개최하여 매국적 숙청을 결의하고 그 실행자를 선발하였다.이때 지원한 사람이 이재명 의사이다.처음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 했으나,안중근 의사 의거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이때 처단하려던 매국노는 을사오적뿐 아니라 일진회 이용구도 있었다.그리고 이재명 의사는 의거를 감행했다.삼엄한 경계였기에 이재명 의사는 바로 잡혔고,당당하게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법정에서 이완용의 죄목8개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고 한다.①乙巳勒約(을사조약)체결로 인하여外交權을 일본에 넘긴 일과朝鮮統監府(조선통감부)를 우리나라에 설치케 한 일.②헤이그特使(특사)로 인하여 황제 앞에3차에 걸쳐 협박하여 양위케 한 일.③丁未七條約(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일과 또한 군대를 강제로 해산케 한 일.④어린 황태자(李垠(이은))를 일본에人質(인질)로 보내고 또한 일본여자와 정책적인 결혼을 시킨 일.⑤高宗(고종)을 일본에 건너가게 획책한 일.⑥황제를 강제로西北(북서)지방을 순행케 한 일.⑦司法權(사법권)을 일제에 넘겨 애국지사를 처벌케 한 일.⑧표면적으로는一進會(일진회)로 하여 금 한일 합병케하기 위하여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시켜 합병케 한 일.출처:국사관논총(https://db.history.go.kr/diachronic/level.do)괄호 안 한자음 표기는 필자가 한 것임1910년9월30일,사형 집행으로 순국하였을 때 이재명 의사는24살이었다.이재명 의사이완용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n403800&amp;amp;amp;code=kc_age_40이완용이 추모했던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 2세홍재설 독립운동가https://v.daum.net/v/20260809185912103]]></description>
			<pubDate>Fri, 14 Aug 2026 17:00:2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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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을사오적 이완용을 살린 의사와 매국노를 처단하려던 의사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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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옹진군 시도리 임시도로 공사, 철근·유리·폐콘크리트 등 대량 건설폐기물 매립 의혹,  “옹진군은 복토에 앞서 전면 굴착 조사와 공인시험을 실시하라”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644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옹진군 시도리 임시도로 공사,철근·유리·폐콘크리트 등 대량 건설폐기물 매립 의혹,“옹진군은 복토에 앞서 전면 굴착 조사와 공인시험을 실시하라”인천시 옹진군 북도면 시도리116-1번지 일대에서 추진 중인'시도리 공사용 임시도로 개설공사'현장에서 철근,유리,폐콘크리트 등 대량 건설폐기물 추정 이물질이 토사와 뒤섞여 매립된 정황이 환경단체 탐사를 통해 확인되었다.해당 사업은 옹진군 시도리 일대13만2,852㎡부지에 주거 및 관광 휴양형 지구단위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기초 단계 공사로, (주)에스티개발이 발주하고(주)장형기업이 시공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사업은 해수가 유통되는 갯벌을 매립하는 것으로,계획부지 내 법정보호종 등 해양 생태계 현황 조사를 시행하여 해양 생태계의 생물다양성 및 보전 여부를 확인 전략환경영향 평가 본협의를2025.11.28.한강유역환경청에서 완료한 사항이다.환경단체 글로벌에코넷과 행·의정 감시네트워크 중앙회 등 시민사회단체는8일 환경지킴이 장애인연합회 현장 제보를 바탕으로 지난8월11일 현장 탐사를 실시하였다.파도와 빗물에 토사가 씻겨 내려간 제방 단면을 육안으로 확인한 결과,흙 속 깊은 곳까지 녹슨 철근과 금속 조각,폐콘크리트,벽돌,유리,플라스틱,비닐 등이 층층이 섞여 있는 모습이 명확히 촬영되었다.현장에는 날카로운 금속과 유리 조각은 안전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갯벌 해역으로 오염물질이 유입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고,철거 현장에서 직접 나온 듯한 온갖 이물질들이 혼합되어 있었다.행·의정 감시네트워크 중앙회는&quot;현장에서 확인된 정황은 일반적인 자연 토사나 정상적인 골재로 보기 어렵다&quot;며&quot;만약 순환골재를 사용했다면 법정 품질기준과 반입 경로,승인 절차가 적법했는지 검증해야 하며,흙을 덮어버리는 복토 행위는 증거를 가릴 우려가 있다&quot;고 지적했다.김선홍 글로벌에코넷 상임회장은“이번 요구는 특정 업체의 위법을 미리 단정하려는 것이 아니다.현장에서 확인된 정황을 객관적으로 조사하고,바다와 주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책임이 확인되면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김 회장은2025년11월28일 완료된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지장물 철거 시 토양오염 관련 계획지구 내 토양오염 유발시설이 분포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지만 토양오염 시설이 발견되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오염 토양을 처리 복원 대책이 수립되었다고 적시했다고 밝혔다.행·의정 감시네트워크 중앙회는 기초 단계인 제방도로 공사부터 불법 대량의 건설폐기물로 제방 공사를 한 의혹이 제기된 상황으로“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겨 놓은 상황”이고 이를 감독할 시행사 에스티건설과 옹진군청 또한 책임을 피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인천 행·의정 감시 네트워크는 옹진군에▲조사와 시료 채취가 끝날 때까지 복토·반출·추가공사 중단과 현장 보전▲주민·환경단체와 관계기관 입회 아래 제방 전 구간 공개 굴착 조사실시▲공인기관 통해 반입 물질의 성상,순환골재 품질,토양·침출수·해수·퇴적물 오염 여부를 검사 및 결과 원문 공개▲국유재산 사용 허가서,설계·시방서,반입 대장,계량표,품질시험성적서,운반차랑 기록과 현장점검 자료 공개▲위법이나 부적합 시공이 확인되면 원인자 부담으로 전량 적정 처리하고 원상복구·행정처분·고발·수사 의뢰 등필요한 조치 시행을 촉구했다.한편,이번 옹진군 시도리 제방도로 건설폐기물 매립 추정 의혹이 제기된 회사는 인천 검단구에 적치된1,000만 톤(덤프트럭50만 대 차량)관련 회사로 지난7월9일 행·의정 감시네트워크,오류왕길동 아파트 주민들,기업윤리 경영을 위한 시민단체협의회가1천만 톤을 처리하는 동안 발생할 미세 먼지를 막기 위해,▲높이10m이상의 방진벽▲살수시설▲방진 덮개 설치 및 옥내화 조치를 강제로라도 시행해 주민의 건강과 생명을 촉구했던 해당 회사 이기도 하다.]]></description>
			<pubDate>Thu, 13 Aug 2026 22:43:5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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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옹진군 시도리 임시도로 공사, 철근·유리·폐콘크리트 등 대량 건설폐기물 매립 의혹,  “옹진군은 복토에 앞서 전면 굴착 조사와 공인시험을 실시하라”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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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해방 후 한국 군대를 주도한 이는 독립운동가였을까, 친일파였을까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613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오마이TV '천황에게 충성하자'던 이가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독립운동 관련 시설에 갔을 때,전시 내용을 보다가 동행에게 친일파가 해방 후 국군 창설자가 되지 않았냐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이걸 어떻게 들었는지 해당 시설 문화해설사가 해방 후 독립운동가가 국군을 창설했다고 했다.군사영어학교라든지 몇 가지 사실을 알지만,짧은 시간에 설명하기도 그렇고 굳이 논쟁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그렇냐고 하고 넘어갔다.독립운동 관련 시설에 친일파 위주 역사를 알고 있는 문화해설사를 볼 때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그래도 제대로 된 역사를 알고 있거나 알려고 하는 사람이면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데,아예 친일파 옹호 발언을 하거나 맥락 없이 얕은 지식을 외워서 앵무새처럼 말하면 그냥 포기를 하게 된다.혹시 필자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그냥 기회가 되면 더 공부해서 기사나 쓸 생각으로 대화를 종료했다.임종국 선생님의‘실록 친일파’를 읽다가 조금 오래 묵혀놓은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다.책에 나온 내용은 다음과 같다.국군 창설의 원로 이응준(李應俊)장군과 전범으로 처형된 홍사익 중장이 제26기생(일본 육사)으로1914년 졸업,김석원 장군이 제27기로1915년이라 하면,병합 전의 일본육사 졸업생들의 계보상 위치가 대략 짐작될 것이다.-출처:임종국 실록친일파출처: 일본어 위키피디아 이응준에 대한 설명일본 육사를 졸업했다고 모두 일제를 위해 일한 것은 아니다.소수지만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김광서,노백린,류동열,이갑 같은 항일운동에 자신들의 배움을 활용한 분도 계신다.하지만 대부분은 일제를 위해 자신의 지식을 썼고 전범으로 처형된 이도 있었다.독립운동 한 분들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자세히 알리는 기사를 쓰고 싶다.먼저 이응준 장군이라는 이는 가야마 다케토시(香山武俊)로 창씨개명을 했다. 1937년 중일전쟁에서 중국전선에 출정하여 제20사단 사령부에서 근무했다. 1938년1월 중국 베이징 주둔 일본군 북지파견군(北支派遣軍)사령부에 근무하면서 난위안〔南苑〕전투,스자좡〔石家莊〕전투,산시성〔山西省〕전투에 참전하고,선무공작을 맡아‘대동아건설정신’을 중국인에게 선전하는 일을 했다.그리고1939년1월 훈3등 서보장을 받았다.훈3등은 총8등급 중 상위3번째 등급이다. 훈3등 서보장을 받은 다른 친일 인물로 김석원이 있다. 1931년 9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할 때 제20사단 제78연대 기관총대 대장으로 출전하여 흑룡강성[黑龍江省] 방면에서 마점산[馬占山] 군과 싸워 전투를 벌였다. 이때 싸운 공적으로 상금(賞金) 700원을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 일반 노동자의 하루 일당은 약1원~2.5원 수준이었으니 대략 1년 반정도 월급이라 봐도 무방하다. 해방 후 김석원은 월남하여 과거 일본군 출신을 규합해1946년10월 육해공군동지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설립허가를 받아1938년3월 성남고보를 만들었는데, 해방 후성남중고등학교 이사장으로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가르쳐 논란이 되었다. 1948년12월 육군사관학교를 특임8기로 졸업하고 대령으로 임관하여 제1사단장이 되었다. 1949년3월 육군 준장이 되었다. 1949년10월 관할구역인1사단 한국군이 북한산 북어를 밀무역해 이익을 챙긴‘북어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두고 국방부 총참모장인 채병덕(蔡秉德)과 대립하다 예편하고 성남중학교 교장에 취임했다.출처: 한국일보 채병덕과 무역(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199606240084427543) 참고로 ‘북어사건’은 상관이었던 채병덕에게 한국의 전략물자를 북한에 주고, 북한의 북어를 들여오는 무역을 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다 벌어진 사건이라고 한다. 이응준은 8월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병사구(兵事區)사령부를 거쳐1940년8월부터 일제 조선군 대구사령부에서 근무했다. 1941년 육군 대좌로 승진했다. 1942년5월 일본군 북지 독립 제7여단으로 배속되었다가1943년 초 중국 칭다오〔靑島〕교육대 대장으로5개월간 현지 신병 보충과 교육에 종사했다.이응준은 장교로 전쟁에만 참전한 것이 아니라 선전 활동도 했다.전쟁 끝무렵인1945년6월 원산항 수송부로 배속되어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소련이 진주하기 전 서울로 탈출했다고 한다.해방 후11월 전조선임시군사준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조선임시군사준비위원이라 불리는 이 단체는 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군대 창설을 준비하기 위해 조직되었다.친일파 중심이라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했지만,한미군정이 국방사령부를 설치했을 때 이응준 등이 고문으로 참여하면서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가 되는 국방경비대 창설의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그리고 이응준은 미군정청의 요청으로 원용덕(元容德)과 함께 같은 해12월 군사영어학교 생도 모집을 주도했다고 한다.군사영어학교는 백범 김구 암살에 대해 공부하다가 알게 되었다.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백범 김구 암살범은 안두희지만 그를 도와준 많은 이들이 있다는 설이 있다.그 도와준 이들 중 군사영어학교 출신이 꽤 있었다.출처: 이강수 해방 직후 대한민국 國軍의 창군과 그 역사성 (file:///C:/Users/82105/Downloads/KCI_FI001802487.pdf)미군정은 영어에 능통한 원용덕에게 경찰 예비대 창설을 부탁했다고 한다.초반에는 광복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계열도 참여하려 했으나 주도하는 이가 주로 친일이니 거부하게 되었다고 한다.그래서인지 김원웅 광복회장이‘이승만이 집권하여 국군을 창설하던 초대 육군참모총장부터 무려21대까지 한 명도 예외 없이 일제에 빌붙어 독립군을 토벌하던 자가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라는 발언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 같다.미군정이 군사영어학교 업무를 맡긴 원용덕은 의사 출신이다. 1931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졸업 후 강릉에서 병원을 개업했다가, 1933년 만주국군 군의 특임으로 부임해 군인의 길에 들어섰다. 1936년 봉천의 흥아협회((興亞協會))에 참여했다.흥아협회는 아시아를 흥하게 한다는 뜻을 가졌다.일제가 내세웠던 대아시아주의와 맥이 닿아 있는 작명이다. 1936년4월 만주 봉천에서 재만 조선인의 사상 통제 및 독립운동 교란을 목적으로 결성된 대표적인 친일 단체이다.해방 후 월남해서 군사영어학교 보좌관 겸 부교장이 되었고, 1946년 국방경비대 참령으로 임관했다. 1949년 백범 김구 살해범 안두희에 대해 검찰이 구형한 사형 대신 종신형을 선고했다.1952년 현역으로 복귀해서1953년 중장으로 승진,군사영어학교 보좌관 겸 부교장,여단장이 되었다. 1960년4·19혁명 뒤 이승만 암살 음모 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김성주를 권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어 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15년을 선고받았으나,박정희 정권에 의해 특사로 석방되었다.출처: 민족문제연구소 : [오마이뉴스] [“육참총장 친일파” 파문] 초대~10대는 명백… 11~21대는 논란초대 육군참모총장은 친일파 이응준은 김백일,백선엽,채병덕 등 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 군인들을 미군정이 운영하는 군사영어학교에 입학하도록 주선했다.이 중 채병덕은2대4대,백선엽은7대, 10대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참고로 만주군은1932년부터1945년까지 존재했던 일본 제국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정규 군대이다.이들이 주요 역할 중 하나가 항일 무장 세력 진압이었다.김백일https://www.minjok.or.kr/archives/76236채병덕https://www.minjok.or.kr/archives/136611독립군 토벌한 만주군백선엽김석원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85865]]></description>
			<pubDate>Thu, 13 Aug 2026 17:51:4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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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해방 후 한국 군대를 주도한 이는 독립운동가였을까, 친일파였을까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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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길을 택한 의사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611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대암 이태준 기념관 전시 중 김필순 독립운동가한 연예인 덕분에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가에 관심을 가져서 기분 좋다.그 연예인이 자기 집안은4대째 의사이고,자신의 증조부가 독립운동했다는 발언을 했다.그래서 실제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한 의사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대암 이태준 독립운동가를 기념하는 장소에서 같은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고 독립운동을 해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이의 전시 내용이 있었다.그 전시를 볼 때부터 그분들에 대해 알리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인 듯하다.대암 이태준 독립운동가는 이전 기사에서 다루어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을 예정이다.의사 출신 독립운동가가 더 있지만 오늘은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이들만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먼저 말할 분은 이태준 의사의 스승이자 안타까운 마지막을 맞이한 김필순 독립운동가이다.한학(漢學)과 영어 실력이 뛰어났던 김필순은, 1899년 제중원에 들어가 교재로 사용되는 서양의 의학서적을 번역하는 등 에비슨의 통역 및 조수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1908년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의술개업인허장을 받은 김필순은,모교와 간호원양성소의 교수로 활동하며 후진 양성에 앞장섰다고 한다.서양 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드물던 시절 그는 성공이 보장된 길을 갈 수 있었다.그러나 그는 신해혁명을 보고 도우러 갈 결심 했다가, 105인 사건으로 급하게 국내에서 탈출하게 된다.탈출 후 조선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중국 통화현에 정착하였다.근대적 시설을 갖춘 병원이 따로 없었던 통화현에서 김필순은 병원을 개설하여 이주한 조선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의 치료에 앞장섰다.김필순은1916년8월경 일제의 감시와 간섭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 통화현을 떠나 내몽고 치치하얼로 이주하였다.김필순 선생님은 병원을 운영해 번 돈을 모두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았다고 한다.그래서 어머니와 부인,그리고 일곱 아들들은 가난을 면치 못했으나 선생은 뜻을 계속 이어 나갔다. 치치하얼에서 북제진료소를 개설하고 의료활동에 종사하면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애쓰던 김필순은, 1919년9월1일 갑작스럽게 순국하였다.당시 일본인 수련의가 준 우유를 먹은 후 숨져서,독살된 것이 아닌지 추측된다.다음은 박서양 선생님이다.아버지가 의료선교사 에비슨에게 도움을 받은 덕에 아버지가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다고 한다.그 덕에 아들 박서양 선생님이 세브란스 의전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의사 면허를 받은 후,오성학교‧중앙학교‧휘문학교 등에서 화학을 가르쳤고, 1917년까지 세브란스 간호원양성소의 교수로도 활동하였다. 1918년 이후에 만주의 용정(龍井)으로 가서 구세의원(救世醫院)을 개업하여 이주해 온 동포들에 대해 진료하였다고 한다.민족교육기관인‘숭신학교’를 설립하여 학교장으로 항일교육에도 앞장섰다.참고로 박서양 선생님은 백정 출신이다.그래서인지 숭신학교,또는 숭신소학교는 차별이 없었다.그는 자신의 학교에 신분,반상의 차별을 받지 않고 학생들을 받아들여 무료로 가르쳤으며 실력이 우수한 학생들의 중학교,고등보통학교 진학을 주선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박서양 선생님이 교장이 되고 직접 한 반을 맡아 학생들을 교육하며 교사5명을 초빙해 반28명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또한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국민회 군사령부 군의(軍醫)로서 독립군의 의료지원을 책임졌다.상황이 어려워져서 고향으로 귀국해서 개원을 했다고 한다.그러나 귀국4년만에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고 한다.다음은 신창희(申昌熙)선생님이다.졸업 후1년간 모교 간호원양성소에서 강의한 후, 1909년 의주부(義州府)에 구세병원(救世病院)을 열어 의료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1917년 신의주의 압록강 대안에 있는 안현(安東縣)에서 평산병원을 경영하면서 의주·안둥 등 접경 지역에서 의료 활동에 종사하였다.1921년7월에는 중국 안둥현에서 이륭양행(怡隆洋行)과 연계하여 군자금 모금을 비롯하여 독립운동가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활동하였다.참고로 이륭양행은 조지 쇼라는 아일랜드 출신 사업가가 운영하던 상회로 한국 독립운동에 크나큰 도움을 준 장소이다. 같은 해10월 천진에서 항일활동을 하던 김병조(金秉祚)·조상섭(趙尙燮)가족 등과 상해로 건너갔다.상하이에 도착하여 신한청년당(新漢靑年黨)에 가입하였다.이어1922년 초반,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의(軍醫)로 활동하면서1922년2월23일 개최된 대한적십자회의 상의원(常議員)으로 선임되었다.1922년4월 대한적십자회에서 훈춘사건(琿春事件)이후 만주 각 지방에서 아사(餓死)하는 한인이 속출함에 따라 그들 훈춘 한인동포를 위한 의연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했다.1922년 임시정부의 조직 개편 문제를 논의한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가 마무리될 무렵 신한청년당을 탈당하였다.이후 상해를 떠나 동몽골 지역으로 이주하여 의사로서 교회 전도사업 등을 지원하다가1926년2월28일 폐렴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참고로 신창희 선생님은 백범 김구 선생님의 부인인 최준례 선생님의 언니와 결혼하셔서,김구 선생님에게 손윗동서가 되는 분이다.그러나 최준례 선생님의 언니는 헌병보조원 일로 김구 선생님이 안타까워하는 이야기가‘백범일지’에 나온다.마지막으로 주현측 선생님은 졸업 후 어릴 때 살던 선천으로 돌아가1909년 선천 읍내에서 인제의원을 개설하였고,신민회에 가입하여 평북지회에서 활동하였다. 1911년9월 이른바‘안악사건’의 여파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동료104명과 함께 기소되어1912년9월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모살미수죄로 징역6년을 받았다.항소하여 그 해10월 무죄가 되었다.안악 사건은105인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1910년 독립운동가 안명근이 서간도에 무관 학교를 설립할 목적으로 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중 체포되었다.일제는 이것을 꼬투리 잡아 독립운동 활동 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고문을 통해 사건을 조작했다.당시 눈엣가시였던 신민회는 이 사건 후 결과적으로 해체되었다.105인 사건이라 부르는 이유는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105인이었기 때문이다. 123인이 재판에 정식으로 회부되었다.일제 경찰로부터 취조를 받은 사람은700여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1919년 만세운동 당시 민족대표33인 중 한 사람인 선천교회 목사 양전백(梁甸伯)과 협의하고,정상인(鄭尙仁)·홍성익(洪成益)·백시찬(白時瓚)등과 함께 선천 읍내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1919년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평북 조사원,재무부 참사로 선임되었다.이후 선천의 기독교계를 대상으로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적극적으로 나섰다.하지만 국내에서의 활동이 여의치 않자 선우혁(鮮于爀)·홍성익 등과 함께 압록강 대안(對岸)의 안동(安東)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이후 선우혁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을 임시정부에 보내고,임시정부와 국내 사이의 각종 업무 연락을 담당하였다.1921년 상해로 이동하여 프랑스조계에 삼일의원을 개원하였다.선우혁·여운형(呂運亨)등과 함께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당원으로 활동하였다.그 외에도 다양한 독립운동 단체와 활동을 하였다.그리고1922년1월27~28일 흥사단(興士團)제8회 원동대회에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1922년2월10일과17일 예비단우 문답을 거쳐2월18일 안창호(安昌浩)의 주관 아래 흥사단에 입단하였다.1925년5월 귀국하여 선천 읍내에 동제의원을 개원하였다.그리고 흥사단의 국내 조직이라 할 수 있는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간부로 활동하였고,선천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각종 종교운동,교육사업,사회사업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1937년6월16일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서울로 압송되어 일제 경찰로부터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 수양동우회가 독립운동 단체인 것을 자백하라고 강요받았다.938년12월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으나,원심 검사가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1940년8월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2년,집행유예3년을 받았다.불복하여 상고하였고, 1941년11월17일 고등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옥중에서 받은 고문의 여독으로1942년3월25일 순국하셨다.김필순 가문의 또다른 독립운동가 김순애 선생님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436933105인 사건박서양 독립운동가조지 쇼 독립운동가김필순 독립운동가의 아들 영화배우 김염]]></description>
			<pubDate>Wed, 12 Aug 2026 23:54:4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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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길을 택한 의사들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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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608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기자의 원칙, 진실을 향한 책임과 신뢰[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기자는 무엇을 위해 취재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기사를 써야 하는가. 언론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기자가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사실을 확인하고, 공정하게 전달하며, 취재와 보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기자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첫째, 사실이 가장 우선이다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정확성이다.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처럼 전달하거나, 일부 사실을 전체 사실인 것처럼 확대해서는 안 된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기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취재 과정에서 얻은 정보는 가능한 한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하고, 당사자의 입장과 관련 자료를 함께 살펴야 한다. 사실과 추정을 구분하고, 확인되지 않은 부분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히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둘째, 공정성과 균형을 지켜야 한다기자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기사 속 사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어떤 사건을 보도하더라도 이해관계가 다른 당사자의 입장을 확인하고, 중요한 반론이 있다면 함께 전달해야 한다. 기자의 역할은 독자에게 결론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사실과 맥락을 제공하는 데 있다.특히 사회적 논란이 발생했을 때 한쪽의 주장만을 전달한다면 보도가 아니라 주장 전달에 가까워질 수 있다.셋째, 취재원과 제보자를 존중해야 한다취재원 보호 역시 기자에게 중요한 원칙이다.제보자가 제공한 정보가 공익적 가치가 있는지, 보도 과정에서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이 불필요하게 침해되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제보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 역시 충분한 검증 없이 사실로 확정해서는 안 된다. 제보는 취재의 출발점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사실의 최종 확인은 아니기 때문이다.넷째, 공익과 개인의 권리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언론 보도에는 사회적으로 알릴 가치가 있는 정보가 있는 반면, 공개해서는 안 될 개인정보나 사생활도 존재한다.따라서 기자는 '알 권리'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정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 해당 정보가 공공의 이익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공개로 인해 발생할 피해가 무엇인지 함께 판단해야 한다.다섯째, 잘못된 보도는 바로잡아야 한다기자도 실수할 수 있다.중요한 것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류를 발견했을 때 신속하게 수정하고 독자에게 알리는 태도다.정정과 반론을 두려워하지 않는 언론이 오히려 독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언론의 신뢰는 '틀리지 않는 것'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과정에서도 만들어진다.여섯째, 권력과 이해관계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기자는 정치권력, 경제적 이해관계, 조직 내부의 압력으로부터 가능한 한 독립적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누구에게 유리한가보다 무엇이 사실인가를 먼저 판단해야 하며, 취재 대상에 대한 호불호가 보도 내용에 영향을 미쳐서도 안 된다.언론의 감시 기능은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을 공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사회 현상을 지속적으로 검증하는 데 있다.일곱째, 기사의 제목과 표현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오늘날 독자들은 기사 전체보다 제목을 먼저 접하는 경우가 많다.따라서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사실보다 과장된 제목을 사용하거나, 기사 내용과 다른 인상을 주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제목 역시 기사와 마찬가지로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기자의 가장 큰 자산은 신뢰다기자는 한 편의 기사로 유명해질 수 있지만, 한 번의 부정확한 보도로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결국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조회 수도, 영향력도, 유명세도 아니다. 독자가 '이 기자의 보도라면 사실을 확인하고 읽어볼 수 있다'고 믿는 신뢰다.사실 확인, 공정성, 독립성, 취재원 보호, 인권 존중, 정정과 책임.이 원칙들은 서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 언론이 사회로부터 위임받은 진실을 확인하고 전달할 책임으로 연결된다.기자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쩌면 단순하다.&quot;내가 쓰는 이 기사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보도로 인해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는가.&quot;기자가 매번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면, 언론의 신뢰 역시 그만큼 단단해질 수 있다.이 기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초안을 작성하고 편집했습니다.]]></description>
			<pubDate>Wed, 12 Aug 2026 20:33:2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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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자의 원칙, 진실을 향한 책임과 신뢰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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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세계문화유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생기는 동물화장장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602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두동마을 현수막울산 독립운동가 관련 장소에서 문화해설사와 이야기하다 얼마 전 쓰려던 기사가 생각났다.울산은 회야댐에서 상수도를 받아 쓰는 것만 알았는데,천상정수장이라고 해서 천진리 암각화에서 멀지 않은 곳에도 상수도 시설이 있다고 한다.얼마 전 고속도로에서 나와 천진리 암각화와 대곡박물관 가는 길에 있는 마을에 현수막이 요란하게 걸려 있었다.처음에는 화장장 반대인가 했는데,자세히 살펴보니 개 화장장 반대라고 했다.무슨 일인지 찾아보니 민간업자가  천진리 암각화 근처 두통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물화장장을 건립하기 위해 울주군청에 허가신청중이라고 한다.두동마을 현수막울주군 두동면 천전리35번 국도변 옛 주유소 부지라고 하는데,천전리 암각화에서 그다지 멀지 않고 마을에서 직선거리로6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세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고 축제하고 행사를 하기 앞서서 주변에 대한 신경을 너무 안 쓴다는 생각이 또 들게 되었다.한국은 국제 무슨 기구에서 인정하면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면서,정작 우리 문화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지키는 데는 인색한 것 같다.두동마을 현수막천진리 암각화나 대곡박물관 가는 길은 계절마다 아름답다.천전리 암각화 가는 길 대곡천에서 주변을 살펴보면 끝없는 산과 물 내려가는 길이 아름답기 그지없다.우리의 옛 조상들이 먹고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동해 왔겠지만,현대를 사는 나는 풍경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관광을 중요시한다면,점이 아닌 선의 여행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한국 관광 관련자들은 점의 여행과 선의 여행에서 점의 여행만 신경 쓰는 것 같다.대곡박물관,천진리 암각화만 보고 떠나는 것은 점의 여행이다.유럽의 중세 도시나 교토 같은 고풍스러운 도시는 선의 여행을 추구한다.대중교통에서 내려서 관광지까지 가는 길에 차가 다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거리의 풍경은 여행자에게 관광지뿐 아니라 그 도시 자체를 기억하는 경험을 준다.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걸어가면서 그 도시만의 풍경을 구경하고 고풍스러운 모습에 어디나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쌓을 수 있다.유적지 주변에 어울리지 않는 큰 건물을 세우고,길을 확장한다고 오래된 나무를 베어버리는 그런 정책에 한숨이 나온 지는 오래다.천전리 암각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굳이 동물화장장을 세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울산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선택한 것일 수 있지만,굳이 그 위치여야 했는지 질문하고 싶다.그리고 두동마을에서 대곡박물관 가는 길 버려진 커다란 온실이 있는 것은 아는지 질문하고 싶다.세계문화유산 되었다고 자랑하는 동시에 문화유산 주변도 둘러봤으면 좋겠다.점 여행처럼 차 타고 가서 해당 유적지만 보고 오는 게 아니라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선 이동으로 여행자가 와서 무엇을 보고 갈지도 생각했으면 좋겠다.부산에 임진왜란과 관련한 인물 사당이 있다.그 사당에 들어서는 순간 뒤에 연립 주택 같은 건물이 사당 뒷배경이 되어서 보기가 그렇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부산은6.25사변 중 몰려온 피난민으로 난개발할 수밖에 없었다.오죽 집을 지을 곳이 없었으면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남기고 간 무덤을 밀고 집을 지었겠는가.무덤 위에 올려놓은 비석으로 집을 지어서‘비석마을’이라고 불리는 동네가 있다.개발 논리에 밀려 이미 엉망이 된 유적지 주변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제부터라도 유적지와 주변이 어울려 가는 개발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넓은 도로 큰 기념관을 짓기 전 주변과 어울리는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관련 일을 맡았으면 좋겠다.일본 예술의 섬이라 불리는 나오시마에는 미술관 숙박 건물이 주변 풍경을 헤치지 않으려 지하로 묻어서 지은 건물도 있다.실제 사용하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땅 아래로 건물을 묻고,주변 풍광을 헤치지 않기 위한 배려이다.변산반도에 특이한 바위로 아름다운 풍경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갔더니 호텔이 생겼다.예전 정취를 생각해서 지인을 추천해서 데려갔다가 미안한 적이 있다.그 뒤로 별로 가고 싶지 않다.풍경 그 자체로 아름다운데 그 위에 그런 커다란 건물을 지어서 풍경을 망쳐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건물이나 기념비를 쓸데없이 크게 짓는 것은 아름다움보다 압도하는 느낌으로 위엄을 표시하는 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다.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문화재 개발 업무를 하는 게 필자는 두렵다.문화재는 있는 그대로 훼손이 덜 되도록 보존하는 게 중요하다.큰 기념관이나 카페 같은 편의시설은 문화재보다 새로 지은 건물이 더 눈에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날 수도 있다.주인공은 문화재이지 기념관이나 편의시설이 아니다.그런 기본적 이해가 없는 사람이 문화재나 유적지 관련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문화재를 다른 것보다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관련 업무를 맡았으면 좋겠다.천전리 암각화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물화장장을 짓겠다는 사람과 그것을 허가하겠다는 사람은 문화유산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그 정도 위치가 괜찮다고 여길 수도 있다.그러나 그렇게 조금씩 양보하다 보면 유적지 주변까지 개발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문화유산 업무 담당자가 강력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 한국의 개발 논리는 언제든 이길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description>
			<pubDate>Wed, 12 Aug 2026 19:56:2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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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계문화유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생기는 동물화장장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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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현대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과거사 청산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536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다시 ‘반민특위’를 만든다면 ]현대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과거사 청산은[약산소식지 = 권용진 알리미]해방 직후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조사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반민특위’.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이와 비슷한 과거사 청산 기구를 다시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가능하다. 다만 1948년 반민특위의 권한을 그대로 되살리는 방식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따른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① 국회가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누구를, 어떤 행위를, 어느 기간까지 조사할 것인지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특정 정치세력이나 개인을 겨냥한 기구가 되지 않도록 객관적인 조사 기준도 반드시 필요하다.②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필요하다정부나 특정 정당의 영향에서 벗어나 역사자료와 국가기록 등을 조사할 수 있는 독립성이 중요하다.그러나 조사위원회가 마음대로 체포하거나 압수수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강제수사는 영장주의와 적법절차 등 현행 헌법과 사법체계를 따라야 한다.③ ‘역사 조사’와 ‘형사처벌’은 다르다과거 행위를 조사하고 국가 기록으로 남기는 것과 형사처벌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행위 당시 범죄가 아니었던 일을 나중에 만든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소급처벌 금지 원칙과 충돌한다.공소시효가 이미 끝난 사건을 다시 처벌하는 문제 역시 헌법적 검토가 필요하다.④ 부당하게 만들어진 재산은?과거 친일재산 국가귀속 제도처럼 역사적으로 중대한 행위와 재산 취득 사이의 관계가 입증된다면 특별법에 따른 환수 제도를 검토할 수 있다.하지만 단순히 ‘후손의 재산’이라는 이유만으로 빼앗을 수는 없다.재산 형성과 문제 행위 사이의 관계를 증거로 확인하고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⑤ 처벌만큼 중요한 것은 ‘기록’국가가 확보한 문서와 역사자료를 검증하고 조사 결과와 근거를 디지털 기록으로 영구 보존하는 것도 현대적인 과거사 청산의 중요한 방법이다.잘못을 기록하고 후대가 확인할 수 있도록 남기는 것 역시 역사적 책임을 묻는 과정이다.결국 현대의 ‘제2의 반민특위’가 가능하려면특별법 제정 → 독립 조사 → 사법절차 → 재산 문제 판단 → 역사 기록이라는 헌법적 절차가 필요하다.과거를 바로잡는다는 목적이 정당하더라도그 과정 역시 법과 원칙에 따라야 한다.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역사적 책임을 묻는 방법이다.※ 이 기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담당 기자가 사실확인 및 최종 기사심의를 거쳐 발행했습니다.#반민특위 #친일청산 #과거사청산 #역사바로세우기 #약산소식지]]></description>
			<pubDate>Mon, 10 Aug 2026 23:47:02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카페드 페소니아 철거 논란…서울디자인재단 본부장 “당초 계약 잘못돼 감사 지적받았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535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기획/사회]카페드 페소니아 철거 논란…서울디자인재단 본부장 “당초 계약 잘못돼 감사 지적받았다”박진배 본부장 녹취록서 “공유재산은 입찰로 해야 해 감사과 지적”…계약 종료·공간 활용 놓고 입장차 재단 측 “DDP 전체 콘텐츠 균형과 시민 이용 공간으로 운영 방향”…업체 측은 투자·영업권 문제 제기[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내 카페드 페소니아 공간을 둘러싼 철거 및 계약 논란과 관련해 서울디자인재단 박진배 본부장이 해당 공간의 기존 계약 과정에서 서울시 감사 부서의 지적이 있었다고 밝힌 녹취가 확인됐다.권지연 뉴탐사 기자와 박진배 본부장이 나눈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박 본부장은 카페드 페소니아가 운영되던 공간을 향후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이너 라운지’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라운지에서는 시민들이 DDP의 상품과 굿즈 등을 경험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다만 이 계획이 구체적인 행정계획으로 언제 확정됐는지에 대해서는 박 본부장이 “카페드 페소니아가 계속 있었기 때문에 아주 실효적으로 잡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시민들에게 개방할 수 있는 콘텐츠를 구성해야 한다는 방향은 이전부터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시장 지시라기보다 재단의 운영 방향”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라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박 본부장은 “시장님의 의지라기보다는 저희 쪽에서 전체적인 운영 방향을 그렇게 잡고 있었다”고 답했다.다만 서울디자인재단이 서울시 출연기관인 만큼 주요 결정은 서울시에 보고하고 검토받는다고 설명했다. 오 시장이 직접 서명한 계획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보고는 했겠죠”라고 답변했다.박 본부장은 DDP의 주요 공간은 대부분 가동되고 있으며, 후면 전시공간 등은 자체 콘텐츠와 대관을 병행하고 있어 상설 공간으로 운영하기는 어렵다는 입장도 밝혔다.계약 논란에 “서울시 감사과에서 잘못 지적”논란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카페드 페소니아의 계약 방식이다.박 본부장은 다른 DDP 입점 업체들의 경우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따라 계약하고,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재입찰 등의 절차를 거친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카페드 페소니아의 최초 계약 과정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나왔다.박 본부장은 당초 DDP 운영 초기 좋은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으로 업체를 들였다고 설명했다. 이후 공공자산은 입찰을 통해야 한다는 공유재산 관련 규정 때문에 서울시 감사 부서로부터 지적을 받았다고 밝혔다.특히 “원래 계약을 타절하고 새롭게 하라고 지시를 받았었다”고 말하면서도, 당시 계약을 종료하기 어려워 기존 계약을 유효하게 받아들이고 추가 기간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이는 기존 계약 방식에 행정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재단 측 책임자가 직접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향후 계약 절차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3년 전에 끝났어야 했지만 연장했다”박 본부장은 카페드 페소니아가 당초 계약기간을 넘어 운영됐다는 점도 인정했다.그는 “원래는 3년 전에 끝났어야 하는데 페소니아의 입장도 고려해서 3년 더 해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계약기간과 DDP의 운영전략 변화에 따라 콘텐츠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이에 대해 권 기자가 상당한 금액을 투자한 업체가 처음부터 제한된 기간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고 묻자 박 본부장은 계약에 따라 운영한 것이며, 계약기간은 충분히 운영했다고 답했다.화장실 공사비 놓고도 입장 차이공간을 이용하는 시민들을 위한 화장실 설치와 관련해서도 논란이 제기됐다.박 본부장은 해당 비용 문제에 대해 법적인 판단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화장실 인테리어 비용 등에 대해 법원의 판단에 따라 약 1,700만 원을 지급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반면 카페드 페소니아 측이 주장하는 전체 투자금액에 대해서는 “페소니아 입장”이라며 재단이 산정한 비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따라서 실제 투자비와 보상 범위, 공사비 부담의 근거 등에 대해서는 관련 계약서와 법원 판단문, 감정평가 자료 등을 통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2023년 공간 활용 계획도 쟁점녹취에서는 2023년 무렵 해당 공간에 대한 항공 촬영과 사업계획서 작성 여부도 언급됐다.이에 대해 박 본부장은 해당 공간의 기존 계약이 서울시 감사 부서에서 잘못된 계약으로 지적됐고, 계약을 종료하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재차 설명했다. 다만 기존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 이를 바로 종료하지 않고 추가 기간까지 운영하도록 했다는 것이 재단 측 설명이다.결국 향후 공간 활용 계획이 언제, 어떤 절차를 거쳐 구체화됐는지와 기존 업체의 계약 종료 과정이 적법하고 일관된 기준에 따라 진행됐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남는다.국회·서울시의회에도 자료 제출박 본부장은 카페드 페소니아 측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한 사실에 대해서는 직접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다만 관련 문제를 제기하는 국회의원들에게는 자료를 제출했고, 서울시의원들에게는 직접 찾아가 설명했다고 밝혔다. 재단 측에서는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고 말했다.오세훈 서울시장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서울시에 확인해야 할 것 같다”며 서울디자인재단은 출연기관으로서 운영을 담당하는 기관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사장의 입장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에는 “알겠다”고 답변했다.이번 녹취를 통해 서울디자인재단 측은 카페드 페소니아 공간을 시민 이용 중심의 새로운 콘텐츠 공간으로 전환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동시에 기존 계약 과정에서 서울시 감사 부서의 지적이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다만 계약 변경 및 연장 과정이 관련 법령과 행정절차에 부합했는지, 다른 입점업체들과 동일한 기준이 적용됐는지, 공간 활용 계획이 언제 확정됐는지 등은 녹취만으로 최종 판단하기 어렵다.따라서 향후 논란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최초 계약서와 이후 변경·연장 계약서, 공유재산 사용·수익허가 관련 문서, 서울시 감사 지적 및 조치 내용, 법원의 판단문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제공된 통화 녹취록의 발언을 중심으로 작성했으며, 녹취에 등장하는 주장과 사실관계가 법적으로 최종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닙니다.이 기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초안을 작성하고 편집했습니다.]]></description>
			<pubDate>Mon, 10 Aug 2026 23:27:5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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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카페드 페소니아 철거 논란…서울디자인재단 본부장 “당초 계약 잘못돼 감사 지적받았다”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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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국항공우주산업에 이은 또 다른  안보 관련 문제 후방 경비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386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이투데이뉴스 (https://news.nate.com/view/20260622n23513)국방부 장관이 후방 경계를 민간 사설 업체에 맡기겠다고6월에 이야기가 나왔고,가장 많이 거론되는 업체가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 회사이다.군 병력이 부족해서 후방 경계를 민간에게 맡기겠다고 했지만,병력이 부족한 근본적 원인은 생각하지 않는 급속한 조치 같다.모든 문제는 근본 원인을 생각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장기적 해결책이 된다.단기적으로 좋아 보이는 해결책을 급하게 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후대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태가 오기도 한다.이번 기사에서는 후방 경계를 맡기겠다고 거론된 업체에 대한 논란이다.거론된 업체는 최대주주는 지분25.65%를 보유한 일본 보안기업 세콤(SECOM)이며,세콤의 대주주 지분 구조를 통해 일본의 대표적 전범·금융자본인 미쓰비시계열과 관련 있다고 한다.몇 년 전 항일운동의 상징인 백범 김구 기념관,안중근 의사 기념관 등 독립기념 시설들의 보안 경비업무를 이 업체가 맡고 있어서 논란이 불거졌다.문제가 제기되자 관련 기념관은 계약이 종료되고 다른 업체로 바꾸었다.민간 업체가 안보를 맡긴다는 것 자체도 말이 안 되지만,전범 기업이 맡는다면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한국은 일본 제국에36년간 지배당했다.그 결과 일본은 군대를 만들 수 없다.그래서 만든 것이 자기들을 지키겠다는 자위대이다.자위대는 한미 군사훈련을 한미일 군사훈련으로 확대하여 참여하려고 한다.그 기회를 통해 호시탐탐 전투 훈련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그런 나라 업체가 후방 경계를 맡겠다는 것도 불안한데,전범 기업이 대지지주인 회사와 관련 있는 업체가 맡는다면 안보가 제대로 지켜질지 의심이 간다.상식적인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미쓰비시(三菱)는 메이지유신2년 뒤인1870년 설립되었고,일본 군국주의 대외 침략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해운·탄광·조선·제철업으로 시작한 기업으로,미쓰비시제 전투기와 군함과 무기가 일본 제국주의 전쟁에 쓰이면서 덩치가 커진 기업이다.한국의 재벌이 있기 전 일본에는 자이바츠(財閥)가 존재했다.패망 후 자이바츠는 분해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 명맥이 남아 있는 기업이다.미쓰비시가 성장한 것에는 전쟁 호황만이 이유가 아니다. ‘자본주의’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은 안다.자본가는 자본을 투자해서 재료와 노동 등에 쓰인 비용을 빼고 나머지 이윤을 얻는다.미쓰비시는 이윤 축적 과정에서 노동에 드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전쟁 물자 생산이라는 명분으로 일본 제국주의 비호 아래 식민지 조선인의 노동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마음껏 썼기 때문이다.강제 동원된 조선인을 노예에 가깝게 부리며 기업이 컸고,이 문제는 아직도 진행중이다.미쓰비시가 일제강점기에만 한국에서 이득을 본 것이 아니다.해방 후에도 경제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한국 정치인은 미쓰비시 이윤을 불리는데 협조했다.포항제철 건설 당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도입된 대일 청구권 자금의 상당 부분이 포항제철 건설에 투입되었습니다.이때 미쓰비시상사는 일본 제철업계의 참여를 조율하는 간사 회사를 맡았다.한국에 막대한 규모의 제철 설비와 기계를 독점적으로 수출하며 엄청난 이윤을 남겼다.게다가 한국이 일본 기업들로부터 사들인 설비 금액이 일본이 제공한 자금 규모를 커서 결과적으로 일본이 이득을 보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출처: 한국일보(https://v.daum.net/v/M0PGzlk8VD)게다가 일본의 기술을 배워서 한국의 기업을 키우겠다는 경제개발 계획은 한국이 일본 기업의 하청과 비슷한 상황을 낳았다.현대자동차가 초기에 포니와 같은 독자적인 자동차를 개발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미쓰비시자동차로부터 기관 및 변속기 기술을 도입했다.미쓰비시는 현대자동차의 지분을 보유하며 배당금 이익을 챙겼고,핵심 부품을 독점 공급하여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했다고 한다.또1967년 당시 미쓰비시 은행은 일본 금융기관 중 최초로 서울 지점 개설 허가를 받았다.이를 통해 한국에 진출하는 일본 기업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대일 차관 사업을 독점하며 금융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미쓰비시는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배상도 하지 않아도 한국에서 많은 이익을 얻었다.그런데 간접적이라고 해도 미쓰비시가 대주주인 일본 세콤,그리고 일본 세콤의 대주주인 한국 보안업체가 국군이 지켜야 할 후방 경비업무를 맡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출처: 오마이뉴스(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17640)전시작전권을 마음대로 무기한 넘겨 버린 대통령 때문에 국가 안보가 미국에 종속적인 한국이다.그런데 이제 후방 경비를 한국을 식민지 지배하며 이득을 취한 일본 영향을 받는 기업이 할지도 모른다니 정말 걱정이 앞선다.6.25 전쟁 특수 누린 미쓰비시출처: 세계일보 (https://www.segye.com/newsView/20170813001648)한국 내 미쓰비시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662950박정희 때문에 강제 노동 사과받지 못한 한국출처: 서울의 소리(https://www.amn.kr/20915)에스원 지분 구조https://www.newswell.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36미쓰비시 상]]></description>
			<pubDate>Wed, 05 Aug 2026 22:24:5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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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항공우주산업에 이은 또 다른  안보 관련 문제 후방 경비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news.nate.com/view/20260622n23513</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386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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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옹호하는 자가 모 독립운동가 기념회 이사장이었던 나라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347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EBS 교양 교학사 교과서독립운동가를 찾아 떠나는 취재 여행에서 몰랐던 많은 독립운동가를 만났다.그 중 한 분을 기리는 기념관은 아주 독특하게 운영하고 있다다.기념관을 보려면 관리자분에게 전화하는데,그분이 전화로 여는 방법을 안내하고 전화로 길게 설명하신다.사람이 많이 방문하지 않는다면,관리를 위해 문을 잠가 놓는 것이 맞다.그러나 안내자가 전화로만 안내하는 것은 어느 기념관에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방식이었다.방문객이 적어서 나름의 방법을 쓴 것으로 이해하려고 했다.그러나 그곳을 세 번째 방문했을 때 그 관리자가 친일파 옹호하는 말을 해서 조심스럽게 이 독립운동가가 진짜인지 의심까지 하게 되었다.그 분 말은‘먹고 살려면 일제 시대에 다 친일을 했다.’는 그런 말이었다. ‘일제강점기’라 하지 않는 것은 해방 후 잘못된 교육으로 그냥 넘어갈 수 있다.그러나 독립운동가 기념관을 관리하는 사람이 친일을 옹호하는 것은 뭔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상식 있는 한국인이라면 먹고살기 위해 일을 했다는 것에 화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한국인이 화가 나는 지점이 자신이 먹고 살기 위해 누군가를 괴롭히고 심하면 죽음에 몰아넣기까지 했다는 것이다.직접적 물리적 폭력을 가해 죽이거나 상처를 입히는 일만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유명세를 이용해서 연설이나 글을 통해 강제 노동이나 군대에 입대하도록 만든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그런 활동을 통해 부와 명예를 얻는 가운데,많은 한국인이 힘든 노동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죽어 나갔다.이렇게 같은 민족을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이들이 해방 후 잘 살았던 게 현대 한국사의 비극이다.그들은 사과하지 않고 변명하며,심하게는 독립운동 활동에 약간의 도움을 준 것을 부풀려서 독립운동가 행세를 하려 하는 이도 있다.반대급부적으로 목숨 바쳐 독립운동 한 이들,일제강점기 중 목숨을 잃은 이들도 해방된 한국에서 제대로 된 서훈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분단 된 한국의 상황을 이용하여 그들을 독립운동의 공적을 지우려거나 폄하시키려고 노력한 예도 많다.이런 가운데 민족을 팔아 잘 살던 이들을 미화시키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그리고 그 독립운동가를 조사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그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이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뉴라이트’가 아닌지 의심 가는 인물이었다.영어 좋아하는 이들이 만든‘New Right’라는 말도 필자는 쓰고 싶지 않다.한국인이라면 한국어를 써야지 외국어를 왜 쓰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그리고 한국 극우라면 한국을 너무 사랑해서 일본 극우처럼 다른 민족에게 반감을 가질 행동을 하기도 해야 하지 않는지 질문해 본다.영어로 자신들의 이름을 붙였다면 미국 극우라고 볼 수도 있다.언론에서 극우라고 나오는 이들이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냥 극우가 아니라 미국 극우일 수도 있다.잘못된 언론이나 학자들은 모든 것을 정확히 말하지 않고 대충 말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이라는 글자를 빼고 그냥 극우라고 하니 일반적인 한국인은 한국 극우처럼 착각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개인적인 생각이지만,일본의 극우를 비추어 생각해 보면,한국 극우라면 다음과 같이 행동해야 하지 않는지 추측해 본다.한국 보수라면 독도는 한민족의 땅이라고 외치고 다닐 것이고,한국 극우라면 대마도와 간도는 한민족의 땅이라고 외치고 다닐 것 같다.언어 사용에서도,한국 보수라면 국한문 혼용체 정도를 인정할 것이고 한국 극우라면 순 한글을 주장할 것이다.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부류를 보수나 극우라고 칭해서 한국의 보수나 극우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언어 장난이라고 생각한다.그 초대 이사장이2013년 역사 교과서 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교학사 교과서 관련 옹호 발언을 다양하게 했다.게다가 교학사 필진이 논란이 되어 기자 회견을 할 때 저자 옆에 앉아 있는 사진이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또 언론에서 칭하는 뉴라이트 등 보수 성향이라 하는 전직 교육부 장관들과 학자들이 교학사 교과서를 두둔하기 위해 만든‘역사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이 경우만 아니라 꽤 많은 독립운동을 기리는 단체에서 역사의식이 의심 가는 이가 단체장을 맡거나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경우를 본다.문제는 이런 경우를 보면 독립운동가의 독립 업적 자체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된다는 것이다.독립운동가 단체에 비해 독립운동가가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게 진짜 그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 아닌 사이비 같은 이가 이름만 팔아서 그런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 적도 있다.최근 고인을 팔아서 오랫동안 이익을 챙겨왔다는 단체 사태가 터진 것처럼,어쩌면 그 단체도 진짜 고인이 이루고 싶었던 해방된 조국을 모르는 이들이 단지 그의 이름만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도 의심하게 된다.독립운동가를 팔아 반민족행위를 슬쩍 미화하려는 이가 얼마나 더 있을지 걱정도 된다.그런 이를 만날 때마다 독립운동가의 공적이 퇴색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독립운동가 업적이 제대로 알려지고 걸맞는 대접을 받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계속되는 역사 교과서 문제교학사 왜곡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받기 힘든 한국친일파가 독립유공자로]]></description>
			<pubDate>Tue, 04 Aug 2026 21:25:0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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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옹호하는 자가 모 독립운동가 기념회 이사장이었던 나라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youtube.com/watch?v=tfUY5AyB6Bk</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347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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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러시아가 텔레그램 창업자를 범죄 협조 혐의로 기소하려고 한다는 외신을 보며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343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CBS 뉴스 (https://www.cbsnews.com/news/russia-charges-telegram-founder-pavel-durov-aiding-terrorism/?intcid=CNM-00-10abd1h)*{ margin:0; padding:0; } .HStyle0 { style-name:&quot;바탕글&quot;; margin-top:0.0pt; margin-bottom:0.0pt; text-align:justify; text-indent:0.0pt; line-height:160%; font-size:10.0pt; font-family:함초롬바탕; letter-spacing:0; font-weight:normal; font-style:normal; color:#000000; }https://www.cbsnews.com/news/russia-charges-telegram-founder-pavel-durov-aiding-terrorism/?intcid=CNM-00-10abd1h‘60 Minutes’는 미국 CBS 뉴스가 1968년부터 시작한 심층 보도 뉴스이다. 화제가 되는 문제에 대해 한 시간동안 깊이 있게 다루는 대표적 시사 방송이고 많은 이들이 보는 뉴스 방송 중 하나이다.7월 29일 ‘60 Minutes’에서는 텔레그램 창시자 파벨 두로프(Pavel Durov)가 러시아 정부에게 고소당한 사건에 대해 다루었다. 러시아 정부는 파벨 두로프가 테러리스트를 도왔다는 혐의로 그를 체포하려 하고 있다고 한다.사실 이 방송을 보기 전까지, 필자는 텔레그램이라는 어플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언론에 텔레그램이 언급될때 범죄자가 이용하는 어떤 수단 텔레그램방으로 자주 나왔기에 범죄자의 온상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러시아에서 만든 어플로 독재 국가니 저런 게 가능하다는 생각까지 했던 적이 있다.그러나 실제로 텔레그램의 탄생은 필자의 생각과 달랐다. 파벨 두로프라는 인물은 러시아의 마크 주커버그라 불릴 만큼 정보 기술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어린나이부터 인정받은 컴퓨터 공학자이다.그는 페이스북과 비슷한 ‘VK’라는 사회 관계망(social network platform)을 만들어 러시아 독재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이 인터넷에 모이는 것을 가능하게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체포 협박에 시달리며 망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망명 전 텔레그램 응용(application)을 구상했고, 이에 대한 기금을 가지고 탈출 후 만들었다고 한다.러시아 독재 정부는 VK 사용자 명단을 요구했으나 거부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독재에 저항하는 이들이 이동 통신(mobie)에서 모일 수 있게 만든 프로그램이 텔레그램이었다.독재에 저항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위험한 일이니 그는 최대한 그들의 안전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메신저 내용이 자동으로 지워지는 기능이 텔레그램에 추가했다.문제는 사용자들이다. 그의 의도가 반독재에 저항하고 자유를 얻기 위해 만들었다 하더라도, 결국 이것을 악용하는 인간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안타깝지만 역사를 보면 늘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가 몇몇의 악용자들로 인해 원래 취지를 잃어버린 인간의 계획이 많은 것 같다.최근 한국에는 더운 날씨 탈수에 대비해서 몇몇 지자체에서 무료 생수를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문제는 탈수라는 급한 문제를 해결할 만큼 물을 마시는 이를 위해 이 생수가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몇 이기적 인간들이 필요 이상의 물을 마음껏 가져가면서 생겼다. 두 세개는 애교라고할만큼 가방에 쓸어서 담아가는 인간도 있다.생수 자판기나 냉장고 주변에 다 마시지도 않은 생수병이 뒹굴어다니는 것도 예사이다. 왜 지자체는 저런 데 예산을 쓰는지 불만을 갖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낭비성 예산보다 나무를 심는다든지, 식용이 가능한 물이 늘어나도록 노력하는 데 예산을 쓰는 게 더 낫지 않는지 생각해본다.텔레그램에 대한 오해는 풀렸지만 여전히 텔레그램이 좋아보이지 않는다. 러시아나 서구는 테레리스트가 텔레그램이 인간을 죽이고 괴롭히는 데 사용된다. 한국은 인륜을 저버린 범죄자들이 텔레그램을 이용해 범죄를 모의한다.원래의 취지와 관련 없이 된 것은 안타깝지만, 원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응용에 나쁜 일을 도울 수도 있는 기능이 계속 존재해야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댓글처럼 엡스타인은 G-mail을 이용했는데, 그럼 구글 창업자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또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응용이든 누리집이든 전자메일이든 뭔가 방지책을 고민해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인간의 좋은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악용이 덜 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시기인 것 같기도 하다.무료 생수 싹쓸이]]></description>
			<pubDate>Tue, 04 Aug 2026 21:25:0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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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러시아가 텔레그램 창업자를 범죄 협조 혐의로 기소하려고 한다는 외신을 보며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cbsnews.com/news/russia-charges-telegram-founder-pavel-durov-aiding-terrorism/?intcid=CNM-00-10abd1h</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343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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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사회기획] &amp; quot;행정을 믿고 10억 투자했는데 '무단점유자' 됐다&amp; quot;… DDP 카페드페소니아, '행정 책임' 논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339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사회기획] &quot;행정을 믿고 10억 투자했는데 '무단점유자' 됐다&quot;… DDP 카페드페소니아, '행정 책임' 논란서울디자인재단 운영구조 적법성·공유재산 관리 방식 쟁점당사자 &quot;위법한 구조는 행정이 만들고 책임은 시민에게 전가&quot;[약산소식지 = 권용진 알리미]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내 카페드페소니아 강제퇴거를 둘러싸고 공공기관의 공유재산 관리와 행정 책임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카페드페소니아 측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임대차 분쟁이나 계약기간 만료가 아니라,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만든 운영구조를 신뢰해 투자한 시민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행정 참사'라고 주장하고 있다.카페드페소니아 측에 따르면 사건은 2017년 서울시 공유재산인 DDP A3 공간 운영 과정에서 시작됐다. 당시 서울디자인재단은 민간 중간운영업체를 통해 입점업체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운영했고, 카페드페소니아는 재단이 승인한 절차에 따라 공식 입점했다는 입장이다.당시 해당 공간은 전기와 급·배수시설, 화장실 등 기본적인 영업 기반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으며, 카페드페소니아는 공공화장실 설치와 전기·배관·급배수 공사, 인테리어, 시민 휴게공간 조성 등에 약 10억 원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공공화장실 설치비만 약 1억5천만 원이 투입됐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카페드페소니아 측은 공간이 활성화된 이후 재단의 입장이 달라졌다고 주장한다.2019년에는 계약 연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추가 입점업체 유치를 요구받는 한편, 같은 공간을 재단이 직접 활용하겠다며 퇴거 요구가 이어졌고, 이후에도 미디어파사드 설치, 서울시 홍보공간 활용, 정책적 활용계획 등 퇴거 사유가 계속 변경됐다고 설명했다.또한 2020년 서울시 종합감사에서 기존 운영구조의 문제가 확인됐음에도, 위법성이 지적된 구조를 정상화하기보다 기존 구조를 유지한 채 계약만 변경했다고 주장했다.카페드페소니아 측은 같은 시기에 입점한 다른 업체들은 직접 공유재산 사용·수익허가를 받아 장기간 영업 기회를 얻었지만, 자신들은 중간운영업체 명의의 사용·수익허가 방식이 유지되면서 사실상 정상화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어 2023년 계약 종료를 앞두고는 갱신 기회를 실질적으로 부여받지 못한 채 '기간 만료'와 '1회 갱신 완료'라는 논리로 퇴거 절차가 진행됐으며, 이후 명도소송과 변상금 부과, 재산 압류, 강제집행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카페드페소니아 측은 특히 2025년 민사 1심 판결 이후 현금 공탁을 조건으로 강제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강제철거가 진행되면서 생존권이 심각하게 침해됐다고 주장했다.이들은 &quot;행정은 투자 당시에는 공식 입점업체로 인정했고 공간 활성화 과정에서는 협력사업자로 활용했지만, 권리를 보호해야 할 때는 직접 허가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며 책임을 부인했고, 변상금을 부과할 때는 다시 실질 점유자라며 무단점유자로 규정했다&quot;고 말했다.카페드페소니아 측은 서울시가 2017년 입찰 설계부터 운영방식, 2019년 공간 회수 계획, 2020년 정상화 과정, 2023년 퇴거 결정, 변상금 부과와 강제집행까지 전 과정을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아울러 변상금과 관련 소송 재검토, 투자비 및 영업손실에 대한 정산, 대체공간 제공 또는 영업권 회복 등 실질적인 피해 회복 대책 마련도 요구했다.이번 사건과 관련해 서울시 및 서울디자인재단 측은 법원 판단과 공유재산 관리 원칙에 따라 절차를 진행했다는 입장을 밝혀온 바 있다. 최종적인 사실관계와 법적 책임은 진행 중인 재판 결과와 향후 사법적 판단을 통해 추가적으로 확인될 사안이다.※ 이 기사는 인공지능(AI) 기술과 제보로 활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담당 기자가 사실확인 및 최종 기사심의를 거쳐 발행했습니다.#DDP #카페드페소니아 #서울디자인재단 #공유재산 #행정책임]]></description>
			<pubDate>Tue, 04 Aug 2026 16:47:0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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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평화비전 국민대장정’ 발걸음 &lt;연속보도&gt; 4편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289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평화비전 국민대장정’ 발걸음 &amp;amp;lt;연속보도&amp;amp;gt; 4편골령골 유족의 절규, “100만 민간인 학살 가해자들이 현충원에?”- 전미경 회장, “반인륜 폭력범죄자 서훈 취소하고 파묘·이장 강제하라!” 7월 25일 오후 대전 서구문화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미경 유족회장이 국가폭력 가해자 서훈 취소와 파묘·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제공: 임재근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집행위원장 겸 ‘사)평화통일문화교육센터’ 사무처장)7월 25일 오후 5시 30분부터 대전 서구문화원 앞에서 열린 평화비전 국민대장정 1차 행동 마감 기자회견에서 전미경 ‘사)대전 산내 골령골 희생자 유족회’ 회장은 “한국전쟁 시기 국군 전사자는 2~30만 명이지만, 사법 절차도 없이 학살당한 민간인은 그보다 서너 다섯 배나 더 많은 100만 명에 달한다.”는 주장으로 말문을 연 뒤 “전쟁터도 아닌 민간인 거주지에서, 그것도 민간인 등 국민생명과 안전 및 재산 보호 등을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존재이유로 하는 군경이 제 아무리 전시라고 하지만, 자기직분을 방기하고 국민기대와 신뢰 등을 배반하고 재판 등 사법절차도 거치지 않고 도대체 왜 주권자를 무더기로 학살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다.”고 피눈물을 삼키며 절규했다.이어서, 전미경 회장은 전 회장은 현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만의 명령에 순종해 반인륜적 폭력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누구인지 소상히 밝혀야 한다.”며 “이런 범죄자들이 살아서는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고, 죽어서는 국립현충원에 묻히는 특혜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면서 “민족정기와 역사정의를 위해 가해자들의 서훈을 취소하고 파묘(破墓)·이장(移葬)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그밖에도 전 회장은 “골령골 평화공원 조성과 추모관 건립이 지연되고 있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학살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 평화공원을 조속히 완성하라”고 호소하는 등 &amp;amp;lt;우리 국민과 남북당국에 드리는 특별메시지&amp;amp;gt;를 가름했다.  7월 25일 오후 대전 서구문화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송운학 대전고 민주동문회 회장이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제공: 임재근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집행위원장 겸 ‘사)평화통일문화교육센터’ 사무처장)대장정 기획·제안자로서 1차 행동을 안은찬 부회장과 함께 조직한 송운학 대전고 민주동문회 회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76년 동안 장기 지속된 남북적대와 이념갈등 등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죽임을 당했다. 위정자들이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기는커녕 이를 파묻고 은폐하고 왜곡하고 축소시켜 왔다. 게다가 분노와 적대 등을 특징으로 하는 과거기억에 똬리를 틀고 기생하며 동거하고 있는 불안과 공포, 피해의식 등을 악용하여 애써 일궈온 민주화를 위험에 빠뜨리고, 그 발전과 완성을 방해해 왔다. 오늘날에는 민생까지 파탄 내고 있다”라고 질타했다.진행을 맡은 김선홍 ‘행·의정감시네트워크 중앙회’ 중앙회장은 “아마도 의롭고 착하며 용감한 주권자가 5만 명 이상에 달하면, 그 연대와 단결의 힘으로 우리 역사와 인류 운명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나 전문가가 아니라 우리 주권자 국민이 스스로 직접 동북아 상생평화 국민비전을 한줄한줄 함께 써 내려가 마침내 국민합의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남북적대가 사라지고 종전평화체제로 이행하여 상생평화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역설했다.]]></description>
			<pubDate>Mon, 03 Aug 2026 12:19:1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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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평화비전 국민대장정’ 발걸음 &lt;연속보도&gt; 4편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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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케이트 페리의 노래 'Firework'를 마음대로 쓴 미국 정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288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Kate Perry X (https://x.com/katyperry/status/2081032309508047136)최근 백악관이 틱톡에 이란 전쟁 영상을 올렸는데,케이트 페리(Kate Perry)의‘Firework'를 이 영상에 썼다.그리고 이 곡을 만든 케이트 페리가 이에 대해 화를 내는 글을 사회적 연결망에 올렸다.케이트 페리는 미국 출신 가수로 곡도 만들기도 하는 재능 있는 음악가이다. ‘Firework'는2010년 발매되어 그해12월 빌보드 차트1위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곡이다.케이트 페리 혼자 만든 곡은 아니고 이스터 딘(Ester Dean)미켈 에릭슨(Mikkel S. Eriksen)토르 에릭 허만슨(Tor Erik Hermansen (Stargate))샌디 비(Sandy Vee)와 함께 만든 곡이다.케이트 페리는 이 곡을 잭 케루악의‘길 위에서’라는 소설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미국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작가이고 유명한 소설이다.비트 세대(Beat Generation)라 불리는 세대를 대표하는 이야기이자,여행을 좋아하는 이에게 필독서 같은 책이다.원래 구절은...the only people for me are the mad ones, the ones who are mad to live, mad to talk, mad to be saved, desirous of everything at the same time, the ones who never yawn or say a commonplace thing, but burn, burn, burn like fabulous yellow roman candles exploding like spiders across the stars and in the middle you see the blue centerlight pop and everybody goes 'Awww!'&quot;출처: On The Road by Jack Kerouac이와 같지만,케이티 페리는 이를 불꽃으로 바꾸어 표현한 노래이다.비트 세대 자체가 전후에 생긴 세대로 인생의 무상함을 아는 세대일 수 있다.그러나 짧지만 밝게 빛나며 사는 이를 찬양한다.케이트 페리의‘불꽃’은 전쟁 때 터지는 폭약이 아니라,이름 없이 짧게 살다 가지만 나름 찬란하게 사는 개인이다.짧은 인생에서 인간은 남과 같은 인생에 지루해하며 살 수 있지만,하고 싶은 것을 위해 자신을 태우며 살수도 있다.어떤 것이든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하지만 대부분 사회에서 일반적인 규정에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며 사는 이는 용기가 필요하다.남과 달라질 용기를 가져야 자신을 태우며 찬란하게 살 수 있다.케이트 페리가 사회적 연결망에서 말했듯이‘Firework'는 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노래이다.전쟁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노래가 아니다.가끔 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작품의 원래 의미와 상관없이 유명세만 이용해서’팔이‘를 해서 원래 작품의 의미를 훼손하는 경우가 있다.이런 이들은 대개 작품을 읽고 공감하기보다 남이 요약한 내용을 풍월 정도로만 아는 이가 많다.그래서 더 쉽게 그 작품의 유명세를 팔아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한다.예술을 제대로 하는 이는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대개 오랫동안 고민하고 표현 방법에 대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자기의 생각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찾아 오랫동안 고민한다.누군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그 사람의 작품에서 이런 고민도 느끼기도 한다.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로 예전에 이런 우스개가 있었다.무소유를 실천하는 이름난 스님이 있었다.난을 좋아해서 집착하다가 그 집착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느낀 바가 있어’무소유‘라는 책까지 내셨다.한국에서 이 책은 인기가 많았다.그런데 어떤 정치인이 이 스님을 좋아한다고 난을 선물했다는 일화가 있다.난을 선물한 정치인은 아마도 풍월로 난을 좋아할 거라 선물했을 것이다.그러나 그 책을 끝까지 읽었다면 그 스님이 난을 더 이사 소유하지 않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예술가가 어렵게 만든 작품을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함부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정치인이든 광고든 원래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유명세만 가져다 써서 원래 작품의 취지가 퇴색하는 경우를 너무 자주 본다.예술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는 지도자 정치인이 많은 나라일수록 선진국인 것 같다.Kate Perry Firework]]></description>
			<pubDate>Mon, 03 Aug 2026 11:32:0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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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케이트 페리의 노래 'Firework'를 마음대로 쓴 미국 정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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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평화비전 국민대장정’ 발걸음 &lt;연속보도&gt; 3편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287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평화비전 국민대장정’ 발걸음 &amp;amp;lt;연속보도&amp;amp;gt; 3편폭염과 돌발사고 등도 꺾지 못한 평화 열망…대전 한밭 달궈‘적대종식 사슬 풀기’ 퍼포먼스로 강력한 평화의지 다지고 다져 ‘평화비전 한줄 쓰기’ 친필로 대장정 첫발 역사적 증거기록 남겨7월 25일 오후 대전 서구문화원 앞에서 국민대장정 1차 행동대원들이 ‘적대종식 사슬 풀기’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다(제공: 대전고 민주동문회).섭씨 30도를 웃도는 폭염과 예기치 못한 돌발사고 및 심각한 교통체증도 평화를 향한 대장정 1차 행동대원들의 뜨거운 열망을 꺾지 못했다. 지난 25일 오후, 대전 서구문화원에서 마당극 적벽대전을 관람한 평화비전 국민대장정 1차 행동 참가자(이하 행동대원)들은 하이라이트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가장 큰 문제는 행사 직전 주차장 자동개폐기가 고장 나는 돌발 사고였다. 플라스틱 사슬 소품 등 행사 자재 운반이 지연되는 차질이 발생했다. 일정이 지연되자 선약 등 불가피한 사유로 27명에 달했던 1차 행동대원들 일부가 하나씩 둘씩 자리를 떠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폭염 탓에 야외 예행연습마저 불가능한 최악의 조건이었다.하지만 끝까지 현장을 지킨 나머지 20명 이내의 1차 행동대원들의 의지는 더욱 불타올랐다. 대원들은 약 40~50미터에 달하는 대형 플라스틱 사슬을 몸에 감고 이를 풀어내는 ‘적대종식 사슬 풀기’ 퍼포먼스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 퍼포먼스가 개인의 자유와 염원을 속박하는 남북 분단과 대립, 국민 갈등 및 증오를 상징하는 사슬을 끊어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이어서 1차 행동대원들은 대형 천에 새겨진 발자국 옆에 각자의 성명과 평화 메시지를 친필로 작성하는 ‘평화비전 한줄 쓰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대장정의 첫발을 내딛겠다는 의지를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 앞으로 매월 1회 또는 격월 간격으로 전국적인 대장정을 멈춤 없이 이어가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7월 25일 오후 대전 서구문화원 앞에서 국민대장정 1차 행동대원들이 ‘평화비전 한줄 쓰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제공: 대전고 민주동문회).송운학 대전고 민주동문회 회장은 “비록 몸은 고되고 소품 운반도 늦어지는 등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지만, 사슬이 풀리는 순간 한반도의 꽁꽁 얼어붙은 적대 체제도 함께 풀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되풀이하다 보면, 보다 감동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여 지나가는 행인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서 함께 한반도 종전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국민비전 대장정 연속행동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면서 “평화비전 한줄 쓰기에서도 평소 품고 있던 생각을 문장이나 열쇄말로 표현하는 것이 다소 어려웠지만, 언제 어디서나 자신 있게 발표할 수 있는 소신으로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 대전에서 타오른 평화의 불꽃을 시작으로, 전국의 시·도별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평화와 상생의 가치를 전국 곳곳에 뿌리내리기 위한 국민 대장정을 멈춤 없이 전개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특히, 송운학 회장은 “개헌개혁행동마당과 친일청산국민운동, (가칭) 「보안사국가폭력역사관설립범국민추진준비위원회」 가입단체(80해직언론인협의회, 5·18서울기념사업회, 삼청교육대전국피해자연합회,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인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상규명위원회, 아람회 외) 등이 후원단체로 동참했다. 보안사국가폭력역사관을 설립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한 조직결성과 연대활동을 적극 지지한다.”면서 “이러한 연대활동이 없다면, 아마도 제2의 골령골 학살, 제2의 여순학살, 제2의 제주4.3학살이 되풀이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끝]]></description>
			<pubDate>Mon, 03 Aug 2026 11:24:0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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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평화비전 국민대장정’ 발걸음 &lt;연속보도&gt; 3편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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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평화비전 국민대장정’ 발걸음 &lt;연속보도&gt; 2편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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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평화비전 국민대장정’ 발걸음 &amp;amp;lt;연속보도&amp;amp;gt; 2편골령골에서 노근리로, 다시 퓨전융합예술 ‘적벽대전’ 속에 빠져- 미군학살 피난민 원혼 찾아 추념하며 자주와 평화, 인권과 연대 등 다짐!- 미디어 파사드 마당극으로 아픔과 연민 및 공감 함께 하며 재발방지 숙고!7월 25일 오후 제76주기 노근리사건희생자 합동 추모식 현장에 참석한 동북아 상생평화 비전 국민대장정 1차 행동대원들(제공: 대전고 민주동문회)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평화의 닻을 올린 대장정의 발걸음은 곧바로 충북 영동의 ‘노근리 기념관’으로 이어졌다. 노근리는 6·25 전쟁 당시 미군이 자행한 무차별 공중폭격과 박격포, 기관총 난사 등으로 피난민 등 약 3~400여 명이 무더기로 떼죽음을 당한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주말과 휴가철이 겹쳐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던 교통체증으로 예정보다 늦게 노근리 평화공원에 도착한 평화비전 국민대장정 1차 행동 참가자(이하 행동대원)들은 차마 눈을 감지 못했을 원혼들을 추념하는 묵념을 올렸다. 하지만, 빡빡하게 진행된 긴박한 일정과 시간제약 등으로 사건 경위 해설 특강 및 생존자 증언을 충분하게 청취하지 못했다. 송운학 ‘대전고 민주동문회’ 회장은 양해찬 ‘노근리 사건희생자유족회’ 회장과 정구도 ‘노근리 평화기념관’ 관장에게 감사와 사과의 뜻을 전하며, 추후 별도의 초청특강을 마련하거나 노근리를 다시 탐방하여 비극의 역사를 온전히 공유함은 물론 그 어떤 형태와 방식을 통해서라도 자주와 평화 그리고 인권과 연대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서둘러 문화예술을 통해 평화 공감대를 넓힐 수 있고, 인권인지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마당극 &amp;amp;lt;적벽대전(赤碧大田)&amp;amp;gt;이 공연되는 대전 서구문화원으로 이동했지만, 교통체증이 풀리지 않아 &amp;amp;lt;적벽대전&amp;amp;gt;을 처음부터 보지 못하고 중간부터 관람하게 되었다. 7월 25일 오후 노근리 평화기념관 영상실에서 사건경위해설과 생존증언을 청취한 동북아 상생평화 국민비전 대장정 선포 및 1차 행동대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제공: 대전고 민주동문회).&amp;amp;lt;적벽대전&amp;amp;gt;은 (사)마당극패 우금치(대표 김황식)가 2020년 ‘미디어 파사드’를 이용하여 제작했고, 그 해 10월 초연(初演)했던 마당극으로서 대전 산내 골령골의 참상을 감성에 녹여 평화와 인권이라는 분명한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큰 울림으로 전하는 예술적 완성도가 높고,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여기서 ‘미디어 파사드’란 미디어(Media)와 건물의 외벽을 뜻하는 파사드(Facade)를 합성한 용어로서 건물의 외벽에 다양한 콘텐츠 영상을 투사하는 등 디스플레이로 건물벽면 등을 사용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리하여 중간부터 관람했음에도 가슴을 울리는 입체적인 연출과 함께 가면을 쓰거나 옷은 물론 얼굴 등 노출부위에 적황색 황토를 바르고 혼신의 힘을 다한 무대 위 배우들의 열연 등 새로운 형태의 마당극 퓨전융합예술에 깊이 빠져 대원들은 거의 대부분 아픔과 연민 및 공감 등을 함께 했다.공연이 끝난 후 객석 곳곳에서 묵직한 감동의 한숨과 눈물이 터져 나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대규모 집단학살사건이 발생한 근본원인, 학살명령의 적법성과 정당성 여부, 재발방지 대책 등을 숙고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자리에는 김재현 ‘제주4.3평화재단’ 팀장 외 3인(총 4인) 등 주권자 5명이 새롭게 합류하는 등 다시 25명으로 늘어났던 대원들은 거의 대부분 “골령골의 동포 학살과 노근리의 미군 학살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깊은 상흔들”이라며 “두 현장을 잇는 발걸음 자체가 남북 적대의 사슬을 끊고 동북아 상생으로 나아가는 연대의 다리가 될 것이다. 특히, &amp;amp;lt;적벽대전&amp;amp;gt;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 전달을 넘어 온몸으로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만들었다.”고 극찬했다.문재환 ‘개혁연대민생행동’ 초대 공동대표는 “예술은 이념의 장벽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다. 적벽대전이 서울 등 수도권을 물론 전국 각지에서 공연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description>
			<pubDate>Mon, 03 Aug 2026 11:18:1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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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평화비전 국민대장정’ 발걸음 &lt;연속보도&gt; 2편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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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정부가 잘 생각해야 할 문제 -항공우주산업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268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사진 허예주 기자&amp;amp;lt;민주당 전당 대회 근처 한국항공우주산업 서명 받는 중&amp;amp;gt;창원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건물 근처에 한국항공우주산업((Korea Aerospace Industries)분이 서명을 받고 있었다.한국은 어디를 가나 억울한 사람이 서명을 받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지난 기사인5.18민주화운동 주남마을 경우처럼 보통 길거리에 나와 서명을 받는 경우는 정말 호소할 때가 없는 사람이 하는 경우가 많다.독재 시절이 끝난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도,한국은 약자가 억울함을 당하는 일이 많고 더 문제는 호소할 곳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한국항공우주산업분이 서명을 받는 이유는,현재 국영 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민영 기업이 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놓였있기 때문이었다.원래 대우중공업,삼성항공산업,현대우주항공 대기업에서 분산되어 있던 항공 관련 사업을 외환 위기 직후인1999년 어려움에 처한 기업을 구하고 미래를 위해 국가에서 하나로 합쳐 출발한 기업이다.서명을 받는 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1999년부터25년 넘게 노력해서 이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다.하지만 지금도 한국의 항공우주산업은 세계 유수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고 한다.그리고 세계에서 알아주는 항공우주산업은 대개 국영 기업이고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일단 기본 시설을 만들고 개발하는 데 천문학적 비용이 들기에 민간이 주도하기는 쉽지 않다.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이 장기간 이윤을 내지 않으면서 사업을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출처: MBC News 100억 예산 없어 미항공우주국 큐브 위성 사업 거절한 한국지난 윤석열 정부 때100억이 없어서 한국의 위성이 우주로 못 간 일이 생각났다.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아르테미스 계획의 일환으로 한국의 큐브위성을 달까지 보내주겠다고 제안했지만,제작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거절했다고 했다.출처:TV조선NEWS 112억 한강유선하지만 정부 단위에서100억은 큰돈이 아닐 수도 있다. 2010년 서울시는 약112억 원을 들여 서해 뱃길 사업 일환으로‘한강 아라호’라는 유람선을 건조한 적이 있다.그렇다면 서울시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 예산에서100억이란 예산을 내지 못할 이유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항공 우주산업이라고 해서 우주선이나 인공위성 사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닥터헬기도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한 사업이라고 한다. 2022년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자체 개발한 소형민수헬기(LCH)의 양산1호기가 제주도에서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고 한다.출처: MBC NEWS 닥터헬기2019년 아주대병원과 함께 국내 최초24시간 닥터헬기(H225)운영했으나 수익성 악화 등으로2021년 철수했다고 한다.그러나 이후 노력해서 자사가 제작한 소형민수헬기(LCH)양산1호기를 제주 닥터헬기로 납품·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민간 기업이었다면 수익성 악화로 철수로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하지만 국영 기업은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장기간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국가에 필요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닥터헬기든 인공위성이든 한국인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은 국영 기업이 더 잘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게다가 항공우주산업은 안보와 관련 있다.미국은 인공위성을 통해 미국에 반하는 일을 했다고 여기는 용의자의 집을 찾아내서 사진까지 찍을 수 있다.게다가 인공지능 기술과 합쳐진다면 어떤 기술 진보를 이뤄낼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왔다.만약에 민간 기업이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 놓인다면 한국인이 안심하고 일상을 지낼 수 있을지 의심이 간다.서명을 받기에 조금 이를 수도 있다고 서명받는 분들이 이야기한다.원래 설립 초창기에 인수를 희망하는 민간 기업이 수익성이 없다고 보고 주식 지분을 다 팔았다고 한다.그런데 올해 들어 갑자기 지분을 조금씩 늘리기 시작하더니 공정거래심의회가 심사해야 하는15퍼센트에 조금 못 미치는14.6퍼센트 지분을 현재 가지고 있다고 한다.이분들이 걱정하는 것은 대주주가 정부 기관인데,정부가 민영화를 생각한다면 가지고 있는 지분을 이 기업에 팔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또 민영화까지는 아니라도 대주주가 된다면 한국항공우주산업에 주주로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지점도 걱정이라고 했다.지나친 걱정일 수도 있고,여기서 그 기업이 더 이상 지분을 늘리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한다.그러나 한국 역사에서 기업에 특혜를 주는 경우를 너무 자주 봐서 그런지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도 긴장하게 됬다.우리의 세금으로 키워왔고,앞으로 미래에 중요한 사업 중 하나인 항공우주사업이 민영화된다는 것이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김대중 정부가 광통신망을 전국에 구축해서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디지털 산업이 조금 빨리 진행할 수 있었다.인공지능을 외치는 현재 정부가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랄 뿐이다.]]></description>
			<pubDate>Mon, 03 Aug 2026 11:09:4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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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정부가 잘 생각해야 할 문제 -항공우주산업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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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미군학살 피난민 원혼 찾아 추념하며 자주와 평화, 인권과 연대 등 다짐!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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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평화비전 국민대장정’ 발걸음 &amp;amp;lt;연속보도&amp;amp;gt; 2편 골령골에서 노근리로, 다시 퓨전융합예술 ‘적벽대전’ 속에 빠져- 미군학살 피난민 원혼 찾아 추념하며 자주와 평화, 인권과 연대 등 다짐!- 미디어 파사드 마당극으로 아픔과 연민 및 공감 함께 하며 재발방지 숙고!                              7월 25일 오후 제76주기 노근리사건희생자 합동 추모식 현장에 참석한 동북아 상생평화 비전 국민대장정 1차 행동대원들(제공: 대전고 민주동문회)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평화의 닻을 올린 대장정의 발걸음은 곧바로 충북 영동의 ‘노근리 기념관’으로 이어졌다. 노근리는 6·25 전쟁 당시 미군이 자행한 무차별 공중폭격과 박격포, 기관총 난사 등으로 피난민 등 약 3~400여 명이 무더기로 떼죽음을 당한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주말과 휴가철이 겹쳐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던 교통체증으로 예정보다 늦게 노근리 평화공원에 도착한 평화비전 국민대장정 1차 행동 참가자(이하 행동대원)들은 차마 눈을 감지 못했을 원혼들을 추념하는 묵념을 올렸다. 하지만, 빡빡하게 진행된 긴박한 일정과 시간제약 등으로 사건 경위 해설 특강 및 생존자 증언을 충분하게 청취하지 못했다. 송운학 ‘대전고 민주동문회’ 회장은 양해찬 ‘노근리 사건희생자유족회’ 회장과 정구도 ‘노근리 평화기념관’ 관장에게 감사와 사과의 뜻을 전하며, 추후 별도의 초청특강을 마련하거나 노근리를 다시 탐방하여 비극의 역사를 온전히 공유함은 물론 그 어떤 형태와 방식을 통해서라도 자주와 평화 그리고 인권과 연대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서둘러 문화예술을 통해 평화 공감대를 넓힐 수 있고, 인권인지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마당극 &amp;amp;lt;적벽대전(赤碧大田)&amp;amp;gt;이 공연되는 대전 서구문화원으로 이동했지만, 교통체증이 풀리지 않아 &amp;amp;lt;적벽대전&amp;amp;gt;을 처음부터 보지 못하고 중간부터 관람하게 되었다.                        7월 25일 오후 노근리 평화기념관 영상실에서 사건경위해설과 생존증언을 청취한 동북아 상생평화 국민비전 대장정 선포 및 1차 행동대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제공: 대전고 민주동문회).&amp;amp;lt;적벽대전&amp;amp;gt;은 (사)마당극패 우금치(대표 김황식)가 2020년 ‘미디어 파사드’를 이용하여 제작했고, 그 해 10월 초연(初演)했던 마당극으로서 대전 산내 골령골의 참상을 감성에 녹여 평화와 인권이라는 분명한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큰 울림으로 전하는 예술적 완성도가 높고,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여기서 ‘미디어 파사드’란 미디어(Media)와 건물의 외벽을 뜻하는 파사드(Facade)를 합성한 용어로서 건물의 외벽에 다양한 콘텐츠 영상을 투사하는 등 디스플레이로 건물벽면 등을 사용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리하여 중간부터 관람했음에도 가슴을 울리는 입체적인 연출과 함께 가면을 쓰거나 옷은 물론 얼굴 등 노출부위에 적황색 황토를 바르고 혼신의 힘을 다한 무대 위 배우들의 열연 등 새로운 형태의 마당극 퓨전융합예술에 깊이 빠져 대원들은 거의 대부분 아픔과 연민 및 공감 등을 함께 했다.공연이 끝난 후 객석 곳곳에서 묵직한 감동의 한숨과 눈물이 터져 나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대규모 집단학살사건이 발생한 근본원인, 학살명령의 적법성과 정당성 여부, 재발방지 대책 등을 숙고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자리에는 김재현 ‘제주4.3평화재단’ 팀장 외 3인(총 4인) 등 주권자 5명이 새롭게 합류하는 등 다시 25명으로 늘어났던 대원들은 거의 대부분 “골령골의 동포 학살과 노근리의 미군 학살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깊은 상흔들”이라며 “두 현장을 잇는 발걸음 자체가 남북 적대의 사슬을 끊고 동북아 상생으로 나아가는 연대의 다리가 될 것이다. 특히, &amp;amp;lt;적벽대전&amp;amp;gt;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 전달을 넘어 온몸으로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만들었다.”고 극찬했다.문재환 ‘개혁연대민생행동’ 초대 공동대표는 “예술은 이념의 장벽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다. 적벽대전이 서울 등 수도권을 물론 전국 각지에서 공연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description>
			<pubDate>Fri, 31 Jul 2026 21:43:3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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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군학살 피난민 원혼 찾아 추념하며 자주와 평화, 인권과 연대 등 다짐!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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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평화비전 국민대장정’ 발걸음 &lt;연속보도&gt;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236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평화비전 국민대장정’ 발걸음 &amp;amp;lt;연속보도&amp;amp;gt; 1편심규상 기자, “골령골이 전쟁비극 보여주는 최적의 평화 학습장”골령골 학살 특강에서 “피해가족들, 연좌제 등으로 오늘날까지 모진 고통”7월 25일 오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심규상 오마이뉴스 기자가 대규모 집단학살 사건경위를 해설하는 특강을 하고 있고, 우측 뒤에서 김한성 대전 촛불행동 대표가 관련 자료를 들고 있다(제공: 대전고 민주동문회).지난 7월 25일 오전 10시 30분 시작된 ‘평화비전 국민대장정’ 1차 행동에서 심규상 ‘오마이뉴스’ 기자는 ‘골령골 대규모 집단학살 사건경위 해설특강’을 맡아 “전쟁 초기 이승만 정부가 후퇴하면서 저지른 민간인 집단학살이 3차례나 발생했고, 각각 수일간 이어졌다”면서 “인민군 점령기는 물론 국토 수복기에도 또 다른 집단학살이 되풀이되면서 최소 1만여 명이 고귀한 목숨을 빼앗겼다”는 점을 강조했다.이어서 심 기자는 “피해 가족들은 오늘날까지도 연좌제 등으로 모진 고통과 온갖 불행에 시달리고 있다”며 피살의 아픔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특히, “전쟁이 발생하면 어떤 비극과 참상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가 바로 이곳 대전 골령골”이라면서 평화와 상생의 가치를 역설했다. 특히, 심 기자는 “좌우익이 각각 상대방을 학살했다는 점에서 바로 이곳이야말로 남북 종전평화와 동북아 상생평화비전 국민대장정을 선포하기 딱 좋은 최적지임은 물론 남북관계가 얼어붙고 국제 전쟁이 지속되는 불확실한 정세 속에서, 역설적으로 현 시기가 대중적 공감과 성원아래 상생평화를 열망하는 국민대장정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한반도 종전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최적기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대장정 1차 행동 참석자(이하 행동대원)들은 섭씨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도 심 기자의 설명을 경청하면서 “피살민간인 1만여 명의 원혼이 아직도 울부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곳이 &amp;amp;lt;남북적대종식·평화구축&amp;amp;gt;의 새 길을 선포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한다.”면서 역사의 아픔을 가슴에 새기며 대장정 의지를 다졌다. 7월 25일 오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18개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개최한 동북아 상생평화 국민비전 대장정 선포 및 1차 행동 개시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강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제공 : 대전고 민주동문회)이에 앞서 진행된 평화비전 국민대장정 선포 및 1차 행동 기자회견에서는 박종성 대전고 민주동문회 선임총무가 진행사회를 맡아 피살원혼을 추념하는 묵념을 엄숙하게 올린 뒤 안은찬 대전고 민주동문회 대전부회장이 경과보고로 이어졌다.약 35명에 달했던 동참자는 주관단체 ‘대전고 민주동문회’에서는 고문 황인기, 회장 송운학, 부회장 조성두(역사기억평화행동 상임대표, 흥사단 전 이사장), 서울부회장 정문호, 기획총무 신태호, 영상기록총무 안병권, 운영위원 김건호·김태원·최창남, 회원동문 우택종 등이었다.공동주최단체에서는 문재환과 이강빈 등 ‘개혁연대민생행동’ 초대공동대표와 임원, 구윤회와 박기섭 등 ‘공익감시 민권회의’ 임원, 김석용 ‘국민주권개헌행동’ 공동대표, 이해천 ‘대전충청 대학생진보연합’ 대표 외 대학생회원 5인(총 6인), 김한성 ‘대전 촛불행동’ 대표 외 회원 4인(총 5인), 임양길과 표옥란 등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 공동대표, 김선홍 ‘행·의정감시네트워크 중앙회’ 중앙회장 등이었다. 그밖에도 개인 주권자 자격으로 대전 거주 김상복, 이완규, 전재홍(화백), 정근일 등 4인, 서울 거주 박영미, 이현경 등 2인 등이 동참했다. 특히, 자원봉사자 1인이 동영상과 사진 촬영 재능을 무상으로 기부했다.]]></description>
			<pubDate>Fri, 31 Jul 2026 21:37:1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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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평화비전 국민대장정’ 발걸음 &lt;연속보도&gt;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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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이재명 정부 새로운 신용카드에 대한 생각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216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뉴스1 신파일러 신용카드이재명 정부가 수입이나 금융 거래 이력이 적어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웠던 청년 외국인 주부 대상으로 쉽게 카드를 발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정책을 펴겠다고 발표했다.발표되자마자 여러 의견이 나오는데,필자는 외환 위기가 떠올라 일단 걱정이 앞섰다.외환 위기 이후 신용카드 발급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무분별하게 카드 발급을 남발하면서 금융위기가 왔다.신용카드는 말 그대로‘신용’을 바탕으로 발급되는 카드이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용이란 내가 돈을 빌려 갔을 때 갚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그래서 은행은 잘 갚는 사람에게 낮은 이자로 빌려 주고,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면 아예 대출을 하지 않기도 한다.애덤 스미스의‘국부론’에 대출에 대해 두 가지 경우를 설명하고 있다.어떤 이는 대출한 후 투자해서 이윤을 만든다.대출과 대출에 대한 이자뿐 아니라 본인도 어느 정도 수익을 창출하는 긍정적인 상황이다.이런 사람에게 대출하는 것은 은행이나 빌려준 주체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그리고 다음은 이윤을 창출하지 못한 채 개인의 소비에 대출이 쓰이는 경우다.이 경우 개인은 빚을 갚기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 있고,은행이나 돈을 빌려준 주체는 원금도 회수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본다.미국은‘포드 자동차’가 신용카드나 할부 구매 체제에 대한 개념을 만들었다고 본다.청교도 사상에 바탕을 둔 미국인들은 원래 소득 안에서 소비하는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그런 소비에서 노동자의 몇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자동차와 같은 물건은 사기 어려웠다.그러자 포드는 경제 호황기 꿈과 함께 할부해서 비싼 물건을 소유할 수 있다는 개념을 미국인에게 심어주었다고 한다.문제는 대공황이 오면서 미래에 갚아야 할 할부금을 갚을 자금이 없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닥쳤다.거품 경제라 불리는 활발했던 소비와 사치스러웠던 삶은 이제 빚이 되어 많은 가정이 무너졌다.이 뉴스를 보면서 필자의 소비 습관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살고 있지만 자본주의를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은‘국부론’이나 다른 자본주의 관련 책 기록 영화 뉴스 등을 접하며 하고 있다.그러면서 한편으로 우리는 왜 이런 자본주의 구조나 자본주의 핵심인 자본의 운용 방식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는지 또 생각한다.자본주의 경제체제는‘자본’이 돌면서 이윤을 생산하는 체제이다.이 과정에서 유산자 계급(bourgeoisie)나 무산자 계급(proletarian)이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이다.물려받은 유산으로 여유 자금을 가진 사람은 무산자 계급과 달리 여유 자금을 만들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식민지가 정복이 활발하던 제국주의 시대에 이런 유산자계급은 무역을 통해 어마한 부를 쌓을 수 있었다.미국은 식민지로 시작했으나 무한한 가능성 덕에 노동자도 여유 자금을 가질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었다.이런 이유로 한 때 미국이 꿈의 나라였기도 했다. ‘American Dream'을 꿈꾸며 다양한 나라에서 많은 이민자가 미국으로 갔다.미국은 신용카드가 아닌 수표가 거래되는 자신의 자산 안에서 소비하는 문화가 아직 남아 있다.한국은 저축하던 문화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신용카드가 남발되어서 여러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신용카드는 미래의 돈을 빌려와 쓰는 구조이다.다음 달 월급이나 수입으로 갚을 것을 예상해서 내가 미리 한 달 전에 돈을 쓰고 있다.외환 위기 직후 문제는 이렇게 갚을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 사람에게 신용 카드를 남발한 것이다.정부는’Thin Filer'라는 영어를 쓰며 기록이 적은 이를 위한 신용카드 체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실제로는‘Thin File Borrower'라는 말이 더 널리 쓰인다.어차피 대출을 위하였을 때 쓰이는 용어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굳이 정부가 나서서 신용카드 발급을 풀어줄 필요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신용불량자는 결국 세금으로 도와줄 수밖에 없다.정말 가족 부양이든 생활비조차 없는 어려운 사람은 국가 복지 정책 영역에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쓸데없는 다문화라든지 외국인 지원 이전에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한국인부터 적극 행정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악덕 채무업자에게 시달리는 이들을 도와준 사례는 매우 인상 깊었다. 1금융권이나2금융권에서 빌릴 수 없는 어려운 이들이 결국 높은 이자를 무는 곳에서 빌려서 원금보다 이자가 높은 상황이 된 것은 지나친 것 같다.그리고 이재명 대통령 설명대로라면 많은 세금을 들이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회수할 수 없어서 대부업체 등에 원금의1~10%로 넘겨져 가혹한 불법 추심을 유발하던 장기 연체 채권을 시민 성금과 기부금으로 매입하여 파기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고 한다.채무자가 어차피 갚지 못할 것을 알고 원래 대출했던 사람이 싸게 넘겨서 돌아다니던 장기 연체된 채권을 지자체가 기금을 마련해서 해결한 것이다.그러나 필자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 전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외환 위기에서 금융위기로 가는 시기,신용카드 남발로 가계나 개인 빚이 심각한 문제가 된 것을 이미 겪었다.그런데 굳이 신용카드 발급을 늘리기 위한 정책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현재 이재명 정부에서 필자의 삶은 더 여유로워지지 않았다.이재명 대통령이2026년1분기 국내총생산(GDP)가 최고치라고 하지만,월급이 더 오른 것도 아니고 뭐가 나아진 게 없다.주식 시장 팽창으로 자본이 많이 풀리면서(inflation)물가가 상승해서 오히려 일상생활이 더 어려워졌다.국내총생산은1인당 평균을 내서 계산한 것으로, 1인당39,164달러라고 하면 약5천5백만원 정도이다. 1인당이기에4인 가족이면 여기서4배를 해야 한다.지금 가계에 이 정도 소득을 벌고 있다면 평균에 해당하는 것이다.이보다 못하면 가계 소비에서 조금 아껴가며 살고 있을 것이다.출처: 참여와 혁신 소득 5분위배율(https://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496)국내총생산의 허상으로 국민에게 헛된 꿈을 갖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서민이라면 지니 계수나 순지니 계수 소득5분위배율 지수가 더 와닿을 수 있다.국내에 도는 자본이 많을 때 내게 도움이 되려면 정부의 정책이 중요하다.정부는 자본주의가 아닌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다.민주주의 정부가 자본주의에 영향을 덜 받을수록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재산 정도와 관계없이 모두가 한 표를 가지고 모두의 목소리가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이다.현재 신용카드 발급에 해당하지 않는 자에게 굳이 카드 발급 정책을 만들어서 미래 세대에 문제를 던져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ebs 자본주의 원리를 잘 설명하는 영상]]></description>
			<pubDate>Fri, 31 Jul 2026 21:37:1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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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재명 정부 새로운 신용카드에 대한 생각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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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미국 우한 바이러스 관련 국회 청문회와 평택 백린 유출 사건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203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PBS NEWS 파우치 박사 청문회미국 국회는2026년7월29일 코로나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랜드 폴(Rand Paul)상원의원이 의장이 되어 국가 안전과 정부 일 위원회( Homeland Security and Governmental Affairs Committee)에서 전 알레르기와 전염병 위원회장(director of the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s)인 증인 파우치 박사(Anthony Fauci)를 불러 코로나 관련해서 미국이 개입했는지를 확인했다.청문회를 생방송으로 보며 느낀 것은 미국은 자국민의 안전과 신뢰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사실을 숨기면 신뢰가 무너진다는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중요한 이야기가 반복되었다.그리고 이런 기본적 사실을 지키지 않은 파우치 박사를 비롯한 관계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랜드 폴 상원의원은 강조한다.우한 바이러스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기존 바이러스와 달라서 많은 설이 있었다.일부러 변형시켜서 만든 바이러스가 아닌지,연구실에서 생화학 실험을 하다가 유출되었다든지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출처: Unit 731 and the Japanese Imperial Army’s Biological Warfare Program by Tsuneishi Keiichi(https://apjjf.org/tsuneishi-keiichi/2194/article)1차 세계대전 당시 생화학무기로 다수의 안타까운 목숨을 잃으면서, 1925년 제네바 의정서가 맺어졌다.질식성·독성 가스 및 세균학적 전쟁 수단의 전시 사용을 금지하는 생화학전 금지 조약이었다.그러나 일제는 이런 제네바 의정서 이후 은밀히 흔히 마루타라 불리는731부대를 이시이 시로 지휘 아래 하얼빈 외곽에 만들었다. 731부대에 이어서 북경,싱가포르 등 곳곳에 생화학무기를 연구하고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출처: Unit 731 and the Japanese Imperial Army’s Biological Warfare Program by Tsuneishi Keiichi그 와중에 일제는 중국의 도시에 일부러 균을 가진 벼룩을 공중에서 살포해서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실험하기도 했다.벼룩에 균이 오래 살아 있도록 변형했고,원래 전염병과 다른 형태의 전염병이 돌아서 많은 중국인 희생자가 나왔다고 한다.이런 과거 역사를 보면 우한 바이러스가 기존 바이러스와 달랐다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누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기존 바이러스보다 강한 바이러스를 만들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변형이 일어났을 것이다.출처: 워싱턴 포스터 - 니담 보고서 기사 (https://www.washingtonpost.com/outlook/2022/03/29/russia-china-have-history-bogus-claims-about-us-biological-warfare/)731부대를 비롯한 일제의 생화학 연구 자료를 미군은 넘겨 받았고,이시이 시로를 비롯한731부대 연구원들은 사면과 함께 미국 포트 데트릭으로 가 이어서 연구했다.그러니 미국이 생화학 무기 자료가 방대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공교롭게 한국은 바로 하루 전2026년7월28일 오후5시37분부터K-55미군기지 내 백린 누출로 인한 주민 대피명령이 내려졌다.같은 날6시13분 해제되어서 다행이기도 하지만,놀란 가슴은 아직 진정되지 않는다.출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무연구위원 이종철의 군 훈련장에서의 백린의 지속성 및 환경 위해백린은‘白燐’하얀 인으로 인의 동소체로 연막,예광탄,조명탄,특히 소이탄의 원료로 쓰인다.독성이 강해서 백린을 사용하는 사격장 주변 동물이 폐사한 보고서가 여럿 있다.군부대가 사용한 땅은 사용 후 철저한 토양 수질 조사가 필요한데,백린뿐 아니라 여러 화학물질의 사용되기 때문이다.731부대를 이끌었던 이시이 시로든 우한 연구소 관련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앤터니 파우치든 둘 다 의학을 전공한 박사라는 게 필자는 제일 신경이 쓰였다.아픈 사람을 낫게 하거나 사람을 덜 아프게 도와야 할 의학 전문가가 사람을 죽이는 일에 관여했다는 거 자체가 뭔가 인간 사회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배워서 남주냐’는 말로 자식을 공부시키는 부모가 있다.하지만 인간 문명 사회가 발전해 온 것은‘배워서 남주기’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구두로 선대의 삶을 후대가 배울 수 있었다.구술로 전술해 온 그리스 신화와 같은 많은 문학이 현대까지 서구뿐 아니라 전 세계 정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그리고 뛰어나거나 부지런한 과학자든 연구가가 남긴 업적 덕분에 후대는 그 연구 결과나 지식을 바탕으로 더 나은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특히 핵무기 발명으로 인간 이성과 문명의 긍정적 발전에 의문이 제기되었다.뛰어난 지식과 기술이 인류 문명을 쓰인 게 아니라 인간을 죽이는 데 사용된 것에 많은 생각 있는 이가 국경을 넘어서 분노했다.그리고 제네바 협약을 비롯해 국가 간 약속을 통해 다시는 그런 악몽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했다.그리고 국제연맹(United Nation)이라는 초국가간 단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전쟁 뒤에도 잘 나갔던 731 부대 의사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31516303486094미군이 모셔간 731 부대 의사https://v.daum.net/v/FGuf8NqyBK일제로부터 배운 세균전을 6.25 사변에 사용한 미군주한 미군 부대 생화학 실]]></description>
			<pubDate>Fri, 31 Jul 2026 21:37:1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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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국 우한 바이러스 관련 국회 청문회와 평택 백린 유출 사건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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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역사/도산 안창호 / 이승만 호칭 문제 ]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200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역사/도산 안창호 / 이승만 호칭 문제 ]안창호는 왜 이승만에게 &quot;대통령 행세를 하지 말라&quot;고 했나…1919년 임시정부 직제 논란 재조명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초기, 도산 안창호가 이승만에게 &quot;대통령 행세를 하지 말라&quot;는 취지의 전문을 보낸 사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는 개인 간 갈등이 아니라 통합 임시정부의 법적 직제와 정부 형태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평가된다.[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1919년 3·1운동 이후 상하이와 한성, 연해주 등지에서는 각각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이후 하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하는 과정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 조직과 직함, 헌법 체계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다.당시 안창호는 국무총리 대리 자격으로 1919년 8월 25일 이승만에게 전문을 보내 &quot;대통령 행세를 해서는 안 된다&quot;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통합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 법률상 대통령 직제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임시정부의 공식 직제와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일부 사료에는 안공근이 보낸 전보 등에서 이승만이 집정관총재를 영어로 '프레지던트(President)'라고 사용한 것을 비판하는 내용도 전해진다. 역사학계는 이러한 기록이 당시 정부 형태와 직제 명칭을 둘러싼 혼선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한다.이승만은 해외 외교 활동 과정에서 영어권 국가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President'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안창호 등 임시정부 지도부는 공식 헌법과 직제에 근거하지 않은 직함 사용은 통합 과정에 혼선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해석이 제시된다.이후 1919년 9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개정되면서 대통령 중심 체제가 채택됐고, 이승만은 공식적으로 임시정부 대통령에 선출됐다. 따라서 안창호의 전문이 발송된 시점과 대통령 직제가 헌법상 확정된 시점 사이에는 시간적 차이가 존재한다.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후에도 조직 개편과 헌법 개정을 거듭했다. 1925년 임시의정원은 이승만을 탄핵·면직하기로 의결했고, 이후 박은식이 후임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어 임시정부는 국무령 중심 체제로 운영 방식이 변경됐다.역사학계는 당시 논란을 독립운동 세력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만 해석하기보다, 여러 임시정부를 하나의 국가 체제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제도적·헌법적 논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당시 상황을 평가할 때에는 임시의정원 회의록,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문서, 관련 전문과 전보 등 1차 사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근거 및 1차 자료】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회의록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문서안창호·안공근 관련 전문 및 전보독립기념관 및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사료국내 근현대사 연구 논문이 기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담당 기자가 사실확인 및 최종 기사심의를 거쳐 발행했습니다.#안창호 #이승만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 #근현대사]]></description>
			<pubDate>Thu, 30 Jul 2026 18:33:3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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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반도 적대종식이 동북아상생과 세계평화의 시발점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200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오늘 우리는 “동북아 상생평화 국민비전 대장정의 힘찬 발걸음으로 남북적대의 장벽을 허물어 내자!”고 호소하고자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가장 깊은 상흔이 새겨진 대전 산내 골령골과 충북 영동 노근리 땅을 밟고자 합니다. 아픈 역사의 현장에서 각각 관련 분야 최고전문가가 전하는 해설 특강 등을 경청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 마당극 &amp;amp;lt;적벽대전&amp;amp;gt;을 함께 관람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자 합니다. 경악과 슬픔을 넘어 간절한 평화의 염원을 담아, 오늘 우리는 “한반도 적대종식이 동북아상생과 세계평화의 시발점!”이라는 &amp;amp;lt;국민비전 대장정&amp;amp;gt;을 선포하며,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뚜벅뚜벅 첫걸음을 힘차게 내딛고자 합니다.장장 7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남북 적대와 이념 갈등의 총성 속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숨져갔습니다. 한반도 곳곳에서 그 원혼들의 통곡 소리가 여전히 우리 산천을 울리고 있습니다. 골령골에서 노근리까지, 한반도 곳곳에서 이 땅의 모든 원혼들이 우리에게 ‘이제 잔혹한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나 상생과 평화의 시대로 나가라’고 무겁지만, 따뜻하게 당부하는 나지막한 양심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까?한반도를 에워싼 긴장이 고조되고 대결의 정치가 민생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국민비전 대장정에 나선 우리는 이 퇴행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 한반도의 적대 종식은 남북의 대결을 끝내는 것을 넘어, 동북아시아에 상생의 질서를 세우는 주춧돌이며, 세계 평화를 일구어내는 작지만, 위대한 거보(巨步)가 될 것입니다.정치와 외교가 길을 잃었다면 주권자인 국민이 또는 시민사회가 직접 길을 열어야 합니다. 역사적 아픔을 품고 있는 대전 민주시민과 함께 우리는 오늘 평화의 비전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걸음을 힘차게 내딛고자 합니다. 이념의 장벽을 넘어 적대의 사슬을 끊고, 온 국민의 마음을 모아 깨어있는 주권자와 함께 평화의 미래를 설계할 것입니다.이에 우리는 골령골과 노근리의 원혼들 앞에서, 그리고 평화를 갈망하는 모든 주권자와 시민 앞에 고개 숙여 아래와 같이 선언하고 다짐하며 약속합니다.하나, 우리는 76년간 지속된 남북 적대 체제를 끝내고 한반도 종전 평화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따뜻하게 연대한다!하나, 우리는 한반도 적대 종식이 동북아 상생과 세계 평화의 시발점임을 믿으며, 이를 위한 ‘국민 평화 비전’을 전국의 시민들과 함께 차근차근 완성해 나간다!하나, 우리는 오늘 대전에서의 첫걸음을 시작으로, 평화와 상생의 가치를 전국 곳곳에 뿌리내리기 위한 국민 대장정을 멈춤 없이 이어간다!하나, 우리는 지난 6월 25일 27개 시민단체가 발표한 &amp;amp;lt;한반도 자주평화 관련 시민사회 공동입장과 3대 특별제안&amp;amp;gt;을 적극 지지하며 마음을 하나로 모아내는데 앞장선다. 하나, 정부 역시 역사현장에서 맴돌고 있는 피살원혼의 울부짖는 목소리와 한반도 종전평화를 열망하는 시민사회의 준엄한 요구를 귀담아듣고 평화의 길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역사는 기억하는 자들의 것이며, 평화는 행동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원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미래 세대에게 평화로운 한반도와 동북아 상생 및 인류공영의 지구 생태계를 물려주기 위한 이 길에, 뜻을 같이하는 모든 단체와 시민 여러분의 따뜻한 동참을 호소합니다.2026년 7월 25일“한반도 적대종식이 동북아상생과 세계평화의 시발점!”국민비전 대장정 선포 주최단체 및 동참 주권자 일동o 주최 : 개혁연대민생행동, 공익감시 민권회의, 국민주권개헌행동, 대전고 민주동문회(주관),대전 촛불행동, 대전충청 대학생 진보연합,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 행·의정감시네트워크중앙회 외o 후원 : 개헌개혁행동마당, 친일청산국민운동, (가칭) 「보안사국가폭력역사관설립범국민추진준비위원회」 (80해직언론인협의회, 5·18서울기념사업회, 삼청교육대전국피해자연합회,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인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상규명위원회, 아람회 외) 및 문덕희(민청학련동지회 이사) 등 주권자.]]></description>
			<pubDate>Thu, 30 Jul 2026 18:09: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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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반도 적대종식이 동북아상생과 세계평화의 시발점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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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이태성 전 미추홀구의원 후보, 남영희 민주당 지역위원장 명예훼손 고소…경찰 수사 본격화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198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사회/법조/남영희 /이태성] 이태성 전 미추홀구의원 후보, 남영희 민주당 지역위원장 명예훼손 고소…경찰 수사 본격화당내 경선을 둘러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을 놓고 더불어민주당 인천 미추홀구 정치권에서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태성 전 미추홀구의원 후보가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동구·미추홀구을 지역위원장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가운데 경찰이 고소인 조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인천 미추홀경찰서는 이태성 전 미추홀구의원 후보가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동구·미추홀구을 지역위원장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과 관련해 최근 고소인 조사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이 전 후보는 고소장을 통해 남 위원장이 지난 4월 당내 경선을 앞두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quot;이 후보가 상대 후보를 선거법 위반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했다&quot;는 취지의 게시글을 올렸다고 주장했다.이 전 후보는 실제로 상대 후보를 고소하거나 고발한 사실이 없는데도 해당 게시글이 게시되면서 지역사회와 당원들 사이에서 사실과 다른 인식이 확산됐고, 이로 인해 명예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 선거 과정에서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아울러 이 전 후보는 형사 고소와 별도로 남 위원장을 상대로 2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도 제기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경찰은 고소인 조사에 이어 피고소인 조사 등 필요한 절차를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방선거 관련 사건의 경위와 제출된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수사를 마무리하고 검찰 송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피고소인 측의 입장과 사실관계는 향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추가로 확인될 예정이며, 최종적인 법적 판단은 수사 및 사법 절차를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근거 및 1차 자료】- 인천 미추홀경찰서 사건 접수 및 수사 진행 내용- 고소장 및 민사소송 제기 내용- 당사자 측 설명이 기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담당 기자가 사실확인 및 최종 기사심의를 거쳐 발행했습니다.]]></description>
			<pubDate>Thu, 30 Jul 2026 17:18:1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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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음악가 - 김일구 명창과 이태백 명고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151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세계유산위원회 개최 특별공연 덕에 알게 된 문화유산 이수자 또는 한국 전통을 지키는 예술가에 대해 써 보려 한다.먼저 공연을 연 김일구 명창부터 간단히 소개해 본다.오정해 사회자가 말했듯이 김일구 명창은1940년에 태어나셨다.그러나2026년 공연에서 나이를 전혀 가늠하지 못하게 힘차게‘적벽가’한 대목을 부르셨다.오랜 연습과 꾸준한 관리의 결과일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출처: 판소리 박동진 명창의 적벽가박동진 명창이 생각났다.우연히 영상이 유튜브에 있어서 봤는데, 75세 나이에 적벽가를 부르셨다.재담이며 부르는 힘이 나이를 알지 못하게 했다.정말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늘 자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김일구 명창은 공대일 명창에게 판소리를 사사하였다.공대일 명창은1911년생이고‘병신춤’으로 유명한 공옥진 선생님의 아버지라고 한다.김일구 명창이 공연에서‘적벽가’중‘동남풍에게 비는 고사’를 불렀는데,김일구 명창이 부르는 적벽가는‘박봉술제 적벽가’를 이은 것이라고 한다.박봉술 명창은1922년생이고 해방 이후 판소리「적벽가」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라고 한다.출처: 국악방송 TV 김일구 아쟁산조 풍림화산김일구 명창은 스승 장월중선에게 배운 가락을 바탕으로,자신만의 새로운 가락을 더해 확장·재창작한 대표적인 아쟁산조 유파를 만들었다.이를 김일구류 아쟁산조라고 부른다고 한다.김일구 명창이 아쟁산조를 배운 장월중선도 대단한 국악인이다.장월중선(1925~1998)은 판소리부터 재주가 많았던 분으로,창극 반주 시기 아쟁의 음악적 표현의 한계를 느끼고 직접 가락을 고안해 아쟁산조를 창시해서 제자 김일구 명창에게 전수했다고 한다.김일구 명창의 부인도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완창한 소리꾼이라고 한다.김영자 명창으로1985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 부문에서 장원으로 대통령상을 받으며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판소리 다섯 바탕은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를 말한다.이 중 적벽가는 삼국지연의 중 적벽대전이라는 서사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적벽가는 웅장하고 어렵기로 이름이 높다고 한다.출처: KBS방송 이태백류 아쟁 산조김일구 명창과 호흡을 맞춘 고수 이태백도 대단한 분이다.전남 진도 출신으로 명인 이병귀와 명창 이임례 사이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예술과 익숙한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1994년 전주대사습놀이 기악부(아쟁)장원을 차지,젊은 나이에 이미 최고의 반열에 오른 명인이다.국내 첫 아쟁 전공자이자 최초의 아쟁 박사1호인 남도 음악의 명장이며,박종선류 아쟁산조를 계승하고 자신만의 색을 담은'이태백류 아쟁산조'를 정립했다고 한다.그리고2001년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을 수상한 대한민국 대표 명고수이기도 하다.이병귀(본명 이병기)명인은 아쟁 명인이자 진도 출신 국악인이고,어머니 이임례는 강산제 심청가 예능보유자이자1993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부 명창부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한다.출처: BBBCorporation 휘모리 영화 예고편 이일목 감독은 이임례 국악인의 사연을 듣고 영화 ‘휘모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 이병기 역할을 맡을 배우를 찾지 못해 결국 아들인 이태백 명창이 영화에서 아버지 역할로 출연을 했다고 한다.참고로 전주대사습(全州大私習)놀이는 조선 시대 활쏘기와 같은 무예 겨루기에서부터 민속까지 아우르던 대회였다.일제강점기 사라졌다가1974년 전주에서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전주대사습놀이 복원을 추진하였고1975년부터5개 부문인 판소리,농악,무용,시조,궁도로 국악 경연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세계유산위원회 개최 특별공연 덕에 대단한 명창과 명고를 알게 되어서 찾아보니 알수록 대단한 분 같다.그리고 필자가 모르는 국악인이 너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서양 음악의 안단테 포르테는 알면서 한국의 진양조 자진모리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반성한다.역사가 기억하는 자의 것인 것처럼,문화도 같이 누리는 사람이 없으면 사라진다.우리 음악을 조금 더 많이 듣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사를 마무리한다.우리 국악을 잘 설명하는 유튜브출처:얼씨구TV 아쟁명인 이기]]></description>
			<pubDate>Thu, 30 Jul 2026 15:35:4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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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음악가 - 김일구 명창과 이태백 명고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youtube.com/watch?v=xi4KRAK8YKU</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151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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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세계유산위원회를 맞아 열린 한국 문화유산 공연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120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공연 안내지난 기사에 이어서 세계유산위원회로 열린 공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일요일 저녁7시에 공연이 시작한다고 여러 번 카톡과 문자가 왔다.지정석은 아니고2시간 전에 도착해서 정보 무늬(QR code)로 확인해서 입장한다고 했다.당일 문자는6시부터 맞이방(lobby)출입문이 열린다고 했다. 6시가 조금 안 된 시각 도착하니 주 출입구에 이미 사람이 꽤 서 있었다. 6시부터 입장은 되었지만,공연장 복도에서 입장까지 한 시간을 줄 서 있어야 했다.만약 관람객을 배려했다면 입장하고 이동통신으로 좌석 배정 문자를 보내지 않았을지 생각이 들었다.무료 관람이지만,사실 정확히 말하면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세금을 내는 시민이나 국민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이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움직이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6시50분쯤부터 입장이 시작되었다.중앙 앞줄부터 앉아달라고 입장을 안내하는 직원이 말했다.자리에 앉으려고 들어가니 다들 좋은 자리 앉으려 부산하게 움직였다.일찍 도착한 덕분에 무대에서 멀지 않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앞뒤 옆이 다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가 앉았는데,예전 부산 국립국악원 공연 악몽이 떠올라 조금 긴장했다. 15세 이상 관람 공연에 어린 아이들이 공연을 보는데,그야말로 놀이터인지 뭐인지 알수 없는 상황이라서 공연에 집중하기 힘들었다.다행히 뒤에 발로 좌석을 차는 아이와,옆에 계속 부모와 이야기하는 아이가 있었지만,그 인원이 다수가 아니라 공연 방해까지는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그리고 시작 전에 이동 전화(휴대 전화)를 진동으로 해 달라고 했지만,공연 중 멀리서 카톡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다행히 얼마 후에 조용해져서 임윤찬 공연 사태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공연 시작은7시였지만7시 반이 되어서야 공연이 시작했다.그 와중 앞에 있는 직원도 자기들끼리 시간을 보낸다고 바빴다.공연이 늦어진다는 안내는 전혀 없이 그냥 계속 관객을 기다리게 했다.처음 영국 여행을 가서 뮤지컬을 봤을 때 문화 충격을 겪었다.예매했더라도 공연15분 전까지 입장해야 한다.공연15분 전부터는 현장에서 남은 표를 기다리는 사람을 입장시킨다.그래서 정시가 되면 출입이 되지 않는 가운데 공연이 시작한다.한국은 공연이 시작해도 사람을 입장시켜서 무대는 공연하는데 객석은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어수선하다.공연 시작 전 정숙을 위한 안내도 어수선한 가운데 제대로 안내가 되지 않은 채 지나갔다.그래도 다행인 건 이런 행사에서 제일 싫은 내빈 소개가 없었다는 것이었다.한국은 국가 행사라 특별한 경우에 하는 공연이 있으면 주야장천 내빈 소개를 한다.내빈 소개하는 동안 진이 빠져서 공연 보는 내내 피곤하게 만드는 악습이 있다.그래도 최근 공연은 이런 악습을 자제하려 해서 좋다.문화유산 이수자 공연은 다 뛰어났다.우리 문화유산을 경험하기 좋은 공연으로 가득했다.김일구 명창의 적벽가 중‘동남풍을 일으키는 고사’로 공연은 시작했다.종묘제례악을 비롯한 궁중 음악이 이어졌다.중간중간 북청사자가 흥을 돋웠다.부산을 대표하는 전통 춤인 동래 학춤 공연도 있었다.줄타기 명인 권원태 선생님은 전통 줄타기를 제자 유진호와 쌍줄타기로 보여주었다. ‘우리소리 바라지’는 진도와 경기도 굿을 재해석한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마지막 장식은 구미 무을농악으로 신나게 끝났다.그런데 왜 뽕짝이라 부르는 일본식 노래‘봄날은 간다’가 중간에 나왔는지는 모르겠다.독재 시절 전통 음악은 무속이라 싸잡아서 해방 후 살아남았던 전통 음악의 맥이 끊기게 했다.그리고 그 자리를 일본 음악 트로트,속어로‘뽕짝’이 차지했다.해방 후 후손들은 일제강점기 우리 음악을 지키려는 노력을 모른다.공연 중 하나였던 종묘제례악도 일제강점기 탄압 속에서 뜻을 가진 음악인의 노력으로 살아남은 것이다.한국 문화유산 공연에서 굳이 일본식 음악을 집어넣은 이유를 모르겠다.지난 기사에서 언급했지만,한국은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청’으로까지 국가유산청을 승격시켰다.외세와 독재 속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문화유산을 지키기도 바쁜데,그것을 지켜야 할 국가 기관이 일본 음악을,문화유산을 기리는 공연에 넣도록 했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문화유산을 세금을 받아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좀 더 일을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문화유산과 관련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국가유산청을 탓하게 된다.근래에는 부산 천마산 전망대 및 단궤 철도(monorail)공사 현장 인근에서6세기 삼국시대 신라의 성곽과 유물이 발견되었으나 단궤 철도 노선 변경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는 사실을 최근 알았다.더 멀리는 춘천 중도 유적지에 레고 랜드를 세우는데 국가유산청이 적극적으로 유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이런 기사를 접해서인지 일본 음악에 대해서 너무 무심히 대하지 않는지 국가유산청을 또 탓하게 된다.겨우 한 곡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많은 문화유산 이수자나 전공자는 공연할 기회가 아주 부족하다.뛰어난 실력자라도 무명 기간이 길다.대중과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가유산청이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독재와 한국 전통 문화 탄압https://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13118.html레고랜드와 유적지방치된 문화재시멘트로 복원한 문화재]]></description>
			<pubDate>Tue, 28 Jul 2026 13:11:1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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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계유산위원회를 맞아 열린 한국 문화유산 공연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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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세계유산위원회를 맞아 열린 한국 문화유산 행사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104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전시 중 동학 농민군의 한글 편지지극히 개인적인 세계 문화 유산 전시·공연 관람기해외 국가를 다니며 각 나라에서 전시 축제 공연을 즐겼던 경험이 늘어날수록 한국에서 예술 문화 체험에 대한 의욕이 줄어들었다.특히 지방은 서울에 비해 전시 공연 수도 부족하고 질도 다소 차이가 난다.제2도시라 불리는 부산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그래도 국제 교육 과학 문화 위원회(UNESCO)세계유산위원회를 계기로 한국 문화유산을 모은 전시와 공연이라 기대가 컸다.기대가 컸던 것이 문제였던지,부산전시회의장(BEXCO)에서 열린 전시부터 공연까지 조금 만족스럽지 못했다.국제 교육 과학 문화위원회에서 지정한 국내 세계 문화유산을 방문해서 도장을 찍는 수첩(Stamp Book)을 이번 회의를 맞아 특별 여권 도장 수업을 만들었다.몇 개 이상의 도장을 찍으면 주는 선물을 전시에 가면 받을 수 있다 해서 첫날 방문을 했다.열자마자 가지 않고 조금 여유롭게 오전10시 반쯤 도착했는데,이미 선물이 동이 났다.방문자 유산 여권에는 수량이 한정되어 소진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하지만, 10시에 시작한 전시에서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소진됐다니 조금 놀랐다.나중에 알고 보니1일400개 선물 수량이 행사 주최자가 정한 숫자였다.총13만 부가 배포되었다고 한다.세계유산위원회는7월20일부터29일까지 열리니10일이다. 1일400개 면 열흘 행사에서4,000개 정도이다.이는 전체 여권 배포 수에서3프로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사정이 이렇다 보니,사회적 연결망 인스타그램 등에서 적어도8시 반까지는 가야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글을 보고8시 반이 조금 안된11분쯤 전시장에 도착했다.이미 줄은 길게 서 있었고,오래 기다릴 것에 대비해서 의자나 간단한 먹거리를 가져온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심지어 김밥을 먹는 가족도 보였다.9시가 조금 넘자,확성기를 가진 관계자가 나타나 안내하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자기들 나름의 규칙을 정한 모양인데,차라리 안내판을 입구에 세워놓든지 했으면 나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확성기 자체 음량도 많지 않고,소리가 울리다 보니 내용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다.그리고9시40분쯤 되자 입장을 시켰는데,선물은 미디어 예술(art)관 전시를 다 보고 마지막에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안전을 위한 한 번에 입장할 수 있는 수를 제안했다. 400명 안에 들기 위해10시도 되기 전에 이미 줄은 끝없이 서기 시작했다.줄은 서기 위해 쓰는 안전유도줄은 두 줄 분량밖에 안 돼서,나머지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알아서 줄을 섰다.문제는 전시 자체를 보고 싶은 사람도 선물 줄과 같이 서다 보니,쓸데없이 길게 기다려야 했다는 것이다.전시가 중요하지,선물이 중요하냐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오랫동안 그 선물을 기다렸고 도장을 모아 온 입장에서 선물도 중요했다.선물을 받는 곳을 따로 만들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전시를 안 볼지 싶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거의3시간을 기다려서 선물을 받은 입장으로 나머지 전시를 볼 생각이 들기 쉽지 않았다.간신히 선물을 받고 나와 다른 전시를 보니 어디나 줄이 길고 사람이 많았다.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재밌었던 지점이 점심시간이었다.나름으로 이런 행사를 많이 다닌 입장에서 점심시간은 본 적이 없다.소비자에게 직접 자신의 상품이나 기술을 보여줄 일이 없는 기업 위주 전시여서였는지는 몰라도 대부분 한 명에게라도 더 자신의 기업을 홍보하기 바빴다.12시에서1시는 점심시간이라 운영하지 않는다는 안내를 볼 때마다 이런 기회를 얻기 어려운 일반 시민에게 더 많이 홍보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닌지 생각했다.인원수를 적절히 확보해서 교대로 일하며 점심시간 공백이 생기지 않아서 더 많은 관람객에게 한국의 세계 문화유산을 알리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어쩌면 이 행사를 기획한 사람은 세계유산위원회를 중심에 두고 전시 행사에 참여할 관람객에 관한 생각을 덜 했는지 아닌지 생각까지 들었다.관람객을 중심에 두고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했다면,관람객이 이렇게까지 불편을 느꼈을지 생각해 본다.관람객 수를 적게 잡았다면,부산을 포함한 한국인의 문화 수준을 낮게 본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국가유산청이 이번 전시 총괄을 맡았다고 한다.국가유산청은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자연유산,무형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그 가치를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키는 업무를 담당하는 중앙행정기관이다.주요 업무로 국가 유산 지정 및 관리,보존 및 복원,활용 및 진흥을 수행하는 기관이다.이들이 한국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면,관람객 수가 상당하리라는 것을 예측했을 거로 추측해 본다.일제강점기 독재를 겪은 한국에서 사라진 문화유산이 많다.그렇기에 국가에서‘청’으로까지 만들면서 국가 유산을 지키고 복원하려 노력하는 것이다.문화유산은 국가 기관과 이수자 등 특수한 사람만 누리는 것이 아니다.모든 한민족이 공유하는 유형·무형의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나친 영어 남발은 문화유산에서 한글은 빠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한국어와 영어 병기 표기에 대해서는 국제 행사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한국어 대신 영어로 도배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질문했으면 좋겠다.‘K-’뭐라고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사대주의 같다.이전에 일본이‘J-pop'이라 해서 일본식 팝송이라 이름을 붙인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K헤리티지‘보다 한국 유산하고’Korean Heritage'이렇게 함께 적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신채호 선생님 말씀처럼,과거 일제강점기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많은 이들의 고초를 몰라서 그러는지 질문도 생긴다.한글이 과학적이다,자랑스러운 문화라고 입으로 말하기 전에 한국 정부부터 제대로 된 한국어를 썼으면 좋겠다.정부 명칭이든 새로운 사업명이든 행사명이든 한국어로 가장 적절한 말을 찾았으면 좋겠다.그리고 국제 행사에서 영어로 그 뜻을 풀이해서 같이 적었으면 좋겠다.한국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자고 이야기하는 부서와 행사에서 영어가 남발되는 것은 더욱더 모순적이라 생각한다.]]></description>
			<pubDate>Mon, 27 Jul 2026 23:12:2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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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계유산위원회를 맞아 열린 한국 문화유산 행사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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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미 정보국장이 밝힌 코로나와 미국 -김태형 심리학자와 백자 tv 유튜버에서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5040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백자tv김태형 심리학자가 유튜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 돈을 지원 받은 우한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해서 충격적이었다.그래서 사실 확인을 위해 김태형 심리학자가 언급한 개버드 털시(Gabbard Tulsi)라는 전 미정보국 국장을 찾아 보았다.개버드 털시는2025년부터2026년5월22일 사임할 때까지 제8대 국가정보국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를 지냈다.국가정보국장은 우리가 흔히 하는 연방정보국(FBI)나 중앙정보원(CIA)등18개 정보기관을 총괄·조정하는 최고위 정보기관이나 기관장을 뜻한다고 한다.국가정보국장을 하기 전에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도 했었고,현재는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국회의원이다.개버드 털시에 따르면,앤소니 파우치(Anthony Fauci)라는 의사가 미국 세금으로 우한 연구소에 생화학 연구실험을 지원했다고 한다.앤소니 파우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사람이다.파우치는 코로나 대응 관련에 조언을 했고 미 국가 알러지와 감염병 기관장이기도 했다.그래서인지 조 바이든은 퇴임하기 전 파우치에 관해서 사과를 했다고 한다.Fauci helped lead the federal response to the COVID-19 pandemic and directed the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s, part of the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for nearly four decades. He served under President Trump during his first term and also under Biden before retiring in 2022.https://www.chiefhealthcareexecutive.com/view/why-president-biden-pardoned-anthony-fauci영상에서 미국 제약회사가 백신을 통해 이윤을 창출했다고 한다.어느 정치 평론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심스러운 상황이 생기면 돈을 추적하면 된다고 했다.자본주의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면,이익을 가진 사람이 범인일 수 있기에 충분히 납득이 가는 설이기도 하다. 출처: CGTN (https://news.cgtn.com/news/2021-06-18/From-Unit-731-to-Fort-Detrick-What-is-the-U-S-hiding-from-the-world--11bPpnpvfr2/index.html)그리고 미 생화학 연구소를 보니 한국의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가 떠오른다.영화‘동주’덕에 알려진 일제의 살아 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인731부대 관련 이야기이다.전범인731부대 대장 이시이 시로를 비롯해731부대 연구원들은 미국에 의해 사면을 받았다.그리고 미국 생화학 연구실험소가 있는Fort Detrick로 자리를 옮겨 연구를 계속했다고 한다.참고로Fort Detrick은1943년부터1969년까지 미 생화학무기 연구 중심이었다고 한다.출처: NPR (https://www.npr.org/2008/08/01/93196647/fort-detrick-from-biowarfare-to-biodefense)그리고 이렇게 개발된 생화학무기가6.25사변 때 사용되었다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그리고 조정래 작가의‘태백산맥’을 읽어 보면,미군이 세균전을 해서 재귀열이 비상식적으로 퍼져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일제가 조선인을 비롯한 식민지 백성을 대상으로 잔인한 실험을 했고,그 결과로 다양한 화학 무기들이 개발되었다.이런 반인권적 행위를 한731부대 연구원과 대장은 미군에게 그 자료를 넘기는 대가로 사면을 받았다.게다가 자리만 옮겨 하던 일을 계속하며 평생 잘 살았다.1980년대‘마루타’라는 별칭이 붙은‘흑태양731’이라는 영화가 나온 적이 있다.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잔혹한 실험을 보여주는 영화이다.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 교과서에서는 왜 일제 전범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지 궁금하다.도쿄 전범 재판에서 누가 벌을 받았고 사면을 받았는지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한민족에게 잔인한 범죄 행동을 한 이들이 누구이고 이들이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알려주는 게 한민족 교육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이런 교육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한민족을 중심에 두고 교육과정을 짰는지 의심스럽다.출처:국제신문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amp;amp;amp;key=20160517.33006223327)그리고 생화학 실험 관련 잔인한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부산 감만 부두에 미군의 주피터 프로그램이 아직 진행 중이다.주피터 프로그램은‘Joint United States Forces Portal and Integrated Threat Recognition’의 약자로 연합 주한 미군 포털과 통합 위협 인식으로 직역할 수 있다.대부분 부산 사람도 모르는 채 은밀하게진행 중이다.다른 많은 사건이 발생하며 기억에서 사라진 사건 중 하나이다.탄저균 배달 사고도 나는데,한국 내 미군의 생화학무기 연구소는 안전한지 다시 한번 질문하게 된다.우한 연구소처럼 무언가 잘못 되어서 새어나간다면 어떻게 될지 끔찍할 뿐이다.한국인의 안전과 생명을 생각한다면 정부는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미군의 기밀 보장과 자국 영토에 사는 한국인의 안전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정책 결정권자에게 달렸다.그들이 가진 철학에 따라 한민족을 어느 정도 생각하는지 정도에 따라 정책을 결정할 것이다.개인적으로 자국민의 안전을 챙길 줄 아는 정부여서 적절하게 대응하기를 바랄 뿐이다.탄저균 배달 사고주피터 프로젝트출처: 615 부산본부주피터 프로그램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2758]]></description>
			<pubDate>Mon, 27 Jul 2026 17:40:0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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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 정보국장이 밝힌 코로나와 미국 -김태형 심리학자와 백자 tv 유튜버에서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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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2026년 ‘김구 탄생 150주년’ 유네스코 기념해 공식 지정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938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부산 전시회의장 한국 문화 유산 전시 중 백범 김구 선생님*{ margin:0; padding:0; } .HStyle0 { style-name:&quot;바탕글&quot;; margin-top:0.0pt; margin-bottom:0.0pt; text-align:justify; text-indent:0.0pt; line-height:160%; font-size:10.0pt; font-family:함초롬바탕; letter-spacing:0; font-weight:normal; font-style:normal; color:#000000; }7월 19일, 우리나라 최초로 제48차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세계유산위원회가 부산에서 열리면서, 부산전시회의장(BEXCO)에서 한국 유네스코 지정 문화 유산 관련된 전시를 하고 있다.게다가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을 기리기로 해서 더 뜻있는 전시이다.백범 김구 선생님은 1876년 8월 29일 (음력 7월 11일)에 태어난 안두희에게 암살 당할 때까지 한민족을 위해 평생을 바치며 살아온 분이다. 세계 기구에서 인정한 겨레의 큰 스승이자 문화의 힘을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이다.이런 백범 김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한국 정치인이나 지자체장이 없는 게 조금 안타까웠다. 연설에서 백범 김구의 글을 인용한다던지, 그의 삶에 대해 존중하며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그러다가 얼마 전, 민주당 당대표 경선을 위해 김해를 방문한 송영길 대표가 백범 김구를 인용해서 기뻤다. 조국이 분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30선을 베고 눕겠다는 말로 자신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김구 선생님의 말을 인용했다. 그 말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내가 불초하나 일생을 독립운동에 희생하였다. 나의 연령이 이제 칠십유삼인바 나에게 남은 것은 금일금일하는 여생이 있을 뿐이다. 이에 새삼스럽게 재화를 탐내며 명예를 탐낼 것이냐, 더구나 외국 군정하에 있는 정권을 탐낼 것이냐. 내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주지하는 것도 모두가 다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는 것 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amp;amp;lt;삼천만동포에 읍고(泣告)함, 1948년&amp;amp;gt;-38선을 베고 쓰러질언정- (출처: 백범김구기념관https://www.kimkoomuseum.org/mobile/inf/inf_4_1_view.asp?Div=eCard02&amp;amp;amp;Idx=87)백범 김구 선생님이 김일성을 만난 것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이 많다. 그러나 민족주의자이고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님은 해방 후 조국이 두 동강 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결과를 위해 목숨과 가족을 바치며 독립운동을 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독립운동가를 어떤 사상에 따라 나누지만, 그들의 근본은 민족주의자이다. 해방 후 친일파가 기득권이 된 나라에서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무정부주의자라니라는 딱지를 붙이며 교과서에서 없는 인물로 취급된 독립운동가 많다. 그러나 그들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자이다. 어떤 방식으로 해야 독립을 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끝에 도움이 될만한 인물이나 나라와 연결되다 보니 특정한 주의자와 어울린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그런 사상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관심을 가진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다양한 사상과 생각을 가진 독립운동가가 같이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한민족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그러나 해방은 한민족이 이뤄내지 못하고, 연합국의 승전으로 미국과 소련이 한국을 두 동강 내고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군정은 친일파를 다시 등용해서 관리로 쓰면서, 민족주의자와 갈등을 밎었다. 하나의 나라를 위해 노력하던 독립운동가 중 고하 송진우를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암살당했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해방된 조국의 문화 강국을 꿈꾸던 백범 김구 선생님도 암살당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을 암살한 안두희는 6. 25 사변 덕에 감옥에서 풀려나 승승장구했다. 군대를 나와서는 양구에서 군납 사업을 하며 부자로 잘 살았다고 한다.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된 한 선량한 시민이 살해할 때까지 안두희는 천수를 누렸다.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을 읽다 보면, 해방된 조국에서 꼭 김구 선생님이 아니라도 몽양 여운형, 고하 송진우, 남석 장준하 등 친일파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독립운동가가 나라를 다스렸으면 어떠했을지 생각해 본다.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이가 나라를 다스렸으면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비극이 있었을지도 생각해본다.김구 선생님이 ‘나의 소원’에서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꽃을 심을 자유’를 말하셨다. 파괴하면서 내 것만 얻는 이기적인 자유가 아니라 같이 잘 살 자유를 말하신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해방 후 한국이 운영되었더라면, 한국의 금수강산이 지금처럼 오염되었을지도 생각해본다. 우리는 예전처럼 자연에서 얻는 물을 마음껏 마시지 못한다. 생수라 불리는 병에 담긴 물을 식수로 사용한다.공장이나 생활 오수로 오염된 강과 하천은 빨래도 하지 못하고 물놀이도 하지 못한다. 이런 결과는 꽃을 꺾는 것을 자유로 아는 이들이 해방 후 한국을 지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모두가 잘 사는 것보다, 단기적으로 특정인만 잘 살게 만드는 체제도 그런 이기적인 인간이 한국을 주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더 김구 선생님이 그립고, 그 분이 꿈꿨던 조국에 대한 글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 분이 꿈꾸었던 나라를 이해하는 사람이 정치를 하고 고위 관료가 되고 행정 수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엄청난 부자가 된 안두희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78138민족 지도자를 살해한 자들의 행보출처: 경향신문 (https://db.history.go.kr/contemp/level.do)미 방첩대 요원이었던 안두희출처: KBS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234633)]]></description>
			<pubDate>Wed, 22 Jul 2026 23:58:1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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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6년 ‘김구 탄생 150주년’ 유네스코 기념해 공식 지정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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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안창호 관련 전문 및 서신 자료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793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기획/역사]안창호의 경고문과 이승만 '프레지던트' 논란… 임시정부 직제 해석 다시 주목1920년 안창호 국무총리 대리 명의 전문 재조명 역사학계 &quot;직함 사용과 법적 지위는 당시 문서와 헌장에 근거해 살펴봐야&quot;[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대한민국 임시정부 초기 체제와 이승만의 '프레지던트(President)' 사용을 둘러싼 역사적 논쟁이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이승만에게 보냈다고 알려진 전문 내용을 소개하며 당시 직제와 직함 사용을 설명하는 게시물이 공유되고 있다.공개된 내용은 1920년 8월 25일 안창호 국무총리 대리 명의의 전문으로 알려져 있으며, &quot;임시정부는 국무총리 제도이고 한성정부는 집정관 제도이므로 대통령 행세를 해서는 안 된다&quot;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역사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수립 이후 여러 차례 헌장을 개정하면서 정부 조직과 직제를 변경했다. 초기에는 대통령제를 채택해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됐지만, 이후 내각 책임에 가까운 국무령 체제와 주석 체제 등으로 개편되며 조직 형태가 변화했다.또한 당시 이승만이 해외 외교 활동 과정에서 'President'라는 영어 표현을 사용한 사실은 여러 외교문서와 서신을 통해 확인된다. 다만 이 표현이 임시정부의 법적 직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시대별 헌장과 국제 외교 환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일부 연구자들은 'President' 사용이 외교적 이해를 돕기 위한 번역이었다고 해석하는 반면, 다른 연구자들은 당시 임시정부 내부에서도 직함 사용을 둘러싼 갈등과 논쟁이 존재했다고 분석한다.학계는 이 문제를 단순한 정치적 논쟁으로 접근하기보다 대한민국 임시헌장, 임시의정원 회의록, 안창호 관련 전문, 당시 외교문서 등 1차 사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근거 및 1차 자료1. 대한민국 임시헌장 및 대한민국 임시헌법2. 대한민국임시정부 공보와 임시의정원 회의록3. 안창호 관련 전문 및 서신 자료4.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5.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자료6. 안창호 전문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7. 임시정부 직제와 대통령 논쟁8. 이승만 '프레지던트' 사용의 역사적 배경9. 임시정부 직함, 사료는 무엇을 말하나10. 1차 사료로 보는 임시정부 직제 논쟁#안창호 #이승만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 #약산소식지]]></description>
			<pubDate>Thu, 16 Jul 2026 00:37: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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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민주당 당원들 연수구의회 앞 피켓 시위… &amp; quot;한지혜 구의원 강력 규탄&amp; quot;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7932</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정치/ 연수구 의회]민주당 당원들 연수구의회 앞 피켓 시위… &quot;한지혜 구의원 강력 규탄&quot;당내 경선 거쳐 당선 뒤 행보 비판…&quot;당원과 유권자 신뢰 저버렸다&quot; 주장 참가자들 &quot;정치인은 선택에 책임져야&quot;… 의원 측 입장에도 관심[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인천 연수구의회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일부 당원들이 한지혜 연수구의원의 정치적 행보를 비판하며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이번 시위에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이자 연수구민이라고 밝힌 시민이 직접 피켓을 들고 참여했다. 현장 사진에는 &quot;먹튀 한지혜 구의원 강력 규탄&quot;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연수구의회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담겼다.시위 참가자는 &quot;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을 거쳐 무투표로 후보가 된 뒤 당선된 의원이 당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선택을 했다&quot;고 주장했다.또 &quot;본인의 힘으로 당선됐다고 말하기 전에 당의 공천과 당원들의 지지가 있었음을 돌아봐야 한다&quot;며 &quot;정치인의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quot;고 말했다.참가자는 연수구의회 청사 1층에 게시된 의원 소개 문구인 '작은 거인'도 언급하며 &quot;초선 의원으로서 직책보다 구민을 위해 헌신하고 신뢰받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뜻으로 이해했지만 현재의 행보는 그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quot;고 주장했다.이어 &quot;소통하는 열린 의회를 표방하면서 정작 당원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았다는 점에 실망했다&quot;며 &quot;자신을 이 자리까지 오게 한 정당과 당원들의 신뢰를 저버린 행동에 대해서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quot;고 밝혔다.시위 참가자들은 &quot;한지혜 의원은 사퇴하라&quot;는 구호를 외치며 정치적 책임과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다만 이번 시위는 시위 참가자들의 주장과 입장을 담은 것으로, 관련 사안에 대한 한지혜 구의원의 공식 입장은 기사 작성 시점 기준 확인되지 않았다. 향후 의원 측의 입장 표명 여부와 정치권의 대응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근거 및 관련 자료1. 시위 참가자 공개 성명2. 현장 피켓 시위 사진3. 연수구의회 의원 소개 자료4. 더불어민주당 공천 절차 관련 자료5. 민주당 당원들 &quot;한지혜 의원 사퇴 촉구&quot;6. 연수구의회 앞 피켓 시위… 정치적 책임 요구7. &quot;당원 신뢰 저버렸다&quot; 연수구의회 앞 규탄8. 민주당 당원들, 한지혜 의원 행보 비판9. 연수구의회 앞 사퇴 촉구 시위 확산#연수구의회 #한지혜 #더불어민주당 #연수구 #지방정치]]></description>
			<pubDate>Thu, 16 Jul 2026 00:24: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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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정식 미추홀구청장, 김윤덕 국토부 장관 만나 지역 현안 직접 전달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793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정치/ 인천 미추홀구청장 ]김정식 미추홀구청장, 김윤덕 국토부 장관 만나 지역 현안 직접 전달대한민국 드론·도심항공교통 박람회 참석 위해 송도 방문박찬대 인천시장 배려로 면담 성사… “구민 위한 일에는 부딪히는 용기도 필요”[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김정식 인천 미추홀구청장이 대한민국 드론·도심항공교통 박람회가 열린 인천 송도를 찾아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미추홀구 주요 현안을 설명하고 관련 자료를 직접 전달했다.이번 내용은 김정식 미추홀구청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글을 바탕으로 확인됐다.김 구청장은 “오늘 대한민국 드론·도심항공교통 박람회에 참석하는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과 박찬대 인천시장을 만나기 위해 송도로 향했다”고 밝혔다.사전에 별도의 면담 일정을 조율하지 못했지만, 박찬대 인천시장의 배려로 김윤덕 장관에게 미추홀구의 주요 현안을 직접 설명할 기회를 얻었으며, 준비한 자료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김 구청장은 “출발할 때는 안개와 비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이었는데,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다행히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이어 “구민들을 위한 일이라면 때로는 주저 없이 부딪히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다”며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현장을 찾은 이유를 밝혔다.또한 김윤덕 장관을 보좌하는 한만송 보좌관에 대해서도 “가진 역량에 기대를 걸어본다”고 말했다.2026 대한민국 드론·도심항공교통 박람회는 국토교통부와 인천광역시 등이 공동 개최한 행사로, 드론과 도심항공교통 산업의 미래와 기술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번 현장 방문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소통을 통해 지역 현안을 전달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근거 및 1차 자료1. 김정식 인천 미추홀구청장 페이스북 공개 글2. 2026 대한민국 드론·도심항공교통 박람회 행사 자료3.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공개 일정4. 박찬대 인천시장 공개 일정5. 현장 사진 및 전달 자료6. 김정식 구청장, 국토부 장관에게 미추홀 현안 전달7. 송도 박람회서 성사된 미추홀구·국토부 현장 면담8. “구민 위한 일이라면 부딪힌다”… 김정식 구청장 현장 행보9. 박찬대 시장 배려로 마련된 국토부 장관 면담10. 미추홀 발전 위해 중앙정부 찾은 김정식 구청장#김정식 #미추홀구 #김윤덕 #박찬대 #드론도심항공교통박람회]]></description>
			<pubDate>Thu, 16 Jul 2026 00:18:5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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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공적 이익을 추구하는 새 지자체장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747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JTV 뉴스애덤 스미스의‘국부론’제3장30의 소제목,간략한 요약은 다음과 같다. ‘공적인 낭비와 무분별은 사적인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다.’ 2026년6월 지방 선거가 끝나고,새 지자체장 중 이전 지자체장이 만들고 간 채무를 정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인천광역시의 누적 채무와 재정 부담은5조5천억 원 규모이고,울산광역시의 채무액은 약7,438억 원(채무비율 약11.1%)이고,부산광역시의 채무는3조4,056억 원으로 이는 시민1인당 약105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과 같다.이 중 울산광역시 새 지자체장 김상욱 시장이 필요 없는 사업을 줄이고 본인부터 관용차를 공적인 목적으로만 이용하겠다고 해서 주목을 받고 있다.취임식부터 전문 사회가를 부르지 않고 공무원이 사회를 맡았다.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차는 따로 구매해서 이용하겠다는데 이게 언론에 나오다니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하다.그만큼 이전 공무원은 사적 용도와 개인 용도를 구별하지 못한 채 공적 자금을 썼다는 간접증거기도 할 것이다.김수현 신임 충남도지사는 전임 도정인 김태흠 지사의'힘쎈충남'비전 간판과 집무실 집기,관용차를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한다고 발표했다.표어 하나 바꾸면 여기저기 간판 다 바꾸어야 하는데 그게 다 세금이다.그러나 어떤 지자체장은 임기 중에 표어를 바꾸어서 예산을 썼던 사례도 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간판을 바꾸든 뭘 하든지 예산이 들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개인적으로 관용차나 관저는 일제강점기 독재의 산물 같다.한국의 많은 관저가 일제강점기 당시 지어진 건물이 많다.이유가 뭘지 개인적으로 추정해 보면 특권 부여라고 생각한다.큰 집 큰 차는 부의 과시이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많다.그래서 가지지 못한 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독일 메르켈 전 총리는 관저가 불편해서 개인 집을 구해서 지하철로 출퇴근했다.경호원과 함께 출퇴근하긴 했지만,한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못 할 리는 없다.관용차에 대한 욕심은 시민을 위한 봉사자로 일하는 것보다 예전 독재 시절 특권의식의 산물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한국 제목은 국부론이지만,영어 제목은 좀 더 구체적이다. ‘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로 직역하면 국부의 본성과 원인에 관한 질문 정도일 것이다.쉽게 이야기하면 나라가 부유하려면 어떤 특성이 있어야 하는지 묻고 답하는 논문 같은 글이다.그리고 국부론을 철저히 공부해서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책이 마르크스의‘자본론’이다.한국은 독재 시절‘자본론’은 금지 도서였고,국부론은 책 자체가 두꺼워서인지 제대로 읽은 사람이 잘 없는 것 같다.독재 시절 금지한 책들은 대부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 많다.독재자들이 왜 한국인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 잘 이해할 기회를 주지 않았는지 책을 읽어 보면 알게 될 것이다.국부론3장30앞뒤 내용을 살펴보면,나라를 운영하는 자가 국가에 도움도 되지 않는데 방만하게 예산을 쓰는 경우는 흔했다.고위층이 사치품을 쓰면서 법으로 일반 국민이 사치품을 금지하도록 만든 사례도 나온다.사치품보다 더 심한 경우는 전쟁이다.마키아벨리의‘피렌체사’를 읽어 봐도,빚을 지지 않고 전쟁하는 군주를 높이 평가한다.생각없는 군주나 지배자들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전쟁하다 보니,전쟁 전 빚을 지고 전쟁이 끝난 후 그 빚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승전해서 전리품을 가져오는 경우는 그나마 낫지만,패배하게 되면 본인 비용뿐 아니라 승전국 전쟁 비용까지 물어야 한다.그 과정에서 고통을 받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한국은 다행인지 전시작전권이 없어서 남의 나라에 전쟁을 걸지는 않는다.그러나 지방 행정이나 국가 행정에서 국민을 위해 세금을 쓰는 경우보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사업을 추진하면서 공적 낭비를 하는 사례가 꽤 있다.게다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아직 구분이 안 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공적 자금이나 물자를 사적 용도로 쓰는 공무원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몇 년 전 어떤 시장은 인기 있는 축구 감독에게 명예시민을 수영하는 자리에서 자기 아들을 따로 기념사진을 찍고 만나게 해서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그런데 그 사람은 대통령이 되었다.한국 사회 유권자들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는 것에 그다지 관심 없는 것 같다.그래서인지 이번에 울산 시장이나 몇몇 지자체장이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아직 시작 단계라도 조금이라도 예산을 절약하려는 지자체장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자신보다 자신이 속한 지자체를 위해 예산을 쓰려고 노력하는 모든 지자체장에게 박수를 보낸다.충청남도 박수현 사례전문 사회가 쓰지 않는 취임식]]></description>
			<pubDate>Thu, 16 Jul 2026 00:10:2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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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적 이익을 추구하는 새 지자체장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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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반민족행위는 어떻게 규정되나… 역사적 평가와 법적 기준은 무엇인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732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반민족행위는 어떻게 규정되나… 역사적 평가와 법적 기준은 무엇인가친일반민족행위 특별법, 행위 중심으로 판단역사적 진실 규명과 사회 통합 위한 객관적 접근 필요[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반민족행위'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역사 용어 가운데 하나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법률과 역사학계에서는 개인의 출신이나 사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와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이 강조된다.특히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해 민족의 독립을 방해하거나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 행위는 대표적인 반민족행위로 규정된다.법률은 '행위'를 기준으로 판단대한민국은 2004년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과 이후 설치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친일 행위의 범위를 법적으로 규정했다.법률은 단순한 친일 성향이나 개인적 교류가 아니라 국가권력과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독립운동을 탄압하거나 방해한 행위독립운동가와 가족을 체포·고문·탄압한 행위을사늑약과 한일병합조약 체결에 적극 협력한 행위일본 제국으로부터 작위나 훈장을 받고 식민통치에 협력한 행위침략전쟁과 식민통치 수행에 적극 가담한 행위역사학계 역시 친일 여부를 평가할 때 개인의 정치적 성향보다 당시 남겨진 공문서와 재판 기록, 행정 문서, 증언 등 객관적 사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반민특위가 남긴 역사적 의미광복 이후 친일 청산은 대한민국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1948년 제헌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설치했다.반민특위는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를 조사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 활동했지만 정치적 갈등과 외부의 압력,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 사건 등으로 인해 활동이 중단되면서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이 때문에 친일 청산 문제는 이후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의 역사적 과제로 남게 됐다.역사적 평가는 현재도 진행형반민족행위에 대한 평가는 특정 인물을 비난하거나 정치적 논쟁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규명하는 데 의미가 있다.역사학계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평가하는 것이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전달하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또한 과거의 잘못을 정확히 기록하고 기억하는 과정은 사회 통합과 민주주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역사 기록은 미래를 위한 자산역사는 감정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는다.반민족행위에 대한 연구 역시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객관적 사료와 법적 기준에 근거해 이루어질 때 역사적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전문가들은 &quot;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일은 과거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과정&quot;이라며 &quot;사실에 기반한 역사 교육과 연구가 지속되어야 한다&quot;고 강조하고 있다.]]></description>
			<pubDate>Mon, 13 Jul 2026 17:19:1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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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음악 - 국악뮤지컬 심산 김창숙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710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예술이네유통]]></description>
			<pubDate>Mon, 13 Jul 2026 21:32:0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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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안명근 독립운동가와 뮈텔 주교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709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105인 사건에 연루되 용수를 쓰고 끌려가는 사람들)1929년7월7일은 독립운동가 안명근 순국일이다.하얼빈 의거 의병장 안중근 의사와 같은 해에 태어난 사촌이다.안명근 독립운동가는15년여의 옥고를 치르다가1924년 임시 출옥하였으나,옥중 여독으로 고생하다가1927년 사망했다.만주에 무관학교를 세우기 위한 군자금을 모으다가 귀스타브샤를마리 뮈텔(Gustave-Charles-Marie Mutel)이라는 주교의 밀고로 잡혀갔다.뮈텔 신부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고해도 거부한 인물로도 알려진 인물이다.안중근 집안이 뮈텔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독립운동을 살인으로 몰고 가며 안중근 집안을 비난했다고 한다.뮈텔 신부의 밀고는 일제에게 좋은 빌미가 되었다.일제는 안명근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황해도 안악 지역의 주요 독립운동가와 기독교 인사들을 대거 체포하였다. 160여명이 잡혀가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러야 했다.일제가 자행한 고문은 구타는 기본이었고,온몸에 기름을 바른 뒤 인두와 담뱃불로 담금질하기,손가락 사이에 철봉을 끼우고 손끝을 졸라맨 뒤 천장에 매달고 잡아당기기,손발톱에 대나무못 박기,입안에 석탄가루 쑤셔 넣기,못을 박은 널빤지에 눕히기,코에 뜨거운 물을 붓고 거꾸로 매달기 등70여 가지를 넘는 악랄한 방법이었다.영문도 모르고 잡혀간 이 중 김근형,정희순 등이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중에서 사망했다.뮈텔 신부를 종교인으로 본다면 밀고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그러나 당시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많은 천주교 신부가 남미 등에서 했던 행위와 연결한다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신념 철학 가치관 등 여러 가지 기반해서 매번 결정하며 살아가야 한다.결국 최후에 결정을 내릴 때는 중요한1번,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당시 많은 신부가 남미 등지에서 한 행위를 볼 때,뮈텔은 천주교 신도 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누구든 세례를 한다면 받아주었을 것이고,안전하게 식민지 조선에서 천주교 세를 늘리기 위해서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래서 밀고로 인해 안명근을 비롯한 주위 사람이 겪을 고통을 모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독립운동가 의거로 일본인이 죽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기면서,독립운동에 가담한 조선인이 모진 고문을 받고 옥고로 목숨을 잃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여겼다면 모순이다.천주교 신부라면,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덜 소중하고 더 소중한 목숨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예수는 직업 귀천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풀었던 인물이다.당시 그가 다니던 지방에 살던 유대인이 멸시하던 창녀든 사마리아인이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예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신부가 되었다면,이런 예수의 삶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이 남미인에게 가한 잔인한 행위나 뮈텔 신부의 행위는 예수의 사랑보다 신도 수를 늘리는 선교를 더 중요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다.뮈텔은 만세시위에 참가한 대신학생들을 퇴학시키며 천주교인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원천 봉쇄했다.필자가 뮈텔 신부가 아니니 그의 깊은 심정을 알 수는 없다.그러나 비슷한 시기 빌렘 신부는 뮈텔 신부가 거부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고해성사인 종부 성사를 하기 위해 갔다.인간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이런 빌렌 신부의 선택에 대해,안중근의 천주교 신자 자격을 박탈한 뮈텔은 빌렘 신부도 처벌했다.뮈텔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때 무려43년 동안 한국 가톨릭의 수장이었다.그리고 선교를 우선에 둔 그의 행위 덕인지 그는 구한말 한국 천주교 부흥의1등 공신이다.한국 천주교든 남미 천주교는 후에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적극적이기도 했다.한국의 정의 구현 사제단이나,남미의 해방 신학은 독재에 신음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알린 이에 앞장선 이들도 한국의 신부들이었고,오스카 로메로 신부는 적극적으로 억압 받는 이를 돕다가 미사 중 성당 안에서 살해당했다.‘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라는 예수의 정신을 따라간 신부도 있었다.억압받는 이를 돕기 위해 제국주의나 독재와 같은 강한 세력과 맞선 용감한 신부도 있었다.필자는 이들을 용감하다고 부르고 싶다.힘센 이들 앞에서 정의를 위해 맞선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 선택하기 쉽지 않다.이들은 다른 무엇보다 예수의 사랑이1번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진정 예수를 이해했기에 그를 본받아 무언가를 하는 것이 인생 선택 갈림길에서1번이었을 것이다.그게 자신이 손해를 보고 심하게는 심리적 신체적 고통을 겪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을 알았으리라고 생각한다.그래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옳은 일을 하며 산 이들에게 깊은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뮈텔 주교와 안중근 집안https://www.hani.co.kr/arti/well/news/939421.html]]></description>
			<pubDate>Mon, 13 Jul 2026 21:32:0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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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안명근 독립운동가와 뮈텔 주교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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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마지막 일기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682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블랙홀 유튜브실제 광주 민주화운동에 참가했던 한 학생의 일기에 남은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이다.  이 노래는 안종필이라는 고등학생의 일기 또는 편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quot;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불효자식은 지금 어머니 곁을 떠나야만 합니다.사랑하는 형제들과 따뜻한 밥을 먹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습니다.그러나 저는 불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총을 듭니다.오늘밤 이곳을 지켜내지 못하면 우리는 영영 패배할지도 모릅니다.부디 제가 살아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저는 자랑스러운 시민군의 일원으로 싸우다 가겠습니다그리고 블랙홀은 다음과 같이 가사로 만들었다.사실 두려워요 내게 다가올 시간이아직 내겐 너무도 벅차요먼저 떠난 친구들의 눈물이 생각이 나요아직도 내 가슴에 흘러요*이 어둠이 가기전에 나의 짧은 시계소리 멈추고나도 잊혀지겠지달빛아래 펼쳐있는 나의 일기장에 그린 어머니영원히 사랑해요못다한 나의 숨결은 오월의하늘위에 붉게 떠 있는눈부신 큰 빛이 되어그리운 모든 사랑을 바라 볼꺼야...출처: 블랙홀 유튜브어머니가3살에 아버지를 잃고 어렵게 키운 아들이라 어머니는 어떻게든 아들을 광주민주화운동 소용돌이에서 아들을 구하려고 했다고 한다.그러나 남달리 정의로웠던 아들은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몰래 빠져나가 전남도청을 지키려고 갔다.그리고 친구 문재학과 함께 전남도청 진압 작전 때 사망했다고 한다.둘다 당시 고등학교1학년으로 만15세였다. 진압 작전이라는 말도 반민족적이다. 같은 민족, 시민을 죽이러 가는 진압 작전을 그 시민의 세금에서 월급을 받는 군인이 했다. 일반 군인도 아니고 특수 부대 군인이 민간인을 죽이러 투입되었다. 군인은 다른 나라 전쟁에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자국민을 집단 학살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친구 문재학 한강의 소설‘소년이 온다’에서 동호로 다시 살아났다.두 예술 작품이 아니었으면 광주 민주 항쟁 때 이름 없이 사라져 간 많은 이들처럼 우리는 몰랐을 인물일 수도 있다.그러나 예술이 이들을 다시 살렸고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다.그리고 이 기억이 역사적 사건에 다시 생각하게 한다.개인적으로 한강이 노벨상을 받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광주 민주화 운동은 당시에는 군부 독재 정부가 자신의 치부를 가리려 일반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기 바빴다.그래서 대다수 사람은 광주에서 실제 일어난 일을 몰랐고,이런 상태는 독재 시절 내내 계속되었다.민주 정부가 들어서면서 진실을 밝히려 노력했지만,다수의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편협한 관점을 가진 사람은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대다수는 관심이 없다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이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이 시절을 직접 겪은 세대 중에 자기 자식에게나 아랫 세대에게 역사적 진실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문제이다.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아랫 세대에게 사실을 말해야 하지만,오랜 억압 속에서 말하는 법을 잊어 버린 것 같다.그래도 노래와 소설로 다시 살아나 말하는 이가 있어서 감사하다.예술의 힘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을 이야기하고,감성을 깨워서 인간적 공감력으로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이런 것이 부재하면 사회에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최근 야구 경기 중 왜곡된 내용을 응원가에 담아 부른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그런 노래를 부른 이들은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인간적 공감 능력을 키울 기회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제대로 된 교육은 역사를 단편적 사실로 전해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역사를 당시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그리고 문학이나 음악과 같은 예술은 시험에 정답 맞히기가 아니라,감성을 키워서 인간답게 성장하게 도와주는 것이다.우리는 짧은 생에서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할 수는 없다.그러나 제대로 된 예술로 간접 경험을 통해 인간이면 느끼고 알아야 할 것을 인지하여 사회적 동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인간이 다른 인간과 같이 살 때 공감 능력은 필수 요건이다.공감 능력이 없는 인간은 사회 속에서 고장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이런 문제가 늘 있었으나 생방송 중인 데다가 그나마 깨인 사람이 많아져서 공론화된 것 같다.이 사건을 기회로 좋은 해결책이 나오길 바란다.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앞으로 한국 사회는 무엇을 할 지 생각할 기회라고 생각한다.광주민주화운동 청소년 사망자광주민주항쟁 사망자 국가 공식 기록출처: 국가기록원 (https://theme.archives.go.kr/next/518/paper4.do)]]></description>
			<pubDate>Fri, 10 Jul 2026 17:13: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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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마지막 일기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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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기획/ 근현대사 /일제강점기 ]  새마을운동은 어디에서 시작됐나… 일제 농촌진흥운동과의 연속성 논쟁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617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기획/ 근현대사 /일제강점기 ]새마을운동은 어디에서 시작됐나… 일제 농촌진흥운동과의 연속성 논쟁운영 방식은 닮았지만 목적과 시대적 배경은 달라… 역사학계 “유사성과 차이 함께 봐야”[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1970년 출범한 새마을운동은 대한민국 경제성장 과정에서 농촌 근대화를 이끈 대표적인 국가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새마을운동이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추진했던 농촌진흥운동과 운영 방식이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두 정책의 연속성을 주장하기도 한다.역사학계는 두 운동이 행정 조직과 주민 동원 방식에서는 일정 부분 공통점이 존재하지만, 추진 목적과 시대적 배경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견해를 대체로 제시하고 있다.마을 단위 조직 운영은 비슷조선총독부는 1932년부터 농촌진흥운동을 실시했다.당시 운동은 마을 단위 조직을 중심으로 행정기관이 직접 관리했으며, 지역 지도자를 선발해 주민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는 방식이었다.근로와 절약, 공동노동, 생활개선을 강조했고, 행정기관이 계획을 수립해 하향식으로 추진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1970년 시작된 새마을운동 역시 마을 단위 조직을 기반으로 정부가 정책을 주도했다.새마을지도자를 육성하고 주민 참여를 독려했으며, 근면·자조·협동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이 같은 운영 구조 때문에 두 정책 사이의 제도적 유사성이 자주 비교된다.정책 목적은 큰 차이그러나 역사학자들은 가장 중요한 차이는 정책 목적이라고 설명한다.조선총독부의 농촌진흥운동은 식민지 통치를 안정시키고 농업 생산력을 유지하며 전시 동원 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식민통치 정책의 성격이 강했다.반면 새마을운동은 한국전쟁 이후 낙후된 농촌을 현대화하고 주민 소득을 높이며 국가 경제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개발 정책으로 추진됐다.정치 체제와 시대적 환경 역시 크게 달랐다.농촌진흥운동은 일제 식민지배 체제 아래 시행됐고, 새마을운동은 산업화를 추진하던 대한민국 정부가 국가 개발 전략의 하나로 실시했다.주민 참여 방식도 차이두 운동 모두 주민 조직을 활용했지만 주민 참여 방식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농촌진흥운동은 행정기관의 통제 아래 주민을 동원하는 성격이 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반면 새마을운동은 정부 주도 정책이었지만 주민 스스로 사업을 추진하도록 유도하고, 마을별 경쟁과 인센티브를 활용해 참여를 확대하려 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도 적지 않다.다만 새마을운동 역시 국가 주도의 강한 행정력이 동원됐다는 점에서 비판적 평가도 함께 존재한다.역사학계 &quot;단순 동일시는 어렵다&quot;국내 역사학계는 운영 방식의 일부 유사성만으로 두 정책을 동일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조직 운영과 지도자 육성, 공동노동 장려 등에서는 일정한 제도적 연속성을 찾을 수 있지만, 식민지 통치 정책과 국가 근대화 정책이라는 목적의 차이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학계에서는 새마을운동을 평가할 때 경제개발과 농촌 생활 개선에 기여한 측면과 함께 국가 주도 개발정책의 한계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주요 1차 사료『조선농촌진흥운동요강』『조선총독부 관보』『조선농회보』『새마을운동지침』새마을운동 초기 정부 훈령새마을운동중앙회 발간 초기 자료새마을운동과 일제 농촌진흥운동은 운영 방식에서는 일부 유사성이 확인되지만, 이를 곧바로 동일한 정책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역사적 평가는 제도의 형태뿐 아니라 추진 목적, 정치체제, 시대적 배경을 함께 고려하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현재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description>
			<pubDate>Wed, 08 Jul 2026 16:46:3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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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독립운동가 -김재호 삼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604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김재호 독립운동가 가족 사진, 왼쪽 김재호 독립운동가 가운데 아버지 김복현 독립운동가 오른쪽 부인 신정완 여사1976년7월6일 독립운동가 김재호 선생님이 돌아가신 날이다.전라남도 나주출생이다.할아버지부터 집안이 의병과 독립운동을 한 뼈대 있는 명문 집안이다.한국은 연예인 중 고위 관료를 지내면 명문 집안 출신이라고 높이 세운다.그러나 개인적으로 독립 운동 한 집안을 더 높이 쳐 주었으면 좋겠다.삼대가 독립운동을 했으니 진정한 한국의 명문가라고 부를 수 있다.아버지 김복현은 광주 만세 시위 책임자로 추대되었고, 1919년3월10일 광주시장 부동교(不動橋)아래 작은 장터에서 시민과 학생1,000여 명의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된다.이어 소위 보안법·출판법 위반으로 징역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또1929년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참여해 다시 일경에 체포된다.해방 후에는 항일운동을 이어 민주화 운동을 했다. 5·16군사정변 때 반대운동을 벌여 옥고를 치뤘다. 1890년 에 태어나셨으니, 1961년이면 일흔이 넘은 나이이다.버트런드 러셀이 말년에도 평화 운동하다 감옥갔다고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했다.그러나 한국에도70이 넘은 나이에 민주화 운동을 위해 감옥에 간 독립운동가가 있었다.그리고 할아버지 김창균은 나주 향리의 대표적 인물이었다고 한다.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을 시해하고11월15일 단발령을 공포했을 때 일어났던 을미의병을 같이 하려 했다.그러나 나주의병은 미처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도 전에 관군인 전주진위대에 의해 진압된다.김창균은1896년5월5일 보성에서 관군에게 붙잡혀 총살되고 아들 석현도 피살되어 순국했다고 한다.참고로 김복현은 김창균 의병장의 다섯째 아들이다.이 분에 관한 많은 일화가 내려오는데,그중 친일 부역자의 포상을 거부한 것이다.박정희 대통령이 독립유공자를 추서하고 연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만들자“내가 일본군 앞잡이 하던 자에게 훈장 받으려고 독립운동을 했느냐”고 역정을 내며 끝까지 거부했다고 한다.진정한 항일운동을 하던 이의 기개가 느껴지는 일화이다.김복현 독립운동가의 아들 김재호 선생님은1933년2월경 상해(上海)에서 온 정의은(鄭義恩)과 같이 남경(南京)으로 가 의열단(義烈團)간부학교에 입학하여 독립전쟁의 훈련을 받았다.여기서 제2기생으로 졸업하고 항일운동 지하 공작원(地下工作員)으로 활동하다가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충칭[重慶]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선전위원이었다. 1943년3월에 임시정부 내무부 총무과장으로 선임되어 임시정부를 실무적으로 이끌어나갔다고 한다.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아 임시정부의 잔무를 정리하고1946년5월에 귀국하였다고 한다.독립운동 활동 중 독립운동가 해공 신익희 선생님의 외동딸 신정완 여사와 결혼했다고 한다.신정완 독립운동가는 아버지 신익희 선생님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했고,중국에서 독립운동했다. 1937년 중국 난징〔南京〕등지에서 활동하던 김원봉(金元鳳)의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동참하였다. 1939년부터1941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산둥성〔山東省〕제2전구 사령부의 공작원으로 파견되어 지하공작 첩보 활동을 전개하였다.해방 후에는 귀국해서3선 개헌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 지도위원과 박정희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민주회복국민선언에 독립운동가를 대표해 참여했다.공훈만 살펴봐도 대단한 분인데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해서인지,김재호 독립운동가의 생가나 기릴만한 장소가 남아 있지 않다.본적을 검색하면,현재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고 어떠한 표시도 있지 않다.다행인 것은 부부 모두가 대전현충원에 묻혀서 공적을 인정받았다고 하는 정도일 것이다.김재호 독립운동가를 우연히 알게 되어 검색하다 보니 마음이 먹먹할 뿐이다.삼대가 을미 의병과 독립운동을 했지만,국가에서는 현충원에 모시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같다.비단 김재호 독립운동가 집안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후손이나 그를 기리는 후세의 누군가가 없다면 해방 후 한국 정부는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기릴 장소를 만들지 않는다.전국에100여개가 넘는 독립운동가가 넘는 장소를 다니며 느끼는 것은 민간이 독립운동가를 챙기지,나라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운이 좋으면 현충원에라도 모셔져 있고,생색내듯 기념관 하나라도 가질 수 있다.문제는 그 기념관이6. 25사변 기념관보다 초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더 문제는 독립운동가의 생가나 고가를 제대로 보존하지 않아서 사라진 경우도 많고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경우도 많다.개발의 논리에 밀려 고가가 사라진 경우,그나마 비석이나 표지판이라도 하나 세우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이 독립운동가 생가나 관련 장소를 갈 때마다 느껴진다.해방 후 친일 부역자가 기득권이 된 한국은 독립운동가를 기리기보다 지우기 바빴다는 느낌이 든다.그러니 교과서에 독립운동가가 만든 노래나 쓴 글보다 친일 부역자가 만든 노래나 쓴 글이 더 많이 실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안중근,안창호 윤봉길 선생님과 같이 우리가 알만한 독립운동가가 남길 글이나 노래가 상당히 많다.그걸 찾아서 후대에 물려 줄 노력을 하지 않는 교육부 보훈부 문화체육부는 과연 한민족을 위하는 정부 기관인지 의심이 든다.김재호 독립운동가와 일가를 잘 이야기한 글http://www.obangmuseum.or.kr/index.php?sid=36&amp;amp;amp;wbb=md:view;uid:40;&amp;amp;amp;page=13대에 거친 항일운동]]></description>
			<pubDate>Tue, 07 Jul 2026 21:22:3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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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독립운동가 -김재호 삼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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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옥중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599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안중근 옥중가 악보 (출처: 민족문제연구소 https://www.minjok.or.kr/archives/76869)]]></description>
			<pubDate>Tue, 07 Jul 2026 21:22:4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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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옥중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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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해방의 노래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598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maypond13 해방의 노래조선의 대중들아 들어보아라우렁차게 울려오는 해방의 날을시위자가 울리는 발굽 소리와미래를 고하는 아우성 소리노동자와 농민들은 힘을 다하여놈들에게 빼앗겼던 토지와 공장정의의 손으로 탈환하여라제 놈들의 힘이야 그 무엇이랴]]></description>
			<pubDate>Tue, 07 Jul 2026 21:22:4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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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국기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598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백현주 유튜브광복군이 국기 게양할 때 부르던 노래]]></description>
			<pubDate>Tue, 07 Jul 2026 21:22: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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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국기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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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여명의 노래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584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대전 MBC독립을 여명으로 표현한 독립의 염원을 담은 노래작사가 이해평 본명은 이재현이나 백범 김구 선생님에게 18살 해평이라는 호를 받고 이후로 이해평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이해평 작사 (이명 / 이재두, 이재현) 한유한 작곡 (이명 / 한형석)처량한 땅 기나긴 밤도처에는 어둠이다우울에 잠겨 슬퍼말자어둠 지나면 새벽이니어둠은 물러 갈것이다어두운 밤 이미 지나먼동트기 시작한다 세우자우리 새로운 한국철굽에 밟힌 우리 땅에햇빛 비추니 동무들아 노력해출처: 이윤아 유튜브이해평 선생님 관련 경기일보 기사https://www.kyeonggi.com/article/201908151080652]]></description>
			<pubDate>Tue, 07 Jul 2026 00:08:2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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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여명의 노래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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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국제연합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편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536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9v07p2/pg_989The Special Representative in Korea (Muccio) to the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Rhee)주한 미국 대사(무초)가 한국 대통령 리에게Seoul, April 14, 1949.11949년1월4월14일 서울(대한민국)My Dear Mr. President: I have the honor to confirm the statements I made to you this afternoon that American diplomatic officers have been authorized to communicate to governments to which they are accredited that the present position of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with respect to Korea is as follows:친애하는 대통령에게:미국 외교관이 한국을 존중하는 미국 정부에 현재 위치를 임명받은 정부와 소통할 권위가 있다고 오늘 오후 말한 진술을 확인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1.It is the United States view that the United Nations has already made substantial progress toward restoring freedom and independence of the Korean people and that in the General Assembly Resolution of December 12 it has a formula for pursuing that progress to fruition.미국은 한국인의 자유와 독립은 회복하는 방향으로 이미 상당한 진행했고 12월12일 유엔 총회 결정에서 성취로 향한 진보를 추구하는 것이 방식이라는 것이 미국의 관점입니다.2.The United States believes consolidation of existing gains and success of further United Nations efforts in Korea will depend in large measure on firm and unwavering support by United Nation member states of December 12 Resolution and endorsement of Government of Republic of Korea contained therein.미국은 믿습니다,현존하는 이익과 더 나아간 국제 연합의 노력의 성공이 굳게 합쳐지는 것이12월12일 결의안의 국제 연합 구성원 국가들의 굳건하고 동요하지 않는 지지와 그 안에 담긴 한국 공화국 정부의 승인에 많이 의지할 것이라고.3.In this connection the United States feels every assistance and facility should be afforded the new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Korea established under the December 12 Resolution in its efforts to help the Korean people and their lawful government to achieve goal of free and united Korea, a goal to which the United States is convinced an overwhelming majority of Koreans of both north and south wholeheartedly aspire.이 연결에서 미국은 모든 지원과 시설이12월12일 결정에 따른 한국에 대한 새로운 국제 연합 위임을 감당하 수 있을 거라고 느낍니다,그 노력이 한국 국민과 그들의 합법적인 정부가 자유롭고 통일된 한국이 되는 목적을 성취하는 것을 도울 것에서,미국이 한국의 남북 모두 압도적인 다수를 설득하는 목적은 전심으로 열망합니다.4.United States position on troop withdrawal is based on the view that to withdraw its occupation forces prematurely or to permit their retention on Korean soil for any longer than is necessary would in either case be to jeopardize attainment of United Nations objectives in Korea. Accordingly, and in keeping with the spirit of the General Assembly Resolutions on Korea, the United States has during the past several months effected substantial reduction of its occupation forces in Korea. Such United States forces as still remain do so at the request of the Korean Government pending further development of its own rapidly improving security forces and, in accordance with the December 12 Resolution, will be withdrawn “as early as practicable”, hopefully in a matter of months, subject to consultation with the United Nations Commission.군대 철수에서 미국 입장은 이러한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점령 군대는 이르게 철수하거나 한국 땅에서 필요 이상으로 더 길지 않게 보류할 것을 허락하는 것은 어떤 경우든 국제 연합이 한국에서 목적의 달성을 훼손시키게 될 것입니다.따라서,국제 연합이 한국에 대한 결정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미국은 지난 몇 달간 상당한 한국 주둔 군대를 줄여 왔습니다.그러한 한국 정부 요청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미국 군대는 실행 가능한 빨리 철수할 것입니다, 12월12일 결정에 따라,급격하게 향상되는 국제연합군의 더 나아간 발전에 정해지지 않은채,희망적으로 몇 달 안에,국제 연합 위임과 상담에 달려 있습니다.5.In addition to supporting procedures set forth in December 12 Resolution, and quite apart from question of troop withdrawal, it is the United States intention to continue to provide economic, technical, military and other assistance regarded as essential to economic and political stability of the newborn Republic.12월12일 결정에서 정해진 지지하는 절차와 군대 철수 문제와 상당히 떨어진 것에 더해서 미국이 새로 태어난 공화국에 경제적 정치적 안정에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경제 기술 군대 그리고 다른 지원에 대한 제공을 계속하려는 합니다.6.The United States is convinced the main burden of responsibility for the failure of United Nations efforts so far to achieve final solution of Korean problem must be placed on the Soviet Union and its evident determination to subordinate legitimate aspirations and welfare of the Korean people to its own objective of Communist domination of the entire Korean peninsula. The United States believes further this obstacle can be overcome only through united support of United Nations decisions as envisaged in paragraph 2 above.미국은 국제연합이 한국 문제가 소련에 놓여야 한다는 마지막 해결책을 달성하려고 한 지금까지 노력의 실패와 종속되는 한반도 전체의 공산 지배에 반대하는 한국인의 합법적인 열망과 복지에 대한 분명한 결정대해 주요 책임을 인정합니다.미국은 더 믿습니다,이 장애물이 오직 국제연합의 결정의 연합된 지지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위의2번째가 예견한대로.[Page 990]한국의 문제는 소비에트 연방에 놓여져야만 합니다,그리고 분명한I would appreciate an expression of Your Excellency’s views regarding the United States position on troop withdrawal as outlined in paragraph four above.미국이 위 네 가지 절에 초안한 대로 군대 철수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 대한 당신의뛰어난 견해 표현에 감사합니다,I may add that as the United States regards the Korean problem as one of international concern, and in line with the general policy of keeping the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Korea fully informed of any action that may affect its activities, I am furnishing that Commission with a copy of this letter.2미국이 한국 문제를 국제적인 근심으로 여긴다는 것을 더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그리고 국제연합이 한국 위임을 유지하는 일반적인 정책과 같이해서,그 활동에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것에 대해 어떠한 행동이라도 완전히 알리는.이 편지의 복사본과 함께 위임을 제공합니다.Sincerely yours,존 무초는 윤봉길 홍커우 의거 때 죽을 뻔 했다. 당시 홍커우 공원에서 열렸던 행사는 일왕 생일 및 상하이 점령 기념식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존 무초는 윤봉길 배후라 믿은 김구 선생님을 철저히 미워했고, 이는 해방 후 초대 주미대사로 일하며 한국사에 큰 영향을 끼친다.출처: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48628)]]></description>
			<pubDate>Mon, 06 Jul 2026 13:54:3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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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제연합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편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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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새마을운동, 독자적 개발정책인가 식민행정의 계승인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5302</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기획/근현대사]새마을운동은 어디에서 시작됐나… 일제강점기 농촌진흥운동과의 연속성 논쟁1930년대 조선총독부 농촌정책과 1970년 새마을운동 비교… &quot;운영 방식은 유사, 목적과 시대적 배경은 달라&quot;[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1970년 출범한 새마을운동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농촌 근대화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새마을운동의 기원을 단순히 1970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농촌진흥운동과의 연속성 속에서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연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1930년대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조선 농촌 경제가 급격히 악화되자, 조선총독부는 1932년부터 농촌진흥운동을 본격 추진했다. 표면적으로는 농촌 생활 개선과 경제 회복을 내세웠지만, 식민지 통치를 안정시키고 농업 생산력을 유지하려는 목적도 함께 담겨 있었다.농촌진흥운동은 마을 단위 조직을 중심으로 추진됐다. 총독부는 지역 지도자를 선발해 주민을 조직하고, 공동노동과 절약, 생활개선, 근로 정신을 강조했다.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했지만, 실제 운영은 행정기관이 주도하는 하향식 방식이었다.1970년 박정희 정부가 시작한 새마을운동 역시 마을 단위 조직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정부는 전국 마을에 시멘트를 지원하고, 성과를 낸 마을에는 철근 등 추가 자재를 배분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유도했다. 새마을지도자를 육성하고 '근면·자조·협동'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주민 참여를 강조한 점도 특징이었다.이 같은 운영 방식 때문에 일부 역사학자들은 새마을운동이 조선총독부의 농촌진흥운동에서 사용된 행정기법과 주민 조직 방식을 상당 부분 계승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마을 단위 조직 운영, 지도자 육성, 공동노동, 생활개선 운동, 국가 주도의 주민 동원 등에서는 적지 않은 유사성이 확인된다.그러나 두 정책을 동일한 운동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농촌진흥운동은 식민지 조선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정책이었던 반면, 새마을운동은 대한민국 정부가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 기반시설 확충과 소득 증대를 목표로 추진한 국가 개발 정책이었다는 점에서 목적과 정치적 배경이 다르다는 것이다.실제로 새마을운동은 도로 포장, 교량 건설, 지붕 개량, 상하수도 정비 등 생활 인프라 개선과 농가 소득 증대를 주요 목표로 삼았으며, 이후 도시와 공장, 학교 등으로도 확대됐다. 반면 농촌진흥운동은 식민 통치 체제 유지와 농촌 안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역사학계는 따라서 두 정책의 관계를 흑백논리로 접근하기보다 운영 방식의 유사성과 시대적 차이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부는 새마을운동을 일제 정책의 연장선으로 해석하고, 다른 일부는 한국 사회의 독자적인 발전 모델로 평가한다. 현재는 행정기법과 조직 운영에서 일정한 연속성은 인정하면서도 정책 목적과 역사적 맥락은 구분해야 한다는 견해가 비교적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역사 연구자들은 정치적 평가를 떠나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농촌진흥운동요강」, 「조선총독부 관보」, 「조선농회보」와 대한민국 정부의 새마을운동 지침, 초기 정책 문서 등은 두 정책을 비교·연구하는 핵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증거 및 1차 사료- 「조선농촌진흥운동요강」- 「조선총독부 관보」- 「조선농회보」- 대한민국 정부 「새마을운동 지침」- 새마을운동 초기 정부 훈령- 새마을운동중앙회 발간 초기 자료1. 새마을운동의 뿌리는 어디인가… 일제 농촌진흥운동과의 연속성 논쟁2. 새마을운동, 독자적 개발정책인가 식민행정의 계승인가3. 1932년 농촌진흥운동과 1970년 새마을운동…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랐나4. 역사학계가 보는 새마을운동의 기원… 1차 사료로 본 진실5. 새마을운동과 일제 농촌정책, 닮은 점과 다른 점#새마을운동 #농촌진흥운동 #박정희 #조선총독부 #현대사 #한국사 #식민지정책 #역사기획 #약산소식지]]></description>
			<pubDate>Sat, 04 Jul 2026 13:58:1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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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복수회포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518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전라남도교육청이성식 작곡1 단군자손 우리소년 국치민욕 네 아느냐?- ‘국권 회복하여 세상에 태극기 높이 날리세’一. 동반구 아주(亞洲)에 우리 대한은 일면은 육지요 삼면은 수(水)로다가려한 강산이 팔만여방리 분명한 반도를 그려냈도다쳥년아 쳥년아 한국 쳥년아 몽롱한 깊은 잠을 속히 깨어서애국심을 분발하여셔 이 좋은 강산을 보전합시다二. 불한코 불열한 온대 지방에 귀중한 천조물 어찌 많구나금수와 어별도 불가승수며 금은과 동철이 구산 같도다三. 오백년 누리던 종묘사직과 사천년 유래한 조종강토를만만세 영원이 보젼하려면 실제상 교육밖에 다시 없겠네四. 자강의 졍신과 독립사샹을 이 천만 민족이 각기 다하여민지가 발달하고 국권회복하여 세상에 태극기 높이 날리세-「운동」, 『창가집』-1914. 국가보훈처, 1996출처: 전라매일 (http://m.jlmaeil.com/view.php?idx=244677)]]></description>
			<pubDate>Sat, 04 Jul 2026 13:53:5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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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복수회포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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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안창호 선생님의  소년남자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518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대전 MBC 오빠딸이 부른 소년남자가도산 안창호 작사, 이상준 작곡1. 무쇠 골격 돌 근육 소년 남자야　 애국의 정신을 분발하여야　 다다랐네 다다랐네 우리 나라에 소년의 활동시대 다다랐네　 萬人 敵對 연습하여 후일 戰功 세우세　 절세영웅 대사업이 우리 목적 아닌가2. 忠烈士의 더운 피 순환 잘되고　 독립군의 팔다리 민활하도다　 벽력과 斧鉞이 唐前하여도　 우리는 조금도 두려움 없네3. 海戰과 陸戰의 모든 유희를　 차제로 흥미 있게 승부 決하니　 개선문 뚜렷이 열리는 곳에　 勝戰鼓를 울려라 둥둥둥둥둥　출처: 우리역사넷(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45_0020_0030_0050_0020)]]></description>
			<pubDate>Sat, 04 Jul 2026 13:53:5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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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안창호 선생님의  소년남자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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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amp; quot;75년 만에 되찾은 무죄, 이제는 편히 잠드소서&amp; quot;… 독립운동가 학암 이관술 선생 서거 76주기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515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추모]&quot;75년 만에 되찾은 무죄, 이제는 편히 잠드소서&quot;… 독립운동가 학암 이관술 선생 서거 76주기조국 독립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항일투사… 전쟁의 비극 속 희생, 뒤늦게 되찾은 역사적 명예억울한 누명은 벗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삶… 서거 76주기 맞아 독립운동 정신 다시 새긴다.[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1950년 7월 3일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생을 마감한 항일독립운동가 학암(鶴巖) 이관술 선생이 2026년 7월 3일 서거 76주기를 맞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선생은 해방 이후 시대의 혼란 속에서 억울한 희생을 당했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사법적 명예를 회복했다.이관술 선생은 울산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안락한 삶 대신 조국의 독립을 선택했다. 교사 생활을 하며 민족의식을 키웠고, 이후 비밀 항일조직 활동과 경성콤그룹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에 참여하며 일제가 가장 경계한 항일운동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활동했다.일제강점기 동안 수차례 체포와 투옥, 혹독한 고문을 겪으면서도 독립운동의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자신의 재산과 청춘을 모두 조국을 위해 바쳤다. 독립을 향한 신념은 어떤 탄압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그러나 광복은 선생에게 새로운 희망이 아닌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졌다.1946년 미군정 시기 발생한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핵심 인물로 기소된 선생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7월 3일,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적법한 재판 절차 없이 희생됐다.그 뒤 수십 년 동안 이관술 선생은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주모자'라는 오명을 안은 채 역사 속에 남겨졌다.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법원은 재심에서 당시 수사와 재판 과정의 위법성을 인정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를 통해 선생은 서거 75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고 역사적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이번 재심은 한 독립운동가 개인의 명예 회복을 넘어 국가권력에 의해 왜곡될 수 있었던 역사를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이관술 선생의 삶은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항일운동가의 헌신과 해방 이후 이어진 국가폭력의 비극, 그리고 뒤늦게 실현된 사법 정의를 함께 보여주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상징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역사는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바로 서지 않는다. 객관적인 사료와 법적 판단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이어질 때 비로소 정의는 완성된다.서거 76주기를 맞아 약산소식지는 조국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학암 이관술 선생의 숭고한 희생과 정신을 깊이 기리며, 그 이름이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한 페이지에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사료 및 근거대한민국 법원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재심 판결국가보훈부 독립운동 공훈자료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국가기록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관련 기록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관련 조사자료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 사건 관련 조사자료#이관술 #학암이관술 #독립운동가 #서거76주기 #항일독립운동 #골령골 #조선정판사사건 #재심무죄 #역사정의 #약산소식지]]></description>
			<pubDate>Fri, 03 Jul 2026 17:47:5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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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한형석 음악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507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김경한 김진수 이주현 래플코프의 압록강 행진곡출처: 대전MBC 하윤주의 압록강행진곡이범석 장군이 이끄는 한국광복군 제2지대 활동시 만든 노래]]></description>
			<pubDate>Fri, 03 Jul 2026 17:41:5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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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한형석 음악가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youtube.com/watch?v=igGQLdHGIKw</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507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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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한형석 음악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507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의 흘러가는 저 구름]]></description>
			<pubDate>Fri, 03 Jul 2026 17:41:5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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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한형석 음악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506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윈다 (광복군 제 2지대 윈다)광복군 제 2지대가총 어깨 메고 피 가슴에 뛴다우리는 큰 뜻 품은 한국의 혁명 청년들민족의 자유를 쟁취하려고 원수 왜놈 때려 부시려희생적 결심을 굳게 먹은 한국 광복군 제 2지대앞으로 끝까지 전진 앞으로 끝까지 전진조국 독립을 위하여 우리 민족의 해방을 위해]]></description>
			<pubDate>Fri, 03 Jul 2026 17:41:51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독립운동가 한형석 음악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5062</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플랫폼 스테레오 여명지가]]></description>
			<pubDate>Fri, 03 Jul 2026 17:41:5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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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기획/현대사]  반민족행위는 어떻게 규정되나… 역사적 평가와 법적 기준은 무엇인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94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기획/현대사]반민족행위는 어떻게 규정되나… 역사적 평가와 법적 기준은 무엇인가친일반민족행위 특별법, 행위 중심으로 판단역사적 진실 규명과 사회 통합 위한 객관적 접근 필요[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광복 이후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친일반민족행위와 역사 청산 문제는 대한민국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반민족행위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성향이나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당시의 사료와 법률에 근거한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대한민국은 광복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적극 협력한 행위를 규명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특히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은 친일반민족행위의 범위와 조사 대상, 진상규명의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법률은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로 독립운동을 탄압하거나 방해한 행위,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을 체포·고문·학대한 행위,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조약 체결에 적극 협력한 행위, 일본 제국으로부터 작위나 훈장을 받고 식민통치와 침략전쟁 수행에 적극 협력한 행위 등을 규정하고 있다.광복 직후인 1948년 제헌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는 친일 행위를 조사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 출범했지만, 정치적 갈등과 외부의 방해 속에서 활동이 중단되면서 당초 목표를 충분히 달성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역사학계는 반민족행위를 평가할 때 단순히 생계를 위해 제한적으로 협력한 사례와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식민통치와 독립운동 탄압에 적극 가담한 사례를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행위의 적극성, 영향력, 책임의 정도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역사 연구의 기본 원칙이라는 것이다.또한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규명은 특정 정치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독립운동의 가치를 계승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도 강조된다. 과거사를 정확히 기록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전하는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역사 문제를 다룰 때 감정이나 이념보다 검증된 사료와 법적 기준을 바탕으로 접근해야 사회적 신뢰와 국민 통합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면 역사적 평가는 보완될 수 있지만,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연구와 기록이라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공통된 견해다.반민족행위에 대한 올바른 규명은 과거를 되풀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더욱 굳건히 세우기 위한 역사적 과제로 평가받고 있다.#반민족행위 #친일반민족행위 #반민특위 #대한민국현대사 #역사바로세우기 #약산소식지]]></description>
			<pubDate>Fri, 03 Jul 2026 07:02:05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민주항쟁 재단이 자유를 억압했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89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뮤즈스 - 부마민주항쟁에서 바꾸라고 했던 곡 ‘늑대가 나타났다.’6월30일 예술인 이랑 관련 판결이 나왔다.지난2022년10월 부마민주항쟁 국가 기념식을 앞두고 초청 가수가 정부로부터 공연곡 변경을 강요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한 결과가 나왔다.이랑이 제기한 소송을 법원은 예술인 인격을 침해한 불법 행위라고 판단했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항소를 포기했다는 내용이었다.‘부마민주항쟁’재단이6월10일 공연을 하는데 바꿔 달라 요청한 곡은‘늑대가 나타났다.’는 노래였다.가수 이랑이 만든 노래로,가난한 이들이 겪는 현실에 대한 젊은 예술가의 느낌을 잘 표현한 노래였다.가사를 보면 현실적이고 철학적이라는 느낌이 든다.예술이기에 실제 사실일수도 있고,본인의 생각을 닮은 사실일 수도 있다.그러나 노래를 들으며 중세 시대도 떠오르고,자본주의 책도 떠오르고,철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다음 부분이었다.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늑대가 나타났다)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라는 것은 많은 철학자가 말해 온 것이다.히틀러 나치 정부를 겪고 나서 특히 반복해서 생각하는 주제 중 하나이다.민주주의에 대해 논할 때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특히 나치를 겪은 프리드리히 구스타프 에밀 마르틴 니묄러(독일어: 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öller)목사가 쓴 시‘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가 떠오르는 부분이었다.이 시는 꼭 니묄러 목사가 쓴 것이 아니라,다른 이가 썼다는 설도 있다.구전되다가 보니 변형된 형태가 많다.그러나 니묄러 목사 본인이 가장 인정하는 형태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quot;(독일에서)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이어서. . .그들이 내게 왔을 때. .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quot;6.10민주항쟁에 어울리는 노래를 왜 재단은 반대했는지,법원은‘윤석열 심기 경호’로 판단했다.노래에 나오는 늑대가 대통령을 떠올리기 해서 참석할 지 모르는 대통령을 위해 자체 검열에 들어간 것이다.결국 이랑 음악가는 무대에 오르지 못했고,총감독마저 교체되었다고 한다.부마민주항쟁은 부산 마산에서 독재에 맞서 일어난 민주항쟁이다.자유를 외치기 위해 목숨을 내놓던 사람을 기리는 재단에서 자유를 짓밟다니 모순이라고 생각한다.재단 누리집 창립선언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창립선언문 출처 (http://buma1979.or.kr/%ec%b0%bd%eb%a6%bd%ec%84%a0%ec%96%b8%eb%ac%b8/ )40년 전의 부마민주항쟁이 자유와 평등,그리고 인권신장을 위하여 폭압적 군사독재에 항거한 운동이라면서 예술가 자유를 억압한다.이 재단은 그냥 부마민주항쟁과 관련 없는 재단이 아닌지 생각까지 들었다.최근 한국 민주 운동사에 중요한 인물을 기리는 재단이 문제가 되었다.그 재단은 그 인물을 기린다면서 그를 모욕하는 글을 방치해왔다.재단 관계자 중에 고인을 모독하는 발언을 한 이가 있을 정도였다.최근에 문제가 불거진 것이 재단에서 돌아가신 그분을 추모하면서 가족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그리고 가족 관계자가 심정을 토로하는 글을 사회적 연결망에 올리면서 논란이 되었다.오래전부터 고인 모독에 대해 어떤 조치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속된 말로‘팔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재단은 돌아가신 분을 팔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구나’하는 생각까지 했다.대통령 심기 경호를 위해 부마 민주 항쟁 정신까지 파괴하면서 예술가를 억압하는 모습에서,부마민주항쟁재단도 그렇게 달라보이지 않는다.한국에는 왜 제대로 정신을 지켜가는 재단을 찾기 힘든지 다음 편에‘버트란드 러셀’기리는 단체 관련 이야기를 언제 해 보려 한다.노무현 일가가 말하는 노무현 재단]]></description>
			<pubDate>Thu, 02 Jul 2026 22:23:2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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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주항쟁 재단이 자유를 억압했다.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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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정치]  이재명 대통령 국정 지지율 60% 안팎 유지… 경제·민생 성과 속 지역·세대별 온도차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89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정치]이재명 대통령 국정 지지율 60% 안팎 유지… 경제·민생 성과 속 지역·세대별 온도차취임 후 최고 65.5% 기록… 최근에도 58% 안팎 안정세경제·민생 정책 긍정 평가, 부동산·정치 현안은 과제로 남아[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58~65% 수준을 유지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경제·민생 정책과 일부 외교 행보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가운데, 부동산 정책과 정치 현안을 둘러싼 논란은 부정 평가 요인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2026년 2월 조사에서는 국정수행 긍정 평가가 64%를 기록했으며, 4월에는 취임 이후 최고치인 65.5%까지 상승했다. 이후 7월 조사에서도 약 58%의 지지율을 유지하며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전문가들은 물가 안정과 민생 지원 정책, 경제 회복 기대감 등이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를 이끌었다고 분석한다. 일부 조사에서는 부동산 정책과 외교 활동도 지지율 상승 요인으로 꼽혔다.반면 경기 회복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의견과 부동산 정책 효과에 대한 엇갈린 평가, 정치 현안을 둘러싼 갈등은 부정 평가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지역별로는 호남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으며, 수도권과 충청권에서도 비교적 높은 평가가 나타났다. 반면 영남권에서는 전국 평균보다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지역별 차이를 보였다.연령별로는 30~40대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20대는 평균 수준의 지지를 보였다. 반면 60대 이상에서는 다른 연령층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율이 조사됐다.정당 지지도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40%대 중후반 수준으로 선두를 유지한 반면, 국민의힘은 20~30% 수준을 기록하며 격차를 보였다.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등 기타 정당은 한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다만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기관, 조사 시기, 표본 구성, 질문 방식 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개별 조사 결과보다는 장기적인 추세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향후 이재명 정부의 국정 지지율은 경제지표 변화와 민생 정책의 성과, 부동산 정책, 정치 현안 등에 따라 변동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이재명 #국정지지율 #여론조사 #경제정책 #민생정책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치뉴스]]></description>
			<pubDate>Thu, 02 Jul 2026 22:08:0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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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기획/사회]  관변단체 운영 논란, 어디까지 사실인가… 정치적 중립·보조금 집행 투명성 요구 커져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882</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기획/사회]관변단체 운영 논란, 어디까지 사실인가… 정치적 중립·보조금 집행 투명성 요구 커져온라인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 확산… 사실 확인과 제도 개선 요구 동시에보조금 집행·회계 투명성 강화 필요성 꾸준히 제기[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일부 관변 성격 단체들의 정치적 중립성과 보조금 운영 문제를 지적하는 인포그래픽이 확산되면서 공공보조금 관리와 시민단체 운영의 투명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공유되고 있는 이미지에는 특정 단체들을 거론하며 정치적 편향, 조직 운영, 회계 처리, 보조금 집행 등에 관한 다양한 의혹과 비판이 담겨 있다. 다만 이미지에 포함된 개별 주장들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어 사실 확인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다만 이러한 논란과 별개로 시민단체와 공익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 및 지방보조금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전문가들은 보조금을 지원받는 단체일수록 정치적 중립성과 회계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회계감사 강화와 정기적인 정보 공개, 사업평가 제도 확대 등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특히 공공재원이 투입되는 단체는 예산 집행 내역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외부 회계감사와 행정기관의 감독을 통해 부정 사용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또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거나 보조금을 목적 외로 사용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에는 관련 법령에 따라 보조금 환수와 행정처분,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도록 제도가 마련돼 있다. 실제 위법 여부는 감사와 수사, 재판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판단돼야 한다.전문가들은 온라인에서 확산되는 각종 의혹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을 주문한다. 공익적 문제 제기는 필요하지만,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단정적으로 유포할 경우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결국 이번 논란은 특정 단체를 넘어 공공재정이 투입되는 모든 기관과 단체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과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철저한 감사와 객관적인 검증,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지속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관변단체 #국고보조금 #지방보조금 #회계투명성 #정치적중립 #시민단체 #약산소식지]]></description>
			<pubDate>Thu, 02 Jul 2026 20:28:1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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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획/사회]  관변단체 운영 논란, 어디까지 사실인가… 정치적 중립·보조금 집행 투명성 요구 커져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img.ehom.kr/news/2026/07/02/3a03ddcf6a1ab19db6a7b7c3df3ff083203115.png</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88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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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사회/사법]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20년… 공식 사과 있었지만 &amp; quot;정의는 끝났나&amp; quot;는 물음 여전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88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사회/사법]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20년… 공식 사과 있었지만 &quot;정의는 끝났나&quot;는 물음 여전밀양시, 2024년 대국민 사과… 시민들은 &quot;사과보다 책임이 먼저&quot;소년법 적용과 낮은 처벌 논란, 지금도 이어지는 사법 불신[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2004년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2024년 밀양시가 피해자와 국민에게 공식 사과했지만, 일각에서는 &quot;사과만으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없다&quot;며 사법 정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당시 사건은 울산의 여중생이 밀양으로 유인된 뒤 다수의 가해자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건으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수사 결과 일부 가해자는 형사처벌을 받거나 소년법에 따른 보호처분을 받았지만, 당시 대부분이 미성년자였던 점 등이 고려되면서 처벌 수위가 낮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이 때문에 사건은 오랫동안 &quot;소년법의 한계&quot;와 &quot;성범죄 처벌 강화&quot;를 요구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돼 왔다.2024년에는 한 유튜브 채널이 사건 관련 인물들을 공개하면서 사건이 다시 사회적 관심을 받았다. 이후 밀양시는 피해자와 국민에게 공식 사과하며 지역사회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그러나 국민 여론은 엇갈렸다.온라인과 시민사회에서는 &quot;20년 만의 사과는 의미가 있지만, 국민이 느끼는 정의 실현과는 거리가 있다&quot;는 반응이 이어졌다. 특히 당시 처벌 수준이 국민 법감정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성범죄에 대한 소년법 적용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도 다시 제기됐다.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사법제도와 피해자 보호 체계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성범죄 피해자 보호 강화, 재범 위험 범죄자 관리, 소년범 제도 개선, 공소시효와 처벌 기준 등 여러 과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만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법조계에서는 한편으로 적법절차와 미성년자 보호라는 법 원칙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다만 이러한 원칙이 국민이 체감하는 정의와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20년이 흐른 지금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단순한 과거 범죄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법 정의와 피해자 보호 제도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지를 묻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밀양집단성폭행사건 #사법정의 #소년법 #피해자보호 #제도개선]]></description>
			<pubDate>Thu, 02 Jul 2026 20:08:23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범죄자 신상공개 확대 요구 확산…&amp; quot;국민의 알 권리와 피해자 보호, 제도 개선 필요&amp; quot;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87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사회/사법]범죄자 신상공개 확대 요구 확산…&quot;국민의 알 권리와 피해자 보호, 제도 개선 필요&quot;법원 제출 탄원서, 재범 위험 범죄자 신상정보 접근성 강화 촉구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재조명 속 공공안전과 개인정보 보호 균형 논의[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재범 위험성이 높은 강력범죄자와 성범죄자의 신상공개 제도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법원에 제출된 한 탄원서가 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확대와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탄원서 작성자는 현행 제도가 범죄자 신상정보에 대한 국민의 접근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어 국민이 자신과 가족을 보호할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성범죄와 아동 대상 범죄 등 재범 우려가 큰 범죄의 경우 공공의 안전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이 같은 논의는 최근 다시 주목받은 2004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과 맞물려 더욱 확산되고 있다. 사건 관계자들의 신상이 유튜브 등 온라인을 통해 공개되는 과정에서 국민의 알 권리와 사적 제재, 개인정보 보호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탄원서에는 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를 위해 국민이 필요한 정보를 합법적인 절차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작성자는 피해자와 잠재적 피해자의 안전이 최우선으로 보호돼야 하며, 공공의 안전과 충돌하는 경우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또한 현행 제도가 피해자 보호보다 범죄자의 개인정보 보호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다만 법조계와 전문가들은 범죄자 신상공개는 헌법상 개인정보 보호와 인격권, 국민의 생명·신체 보호라는 공익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과 성폭력처벌법 등에 따라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신상공개가 가능하며,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적 신상공개는 명예훼손이나 개인정보 침해 등 또 다른 법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이번 탄원서는 단순히 특정 사건을 넘어 우리 사회가 범죄자 신상공개 제도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범죄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와 개인정보 보호 및 적법절차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가치가 충돌하는 가운데, 보다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범죄자신상공개 #밀양집단성폭행사건 #국민알권리 #피해자보호 #사법제도]]></description>
			<pubDate>Thu, 02 Jul 2026 19:32:18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공직 징계 사각지대 논란…제도 개선 요구 커져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87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공직사회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징계 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현행 공무원 징계 제도는 일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운영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제도적 허점으로 인해 비위 행위에 대한 책임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문제는 징계시효다. 국가공무원법과 관련 규정에는 징계 요구가 가능한 기간이 정해져 있다. 이 때문에 비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거나 장기간 수사가 진행될 경우 시효가 지나 징계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수사기관과 소속 기관 간 정보 공유도 개선 과제로 꼽힌다. 공무원이 수사를 받는 경우 해당 사실이 기관에 늦게 전달되면 징계 절차 착수가 지연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적절한 조치가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수사 결과와 징계 절차를 보다 신속하게 연계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된다.형사처벌과 행정상 징계가 별도로 운영된다는 점도 논란이다. 형사재판은 법률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이고, 징계는 공직윤리와 직무 책임을 판단하는 행정 절차다. 전문가들은 두 제도의 목적이 다른 만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징계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또한 기소유예나 선고유예 등 형사처분이 내려진 경우에도 공직자의 품위 유지 의무와 국민 신뢰를 고려한 별도의 징계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전문가들은 공직사회에 대한 신뢰는 엄정한 책임과 공정한 절차가 함께 작동할 때 확보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징계시효 제도 개선 여부를 비롯해 감사 기능 강화, 수사기관과 행정기관 간 정보 공유 확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징계 기준 마련 등 제도 개선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공직사회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국민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description>
			<pubDate>Thu, 02 Jul 2026 18:36:52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야구부 선수보다 어른들이 더 잘못했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84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전설의 타이거즈 (직접 5.18을 겪은 야구 선수 이야기)최근 고등학교 야구 선수가 저지른 5. 18 민주화운동 모욕 행위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을 지켜 보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님 말씀이 명언이라는 생각을 또 하게 되었다.개인적으로 야구부 학생보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어른을 탓하고 싶다. 그들은 그저 평소대로 하던 행동일 수 있고, 그 행동은 누구에게도 제재 받지 않고 하던 행동일 수 있다. ‘그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어른이 주변에 있기는 커녕 부추겼을 수도 있다.부추기는 어른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이명박 박근혜 시절 국정원이 일어났던 ‘민간인 댓글부대’사건이다. 국정원은 세금으로 국정원 바깥에 댓글 부대를 운영하며 사회 분위기를 원하는 데 몰고 갔다.이 과정에서 5. 18 민주화 운동과 같은 민주 항쟁을 조롱하는 내용물이 돌아다니며 재미있는 것으로 부추겨졌다. 어린 아이들은 별 생각 없이 그런 것을 보며 재밌다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들이 만들어서 유포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인터넷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 아이들은 뜻도 모르는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타잔이 10원 짜리 팬티를 입고, 20원 짜리 칼을 차고 노래 부른다. 아아아~.’ 그런 가사의 노래였다. 어른이 되어서 그 노래 가사를 생각해 보면 저질스럽기 이를 데 없지만, 친구들과 같이 부르면서 낄낄거리던 기억이 있다.친구나 누군가를 비하하는 말을 정확한 뜻을 모르기에 생각없이 하기도 했다. 하고 나서 부모나 어른한테 혼나고 다시는 쓰지 않게 된 말이 꽤 많았던 기억이 있다.이런 경우는 아이들이 백지장 같은 존재라는 말이 맞을 수 있다. 아무 것도 모르기에 그냥 재밌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는 누군가가 정확히 가르쳐 주면 다시는 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이들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이렇게 주변에서 말해주는 사람 없이 사교육과 입시에 몰리며 나이만 먹다 보니 이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생겨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남을 조롱하는 말을 쓸 수 있는 것도 5.18 과 같은 민주화 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독재 시절 술 먹다가 별 생각 없이 한 말로 기무사 삼청교육대와 같은 곳에 끌려가 끔찍한 일을 당한 사람이 많다.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 가운데 생존자들이 일부 증언을 하면서 많은 사실이 알려졌다.5. 18 민주화운동 역시 독재 시절 일어난 일이라 언론이 통제되었다. 광주는 외부와 차단되어 고립되었고, 독재는 분단을 이용하여 같은 민족을 학살하고 고문하며 독재 정부 자리를 만들었다.그 가운데도 용기 있는 몇몇 시민들,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와 같은 외국인을 포함한 분들이 기록을 남겨서 현재 광주 5. 18 민주화 항쟁은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5.18 민주화 항쟁 직후는 많은 이들이 진실을 몰랐고, 조비오 신부님을 비롯한 일부 용기 있는 사람이 서구 언론에 제보해서 일부 한국인도 진실을 알 수 있었을 뿐이다.이재명 대통령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자신도 전단지를 뿌리는 사람들 덕에 진실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시민이기에 당연히 광주에 폭동 같은 것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일상을 살았다. 그러다가 전단지를 읽으면서 자기가 알던 사실에 뭔가 맞지 않는 것을 느끼고 알아보면서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인간이라면 의문을 가지고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질문 없이 하나의 답만 가지고 사는 이는 독재에 어울리는 인간이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생각하는 시민을 위한 정치 제도이다.한국은 서구의 입장에서 보면 집단주의의 대표적 국가이다. 서구는 개인주의로 한 명의 시민이 각자의 의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한국은 ‘우리’라는 말이 대표하는 것처럼, 내가 속한 집단의 의견을 쫓아가는 경향이 크기에 내 의견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아마 국정원 댓글부대는 그런 점을 잘 파악하고 만든 조직일 것이다. 다수가 우기는 사실에 대해 소수가 목소리 내기 어렵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그런 댓글부대가 뭉쳐서 마치 자신들이 다수이고 우세한 양 분위기를 장악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수의 목소리는 그들의 공격에 묻히거나 도망가게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국정원 댓글부대를 만든 이도 문제이고, 문제점을 발견하고도 해결 안 한 이들도 문제이다. 댓글부대 핵심 인물은 별 처벌 없이 잘 살고 있다. 그게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문제이다. 인과응보가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국가가 이런 일에 대한 처벌을 공정하게 하지 않으면 사회가 어지러워진다.이런 부정의한 사회에 대해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반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해 같이 부정의해져서 잘 살던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어렵게 살던지이다. 부정의해서 잘 살이들은 일제강점기 부역자 독재 부역자 등 많다. 그러니 굳은 신념 없는 이들은 쉽게 부정의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미성년 아이들을 탓할 수 없다.신념을 지키며 옳은 목소리를 내던 사람의 비극적 결말을 한국인은 잘 안다. 그래서 옛날 어른은 ‘앞에 나서지 마라.’ ‘모난 돌 정 맞는다.’는 말을 하며 아이를 키웠다. 김주열 열사 이한열 열사 등 부정의와 맞서다가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젊은 사람이다.한국은 이런 안타까운 일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역사 교과서 속 근현대사는 짧기 그지 얺고, 읽어야 할 위인에는 독립운동가 민주화 운동 한 분 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 한민족을 위하던 과학자 경제인 법률인 문학인도 많은데 일제부역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서 어른이 되서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분노했던 적도 있다.그런 나라에서 미성년 야구부원들, 야구 훈련하기도 바빴던 학생들이 제대로 역사를 알 시간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인터넷에서 왜곡된 역사 정보를 얻을 때 제대로 이야기하는 어른이 있엇는지도 묻고 싶다.그들에게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할 필요가 있지만, 그들 탓을 하기 전에 그런 환경을 만든 어른을 탓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혐오 문화를 만든 국정원을 내버려둔 것과, 근현대사 교육에 신경 쓰지 않은 교육부와 이승만 동상을 방치시킨 보훈부등 혼나야 할 대상은 제 일을 안한 어른이다. 특히 세금으로 운영되는 모든 관련자는 더 강하게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금은 국민이 자신을 대신해 일해줄 사람을 위해 주는 것인지, 국민의 뜻을 어기며 제 이익을 챙기는 사람을 위해 주는 것이 아니다. 제 일을 못하면 예산을 지원해 줄 필요가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국정원 댓글부대보안사 -기무사 역사5. 18 망언 유튜버독일이 처벌을 철저히 하는 이유]]></description>
			<pubDate>Thu, 02 Jul 2026 18:27:0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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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야구부 선수보다 어른들이 더 잘못했다.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youtube.com/watch?v=mzpOBVFg1s0</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84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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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지자체가 하는 좋은 체험 활동 -반려 수목 갖기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76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필자 집에 입양된 꽃베고니아울산 수목원에서 운영하는‘반려수목 갖기’체험 활동 덕에 예쁜 꽃베고니아를 입양했다.지자체에서 조금만 신경 쓰면 시민들을 행복하게 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울산은 태화강 정원 박람회 덕분인지 여러 가지 식물 관련 활동이 다양하다.울산 수목원은 태화강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대운산에 있다.내원사 계곡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휴양지이다.수목원 가는 길은 공사가 한창이다.시민들의 민원으로 길을 넓히는 중이란다.자연을 만나러 가는 길이 굳이 넓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선진국일수록,살기 좋은 나라일수록 자연 환경에 대한 생각을 다르게 하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영국의 유명 휴양지 가는 길도, 2차선이지만 버스가 양방으로 동시에 지나가기 힘들어서 양보하며 지나가야 했다.코스타리카 몬테베르데는 주요 도로는 전부 포장된 길이 아니었다.한국인은 편리함만 추구하며,터널을 아무렇지 않게 뚫고 길 확장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제주도는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중산간에 고속도로 못지않은 길을 가지고 있다.많은 한국인은 이렇게 잘 포장된 직선 도로를 칭찬한다.자연 보호에 대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이다.다행인 것은 수목원 내부는 관계 차량 외 출입 금지이다.수목원 근처 넓은 부지에 주차장이 잘 되어 있다.비가 많이 내려서 수목원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게 아쉬워서 다음에 좀 더 여유롭게 보고 싶다.체험 활동은 식물 하나를 골라 화분을 만드는 것이었다.원래 바깥에서 체험하는 활동도 있었지만,비 때문에 내부 체험 활동을 늘렸다.강사님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 경험이 많아서 다양한 활동을 알고 있었다.자연을 보고 싶어 야영 갔지만,막상 가서 할 일이 없어 전자 기기와 노는 이들에게 다양한 활동 거리가 될 만한 것 같다.전자 기기에 익숙해지기 전에도 인간은 다양한 놀거리가 있었다.문명이 시작된 이후에도 인간은 자연을 벗 삼아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놀이를 즐겼다.그래서 나온 것이 별자리 신화이고 다양한 전설들이라고 생각한다.고대인들이 남다른 이야기꾼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예리한 관찰자이고 긴 밤에 잠들지 못하는 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전설이 생겼다고 생각한다.집에서 비전문가로 식물을 키워보려 한 적이 있지만,이번 활동 덕에 좀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우리 집 화분이 뭔가 부족했는데 그 원인을 알게 된 것 같다.이번 체험 활동은 꽃베고니아와 수국 중 고를 수 있었는데 분기별로 다르다고 한다.참고로 이번 분기는 주말 예약이 가득 찰 만큼 인기가 많다고 한다.누구나 식물을 키우고 싶지만,시작이 어려운 것 같다.필자도 키우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몇 번 실패하고 포기했다.지인 덕에 시작한 식물 키우기가 잘 되어서 그나마 용기가 생겼지만,아직도 초보 식물 집사에 불과하다.지자체에서 시민 건강을 위해 정신 상담 전화 같은 것을 운영한다.개인적으로 그런 것보다 이런 식물 키우는 기회를 가지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지 생각해 본다.식물 관련 정보를 찾다 어떤 블로거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직장을 그만두고 여러 악조건이 겹쳐서 우울증이 왔을 때,우연히 바질을 키우기 시작했다.무럭무럭 크는 바질을 보고 돌보면서 바빠졌고 우울증을 극복했다는 이야기였다.식물을 키우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관심 부족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강사님이 밥 먹을 때마다 괜찮은지 살펴보라고 이야기했다.물이 부족해도 과해도 문제이고,햇빛이 과해도 부족해도 문제이다.식물은 꾸준한 보살핌이 필요하다.그래서 식물을 키울 때 꾸준한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그러나 바쁜 현대인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식물을 잊어버리고 살 수 있다.그러다 어느 날 생각나서 보면 말라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밥 먹을 때마다 괜찮은지 살펴 보고 말도 걸어 보는 습관을 가져야겠다.사실 필자는‘밥 먹을 때마다 복습하세요.’라는 말을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꼭 한다.어른을 대상으로 주로 영어 수업하는데,사실 직장인은 바빠서 공부할 시간을 내기 힘들다.그래서‘밥 먹기 전5분만 복습하고 오세요,’라고 부탁한다.초보 영어 실력일 때 거의 매일 라디오와 책 영영한 사전을 끼고 살면서 공부했다.영어 공부를 하려 그런 것은 아니고 팝송이 좋아서 그 표현을 알기 위해 공부하던 시절이었다.그런데 어느 순간 귀가 들리고 말이 되는 경험을 했다.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게 쉽지 않다.고대 문명인과 달리 지루할 틈이 없는 현대인은 바쁘다.게다가 짧은 영상물(숏폼,릴스 등)이 발달하면서,더 바빠졌다.쉴 틈 없이 스마트폰과 보내는 시간 가운데 식물과 잠시 휴식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본다.식물을 키우며 성장해 가는 아이들이 신기하다.식물이지만‘내 아이’로 부르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그래서 반려 동물처럼 반려 식물이라는 말을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삶에 잠시 쉼을 주는 식물 덕에 일상이 덜 퍽퍽하게 느껴진다.이번 회차는 끝났지만,다음 회차가 있다니 해 보길 권한다.그리고 많은 지자체가 일회성이 아닌 일년내내 이런 식물 관련 체험 활동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description>
			<pubDate>Thu, 02 Jul 2026 18:27:0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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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달리는 협동학교 2차 모임 안내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55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 달리는 협동학교 2차 모임 안내지난 1차 모임에 이어 달리는 협동학교 두 번째 시간을 진행합니다.■ 일시2026년 7월 2일(목) 오후 7시 ~ 9시■ 장소안동시 도시재생지원센터 3층 강의실(웅부공원 뒤 구 안동예식장)1907년 안동 백하구려에서 시작되어 국권 회복과 독립운동의밑거름이 되었던 협동학교의 정신이 26년 만에 다시 이어집니다.이번 강의에서는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리박스쿨' 문제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역사와 교육이나아가야 할 방향, 그리고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 교육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역사와 교육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실 수 있으며,특히 학생들의 많은 참여를 환영합니다.현장 참석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유튜브 생중계도 함께 진행됩니다.▶ 유튜브 : 김수형TV주변의 가족, 친구, 지인들께도 널리 알려주시고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description>
			<pubDate>Wed, 01 Jul 2026 19:41:15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영남 최대 만세운동의 발상지… '4·3 삼진의거 발상지 성구사 일원'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20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우리 동네 역사 탐방] 영남 최대 만세운동의 발상지… '4·3 삼진의거 발상지 성구사 일원'영남 최대 규모 독립만세운동의 출발점… 민족정신 품은 역사 현장선열들의 희생과 독립의 함성을 간직한 성구사, 오늘날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전하다[약산소식지=권용진 기자]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위치한 '4·3 삼진의거 발상지 성구사 일원'은 영남 지역 최대 규모의 독립만세운동으로 알려진 '4·3 삼진의거'가 시작된 역사 현장이다. 지금은 고즈넉한 사당과 돌담,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평온한 공간이지만, 1919년 봄 이곳은 조국 독립을 향한 뜨거운 열망이 모여든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다.1919년 3·1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진동·진북·진전 등 이른바 '삼진' 지역의 애국지사와 주민들은 성구사 내 일신재와 존양재에 모여 독립운동을 준비했다. 이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한편, 거사 계획을 논의하며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철저한 준비 끝에 1919년 4월 3일 삼진 지역 주민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대규모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당시 수천 명의 주민이 참여한 삼진의거는 경남 지역 항일운동을 대표하는 독립만세운동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성구사는 본래 정유재란 당시 나라를 위해 헌신한 병조판서 변연수와 그의 아들 변립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된 사당이다. 이후 강당인 도산서당과 일신재 등이 들어서면서 지역 유림과 청년들의 교육 공간으로 활용됐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키우는 정신적 기반 역할을 했다.이처럼 충절의 전통과 교육의 기능을 함께 갖춘 성구사는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삼진의거를 준비하는 핵심 거점이 됐다. 현재 성구사 일원은 당시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는 안내시설과 기념 공간이 조성돼 있으며,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전하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4·3 삼진의거 발상지 성구사 일원은 지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자 독립운동의 역사를 증언하는 소중한 현장이다. 선열들이 지켜낸 자유와 독립의 가치를 후세에 전하는 역사교육의 공간으로서 그 의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약산소식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description>
			<pubDate>Tue, 30 Jun 2026 18:47:5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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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남 최대 만세운동의 발상지… '4·3 삼진의거 발상지 성구사 일원'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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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글을 읽는 시대에서, 이제는 이해하는 시대입니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20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 글을 읽는 시대에서, 이제는 이해하는 시대입니다.AI 시대의 경쟁력은 단순히 많은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에서 시작됩니다.문장해석능력협회는 ✔ 문해력 진단 ✔ 문장해석 교육 ✔ 독해력·사고력 향상 ✔전문 강사 양성 ✔ 학교·기업 맞춤 교육 ✔ 전국 문해력 향상 캠페인을 통해대한민국의 읽기 능력과 사고력을 높여가고 있습니다.문장을 이해하는 순간, 미래가 달라집니다.지금 문해력의 새로운 기준을 만나보세요.문장해석능력협회 대표이사 권용진☎ 010-5171-9578 ? zeck33@naver.com]]></description>
			<pubDate>Tue, 30 Jun 2026 18:35:05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 defamation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07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CBS Evening Newsdefamation명예 훼손미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진 캐롤(E. Jean. Carroll)이라는 여성이 낸 소송에 대해 항소한 것을 기각했다.캐롤이라는 여성은1996년 미국 뉴욕 백화점에서 트럼프가 원하지 않는 성적 행동을 가했고, 2023년 소송을 제기해서 마지막 판결이 나왔다.트럼프는 그녀에게5만 달러를 배상해야 하는데 그녀와 관련된 재판이 하나 더 남아 있다고 한다.재판부와 배심원은 트럼프가 당시 그녀에게 부적절한 성적 행동뿐 아니라,후에 그녀를 모욕주는 명예 훼손‘defamation’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바라본 것 같다.그녀가2023년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뉴욕주에서 한시적으로 만든 법 때문에 가능했다. ‘Adult Survivors Act'라고 해서2022년11월24일부터2023년11월24일까지만 유효했던 법이 있다.단어 그대로 범죄를 당하고 살아남은 어른들을 위한 법이다.어른이 되어서 미성년자일 때 당했던 성범죄에 대해 한시적으로 고소를 할 수 있게 만든 법이다.어릴 때 당했던 좋지 못한 기억은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평생 상처가 될 수 있다.그래서’survivor'생존자라는 단어로 표현했을 것이다.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고 연방법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미성년자에 대한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하다.미성년자에 대해 성인이 저지른 범죄는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할 정도의 처벌을 내릴 수 있다.한국처럼 가해 촉법 소년 인권만 있고,피해자에 대해서는 그 정도 인권을 챙기지 못하는 상황과 다르다.미국 촉법은 전제가 법을 인지 못한다는 것이다.미성년 범죄자가 법을 몰랐기에 기회를 주는 것이 미국식 촉법이다.나이가 어려서 촉법이 아니라,법을 알고 모르는 것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다.미성년자라도 반복적이거나 그 범죄가 어른 범죄로 취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성인 법정에서 다루고 성인 범죄자처럼 형량을 받을 수도 있다.종잇장처럼 얇은 이 판단을 내리는 것이 판사의 역량이다.또한 한국과 달리 술에 취하거나 심신미약으로 인정받으면 형량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판단을 받으면,감옥이 아닌 정신병원에서 원래 받아야 할 형량 정도의 치료를 받도록 한다.출처: Goodreads 이 진 캐럴 책표지캐롤의 책 제목이기도 한‘Not My Type'은 트럼프가 피해자에게 즐겨 쓰는 말이라고 한다. ‘내 취향도 아닌데 내가 왜 건드리겠냐‘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 같다.그런데 이런 말을 쓰는 한국인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대통령과 일반인 사이 소송을 보면서 한국의 권력형 성범죄를 떠올렸다.한국에서 유명한 권력형 성범죄 사건은 한때 시끄럽다가 결국 가해자가 무죄를 받았다.영상 증거물이 있었지만,영상 속 인물이 가해자 얼굴인지 판별할 수 없다며 무죄를 받았다.이 판결을 보고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한국에서 드문 일이 아니기에 놀랍지는 않았다.일제강점기 법조인이 해방 후 한국 법조계를 장악하면서 벌어져 온 많은 일이 있다.독립운동가를 사법 살인한다든지,양민을 간첩으로 몰아 죽이거나 고문한다든지 하는 많은 일이 있었다.이런 일에 경찰뿐 아니라 검사 판사와 같은 법조인도 일조한 면이 있다.이재명 정부에서 검찰 개혁을 한다고 공수처와 기소처로 분리하고 이름을 바꾼다.간판만 바꾼다고 적폐가 사라질지 질문하고 싶다.비리를 저지른 학교가 이름만 바꾸고 이사회라든지 교사가 그대로 있다면 새로운 학교인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성실하게 일하던 사람은 그대로 고용 승계가 맞지만,강압 수사라든지 문제를 일으켜 온 구성원이 새로운 조직에서 새롭게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해방 후 독재 시절을 거치며 왜곡된 많은 정부 조직이 있다.새로운 정부는 늘 간판 바꾸기 바빴다.원래 구성원에 대한 보상과 벌에 대한 적절한 후속 조치는 없었다.눈에 보이는 이름 바꾸기 하기 바빴다.그리고 문제가 발생하면 또 이름을 바꾸었다.한국은 미국처럼 권력의 중심 대통령에 대해서도 법을 똑같이 적용했다.대통령 법조인단이 항소를 해도,평범한 시민이 이길 수 있는 구조이다.민주주의는 법치주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법치주의가 제대로 지켜져야 각자가 자유롭게 의견을 표하며 살 수 있다.법이 마지막 보류가 되어 시민을 지켜줄 수 있을 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본다.트럼프와 캐롤의 재판을 보면서,힘이 강한 자가,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자가,자기의 유리한 점을 이용하여 힘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을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판결인 것 같다.정의가 살아 있는 판결로 보여 부럽기도 하다.한국의 권력형 범죄 결말https://www.law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855]]></description>
			<pubDate>Tue, 30 Jun 2026 18:35: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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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 defamation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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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07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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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이겼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032</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한겨레‘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이겼다.’오늘 이재명 대통령이 재벌 총수에게90도 인사를 한 사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실리주의를 추구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어떤 의도로90도 인사를 했는지까지는 모른다.그러나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가업을 잘 이어받은 재벌 총수에게90도로 인사한 것이 한국의 근현대사의 요약본 같은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지난번SK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한국 재벌의 성장은 실력만이 다가 아니다.애덤 스미스의‘국부론’이 말하는 자본주의 원칙만 지켜도 나라는 부유해질 수 있다.그러나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사람의 욕망을 자극할 수밖에 없고 더 많은 부를 추구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애덤 스미스가 놓친 이런 인간의 성질을 더해서 이야기 한 책이 어떻게 보면 마르크스의‘자본론’이다.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행동이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서구 선진국의 오랜 시행착오 결과는 조금 달랐다.인간이 자기가 속한 사회를 위해 가장 괜찮은 선택을 할 때 오히려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래서인지 선진국의 교육은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많다.토론과 논술은 이 과정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라는 질문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지에 대한 논거나 생각을 펼치는 과정이 중요하다.버트런드 러셀이 인터뷰에서 폴란드가 소련의 위성국이 되기 직전 한 예언이 있다.폴란드는 뛰어난 과학자나 철학자가 많다.그것은 사상의 자유가 허락되기 때문이다.만약 소비에트 연방이 지배하게 된다면,하나의 진리만 옳다고 가르쳐서 이런 사상의 자유가 사라질 것이다.그리고 세대가 지나면 폴란드는 예전만큼 뛰어난 학자들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이런 생각은 고대 그리스를 알게 되면서 든 생각이었다.고대 그리스 철학자 과학자들이 마땅한 도구가 없던 시절 만들었던 많은 이론이 근대 과학 정치 철학 모든 것의 기초가 되었다.고대 그리스는 완벽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생각을 추구할 여건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서론이 길었다.한국은 일제강점기 독재 시절에 근대 산업이 도입되고 발달하였다.바뀌는 세상에 전혀 무지했던 조선 왕국은 제국주의에 무참히 무너졌다.일본 제국주의뿐 아니라 서구 열강은 한국의 자원을 약탈하고 시설을 지어주겠다며 강제로 조약을 맺었다.그들이 만든 시설에서 나온 이익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조선인은 돈을 내가며 그들이 만든 시설을 이용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해방 후도 일본에서 친일 부역자로 지배자가 바뀌었을 뿐이다.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균형을 찾아갈 여유가 거의 없었다.한민족이 모두 잘사는 한국을 추구하기보다 일부가 잘 사는 한국 산업 사회를 만들었다.미국의 원조든 서구의 원조는 일부에게 분배되었다.심지어 원조 물자를 몰래 빼돌려 팔아서 부를 챙기는 이들도 있었다.일제강점기부터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해방 후에도 여전히 부를 쌓아가고 있었다. 1987년6월 항쟁의 결과로 겨우 직선제 하나를 성공시켰다.해방 후40년이 넘어서 제대로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그리고 국민 참여 예산제도가2017년 시범 도입 후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그러나 다수의 국민은 이 제도에 잘 모르고 알더라도 참여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다.신고리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알려진 숙의 민주주의도 아직 활성화되지는 않았다.민주 정부가 시작되면서 정부는 민주주의를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그리고 일부 지식은 기저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일부가 알아서 하도록 맡기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기저’라는 말처럼 바닥에 있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다.민주주의 바닥,바탕을 이루는 것은 깨어 있는 시민이다.선거 때 한 사람 뽑아놓고, ‘알아서 하겠지.’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민은 그나마 낫다.선거를 아예 하지 않고 놀러 가는 사람도 많고,자신의 선택이 아닌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후보를 고르는 사람도 아직 있다.그러니 대통령이 재벌 총수보다 힘이 있을 수 있는지 생각이 든다.미국이 시작한 이란 전쟁으로 전 세계 경제가 힘들다.얼마 전 프랑스의 중재로 두 나라는 종전을 선언했다.하지만 세계 경제가 회복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운동부터‘먹사니즘’이라는 말로 국민이 먹고사는 데 문제에 신경을 써 왔다.아직 한국의 민주주의는 대통령이 원하는 정책을 펼칠 만큼 충분히 시민들이 도와주지 못하는 것 같다.그래도 재벌 총수에게90도 인사를 해야 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민주주의 역사사카린 밀수 사건을 비롯한 이병철의 역사일제강점기 말 쌀 수탈 시기 마산에서 정미소로 돈 번 삼성https://www.hoamfoundation.org/kor/hoam/hoam_history02.asp일제강점기 쌀 수탈]]></description>
			<pubDate>Tue, 30 Jun 2026 18:35:0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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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이겼다.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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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403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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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공약 이행 논란 ] 추경호 대구 시장 당선인, 교통 공약 일부 조정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390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 공약 이행 논란 ] 추경호 대구 시장 당선인, 교통 공약 일부 조정… 재정 부담 속 공약 이행 논란인수위 &quot;재정 여건 고려한 단계적 추진&quot;… 시민 사회 &quot;공약 신뢰 저하 우려&quot;[약산 소식지=권용진 기자]6·3 지방 선거 당시 추경호 대구 시장 당선인이 핵심 민생 공약으로 제시했던 일부 대중교통 정책의 시행 시기가 시장직 인수 위원회 단계에서 조정되면서 공약 이행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28일 대구시장직 인수 위원회 업무 보고에 따르면 선거 과정에서 발표된 일부 대중교통 지원 정책은 재정 여건과 운영 비용 등을 고려해 당초 제시된 일정에서 조정되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대표적인 사례는 '도시철도 만 65세 무임승차 환원' 공약이다. 선거 기간에는 조기 추진 의지가 제시됐으나, 인수 위원회 업무보고 에서는 도시 철도 운영 적자와 재정 부담 등을 고려해 시행 시기를 2027년 7월로 조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만 70세 이상 시내버스 무료 이용' 공약도 기존 대구시의 단계적 추진 계획에 맞춰 2028년 시행이 검토되고 있으며, 월 정액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D패스' 역시 2027년 도입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인수위원회는 대중교통 무임수송 확대에 따른 재정 부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정책 조정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인수위 는 도시 철도 무임 수송 손실과 향후 버스 운영 지원 예산 증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재정 건전성을 고려한 단계적 추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반면 지역 시민단체 와 일부 시민들은 선거 당시 제시된 공약과 실제 추진 일정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 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들은 재원 조달 방안과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선행됐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공약 변경 배경과 향후 추진 계획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일부 정치권에서는 추 당선인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재직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무임수송 국비 지원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점을 거론하며 이번 정책 추진 과정과의 일관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제기됐다. 반면 일부 행정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의 공약은 당선 이후 실제 재정 여건과 행정 환경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일정이 조정될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정책 변경 사유와 재원 마련 방안을 시민들에게 충분하고 투명하게 설명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이번 공약 조정은 단순한 일정 변경을 넘어 지방 선거 공약의 실현 가능성과 재정 책임성, 그리고 유권자와의 신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를 남기고 있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약산 소식지 추신 )본 기사는 대구시장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와 공개된 선거 공약 자료 등 확인 가능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약산 소식지는 사실 확인과 균형성을 원칙으로 보도합니다. 기사에 인용된 평가는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권, 전문가 등의 공개된 의견을 종합한 것이며, 추경호 당선인 측 또는 대구 시장직 인수위원회의 추가 설명이나 공식 입장이 확인될 경우 이를 충실히 반영해 후속 보도하거나 기사 내용을 보완할 예정입니다.]]></description>
			<pubDate>Mon, 29 Jun 2026 22:16:5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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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공약 이행 논란 ] 추경호 대구 시장 당선인, 교통 공약 일부 조정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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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기획] &amp; quot;저러고도 그냥 그만두면 끝?&amp; quot;… 국민 분노 키우는 공직 징계의 사각지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390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quot;저 정도면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quot;공직자 비위나 범죄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국민 사이에서 반복되는 질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비위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의원면직(본인 의사에 따른 퇴직)하거나 퇴직 후 징계가 어려워지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과 제도가 존재함에도 국민이 체감하는 공정성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가장 먼저 지적되는 문제는 징계 시효다. 공무원 징계는 법령에 따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징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비위 사실이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거나 감사가 늦어질 경우, 징계 시효가 만료돼 실질적인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이미 퇴직한 공무원이라면 징계는 물론 퇴직급여 감액 등도 적용되지 않는 사례가 생길 수 있어 제도 개선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두 번째는 수사기관과 소속 기관 간 정보 전달의 시간차다. 현행 제도는 수사가 시작되면 일정한 절차에 따라 소속 기관에 통보가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통보가 이뤄지기 전 사직서가 수리될 경우, 기관 입장에서는 당시 확보한 정보만으로는 사직을 제한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법률상 절차와 행정 현실 사이의 공백이 제도적 허점으로 지적되는 이유다.세 번째는 경징계 대상자의 의원면직 문제다. 현행 제도는 중징계가 예상되는 경우에는 사직을 제한할 수 있는 장치를 두고 있지만, 비교적 가벼운 징계가 예상되는 사안은 제한 범위가 다르다. 이 때문에 조직 내에서 문제가 제기된 직원이 사직을 선택하면 추가적인 인사 조치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조직을 떠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여기에 형사사건의 결과가 기소유예나 집행유예로 마무리될 경우 국민의 박탈감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법원은 범행의 경위와 피해 회복 여부, 전과 유무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해 형을 결정하지만, 국민은 결과만 보고 &quot;결국 처벌받지 않았다&quot;고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적 판단과 국민의 법 감정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이유다.전문가들은 공직사회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비위 사실을 신속히 확인할 수 있는 감사 체계를 강화하고, 수사기관과 관계기관 간 정보 공유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하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징계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공직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자리이며, 그만큼 높은 책임성과 윤리성이 요구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중형이 아니라, 잘못이 있었다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책임을 묻는 공정한 시스템이다.'저러고도 그냥 그만두면 끝'이라는 인식이 반복된다면 공직사회에 대한 신뢰는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법의 빈틈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description>
			<pubDate>Mon, 29 Jun 2026 22:09:1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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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lt;한반도 자주평화 관련 시민사회 공동입장과 특별제안 기자회견문&gt;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389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국민 여러분, 그리고 언론인 여러분!오늘 6.25 제76주년을 맞아 우리 시민사회는 남북 당국이 정전협정을 국제보장형 종전·상호불가침 평화체제로 전환하자고 서로 합의하는 것이 절박하고도 절실한 상생과제라는 공동입장을 밝힙니다. 특히, 우리 대한민국은 이재명 대통령 등 행정부와 국회가 정부차원에서 평화통일 관련 헌법 규정과 법제 등을 정비할 것 등을 숙고하는 국민공론 마당을 연내 설치하고 가동하는 것이 협상개시 제안의 진정성을 담보하고, 대화 재개와 협상 체결 등에 필수불가결할 뿐만 아니라 성공가능성을 드높일 것이라는 공동입장을 천명합니다.6.25전쟁이 멈춘 지 76년입니다. 그러나 한반도에 종전(終戰)은 없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춘 상태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사이 미·중 경쟁은 거세지고, 북·러 밀착은 강화되며, 북핵은 고도화되고, 남북관계는 대화보다 적대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리하여 한반도가 다시 강대국이 격돌하는 앞마당이 될 수 있습니다.그래서 오늘 우리는 묻습니다. 언제까지 정전협정이라는 낡은 안전판에 국민의 생명을 맡겨둘 것입니까? 언제까지 평화통일을 말하면서 전쟁을 끝내는 제도는 만들지 않을 것입니까? 언제까지 대한민국이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가 아니라 강대국 협상의 구경꾼으로 남아야 합니까?보수에게 묻습니다. 전쟁을 막지 못하는 안보가 진짜 안보입니까? 진보에게 묻습니다. 현실을 말하지 못하는 평화가 진짜 평화입니까? 정치권에 묻습니다. 국민 생명이 걸린 문제를 언제까지 색깔론과 진영논리의 인질로 잡아 둘 것입니까?우리가 먼저 답하겠습니다. 우리는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사명과 핵 없는 세상이라는 인류이상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북핵 고도화와 군사적 위협도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평화는 안보를 해체하자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실제로 지키는 보다 더 현실적인 안보를 만들자는 것입니다.분명히 밝힙니다. 우리는 두 나라로 영구히 갈라서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코리아(One Korea) 공동체’라는 이상을 지키고자 남북 사이에 전쟁을 막는 장치를 먼저 만들어 내자는 것입니다.북한 당국이 통일을 지우는 단절의 언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운 것은, 장기간 지속된 적대관계에서 벗어나 대남 주도권을 확보하고 내부 체제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역설적인 고육책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북한이 먼저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 노선으로 채택한 지금, 우리는 정반대편에서 전쟁을 막고 신뢰를 쌓아 장기적 평화통일의 조건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접경지역 주민도, 탈북민도, 북한 주민도 우리와 무관한 외국인이 아닙니다. 분단의 고통을 함께 짊어진 같은 역사공동체의 구성원입니다.주권자로서 우리는 그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한 평화적 책임을 결코 내려놓지 않으면서 현실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체제와 정부를 가진 현실적 정치 주체로 존재해 왔고, 1991년 유엔 동시가입으로 그 현실을 국제사회도 인정했습니다. 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분단을 영구화하자는 뜻도, 북한을 따라가자는 뜻도 아닙니다. 역대 정부는 남북을 ‘특수 관계’, 즉 국제법적으로는 두 실체이나 헌법적으로는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관계로 다루어, 상대를 대화 당사자로 인정하되 외국으로 만들지 않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취지의 ‘특수 관계’를 폐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긴 안목과 호흡으로 오늘날 고착화된 장기적대상황을 넘어설 종전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대화와 협상 및 각종 선제적 조치가 필요합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와 주권자 시민들은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첫째, 대한민국은 정부 차원에서 이북 당국에 정전협정을 종전·상호불가침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협상을 즉각 개시하자고 공식적으로 제안해야 합니다.정전협정은 전쟁을 끝낸 문서가 아니라 멈춰 세운 임시장치입니다. 평화체제가 곧바로 북핵 폐기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북핵은 냉정하고 단계적이며 검증 가능한 협상으로 풀어야 할 엄중한 현실입니다. 종전·상호불가침과 핵 동결·감축·검증·폐기를 상호주의, 곧 행동 대 행동의 상응 원칙에 따라 여러 트랙으로 병행하거나 우선 종전·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등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이때 영세중립화 등 항구적 평화체제는 한미동맹을 해체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주적 억지력과 남북 상호불가침, 단계적 신뢰구축, 주변국의 국제보장이 결합된 국제보장형 안전장치를 구축하자는 것입니다. 남북합의로 전쟁을 막는 것보다 더 확실한 안보는 없습니다. 종전은 양보가 아니라 국익입니다.둘째, 이재명 대통령 등 행정부와 국회가 남북현실 등에 기초하여 평화통일 관련 헌법 조항과 법·제도 등을 정비하기 위해 국민과 함께 토론하고 숙의할 정부차원 공론마당을 올해 안에 열어야 합니다.평화통일 관련 헌법 전문(前文) 일부 표현과 제3조와 제4조 등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미래를 담은 중대한 규범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를 가볍게 다루지 않습니다. 우리는 헌법을 파괴하자는 것도, 정통성을 포기하자는 것도, 접경지역 주민·탈북민·북한 주민에 대한 보호책임을 약화시키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오늘의 남북 현실과 국제법적 조건, 평화통일의 길을 함께 담아낼 더 정교한 헌법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확신합니다.그렇습니다. 개정 필요성 여부와 문안, 남북 공식 호칭 문제, ‘특수관계론’의 발전 방향은 권력자가 밀실과 같은 제한된 논의구조에서 소수가 결정할 일이 결코 아닙니다. 보수와 진보, 청년과 기성세대, 접경지역 주민, 국내외 헌법·국제법·안보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함께 숙의해야 할 국가적 의제입니다.셋째, 정부차원 대응이 늦어지면, 늦어도 내년 초 시민사회가 예비적 공론마당을 직접 열겠습니다.이재명 대통령 등 행정부와 국회가 올해 안에 공식 공론마당을 열지 않는다면, 시민사회가 전문가와 국민이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절차와 기준 그리고 평화통일과 국민주권을 보장하는 개헌안을 담은 숙의자료 등을 준비하겠습니다. 늦어도 내년 초 또는 그 보다 빠른 적절한 시기에 이들 숙의자료는 물론 소요경비 마련방안 등도 함께 공개한 뒤 이보다 더 나은 대안을 국민과 함께 모색하는 독립적 숙의공론 마당을 열고, 가장 좋은 의견을 제안하신 분에게는 적절한 상금도 지급하겠습니다.이것은 시민사회가 권력을 대신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인기투표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전문가 검증과 시민 숙의가 함께 가는 민주적 절차로서 시민의회와 풀뿌리 원탁회의 및 국민서명 등 직접민주제적 요소를 도입하게 될 것입니다.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가 제안한 세 가지 과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비난과 논쟁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도와 흑색선전이 두려워 진실을 피한다면, 국민의 생명과 미래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평화통일은 구호가 아니라 책임입니다. 종전은 양보가 아니라 국익입니다. 현실 직시는 분단의 영구화가 아니라 전쟁을 막는 첫걸음입니다.이제 우리는 정전의 불안 속에 살 것인가, 전쟁을 끝내고 평화의 제도를 만들 것인가 등을 치열하게 따져보는 범국민적 ‘숙의공론 마당’을 준비해야 합니다. 말로만 평화를 외칠 것인가, 실제로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 것인가? 국민과 언론의 진지한 응답을 요청합니다. 2026년 6월 25일제76주년 6.25를 맞이하는 27개 시민사회단체 및 주권자 시민 일동첨부 &amp;amp;lt;한반도 자주평화 관련 공동입장과 특별제안 발표, 27개 시민사회단체 목록&amp;amp;gt;(가나다순)o 개헌개혁행동마당(상임의장 송운학)o 개혁연대민생행동(공동대표 김석용 외)o 고백고통일연구소(소장 박철연)o 공익감시 민권회의(의장 송운학)o 국민연대(상임대표 이근철)o 국민주권개헌행동(공동대표 김선홍 외)o 대전고 민주동문회(회장 송운학) o 민족작가연합(공동대표 심종숙 외)o 민청학련동지회(공동대표 임상우 외) o 사)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상임대표 이장희)o 사)DMZ평화네트워크(이사장 류종열)o 사)민주시민 교육의 전당 시민과 미래(이사장 강현만)o 사)평화통일시민연대(상임대표 이장희)o 사)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이사장 김영주)o 시민의회 전국포럼(상임대표 김상준) o 유라시아평화통합연구원(이사장 유경석)o 유림상생평화연대(회장 오병두)o 접경지역평화 지대화(地帶化) 시민연대(준) (상임공동대표 김장석 외)o 중추사(공식명칭, 한반도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 상임대표 이현배)o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공동대표 임양길 외) o 친일청산 국민운동(대표 이전오)o 투기자본감시센터(공동대표 윤영대 외)o 한국중립화추진 시민연대(상임대표 강종일, 공동대표 양재섭 외)o 한반도중립화 통일협의회(회장 강종일) o 한우리 글로벌 문화교육원(원장 김상희)o 행·의정감시네트워크중앙회(중앙회장 김선홍)o 흥사단(이사장 김전승).]]></description>
			<pubDate>Mon, 29 Jun 2026 22:00:5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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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국인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389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양산독립기념과에 전시된 한용운 시인의 양산 통도사를 읊은 시1944년6월29일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입적한 날이다.법명(法名)은 용운(龍雲),법호(法號)는 만해(萬海)이다.법명은 승려가 되는 사람에게 처음 종문(宗門)에서 지어 주는 이름이고,법호는 어느 정도 수행이 깊어졌을 때 가지게 되는 특별한 이름이다.용운(龍雲)한자 그대로‘용 구름’으로'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듯 큰 뜻을 펼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만해(萬海) ‘넓은 바다’또는 불교 만자의 변형으로 보면, ‘불교의 바다’라는 뜻으로 깊고 넓은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이름이 사람의 운명을 정하듯,한용운 독립운동가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을 했다.그리고 많은 이들을 품고 독립운동가 순국 후에 보내 드리는 일도 적극적으로 하셨다.한용운 선생님의 업적은 많지만,승려로 한 일을 먼저 살펴 보려 한다.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한국불교가 새로운 문명 세계에 적응할 수 있는 개혁 방안을 제시한‘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이라는 책을 내셨다.그리고 불교의 혁신 운동을 이끌었다.출처: 설악불교문학관 (https://www.manhaemusan.org/archive/a1/literature-origin/l14_5)유신은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한용운 선생님이 생각한 유신은 몸에 종기가 생겼을 때 고름을 터트리듯,근본적 문제를 파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이 장의 제목 자체가‘불교(佛敎)의 유신(維新)은 의당 파괴(破壞)를 먼저 해야 함을 논함’이다.1910년10월 친일 승려 이회광(李晦光)은 한국의 원종(圓宗)과 일본 조동종(曹洞宗)과의 합병을 발표했다.그리고 이회광 때문에 팔만대장경 경판이 몽땅 일본으로 옮겨질 뻔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일본에서 대장경을 간행하겠다고 해인사 주지승과 일본인 사토 로쿠세키(佐藤六石)가 공모해서 추진했던 이 일이 당국의 사전저지로 다행히 무산되었다고 한다.일제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이회광이 밤에 몰래 반출하려고 했다.불침번을 서던 스님과 주변 주민이 알아채고 막은 사건이다.한용운 선생님은1919년3·1운동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민족 대표33인 중 불교 대표자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남 거창까지 내려가 유림의 거두인 곽종석을 만나 유림의 참석을 끌어냈다.교과서에‘님의 침묵’등 다수의 시가 실려 있다.민족시인으로 현대를 사는 우리가 알아야 할 시인 중 한 분이기도 하다.한용운 선생님은 민족주의자답게 한글에도 관심이 많으셨다.그래서‘가갸날’이라는 처음 한글날에 붙은 이름으로 시를 쓰시기도 하셨다.일송(一松)김동삼(金東三)이1937년3월 옥중 순국하자,일제가 무서워 아무도 거두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이때 한용운 선생님이 의리를 지키며 유해를 심우장으로 모시고 와5일간 장례를 치르기도 하였다고 한다.서울 성북동에 한용운 선생님이 말년을 보내던 심우장이 남아 있다.심우장(尋牛莊)은 말 그대로 소를 찾는 집이다.불교에 조금 관심 있거나 절을 가 본 사람은‘심우’그림이 절 건물 외벽을 한 바퀴 돌아 그려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대개 어린 소년이 소를 잃어버리고 찾는 일련의 이야기이다.세속의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이야기이고 그림이다.심우장은 한국의 일반적인 집이 남쪽을 향해 있는 데 반해 북쪽을 향해 집을 지었다.서비정처럼 일본을 쳐다보고 싶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마음이 담긴 집의 방향이다.조선총독부 건물을 쳐다보지 않을 방향으로 지은 집이다.친일승려 이회광과 팔만대장경 밀반출 시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30222빼앗긴 우리 문화재드라마 속 만해 한용운 연설]]></description>
			<pubDate>Mon, 29 Jun 2026 21:48:0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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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인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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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인천중부서, 신광초 통학로 안전 위해 ‘민·경 합동 순찰’ 펼쳐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381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인천중부경찰서가 초등학생들의 안전한 하교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역 주민들과 손을 잡았다.​인천중부경찰서(서장 김희종)는 지난 26일 신광초등학교 일대에서 학생들이 안심하고 귀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민·경 합동 순찰’을 전개했다고 밝혔다.​이번 합동 순찰에는 중부서 범죄예방대응과(계)장을 비롯해 신흥지구대장, 자율방범대, 시민경찰 등 50여 명의 대규모 인원이 참여해 촘촘한 예방 활동을 펼쳤다.​특히 이번 활동은 단순히 학교 주변을 형식적으로 둘러보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실제 하교 시간대에 맞춰 통학 흐름과 귀가 동선을 고스란히 반영한 ‘맞춤형 순찰’로 진행됐다.​순찰대가 집중적으로 점검한 신흥동 노후 주택 밀집 골목길은 평소 유동인구가 적고 주거환경이 노후화되어 주민들의 불안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곳이다. 합동 순찰대는 해당 구간을 직접 도보로 이동하며 청소년 비행 우려 장소와 범죄 사각지대를 면밀히 확인하는 등 학생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경찰 관계자는 &quot;이번 순찰은 경찰 중심의 일회성 활동을 넘어 자율방범대와 시민경찰 등 지역 주민의 시각에서 동네의 취약 요소를 함께 살펴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quot;고 전했다. 경찰은 이번 현장 순찰을 통해 확인된 위험 요인과 취약 사항들을 향후 순찰 노선 조정 및 범죄예방 진단 자료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김희종 인천중부경찰서장은 “앞으로도 학교 주변은 물론, 노후 주택가와 인적이 드문 골목길 등 주민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장소를 중심으로 협력단체와 긴밀히 협력하겠다”며 “아이들을 위한 지역사회 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구축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장대식 기자]]></description>
			<pubDate>Mon, 29 Jun 2026 20:51:2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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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죽헌 이교재와 허당 명도석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347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마산헌병분견대 전시관 영상실현재는 창원으로 통합된 마산시는 오래된 역사가 있다.일제강점기 마산은 수탈의 중심에서 중요한 도시였다.그 흔적이 가장 잘 남아 있는 현장이 구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일 것이다.해방 후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면서 다행히 근래까지 온전히 남아 있었다. 2005년 마산 헌병 분견대 건물을 등록문화재 제198호로 지정했다.그리고 창원시는2018년 마산 헌병 분견대 건물을 마산의 근현대를 기억하는 전시관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마산 헌병 분견대’,말 그대로 헌병이 주둔하던 공간이다.그리고 일제강점기 헌병은 무단통치의 상징이다.그래서인지‘영상실’벽에‘공포와 두려움의 상징’이라는 글이 벽에 있다.일제강점기 헌병대를 끌려온다면 어떤 일을 당했을지 보여주는 전시도 있다.해방 후에도 군 정보기관인 옛 보안 사령부의 마산 파견대가'해양 공사'라는 간판을 달고 이 건물을 사용했다고 한다.정체를 숨기고‘해양 공사’라는 간판을 달았던것처럼,이 건물은 민간인 사찰을 위해 사용되었다.윤용근 의원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하여(file:///C:/Users/82105/Downloads/3.%20%EC%9C%A4%EC%9A%A9%EA%B7%BC%20%EC%9D%98%EC%9B%90%205%EB%B6%84%20%EC%9E%90%EC%9C%A0%EB%B0%9C%EC%96%B8.pdf)그리고 민간인 학살에도 관여한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전시 내용 중 마산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죽헌 이교재 선생님과 허당 명도석 선생님에 대한 설명이 있다.전시를 보기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독립운동가이지만,하신 일을 살펴 보니 몰랐던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이교재 선생님은1887년7월9일 마산 진전면 오서리에서 출생한 선생은 백산 안희재 선생과 성재 권오봉 선생 밑에서 신학문을 수학했다.참고로 마산에는4.3삼진의거라는 대단한 만세 운동이 있었다.여기서 삼진은 진전면,진북면,진동면이라는 마산의 세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마산이나 창원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역사적 항쟁이다.상해 임시정부에서 상주 대표를 맡으며‘칼톱회’라는 비밀 조직을 이끌었다.상해와 국내를 오가며 비밀 조직과 독립자금 모금을 위해 활동했다. 1932년 마산경찰서에 붙잡힌 후 손톱·발톱이 뽑히는 혹독한 고문까지 당한 선생은 대구형무소로 이감되어 강제 출옥한 뒤 열흘 후 순국하신다.허당 명도석 선생님도 만만치 않게 많은 일을 하셨다. 1916년 비밀결사 일합사 활동, 1927년 신간회 마산지회 활동,의열단 경남 총책, 1945년 건국동맹 활동,건국준비위원회 마산지부까지1954년 돌아가실 때까지 민족을 위해서 쉬지 않고 일하셨다.의열단은 밀양의 일합사,풍기의 광복단.대구의 대한광복단의 인적 구성원을 계승하였다고 한다.이 중 명도석 선생님은 일합사의 일원으로 의열단을 위해 활동했다고 한다.'허당(虛堂)‘이라는 호는 말 그대로 빈 집이다.나라 잃은 설움을 담은 호이다. ’주권을 잃은 국가는 빈집과 같다.‘라고 이야기하셨다고 한다.그리고 명도석 선생님은 창씨 개명을 일제의 강압에도 마지막까지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일부 한국인은‘시라카와‘처럼 전범 일본인을 따라 창씨 개명한 인물들도 찬양하는데,이런 독립운동을 한 분을 왜 필자는 몰랐는지 미안할 뿐이었다.죽헌 이교재 선생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칼톱’http://www.koreaj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4945죽헌 이교재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7132원동무역주식회사 사옥https://v.daum.net/v/QaAdBWZwOa이승만 정부 민간인 학살 - 마산 지역https://v.daum.net/v/90DKsuRutx?f=p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286최근까지도 계속되는 불법 민간인 사찰]]></description>
			<pubDate>Mon, 29 Jun 2026 20:51:32 +0900</pubDate>
                        <image> 
              <title>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죽헌 이교재와 허당 명도석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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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단독] 완주군 ‘물고기 없는 불법 양식장’ 의혹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3362</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단독] 완주군 ‘물고기 없는 불법 양식장’ 의혹지자체 4년째 방치에 농민 피눈물- 30평 허가받고 100평 건축… 보조금 노린 계획적 ‘필지 쪼개기’ 의혹- 밤마다 강바닥 긁어 불법 어류 가공… 오수관 불법 매립으로 인근 농가 침수 피해- 주민 민원에 ‘번지수 세탁’ 답변 일관… 완주군·전북도청 은폐 및 방조논란[약산 소식지 권용진 기자] 전북 완주군의 한 농지에 들어선 양식장 시설을 둘러싸고 용적률 초과, 불법 필지 분할, 무등록 지하수 사용 등 무더기 불법 의혹이 제기됐다.그러나 관할 지자체인 완주군청과 전북도청은 핵심 민원 서류를 누락하거나 대답을 회피하는 등 조직적으로 사건을 방조·은폐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예상된다.■ 30평 허가에 100평 건물보조금 노린 ‘토지 쪼개기’ 의혹완주군 안호영 국회의원 관할 지역구 내 절대농지에 비닐하우스 형태로 지어진 한 치어 양식장 시설이 실제로는 불법 어패류 가공 작업장으로 사용되며 인근 주민들에게 심각한 악취와 소음 피해를 입히고 있다.해당 양식장 부지는 당초 207평 규모의 한 필지였다. 그러나 건축 인허가 및 사용승인이 나기 직전, 147평만 농지 전용을 허가받은 뒤 필지를 쪼개는 기습 분할이 이루어졌다. 농지법상 147평에 지을 수 있는 건축 면적은 용적률 20%를 적용해 약 30평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100평에 달하는 불법 건축물이 들어섰다.더욱이 가설건축물이어야 할 하우스 시설이 서류상 허물 수 없는 ‘일반 건축물’로 등록되어 지자체의 철거 면죄부로 활용되고 있다. 주민 A씨는 &quot;공시지가가 평당 2만 7천 원에 불과한 땅을 5천만 원짜리 허위 매매계약서로 꾸며 일반건축물 대장에 올렸다&quot;며 &quot;정부 지원 융자금과 보조금을 부정 수급하기 위한 계획적인 금융 사기 의혹이 짙다&quot;고 폭로했다.■ 밤마다 강바닥 긁어 불법 가공물고기 없는 양식장해당 시설은 치어 양식장으로 인허가를 받은 이후, 실제로 치어를 양식한 흔적이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대신 양식장 주인은 밤마다 인근 만경강 등에서 대형 그물로 강바닥을 긁어 불법으로 어류를 포획한 뒤, 이 시설에서 배를 가르고 삶아 진공 포장하는 ‘가공 작업장’으로 이용했다.이 과정에서 발생한 어패류 폐기물(폐각)이 방치되면서 여름철 구더기와 들짐승이 들끓고 악취가 진동해 인근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졌다.또한 양식장에 필수적인 지하수는 관할 부서에 등록조차 되지 않은 ‘불법 지하수’였으며, 국가 소유 하천 부지(구유지)를 무단으로 파헤쳐 불법 오수관을 매립한 사실도 확인됐다.이 불법 매립과 지하수 만수로 인해 인근 농로는 배수 기능을 상실했고, 장마철마다 인근 농가의 배추와 콩이 물에 잠겨 녹아내리는 막대한 재산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번지수 세탁에 민원 조작까지공무원 유착 의혹 비판가장 큰 문제는 관할 지자체인 완주군청과 전북도청의 방조 및 은폐 태도다. 주민들이 실제 불법 시설이 있는 ‘15번지’를 콕 집어 4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했으나, 군청 측은 아무 관련 없는 인근 배추밭인 ‘35번지’를 대상으로 개고장을 보내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는 등 황당한 ‘번지수 세탁’ 답변으로 일관했다.심지어 주민들이 전북도청 감사실을 직접 찾아가 접수한 ‘정부 지원금 부정수급 조사 요청 서류’는 고의로 누락되어 공중분해됐고, 감사실 전산에는 사유도 없이 단지 ‘이첩’이라는 두 글자만 남겨진 채 방치됐다.오히려 지자체는 똑같은 내용의 민원을 반복한다며 주민에게 &quot;3회 이상 제기 시 종결 처리하겠다&quot;고 협박성 통보를 보낸 것으로확인됐다.현재 해당 양식업자는 행정 감사가 시작되자 부랴부랴 양식 면허를 지자체에 반납한 상태다. 농지법상 양식 면허가 취소·반납되면 타설된 콘크리트를 모두 걷어내고 원래의 농지로 원상복구 해야 하지만, 완주군청은 이마저도 손을 놓고 있다.]]></description>
			<pubDate>Fri, 26 Jun 2026 23:14:5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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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날 -6월 26일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327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라떼뉴스1949년6월26일은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님이 암살당해서 돌아가신 날이다.거의 모든 한국인이 아는 대표적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님이 해방 후 한국인에게 암살당했다.일제강점기 일제가 백범 김구 선생님을 잡기 위해 내 건 현상금은60만 원(위안)이었다.이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200억 원에서35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일제가 너무도 잡고 싶어 했을 만큼,누구보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기도 하다.백범 김구 선생님은 중국에서 독립운동 중 부인,아들 어머니를 잃은 고통도 겪었다.그런 고통 속에서도 독립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해방될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셨다.출처: 정용욱 교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환국과 백범(https://www.kimkoomuseum.org/upload/7%EC%A7%91-1%20%EC%A0%95%EC%9A%A9%EC%9A%B1%EA%B5%90%EC%88%98%EB%8B%98.pdf)그러나 해방된 조국은 입국부터 어려웠다.임시정부 요원이 아닌 개인 자격 입국부터 미군정에 절대 협조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해야했다.중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하려던 첫 번째 시도는 미군정에 의해 무산되었다.어렵게 들어온 두 번째 입국은 한국인의 환영을 받지 못하게끔 미군정이 철저히 막았다.김포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올 때도 자동차 유리로 밖을 보지 못하게 막아버렸다고 한다.미군정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목숨 바치고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전범국이 아닌 피해국 한국에 미군정이라는 정부를 만들어서38선 이남 한국을 지배하고 간섭했다.해방된 한국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거대한 세계 권력에 의해 나누어져 통치받았다.독립은 위해 싸워 온 항일지사들은 당연히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해방된 조국에서 조국이란 온전한 한민족의 나라를 생각했던 것이지,반쪽 난 나라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이게 민족주의자 독립운동가들이라면 당연했을 것 같다.그러나 권력 추구 이기주의자들은 미국과 소련을 이용하더라도 자기 자리를 만드는 데 급급했던 것 같다.분단되든 말든 일제강점기처럼 본인만 권력만 가진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던 반민족주의자들이 득세했다.일제에 붙었듯이 미군정에 붙은 이들에 의해 분단될 위기가 고조되자 김구 선생님은 통일된 한국을 위해 동분서주했다.이 과정에서 김구 선생님이 순진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필자는 민족주의자 독립운동가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안두희 소령이라는 한국인에게 암살당한다.이 암살에 대해 백색 테러로 보는 견해가 있고,배후 세력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왜냐하면 안두희라는 인물이 일개 소령이 그 후에 너무 잘 살았기 때문이다.일단1949년6월 백범 김구 암살 직후 체포된 안두희가 가장 먼저 압송되어 보호받은 곳은 김창룡이 지휘하던 특무대였다.당시 김창룡은 안두희를 극진히 대우하며 군부의 비호 아래 두었다고 한다.안두희 납품 업체 성황( 출처: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Tenman/Tenman_ins.aspx?cmpt_cd=PT006)또 범행 직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6.25사변으로 풀려난 뒤 군에서 중위,대위를 거쳐 소령으로 초고속 특진하고 곧바로 예편했다고 한다.예편 후1군사령부 관내 전사단에 공급하는 군납 식료품 공장인 신의기업사(信義企業社)를 강원도 양구에서1956년10월부터10년 정도 창업하여 경영하였다.살인자가 군납품 업체를 운영할 수 있다니 특혜에 대한 의혹이 당연히 나왔다.참고로 한국 전쟁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미국과 소련 입장에서는 한국 전쟁이 맞다.그들의 힘겨루기에 한국과 베트남이 전쟁터가 되었기 때문이다.강대국 미국과 소련은 자국 영토 내에서 전쟁을 하지 않았다.그들의 힘겨루기는 약소국가 영토내에서 이루어졌다.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약소국가는 많은 자국민이 목숨을 잃었고 폐허가 된 영토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그러니 그들은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은 한국전쟁이고 베트남에서 일어난 전쟁은 베트남 전쟁이다.억울한 일을 당한 한국인으로서는6.25사변이 바르다고 생각한다.해방 후 무슨 물자가 있다고 전쟁을 벌일 수 있겠는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안두희라는 인물은1917년 평북 용천 출생으로 해방 후 월남해 서북청년회에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1948년 육군사관학교8기에 입교했다.그리고 실리 보고서((Cilley Report)에 따르면, “안두희는 미군 방첩대 요원이자 백의사 자살특공대원”이라고 한다.이 실리 보고서도 국가가 아닌 민간인 교수가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찾아낸 것이다.평생을 한국의 독립과 한민족을 위해 바친 김구 선생님에 대한 암살 규명도 해방된 나라에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친일 인명사전’을 제작하기 시작한 임종국 선생님이 계신다.이분이 배족에 관해 연구하게 된 계기가 김구 선생님을 중국인으로 알았던 자신의 무지에 대한 반성에서부터였다.해방된 조국은 중국에 오래 살았다고 김구 선생님을 중국인으로 둔갑시켰다.친일 부역자들은 분단을 이용해서 일제강점기처럼 호의호식하며 살았다.그리고 독립운동가에 대해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정부 교육 문화 모든것을 장악하고 한국인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다.그래도 임종국 선생님처럼 스스로 공부하며 진실을 알리려는 분이 존재했다.그런 분들 덕분에 우리는 독립운동과 김구 선생님 암살에 대한 한 자락의 진실이라도 쥐고 있는 것 같다.아니었으면‘안두희가 김구 선생님을 암살했다‘로 교과서 한 줄로 끝날 일이었다.역사는 그렇게 단편적 지식만 암기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그래서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안두희 미국 정보 요원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0311124467김창룡 전봉덕 친일부역자https://news.imbc.com/replay/1992/nwdesk/article/1913205_30556.htmlhttps://imnews.imbc.com/replay/1992/nwdesk/article/1913698_30556.html임시정부를 무시한 미군정민족주의자 김구와 미군정]]></description>
			<pubDate>Fri, 26 Jun 2026 14:06:4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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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날 -6월 26일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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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의 감정과 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주장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310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연합뉴스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일본과의 경제 연대를 강조하며,유럽의 솅겐 조약과 같은 일본과 단일 비자 체계를 도입할 것을 이야기했다고 한다.이 기사를 보고 놀라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누군지 찾아 보니SK최태원 회장과 동일인물이었다.한국과 일본은 아직도 과거의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주장한 한국인이 일본 입국 거부를 아직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처럼 하나의 나라를 만들자는 주장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한국 정부는‘외자도입법’이라 자국 기업보다 외국 기업을 더 챙겨주고 있다.그리고 많은 한국 기업이 일본과 협정을 맺으며 도움을 이미 받고 있다.거기에 일본만 더 챙겨주자는 것은 한국 기업에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그래서SK과거에 선경이 어떤 기업이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선경이라는 이름 자체가 일제강점기‘선경직물’이라는 회사에서 왔다.선경직물은 일본 기업들인'선만주단'과'경도직물'이 합작해 설립한 회사였다해방 후 최종건은선경치안대를 조직해 선경직물의 일본인 간부들이 무사히 일본에 돌아가도록 도왔다”고 창립60주년을 맞아 발간된&amp;amp;lt;SK 60년사&amp;amp;gt;에서 말하고 있다.해방 후 한국의 많은 적산가옥이나 기업이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이들이 아닌 일제에 부역한 인물에게 돌아갔다.마찬가지로 선경직물도 그 회사에 일했던 최종건이라는 사람이 가지게 되었다. 10대 나이에 일본군의 군복을 만드는 전범 기업에 들어가18세에 조선인 청년이 관리자로 되었다니 최종건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출처: 수원시정연구원(구술총서)선경직물은1944년 전쟁이 막바지로 다다르며 전시기업정비령에 의해 다른 직물 공장과 함께 조선직물에 흡수되었다.조선직물(朝鮮織物)은 일제강점기 시절 경기도 안양과 수원 일대에 존재했던 대규모 섬유 기업으로,전시 체제기 일제의‘전시기업정비령’과 인력 수탈 정책에 따라 조선인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강제 노동시킨 대표적 기업이다.SK 혼맥도 (출처: 일요신문 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amp;amp;entry_id=3455)해방후 직물공장 적산을 가지고 시작한 선경은 독재 시절 재벌로 성장하게 된다.최종건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사돈을 맺었다.최종건의 넷째 딸이 이후락의 넷째 아들과 결혼했다.그 덕분인지는 몰라도1973년 박정희 정부가 매각한 워커힐 호텔을 선경그룹이 헐값에 인수했다.그리고 어울리지 않게1980년 유공(석유공사)을 인수하게 된다.당시 유공은 단일기업으론 공기업,사기업 통틀어1위 규모였다.선경그룹의 세 배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었다.노태우 덕분이라는 설도 있으나,어쨌거나 당시 비유대로 새우가 고래를 삼킨 인수였다.묘하게 최태원 회장은 노태우의 딸 노소영과 결혼으로 대통령과 혼맥을 맺게 된다.얼마전 노소영과 최태원 회장이 이혼하면서SK텔레콤 비자금 문제가 터져 나왔다.이혼 소송 과정에서 불거진300억 비자금과 노탱우 대통령의 보호막 역할이SK그룹이 이동통신 사업(한국이동통신 인수)에 진출하고 성장하는 데 상당한 이바지를 했다고 판단했다.이렇게 성장해 온 기업이SK이다. SK만 이렇게 재벌이 된 것이 아니다.한국의 많은 재벌의 과거를 찾아가다 보면 일제강점기부터 독재 시절을 거쳐 성장해 온 비슷한 역사가 있다.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딸이 올린 글(인 SNS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이 각하된 내용의 일본 닛케이 기사를 공유하며 &quot;great news!&quot;라는 글을 올렸다.) 출처 : 데일리시사닷컴(https://www.dailysisa.com)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개인의 노력으로 성장하기보다 누군가의 보호로 성장해 온 기업이 소비자를 먼저 챙길지 보호해 준 권력자를 먼저 생각할지 질문해 봐야 한다.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왜 이 시점에 갑자기 일본과 경제협력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지 질문해 볼 시점이다.한국이 일본과 배타적 경제 협력을 맺으면 한국에 얼마나 이득이 될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일제강점기 강제 동원https://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amp;amp;amp;dataType=01&amp;amp;amp;contents_id=GC04205085기업정비령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50_0020_0010_0020_0010SK 기업 역사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38096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32245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933외자도입법 특혜 기업 롯데권력에 의해 불하된 유공독도 입국 거부당한 한국 연예인]]></description>
			<pubDate>Fri, 26 Jun 2026 14:02:5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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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의 감정과 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주장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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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경우를 모르는 사람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93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MBN 뉴스올해 초 한 유명 연예인이 유튜브 영상이 공개되면서 언론에 나올 정도로 논란이 되었다.해당 연예인은 며느리와 함께 카페를 방문해3명이 음료를1잔만 주문하고 나눠 마시는 모습을 유튜브에 공개했다.그 후 많은 누리꾼이'카페 민폐‘라고 생각한다는 글을 올렸다.별일이 아닐 수 있지만 언론에 이 영상이 나오면서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하나는 자본주의 사회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과 다른 하나는 그런 것을 유튜브에 공개해야 했다는 생각이었다.자본주의 사회는’자본‘이 움직이는 경제 체제이다.운이 좋아 재산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이윤을 추구하며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하지만 대부분은 미래에 써도 괜찮은 여유 자금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고 노동하며 산다.카페 사장이나 직원도 노동을 통해 생활을 꾸려나갈 것이다.카페 사장이 운이 좋다면 건물을 소유해서 지대를 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그러나 대부분 한국의 자영업자 특히 소상공인은 건물주에게 지대를 내며 가게를 운영한다.또 공과금을 내야 하고,카페에 다양한 음료 등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구매해야 할 것이다.이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필요한 것은 얻기 위해서는 거의 자본,돈이 필요하다.장사를 해서 가게를 운영할 충분한 이윤을 내지 못하면,빚을 내거나 장사를 그만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그 연예인 나이 또래 중에 이런 자본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안다.가게에 방문한 인원수만큼 주문하지 않고 나눠 먹는 것의 절약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그래서인지 일부 카페에서는 인원수만큼 주문해달라고 안내문을 붙여놓기도 한다.그런 안내문을 보면 오죽하면 저럴지 싶어서 안타깝기도 했다.절약이 미덕이라 생각하던 시절의 유산일 수도 있고,지금처럼 신용카드 등이 발달하지 않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시절의 사고방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과거와 달리 현재는 많은 사람이 현금보다 신용 카드 등을 통해 거래하기 때문에 세금을 속이기가 어려워졌다.한국은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세무 당국이 실사하지 않고 서류만 살피기 때문에,일부 소상공인 중 현금 매출을 일부러 누락시킨다고 들은 적이 있다.이전에 가게를 내면서 조언을 얻을 때 경험 많은 소상공인으로부터 조언이랍시고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한 절세처럼 이야기한다.한 잔으로 세 명이 나누어 마셨다는 연예인은 상당히 부자라고 한다. 2026년2월 기사를 보면40억으로 추정하기도 한다.본인이 절약해서 모았다고 이야기하지만,남에게 민폐를 주면서까지 모으는 게 괜찮은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카페 주문 영상을 유튜브에 올릴 정도면 그게 민폐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본인이 부자가 되고 싶은 만큼 한국에는 부자가 되고 싶은 이가 많다.또 많은 이가 부자는 아니라도 조금 여유로운 삶을 꿈꿀 것이다.그 카페 사장님도 카페를 운영하고 남을 정도의 수익을 내서 개인의 생활에 보태고 싶을 것이다.수익 중 일부는 당장 필요한 생활비에 지출할 것이고,당장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은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을 것이다.한국처럼 사회적 안전망이 약한 나라에서는 노후도 걱정이고,만약 자녀가 있다면 자녀의 미래도 걱정일 것이다.그래서 많은 한국인이 투자를 넘어 투기에 가까운 자산 운용을 하기도 한다.그 연예인 세대가 올려놓은 집값은 일반 소상공인이나 월급을 받아 사는 이가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가격은 아니다.다들 대출을 받아서 사는데,대출을 갚기 위해 평생 또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그래서 원래 직장 외에도 겸업을 하거나 주식 투자를 하는 등 나름 방법을 찾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그 연예인에게 선진국처럼 기부하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인이 돈을 추구하듯이,대부분 한국인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이다.그러니 카페에 세 명이 가면 인원수에 맞게 음료를 주문하고,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절약해 달라는 것이다.그 연예인뿐 아니라 카페에’인원수만큼 주문해 주세요.‘라고 안내문을 붙이게 만든 모든 한국인에게 드리는 부탁이다.소상공인 폐업률소외받는 4050]]></description>
			<pubDate>Fri, 26 Jun 2026 14:03: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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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우를 모르는 사람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youtube.com/watch?v=x76KC6S7YqM</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93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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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선거 후 이런 저런 이야기 -책임 없는 자유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79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산안토니오 시장 X7월4일,미국 독립일에 예정된 칸예 웨스트(현재는‘Ye'로 개명했다.)텍사스 산안토니오시 공연이 금지되었다.산안토니오 시장 존스는 혐오 발언과 반유대적 발언을 한 사람이 시 기금으로 만든 시설에서 공연할 수 없다고 사회적 연결망에 밝혔다.칸예 웨스트가2022년 사회적 연결망에 유대인에게 전투 준비 태세3(DEFCON3)를 발령해야 한다고 썼다.그리고 그는 많은 공분을 샀고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몇 나라에 입국이 금지된 예도 있다.작년 호주 공연도 입국이 금지되어서 취소되었고,올해 영국 더 와이어 음악 축제에 출연진이었으나 입국이 금지되었다.선진국은 혐오 발언에 대해 엄격한 법을 누구에게나 적용한다.유명인이든 중요한 행사든 상관없이 혐오 발언을 한 사람은 문제의 소지를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한다.그리고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그 사람으로 인한 소요를 막기 위해 입국을 금지시킨다.칸예 웨스트가 유대인에 대한 혐오 발언을 사회적 연결망에 한 번 한 것은 아니다.그는 히틀러를 찬양하는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Heil Hitler‘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히틀러라는 인물을 찬양하는 사람은 선진국일수록 반인류적으로 여긴다.히틀러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유대인 대량 학살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히틀러가 저지른 대량 학살로 인해 서구는 인간의 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조심하게 되었던 것 같다.히틀러는 선출로 독일의 대표가 되었고 독일의 대표가 되어 국민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반인류적 범죄를 저질렀다.이런 반인류적 범죄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선진국일수록 다양한 안전장치와 예방 조처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관련 법령도 만들고 교육도 하면서 모두에게 깊은 경계심을 가지도록 하고 있다.그래서 히틀러와 같은 인물을 찬양하는 모양새를 갖춘 일이 발생하면 모두가 예민하게 반응하고,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한 사회적 여론을 보낸다.칸예 웨스트가 유대인 혐오 글을 올렸을 때,아디다스는 협업하던 프로젝트를 중단했다.그리고 많은 이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겼다.칸예 웨스트가 저지른 일련의 사건에 대한 대처를 보며 선진국과 한국의 차이를 생각하게 되었다.한국도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근현대사에 대량 학살이 있었고,안타까운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이런 역사적 사건을 희화화하는 인간에 대한 제대로 된 대처를 영국이나 호주만큼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아픔을 가진 유가족 앞에서 혐오 발언을 쏟아내도 국가는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는다.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그나마 후대 대통령이 사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그러나 사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픔을 가진 유족들에게 다시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다.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발언에 대한 적절한 제재이다.이런 부분에 대해 한국 정부와 소위 한국에서 배운 자들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얼마 전에도 유족들에게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유튜버를 다른 유튜버와 유가족이 합심해서 대처했다.정부는 이런 혐오 발언 유튜버에 대해 제대로 된 제재하지 않는다.그러다 보니 해도 되는지 생각해도 되는 아류들이 생각난다.그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인터넷에 본 것을 따라 같이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생겨난다.그리고 그걸 또래 문화에서 하나의 놀이처럼 유행한다.더 문제는 처음 시작에서 제대로 하지 못한 어른들이 그 아이들의 행동만 비판하는 것이다.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생각을 심어주지 못한 어른의 잘못은 놓치고 있는 것이다.왜 선진국에서 그런 발언하는 이에게 강한 제재를 하는 지 생각해 봐야 한다.칸예 웨스트는 혐오 발언외에도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그중 하나가 뮤직비디오 촬영 중 모델에게 저지른 행위로 고소를 당한 일도 있다.제니퍼 안이라는 모델이고 그녀의 변호사가BBC와 인터뷰 하면서 말한 것이 인상적이다.간단하게 정리하면,예술 창작이라는 명분으로 무엇이든 허용해서는 안 된다.예술 창작이기에 그 경계를 정하는 것은 애매할 수 있다.그러나 미리 합의된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힘이 있는 자라고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힘이 있는 자가’자유‘를 내세우며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약한 자를 괴롭히는 핑계가 될 수 있다.한국의 일부 나쁜 고용주는 내가 돈 주고 고용했는데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그래서 계약서에 있는 근로 시간을 지키지 않고,약속한 임금을 약속한 날짜에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미국이 한국보다 나은 것은 계약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원어민과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한국 교장은 한국 교사에게 늘 그랬듯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원어민에게 시킨다.그러면 원어민은 당연히 반발한다.그들은 계약서에 없는 데 왜 시키냐고 당연히 물어본다.그런 과정을 보면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고용주와 고용인 사이뿐 아니라,일반적 사회 현상을 봐도 그렇다.힘이 있는 자가 내가 하고 싶은 말 행동을 하는 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이야기한다.그러나 사회는 나와 너,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다.민주주의에서 자유는’나와 너‘를 전제로 한 자유이다.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그리고 그런 행동은 멋있는 것이 아니라 민폐를 주는 경우가 많다.심한 경우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그리고 자유는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칸예 웨스트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예술을 할 수 있다.그러나 그에 따라서 입국이 금지 당하는 것도 본인이 안고 가야 할 몫이다.그리고 그렇게 행동에 대해 적절한 제재를 가하는 것이 선진국이다.자유와 함께 책임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한국은 자유는 있지만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이다.힘의 논리에 따라,강한 사람은 제멋대로 행동해도 되고 약한 사람은 참고 살아야 하는 분위기다.그런 분위기는 절대 선진국이라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호주 입국 금지https://www.bbc.com/news/articles/cvge48j5lplo칸예웨스트 혐오 발언 후https://www.npr.org/2022/10/09/1127732183/kanye-west-instagram-twitter아디다스와 칸예 웨스트 법정 싸움https://www.bbc.com/news/articles/cqjg7w8z7dvo칸예 웨스트 모델 사건한국 혐오 발언 현황혐오에 엄격한 선진국]]></description>
			<pubDate>Wed, 24 Jun 2026 21:43:1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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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선거 후 이런 저런 이야기 -책임 없는 자유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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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79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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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기획/역사]6·25 사변 전 한반도 반쪽 낸 미국의 잔혹한 계산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78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기획/역사]6·25 사변 전 한반도 반쪽 낸 미국의 잔혹한 계산&quot;진짜전쟁범죄국은 일본인데 왜 우리가?&quot;… 6·25 분단 비극 배후의 잔혹한 국제정치[전범국 일본 대신 우리가 왜]6·25 전쟁 발발 전 이미 한반도가 분단되었던 배경을 두고, 패전국인 일본 대신 전범 책임이 없는 한반도가 강제로 쪼개져 미·소 대리전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역사적 재조명과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 매년 돌아오는 6·25 전쟁 기념일을 앞두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본질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터지기 전, 왜 한반도는 이미 남과 북으로 반쪽이 나 있어야만 했는가에 대한 국제정치학적 규명이다.역사의 진실을 들여다보면 분단의 비극은 철저히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기획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진짜 전범국이자 전쟁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는 일본이다.상식적인 전후 처리라면 독일처럼 전범국인 일본의 영토가 분할되거나 신탁통치를 받았어야 마땅하다.그러나 미국을 비롯한강대국들의 계산은 달랐다.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확장을 막기 위한 거점으로 일본을 선택했다. 일본의 전범 세력을 처단하고 영토를 나누는 대신, 일본을 전후 아시아의 핵심 동맹국으로 빠르게 부활시키기 위해 보호막을 친 것이다.그 결과 태평양 전쟁의 최대 피해국이자 전범 책임이 전혀 없는 한반도가 38선이라는 거대한 가위질로 강제 분단되는 황당한 비극을 맞이했다.전쟁 발발 전에 이미 한반도의 허리가 잘려 나갔고, 남과 북에는 각각 미·소 군정이 들어서며 대립의 씨앗이 뿌려졌다.결국 1950년에 터진 6·25 사변은 한반도 내부의 단순한 갈등을 넘어, 미·소 냉전 체제가 만들어낸 철저한'대리전'이었다.전범국 일본은 한반도에서 터진 전쟁을 발판 삼아 군수물자를 납품하며 패전의 잿더미에서 경제 대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천박한 기회를 잡았다.반면 피해국인 우리 민족은 남북을 합쳐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국토가 초토화되는 잔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시민사회와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6·25 사변을 남북 간의 이념 대립으로만 가두려는 시각을 경계한다.한 시민은 &quot;우리가 똑똑히 기억해야 할 진실은 강대국들이 전범국 일본을 살리기 위해 한반도를 반쪽 냈고, 그 대리전의 희생양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었다는 점&quot;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6·25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주권을 잃고 대리전의 전쟁터가 되어야 했던 분단의 근본적인 원인을 직시하는 일이 그어느 때보다 시급하다.#625사변 #한반도분단 #미소대리전 #일본전범 #역사의진실]]></description>
			<pubDate>Wed, 24 Jun 2026 21:29:3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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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획/역사]6·25 사변 전 한반도 반쪽 낸 미국의 잔혹한 계산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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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해병대 간도 특설대] 해병대 ‘악습과 똥군기’의 서글픈 뿌리…초대사령관들의 ‘간도특설대’ 경력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78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해병대 간도 특설대] 해병대 ‘악습과 똥군기’의 서글픈 뿌리…초대사령관들의 ‘간도특설대’ 경력대한민국 해병대의 엄격한 기수 문화와 내무부조리가 일제강점기 전범국 군대(일본군 및 만주군)의 폭력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재조명받고 있다.창설 초기 지휘부를 장악한 친일 파시즘 군인들이 일본군식 사적 제재를 그대로 이식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해병대 왜곡 군기의 뿌리가 되었다는 지적이다.초대 사령관 전원, 악명 높은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해병대 창설과 인적 구성 과정을 살펴보면 이 같은 주장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드러난다. 대한민국 해병대의 기틀을 잡은 초기 사령관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만주국군과 일본군 출신이 절대다수였다.초대 해병대사령관 신현준: 일제강점기 친일 반민족 행위로 악명 높았던 만주군 ‘간도특설대’ 창설 요원이자 장교(대위) 출신이다.제2대 김석범 · 제3대 김대식 사령관: 신현준 사령관과 마찬가지로 만주 대륙에서 항일 무장세력을 탄압했던 간도특설대의 핵심 간부 경력을 가지고 있다.해군의 친일 군인 ‘해병대 몰아넣기’가 화근이들이 해병대에 집결하게 된 배경에는 해군 창설기 인사의 비화가 숨어 있다.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한 손원일 제독은 해군의 핵심 장교로 배를 타는 기술(항해술)이 검증된 민간 상선사관 출신들을 주로 중용했다. 반면 배를 탈 줄 모르고 지상 전투(육전) 경험만 있던 일본 육군 및 만주군 출신 군인들은 신설된 해병대로 대거 소속을 변경(전과)시켰다.그 결과 해병대 창설 간부진의 절대다수가 전범국 군대 출신들로 채워지는 기형적인 구조가 완성되었다.일본군 ‘똥군기’와 가혹행위의 대물림이처럼 전범국 군대 출신들이 초기 해병대 지휘부를 독점하면서 내부 병영 문화도 급격히 오염되었다.민간인을 강제 징집해 폭력으로 통제하던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악명 높은 병영 부조리(구타, 가혹행위, 정신적 수치심 주기)가 고스란히 해병대 내무반으로 이식되었다. 과거 해병대 내에서 오랫동안 자행되던 각종 은어나 기상천외한 가혹행위 양식들 역시 상당수가 일본군과 만주군 시절의 잔재에서 유래한 것이다.해병대가 6·25 전쟁 등에서 &quot;안되면 될 때까지&quot; 정신으로 수많은 전공을 세운 강인한 부대인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초기 지휘부가 가져온 일본식 병영 폭력 문화가 해병대 특유의 왜곡된 '센 군기(악습)'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은 지우기 힘든 역사의 오점으로 남아있다.[약산 소식지 권용진 기자 ]]]></description>
			<pubDate>Wed, 24 Jun 2026 21:07:3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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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해병대 간도 특설대] 해병대 ‘악습과 똥군기’의 서글픈 뿌리…초대사령관들의 ‘간도특설대’ 경력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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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시민사회, “전시인가, 평시인가?”종전평화체제로 전환하라!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78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6.25 제76주년을 맞이하는 이번 주 목요일(6.25) 낮 3시부터 광화문 면세백화점 앞에서 ‘민청학련동지회’(상임대표 강창일)와 ‘흥사단’(이사장 김전승) 등 27개 민주시민사회단체들이 ‘중추사’(공식명칭 : 한반도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 상임대표 이현배) 주관으로 &amp;amp;lt;한반도 자주평화 관련 시민사회 공동입장과 특별제안&amp;amp;gt; 기자회견을 개최한다.기자회견문(첨부 1 참조)에 따르면, 북핵 고도화와 주변국 밀착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단호히 거부하고 ‘하나의 코리아(One Korea)’라는 통일 지향성을 유지하되, 전쟁을 실질적으로 막아 국민생명을 보호하고 민족상생을 모색하기 위한 긴 안목과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이러한 목적에서 이들 단체는 특별제안 형태로 아래와 같은 3대 과제를 제시한다.▼ 정전협정을 자주적 억지력과 주변국 보장이 결합된 ‘국제보장형 종전·상호불가침 평화체제’로 전환▼ 남북 현실과 평화통일 길을 정교하게 담아낼 헌법과 법제 정비 등 국가차원 국민공론마당 설치▼ 대통령 등 정부 및 국회가 꾸물댈 경우, 늦어도 내년 초 시민사회 등 민간 차원에서 시민의회, 풀뿌리 원탁회의, 국민서명 등과 같은 직접민주제를 도입하여 예비적 국민숙의 공론마당 가동추진3대 과제를 제시한 이들 27개 단체는 바로 이 순간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민주화운동에서 맏형 세대로 평가받는 ‘민청학련동지회’와 단순한 항일독립운동을 뛰어넘어 11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온갖 풍파와 부침 등을 겪으며 근현대적인 주권자를 양성하는 시민운동의 역사적 뿌리로 살아남은 ‘흥사단’ 및 열린 마음으로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주요 민주시민사회단체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우리나라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고자 하는 이들 단체가 성심을 다해 마련한 3대 제안에 남북당국과 미·중·러·일 등 주변국 및 시민사회 등 국민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한편, 기자회견일보다 하루 앞서는 수요일(6.24) 낮 4시부터 지하철 3호선 안국역 근처에 있는 천도교 수운회관 1411호에서 ‘민청학련동지회’ 주관으로 29개 단체가 &amp;amp;lt;남북적대 청산 관련 시민사회 토론회&amp;amp;gt;를 개최한다.큰 주제는 “남북 2국가 2국호 현실과 상생평화”로서, ‘평화통일의 이상과 현실 및 과제’를 다루는 제1부가 먼저 펼쳐진다. 제1발제자와 지정토론자는 각각 김상준 경희대 명예교수와 김경민 한국YMCA 전 사무총장이 맡고, 제2발제자와 지정토론자는 각각 이정철 서울대 교수와 정성희 자주연합 집행위원장이 맡는다.이처럼 한두 개 단체가 아니라 거의 30개에 달하는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토론회는 일반인에게는 어렵거나 탁상공론처럼 들리는 단순한 학술토론회가 아니다. 오히려 실천과 이론을 겸비한 현장경험이 풍부한 학자들과 평생을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 등에 바쳐왔던 활동가들이 학문적 시각을 우선하는 학계와 치열하게 토론하면서도 서로 마음을 열어 놓고 머리를 맞대 무언가 귀중한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이러한 특징은 ‘쟁점과 대안 심층토론’이 이루어지는 제1부에서 더욱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20대 대학생은 물론 만 40세 대학조교수로서 민청학련 작고회원 아들이 세대와 연령을 뛰어넘어 당당하고 자유롭게 소신을 밝히는 자유토론자로 나서고, 김성경 서강대 교수와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등이 종합토론자로 나선다.이날 민청학련 동지회 공동대표로서 토론회 마무리 발언에 나서는 송운학 ‘개헌개혁행동마당’ 상임의장은 “준비과정에서 ‘1회성 행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공동입장을 도출하고 그 입장에 따라 국민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적절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면서 “총 3쪽에 달하는 초안을 회람하면서 수정, 보완, 첨삭 등 검토의견을 수렴하여 하나하나 어휘와 구절 및 문장 등을 여러 차례 고쳤다. 내부 사정으로 2개 단체가 내일(6.25) 회견에 동참하지 못하지만, 조만간 더 많은 단체들과 함께 합류할 것으로 확신하며 가능한 한 빨리 공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활동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힌다]]></description>
			<pubDate>Wed, 24 Jun 2026 20:57: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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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 “전시인가, 평시인가?”종전평화체제로 전환하라!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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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호수로 변한 발굴현장 신고 직후 개방된 버스정류장 울타리…시민 안전사고 우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78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그림24일 춘천시역 앞 버스정거장에서 바라본 발굴현장.가파른 경사면과 커다란 물웅덩이가 위험하다.(사진제공:중도본부)춘천 캠프페이지 발굴조사 현장에서 최근 침수사고가 발생한 가운데,현장으로 통하는 출입통제 울타리 일부가 철거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안전관리 논란이 커지고 있다.현장 확인 결과24일 오전 춘천역 방면 버스정류장 인근에 설치돼 있던 출입통제 울타리 일부가 철거된 상태로 확인됐다.해당 구간은 발굴조사 현장과 인접해 있어 평소 시민 출입이 제한되던 곳이다.특히 불과 이틀 전인22일까지만 해도 해당 울타리는 폐쇄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24일에는 울타리가 제거되면서 누구나 발굴현장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으로 확인됐다.문제는 울타리 너머에 최근 침수사고가 발생한 발굴현장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현장에는 가파른 경사면과 대규모 물웅덩이가 형성돼 있어 시민이 무단으로 출입할 경우 추락이나 미끄러짐 등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제기된다.앞서 캠프페이지 발굴조사 현장에서는 지난22일 집중호우 등의 영향으로 현장 상당 부분이 물에 잠겨 대규모 물웅덩이가 형성된 사실이 확인됐다.해당 사실은 관계기관에 신고됐으며,이후 현장 침수 상황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그러나 신고 이후 현재까지 관계기관의 현지점검 결과나 안전조치 계획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출입을 통제하던 울타리가 철거되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안전관리 체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일각에서는 침수사고 신고 이후 위험구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반대로 접근성을 높인 조치가 이루어진 배경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현장을 확인한 중도본부 김종문 대표는&quot;버스정류장에서 호기심에 발굴현장으로 진입한 시민이 약2m높이의 경사면 아래 물웅덩이로 추락할 경우 중대한 인명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quot;며&quot;침수사고가 신고된 이후 위험구역을 통제하기는커녕 출입이 가능하도록 방치된 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quot;이라고 지적했다.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은 부분도 적지 않다.울타리 철거가 누구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졌는지,안전성 검토가 있었는지,시민 출입에 대한 안전대책은 마련됐는지 등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설명이 없는 상태다.이에 대해 중도본부는 춘천시에▲울타리 철거 경위 공개▲침수사고 이후 현장 안전점검 결과 공개▲출입통제시설 원상복구▲발굴현장 안전관리 대책 공개 등을 요구하고 있다.한편 캠프페이지 발굴조사 현장은 최근 발굴조사 과정과 유적 보존 문제를 둘러싸고 시민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지역이다.침수사고에 이어 출입통제시설 철거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춘천시의 현장 안전관리 실태에 대한 추가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중도본부는 춘천시에 울타리 철거 경위와 안전조치 계획에 대한 공식 입장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그림24일 춘천역 앞 버스정류장 인근 캠프페이지 발굴조사 현장 출입통제 울타리 일부가 철거된 모습.울타리 너머로 발굴현장 접근이 가능한 상태다.(사진제공:중도본부)]]></description>
			<pubDate>Wed, 24 Jun 2026 20:48:0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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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호수로 변한 발굴현장 신고 직후 개방된 버스정류장 울타리…시민 안전사고 우려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img.ehom.kr/news/2026/06/24/73e74b753e7fc7c8b00cecc0535a6a91204512.png</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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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중부경찰서 시민경찰연합회, 재가장애인 25가정에 사랑의 후원물품 전달  무더위 속 이웃사랑 실천…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77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인천중부경찰서 시민경찰연합회가 지역 장애인들을 위한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며 지역사회에 감동을 전하고 있다.지난 23일 인천중부경찰서 시민경찰연합회(회장 박윤홍)는 인천광역시중구장애인종합복지관(관장 최상희)과 함께 재가장애인 25가정을 방문해 쌀과 생필품 등 후원물품을 전달하고 안부를 확인하는 봉사활동을 실시했다.이날 봉사활동에는 시민경찰연합회 회원 14명이 참여했다. 봉사자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직접 각 가정을 찾아 무거운 후원물품을 전달하며 장애인들의 생활 불편 사항을 살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등 이웃사랑을 실천했다.특히 시민경찰연합회는 단순한 일회성 봉사에 그치지 않고 지난 2014년부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복지관과 함께 짜장면 특식 행사, 명절 선물 전달, 겨울철 김장김치 나눔, 안부 확인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오며 지역사회 나눔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박윤홍 회장은 &quot;무더운 날씨에도 재가장애인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며 봉사에 참여해 주신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quot;며 &quot;우리의 작은 정성과 수고가 장애인분들에게 큰 힘과 희망, 그리고 소중한 선물이 되길 바란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셨으면 좋겠다&quot;고 말했다.최상희 관장도 &quot;오랜 기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복지관과 함께 장애인 복지 향상에 힘써주시는 시민경찰연합회에 깊이 감사드린다&quot;며 &quot;지역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장애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다&quot;고 전했다.한편 인천중부경찰서 시민경찰연합회는 장애인 지원 활동 외에도 지역축제 교통안전 봉사, 미아예방 이름표 써주기,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 청소년 선도 활동 등 다양한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펼치며 안전하고 따뜻한 지역공동체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봉사자들의 땀방울이 모여 만들어낸 작은 기적. 그들의 발걸음은 단순한 물품 전달을 넘어 이웃에게 희망을 전하는 아름다운 동행으로 이어지고 있다.장대식 기자]]></description>
			<pubDate>Wed, 24 Jun 2026 20:39:1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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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독립운동가 김동삼과 일가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50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대구MBC1878년6월23일 독립운동가 일송 김동삼 선생님이 태어나신 날이다.만주벌 호랑이라 불릴 만큼 항일무장투쟁에서 뛰어나시기도 했지만,협동학교를 세워 가르침을 주고자 했던 교육자이기도 하다.의병 운동을 하기도 했으나,국내에서 항일 운동이 어려워지자,만주로 건너가셨다.가진 재산을 털어 신흥학교를 세우고 백서 농장을 세워서 독립운동의 기초를 마련하려고 하셨다.백서 농장을 서로군정서로 발전시켜 청산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청산리 전투에서 청산리전투에서 조카 김성로가 전사했다.백서농장을 해체하고 삼원포로 귀환한 김동삼 독립운동가는 한족회에서 서무사장을 맡았다.바로 이어서 그가 서로군정서 참모장으로 취임하였을 때,김동삼 선생님이 한족회 서무사장 자리를 인계할 정도로 믿었던 조카였다.일제가 청산리 전투에 대한 보복으로 서간도나 북간도지역 사는 한인을 무참히 학살하는 일이 벌어졌다.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 불리는 보복에서 김동삼 선생님은 동생 김동만을 잃었다.삼원포 삼광학교(三光學校)교장으로 활약하던 동생 김동만을 살해한 것이다. 1931년 일본군의 만주침공 직후에 일제 경찰에 의해 피체되었다.사돈인 이원일(李源一),경북 영양 출신인 남자현 의사 항일 공작을 추진하기 위해 하얼빈에 잠입했다가 일제 경찰에 피검되었다.김동삼 독립운동가는 하얼빈 주재 일본영사관 경찰에 피체된 모진 고문을 받으며 고생하다가 국내로 압송되었다.평양지방법원에서10년의 중형을 받았다.처음에 평양감옥에서 고생하다가 서울 경성형무소로 옮겨진 그는 만59세가 되던1937년4월13일(음력3월3일),옥중에서 순국하였다.사돈 이원일 지사도1931년경 만주 흑룡강성(헤이룽장성)하얼빈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32년3월18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2년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출처: 국가보훈처 (김동삼 독립운동가 가계도)김동삼 선생님의 장남 김정묵 선생님 역시 타계할 때까지 여러 독립운동 관련 활동에 참여했다. 1921년1월 베이징에서 신채호(申采浩)·김창숙과 함께『천고(天鼓)』발간에 동참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데 노력했고,김창숙이 주도한 이른바‘제2차 유림단사건’을 후원하였다.아버지 김동삼 독립운동가가 국내로 피체된 뒤에도,베이징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하던 중1939년7월18일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같은 달22일 함경북도 경찰부로 호송되어 옥고를 겪었다.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던 김정묵 선생님은 지병과 과로 생활의 악조건 등이 겹치며1944년4월19일57세로 사망하셨다.김정묵 독립운동가 동생 김성묵,김사묵과 아들 김교삼,김대륙 그리고 조카 김교붕 등이 김정묵 선생님의 유지를 이어받아 의열단 활동에 참가하는 등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고 한다.짧은 글에 담기 모자랄 만큼 김동삼 선생님과 일가는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나 이런 독립운동가 집안이 일제강점기가 아닌 해방기에 엄청난 수난을 겪었다.필자가 이번 기사를 쓰게 된 것은, 6월23일 오늘이 일송 김동삼 선생님이 태어난 날이기도 하지만 얼마 전 읽은 페이스북 글 때문이다.김동삼 선생님의 후손 김원일님이 쓰신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마음이 너무도 먹먹해졌다.이렇게 일제강점기에 가진 재산을 다 털고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했던 집안이 해방 후 친일파가 지배하는 한국에서 눈엣가시였던 듯했던 것 같다.남한과 북한의 갈려진 상황에서 빨갱이와 내통했다고 몰아서6촌까지 불러내 일가를 다 죽여 버렸다고 한다.그리고 이 글을 쓴 김동삼 후손 분에 따르면,아버지가 다섯 살 때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다고 한다.그리고 치매에 걸리시고 나서 그 기억 때문에 자꾸 잠꼬대하고 아버지 찾으러 나간다고 하신다고 한다.게다가 한 번은 진짜 나가신 적도 있어서 그런 아버지를 보며 마음 아파하시고 있다고 한다.평생을 눌러 온 억울함이 치매가 걸리시고 나온 게 아닌지 생각이 든다.해방 후 남한은 독립운동가에게 가혹했다.김동삼 독립운동가 일가만 몰살당한 게 아니다.의열단 단장 김원봉 일가도 몰살당했다.김원봉은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 앞잡이 경찰 노덕술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고 북으로 가 버렸다.그래서 김동삼 일가보다 더 쉽게 분단된 조국의 희생양이 되었다.친일 앞잡이가 경찰이 되고 군인이 되고 입법 행정을 장악한 나라에서 조국은 그들에게 감사를 표현하지 않았다.반민족행위자특별위원회를 해체한 날을 현충일로 지정한 나라에서 뭘 더 말할 수 있겠는지 모르겠다.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사회를 이루며 사는 인간에게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생존을 위해 이기적일 수 있지만,같이 모여 살면서 도우며 살 수 있는 것은 고마움을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인간과 인간이 서로 고마워하며 살기에 이기적인 욕망을 앞세울 때 잠시 멈추게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그래서 많은 인간이 모여 살아도 동물처럼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지 않는 것이다.이런 걸 모르는 자들이 많은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고 후안무치 행동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지금이라도 반민족행위자에 대해서 옳지 못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역사는 반복된다.벌 받지 않은 자들의 후안무치가 현재도 반복되고 있다.김동삼 후손 김원일 선생님 페북 전문올해 83세인 아버님의 기억 속에서 제가 사라지고 있는것 같아 너무 속상합니다정말 집안이 역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참으로도 기막히게 온 집안분들이 사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의병으로 시작해서 51년간의 강한 항일 전쟁남은분들은 철저한 감시대상 한 순간에 잘나가던 집안에서 나라 독립을 위해 모든것을 버리고 죽을 각오로 살아온 집안일송 김동삼할배가 순국하시고 모든 감시가 더 강해진 가운데 만주에서 돌아가시거나 감시가 덜 심한 일본 심장부 도쿄로 가셔서 지하조직에서 독립을 준비한 친조부~하지만 광복 후 고향으로 돌아오셔서 동네 이장을 하셨지만. 45년 이후 낮에는 군인과 경찰이 빨갱이 접촉한 사람들 죽이고 밤에는 산에서 남노당이 동네 습격해서 먹을거 약탈하고~이장에게 배분 시켰을것이다자료가 남아있는것이 없다안 그래도 독립운동가 집안은 눈의 가시였을 이승만정권에는 할아버지는 좋은 먹이감이셨을거다 48년 어느 날 낙동강변에서 6촌까지 불러네 같은 날 총살해 강변에 묻었단다 정부에서 빨갱이와 내통한 빨갱이라고 몰아서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정확히 왜 그런 죽임을 당하셨는지 아무도 모른다)그런데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신 아버지 5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면을 직접 목격하신거다 그래서 지금도치매시라 아버지 찾으러 간다시며 자꾸 밤에 잠꼬대를 하신다 하루는 나가신적도 있다이제 아버님 머리속에는 아들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고 평생을 그리워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한 장면만 고정된듯 하다이제 이 손자가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원인을밝히고자 먼 길을 떠나야할것 같다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하고도 돌아와서 빨갱이 소리를 들으셨을 그 억울함과 한평생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고 매일 아배요 아배요하셨을 아버님을 위해서라도이것저것 생각하니 가슴 찟어져 소주한잔에 옛분들은 붓을 드셨지만 전 핸드폰을 드네요간도대학살김동삼 독립운동가를 고문한 양영환 친일파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65438]]></description>
			<pubDate>Tue, 23 Jun 2026 21:49:5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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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독립운동가 김동삼과 일가들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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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유정복 민선 8기 인천시정 ‘재정 고갈 위기’… 재정 수지 -4585억 원 기록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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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인천 재정 고갈위기] 유정복 민선 8기 인천시정 ‘재정 고갈 위기’… 재정 수지 -4585억 원 기록[약산소식지=권용진 기자] 유정복 시장이 이끄는 민선 8기 인천시정이 심각한 재정 고갈 위기에 직면했다. 최근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인천시의 재정 수지는 ‘마이너스 4585억 원’을 기록하며 재정 건전성에 심각한 빨간불이 켜졌다.박찬대 인수위원회는 이에 대해 “뼈를 깎는 재정개혁이 시급하다”며 강력한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을 예고했다.필수 지출 대비 가용 재원 턱없이 부족올해 하반기 인천시의 긴급 재정 상황을 살펴보면, 공무원 인건비와 주요 사업비 등을 포함한 ‘필수 지출 예정액’은 6441억 원에 달한다. 반면, 세수 수입과 보조금 등을 합친 ‘가용 재원’은 1856억 원에 불과해 약 4585억 원의 재정이 부족한 상태이다.비상금 금고마저 바닥… 통합관리기금 3300억 원 이미 소진재원 소진의 세부 내역을 보면 유정복 시장의 ‘비상금 금고’ 역할을 하던 통합관리기금 3300억 원은 이미 전액 소진된 상태이다.여기에 추가적인 재원 마련을 위해 추경(추가경정예산) 편성 당시 교부세 1100억 원을 이미 사용했으며, 재정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 지방채 663억 원까지 추가로 발행한 것으로 확인되었다.집행률 저조·자체 사업 전면 보류 및 중단 불가피인수위 측은 현재의 비정상적인 재정 마비 상태를 정상화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특히 집행률이 저조한 기존 사업들을 과감히 삭감하는 한편, 무리하게 추진되던 유 시장의 고유 자체 사업들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보류·중단 조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다만, 필수적인 국비 매칭 사업(821억 원 규모)에 대해서는 재정난 속에서도 최소한의 재원을 조정해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뼈를 깎는 재정개혁 속 당선인 긴급 보고 예정인수위 측은 “특별회계와 기금 등 가용 재원을 총동원하고 지방세 수입도 철저하게 재추계할 것”이라며 강력한 재정 다이어트를 예고했습니다.박찬대 당선인은 인천시 당국으로부터 재정 현황에 대한 긴급 보고를 직접 받고, 구체적인 사업 조정 대상과 임기 초반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description>
			<pubDate>Mon, 22 Jun 2026 19:19:0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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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정복 민선 8기 인천시정 ‘재정 고갈 위기’… 재정 수지 -4585억 원 기록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img.ehom.kr/news/2026/06/22/a4bbe561f65638698b7b64bbbe0733db191733.png</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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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국방안보] '64년 만의 문민' 안규백 국방장관, GOP 병력 감축·방첩사 해체 등 파격 행보… 안보 공백 우려 속 탄핵 청원까지 '확산'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21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국방안보] '64년 만의 문민' 안규백 국방장관, GOP 병력 감축·방첩사 해체 등 파격 행보… 안보 공백 우려 속 탄핵 청원까지 '확산'[약산소식지 권용진 기자] 2025년 7월 이재명 정부의 초대 국방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된 안규백 장관이 취임 이후 파격적인 국방 개혁안을 연이어 쏟아내며 정계와 군 내부의 중심에 섰다. 안 장관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무려 64년 만에 탄생한 '문민 국방부 장관'이자,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방위병(단기사병) 출신 국방 수장'이라는 전무후무한 타이틀을 거머쥔 인물이다.■ 청문회 달군 '22개월 방위병' 미스터리와 문민 통제의 시작안 장관의 임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25년 7월 인사청문회 당시, 1983년 방위병으로 소집된 그의 복무 기간이 당대 평균인 14개월보다 8개월이나 긴 '22개월'로 기록된 병적 문서를 두고 야당의 파상 공세가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탈영이나 영창 입소 의혹까지 제기됐다.이에 대해 안 장관은 &quot;45년 전 학점 인정 및 재학 기간 산입 과정에서 발생한 병무행정의 행정적 착오&quot;라며, 소집해제 후 부대 명령에 따라 방학 기간을 이용해 잔여 복무 기간 도장을 찍어 채운 것이라고 직접 해명했다.과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만 15년을 활동한 5선 의원 출신의 '안보통'이라는 전문성을 인정받아 문민통제의 적임자로 최종 임명됐다.■ 최전방 GOP 병력 75% 철수 논란… &quot;AI로 대체&quot; vs &quot;안보 공백&quot;취임 후 군 체질 개선에 나선 안 장관은 2026년 4월, 인구 절벽에 따른 군 구조 개편의 일환으로 최전방 GOP 경계 병력을 기존 2만 2,000명에서 6,000명 수준으로 대폭 감축하겠다는 파격적인 개혁안을 발표했다. 철수한 병력은 후방 기지로 재배치하고, 빈자리는 인공지능(AI), 무인 드론, 로봇 중심의 과학화 경계 시스템으로 전면 대체하겠다는 구상이다.그러나 북한의 도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나온 '선제적 병력 철수' 방침에 예비역 장성들과 안보 전문가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과학화 장비의 오작동 가능성과 북한의 사이버 해킹 위협 속에서 AI에 최전방을 맡기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논란이 확산되자 안 장관은 &quot;당장 내일 줄이는 것이 아니라 2040년대를 목표로 추진하는 중장기 계획&quot;이라며 진화에 나섰으나 여론의 의구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방첩사 해체·사관학교 통합 강행… 군 내부 반발과 탄핵 청원 직면안 장관의 개혁 페달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2026년 6월 10일에는 군의 정치 개입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명목으로 국군방첩사령부(구 기무사)를 전격 해체하고 기능을 분산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이어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육·해·공군 사관학교의 1·2학년 과정을 통합 교육하는 방안까지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전통적인 군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파격 행보가 이어지자 군 내부와 정계의 갈등은 극에 달하고 있다.현재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사관학교 통합 중단을 요구하는 서명과 함께 안 장관에 대한 탄핵 소추 청원 참여자가 급증하는 등 격렬한 파장이 지속되고 있어, 안 장관의 문민 국방 개혁이 연착륙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description>
			<pubDate>Mon, 22 Jun 2026 19:15:2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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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국제결혼과 '매매혼'은 엄연히 다르다… 상업적 병폐 규제하되 다문화 가정 낙인 찍지 말아야한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21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국제결혼과 '매매혼'은 엄연히 다르다… 상업적 병폐 규제하되 다문화 가정 낙인 찍지 말아야한다.[매매혼&amp;amp;amp;다문화] &quot;돈 주고 사 온 결혼?&quot;… '혼인 10% 시대'에 멈추지 않는 다문화 혐오, '제도적 악습'과 '사람'은 분리해야 한다.최근 저출산과 지역 소멸의 대안으로 국제결혼이 다시금 주목받는 가운데, 일각에서 이를 ‘매매혼’으로 치부하며 비하하는 시선이 존재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전문가들은일부결혼중개업체의 상업적인 행태는 엄격히 규제해야 마땅하지만, 국경을 넘어 가정을 이룬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비하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이자 차별이라고 지적한다.혼인 10건 중 1건은 '다문화'… 단기적 거래와 '지속적 공동체'의 차이국제결혼과 매매혼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혼인의 '목적성'과 '지속성'에 있다. 매매혼은 성(性)이나 노동력을 매개로 한 단기적인 물질적 거래에 가깝다. 반면 법적 국제결혼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두 성인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가정을 구성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삶을 공유하는 지속적인 공동체 형성 행위다.실제로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다문화 혼인은 연간 2만 건을 넘어서며 전체 혼인의 약 9.6%에 달한다. 국내 결혼 10건 중 1건이 국제결혼을 포함한 다문화 혼인인 셈이다.중개업체를 통했다는 이유만으로 혼인의 진정성을 폄훼하는 것은 이주 여성들의 주체적인 선택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판도 나온다. 많은 이주 여성들이 더 나은 삶과 행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국제결혼을 선택하고 있으며, 이들을 단순한 '상품'으로 취급하는 시선 자체가 왜곡된 편견이라는 지적이다.무차별적 낙인, 다문화 가정과 자녀들에게 사회적 폭력국제결혼 가정을 향한 '매매혼'이라는 낙인은 우리 사회의 동반자인 다문화 가정을 고립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특히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학교나 사회에서 이러한 비하적 표현에 노출될 경우, 정서적 상처를 입고 사회적 차별과 혐오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실제로 정부 조사에 따르면, 다문화가족 자녀(만 9~24세)의 최근 1년간 차별 경험률은 4.7%로 나타났으며, 차별 행위자의 대부분은 학교 친구(87.1%)인 것으로 조사됐다.이미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 중 다문화 학생 비중은 3.8%(약 19만 명)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인구 절벽 위기 속에서 다문화 출생아가 전체 출생의 5.6%를 차지할 만큼 이들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미래 자산이다. 이들을 부정적인 프레임으로 배척하는 것은 국가적 사회 통합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부작용 규제와 인식 개선 병행되어야물론 과도한 중개 수수료, 단기 속성 맞선,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중개업체의 허위 광고 등은 정부 차원에서 강력히 단속하고 근절해야 할 과제다.실제로 남성이 중개업체에 지불하는 평균 비용이 약 1,500만 원을 넘어서는 등 상업화에 따른 부작용은 여전히 존재한다.정부 역시 이를 방지하기 위해 결혼이민 비자(F-6) 발급 시 소득 요건, 언어 소통 능력, 범죄 경력 등을 엄격히 심사하는 등 제도적 스크리닝을 강화하고 있다.결국 핵심은 '제도적 병폐'와 '사람'을 분리해 보는 시각이다. 결혼 중개 과정에서의 상업적 악습은 단호하게 비판하고 바로잡되, 이를 통해 형성된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는 따뜻한 시선과 제도적 정착 지원이 필요하다. 국제결혼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약산소식지 권용진 기자 ]]]></description>
			<pubDate>Mon, 22 Jun 2026 19:10:5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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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제결혼과 '매매혼'은 엄연히 다르다… 상업적 병폐 규제하되 다문화 가정 낙인 찍지 말아야한다.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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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윤석열 전 대통령, 종합특검 2차 출석…'군사반란 혐의' 피의자 조사 유죄시 사형!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21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윤석열 전 대통령, 종합특검 2차 출석…'군사반란 혐의' 피의자 조사 유죄시 사형![약산소식지 권용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 중인 2차종합특별검사팀(특별검사 권창영)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일주일 만에 다시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13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검팀은 이날 오전 10시 윤 전 대통령을 군형법상 반란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6일 '계엄 정당화 메시지 해외 전파 의혹'에 따른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첫 조사를 진행한 지 일주일 만의 두 번째 소환이다.특검팀이 이번 조사에서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핵심 의혹은 12·3 비상계엄 선포 당일 병기를 휴대한 군인들을 국회와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진입시켜 국가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는 점이다.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당시 군 지휘부와 공모해 이 같은 행위를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군형법상 반란죄는 원칙적으로 군인을 대상으로 삼고 있으나, 특검팀은 비군인 신분이라 하더라도 군인과 공모해 반란 행위를 주도한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는 법리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군형법상 '반란 수괴(우두머리)' 혐의는 유죄가 인정될 경우 법정형이 오직 사형 하나만 규정되어 있다.이에 앞서 특검팀은 지난 4일 공동공모자로 지목된 김용현 전 장관을 소환 조사해 관련 진술을 확보했다.이번 윤 전 대통령 조사를 위해 특검팀은 100페이지가 넘는 질문지를 준비했으며, 조사는 검사가 진행하고 김정민 특검보가 직접 배석해 신문을 진행 중이다.특검팀은 이날 조사를 마치는 대로 진술 내용과 물증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군사반란 혐의에 대한 최종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아울러 향후 '대통령 관저 이전 예산 전용 의혹' 및 관련 수사 무마 의혹 등 남아있는 핵심 피의 사건들에 대해서도 추가 수사를 이어갈 계획이다.]]></description>
			<pubDate>Mon, 22 Jun 2026 19:06:0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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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윤석열 전 대통령, 종합특검 2차 출석…'군사반란 혐의' 피의자 조사 유죄시 사형!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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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둘러싼 당내 인사 갈등과 당무 운영 논란을 요약한 인포그래픽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21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둘러싼 당내 인사 갈등과 당무 운영 논란을 요약한 인포그래픽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약산소식지 권용진 기자 ] 최근 온라인상에 '정청래 논란 요약본 (총 18가지)'이라는 제목의 요약 이미지가 게시되어 당원들과 누리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자료는 정 의원이 당 지도부로서 활동하며 발생한 비판 지점들을 '당내 인사·공천 관련 잡음'과 '당무 운영 및 정책 리더십 비판' 등 두 가지 핵심 축으로 분류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특징이다.인사 및 공천 과정의 잡음 지적온정주의 및 징계 논란최강욱·최민희 전 의원 사태 당시 내려진 경징계 처리가 온정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계파 인사 영입 불만서삼석·이병훈 의원 등 이낙연계 인사들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당원들의 반발이 있었음이 명시되었다.공천 파동 및 선거 개입 의혹호남 지역 공천 파동과 컷오프를 둘러싼 갈등, 그리고 과거 청와대 뜻을 사칭해 지방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 등이 주요 실책으로 꼽혔다.당무 운영 및 리더십 한계 비판당내 민심 이반 방치대의원제 폐지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당내 갈등과 77만 명 규모의 당원 가입 논란을 방치했다는 지적이 담겼다.정책 실패 및 특검 차질정부와 합의했던 검찰개혁안을 막판에 수정하면서 당내 잡음을 자초했고, 이로 인해 특검 추진에 차질을 빚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정치적 메시지 혼선이재명 대표의 연설이나 성과가 주목받아야 할 때마다 자극적인 이슈를 유발해 이를 묻히게 만들었으며, 지지율 하락 시 '호남행'이나 과도한 '친명 마케팅'을 펼쳤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지지층 내부의 엇갈린 반응이 자료는 정 의원의 정치적 행보에 비판적인 누리꾼들이 그간의 언론 보도와 의혹들을 취합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접한 당내 비명계 성향의 누리꾼들은 &quot;그간의 실책이 정확하게 정리되었다&quot;며 공감하는 반면, 친명 성향의 지지층은 &quot;지도부의 개혁 동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과거의 논란들을 악의적으로 짜깁기한 음해성 자료&quot;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만 허위성은 없는듯 하다.]]></description>
			<pubDate>Mon, 22 Jun 2026 19:01:4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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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둘러싼 당내 인사 갈등과 당무 운영 논란을 요약한 인포그래픽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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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붓 대신 총칼 든 ‘K-의병’의 발자취… 춘천 의암류인석기념관 ‘의병수련관’을 가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21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현장리포트 ] 붓 대신 총칼 든 ‘K-의병’의 발자취… 춘천 의암류인석기념관 ‘의병수련관’을 가다초여름 푸른 하늘 아래 웅장하게 자리 잡은 전통 한옥 건물청소년 역사체험 및 항일 독립정신의 산 교육장으로 주목[ 약산 소식지 권용진 기자 ] 초여름의 푸르름이 짙어가는 주말을 맞아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 위치한 의암류인석기념관을 찾았다. 서울춘천고속도로 강촌IC를 빠져나와 고즈넉한 산자락을 따라 들어가면, 웅장한 기와지붕을 얹은 전통 한식 건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정면에 선명하게 박힌 '의병수련관'이라는 현판이 이곳이 지닌 묵직한 역사적 무게감을 대변하고 있다.이곳 가정리는 단순한 시골 마을이 아니다. 조선 말기 위정척사운동과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하고, 해외 독립군 기지를 개척했던 한말의 위대한 의병장 의암 류인석 선생(1842~1915)이 태어난 고향이자 항일정신이 깃든 대표적인 '충의마을'이다.사진 속 '의병수련관'은 춘천시가 전국적인 청소년 충의 체험장으로 부각하기 위해 건립한 핵심 교육 시설이다. 전통 한옥의 미를 살린 연면적 360㎡ 규모의 이 건물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붓 대신 총칼을 들고 일어섰던 의병들의 숭고한 호국 이념을 이어받아, 오늘날 청소년과 관람객들을 위한 역사체험의 공간으로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기념관 관계자는 &quot;의병수련관 실내외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독립운동교실'과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토요의병놀이마당'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연중 운영된다&quot;고 밝혔다. 이곳을 찾는 학생들은 의암 심의(한복)를 입고 전통 오침제본 방식으로 의병수첩을 만들거나, 직접 활과 화살 같은 의병 무기를 제작하고 국궁 체험을 하며 130여 년 전 의병들이 가졌던 꺾이지 않는 마음과 공동체 의식을 몸소 배우게 된다.수련관 내부에는 류인석 선생을 비롯해 춘천이 배출한 의병장 8인의 패널이 전시되어 있어, 교과서 너머 생생한 의병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주말 나들이로 자녀와 함께 의미 있는 역사 문화 체험을 즐기고 싶다면, 수려한 풍광 속에서 살아있는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춘천 의병마을과 의병수련관이 최고의 선택지가 될 것이다.]]></description>
			<pubDate>Mon, 22 Jun 2026 18:54:2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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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붓 대신 총칼 든 ‘K-의병’의 발자취… 춘천 의암류인석기념관 ‘의병수련관’을 가다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img.ehom.kr/news/2026/06/22/a4bbe561f65638698b7b64bbbe0733db185448.png</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21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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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frenzy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092</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CNN NewsCNN뉴스에서 한국 주식 상황을‘frenzy'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frenzy'는 보통 극도의 흥분 상태나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등이 일시적으로 나타날 때 쓰는 단어이다.히치콕 감독의 스릴러 영화 중’Frenzy'가 있을 정도로, 'frenzy'는 일시적 감정에 사로잡혀 정상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도 가리키는 극단적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이다.CNN뉴스에서 한국 주식 시장‘frenzy'라 말할 정도로 최근 한국 주식 시장의 상승은 가파르고 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주식 투자자들이 많다.한국 주식 시장을 믿지 못해 미국 주식 시장에 투자했던 이들도,부동산에 투자하던 이들도 한국 주식에 투자하면서 한국 주식 시장에 많은 자본이 몰리고 있다.애덤 스미스의’국부론‘에 따르면 자본주의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노동,지대,그리고 이윤 세 가지이다.여유 자본을 가진 사람은 노동하지 않고도 투자해서 얻은 이윤으로 생활을 꾸려갈 수 있다.문제는 자본주의 초기부터 노동으로 버는 것보다 이윤으로 버는 것이 수익이 더 좋고 편하다는 것이다.해방 후 독재 시절부터 잘못된 한국 경제 구조는 노동보다 이윤이 수익을 많이 내는 구조로 되어 있다.포괄임금제라고 해서 기본임금을 적절하게 책정하지 않고,초과 근무나 주말이나 휴일에 일해서 수당을 받아야 그나마 생활할 수 있는 임금 구조를 만든 것이다.그래도 독재 시절 경제가 호황일 때 국가가 자본금이 필요해서 저축 이자율을 높여 저축을 장려했다.그러나 외환위기이 후 저축 이자율이 낮아지며 이로 인한 예금 이자가 낮아지게 되었다.그러다 보니 많은 한국인이 월급으로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부동산이든 주택이든 다양한 형태의 투자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 한다.가끔 이 투자가 투기와 경계선이 애매해지기도 해서 사회적 문제를 낳기도 한다.’갭투자‘라 불리는 충분한 자본금이 없는데,아파트 매매 가격과 전세 보증금의 차액이 적은 집을 전세를 끼고 매입한 뒤,향후 집값 상승 시 시세 차익을 노리는 부동산 투자 방식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충분한 자본금이 없다 보니 세입자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고,심한 경우 깡통 전세라든지 전세 사기라는 문제로 연결되기도 했다.어떻게 보면 착실하게 전세를 얻어 살던 사람에게 무리한 투기를 하던 사람이 피해를 줬던 일이다.보통 전세를 얻어 사는 사람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전세를 얻는 경우가 많다.어떤 경우는 대출을 내서 전세금을 마련하기도 한다.물론 전세를 얻는 사람도 무리해서 집을 사는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대개 착실한 사람이라 무리한 대출을 자제하다가 그런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가끔 한국 사람 중에 이렇게 무리한 빚을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기도 한다.그리고 지금 주식 시장에 뛰어든 사람도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기도 한다.’빚 내서 집 사라‘고 정부에서 부동산 투자인지 투기를 부추기던 시절이 있었다.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 아닌 정부 경제부총리가 했던 말이다.정부가 해야 할 일은 집 없는 서민들에게 안정적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꼭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형편에 맞는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선진국 정부이다.한국은 주식에 대한 신뢰가 낮아서 부동산으로 돈이 몰려 있었다.주식 시장에 들어간 돈은 기업의 투자금이 되는 것이다.단순하게 말하면,자본주의 사회 대부분 기업은 여러 주주가 공동 소유하고 있는 형태이다.자본금 즉 투자금이 커질수록 기업은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많아진다.그래서 기업도 성장하고 주주의 이익도 증가하는 것이다.한국은 배당금이 적은 구조로 되어 있어서,주주에게 유리한 주식 시장이 아니라고 한다. CNN뉴스에서 말하듯이 두 개의 기업이 현재 주식 시장을 크게 만들고 있다.이 두 기업이 증가한 수익을 어떻게 운용할지는 기업과 주주가 의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정부는 생각할 일이 하나 있다.노동으로 얻는 수익과 지대나 이윤으로 얻는 수익의 차가 지나치게 벌어졌을 때 사회에서 발생할 현상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한국이 부동산 투자에 몰려든 것은 수익도 크지만,세금도 노동 수입에 비해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유리 지갑이라 불릴 만큼 노동 수입은 국세청에서 바로 세금을 가져갈 수 있다.그러나 지대나 이윤은 전문가를 통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면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국가는 세금을 거둬서 조직을 운영하는 기관이다.필요한 세금을 거두지 못하면 모자란 세수를 메우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이는 오랫동안 해왔던 것이고, ’음주단속‘이 뜨면 사람들이 반농담으로’세수가 모자라는가 보다’고까지 말한다.늘 단속하면 이런 말이 나오지 않겠지만,특정한 시기에만 단속한다면 국민은 의심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이런 단속에 걸려 벌금을 내는 사람은 대부분 서민이다.주식 시장이 커지는 만큼 적절한 세수를 확보하는 방안도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아니면 노동의 가치를 높여줄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아직 한국에는 월급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이 존재한다.이런 사람들마저 주식 시장으로 떠미는 사회는 잘못된 사회라고 생각한다.갭투자포괄임금제]]></description>
			<pubDate>Mon, 22 Jun 2026 18:23:3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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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frenzy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youtube.com/watch?v=feuGfb6gj6I</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209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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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윤봉길 그리고 이화림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190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1908년6월21은 윤봉길 의사가 태어난 날이다. 1932년4월29일 홍구 공원(홍커우 공원)의거로 잘 알려졌지만,그는 교육가이며 농촌 계몽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이다.공동묘지에서 여러 묘표(墓表)를 뽑아 들고 선친의 무덤을 찾아달라고 간청하는 무지한 청년을 만나면서 농촌 계몽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당시 윤봉길 의사는‘무식이 나라까지 잃게 한 적(敵)’이라 생각했다고 한다.어린 학생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야학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그리고 교육에 필요한 교재를 스스로 만들기도 했다. ‘농민독본’ 3권을 만들어서 농민에게 필요한 내용과 한민족 얼을 지키는 데 필요한 내용을 가르쳤다고 한다.그의 농민 계몽에 대한 노력이 성과를 거둬가고 있었으나 광주학생운동 등1920년대 말 상황을 지켜보며 독립운동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세우게 된다.그래서1930년‘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라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집을 떠나 중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대장부가 집을 나설 때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말은 뜻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담고 있다.윤봉길 의사가 마음먹은 뜻은 조선의 독립이고,조선이 독립해야 농촌 계몽 운동도 그 완성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개인적으로 윤봉길 의사를 홍구 공원 의거자로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한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아는 것을 실천하는 지행합일을 이룬 한민족의 전통적 관점에서 보수 지식인이다.진정한 한민족 보수는 배운 것을 실천도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그랬기에 많은 선비가 무인도 아니면서 벼슬도 받지 못했는데,나라를 위해 의병장이 되어 목숨을 바쳤다.하얼빈 의거의 안중근 의사도 의병장으로 자신을 이야기했다.그리고 이런 의병들에게 배운 많은 학생이 험난한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다.윤봉길 의사가 홍구 공원 의거를 할 때 백범 김구 선생님뿐 아니라 또 기억해야 할 중요한 독립운동가가 있다.이화림 독립운동가이다.‘파묘’영화 덕분에 이름이 알려졌다고 하는데,그녀는 한인애국단 단원으로 백범 김구 비서로 임시정부 일원으로 많은 일을 했던 독립운동가라고 한다.홍구 공원 의거 당시 준비 단계부터 윤봉길 의사를 도왔다고 한다.같이 부부처럼 위장해서 주변 정세를 탐방 다닌다거나,의거 당일도 같이 거사를 계획했다고 한다.그러나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여러 가지 설에 의해 그녀는 홍구 공원 의거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대표적인 이야기로는 윤봉길 의사가 일본어가 서툴러서 발각될 수 있으니 혼자 의거하겠다고 한다.그리고 이화림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에서 물러나 대학에서 간호학을 공부했다고 한다.공부하던 중 학생이면서 몰래 독립운동을 도운 김창국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아이가 세 살일 무렵 의열단 윤세주 연설에 다시 독립운동 결심을 하게 된다.그래서 남편과 아이와 헤어져서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하고,중일전쟁 때에는 조선의용대에 합류하였다.타이항산 의거 때는 배운 간호학으로 많은 부상자를 돌보았다고 한다.조선의용군 병원에서 일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고 한다.이런 독립운동가를 한국이 모르는 이유는 그녀가 해방 후 중국에 남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한국은 중국에 남은 독립운동가를 잘 알리지 않는다.그래도 최근 들어 이화림 지사가 남긴 책을 번역한다든지 알리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어서 그나마 알려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출처: 백정기 의사 기념관 (윤봉길 의사를 암장하고 사람들이 밝고 지나다니도록 만든 일제)마지막으로 윤봉길 의사는 의거 자리에서 일본 헌병들에게 제압당해 구타당한 후 피투성이가 된체 끌려갔다.그리고 백범 김구 행방을 묻는 일제에 의해 모진 고문을 받았다.사형 선고를 받고 일본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돌아가셨을 때24살이셨다.다행히 해방 후 백범 김구 선생님이 박열에게 부탁하여 유해를 모셔야 현재 효창공원 내 삼의사 묘역에 잠들어 계신다.아직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많은 독립운동가 유해를 생각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윤봉길 홍구 원 의거시게미쓰 마모루윤봉길 의사와 이화림 독립운동가이화림 독립운동가https://v.daum.net/v/PRL8GNP3YZ?f=p]]></description>
			<pubDate>Mon, 22 Jun 2026 18:23:3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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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윤봉길 그리고 이화림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yaksannews.co.kr/</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1904</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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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함안박물관 전시 - 아라가야의 불꽃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186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함안군청출처: 함안군 공식 유튜브채널]]></description>
			<pubDate>Sun, 21 Jun 2026 21:00:4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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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함안박물관 전시 - 아라가야의 불꽃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youtube.com/watch?v=hqixCR4XQ5A</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186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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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과 이런저런 이야기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169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margin:0; padding:0; } .HStyle0 { style-name:&quot;바탕글&quot;; margin-top:0.0pt; margin-bottom:0.0pt; text-align:justify; text-indent:0.0pt; line-height:160%; font-size:10.0pt; font-family:함초롬바탕; letter-spacing:0; font-weight:normal; font-style:normal; color:#000000; }최근 인기가 많은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보면 의대에 집착하는 어머니가 나온다. 아들을 서울대 의대에 보내겠다는 일념으로 아들에게 지나치게 공부를 강요한다. 자신의 희생을 알아달라는 호소로 아들을 심리적 지배하며, 아프든 말든 서울대 의대를 위해 아들도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밀어붙인다.드라마에서도 그랬듯이 그렇게 의대 가고 싶으면 본인이 가면 된다. 예전에 초등학생 자녀를 서울대 의대인지 한의대를 보내겠다고 지나치게 공부 시키는 어머니가 텔레비젼에 나온 적 있다. 그 때도 사회자였는지 어머니 본인은 지금 당장 한의대 갈 수 있으니, 10년 넘게 기다리지 말고 본인이 공부해서 가라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난다.드라마가 현실보다 과장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순화된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2011년 일어난 친어머니를 살해한 고등학생 사건이 생각났다. 사건만 보면 아들이 너무 끔찍한 인물처럼 느껴졌지만, 속사정을 살펴 보니 그 아들이 불쌍하기까지 했던 사건이었다.아들의 성적에 집착하며 전교 1등하는 아들에게 만족하지 못하던 어머니로 인해 순간적으로 감정이 폭발한 아들이 일으킨 사건이었다. 자녀에게 집착하고 자신의 생각만을 강요하는 부모에게 자녀는 크게 두 가지로 대응할 수 있다. 순종하거나 반항하거나. 그러나 순종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착하기에 그냥 부모의 말을 따라 주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임계점이 있는 것이고, 그 순간이 오면 아무리 순한 사람이라고 해도 분노가 폭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임계점이 왔을 때도 크게 두 가지로 분노가 표출되는 방식도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자신을 해하거나 남을 해하는 것이다. 자신을 해하는 방식은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 뿐 아니라 거식증 폭식증처럼 몸의 균형을 무너뜨릴만큼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것도 포함한다. 남을 해하는 방식은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준 대상에게 복수를 하거나 만만한 상대를 괴롭히는 것이다.이런 순간이 오지 않도록 부모나 가까운 사람이 잘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도 삶이 힘들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는 사춘기에는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더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부모가 아닌 다른 어른이 간섭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참교육 드라마에서 보여지듯, 학교 선생님이 자신의 반 아이들 문제에도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되어 버린 사회이다. 열린 교육이 학교를 망치기 전에는 부모 대신 파출소에 가서 반 아이를 찾아오는 선생님이나 가출한 반 아이를 찾아 다른 도시까지 찾아다니는 선생님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요즘 그런 열정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는 선생님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인지는 잘 모르겠다.부모가 자식의 인생에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처럼 사회적 안전망이 약한 나라에서는 자식의 보장된 미래에 대해 많은 부모가 예민하게 고민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녀의 의견을 부모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의사소통 하면서 그래도 자녀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미래에 살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출처: 올림픽 공식 채널 (알리사 리우 공연)2026년 동계올림픽 피겨 스테이팅 부분에서 유명세를 탄 알리사 리우라는 선수가 있다. 금메달을 두 개나 딴 것도 대단하지만, 피겨 스케이팅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이야기도 화제가 되고 있다.알리사 리우는 출생부터 독특한데, 중국계 아버지가 다른 대리모를 통해 얻은 5명의 아이 중 첫째이다. 어린 나이부터 피겨 스케이팅을 했지만, 아버지와 코치 등 어른들이 원하는 피겨 스케이팅을 했고, 19살에 은퇴 선언을 했다. 자신은 지쳐서 더 이상 할 수 없다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던 중 다시 피겨 스케이팅이 하고 싶어서 돌아 왔다.돌아올 때 조건은 체중 관리도 안 할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음악으로 내가 하고 싶은 안무로 내가 입고 싶은 복장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이 원하는 피겨 스케이팅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피겨 스케이팅을 하고 싶다고 했던 그녀의 결심은 성공했다.이 이야기가 많은 젊은 미국인들에게 감명을 주며 따르는 십대나 젊은 여성들이 많다.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이지만 피겨 스케이팅도 정해진 틀이 강하다. 몸무게도 조절해야 하고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음악과 동작이 정해져 있다. 그런 틀을 꼭 지키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해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사 리우가 보여줬다.누구나 알리사 리우처럼 자신의 방식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알리사 리우처럼 산다면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진다. 남에게 보여지는 것과 내가 행복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그리고 부모도 남에게 보여지는 내 자녀와 있는 그대로 내 자녀를 인정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칼릴 지브란이 ‘예언자’ 중 ‘아이들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또 가슴에 애기를 안은 한 여인이 말하기를,우리에게 어린이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그는 말하기를,너희의 아이는 너희 아이가 아니다.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갈망하는큰 생명의 아들딸이니저들은 너희를 거쳐서 왔을 뿐너희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또 저들이 너희와 함께 있을 지라도너희의 소유가 아니니라.너희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라그러나 너희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생각이 있으므로.너희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줄 수 있으나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아이들의 영혼은 그대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꿈속에서 조차 갈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너희가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아이들을 너희와 같이 만들려고 애쓰지는 말라큰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결코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description>
			<pubDate>Sun, 21 Jun 2026 21:00:4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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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과 이런저런 이야기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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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부산교육역사관 - 부산 학생 독립운동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161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약산소식지 - 부산학생독립운동 전시 입구에 항일운동 이름들, 한국인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순국당 사건으로 김진훈은 사경을 헤매기에 이르러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미결수인 상태에서 온갖 고문에 시달려야 했으며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광복을 두 달여 앞둔 1945년 6월에 2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부산 학생 항일운동의 대표적 사건인 순국당 사건상설 전시 중 부산 학생들의 항일운동 - 체험을 할 수 있는 전시노다이 사건조선교육령]]></description>
			<pubDate>Fri, 19 Jun 2026 18:03:1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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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산교육역사관 - 부산 학생 독립운동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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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국인이 알아야 할 역사 -낙랑클럽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141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여성 신문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7044)The following is a typewritten copy of an article by mener Spaulding.NIA Special Correspondent, which appeared in the Daily Palo Alto Times of24 September 1952.1952년9월24일 데일리 팔로 알토 타임즈 스폴딩 기자KOREA‘S HOSTESS ARMY ENTERTAINS AT FANCY BALLS, MOUNTAIN OUTPOSTS한국의 접대부가 무도회에서, 산에 있는 초소에서 군인을 즐겁게 했다.hostess 뜻 캠브리지 사전에a woman who entertains customers, especially men, at a nightclub (나이트 클럽에서 특히 남자 손님을 접대하는 여성)메리엄 웹스터에서1. a woman who entertains socially (사회적으로 접대하는(즐겁게하는)여성)2a: a woman in charge of a public dining room who seats diners (식사하는 장소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여성)b: a female employee on a public conveyance (such as an airplane) who manages the provisioning of food and attends passengers (비행기와 같은 운송 수단에서 음식을 제공하고 손님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여송(c: a woman who acts as a partner or companion to male patrons in a dance hall or bar (댄스홀이나 술집에서 남성 파트너나 동행하는 역할을 하는 여성)PUSAN, Korea (NHA) - The most fabulous woman in South Korea in a poetess turned politician who claims to have organised 2 million Korean girls into party entertainers for diplomats, top military brass, and other officers.한국 부산,남한에서 시인으로 가장 멋진 여성이 정치인으로 전환했다,외교관 고위 장교 다른 사무관을 위해2백만 한국 여성을 파티에서 대접하는 사람으로 조직했다고 주장했다.Yoon Sook Moh, known simply as Mrs. Moh, calls her legions the &quot;Nang-Nang&quot; giris, But others have described them as latter-day Mata Haris.미시즈 모로 단순히 알려진 모윤숙은 그녀의 군단을 낙랑 소녀로 불렀다.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들을 요즘 마타하리로 묘사한다.It is said that the Nang-Nang girls spy on the Communist. It is also said that, thanks to Mrs. Moh, President Syngman Rhee knows everything the United Nations Command is thinking.말해지기를 낙랑 여성이 공산주의를 염탐했다고 한다.또한 말하기를 모덕에 이승만 대통령이 국제연합 의장이 생각하는 것을 다 안다.Her high command in Pusan consists of a group of middle-aged ladies of unquestioned social standing and impeccable reputation, who plan parties for generals end diplomats.부산 최고 사령부는 문제 되지 않는 사회적 지위와 완벽한 명성의 중년 여성 무리로 구성되어 있다,그들은 사령관과 외교관을 위해 파티를 계획한다.&quot;We never get invited,&quot; was the rueful remark of anArmy Special Services hostess. &quot;But the Nong-Nang girla do&quot;.우리는 절대 초대받지 못했어요,군대 특별 서비스 접대부가 슬프게 말했다.그러나 낙랑 여자들은 받아요.The term &quot;Army Special Service Hostess&quot;refers to civilian women who were employed by the U.S. Army during and after World War II under the Special Services Division. Their primary mission was to boost troop morale by running military service clubs, operating base libraries, and hosting recreational events to provide a &quot;home away from home&quot; for soldiers.Fотtop brass, Mrs. Moh herealf arranges parties, frequently giving them at her own villa by the sea. For newspapermen and younger officers close to the high command she sends out groups of young and pretty girls.고위 장교를 위해,모는 파티를 준비한다.종종 그들에게 바닷가에 있는 그녀 자신의 빌라를 내주면서.기자와 고위 사령관과 가까운 더 젊은 장교들에게는 젊고 예쁜 여자들 무리를 보낸다.One night the signals got crossed. Some younger men were annoyed to find their entertainers 10 years older than they. It never occurred to them that this was Mrs Moh'e first team of Korean party-makers - the high commend, The men called up and complained that their entertainers were a little too mature, Within 15 minutes, a high Korean government official showed up with the young girls, and the older women quietly withdrew.어느 날 신호가 잘못 갔다.몇몇 더 젊은 남자들이 그들을 즐겁게 해 주는 사람이10살 많다는 것에 불쾌했다.그들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이것은 사령관을 위한 모의 한국 파티 만드는 첫 번째 팀이었다.남자들은 전화해서 그들을 대접하는 사람이 좀 너무 성숙하다고 불평했다. 15분 안에 한국 고위 관리가 어린 여자들과 나타났고,나이 많은 여인들은 조용히 물러갔다.The first team does double duty. By night, Its members dress in the firmly Korean national costume and make light and gay with man of rank. By day, they knack on army doers demanding supplies with which to entertain Korean troops.첫 번째 팀은 두 가지 임무를 했다.밤에는 구성원은 완고하게 한국 국가 복장을 차려 있고 고위 관료를 기분 좋게 했다.낮에는,군대 실무자에게 한국 군대를 대접할 보급품을 요구했다.Mrs. Moh is a plump and jolly woman, who dresses in the traditional white cheese cloth bolero-length jacket, with a skirt of shocking pink cut off at above the ankle, instead of below as most Korean women wear them.모는 통통하고 명랑한 여성이다,그녀는 전통적인 하얀 면보 볼레로 길이 재킷을 강렬한 분홍색 치마를 발목 길이로 입었다,전통적인 한국 여성이 아래로 입는 것과 달리Her home looks drab from the outside. Bud inside, the walls, of spacious living room were drown back to reveal a breathtaking view of jagged rocks and incredibly blue sea, Gilded party chairs and tablas were covered in white.그녀의 집은 밖에서 보면 단조로워 보였다.그러나 내부는,넓은 거실 벽이 감추어져 있었다,숨이 멎을 듯한 울퉁불퉁한 바위와 벗진 파란 바다 풍경을 감추며.금도금한 파티 의자와 테이블은 하얀색으로 덮어져 있었다.Mrs, Moh does not apologize for the time she spends entertaining high ranking Americans: Instead, she praises their generosity and their help to her organization.모는 그녀가 고위 미국인을 즐겁게 하도록 보낸 시간을 사과하지 않았다,대신에 그녀 조직의 관대함과 도운 것을 칭찬했다.Nang-Nang girls, she says, entertain at champagne parties. But they also climb mountains infested by guerrillas to take hot suppers to police outposts. The name Nang-Nang, Mrs Moh explained, dates from an era 2500 years ago when Korean court ladies led the intelligentsia and went off to war carrying their own swords.그녀가 말하길,낙랑 소녀들은(샴페인이 나오는)고급 파티에서 대접했다.그러나 그들은 또한 유격대가 출몰하는 산에 올랐다,경찰 초소에 따뜻한 저녁을 가져다주려고.모가 설명하길 낙랑은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한국 궁정 여인들이 지식 계급을 이끌었고 자신의 칼을 가지고 전쟁에 나갔다.&quot;Today the Korean woman is nothing,&quot; said Mrs. Moh. &quot;She is most unlucky.&quot; Besides entertaining troops, Nang-Nang girls are instructing other women in the care of their children, in better sanitation and in nutrition. When the war is over, she hopes to use her organisation to liberate Korean women,오늘날 한국 여성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모는 말했다.그녀는 가장 운이 없다고.군대를 즐겁게 하는 것 이외에,낙랑 여자들은 아이를 돌보는 다른 여인들을 가르치고 있다,더 나은 위생과 영양에 대해.전쟁이 끝나면,그녀는 그녀의 조직이 한국 여성을 해방시키는데 쓰이길 바랬다.Known formally as the National Women's Youth Association, her organisation was founded with the assistance of President Rhee.이전에 대한 여자청년단으로 알려진,그녀의 조직은 이 대통령의 도움으로 창립되었다.Until the liberation in 1945, Mrs. Moh was a high school teacher and a poetess. She was also an observer for the government of Korea at the United Nations assemblies in Paris in 1945, and at Lake Sucess in 1950. She was broadcasting some of her poetry in Seoul the night the Communists took the capital city.1945년 해방할 때까지,모는 고등학교 교사였고 시인이었습니다.또한 그녀는1945년 파리 국제연합 회의와1950년 레이크 석세스에서 한국 대표단이었습니다.그녀는 공산주의자가 수도를 점령했을 때 서울에서 그녀의 시 몇 편을 방송했습니다.&quot;I hid in a basement and then in mountain caves, The Communists especially wanted to catch me because I had been to Lake Success. I must have moved 30 times. I ate grass until I could not walk to pick it. And then I drank the blood from my legs.&quot;저는 지하실에 그리고 산에 동굴에 숨었습니다.공산주의자는 특별히 저를 잡고 싶어 했습니다.왜냐하면 제가 레이크 석세스에 갔었으니까요.저는30번 이동해야 했습니다.풀을 따러 걸을 수 없을 때까지 풀을 먹었습니다.그리고나서 제 다리 피를 마셨습니다.As Mrs Moh spoke, she was smoking American cigarettes. As she gestured, a new gold watch with gold band sparkled on her arm.모가 말하면서,미국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그녀가 몸짓하자,새 금띠가 있는 금시계가 팔에서 반짝거렸다.&quot;I was losing my senses,&quot; she said &quot;I knew I could not tell who were the Communists and who were our troops.&quot;감각을 잃었어요,누가 공산주의고 우리 군대인지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라고 말했다.낙랑클럽https://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11334]]></description>
			<pubDate>Fri, 19 Jun 2026 18:03:2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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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인이 알아야 할 역사 -낙랑클럽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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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열사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141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이성근 Topic]]></description>
			<pubDate>Fri, 19 Jun 2026 18:03:2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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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열사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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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독립운동가 윤희순 의병장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111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강원문화콘텐츠]]></description>
			<pubDate>Wed, 17 Jun 2026 21:35:2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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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독립운동가 윤희순 의병장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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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8호감방의노래X광복군아리랑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111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국악합창단 K-판]]></description>
			<pubDate>Wed, 17 Jun 2026 21:35:2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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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8호감방의노래X광복군아리랑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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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광복절 노래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111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국악합창단 K-판흙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꿈엔들 잊을건가 지난날을 잊을건가다같이 복을 심어 잘가꿔 길러 하늘 닿게세계에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함께힘써 나가세 함께힘써 나가세윤용하 민족음악가 독립운동가https://www.ghnp.kr/news/articleView.html?idxno=1095국경일 노래 네 개 남긴 독립운동가 위당 정인보https://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07888]]></description>
			<pubDate>Wed, 17 Jun 2026 21:27: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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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광복절 노래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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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열사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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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이성근 Topic 유튜브]]></description>
			<pubDate>Wed, 17 Jun 2026 21:27:0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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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열사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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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독립운동가를 이야기하는 뮤지컬 -독립군 아리랑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035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밀양아리랑콘텐츠사업단한 사람의 열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이 중요하다.]]></description>
			<pubDate>Mon, 15 Jun 2026 10:30: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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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선거 후 이런 저런 이야기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012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YTN 6월 13일 선관위 사태 진행상황투표 용지 부족으로 촉발된 선관위 규탄 시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사퇴했으나 그것으로 끝날 문제로 보이지는 않는다.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불신은 오래 된 문제로,직원 불법 채용부터 제대로 해결 안 된 문제가 많다.투표 용지 부족 관련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은 예산을110퍼센트로 신청했는데,인쇄를50퍼센트밖에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나머지60퍼센트 예산을 어디로 갔는지부터 조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그러니 선관위 위원장이 사퇴하고 도망간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정확히 책임 소재를 밝혀 물어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선관위 관련 최근 화제가 되었던 것은 공식 영상에 쓰인 일베 놀이 흔적이다.한국은 해방 후 친일부역자로 인해 역사가 왜곡되면서,이상한 역사관과 지역관을 가진 이들이 많다.이런 이들이 제대로 처벌 받지 않고 방치하면서,해도 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는 게 문제이다.일베는 일간 베스트의 줄임말로,인터넷 동아리의 하나였다.처음부터 이상하지는 않았지만,비정상적인 글이 주류가 되고 그런 이들이 모여서 노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다른 사람을 괴롭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인터넷 공간이다.더 문제는 이런 곳에서 노는 이들이 정부 공식 누리집이나 영상 등 공적 영역에서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이번 영상에서도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그림이 화면에 나타나서MBC뉴스가 보도했다.그 지역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한 지역이다.인간이라면 또는 한민족이라면,고마워하거나 돌아가신 분을 추모해도 모자란 지역인데 이상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유명한 것 중 하나가 선관위 자녀 불법 특혜 취업 의혹이 아닐지 싶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지난10년간 직원 자녀 비공개 채용,면접 점수 조작,친인척 특혜 등 총878건의 조직적인 채용 비리가 감사원 감사와 국민권익위원회 전수조사로 밝혀졌다. 2025년2월 이 중2023년9월 고발한 선관위 채용 관련자28명에 대해 최근‘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으로 판단해 불기소 결정했다고 한다.선거 관리 위원회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다.선관위를 구성하는 대부분이 법관 출신인 것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독립된 기관으로 행정부나 입법부에서 거의 간섭하지 않는 기관이다.선거에서 불이익을 얻을까 봐 못 한다고 볼 수도 있다.게다가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선관위원으로 지명하면 그 대법관은 곧 위원장으로 호선되는 관행이 굳어지면서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선관위 관련 문제 중 하나가 선거일에 휴가를 떠나는 직원들이다.선관위 직원 대신 지역 공무원이 선관위 업무를 대신하는 지경이다.한국처럼 휴가를 내기 어려운 사회에서,선관위가 제일 바쁜 시기인 선거일에 휴가가 허락된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고 부른다.한국은 정책 결정투표가 이루어지지 않고 그나마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대표자를 봅는 선거 정도일 것이다.자신을 대신해 결정하고 일을 할 사람을 뽑는 과정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중요한 행사가 선거이다.그리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중요한 행사를 주관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선거 유세를 보면 각 후보자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한 표로 당락이 결정된 선거도 있으니,한 표를 얻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이 과정에서 법에 합당한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도 선관위의 몫이다.그동안 불신을 쌓아오다 보니 선관위가 내리는 판단에 대한 의심이 높아지고 있다.이런 의심은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시키는 것으로 생각한다.누구 편에도 서지 않고 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그러나 본인들이 자초한 신뢰성 하락은 선거마저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그리고 이런 선거 정신 훼손은 유권자를 모독하는 것으로 느껴진다.선거권이 주어진 이후로 민주주의 시민 의무라 생각해서 선거를 빠지지 않고 하려고 했다.직업상 다른 지역에 가 있을 때는 사전 선거라도 해서 챙기려 했고,마음에 드는 후보가 딱히 없어도 최선을 다해서 한 명을 고르기 위해 애를 썼다.이런 민주주의 시민의 노력을 무시하고 선거를 훼손시킨다면 선거관리위원회가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어차피 선거일과 개표에 지역 공무원이 동원되어 일한다.그렇다면 선관위 대신 지역 공무원이 업무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조직 이름을 바꾸는 시도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한국은 어떤 정부 세금으로 운영하는 조직이나 기구가 생기면 이름을 바꾼다.이름을 바꿀 뿐 논란이 되었던 구성원은 그대로 있다.그렇다면 그 조직이 쇄신하거나 새로워진 것이라 볼 수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논란이 되었던 구성원에게 적절한 수위의 처벌을 하고,내부 문제를 제기했던 정의롭고 용기를 낸 직원에게 적절히 보상해야 한다.그게 문제가 생긴 조직이나 기구가 다시 신뢰를 얻는 첫 번째 조치라고 생각한다.선관위 채용 비리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68795선거 경비 임의 지출 서류 위조선관위 제멋대로 휴가선관위를 감사하지 않는 정부선관위 일베 문제]]></description>
			<pubDate>Mon, 15 Jun 2026 10:30: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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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선거 후 이런 저런 이야기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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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부산 임시수도 기념관 전시 중 생각나는 역사적 사건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001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임시수도 기념관 야외전시에서 미진호텔을 중요한 역사적 장소로 소개했다. 이화여대 김활란 미군 부산 송도에 피난시절 있었던 필승각을 아는 사람이라면 미군이 대접받았던 장소로 기억할 것이다.출처: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185869)마이어 협정이라 부르는 한미경제조정협정에도 미진호텔은 파티장으로 역사적 장소로 등장한다.이 전시를 한 사람은 이런 역사가 부끄럽지만 중요한 한국 역사라 생각했기에 전시했을 것이라 생각한다.]]></description>
			<pubDate>Sat, 13 Jun 2026 20:57:5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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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산 임시수도 기념관 전시 중 생각나는 역사적 사건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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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홍범도 장군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 극장 앞 독립군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001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더 뮤지컬]]></description>
			<pubDate>Sat, 13 Jun 2026 20:57:5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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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홍범도 장군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 극장 앞 독립군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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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단심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001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국악방송]]></description>
			<pubDate>Sat, 13 Jun 2026 20:57:5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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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단심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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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안사람 의병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4001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국악방송]]></description>
			<pubDate>Sat, 13 Jun 2026 20:57:5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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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안사람 의병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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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광복군 행진곡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9982</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대구 시민광복합창단이 부르는 광복군 행진곡광복군 행진곡을 만든 이두산 지사]]></description>
			<pubDate>Fri, 12 Jun 2026 23:14:1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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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광복군 행진곡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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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한반도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9972</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1.동해에 돌출한 나의 한반도야 너는 나의 조상나라이니 나의 사랑함이 오직 너뿐일세 한반도야 은덕이 깊구나 나의 한반도야 내 선조와 모든 민족들이 너를 의탁하여 성장하였구나 한반도야2.산천이 수려한 나의 한반도야 물은 맑고 산이 웅장한데 너를 향한 충성 더욱 깊어진다 한반도야 역사가 오래된 나의 한반도야 선조들의 유적을 볼때에 너를 사모함이 더욱 깊어진다 한반도야3.일월같이 빛난 나의 한반도야 둥근 달이 반공에 밝을 때 너를 생각함이 더욱 간절하다 한반도야 아름답고 귀한 나의 한반도야 너는 나의 사랑하는바니 나의피를 뿌려 너를 빛내고저 한반도야]]></description>
			<pubDate>Fri, 12 Jun 2026 23:14:1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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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한반도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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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기획 인터뷰/연재]   청산되지 못한 역사, 대한민국 초기 기득권이 된 ‘전쟁범죄국 협력자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985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기획 인터뷰/연재]청산되지 못한 역사, 대한민국 초기 기득권이 된 ‘전쟁범죄국 협력자들’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천명하고 있다.법적·이념적 뿌리를 독립운동에 두고 있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국가의 기틀을 다진 초기 인적 구성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일제강점기 침략 전쟁에 협력하고 식민 통치에 앞장섰던 부역자들이 해방 후 처벌받기는커녕 국가의 핵심 요직을 장악하며 주류 기득권으로 안착했기 때문이다.사회 정의와 민족정기의 실종이라는 비판을 받는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인적 실태를 부문별로 짚어본다.■ 총칼을 쥔 군·경 수뇌부, ‘황군’과 ‘순사’ 출신의 귀환국가의 물리력을 상징하는 군대와 경찰은 부일 협력자들이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분야였다.대한민국 육군의 최고 수장인 육군참모총장 자리는 제1대부터 제10대까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일본군 및 만주군 장교 출신들이 독점했다.제1대 총장 이응준은 일본 육사 출신으로 일본군 대령까지 진급해 전쟁에 협력했던 인물이며, 6·25 전쟁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백선엽(제5·7대 총장) 역시 일제 만주군 간도특설대에 복무하며 항일 무장 세력 토벌에 참여한 이력이 명백하다.치안을 담당한 경찰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해방 직후 수도경찰청 간부의 80% 이상이 조선총독부 경찰 출신으로 채워졌다.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 등에서 근무하며 독립운동가들을 잔혹하게 고문했던 악질 고등경찰 노덕술이 대표적이다.그는 해방 후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이라는 요직에 앉아 권력을 휘둘렀으며, 친일파 청산을 위해 출범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자신을 체포하려 하자 특위 요원들을 암살하려는 음모까지 꾸몄다.■ 사법부와 행정부, 식민지 기술자들이 짠 국가의 틀법을 집행하는 사법부와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부 역시 총독부 출신 엘리트들의 독무대였다.일제 법원에서 독립운동가들에게 징역형과 사형을 선고했던 판·검사들은 해방 후 대한민국 사법부의 수뇌부가 되었다. 초기 사법부 핵심 인력 대부분이 이들이었으며, 일제강점기 대구지방법원 판사 등으로 근무했던 조진만은 훗날 제3·4대 대법원장을 지내며 한국 사법권의 정점에 섰다.행정부 역시 식민지 수탈 체제에 기여한 관료들이 장·차관과 도지사 직을 이어받았다. 일제강점기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전시 총동원 체제 하에서 농상무성 관리로 일했던 신현확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다.국가를 운영할 ‘전문 행정 인력’이 부족하다는 명분 아래, 전쟁 부역자들의 경력이 국가 기여로 둔갑한 셈이다.■ 반민특위의 와해와 기득권의 세습1948년 제헌국회는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법적 기구인 반민특위를 구성하고 부역자 처벌에 나섰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는 안보와 치안 공백, '반공(反共)'을 내세워 특위를 철저히 방해했다. 1949년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특위는 실질적인 성과 없이 강제 와해되었다.이로 인해 청산의 기회를 잃은 부역 세력은 반공주의를 무기로 독재 정권의 중심축이 되었고,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공고한 기득권 동맹을 형성했다. 나라를 팔아먹고 전쟁에 협력한 자들은 권력과 부를 누리고,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가난과 소외에 시달리는 ‘역사의 주객전도’가 일어난 것이다.결국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해방되었으나, 인적 구성에서는 전범국 부역자들을 청산하지 못한 채 그들을 지배층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역사적 오점과 한계를 안고 출발하게 되었다.이 미완의 청산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과 정의관 불신의 깊은 뿌리로 남아있다.[ 약산소식지 권용진 기자]]]></description>
			<pubDate>Fri, 12 Jun 2026 09:59:0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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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획 인터뷰/연재]   청산되지 못한 역사, 대한민국 초기 기득권이 된 ‘전쟁범죄국 협력자들’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yaksannews.co.kr/</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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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음악가 - 이윤아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969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이윤아 공식유튜브]]></description>
			<pubDate>Fri, 12 Jun 2026 09:51:5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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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음악가 - 이윤아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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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거국가/거국행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969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대전 MBC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1910년 망국의 시운에 눈물을 머금고 힘을 길러 장래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으로의 망명을 결심한 후 동포에게 보내는 피눈물나는 호소로 지은 노래이다.]]></description>
			<pubDate>Fri, 12 Jun 2026 09:51:5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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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거국가/거국행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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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과 이런저런 이야기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969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넷플릭스 코리아요즘 넷플릭스에‘참교육’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많은 시청자가 시원해한다.몇 년 전‘더 글로리’가 유행했을 때처럼 현실과 다르게 정의가 서는 모습이 통쾌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참교육’은 채용택 작가와 한가람 작가 웹툰이 원작이라고 한다.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서 각색이 있기에 원작과 다른 부분도 있지만,원작과 드라마 모두 한국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1화 참교육1화에서는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국회의원 아버지의 둔 류준형이 나온다.그는 박대석이라는 피해자를 괴롭혀서 자살하게 만들지만,그의 폭력적인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교권보호국’에서 나온‘나화진’이라는 인물이 아버지를 믿고 안하무인으로 구는 가해자를 응징하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다.아버지나 부모를 믿고 안하무인으로 구는 학교폭력 가해자는 여러 사건을 떠올린다.누리꾼들은2011년12월 대구 수성구 덕원중학교2학년故권승민 군이 동급생2명의 지속적인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아파트에서 투신해 사망한 사건이 떠오른다고 한다.필자는 가해자가 부모 권력을 믿고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 점에서 다른 사건도 떠오른다.하나의 사건은2023년2월 대통령이 모 변호사를 제2대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으나,자녀의 학교폭력 사실과 소송 대응 논란이 불거지며 임명 하루 만에 취소된 일이 있었다.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피해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했는데,평소 친구들에게 당시 고위 검사였던 아버지에 대해&quot;검사라는 직업은 다 뇌물을 받고 하는 직업이다,내 아빠는 아는 사람이 많은데,아는 사람이 많으면 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quot;라고 말했다고 한다.MBC뉴스 단독 보도에 따르면,징계 기록이 졸업 후2년간 보존해야 하는데 그 변호사 아들의 징계 기록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학교생활기록부에서 삭제되었다고 한다.그 학생이 다니던 때에는 원칙적으로 졸업 후2년간 보존해야 하는데,예외적으로 삭제할 경우는 졸업 직전'학교폭력 전담기구'의 심의를 거쳐 졸업과 동시에 삭제할 수 있다고 한다.그러나 이 또한 충족해야 할 조건이 까다롭다고 한다.다른 사건은2023년7월 당시 대통령의 비서관 중 한 명의 초등학생 딸이 후배를 학교 화장실로 데려가 리코더 등으로 폭행해 전치9주의 상해를 입힌 일이 있었다.사건 발생 두 달 뒤 열린 학교폭력 심의위원회에서 총점16점부터 강제 전학 처분인데15점을 받아 딱1점 차이로 가해 학생은 강제 전학을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이 과정에서 대통령 부인이 교육부 차관과8분 이상 통화를 하는 등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이 확인되어 윗선의 개입 의혹이 제기되었던 사건이다. 2023년10월20일 모 비서관은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고 즉각 수리되었다.학교폭력은 아니지만, 2020년 충주에서 고교생 또래 여학생 집단 성폭행(특수강간 등)사건이 있었다.가해자9명 중 부친이 국민의힘 소속 충주시의원이었던1명만 유일하게1심과 항소심에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던 일이 있었다.이렇게 한국 사회에서는 아버지나 주변 인물 덕에 남을 괴롭히고도 예상했던 것 보다 처벌 수위가 낮은 경우가 드물지만,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다.한국인이 의리가 있고 정이 많아서 이런 일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많은 한국인이 잘못에 대해 공평하게 처벌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공분한다.그리고 누군가가 권력이든 돈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처벌을 피하면 불편해한다.그러다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누군가 이런 불공정한 일을 해결하면 시원해한다.정의가 세워진 것에 큰 만족감을 느끼는 한민족은 정의로운 사람 같다.‘참교육’은 한국 특유의 영웅물 같다.부당한 일을 당한 약자를 돕는 영웅이 등장한다.악당에게 거울 치료를 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깨닫게 해서 반성하게 만든다.약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정의를 바로 세운다.가해자도 아직은 학생이기에 깨닫고 바르게 살길을 스스로 택하게 한다.이런 한국식 훈훈한 이야기가 시원함과 함께 매력적인 드라마 같다.웹툰의 시작출처: 네이버 웹툰 (https://comic.naver.com/webtoon/detail?titleId=758037&amp;amp;amp;no=1&amp;amp;amp;week=mon)학교 전담 경찰이 생기게 된 사건자살을 시도한 피해자학폭기록 삭제국감에 등장한 학교폭력 사건충주 사건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06350]]></description>
			<pubDate>Thu, 11 Jun 2026 22:40:56 +0900</pubDate>
                        <image> 
              <title>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과 이런저런 이야기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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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amp; quot;선관위, 이중당적 검증 관련 자료 '부존재' 회신&amp; quot;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965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그림1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이중당적 관련 정당법 위반행위와 관련된 검증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회신했다.(사진제공:중도본부)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보공개청구에 대해“이중당적(복수 정당 가입)검증 관련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식 회신하면서,정당법상1인1정당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중도본부의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회신하였다.-이중당적 관련 전수·표본 검증 자료 부존재-이중당적 검증 결과 자료 부존재-관련 내부 지침·매뉴얼 부존재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해당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사유와 관련하여&quot;정당법 위반행위에 대한 조사권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quot;는 취지로 설명하였다.현행 정당법은 동일인이 둘 이상의 정당 당원이 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이번 정보공개청구 결과에 따르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보유한 자료 가운데 이중당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전수조사 자료,표본조사 자료,검증 결과 자료 및 관련 내부 지침은 확인되지 않았다.이에 따라&quot;정당법상1인1정당 원칙은 어떤 방식으로 집행되고 있는가&quot;, &quot;이중당적 여부는 어떠한 절차를 통해 확인되는가&quot;등에 대한 제도적 관심이 제기되고 있다.그림2026. 4. 20.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최근5년간 정당 등록 및 취소 현황(사진제공:중도본부)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별도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5년간 등록 정당수는47개에서51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현재 등록 정당 수는49개이다.또한 등록 취소 사유는 대부분 정당법 제44조 제1항 제2호에 따른 선거 미참여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처럼 정당의 등록 및 취소 현황은 관리되고 있으나,당원 자격 및 중복가입 여부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차원의 검증자료는 이번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되지 않았다.이번 정보공개 결과를 계기로 다음과 같은 제도적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정당법상1인1정당 원칙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집행되고 있는가-이중당적 여부는 누가,어떤 절차에 따라 확인하는가-정당 등록 이후 유지요건은 어떠한 방식으로 점검되는가-관련 검증 체계와 관리 절차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가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당사무와 선거사무를 관리하는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정당제도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그럼에도 이번 정보공개청구 결과를 통해 이중당적 검증 관련 자료가 확인되지 않으면서,정당법상 기본 원칙의 집행 실태와 관리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문제의 핵심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개인의 위법 여부가 아니다.정당법상 기본 원칙인1인1정당 체계가 실제 행정 시스템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그리고 국민이 그 운영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지에 대한 공적 검증의 필요성이다.중도본부는&quot;정당법상1인1정당 원칙이 실효성 있게 운영되고 있는지 국민이 확인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와 관리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quot;고 밝혔다.&quot;법은 존재하지만,그 집행과 검증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이번 정보공개청구 결과는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description>
			<pubDate>Thu, 11 Jun 2026 17:41:1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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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 quot;선관위, 이중당적 검증 관련 자료 '부존재' 회신&amp; quot;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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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윤동주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942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MBN뉴스책을 좋아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독립운동가이기도 하고 민족시인인 윤동주를 동북 공정을 한다는 것이다.쉽게 이야기해서 중국이 자기네 시인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중국은 한국과 역사 교육을 해마다 강화하고 있다.세계사보다 자국 역사를 가르치고,근현대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중국어밖에 모르는 중국인처럼 자국 역사밖에 모르는 중국인이 많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봐야 한다.한민족으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중국은 자국 중심 역사관인 중화사상이 강하다는 것이다.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보다 자신의 역사를 우위에 두려는 태도에서 역사를 연구하고 어린 학생에게 가르친다는 것이다.단군 조선부터 발해까지 한민족 역사는 한반도를 넘어서 만주 벌판 중국의 상당 부분에 뻗어 있었다.그래서 고대사 연구를 할 많은 자료가 중국 땅에 있다.자료가 드물게 남아 있는 고대사는 유물을 통해 연구할 수밖에 없다.이 유물을 한민족이 아닌 중국이 연구할 때 공정하게 할 것인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일제강점기 일제가 한국의 무덤을 도굴하며 여러 역사 왜곡 자료를 만들어 낸 것을 기억해야 한다.일제는 가야 문화 관련 자료를 심하게 왜곡해서 임나본부설까지 만들었다.그러나 이런 일본의 역사 왜곡이2023년‘전라도 천년사’에서 등장해서 논란이 일었다.해방된 지가80년이 넘었다.그렇지만 일제강점기 일제와 식민 사관론자가 만들어 놓은 역사 왜곡이 바로 잡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전라도 천년사’뿐 아니라 가야 관련 역사 왜곡은 늘 나오는 문제이다.이런 문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에는 이런 중국의 동북 공정에 제대로 맞설 국가 기관도 민간 연구 단체가 없다는 것이다.일례로 한국의 시조인 치우 천왕이 중국 사당에 모셔져 중국 시조가 되어도 국가적 차원이나 학문 단체 차원에서 항의를 하지 않고 있다.이런 상황은 오래전부터 벌어져 왔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는 한국 정부나 역사 관련 전문가들에게 답답한 심정이 들 뿐이다.‘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꺼내야 할 때이다.한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찾지 않고 방치하다 보니 독립운동가까지 중국이 손을 뻗치고 있다. 윤동주 시인은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간도는 두만강 중간의 삼각주를 사잇섬이다.땅이 비옥해19세기부터 조선인들이 대거 이주하여 개간한 곳이다. 1902년 대한제국에서는 이범윤을 북변간도관리로 임명ㆍ파견한 뒤 이를 청나라 공사관에 통보한 기록도 있다.그러나1909년 일본은 남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신 간도일대를 청나라에 넘기는'간도협약'을 맺어 청나라에 간도 지역을 주었다.더 문제는 해방 후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간도협약을 비롯하여1941년 이전에 일본이 맺은 조약은 모두 무효가 되었지만,분단으로 찾아오지 못했다.그리고 중국 땅이 되어 버린 것이다.그러니 윤동주 시인은 대한제국 땅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하지만 중국은 간도는 원래 자기 영토였고,자기 영토에서 태어났으니 윤동주 시인은 중국 사람이라고 주장한다.이 주장도 어불성설인 것이 윤동주 시인은 한글을 아름답게 구사하며 시를 썼다.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시를 쓴 사람이다.말은 얼이라고,그의 정신은 한민족 정신을 담고 있다.그렇기에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다 일제에게 끌려가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영화 동주 덕분에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지만,윤동주 시인은 사촌 송몽규와 함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마루타 실험을 당했다.송몽규는 교토에서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을 조직하고 독립을 고취했다는 혐의로1943년7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으며,윤동주 역시 사상범으로 몰려 함께 검거되었다.그렇게 끌려가서 마루타 실험 때문에27살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한민족 얼을 지켰기에 사상범으로 몰렸을 것이다.중국에는 그만한 독립운동가가 없는지 왜 우리 독립운동가까지 빼앗아 가려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중국의 말도 안 되는 동북 공정은 정부 차원에서,학문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필자처럼 평범한 한국인은 어떻게 윤동주를 지킬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한 가지밖에 없는 것 같다.윤동주의 시를 읽고 그와 공감하고,그를 기억하는 것이다.필자가 느끼는 윤동주의 시는 겨울에 쨍한 날씨 속에서 햇살이 한 줌 들어올 때 기분을 느끼게 하는 시가 많다.깊고 깊은 생각 속에서 날카롭게 들어오는 시어들이 많다.그러나 그의 시는 따뜻하다.고뇌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따뜻하다.일제강점기 그는 쉽지 않은 일상을 보냈을 것이다.그것이 오히려 그의 정신을 날카롭게 깨어 있게 했던 것 같다.일상이 느슨해질 때 읽어 보면 생각이 날카로워진다.그러나 따뜻함이 있기에 읽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시는 개인의 감정을 담아 쓰는 것이고,읽는 독자도 개인의 감정을 담아 받아들인다.그래서 같은 시를 읽어도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그러나 읽지 않으면 시인의 생각을 전혀 알 수 없다.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시는 반복해서 읽는 문학 같다.짧은 문장 안에 어느 깊이까지 내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최선을 다해 읽는 연습을 해 본다.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의‘자화상’으로 마무리해 보려 한다.자화상 - 윤동주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한글날 제정 100주년 윤동주 문학제출처: 한국 문학관 협회 (http://www.munhakwan.com/introduce.html?Table=ins_bbs1§ion=&amp;amp;amp;mode=view&amp;amp;amp;uid=590)고구려 역사를 훔치려는 중국일제강점기 마루타 -생체실험 (살아 있는 육체를 이용한 실험, 살아 있는 사람에게 행한 실험)간도는 한민족 영토https://www.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106618일제는 남만주 철도 부설권을 가지고 간도를 청나라 영토로 협약함https://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52626친일 식민사관 ‘전라도 천년사’가야사 논란]]></description>
			<pubDate>Wed, 10 Jun 2026 21:13:5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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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윤동주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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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915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의열체험관 활동지 속 박재혁 의사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부산 동구,미싱 거리 근처에 박재혁 거리라는 갈색 간판이 있다.지나갈 때마다 마음의 빚 같아 마음먹고 하루 방문했다.많은 독립운동가 장소처럼 큰 기대는 없었다.그러나 갈색 간판이 있는 거리를 계속 돌았지만,박재혁 의사 관련 어떠한 흔적도 없었다.길 이름만 갈색으로 되어 있을 뿐 박재혁 의사의 업적이라든지 생가터라든지 어떠한 것도 없었다.인터넷을 찾아보니KT범일 타워 앞에2020년까지 안내판이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그 후에 어떤 이유인지 사라졌다.게다가 박재혁 의사 생가 주소를 찾아서 가보니 누군가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어떠한 표시도 없어서 주소만으로 확인해 볼 뿐이었다.빈집이라고도 하지만,어쨌든 닫혀 있는 누군가의 사유지에 확인할 길은 없었다.생가를 찾아가는 길에 화려한 미싱 거리 안내판과 비교하니 박재혁 의사에 대한 대우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한국이 독립운동가를 박대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조금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그리고 범일동 가구 거리 골목에 있는 주차장에는 박재혁 의사의 생가가 있었다는 패널이 있다고 해서 주차장을 또 한참 찾았다.미싱 거리는 가는 길에 안내판이 잘 보이더니 박재혁 의사는 찾으려고 하니 그 좁은 지역을 한 시간 가까이 서성거렸다.광주 양림동에 정율성 거리가 있다.정율성 생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파트를 만들면서 조성된 장소이다.아파트 바깥 공간에 야외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덕분에 정율성이라는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 한 분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얼마 전 다시 방문했을 때,분단의 이념 속 한민족 개념은 없는 이상한 사람들이 괴롭혀서 동상이 없었다.그리고 음악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예전과 같았다.단군 동상 목을 베거나 정율성 독립운동가 동상을 훼손하는 이나 다 기독교인이었다.한민족 개념은 없고 종교적 신념만 가진 이들이라고 생각한다.모든 기독교인이 자기 종교만 소중하고 국가나 민족이 없는 것은 아니다.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남의 종교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모든 종교인의 기본자세일 것이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같은 교회 다니는 사람만 이웃으로 여기라고 만든 편협한 십계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한민족은 없고 분단의 이념만 가진 이가 해방 후 한국 사회를 지배해 왔다.그들이 독립운동가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독립운동가 장소를 갈 때마다 느껴진다.부산에는 박재혁 거리 외에도 폭탄 투척 의거지가 있다.2026년 5월 11일 폭탄 의거지 방문했을 때 모습 - 참고로 5월 11일은 박재혁 의사 순국일이다.과거 부산경찰서 자리 근처에 폭탄 투척 의거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하나 있다.그 안내판 하나를 찾기 위해서도 역시 지도에 의존해서 찾아가야 한다.그리고 주변에 안내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박재혁 의거가 대단한 것은 서장을 직접 찾아가 죄를 묻고 폭탄을 던졌다는 것이다.본인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서장과 대면한 좁은 공간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quot;나는 상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네가 우리 동지를 잡아 우리 계획을 깨뜨렸기에 너를 죽이는 것이다!&quot;라고 외쳤다고 한다.하시모토 슈헤이 경찰서장은 당시 경상남북도 경무부 관내 수석 서장으로서 독립운동가들을 악랄하게 탄압하고 체포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그래서 의열단장인 김원봉 선생님도 박재혁도 그냥 의거만이 아닌,죄를 묻는 의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런 의미가 있는 의거이기도 하고,의열단이 일으킨 의거 중 처음으로 성공해서 또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마지막으로 박재혁 의사 동상이 성지곡 수원지에 세워져 있다.대중교통에서 내려서 한참 걸어가야 나오는 곳이다.게다가 성지곡 수원지가 일제강점기 산물이라는 것이다. 1909년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콘크리트 중력식 댐으로,일제강점기 부산 지역 수탈 역사의 상징물이다.부산에 많은 수원지가 그러하듯,이곳도 당시 부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생활용수 확보를 위해 지어졌다.이런 장소에 독립운동가 동상을 세울 계획을 세운 이는 한민족이라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그 외에 그의 모교라 볼 수 있는 개성학교에 그의 흉상 동상이 있다고 한다.부산공립상업학교를 다녔다고 한다.그리고2학년 재학 중 최천택(崔天澤),오재영 등과 함께 금서인 대한제국 보통학교의 국사교과서인&amp;amp;lt;동국역사(東國歷史)&amp;amp;gt;를 비밀리에 배포하고 돌려보다가 구금을 당하였다고 한다.동국 역사는1906년 유근과 원영의가 저술하고 장지연이 교열하여 발행한 소학교용 국사 교과서입니다.중등용 교과서인『동국역대사략』을 당시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국한문체로 쉽게 풀어쓴 책이라고 한다.참고로 동국 역사는‘단군 조선기’가 첫 장이다.일제강점기에도 단군은 신화가 아니였다.엄연히 역사책에 존재하던 인물이었다.해방 후 한국 정부와 배운 이들이 단군을 신화로 만들고 광신도들이 단군 동상 목을 베는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지방 자치단체장이 바뀌었다.바뀐 부산시장이 박재혁 독립운동가를 어떻게 대접할지 궁금하다.여태까지 시장과 다르게 대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사를 마무리하려 한다.보통 교과 동국 역사 첫 장東方이初에君長이無ᄒᆞ야人民이草衣木食ᄒᆞ며夏巢冬穴ᄒᆞ더니神人이太白山今寧邊府妙香山檀木下에降ᄒᆞ야聖德이有ᄒᆞ거ᄂᆞᆯ國人이推尊ᄒᆞ야王을ᄉᆞᆷ고號ᄒᆞ야曰檀君이라ᄒᆞ니此ᄂᆞᆫ唐堯二十五年戊辰이오我大韓의開國記元前三千七百三十四年이라歷世의文獻이無徵ᄒᆞ야不可考러라(띄어쓰기는 이해하기 쉽게 필자가 한 것이고 원래는 없음)정율성 동상 훼손 보수진 전도사일제강점기 잔재 성지곡 수원지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78938]]></description>
			<pubDate>Wed, 10 Jun 2026 21:13:5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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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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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 그날이 오면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911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description>
			<pubDate>Tue, 09 Jun 2026 21:44:3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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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날 -6월 10일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910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6. 10 민주항쟁1987년6월10일은 전두환 정부의 독재에 맞서 대한민국 전역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6월10일의 대대적인 시위는 아주 간략하게 이야기하면,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과 전두환의 호헌 발표로 끓고 있었다.그러다가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으며 폭발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민주 시민들은‘호헌 철폐!독재 타도!’라는 구호를 외치며 민주화를 요구했다. ‘호헌 철폐’는1987년4월13일 전두환의 기존 방식으로 선거하겠다는 발표에서 나온 말이다. ‘호헌(護憲)’은‘보호한다’에서 온‘호’라는 한자와‘헌법’에서 나온‘헌’에서 나온 말이다.말 그대로‘헌법을 지킨다’라는 뜻으로 과거 독재 시절 간선제를 그대로 하겠다는 말이었다.해방 후 한국은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접 선거 제도를 도입했고,독재 시절을 거쳐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민의 왜곡,밀실 야합 및 부패,대의 기구의 책임성 약화,기득권 고착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쉽게 이야기해서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대표가 아닌,국회의원이 원하는 이가 나라의 대표가 될 수 있는 방식이었다.미국이 여전히 간선제 방식으로 대표를 뽑는데,미국인이 하는 대통령 선거는 선거인단을 뽑는 선거이다.이를 예비 선거제라 하기도 하고,영어를 좋아하는 이가 프라이머리(primary)가 이것이다.한국에 도입된 방식과 다르게 미국은 국회의원이 아닌 국민이 뽑은 선거인단이 원하는 대통령이 나라를 대표하게 된다. 승자 독식이라든지,선거인단이 자기를 대표로 내세운 유권자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든지 여러 가지 논란이 생기는 선거 방식이다.독재 시절 간접 선거제 또한 여러 가지 논란이 많았다.장충체육관에서 이루어진 이 선거는‘체육관 선거’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다수의 국민은 직접 선거제를 열망하고 있었다.이런 과정에서 독재에 저항하던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 전기 고문 등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더 문제는 독재 시절이라 이 사건을 정부가 은폐하려 했다는 것이다.독재에 빌붙은 자들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오연상 의사가 진실을 알렸다.그리고1987년5월18일,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명동성당에서 열린5·18민주화운동 추모 미사 중'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이러한 가운데 또 한 명의 죽음이 많은 이들이 참여하게 했다.이한열은 연세대 정문 앞에서 경찰이 쏜SY-44직격 최루탄에 뒷머리를 피격당하여 쓰러졌다.최루탄은 말 그대로‘눈물이 나오게 하는 탄환’같은 것이다.사람에게 직접 쏘는 총알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발사해서 가스로 인해 괴로움을 주는 무기이다.사실 민간인에게,같은 민족에게 무기를 쓰는 것 자체가 반민족주의자 같다.백골단을 비롯한 진압 부대는 같은 한민족,자신들에게 월급을 주며 안전을 지켜 달라고 세금을 내는 국민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폭력을 자행했다.이한열 열사 피격은6월18일‘최루탄 추방 국민대행진’을 하게 했다.그리고7월9일 이한열 열사의 장례가 전 국민이 지켜보고 애도하는 가운데 민주국민장으로 거행되었다.결국 독재 정권은6월29일'6.29민주화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하였다.다수의 깨어 있는 시민이 만든 한국 민주주의의 큰 변화이다.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마침표가 아니다.아직도 바꾸어야 할 것이 많다.직선제는 쟁취했지만,늘 독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불완전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해방 후 미군정이 간선제를 도입한 이유 중 하나가‘신민적’조선인은 민주주의에 불완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신민’은 군주국에서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다.즉 한국인은 개인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적 태도보다 왕을 섬기는 사고방식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현재 한국인이‘신민적 사고’라 볼 수 있는,누군가가 자기 대신 결정을 내리고 지배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다양한 사회 현상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아주 간단하게 투표를 할 때 내 의지에 의해서 하는 사람이 많은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가끔 엄마가,교회 목사 등 누군가가 뽑으라고 해서 어떤 후보를 뽑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그 후보자를 뽑으라고 말할 때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그냥 일방적으로 시키는데 받아들인다.그리고 그런 선택이 부끄러운 줄 모른다.그렇다면 그들은 주인 의식이 있는 것인지 질문이 생긴다.정말 수준 높은 유권자는 공익을 추구하는 사람을 뽑는다고 한다.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도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을 뽑아도 충분하다고 한다.집을 고르거나 가구를 고를 때만큼이라도 신중하게 공약을 살펴보면서 선택하는 것도 괜찮다고 한다.2026년6월3일 지방 선거를 보면서 한국 유권자 수준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직선제 하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일상을 바친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민주주의 제도 하나를 위해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다.그걸 기억하는 유권자가 많았으면 좋겠다.미국 전두환 정권 호언지지 요청 거절박종철 추모시위이한열 열사와 같이 한 사람백골단 만행]]></description>
			<pubDate>Tue, 09 Jun 2026 21:44:3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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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날 -6월 10일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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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날 -6월 10일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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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국가보훈부 -6월의 독립운동가6월10일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하나는1926년6월10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이고,다른 하나는1987년6월10일에 일어난 민주 항쟁이다.먼저6·10만세운동은1926년 순종 황제 인산일에 학생과 종교계,그리고 사회주의 활동 참여자들이 계획하고 실행하였던 독립 만세운동이다. 3.1운동(1919년),광주학생운동(1929년)과 함께 우리민족의3대 만세운동으로 평가된다. 3.1만세운동만큼 한민족이 알아야 할 중요한 날이다.그래서 보훈부에서는2026년6월 독립운동가로 박하균,강달룡,박내홍 선생을 추천했다.박하균 독립운동가는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참여하여6·10만세운동을 주도한 분이다.순종 인산일을 계기고 고종 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났던3.1운동과 같은 만세운동을 벌이고자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았다.고종 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났던3·1운동을 떠올리고,순종의 인산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고자 계획하였다.거사를 앞두고 주요 지도부가 체포되면서,박하균 선생님을 비롯한 학생들이 주도되어 만세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6월10일 오전8시 순종의 어가행렬이 창덕궁을 출발하여 관수동을 지날 무렵,수표교 부근에서 박하균이 격문을 날리며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인근에 모여 있던 연희전문학교 학생들이 호응하였고,뒤이어 여러 학생이 참여하였다.서울 시내8개소에서 대거 천여 명의 학생이 시위에 참가하였다고 한다.박하균 독립운동가는 만세운동 주도로 함흥형무소에서1년의 옥고를 치르고1927년9월20일에 출옥하였다.그리고 세 번의 옥고를 치를 만큼 끊임없는 항일운동을 벌였지만,사망일을 모르고 있다.당시 격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조선민중아!우리의 철천의 원수는 자본·제국주의 일본이다.2천만 동포야!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만세 만세 조선독립만세!단기4259년6월10일강달룡 독립운동가는 박하균 독립운동가와 마찬가지로3.1만세운동을 주도 했던 사람이다.그는 진주에서1919년3월18일의 진주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1928년2월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6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한 후1933년9월16일 출옥하였다. 7년2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정신이상을 극복하지 못하고1940년6월7일 사망하였다.박내홍 독립운동가는3.1만세운동에 천도교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때 같이 참여했다.일제가1919년8월에 발표한 문화정치의 시행에 발맞추어,이돈화,박래홍,‧정도준 등이1919년9월에‘천도교 청년교리강연부(天道敎靑年敎理講硏部)’라는 청년단체를 조직하였다. 1928년10월5일,서을봉은 서울 종로 경운동의 천도교회 사무실에서 당시 천도교청년동맹 대표이자 신간회 본부 총무간사였던 박래홍 선생을 단도로 찔러 잔인하게 살해했다.이 살해 사건의 배경에는 친일 성향의 천도교 신파를 육성하기 위해 협조적이지 않은 천도교 인물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그만큼 일제강점기 천도교가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고,많은 조선 민중의 호응을 받고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국가보훈부는 제100주년6·10만세운동 기념일을 맞아1926년서울에서 연희전문학교2학년 재학 중6·10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징역1년을 받고 옥고를 치른 이병립 선생(애국장)을 비롯한 독립유공자13명을 포상한다고 밝혔다.포상에는 이병립 선생과 같은 연희전문학교학생으로6·10만세운동에 참여하고,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주지역에서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활동을 펼친 유경상 선생(건국포장),신문배달부로 만세운동에 참여한 것은물론 만세시위에 사용할 인쇄물 제작에 도움을 주고 직접 배포한김낙환 선생(대통령 표창)등이다.늦게라도 포상을 받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한국은 더 많은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대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목숨을 바쳐 일상을 포기한 그들에게 포상이 그 고생을 다 보상하지는 못할 것이다.그러나 지금 한국에 사는 이들이 감사를 표현하는 최소한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2026년 6월의 독립운동가천도교인 김세열 일가 학살https://imnews.imbc.com/replay/1996/nwdesk/article/1968713_30711.html]]></description>
			<pubDate>Tue, 09 Jun 2026 20:09: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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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날 -6월 10일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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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역사 - 6.25 중 이승만 정부의 한강 인도교 폭파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869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KBS 히스토리 한강 다리 폭파관련해서 생각해 볼 인물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6월 27일 새벽 서울을 탈출해 대전으로 피난 갔다. 그리고 그가 마치 서울에 있는 것처럼 속이면서 27일 오전 서울 시민들에게 방송했다. 육군참모장 채병덕(蔡秉德) 소장은 북한군의 전차가 시내로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고 공병감 최창식(崔昌植) 대령에게 한강교를 폭파하도록 명령한 다음, 시흥으로 향했다고 한다. 당시는 최창식 대령이 한강교 조기폭파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폭파 책임자 최창식은 1950년 9월 총살되었다. 12년 뒤인 1962년 재심이 이루어져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상관인 실제 명령을 내린 채병덕 당시 참모총장을 인도교 폭파의 책임자로 몰았다.또한 최창식 공병감의 미군 고문이었던 크로포드 소령은 “폭파 당시 최창식은 자신과 같이 지프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기 직전이었으며, 나중에 최창식의 누명을 벗겨주려 했으나 하우스만이 입 다물고 있으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크로포드는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채병덕에게 폭파 지시를 내린 것은 ‘미군 장교’였고, 그는 국군 참모총장의 고문이었다”고 증언했다.이를 바탕으로 추측한 인물이 미군 대위 제임스 하우스만이다. 국무회의에도 참석할 수 있는 미국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또한 한국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를 만든 인물이다. 그는 실전 경험이 많은 사람을 우대했다. 그 말은 일본 육군 사관 학교나 만주 군관 학교 출신 위주로 조직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 때 기용된 인물이 백선영 정일권 같은 친일부역자 독립군을 토벌하던 인물이다.출처: 여순사건과 제임스 하우스만 (여순 사건의 진상과 국가 테러리즘 학술 세미나 중에서)한강 인도교 폭파와 제임스 하우스만https://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64국무회의에 참석한 제임스 하우스만https://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56322이승만 발언https://v.daum.net/v/oFYbdhCxd5제임스 하우스만 관련 설명 한강 다리 폭파 명령 내리 채병덕 친일부역자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979408무능한 채병덕과 친일부역자가 장악한https://kor.theasian.asia/archives/140988]]></description>
			<pubDate>Tue, 09 Jun 2026 20:10:4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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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역사 - 6.25 중 이승만 정부의 한강 인도교 폭파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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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역사 - 거창 양민 학살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868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거창군 공식 유튜브양휘모 작가님의 거창 웹툰 ‘상기’ 한 장면볼 수 있는 누리집 주소https://www.geochang.go.kr/01112/03710/03711.web격변청야 작전출처: KBS 경남1951년 2월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서 주민 719명이 한꺼번에 학살되었다. 이 중 14세 이하의 어린이가 359명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61세 이상의 노인도 74명에 이르렀다. 당시 11사단장 최덕신이 토벌을 위해 휘하 부대에 보낸 작전 방침은 견벽청야(堅壁淸野) 일종의 초토화 작전이었다]]></description>
			<pubDate>Mon, 08 Jun 2026 12:19:1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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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역사 - 거창 양민 학살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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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산동애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841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여수 MBC여순 민중 항쟁으로 여수와 순천에 사는 양민만 학살당한 것이 아니다.지리산 구례군 작은 마을에 사는 이들도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도 많았다.그들의 억울함을 잘 보여주는 노래가‘산동애가’이다.구례군의 가장 북쪽에 자리 잡은 산동면은 이른 봄이면 노랗게 피어나는 산수유로 유명하다.그러나 여순 민중 항쟁 중 이 작은 마을에서 천여 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대부분 억울하게 죽었고,대살이라고 해서 가족 중의 누군가를 대신해서 죽는 참혹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산동애가’도 오빠를 대신해서 죽어야 했던 여동생 백부전 또는 백순례가 끌려가며 죽기 전에 지어서 부른 노래라고 한다.그리고 구전으로 내려오다 한 작곡가가 음반을 냈는데,너무 트로트풍이라 차라리 기록 영화 속 할머니가 부르는 게 더 나은 것 같다.왜 한국의 비극을 이야기하는데 한국에 비극을 안겨 준 일제풍 노래에 가사를 붙였는지 모르겠다.가사는 다음과 같다.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열 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까마귀 우는 곳을 병든 다리 절어절어다리머리 들어오는 원한의 넋이 되어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잘 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산수유 꽃잎마다 설운정을 맺어놓고회오리 찬바람에 부모 효성 다 못하고갈 길마다 눈물 지며 꽃처럼 떨어져서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이런 노래를 지어 부를 만큼 똑똑하고, 19살밖에 안 된 젊은이,어쩌면 어린 사람이 왜 죽었는지 우리는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이 집안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모든 비극이 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백순례는3남3녀 중 막내딸이었다.첫째 오빠는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가서 죽고,둘째 오빠는 해방 후 당시 진압군이 모진 고문도 모자라 처형해 버렸다.큰 언니는 분단 된 조국에서 북한에서 내려오지 못한 채 행방불명되었다.집안에 남은 아들 하나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시집가지 않고 집에 남아 있던 막내딸을 대살로 선택했다.진압군,토벌군이라 불리던 이들은 진짜 반란을 일으킨 군인만 죽인 것이 아니다.성과를 올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죽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동네에 문제가 될 만한 사람을 서로 지목하게 했고,고문 자행은 당연히 했다.백순례가 대신해서 죽은 막내 오빠도 심한 고문으로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한다.양민은 고문으로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한 명을 골라야 했다.그런 일을 벌인 것이 해방 후 남한 정부였다.국민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주지 않았다.억울하게 죽은 양민들(출처: 여수시 여순 사건 설명(https://yeosu.go.kr/www/yeosu/yeosoon/incident_10_19)어떻게 보면 미국과 소련의 이념 전쟁 사이에서 한국이 최전방에 있었다.미국과 소련이라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웠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남한의 선량한 양민은 미국과 소련 대립 가운데 벌어진 여러 가지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4.3제주 민중 항쟁,여순사건,보도연맹사건 등 양민이 대량 학살당한 비극적인 사건은 너무 많았다.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은 이 사건을 모르고 살았다.필자도 저 노래가 아니었다면‘대살’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것이다.해방 후 남한에서 많은 양민 학살이 있었다는 걸 알았지만,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을 대신해서 다른 가족 구성원을 죽이는 대살이 있는지는 몰랐다.남편을 대신해 아내가 죽거나,형을 대신해 동생을 처형하는 일을 해방 후 남한 정부는 벌였다.생각만 해도 끔찍한 시절이다.구례 민간인 희생여순사건 무고한 민간인을 상대로 즉결처분을 남발하고 학살을 자행한 핵심 가해자백인엽 형 백선엽 민간인 학살독립군 토벌하던 백선엽]]></description>
			<pubDate>Mon, 08 Jun 2026 12:03:3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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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알아야 할 노래 -산동애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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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날 - 반민특위 강제 해산일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836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1949년6월6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강제로 해산된 날이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말 그대로 민족에 반하는,배신하는 행위를 한 자들을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였다.해방 후 친일파가 세력을 잡다 보니 민족을 배신한 의미의‘배족’이나 반민족자라는 말 대신 친일파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친일파는 일본과 친한 것이 아니라,일본을 부모처럼 섬기며 따르는 자들이다.그런 자들은 한민족을 위하기보다 일본을 위해 살고 일본을 높이 평가하다 못해 한민족을 깔보는 자들이다.일본의 이익을 위해 일하다 보니 한국을 소홀히 하는 자들이다.일본 문화나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친일파가 아니다.그들은 한국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이런 한국의 이익에 반하는 자들이 세력을 가지게 된 현상을 만든 시작이 반민특위 해산이라고 생각한다.이승만이 노덕술을 구하기 위해 반민특위를 해산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이승만이 직접 반민특위 위원장이 김상덕이 거처하는 특위 관사를 두 차례나 찾아와 악질 친일 경찰 출신인 노덕술 등의 석방을 요구했다.그러나 민족주의자 반민특위는 당연히 거절했다.경찰이라는 공권력을 동원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전에도 친일파들은 반민특위를 빨갱이로 몰며 시위를 벌이고,반민특위 위원을 괴롭혔다.미군정이 다시 만든 경찰 조직은 일제강점기 경찰이었던 친일부역자가 대다수라 이런 시위대에 대해 느슨하게 대했다.그러다가 이승만이 책임을 진다는 명령으로 반민특위를 강제 해산하기에 이른다.당시 내무차관 장경근은&quot;앞으로 발생할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질 터니 특경대를 무장해제시켜라,웃어른께서도 말씀이 계셨다&quot;라고 이승만의 사전양해가 있었음을 암시하였다.1949년6월6일 아침 남대문로에 있는 반민특위 사무실에 윤기병 중부경찰서장이 지휘하는 경찰관40명이 일제히 사무실로 난입했다.총을 든 경찰은 당시 사무실에 있던 사람을 마구잡이로 패며 끌고 갔다.당시도 그들을 잡아가는 명분은 빨갱이였다.중부서로 붙잡혀간 특위 직원들35명은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이중22명이 심하게 두들겨 맞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반민특위 위원장인 김상덕을 비롯한 많은 위원은 후에 비참한 삶을 살았다.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이 다수였던 반민특위는 친일파에 의해 해산당한 것도 모자라 철저히 복수를 당했다.그 복수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과 후손에게도 겨누어졌다.그래서 현대 한국 사회에서 독립운동가의 정의가 사라지고 친일파의 이기심이 한국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하필 반민 특위가 해체된 날을 현충일로 지정한 이승만의 의도가 무엇이였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던 김상덕 위원장은6·25때 납북되었다.이후 그의 후손의 삶은 비참했다.김상덕 위원장이 임시 정부에서 일을 하며 아내를 잃었다.또한 어린 딸도 잃게 되자 그는 자녀들을 이국 땅의 고아원에 맡겼다.이런 비참한 삶은 해방 후에도 바뀌지 않았다.납북된 아버지로 연좌제에 걸려 제대로 취업할 수 없었다.일제강점기 의열단원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했으며 신간회 통영지회 총무간사를 지낸 김철호 선생님도 반민특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8월 맨발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고 한산도 앞바다에 끌고 가서 수장시켰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다.당시 통영 헌병대 문관이던 이판석 또한 서병두와 지역의 대표 친일파들이 김철호를 모함하여 죽게 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진짜 빨갱이가 아니라 빨갱이로 몰아서 독립운동가를 죽였던 것이다.해방 후 미군정에 의해 다시 경찰이 되고 군인이 된 친일부역자들은 명분을 찾아야 했다.그 명분이 분단된 조국을 이용해 민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모는 것이었다.이런 비극적인 역사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하나로 뭉쳐야 할 한민족이 나누어져 깊은 골이 생기고 있다.남한과 북한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남한에서 이념으로 갈라진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독립 공적이 아무리 뛰어나도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와 조금만 관련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해 버린다.그게 해방 후 남한에서 세력을 잡은 이들이 벌인 일이다.독립운동가뿐 아니라 민간인도 공산주의로 몰아 수많은 분이 억울하게 돌아가셨다.그리고 독재 시절에도 민주화 운동을 하는 이에게 그런 몰아가기는 재활용되었다.지금도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이들은 그 몰아가기에 빠져 있다.친일부역자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계속 반복되고 있어야 한다.6월6일은 반민특위가 강제로 해산된 날이다.반민특위는 만들어지는 것도 쉽지 않았다.그나마 해방 직후 제헌 국회에 의지가 강한 국회의원들이 이승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해 낸 것이다.그러나 노덕술을 비롯한 친일 부역자를 구하기 위해 이승만은 힘으로 해산시켜 버렸다.노덕술이 얼마나 악랄한 고문을 했고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알수록 그가 단죄받지 않은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한민족이라면 수많은 한민족을 죽인 이를 처벌해야 맞는다고 생각한다.게다가 그는 해방 후에도 독립운동가와 양만을 고문했고,고문 기술을 전수해서 민주화 인사도 잔혹한 고문을 받는 역사를 만들었다.만약 그가 제대로 단죄받았다면 한국 현대사에 많은 비참한 사람들의 죽음과 고문이 존재했을지 생각해 본다. 6월6일 반민족행위자특별위원회 강제 해산일은 그런 생각을 해야 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반민특위 해산한 친일파와 이승만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17323https://www.e-sejo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39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과 그 자손의 삶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49061독립운동가이자 반민특위 김철호와 그 자손의 삶https://www.ty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03친일파 조사관의 어이 없는 죽음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691088이승만과 노덕술미군정이 망친 친일파 청산]]></description>
			<pubDate>Sat, 06 Jun 2026 09:48:2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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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날 - 반민특위 강제 해산일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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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국인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8272</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국회방송1888년6월5일은연해주 지역에서'조선의 나폴레옹', '백마 탄 김장군'으로 유명한항일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이 태어난 날이다.무관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왔지만,앞장서서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한 항일 독립운동가이다.같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와도 친일앞잡이가 되어 편하게 일생을 보낸 이가 대부분이지만,김경천 장군처럼 드물게 독립운동을 위해 평생 자신을 바치다 간 분도 있다.이동훈(27기), 노백린(11기),유동열(15기),이갑(15기),지청천(26기),조철호(26기),이종혁(27기)이 있다.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활동했다.그러나 일제의 압박으로 처음에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그리고 시베리아로까지 물러나게 되었다.그러나 시베리아에서도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 마적들이 침범해 왔다.그리고1920년 수청지역에서의 마적 퇴치활동으로 시베리아지역에서 그 명성을 크게 얻었다고 한다.수청의병대의 지도자가 된 그는 계속해서 수청지역의 마적 퇴치에 노력하였다.그러나 김경천 장군이 머물던 러시아는 백군과 적군으로 내분되어 싸우는 중이었다.백군은 일본군과 한 편이 되어,당시 연해주 일대에 살던 조선인들을 괴롭히는 세력이었다.의열단원이자 독립운동가인 대암 이태준 의사도 백군에 의해 살해당했다.그러나1922년 일본군이 시베리아에서 철수하자 적군의 태도가 달라졌다. 12월 말 지금까지의 동맹군인 한인독립군에 대해 무장해제를 요구했다.백군과 싸움에서 많은 조선인이 도움을 줬지만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나라 잃은 백성이 타국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더 경계의 대상일 것이다.군대 해산 후 임시 정부가 내분 중인 상태에서,무관 학교를 세우려 노력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그러다가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극동고려사범대학에서 군사학과 일본어를 가르치게 되었으나 이 시기도 짦았다.1936년,김경천은 스탈린의 대숙청에 휘말리고 말았다.자신은 잘못이 없지만,상황상 갇혀 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독소 전쟁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그 무시무시한 시베리아 감옥으로 이감된 것이다.이감된 뒤 편지 왕래도 허용되지 않다가1942년1월2일 이르항겔스코에주 금고지에 소재한 시베리아 형무소에서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하지만 이것은 유족의 증언일 뿐,그가 언제,어디서,어떻게 사망했는지는 공식기록에서 확인할 수 없다.연해주 지역에서 나폴레옹이라 불릴 만큼,조선 독립을 위해 무장 투장했던 장군이 소련의 정치적 변동 시기에 사망했다.정확한 사인이나 시기도 모른 채 그렇다고 전해오는 이야기만이 남아 있다.그리고 유해를 찾지 못해서 현충원에는 위패만 봉안하고 있다.더 기가 막힌 일은 사후에 일어났다.소련은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내세우며,김경천 장군의 이력을 도용했다.김경천 장군은 항일 운동을 할 때 다른 독립운동가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이름을 사용했다.그중 하나가 김일성이었다고 한다.많은 독립운동가가 밀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이름을 사용했다.문제는 해방 후 공적을 제대로 추적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심하면 비슷한 이름인 것을 내세워 공적을 훔치는 예도 있었다는 것이다.그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 김일성이다.해방된 한국은 그의 유해를 아직도 찾아오지 못하고 있다.그리고 그에 대해 잘 모르는 현재 한국인들이 많다.그만큼 해방 후 한국의 정부는 적절한 대접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그의 증손녀의 노력으로 조금씩 명예를 찾아서 그의 옛 집터에 기념비가 하나 세워졌다.해방 후 제대로 된 나라였으면 어땠을지 늘 생각하게 된다.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편한 길을 죽을 때까지 간 친일파와 비교하면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한국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 법통을 이어받았으면,한국 육군 해군 공군도 독립운동가를 모범으로 삼고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게 독립운동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러시아에서 활약한 잊혀진 독립운동가김경천 장군과 김일성김경천 장군 활약러시아 내전과 한국 독립군첩자로 몰아 한국 독립운동가를 죽인 러시아밀정 누명에 총살 당한 독립운동가 김 아파나시https://v.daum.net/v/20260605100113838김한, 김단야, 박진순, 한창걸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37242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서 사망한 민족 대표 김병조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510217일본 육군 사관학교 출신 해방 후 성공한 정일권이 한 일]]></description>
			<pubDate>Fri, 05 Jun 2026 22:27:5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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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인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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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827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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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바르게 살자' 표지석 뒤 80만 조직…매년 세금 수십억 지원받는 이유는?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826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전국 주요 도로변이나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바르게 살자' 돌비석.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이 표지석의 뒤에는 전국 8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국민운동단체,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가 있다. 단순한 순수 민간 봉사단체를 넘어, 매년 수십억 원 이상의 막대한 세금을 안정적으로 지원받으며 독보적인 조직력을 유지해 온 이 단체의 재정 구조와 운영 방식을 심층 취재했다.■ 군부 정권 '사회정화위'에 뿌리…1989년 민간 단체로 재출범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의 뿌리는 1980년 전두환 정부가 신설한 국무총리 직속의 중앙행정기관 '사회정화위원회'이다. 당시 정부 주도의 사회 통제와 국민 정신 개조를 목적으로 운영되던 이 기구는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변혁을 맞이했다. 1989년 2월 사회정화위원회 설치령이 폐지되자, 같은 해 4월 1일 기존의 사무와 자산, 인력을 고스란히 흡수하여 민간 주도의 국민운동단체로 공식 창립했다.중앙회장은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기업인이나 정·재계 인사들이 주로 맡아왔다. 윤홍근 제너시스BBQ 그룹 회장, 임준택 전 수협중앙회장 등이 역대 회장단을 거쳤으며, 최근 김상훈 회장 체제를 지나 현재는 박무열 중앙회장 직무대행 체제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특별법과 조례가 보장하는 '독점적 보조금' 구조일반 시민단체(NGO)들이 공모를 거쳐 어렵게 예산을 따내는 것과 달리, 바르게살기운동은 매년 세금으로 이루어진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안정적으로 지원받는다. 이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법적 기득권이다.1991년 제정된 '바르게살기운동조직 육성법' 제3조에는 &quot;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조직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출연금이나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quot;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 각 지역 지방의회가 앞다투어 제정한 '바르게살기운동 지원 조례'가 더해지면서, 이들은 행정안전부의 국고보조금 외에도 시·도와 구·군 지자체 예산까지 삼중·사중으로 중복 지원받는다. 이렇게 확보된 세금은 단체 상근직 직원의 인건비와 사무실 임차료 등 '법정 운영비'와 각종 캠페인을 위한 '사업비'로 지출된다.■ 공무원 행정망과 결탁된 '피라미드형' 운영 방식방대한 예산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이 단체는 일반 봉사단체보다 공무원 조직이나 군대와 유사한 구조로 운영된다. 서울의 중앙협의회를 정점으로 전국 17개 시·도 협의회, 233개 시·군·구 협의회, 그리고 최말단인 3,200여 개 읍·면·동 위원회까지 촘촘한 피라미드형 행정 체계를 갖추고 있다.특히 최말단 동네 위원회는 해당 지역 주민센터(동사무소)와 긴밀하게 연계된다. 동장이 회의 공간을 제공하거나 단체 활동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지자체 행정의 외곽 지원 부대'처럼 움직인다. 명예직인 지역 위원장과 별개로, 보조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무국장' 등 상근 실무진이 배치되어 보조금 신청과 정산, 회원 동원 등의 행정 실무를 전담하는 것도 특징이다.■ '풀뿌리 봉사'와 '깜깜이 예산·관제화 논란'의 교차점이러한 전폭적인 세금 지원 덕분에 단체는 강력한 동원력을 발휘해 왔다. '진실, 질서, 화합'을 이념으로 기초법질서 확립 캠페인을 주도하고, 소외계층 반찬 나눔, 주거 환경 개선, 재난재해 복구 등 실생활 밀착형 봉사활동을 펼치며 지역 사회 안전망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그러나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법적 특권 덕분에 일반 민간단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부 감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보니, 일부 지역 지회에서 견적서 부풀리기를 통한 보조금 횡령 의혹이나 근무 태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지자체장이 보조금의 줄을 쥐고 있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단체 운영이나 인사 과정에서 부정 청탁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정권의 성향에 맞춰 관제 여론을 조성하는 '정치적 호위무사'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 역시 재정이 정부와 지자체에 종속되어 있는 이러한 운영 방식과 궤를 같이한다.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당 외곽 조직이라는 정치적 편향성 오명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80만 회원을 보유한 바르게살기운동이 진정한 국민운동단체로 거듭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다.]]></description>
			<pubDate>Fri, 05 Jun 2026 19:12:51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한민족 전통 음악 - 전통연희단 난장앤판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819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description>
			<pubDate>Fri, 05 Jun 2026 18:50:14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한민족 조상들의 음악을 공연하는 곳 - 국립남도국악원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819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진도 국립 남도 국악원국악의 날을 맞아 몇 년 전 다녀온 진도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진도가 다리로 육지와 연결이 되어도 남쪽 끝에 위치하다 보니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게다가 국립남도국악원이 남도에서도 남쪽에 있어서 다리 건너서도 한참 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그러나 풍경 자체는 바다가 보이고 들이 보이고 한국 특유의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기분 좋은 곳이었다.이렇게 찾아오기 힘든 곳에 국악원이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한민족을 대표하는 노래가 아리랑이고 지역마다 다양한 아리랑이 있다.많은 아리랑 중 대표적인 삼대 아리랑을 정선,밀양 그리고 진도 지역 아리랑으로 본다.그러다 보니 진도아리랑이 있는 곳에 국악원을 세웠을 것이다.국립남도국악원은 꾸준히 공연하고,교사나 일반인 대상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필자가 방문했던 시기에는 음악뿐 아니라 우리 전통 놀이를 곁들인 공연이라 흥이 절로 났던 기억이 있다.국악 공연을 볼 때마다 제대로 된 국악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전통 음계나 박자를 잘 모르는 것도 아쉽지만,추임새를 잘 맞추지 못하는 게 아쉽다.한국의 전통 음악 중 민간에서 부르는 많은 노래가 노동요이다.힘든 노동을 덜 힘들게 하기도 하고 단체로 움직여서 일해야 할 때 박자를 맞추는 역할을 하면서 만들어진 노래가 많다.기계가 없던 시절 쌀농사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효율성 있게 일해야 시간과 힘을 절약할 수 있었다.예를 들어 모내기할 때 여러 명이 일렬로 서서 일정한 자리에 모를 꽂고,다시 이동해서 줄을 맞춰 모를 꽂았다.이렇게 조금씩 이동하며 줄을 맞춰 모를 꽂아가며 한 논을 채우는 가운데 박자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이런 과정에서 외치던 구호가 노래가 되었다.이런 노래에는 대개 매기는 부분과 받는 부분이 있다.한 사람이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이 후렴을 부르며 박자를 맞춰 가며 움직였다.이렇게 노래를 부르며 줄을 맞춰 이동하며 일을 해나갔던 것이다.국악을 배운 적 없으니 이런 후렴구도 잘 모른다.그래서 같이 부르던 노래를 불러도 듣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때가 있다.그리고 따라 부르려 해도 한국 노래 같지 않은 어색한 발성은 늘 마음에 들지 않는다.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도 아니지만,창법이 서구 노래처럼 부르는 게 익숙하고 한국 전통 노래처럼 부르는 것은 거의 하지 못한다.서구 노래가 심박수로 노래가 진행한다면,한국 전통 노래를 호흡에 기반을 두고 노래가 진행한다.예전에 사물놀이를 배울 때 이런 호흡법부터 열심히 배웠던 기억이 있다.그리고 또 안타까운 것이 추임새를 모른다는 것이다.한국의 판소리나 여러 놀이를 할 때 관중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서구 교향악이나 공연장에서처럼 기침 소리조차 내면 안 되는 고요한 분위기가 아니다.전통 한국 공연은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고,공연하는 사람이 가운데 서면 관중들이 대개 빙 둘러앉아서 관람한다.공연 중간중간 마음에 들면, ‘얼쑤’ ‘좋다.’이런 추임새를 넣어가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한국의 전통 공연이다.공연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적극적 참여가 이루어지는 공연이다.공연하는 이와 참가자가 상호 작용하는 적극적 관객이 필요한 공연이다.그러나 이런 것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1인으로,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추임새를 넣는 것이 쉽지 않다. ‘잘한다’라고 외치고 싶은데,맞는 때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이 날 공연에서 공연하는 분이 추임새 넣는 법을 가르쳐줘서 어색하지만 시도했다.조금 더 하면 잘할 것 같기도 하다.그러나 지방에 살다 보니 억지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국악 공연을 볼 기회가 적다.삶에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공연을 볼 생각은 하고 있다.국악의 날이 있다니 재밌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다.국악이 활성화되어서 한민족의 얼이 좀 더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우리말을 우리 음악에 싣는 것은 우리말이 퍼지는 데 중요하다.우리말에 잘 담을 수 있는 것이 국악이라고 생각한다.우리말의 아름다움과 맛을 잘 느낄 수 있는 한민족 음악 국악이 널리 널리 퍼지길 바란다.]]></description>
			<pubDate>Fri, 05 Jun 2026 18:50:17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선거 후 이런 저런 이야기 - 과거의 망령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96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2.28민주운동기념회관 전시 중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된 나라에서 좋은 후보 기준은 나를 위해 일해줄 사람이다.개인적으로 이 기준에 부합하는 후보는 하나도 없었다.그래도 투표 의무를 늘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정말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후보를 빼고 선택했다.이번 선거에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이 가는 후보가 있었다. 2.28민주화 운동을 기리는 장소에서 출정식을 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한국 선거 역사에서,기억하는 한,제대로 역사의식이 있거나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후보가 거의 없었다.드물게 역사에 관심을 가진 후보라 생각해서 유세 활동을 지켜보았다.그 후보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안정된 지역구를 버리고 당선 되기 어려운 고향에 출마한다고 발표할 때였다.후보가 속한 정당은 그의 고향 사람들은 절대 뽑지 않는 정당이었다.그래도 고향에서 한 번 국회의원을 했고,이번에 지방자치단체장에 도전했다.그렇다고 당시 그 후보에 대한 호감은 전혀 없었다.당시 그 후보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뭐든 하는 인상을 주었다.본인은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인 것을 내세워서 정치인이 되었으면서,독재자의 후손이 권력 있다고 잘 보이려는 모습이 모순적이었다.당시 독재자 후손이 대통령이었고,후보자 고향에 인기가 많은 것은 알고 있었다.그래도 후보자의 모습이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그러나 그 후보자의 이번 선거를 지켜보면서 어느 순간‘저 후보는 거듭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정말 과거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이번 선거는 정말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기기 위해 뭐든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얼마나 고향을 위해 일하고 싶은지 알리려고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의 진심이 현수막 속 구호에도 드러났다.단순하지만 강한 현수막은 노 예술가의 성숙한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오랫동안 한 분야를 파고든 예술가들 작품을 쭉 이어서 보게 되면 젊은 시절과 나이 든 시절의 작품이 다른 경우가 많다.예외는 있겠지만,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군더더기가 사라진다.필요한 부분만 남은 작품을 보면 오히려 그림이 더 강하게 다가오기도 한다.후보자가 거리 유세를 다니며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진솔하다.이야기를 듣고 꾸밈없이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과거에 자기가 억울했던 이야기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상대방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그 후보자를 많이 오해했나 싶을 정도로 내면의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이 많았다.정말 진심으로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저 후보는 져도 후회가 없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이다.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후회가 없는 사람이다.후회가 없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모든 것을 다해 보아야 한다.그러면 가볍게 털고 새로운 곳으로 마음이 옮겨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이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지만,그 동네를 알기에 쉽지 않을 싸움이라는 것을 알았다.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후보자는 졌다.역시 그 동네는 그의 진심을 알아주기에는 아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다.그와 겨룬 후보는1983년3월 공직에 들어와 승진을 거듭하며 살아온 관료이다.비리가 심했던 정부에서도 주요 공직을 맡았다.가장 문제는 계엄 당시 여당 원내 대표로 내란 동조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민주주의에 반하는 인사가 선출직이 될 때마다 한국은 민주주의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이른 봄에 꽃이 피면서 봄이 온 것 같지만,겨울 외투를 벗기에는 아직 추운 날씨일 때가 있다.한국의 민주주의도 아직 완전하게 정착되지 않은 것 같다.곧 다가오는6.10민주항쟁에도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그렇게 어렵게 얻은 민주주의인데 권력이 다수의 국민이 아닌 민주주의와 전혀 관련 없는 인물이 가져가 버렸다. 4. 19혁명도 그러했다.왜 한국은 계속 국민이 주권을 갖지 못하고 반민주주의 세력에게 권력을 줘 버리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특히 그 후보가 나온 지역을 보면서 한국에는 생각보다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사람이 적은 게 아닌지 질문하게 된다.아니면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이 적을 수도 있다.마키아벨리의‘군주론’을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을 다시한다.자유로운 공화정에 살았던 시민은 독재를 만나면 다시 자유로웠던 시절을 원한다.하지만 독재하에 살았던 이들은 자유로운 공화정을 만나면 결정을 두려워한다.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부모 밑에서 성장한 사람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독재 시절을 너무 오래 겪은 사람은,특히 민주화 운동에 같이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결정의 자유에 대해 두려워할 수도 있다.자유로운 결정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남이 내린 결정으로 잘못되면 결정을 내린 사람을 탓하면 된다.그러나 내가 내린 결정에 따른 결과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이런 게 두려운 사람이 많은 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아니면 진짜 역사를 몰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어느 쪽이든 한국에는 아직 완전히 민주주의 봄이 오지 않은 것 같다.론스타와 한국 관료계엄 관련정치자금으로 관리비]]></description>
			<pubDate>Fri, 05 Jun 2026 18:50:1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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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선거 후 이런 저런 이야기 - 과거의 망령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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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단독] 내 세금으로 관광 야유회에 인건비 삥땅까지? 관변 단체 보조금 복마전 민낯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95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대한민국의 양대 관변 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KFF)과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가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곪아 터진 구조적 비리로 매서운 도마 위에 올랐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쏟아붓는 수백억 원의 보조금을 젖줄 삼아 연명하면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깃발의 색을 바꾸며 ‘정치적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이들 단체의 보조금 편법 집행, 회계 불투명, 회장단의 독선적 사조직화 민낯을 심층 해부한다.■ 1축: ‘윤석열 정부 호위무사’로 회귀한 자유총연맹… 춤추는 안보 깃발한국자유총연맹은 정관상 ‘정치적 중립 의무’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정권 교체기마다 철저한 ‘정권 맞춤형’ 행보를 걸어왔다 [대중매체].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탈정치와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정권의 햇볕정책과 남북 정상회담을 적극 지지했던 연맹은 윤석열 정부 출범과 동시에 180도 태세를 전환했다 [대중매체].윤 대통령이 24년 만에 총회에 직접 참석해 힘을 실어주자, 강석호 총장 체제의 연맹은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을 ‘반국가 세력의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야당을 겨냥한 ‘가짜뉴스 척결 서명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대중매체].국민의 혈세를 받는 관변 단체가 사실상 정권의 외곽 경호부대 역할을 자처하며 불법적인 정치 개입을 감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매년 국정감사에서 쏟아지는 이유다 [대중매체].■ 2축: 군부 독재 유산 ‘바르게살기’, 도덕성 회복 뒤에 숨은 ‘갑질 잔혹사’전두환 정권의 ‘사회정화위원회’에 뿌리를 둔 바르게살기운동은 전형적인 하향식 통제 기구에서 출발해 법정 국민운동 단체로 정착했다 [대중매체].‘진실·질서·화합’의 이념을 앞세우지만, 내부 거버넌스는 회장단의 독선적 전횡으로 무너진 지 오래다 [대중매체].최근 전남과 양주시 등 지역 협의회장들이 취임할 때마다 자신에게 반대하거나 투명한 회계 집행을 요구하는 수십 년 경력의 내부 간부와 여성회장들을 정당한 절차 없이 제명하고 징계하는 이른바 ‘보직 보복 잔혹사’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대중매체].조직의 사유화와 밀실 행정 속에서 내부 감사 시스템은 완전히 실종되었고, 지역 연맹은 민주적 자치 조직이 아닌 회장 개인의 권력 쟁취를 위한 징검다리로 전락했다 [대중매체].■ 3축: 감시 없는 혈세 복마전… 유령 참석부터 인건비 ‘페이백’까지이 거대 단체들이 정권과 지자체의 눈치를 보며 세력을 가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육성법’과 ‘지자체 조례’라는 법적 치트키에서 나온다 [대중매체]. 일반 시민단체는 상상도 못 할 사무실 임차료, 상근직원 인건비, 공공요금 등 조직 운영비 전액을 지자체 세금으로 보전받는 특혜를 누린다 [대중매체]. 자유총연맹의 경우 한전의 자회사였던 [한전산업개발]의 대주주(지분 약 31%)로서 매년 수십억 원의 주식 배당금까지 추가로 거둬들이고 있다 [대중매체].이렇게 걷힌 세금은 감시망이 느슨한 로컬 거버넌스의 맹점을 노려 철저히 편법 집행된다 [대중매체].가짜 서류와 영수증 쪼개기단체 주관 행사나 교육에 참석하지 않은 회원들의 명단을 허위로 기재해 예산을 타내고, 식대나 기념품 대금을 부풀려 결제한 뒤 차액을 챙기는 부정 정산이 만연하다 [대중매체].인건비 페이백 비리보조금으로 지급되는 상근 간사의 급여 중 일부를 단체 간부들이 ‘발전 기금’ 명목으로 되돌려 받는 갈취 행태가 적발되기도 했다 [대중매체].세금으로 가는 관광 야유회시민 의식 개혁이나 안보 교육 사업비 명목으로 예산을 전용해, 평일 낮 회원들의 관광 버스 대절비와 식사비 등 단순 친목 야유회 비용으로 탕진하는 관행이 끊이지 않는다 [대중매체].■ &quot;정치적 중립 위반 시 즉각 예산 환수해야&quot;이들이 수억 원의 예산을 쓰면서도 비리가 반복되는 이유는 독립된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가 부재하고, 지자체 담당 부서 역시 관변 단체의 ‘지역 표 동원력’과 정가 영향력을 의식해 서류 위주의 형식적 감사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대중매체].전문가들은 국민의 혈세가 특정 정권의 여론조작 돌격대나 지역 유력 인사의 쌈짓돈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고강도 로컬 거버넌스 개혁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대중매체].지자체 보조금의 집행 내역을 투명하게 전면 공개하도록 조례를 개정하고, 정치 개입이나 회계 부정이 1회라도 적발될 경우 즉각 예산을 전액 환수하는 강력한 삼진아웃제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중매체].]]></description>
			<pubDate>Thu, 04 Jun 2026 22:14:3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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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단독] ‘24년 만의 대통령 참석’ 뒷배였나… 윤석열 정부 호위무사 자처한 자유총연맹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94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법정 관변 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KFF)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의 ‘탈정치·대북 화해’ 기조를 완전히 지워버린 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권의 외곽 경호부대’를 자처하며 야당을 겨냥한 전방위적 공세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지자체가 쏟아붓는 막대한 보조금을 무기로 가동되는 이 거대 조직의 ‘윤석열 정권 맞춤형’ 행보와 예산 구조를 심층 해부한다.■ 24년 만의 대통령 참석과 ‘전범국 앞잡이 우파 선명성’ 회복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국자유총연맹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공고해졌다. 그 정점은 지난 2023년 한국자유총연맹 창립기념식이었다.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이후 24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총연맹 총회에 직접 참석해 “허위 선동과 가짜뉴스, 괴담으로 자유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는 세력들이 많다”며 연맹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었다.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연맹은 과거 보수 정권 시절보다 훨씬 더 과감하고 선명한 우파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강석호 총장 체제 아래서 연맹이 대대적으로 전개한 ‘가짜뉴스 척결 1천만 인 서명운동’과 시국 강연회들이 대표적이다. 연맹은 현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 보도와 야당의 정책 노선을 ‘반국가 세력의 허위 선동’으로 규정하는 등 사실상 여권의 논리를 그대로 대변했다. 이에 야당과 시민사회로부터 “국민 세금을 지원받는 관변 단체가 사실상 정권을 비호하고 선거에 개입하는 관제 여론조작을 벌이고 있다”는 거센 포화와 국정감사 징계 요구를 맞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지우기’…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깃발 체인지이러한 윤석열 정부에서의 ‘우파 돌격대’ 행보는 바로 전 정부였던 문재인 정부 시절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문재인 정부 당시 자유총연맹은 군인 출신 총장이 취임한 후 기존의 극단적 반공 노선에서 탈피해 ‘탈정치’와 ‘평화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정권의 햇볕정책 기조에 발맞추어 남북 정상회담을 적극 지지하고 인도적 대북 지원 사업을 모색하는 등 완연한 친민주당 성향의 행보를 보였다.그러나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과거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버리고 다시 강성 보수 안보 단체로 회귀했다. 정권의 성향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꾸는 관변 단체의 이중성이 현 정권 들어 더욱 극대화되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석열 정권 호위’의 원동력… 지자체 세금으로 짜인 ‘보조금 젖줄’한국자유총연맹이 정권의 기조에 맞춰 전국적인 동원력을 행사할 수 있는 비결은 법적으로 보장된 탄탄한 세금 보조금 구조에 있다.연맹은 일반 시민단체(NGO)와 달리 노태우 정부 시절 제정된 ‘한국자유총연맹 육성에 관한 법률’과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만든 ‘지방자치단체 지원 조례’라는 쌍둥이 법적 방패를 쥐고 있다. 이를 근거로 일반 단체에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사무실 임차료, 상근직원 인건비, 공공요금 등 ‘조직 운영비’ 자체를 지자체 예산으로 직접 지원받는다.전국 시·도 및 시·군·구가 매년 교부하는 수백억 원의 보조금은 평일 낮 정권 지지성 행사에 동원되는 회원들의 버스 대절비, 식대, 기념품 구입비 등으로 편법 지출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대외적으로는 ‘안보 교육’이나 ‘국민 의식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포장되어 지자체 감사를 교묘히 피해 가는 구조다. 여기에 한전의 자회사였던 [한전산업개발]의 대주주(지분 약 31%)로서 매년 수십억 원의 주식 배당금까지 자체적으로 거둬들이며 막강한 자금력을 과시하고 있다.■ &quot;국민 혈세로 가동되는 로컬 정치 거버넌스 개혁해야&quot;정치권과 교육계 등 지역 사회 전문가들은 현 윤석열 정부 하에서 극대화된 자유총연맹의 정치 편향성을 멈추기 위해선 예산 구조의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의 우수한 인프라(예: 세한대 태권도 시범단 등)를 활용한 민간 외교나 순수 봉사 실적마저 정권 수뇌부의 정치적 돌격대 행보 탓에 도마 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법정 단체가 특정 정권의 외곽 경호부대 역할을 자처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지자체 보조금의 항목별 집행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조례를 전면 개정하고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시 즉각 예산을 환수하는 강력한 '로컬 거버넌스 개혁'이 시급한 시점이다.]]></description>
			<pubDate>Thu, 04 Jun 2026 22:03:2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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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단독] 35명 학과가 971명으로? 세한대 ‘가짜 만학도’ 학위장사 충격 수법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92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오랜 기간 족벌 경영과 사학 비리 의혹으로 구설에 올랐던 세한대학교(구 대불대학교)가 최근 폭로된 ‘성인학습반(만학도) 학위장사’ 및 ‘조직적 입시 조작’ 스캔들로 또다시 침몰하고 있다 [대중매체]. 특히 사태 수습의 전면에 나선 최미순 현 세한대학교 총장이 비리 발생 당시 대학의 최고위 보직자였다는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사학 쇄신’을 외치는 대학 본부의 도덕성과 진정성을 향한 지역 사회의 시선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돈 안 드는 졸업장’ 미끼로… 35명 학과를 971명 ‘유령 부서’로최근 교육부 감사와 사법당국 수사를 통해 드러난 세한대 당진캠퍼스의 휴먼서비스학과(사회복지 계열) 비리는 지방 사립대학이 ‘학생 충원율’을 조작하기 위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대중매체].세한대 측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계약직 교수들을 동원, 생업에 바쁜 중장년층 만학도들을 무차별적으로 끌어모았다. 국가장학금과 교내장학금을 매칭해 “돈 한 푼 안 내고 졸업장과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게 해주겠다”고 유혹한 결과, 해당 학과의 정원은 순식간에 35명에서 971명으로 비정상적으로 급증했다 [대중매체].수법은 치밀하고 대담했다. 등록된 성인학습자 대부분은 생업을 이유로 등교하지 않는 ‘유령 학생’이었다 [대중매체].수업이 정상적으로 열리지 않았음에도 대학은 학사 관리 시스템을 조작해 이들이 정상 출석한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대중매체]. 시험 당일에는 타인이 대리 시험을 치르는 행위가 버젓이 묵인되었으며, 시험과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무더기로 C학점 이상의 학점을 남발하며 학위를 ‘청부 판매’했다 [대중매체].여기에 그치지 않고 특정 학과의 신입생 미달을 감추기 위해 성인학습자들을 허위 입학시킨 뒤 나중에 대규모로 과를 옮기게 하는 ‘567명 초과 편법 전과’, 충원율이 낮은 부실 학과로 지원자의 지망을 무단 수정하는 ‘입시 데이터 조작’까지 교육부 감사에서 무더기로 적발되며 충격을 더했다 [대중매체].■ 비리 당시 ‘부총장’ 최미순, 이제는 ‘수습 총장’으로… 꼬리표 붙은 책임론이 고질적인 사학 비리의 행정적 책임 한가운데에 바로 최미순 현 총장이 서 있다. 최 총장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97년 세한대 교수로 부임한 이래 산학협력단장, 기획평가처장, 혁신성과관리원장을 거쳐 세한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한 자타공인 학내 최고 실권자였다.문제는 이번에 적발된 성인학습반 학위장사와 입시 조작 범죄가 자행된 시기(2020년~2023년)가 최미순 총장이 부총장으로서 대학의 행정과 평가, 학사 구조를 총괄하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계약직 교수들이 법을 위반하며 수백 명의 유령 학생을 양성하고 국가 전문 자격증의 신뢰도를 뒤흔드는 동안, 대학 행정의 최고 책임자가 이를 까맣게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묵인했다면 ‘방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최 총장은 족벌 경영 논란의 당사자인 전임 이승훈 총장이 물러난 후 2025년 4월 제11대 총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대중매체]. 그러나 취임 직후부터 부총장 시절 터진 비리의 최종 성적표(교육부 중징계 처분 및 사법당국 수사 의뢰)를 받아들게 되면서, ‘과거의 부실 감독 책임자’가 ‘현재의 수습 책임자’가 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이미지 쇄신 드라이브… 진정성 얻으려면 ‘과거 절연’ 먼저현재 최미순 총장은 과거의 부실 사학 이미지를 지우고 대학을 정상화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2026학년도부터 학내 모든 강의에 ‘AI 기반 교육혁신 통합 플랫폼(AI Commons)’ 활용을 의무화하는 등 에듀테크 전환을 전면에 내세웠다. 또한, 지자체와 연계한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을 통해 ‘평생교육 리서치&amp;amp;amp;러닝존’을 개소하는 등 과거의 불법적인 만학도 모집 방식에서 벗어나 합법적인 평생교육 인프라를 양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이와 더불어 세한대의 강점인 글로벌태권도학과(태권도전공)의 엘리트 시범단을 활용해 한국자유총연맹 등 주요 공공·안보 단체의 국내외 문화 행사 및 지역 안보 봉사에 적극 참여시키며 대학의 대외 이미지 개선과 국격 제고를 위한 ‘문화 외교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행보도 보이고 있다.그러나 교육계와 지역 정가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대학의 연구 역량을 지자체와 결합하려는 시도나 태권도학과 등을 통한 대외 공익 활동은 긍정적이지만, 재단의 도덕적 결함과 과거 최고위직의 책임 규명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혁신 행보가 자칫 ‘비리 덮기용 방패막이’나 ‘이미지 세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학사 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성인학습자 간담회를 직접 주재하는 등 사태 수습에 사활을 건 최미순 총장. 하지만 사법당국의 수사 칼날이 당시 대학 수뇌부였던 총장진의 관리 책임 규명으로 향하고 있는 만큼, 최 총장이 과거의 거대한 책임론을 넘어 세한대학교를 진정한 정상화의 길로 이끌 수 있을지는 향후 수사 결과와 인적 청산의 과감성에 달려있다.]]></description>
			<pubDate>Thu, 04 Jun 2026 21:04: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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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단독] 35명 학과가 971명으로? 세한대 ‘가짜 만학도’ 학위장사 충격 수법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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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924</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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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교수 출신 3선’ 어기구 의원, ‘사학 비리 의혹’ 휩싸인 친정 세한대와 거치른 시선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915</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더불어민주당 어기구 의원(충남 당진시, 3선)과 그의 ‘정치적 고향’이자 지역구 내 주요 대학인 세한대학교(구 대불대학교)를 바라보는 지역 사회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어 의원의 학문적 자산이자 지역구 핵심 파트너인 세한대학교가 최근 수년간 고질적인 사학 비리 의혹에 휩싸이면서, 전직 교수이자 지역구 국회의원인 어 의원에게도 도의적 책임과 비판의 불씨가 옮겨붙는 모양새다.■ 총장 일가 족벌 경영과 끝없는 ‘비리 의혹’세한대학교는 이승훈 총장 일가의 이른바 ‘족벌 경영’ 체제 아래서 끊임없는 잡음에 시달려 왔다. 교비 횡령 의혹으로 촉발된 학내 갈등은 최근 더욱 심각한 형태로 진화했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동티모르 유학생 불법 입학 및 등록금 유용 의혹'이다. 세한대학교가 유학원을 통해 외국인 학생들을 대거 유치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학사 운영 대신 불법 취업 알선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특히 유학생들의 등록금 중 일부가 학교 공식 계좌가 아닌 총장 아들 소유의 가족회사 계좌로 흘러 들어간 정황이 포착돼, 교수노조 등으로부터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고발당하며 교육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여기에 재정난과 학생 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중장년층 만학도를 대상으로 출석이나 시험 없이 학위를 남발했다는 ‘유령 학생 학위 장사’ 의혹까지 더해지며 교육부의 고강도 조사를 받기도 했다.■ 비리 의혹 중심에 선 학과… 어기구 의원의 ‘친정’어기구 의원이 세한대학교의 비리 행위에 직접 가담했거나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수사 결과는 없다. 그럼에도 그가 언론과 지역 정가의 도마 위에 오르는 이유는 대학과 맺어온 깊은 인적·정책적 연대 때문이다.어 의원은 정계 입문 전 세한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복지 분야의 전문성을 쌓았다. 이를 발판 삼아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으로 발탁되며 현실 정치에 데뷔했다. 문제의 발단은 최근 세한대 당진캠퍼스에서 부실 학사 운영과 대리 시험 등 ‘학위 장사’ 의혹의 중심이 된 곳이 바로 어 의원이 몸담았던 사회복지·휴먼서비스 계열 학과라는 점이다. 자신이 가르쳤던 학과가 추문의 온상이 되면서 전직 교수로서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지역 상생’인가 ‘사학 방패막이’인가더 큰 논란은 어 의원의 국회의원 당선 이후 행보에서 비롯된다. 당진시에서만 연속 3선에 성공한 어 의원은 세한대 당진캠퍼스를 지역구의 핵심 고등교육 인프라로 삼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어 의원은 세한대학교와 공동으로 정책 포럼을 개최하고 지역소멸 대응책을 모색하는 등 활발한 '로컬 거버넌스'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사학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올 때마다 지역 사회와 학내 비판 세력 사이에서는 &quot;국회의원이 비리 의혹이 무성한 사학재단과 지나치게 밀착해 결과적으로 면죄부를 주거나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는 것 아니냐&quot;는 냉소적인 비판이 제기됐다.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quot;대학의 연구 역량을 지역 행정에 녹여내는 상생 모델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재단의 도덕성 결여가 수차례 지적된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협력은 자칫 정치권이 사학 비리를 묵인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quot;고 지적했다.학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입법 자산을 다진 어기구 의원이, 이제는 도덕적 불감증으로 얼룩진 친정 대학과의 관계 설정 속에서 '지역구 발전'과 '사학 개혁'이라는 두 가지 숙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지역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description>
			<pubDate>Thu, 04 Jun 2026 20:38:53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학교 한 번 안 가고 사회복지사 자격증 따게 해 준 대학교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90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이미지 약산소식지학령인구 감소로 위기를 겪고 있는 지방 사립대학이 중장년층 만학도를 타깃으로 조직적인 ‘학위 장사’를 벌여온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세한대학교(구 대불대학교)가 성인학습반 학생들을 모집한 뒤 출석 조작과 대리 시험을 통해 무더기로 가짜 학점을 남발해 온 정황이 교육부 감사와 사법당국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국회 교육위원회 자료와 언론 취재를 종합하면, 세한대학교는 교육부의 대학 평가 지표인 ‘학생 충원율’을 조작하고 정부 재정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 성인학습자 과정을 변칙 운영하며 구조적인 학사 비리를 저질렀다.■ ‘등록금 100% 면제’ 미끼로 중장년 만학도 대거 유치세한대학교는 지난 2020년부터 계약직 교수들을 전면에 내세워 생업으로 바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신입생 모집 영업을 벌였다.장학금 혜택 남발충남 당진캠퍼스의 휴먼서비스학과(사회복지학과 등)에 입학하면 4년 내내 장학금 혜택을 주어 등록금 부담을 완전히 없애주겠다고 제안했다.직장인 맞춤형 편법 약속평일이나 주말에 정상적인 출석이 어려운 성인학습자들의 형편을 고려해 &quot;학교에 자주 나오지 않아도 졸업과 학위 취득이 가능하도록 편의를 전적으로 봐주겠다&quot;며 이들을 유인했다.■ 출석·시험 없어도 Pass…‘유령 학생’ 키운 가짜 학점 퍼주기학교 측의 약속은 단순한 배려를 넘어 사실상 출석과 시험을 통째로 조작하는 조직범죄 수준이었다.출석부 상습 조작대다수 성인학습자가 생업 등의 이유로 수업에 아예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담당 교수들은 이들이 정상 출석한 것처럼 출석 기록을 허위로 기재했다.대리 시험의 일상화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등 정식 시험일에도 시험장에 나타나지 않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였으며, 타인이 시험을 대신 치러주는 조직적인 대리 시험과 정답지 대필이 공공연하게 이뤄졌다.학위 무더기 수여수업과 시험을 전혀 수행하지 않은 ‘유령 학생’들에게 F학점 대신 높은 학점이 무더기로 부여되었고, 이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사회복지사 등 국가 자격증과 정식 학위를 취득했다.■ 특정 학과 학생 수 ‘35명 ➡️ 971명’ 폭등의 미스터리이처럼 &quot;이름만 걸어두면 쉽게 학위를 딸 수 있다&quot;는 편법 운영 소문이 퍼지면서 비정상적인 학생 수 급증 현상이 발생했다.27배 폭발적 증가당진캠퍼스의 해당 학과는 기존 학생 수가 35명에 불과했으나, 단기간에 971명으로 무려 27배 이상 폭등하는 기현상을 낳았다.충원율 조작이 목적대학 측이 이토록 무리하게 가짜 성인학습자를 끌어모은 이유는 교육부의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에서 핵심 지표인 '신입생 및 재학생 충원율'을 인위적으로 부풀려 퇴출 위기를 모면하고 정부 지원금을 타내기 위함이었다.■ 내부 고발로 덜미…교육부 &quot;구조적 비리&quot; 수사 의뢰&quot;학교에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은 사람들이 허위로 학점을 받고 졸업한다&quot;는 내부 고발과 진정서가 접수되면서 교육부가 본격적인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교육부는 세한대학교가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조직적으로 학점을 조작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이승훈 총장을 비롯한 대학 핵심 관계자들을 사법당국에 업무방해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사기 등 혐의로 수사 의뢰 조치했다.지방대의 생존을 위해 만학도들의 학업 열망을 ‘유령 학생 충원율 조작’에 악용한 세한대학교는 외국인 유학생 불법 입학 및 등록금 가족회사 편취 의혹에 이어 성인학습반 학위 장사까지 적발되며 사법당국의 엄중한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description>
			<pubDate>Thu, 04 Jun 2026 19:57:19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단독] 세한대학교, '가짜 학생' 만들고 총장 아들 회사로 등록금 우회…교육부, &amp; quot;구조적 사학 비리&amp; quot; 수사 의뢰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89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세한대학교(구 대불대학교)가 외국인 유학생 불법 입학, 총장 일가 유령회사를 통한 등록금 우회 수납, 그리고 정부 지원금과 학적 유지를 위한 ‘가짜 유령 학생’ 조작 등 백화점식 사학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교육부 감사 결과 드러났다.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문수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와 대학 교수 단체들의 폭로를 종합하면, 세한대학교는 지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조직적인 학사·입시 비리를 지속해 오다 교육부로부터 사법당국에 수사 의뢰를 조치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의혹 1: 동티모르 유학생 불법 유치와 '총장 아들' 유령회사 계좌세한대학교 이승훈 총장 일가는 인력중개업체와 공모해 유학 비자(D-2) 발급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동티모르 유학생들을 불법으로 입학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가장 큰 문제는 유학생들이 납부한 등록금이 학교 공식 계좌가 아닌, 이승훈 총장의 아들(29)이 대표이사로 있는 ‘ㄷ유학원(동방유학원)’ 계좌로 우회 수납되었다는 점이다.가족 유령회사 활용대학 측은 해당 유학원을 &quot;중국계 외부 협력사&quot;라고 해명했으나, 법인 등기 확인 결과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는 유령회사였으며 이 총장 본인과 전 총장인 아버지까지 이사로 등록된 ‘총장 일가 족벌 회사’임이 밝혀졌다.양식장 강제 노동 연계등록금을 낼 형편이 안 되는 동티모르 학생들의 선납금 2,900만 원을 인력업체가 대납해 준 뒤, 유학생들을 진도 전복양식장에서 불법 취업시켜 대납금을 회수하려던 정황도 포착됐다. 학생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해 대사관에 신고하면서 비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이와 관련해 세한대학교수노동조합과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등 대규모 교수 단체들은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quot;가족회사를 통한 등록금 횡령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고 이승훈 총장을 엄벌하라&quot;며 공청회를 열고 고발 조치를 단행했다.■ 의혹 2: 중장년층 대상 '학위 장사'와 무더기 가짜 학점 부여지방 대학의 신입생 충원난이 심각해지자, 세한대학교는 국내 중장년 만학도들을 대상으로 조직적인 ‘학점 장사’를 벌였다.출석·시험 없는 학점학교 측은 생업으로 바쁜 중장년층에게 장학금 혜택을 미끼로 입학을 유도한 뒤, 수업에 출석하지 않거나 대리 시험을 쳐도 무더기로 학점을 인정해 주었다.특정 학과 학생 수 폭등이 같은 편법 학사 운영 결과, 당진캠퍼스의 모 학과는 기존 35명에 불과하던 학생 수가 단기간에 971명으로 급증하는 기현상을 낳았다.■ 의혹 3: '유령 학생'으로 정원 부풀리고 막가파식 입시 운영교육부 감사 결과, 세한대학교는 대학 기본역량 진단이나 정부 재정 지원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유령 학생을 동원해 충원율을 조작하는 '구조적 비리'를 자행했다.정원 초과 편법 전과: 지원자가 미달한 학과로 우선 입학시킨 뒤 학과 무단 수정을 통해 다른 학과로 183명을 일괄 전과시켜 편입학 모집 정원을 초과 관리했다.허위 학생 학적 유지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수강신청조차 하지 않은 학생 29명에게 기준을 위반해 등록금을 감면해 준 뒤, 학적을 유지하다가 감사 직전 자퇴나 제적 처리를 하는 방식으로 '가짜 학생' 상태를 유지했다.무심의 추가 모집대학입학전형관리위원회의 공식 심의나 합격자 사정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채 55명의 학생을 임의로 추가 선발했다.■ 사학법의 허점… '오뚝이' 총장 행보에 비판 여론 고조이승훈 총장은 과거 2008년에도 교비 횡령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총장직에서 물러났으나, 이후 복권되어 다시 총장직에 복귀한 이력이 있다. 2018년에도 업무상 횡령 등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사립학교법의 법적 공백(여러 죄명이 병합될 경우 횡령죄만의 벌금 액수를 따로 분리 규정하지 않은 허점)을 이용해 총장직을 유지하며 교직원 사회의 강한 공분을 사 왔다.비록 최근 변호사비 교비 지출 및 임금 체불 건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번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 가족회사 편취 의혹 및 대규모 학사 조작 비리는 교육부가 직접 사법당국에 수사를 의뢰한 만큼 향후 법적 책임과 총장 일가의 족벌 경영 체제에 강력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description>
			<pubDate>Thu, 04 Jun 2026 19:41:21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정치는 생활이다 - 지도자에 따라 먹거리가 달라진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84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트럼프 사회적 연결망에서 언급한 코카 콜라 이야기트럼프 대통령이 영국은 진짜 사탕수수 설탕을 쓰는데 미국은 옥수수 당으로 만든 액상과당을 쓰는 것을 지적했다.그리고 영국처럼 진짜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고 코카콜라 회사는 받아들여서 바꾸기로 했다.만약 일반 소비자가 제안을 했다면,기업이 빠르게 바꿀 결심을 했을지 잘 모르겠다.트럼프는 콜라를 남다르게 사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그의 아들이 방송에서 말하기를,다이어트 콜라를 풀에 뿌리면 죽듯이,몸에 들어가면 암세포를 죽이리라 생각해서 아버지는 콜라를 마신다고 했다.출처: The View 트럼프가 다이어트 콜라를 마시는 이유트럼프는 콜라에 대한 사랑이 깊어서인지 영국과 미국 콜라 원료가 다른 것까지 알고 있었다.설탕보다 액상과당은 저렴하다.주로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포도당을 효소로 가공해서 액상과다을 만든다.옥수수로 만들지만,옥수수가 가진 좋은 영양소보다는 높은 당도를 낼 수 있어 쓰이는 가공식품이다.그리고 여러 연구에 따르면,당뇨 심장병 같은 성인병뿐 아니라 지방간도 유발한다고 한다.지나치게 많이 섭취했을 때 그러한 가능성이 높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인간의 몸에 들어갔을 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액상과당은1950년대에 발명되었다.그러나 카리브해 일대에서 싸게 수입되는 사탕수수 설탕보다 비싸서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다.그러다가1980년대 아처 대니어스 미들랜드라는 회사의 회장인 드웨인 안드레아스(Archer Daniels Midland)농업 거물이 흐름을 바꾸어 버린다.친분이 있던 레이건 대통령에게 설탕 수입 할당제 로비를 했고,국내 설탕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레이건은 이 법을 통과시켰다.이에 따라서 설탕값이 치솟았고 액상 과다이 가격 경쟁 우위를 점하면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미국에서 문제는 현재 가공식품에 특히 이러한 액상과당을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싼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해야 하는 이들이 선택하는 많은 음식에 액상과당이 들어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미국의 경우 가난한 이들 중 비만이 많고 다양한 성인병 발병률이 높다.이를 섭취하는 음식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미국에 살던 경험으로 보면 미국은 동네에 따라 슈퍼마켓이 다르다.다른 이름의 슈퍼마켓의 동네 수준에 따라 있고,동네 수준에 맞는 질의 물건이 갖춰져 있다.유기농 음식을 파는 대표적W모 대형 마트는 여유가 있는 동네만 있다.가격이 보통 동네 마트보다 있어도 주말이면 줄이 매장 밖까지 이어질 만큼 인기가 많다.미국에 살 때는 싼 가격으로 무언가를 먹을 때는 제품에 함유된 표시 성분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도 했다.한국은 어느 마트에 가도 적정한 질을 유지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 어떻게 그런 사회가 되었는지까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러했다.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코카콜라 회사가 액상과당 대신 사탕수수 설탕으로 바꾸었다면,다른 몸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성분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지 생각해 보았다.한국도 식품 관련 논란이 있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대표적인 것이 유전자 변형 식품 관련 문제인데,한 국회의원이 제품에 표기하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유전자 변형 식품이 몸에 해로운지 아닌지 아직 논란은 있다.그러나 불안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국민을 위한다면 표기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표기한다면 국민은 선택권이 생긴다.먹어도 될지 안 될지는 본인이 정하는 것이다.정부는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표기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게 맞지 않는지 생각해 본다.미국 당도 높은 음식 역https://www.npr.org/2022/12/29/1145952357/throughline-how-one-company-contributed-greatly-to-americas-sweet-tooth]]></description>
			<pubDate>Thu, 04 Jun 2026 19:35:3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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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치는 생활이다 - 지도자에 따라 먹거리가 달라진다.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youtube.com/watch?v=Exusq0LWVAg</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84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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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가짜 샘플 주입부터 '대통령 통화' 비선 메신저까지… 명태균 게이트의 실체와 수법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7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대한민국 정계를 흔든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 혐의들이 1심에서 정치자금법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데이터 조작 수법과 유력 정치인들과의 비선 녹취록은 여전히 한국 정치사상 전례 없는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미공표 여론조사의 정교한 왜곡 수법과 윤석열 대통령, 이준석 당시 당대표 등 정권 핵심 인사들과 명 씨가 나눈 구체적인 대화 실체를 취재했다.■ 응답자 0명인데 보고서 뚝딱… 여론조사 '잔혹사' 조작 수법명태균 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미래한국연구소의 여론조사 조작 방식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과감하고 정교했다.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핵심 수법은 크게 네 가지다.첫째는 ‘유령 응답자(가짜 샘플) 무단 주입’이다. 2021년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당시 여론조사에 아예 응답하지도 않은 가짜 데이터를 대량 전산 입력해 오차범위 밖 2위였던 특정 후보의 지지율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대선 경선 당시에도 윤석열 후보가 홍준표 후보를 앞서는 것처럼 꾸민 가짜 보고서가 최소 8건 이상 무더기로 작성됐다.둘째는 실제 조사를 단 한 건도 돌리지 않고 수치를 인위적으로 적어낸 ‘100% 가상 받아쓰기’다. 명 씨는 회계책임자에게 전화로 소수점 아래 자리까지 지지율 수치를 직접 불러주며 유령 문서를 생성하게 했다. 이 외에도 60대 이상 보수 표본의 나이를 10~20대로 조작하는 ‘연령 변조’ 수법, 경선 투표일에 상대 후보 지지 당원들에게 가짜 조사를 돌려 진짜 정당 투표 전화를 못 받게 방해하는 ‘방전 수법’까지 동원된 것으로 밝혀졌다.■ &quot;김영선 좀 해라&quot;… 윤석열 대통령 통화 녹취 파문이처럼 조작된 여론조사 능력을 배경으로 삼은 명 씨는 정권 최고 권력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비선 메신저로 암약했다. 대중에게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2022년 5월 9일, 취임식 전날 당선인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과의 직접 통화 녹음이다.윤석열 대통령: &quot;공천에 대해서 김영선이 경선 때 열심히 뛰었으니까 저는 '김영선이 좀 해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진짜 당에서...&quot;명태균 씨: &quot;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quot;여기에 추가로 확보된 전체 녹취록에는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이던 윤상현 의원의 이름도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윤 대통령이 명 씨에게 *&quot;내가 윤상현이한테도 (한 번 더 말을) 하고...&quot;*라고 언급하는 대목이 포함되어 있어, 대통령이 공천 과정에 직접 청탁성 의견을 전달한 정황이 생생하게 폭로됐다.■ 이준석 '수사 구명 카톡'과 드러난 비선 메신저의 위력명 씨의 이른바 '황금폰'과 컴퓨터 포렌식을 통해 복원된 이준석 의원(당시 국민의힘 당대표)과의 카카오톡 대화 352개는 정치권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이 의원은 당시 자신의 성접대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좁혀오고 당내 징계 위기에 처하자, 윤 대통령 부부와 비밀 핫라인을 가졌던 명 씨를 창구 삼아 &quot;김건희 여사 측을 통해 수사 압박을 무마해달라&quot;는 취지의 전방위 구명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또한 공천 심사 기간에도 이 의원은 명 씨와 전략공천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했으며, 명 씨는 지인과의 통화에서 *&quot;내가 준석이한테 사정사정해서 김영선 전략 공천을 받았다&quot;*고 장담하기도 했다. 외견상으로는 친윤계와 치열하게 대립하던 당대표가 뒤로는 철저히 비선 브로커에게 의지해 생명 연장을 꾀했던 셈이다.1심 재판부는 이 모든 정황에 대해 '정당한 노동의 대가' 또는 '공천관리위원회의 정상적 결과'라며 법적 면죄부를 주었으나, 국민의 눈높이와 민주주의 시스템을 뒤흔든 '여론 조작 및 비선 개입'의 도덕적 불법성까지 지워지지는 않는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22:04:39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팬덤 뒤에 숨은 추악한 민낯… 대형 크리에이터들의 강력 범죄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7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글로벌 숏폼 플랫폼 ‘틱톡(TikTok)’을 무대로 활동하는 유명 크리에이터들의 잔혹한 강력 범죄가 잇따르고, 플랫폼 내 심사 허점을 악용한 대규모 금융 사기 광고가 기승을 부리면서 사용자들의 불안과 공분이 커지고 있다.그동안 틱톡은 트렌디한 영상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으나, 최근 가려져 있던 플랫폼의 어두운 이면과 범죄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는 모양새다.■ 팬덤 뒤에 숨은 추악한 민낯… 대형 크리에이터들의 강력 범죄가장 큰 충격을 안긴 것은 수천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이른바 '메가 틱톡커'들의 잇따른 강력 범죄다.한국인 최초로 5,0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며 지상파 예능까지 진출했던 유명 틱톡커 '원정맨(본명 신창재)'은 지인과 함께 술에 취해 잠든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특수준강간)로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범행 당시 출동한 경찰에 문을 열어주지 않아 소방당국이 문을 강제로 개방하는 소동까지 벌어졌으며, 법원에서 혐의가 인정되어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플랫폼 내 갈등이 살인으로 이어진 잔혹한 사건도 발생했다. 20대 여성 틱톡커에게 투자하며 동업자로 접근한 50대 남성 A씨는 채널 운영 방식과 수익 배분을 두고 피해자와 갈등을 빚어왔다. A씨는 영상 촬영을 하던 중 말다툼 끝에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하고 야산에 시신을 암매장했다가 구속됐다. 틱톡이 가져다주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과 인플루언서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은 대표적 사례다.■ 허술한 광고 심사 틈탄 '국제 투자 사기·부업 사기' 기승틱톡 플랫폼 내부의 허술한 광고 시스템을 악용한 범죄 조직의 타깃형 사기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최근 경찰은 틱톡과 유튜브 등에 '고수익 보장', '해외 주식·코인 투자 추천' 등의 허위 광고를 무차별적으로 노출해 160억 원대 자금을 가로챈 국제 사기 조직을 일망타징했다. 이들은 정교하게 제작된 가짜 투자 앱으로 피해자들을 안심시킨 뒤 투자금을 편취하는 수법을 썼다.또한 &quot;영상을 시청하기만 해도 돈을 준다&quot;며 주부나 청소년을 유인하는 '틱톡 재택 부업 사기'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처음에는 소액의 리워드를 지급해 신뢰를 쌓은 뒤, &quot;시스템 오류로 출금이 막혔으니 보증금을 입금하라&quot;고 속여 수천만 원을 뜯어내는 수법이다. 방통위 등 관계 당국이 주의보를 발령했으나, 플랫폼 내 광고 심사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들의 몫이 되고 있다.■ 법적 의무 회피와 모회사 비리… 플랫폼 신뢰도 도마 위틱톡코리아 법인 역시 국내법 위반과 불투명한 운영으로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틱톡은 과거 만 14세 미만 아동의 개인정보를 법정대리인 동의 없이 무단 수집해 국외로 이전한 사실이 적발되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1억 8,000만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이후 틱톡코리아는 외부 감사와 매출 공시 의무를 피할 수 있는 '유한책임회사'로 법인 형태를 기습 전환하며,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광고 수익을 올리면서도 실적을 은폐하려 한다는 '꼼수 전환'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에 모회사인 바이트댄스가 본사 내부 감사를 통해 뇌물 수수 및 자산 횡령 혐의로 임직원 수십 명을 대거 해고하는 등 글로벌 차원의 도덕성 결여 문제도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전문가들은 &quot;숏폼 플랫폼이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거대해진 만큼, 크리에이터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과 사기성 광고를 걸러낼 수 있는 강력한 필터링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quot;고 입을 모으고 있다.]]></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21:56: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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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일반인을 위한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6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국가유산진흥원1. 체험명 : [전시연계]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 「공들임(工-DREAM)」전시 연계 프로그램2. 체험기간 : 2026. 6. 12.(금) ~ 6. 27.(토) / 기간 중 10회3. 체험시간 : 10시~12시 / 14시~16시 * 회차별 시간 상이4. 체험장소 :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 3층 교육실, 기능공방 등5. 체험비 : 무료6. 예매기간 ○ 1~6회차 : 2026. 6. 4.(목) 14:00 ~ 6. 10.(수) 14:00 ○ 7~10회차 : 2026. 6. 18.(목) 14:00 ~ 6. 24.(수) 14:007. 예매 : 네이버 예약 ○ https://booking.naver.com/booking/6/bizes/14735138. 주최/주관 : 국가유산청·국가유산진흥원9. 체험문의 : 국가유산진흥원 무형유산팀(02-3011-2155)&amp;amp;lt;체험 내용&amp;amp;gt;○ 전시 연계 프로그램(전시관람 + 공예체험)○ 행사순서 : 전수교육관 소개 → 전시장 관람(결, 올) → 전통 공예체험○ 주요일정회차일자시간대상모집인원1회차6. 12.(금)10시 ~ 12시성인10명2회차6. 13.(토)10시 ~ 12시청소년 ~ 성인10명3회차6. 19.(금)10시 ~ 12시성인10명4회차14시 ~ 16시성인10명5회차6. 20.(토)10시 ~ 12시청소년 ~ 성인10명6회차14시 ~ 16시청소년 ~ 성인10명7회차6. 26.(금)10시 ~ 12시성인10명8회차14시 ~ 16시성인10명9회차6. 27.(토)10시 ~ 12시청소년 ~ 성인10명10회차14시 ~ 16시성인10명○ 공예 체험 프로그램 - 1회차 : 조각별자리 액자 만들기 - 2회차 : 악기 미니 장구 만들기 - 3회차 : 각자 나만의 낙관 만들기 - 4회차 : 색동저고리 키링 만들기 - 5회차 : 궁시 대나무 활 만들기 - 6회차 : 갓일 정꽃 장식걸이 만들기 - 7회차 : 자수 다용도 손가방 만들기 - 8회차 : 소반 미니 해주반 만들기 - 9회차 : 화각 썬캐쳐 만들기 - 10회차 매듭 호패 키링 만들기○ 예약하기 - 국가유산진흥원 www.kh.or.kr 검색 → 누리집 상단에 교육/체험 선택 →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공들임(工-DREAM)」전시연계 프로그램 선택 → 네이버 예약 링크 연결 → 일자 선택/예약 확인10. 유의사항 ○ ID당 최대 2인까지만 신청 가능합니다. (※ 단, 예약자와 신청자가 다를 경우, 성함을 꼭 함께 기재해주세요.) ○ 다양한 참여자의 기회 제공을 위해 회차별 프로그램 중복 참여는 지양해 주시기 바랍니다. ○ 예약자의 참가 취소는 행사일 최소 2일 전까지 고지해주셔야 하며, 불참하는 경우 향후 모든 프로그램 참여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행사시간 동안 기록 목적으로 사진 촬영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 원활한 진행을 위해 반드시 시작 15분 전까지 도착해주시기 바랍니다. ○ 주차공간이 협소하오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 문의 : 국가유산진흥원 무형유산팀(02-3011-2155)11. 오시는길 ○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406(삼성동 112-2) ○ 교통편  - (지하철) 수인분당선, 9호선 선정릉역 3번출구  - (버스) &amp;amp;lt;선정릉역.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 정류장(23215)&amp;amp;gt; 간선 472, 지선 3414, 3426, 4312, 마을 강남07  - (버스) &amp;amp;lt;선정릉역. 라마다서울호텔 정류장(23328)&amp;amp;gt; 공항 6703  - (버스) &amp;amp;lt;삼성2문화센터 정류장(23213)&amp;amp;gt; 간선 342, 지선 3412, 마을 강남07]]></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19:12:13 +0900</pubDate>
                        <image> 
              <title>일반인을 위한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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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세계 유산 조선 왕릉 숲길 9곳 개방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6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KTV 국민방송구리 동구릉, 남양주 광릉, 서울 의릉 등 조선왕릉 숲길 9개소 개방(5.16.~6.30.)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신록이 짙어지는 봄날을 맞아, 5월 16일부터 6월 30일까지 역사와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세계유산 조선왕릉 숲길 9개소를 개방해 국민들이 휴식과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이번에 개방하는 조선왕릉 숲길은 ▲ 구리 동구릉 ‘휘릉~원릉 및 경릉~자연학습장 숲길’, ▲ 남양주 광릉 ‘복자기나무 숲길’, ▲ 남양주 사릉 ‘능침 뒤 소나무길’, ▲ 서울 태릉과 강릉 ‘태릉~강릉(어린이 마당)’, ▲ 서울 의릉 ‘천장산~역사경관림 복원지’, ▲ 파주 장릉 ‘능침 북쪽 숲길’, ▲ 화성 융릉과 건릉 ‘융릉~건릉 숲길’, ▲ 파주 삼릉 ‘영릉~순릉 작은 연못 및 공릉 능침 북측 숲길’, ▲ 여주 영릉과 영릉 ‘영릉 외곽 숲길’까지 총 9개소로 전체 길이는 19.59km다.숲길 개방 시간은 해당 조선왕릉의 관람 시간과 같으며, 방문객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각 조선왕릉 관리소에 문의하거나 국가유산청 누리집(www.khs.go.kr)과 궁능유적본부 누리집(royal.khs.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방 시간: (5월) 오전 9시~오후 6시, (6월) 오전 9시~오후 6시 30분 / 월요일 휴관 / 기상상태 등 여건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음.좀 더 자세한 사항은 아래 국가유산청 누리집에서 확인하십시오]]></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19:12:14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한민족 음악 - 독립운동가 석정 윤세주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광야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61</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19:12:1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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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한민족 노래 - 독립군 노래가 된 밀양 아리랑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5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19:12:1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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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민족 노래 - 독립군 노래가 된 밀양 아리랑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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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5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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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북한 개풍군 선전마을과 직선거리로 불과 1.4km 떨어진 '북한 뷰' 매장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5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약산소식지] 남북 분단의 최전선이자 평화의 상징인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에 입점한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가 지역 사회의 거센 퇴거 압박에 직면했다. 최근 스타벅스 코리아가 진행한 마케팅 활동이 사회적 논란을 빚은 가운데, 지역 시민단체들이 매장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을 비롯한 8개 김포 지역 시민단체는 지난 2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quot;최근 반평화적이고 군사주의적인 논란을 일으킨 스타벅스는 북한 접경지인 애기봉에서 즉각 퇴거해야 한다&quot;고 강력히 주장했다.이들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quot;애기봉은 남북 대치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상징적인 공공 공간&quot;이라며, &quot;이러한 역사적·지리적 특성을 가진 곳에 논란을 자초한 외세 자본 브랜드가 독점 입점해 영업을 이어가는 것은 부적절하다&quot;고 비판했다.스타벅스 김포애기봉생태공원점은 북한 개풍군 선전마을과 직선거리로 불과 1.4km 떨어진 조강전망대에 위치해 있다. 개점 당시에는 '커피를 마시며 북한을 조망하는 세계 유일의 안보 매장'으로 전 세계 외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개장 7개월 만에 12만 명이 방문하는 등 흥행을 이어왔다.그러나 이번 시민단체의 반발과 더불어 지역 사회 내에서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대한 공공시설 입점 특혜 논란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김포시의회 일부 의원들과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quot;공공 자산인 애기봉 공원 내 상업 시설 수익이 지역 소상공인이나 김포 시민에게 환원되지 않고 대기업의 배만 불리고 있다&quot;는 지적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단체 관계자들은 김포시청에 스타벅스와의 임대 계약 해지 및 지역 상생 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항의 방문 서한을 전달했다.이에 대해 김포시 관계자는 &quot;해당 매장은 국경 지역 안보 관광 활성화를 위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유치한 것&quot;이라면서도, &quot;최근 불거진 여론과 시민단체의 요구 사항을 면밀히 살펴보고 대응 방향을 검토하겠다&quot;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글로벌 브랜드 유치를 통한 관광 흥행이라는 성과 뒤편에서, 접경지 매장이 지녀야 할 평화적 가치와 지역 상생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김포시의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18:13:35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정벌 이후의 대마도 관리: 경상도 예속과 고도의 '밀당 외교'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5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1419년(세종 1년) 기해년 여름, 거제도 앞바다를 가득 메운 227척의 함대가 동쪽을 향해 돛을 올렸다. 우리 역사상 가장 체계적이고 대규모로 단행되었던 해외 원정, 이른바 ‘기해동정(己亥東征)’ 대마도 정벌의 시작이었다.조선 초기의 안보 지형을 뒤흔들고 향후 200년간 남해안의 평화를 가져온 이 위대한 군사 작전은 강경한 국방 의지와 고도의 외교 전략이 결합한 조선 안보 정책의 결정판이었다. 왜구의 소굴을 초토화하고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했던 3차 대마도 정벌의 전말을 심층 취재했다.1. 발발 배경: 선제타격 결단한 태종 이방원, &quot;공격이 최선의 방어다&quot;고려 말부터 이어진 왜구의 노략질은 조선 건국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특히 1419년 5월, 대마도의 극심한 기근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왜구들이 배 39척을 이끌고 충청도 비인현(지금의 서천)과 황해도 해주까지 밀고 들어와 민가를 불태우고 아군 지휘관을 전사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당시 왕위는 세종에게 물려주었으나 군사권(병권)을 쥐고 있던 상왕(上王) 태종 이방원은 이 사태를 묵과하지 않았다. 태종은 왜구가 명나라 연안을 약탈하고 돌아오는 길에 조선을 재차 공격할 것을 간파하고 조정 회의에서 폭탄선언을 던진다.&quot;수군을 보내 바다 위에서 방어하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왜구의 소혈(巢穴·소굴)을 직접 쳐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quot;이 결단은 단순한 보복을 넘어 갓 즉위한 세종의 왕권을 안정시키고, 변방의 안보 불안 요소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강력한 선제타격 의지였다.2. 단 2주 만의 초고속 동원… 1만 7천 대군 대마도 상륙태종의 군령이 하달되자 조선 조정은 놀라운 속도로 움직였다. 단 2주 만에 하삼도(경상·전라·충청도)에서 병선 227척, 군사 17,285명의 대규모 원정군이 조직되었다. 총지휘관인 삼군도체찰사에는 이종무 장군이 임명되었다.6월 14일 거제도를 출항한 조선 함대는 6월 20일 정오, 대마도의 중심부인 아소만(당시 천포)에 도달했다. 바다를 덮어버린 조선 군선의 위용에 압도당한 왜인들은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산골짜기로 도망치기 바빴다. 이종무 장군은 즉각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전개했다.적의 기반 박살: 포구에 묶여 있던 왜선 129척을 포획하여 이 중 109척을 불태웠다.소굴 초토화: 왜구의 거점 가옥 1,939호를 불태워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인도주의적 성과: 왜구에게 붙잡혀 있던 중국인(명나라 백성) 포로 131명을 구출하며 국제적인 명분까지 확보했다.작전 중반인 6월 26일, 험준한 산악 지형인 누카다케(糠岳) 전투에서 왜구의 기습을 받아 아군 편장이 전사하는 등 잠시 고전하기도 했으나, 우군절제사 황상 등의 거센 반격으로 적을 제압했다. 결국 대마도주 소 사다모리(宗貞盛)는 조선군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무릎을 꿇고 군대를 거두어 달라고 애원했다. 목적을 달성한 조선군은 태풍의 위험을 고려해 7월 3일 거제도로 무사히 회군했다.3. 정벌 이후의 대마도 관리: 경상도 예속과 고도의 '밀당 외교'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이 위대한 이유는 무력 진압 이후에 펼쳐진 세종대왕의 천재적인 외교 통제 정책에 있다. 조선은 대마도를 무력으로 강점하는 대신, 경제적 생줄기를 쥐고 흔드는 유화책을 썼다.척박한 대마도는 조선과의 교역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했다. 이를 간파한 세종은 대마도주를 조선의 신하로 임명하고 안보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였다. 1420년, 대마도주는 스스로 &quot;대마도를 경상도의 한 고을로 편입해 달라&quot;고 청원하기에 이른다.조선은 이들을 달래기 위해 경상도의 제포(웅천), 부산포(동래), 염포(울산) 등 3포를 개항하여 합법적인 무역을 허용했다. 그러나 결코 통제권을 잃지 않았다. 1443년 계해약조를 통해 대마도주가 보낼 수 있는 무역선을 연간 50척, 하사하는 곡물을 200석으로 엄격히 제한하며 경제적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4. 역사적 평가: 조선 수군의 전투력 증명과 안보의 유산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은 남해안을 피로 물들였던 왜구의 대규모 침탈을 완전히 근절시켰다. 이 정벌 이후 임진왜란 전까지 약 200년간 조선의 바다에는 전례 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대규모 함대의 장거리 기동력과 화포를 활용한 해상 타격력 등 조선 수군의 막강한 국방력을 천하에 과시한 사건이기도 했다.역사 전문가들은 &quot;대마도 정벌은 안보와 경제를 결합하여 주변국을 통제한 조선 초기 외교의 위대한 승리&quot;라며, &quot;강력한 자주국방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평화적인 외교와 국익 수호가 가능하다는 냉엄한 교훈을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전하고 있다&quot;고 강조했다.]]></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18:02:24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특집] 6·25 전쟁, 민족 비극 넘어선 ‘냉전 첫 대규모 대리전’… 세계사적 국제전의 전말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5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8선 전역에서 울린 포성은 단순한 한반도 내부의 무력 충돌을 넘어 지구촌 전체를 뒤흔든 '세계사적 국제전'의 신호탄이었다.역사학계와 1990년대 이후 기밀 해제된 소련·중국 측 극비 문서는 이 전쟁이 한반도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치러졌으나, 실질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립된 미·소 양대 진영의 패권이 전면 충돌한 ‘냉전 최초의 대규모 대리전(Proxy War)’이었다고 명확히 규정한다.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얽히며 미니 세계대전으로 비화했던 3년간의 국제 정치 역학 관계를 심층 분석한다.1. 치밀한 사전 모의와 승인… 미·소 냉전이 낳은 ‘대리전’의 서막6·25 전쟁의 발발 원인은 북한 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에서 비롯된 '불법 기습 남침'이 본질이다. 그러나 국제 정치학적으로는 철저히 공산 진영의 거두였던 구소련과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의 역학 관계 속에서 기획된 전쟁이었다.김일성은 1949년부터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을 찾아가 끊임없이 전쟁 승인을 요청했다. 당초 미군과의 정면 충돌을 우려해 거절하던 스탈린은 1950년 1월 미국의 아시아 방위선(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가 제외되자 태도를 바꿨다. 스탈린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소련군의 직접 참전 금지'를 조건으로 걸고, 최신형 T-34 탱크, 야포, 전투기 등 전폭적인 군사 장비를 지원했다. 이어 마오쩌둥 역시 북한의 남침을 승인하고 전세가 불리해질 경우 군사력을 지원하겠다는 막후 합의를 마쳤다. 한반도는 전쟁 시작 전부터 이미 공산 진영의 세계 전략을 수행하는 거대한 무대로 전락해 있었다.2. 유엔군 참전과 중공군 개입… 전 세계 격전지가 된 한반도전쟁 발발 직후 미국의 발 빠른 대응은 이 전쟁이 가진 국제전적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 해리 트루먼 행정부는 한반도의 공산화가 아시아 전역, 나아가 유럽의 도미노 공산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미국의 주도로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유엔군 파병을 결의했다. 이는 세계 역사상 최초의 유엔 성명에 따른 집단 안전보장 조치였다. 미국의 전투 병력 파병을 필두로 영국, 캐나다, 호주, 터키 등 전 세계 16개국이 전투 병력을 보냈으며, 인도, 스웨덴 등 5개국이 의료지원단을, 물자 지원까지 포함하면 총 60여 개국이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일어섰다.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던 정세는 인천상륙작전으로 반전되었고,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하며 통일을 눈앞에 두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산 진영의 대대적인 개입이 시작됐다. 1950년 10월, 마오쩌둥은 미군이 중국 국경을 위협한다는 명분(항미원조)을 내세워 수십만 명의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을 전격 투입했다. 소련 역시 전면에 나서는 대신 고성능 미그(MiG-15) 전투기와 조종사들을 중공군 조종사로 위장시켜 공중전에 투입했다. 이로써 한반도는 아시아, 미주, 유럽 등 글로벌 전력이 맞붙는 ‘미니 세계대전’의 화약고가 되었다.3. 우리 민족의 의사가 배제된 정전협정… 주권을 빼앗긴 비극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전쟁의 마무리를 결정한 것 역시 한반도의 주인이 아닌 강대국들의 철저한 자국 이익 계산이었다. 스탈린의 사망과 미국의 정권 교체(아이젠하워 행정부 출범) 등 국제 정치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정전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 판문점 조인서에는 한국의 이름이 없다. 이승만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은 '북진 통일'을 주장하며 정전협정에 반대했고, 결국 서명은 마크 클라크(유엔군 사령관), 정성(중공군 사령관), 김일성(북한군 최고사령관) 세 명에 의해 이뤄졌다. 자국의 영토를 가르는 분단선 확정과 전쟁 중단 논의에서 당사자인 대한민국이 철저히 소외된 것은 강대국 대리전이 남긴 가장 뼈아픈 비극적 단면이다.4. 현대사에 남긴 유산: 강대국 역학 관계와 안보 교훈6·25 전쟁은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 냉전 질서를 고착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이 전쟁을 계기로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고 전 세계적인 공산주의 봉쇄 정책(NATO 강화 등)을 실행했다. 동아시아에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미일안보조약 개정 등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안보 프레임이 형성되었다.역사 전문가들은 &quot;6·25 전쟁을 단순히 강대국 간의 대리전으로만 규정하면 전쟁을 도발한 북한의 범죄 책임이 희석될 우려가 있다&quot;고 경고하면서도, &quot;다만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국제전적 성격은 우리에게 냉혹한 교훈을 준다&quot;고 짚는다. 한반도가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 터가 되지 않으려면, 동맹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자주국방력과 주변국 정세를 주도적으로 조율하는 전략적 외교 능력이 필수적임을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웅변하고 있다.]]></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17:40:3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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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독립운동가를 찾아서 - 밀양 윤세주 생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4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앞에 있는 의열기념관은 약산 김원봉 독립운동가 생가이고, 뒤 조선의용대 글자가 있는 담벼락이 석정 윤세주 생가이다.1942년6월3일은 독립운동가 석정 윤세주 의사가 돌아가신 날이다.조국의 광복을 위해18살 삼일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의열단원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중국과 함께 항일 전투를 벌이다 사망하셨다.태항산 전투라 불리는 항일운동사에서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이다.일본 앞잡이의 밀고로 조선독립군의 숙영지가 밝혀지고 일본군은 기습했다.이 과정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서 아까운 독립운동가가 전사했다.손일봉 지사,최철호 지사, .박철동 지사,이정순 지사가 호가장 전투에서 전사했다.윤세주 지사는 십자령 전투에서 일본군의 포위를 뚫고 퇴로를 확보하다 총상을 입고 자결하여 순국했다.그리고 유명한 독립운동가 김학철 선생님은 다리 하나를 잃었다.한국의 많은 독립운동가가 남의 나라 중국 땅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했기에 중국과 많은 부분에서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김원봉’은 중국 충칭(중경)임시정부 광복군에 남고 친구‘윤세주’는 항일운동을 위해 뭐라고 하겠다는 결심으로 의용대를 조직하여 중국 공산당 팔로군에 결합하기 위해 옌안(연안)으로 갔다.그리고 이 이별이 마지막이 되었다.석정 윤세주가 한 독립운동 활동을 보면 우리가 왜 이런 분을 몰랐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약산 김원봉 선생님도 백범 김구보다 더 현상금이 높은 독립운동가였지만,해방된 조국에서 버림을 받은 인물이다.최근 영화 덕분에 약산 김원봉 선생님도 알려지고 더불어서 석정 윤세주도 알려졌다.두 사람은 어릴 때 이웃해서 살았고,두 살의 나이 차이를 넘은 평생의 친구였다.민족주의자 전홍표가 세운 동화중학교에도 함께 다녔고,의열단을 결성할 때도 함께 했다.밀양에 김원봉 생가 자리에 의열기념관을 만들었을 때,바로 옆 석정 윤세주의 집은 방치되어 있었다.그러나 몇 년 후 집을 정비하고 석정 윤세주를 기리는 비가 집 앞에 세워졌다.생가는 일반인이 출입을 허용하는 것 같지 않지만,정비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많은 독립운동가가 그러하듯이 석정 윤세주도 재주가 많았다.그가 작사한 노래는 의열단을 비롯한 독립운동가의 노래가 되었다. ‘최후의 결전’이라는 노래 가사를 새긴 비가 윤세주 생가 앞에 있다.생가 앞 윤세주가 작사한 최후의 결전 노래 가사비윤세주와 친한 이로 시인 이육사가 있다.이육사는 본명이 이원록이다.의열단원이기도 했고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39년이라는 짧은 평생에17번이나 감옥살이를 했고,대구 감옥에서 부여된 죄수 번호가264였다.그는 이 숫자 소리를 이용해서 다양한 한자를 활용해서 자신의 이름을 만들었다.윤세주에게 깊은 영향을 받은 이육사는 윤세주를 기리는 시를 남겼다. ‘교목’이라는 시에서 말미의 부기'SS에게'에서 에스에스(SS)는 이육사와 함께 독립운동한 석정 윤세주(1901~1942)를 가리킨다고 한다.이육사의 시로 윤세주가 어떤 사람일지 생각하며 마무리하려 한다.마른 하늘에 닿을 듯이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낡은 거미집 휘두르고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리검은 그림자 쓸쓸하면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quot;- SS에게조선의용대최후의 결전 노래석정 윤세주 뮤지컬육사의 절친 석정 윤세주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54686윤세주조선의용대 화북 전투]]></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17:17:27 +0900</pubDate>
                        <image> 
              <title>독립운동가를 찾아서 - 밀양 윤세주 생가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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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1942년 6월 3일, &amp; quot;조선 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끝까지 싸워라&amp; quot;라는 유언을 남기고 41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4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독립운동사 기획] 올해로 순국 84주년을 맞이한 석정(石正) 윤세주 열사(1900~1942)는 일제강점기 무장 독립투쟁의 핵심이자, 불굴의 혁명 이론가였습니다 .영화 '암살'의 흥행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약산 김원봉의 고향 후배이자 평생의 동지였던 그는, 조국 해방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영남 출신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입니다. 소년 시절의 반골 기질부터 중국 타이항산(태항산) 최전선에서 맞이한 최후까지, 그의 뜨거웠던 삶을 심층 조명합니다.1. &quot;일장기를 변소에 처박다&quot;… 소년 윤세주의 남다른 반골 기질1900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난 윤세주는 이웃에 살던 김원봉과 어린 시절부터 형제처럼 자랐습니다 . 두 소년은 밀양 강변을 거닐며 조국의 현실을 한탄하고 독립을 결의하곤 했습니다.그의 항일 의식은 밀양공립보통학교 재학 시절부터 폭발했습니다. 한일병합에 분노한 윤세주는 일본어 수업을 전면 거부했습니다. 특히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날, 학교에서 나누어 준 일장기를 변소에 처박아 버리는 대담함을 보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일제 교장에게 참혹한 고문을 당한 소년 윤세주는 끝내 학교를 자퇴하며 타협 없는 투쟁의 길을 택했습니다.2. 영남을 깨운 함성, '밀양 3·13 만세운동'의 주역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을 직접 목격한 윤세주는 대규모 만세 시위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는 독립선언서를 외투 안감 속에 숨겨 삼엄한 경계를 뚫고 고향 밀양으로 내려왔습니다.동지들을 은밀히 모아 거사를 준비한 그는 3월 13일, 수많은 군중이 모인 밀양 장날을 디데이로 잡았습니다. 윤세주는 천여 명의 군중 앞으로 뛰어올라 격정적인 어조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그의 사자후에 감화된 군중들이 일제히 만세를 외치며 밀양 전역이 뒤흔들렸고, 이는 영남 지역 전체로 만세 운동이 확산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선풍을 피해 만주 길림으로 망명길에 오르게 됩니다.3. 의열단 창단과 7년의 지옥 같은 옥고만주에 도착한 윤세주는 1919년 11월, 김원봉을 비롯한 신흥무관학교 출신 청년들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 단체인 의열단(義烈團)을 창단했습니다 . &quot;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한다&quot;는 기치 아래, 그는 의열단의 브레인이자 핵심 행동대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1920년,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 등 식민 통치 중추 기관을 동시다발적으로 폭파하기 위해 폭탄을 국내로 반입하는 '제1차 중대 거사'를 도모했습니다 . 그러나 안타깝게도 밀고자에 의해 거사 직전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일제의 모진 고문 속에서도 동지들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낸 그는 대구형무소에서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지옥 같은 옥고를 치렀습니다 .4. 무장 투쟁의 지도자, 조선의용대를 출범시키다1927년 출옥 후 일제의 감시가 이어지자, 윤세주는 다시 중국 난징으로 탈출했습니다 . 감옥에서의 고초는 그를 더 단단한 혁명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김원봉이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의 교관을 맡아 후학 청년들에게 군사학과 혁명 이론을 가르쳤습니다 .1930년대 중반에는 분열되어 있던 독립운동 세력을 하나로 묶기 위해 '조선민족혁명당' 창설을 주도하며 탁월한 정당 정치인의 면모도 보여주었습니다 . 이어 1938년 10월, 한중 연합 군사 조직인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자 정치조 부조장 겸 국어(중국어) 편집발행인으로 활동하며 부대의 정신적 지주이자 대변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5. 타이항산(태항산)의 별이 되다… 최전선에서의 고결한 최후1940년대 들자 윤세주는 일본군과의 더 치열한 무장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선의용대 주력 부대를 이끌고 화북 지방의 험준한 타이항산(태항산) 지역으로 진출했습니다 . 그곳에서 아군과 중국 팔로군과의 연합 작전을 펼치며 적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1942년 5월, 일제는 전면적인 소탕전을 개시하며 수십만 명의 대군으로 타이항산을 겹겹이 포위해 들어왔습니다. 후퇴하는 아군과 중국 팔로군 지도부의 탈출로를 확보하기 위해 윤세주는 결사대를 조직해 직접 총을 들고 최전선에서 맞서 싸웠습니다.전투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적의 총탄이 그의 복부를 관통했습니다. 중상을 입고도 대원들을 독려하던 그는, 사흘간의 눈물겨운 사투 끝에 1942년 6월 3일, &quot;조선 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끝까지 싸워라&quot;라는 유언을 남기고 41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위대한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현재 고향 밀양에는 그의 뜻을 이어받은 의열기념관이 건립되어 후대에 그 정신을 전하고 있습니다 . 조국의 해방을 단 3년 앞두고 이국의 거친 산야에서 스러져간 윤세주 열사. 그의 이름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가장 뜨거운 불꽃으로 기억될 것입니다.]]></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17:07:5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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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경찰과 시민이 함께 만든 안전한 학교 앞, 인천신흥초 합동 순찰 활동성료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3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지난 6월 2일 오전 인천신흥초등학교 일원에서 중부경찰서 주관으로 어린이 교통안전 및 범죄예방을 위한 민·관 합동 캠페인이 실시됐다.​이날 행사에는 중부경찰서장 이하 경찰관들을 비롯해 시민경찰, 안전지킴이, 자율방범대원 등 지역사회 안전을 위해 활동하는 다양한 단체가 참여해 어린이들의 안전한 등굣길 조성과 범죄예방 활동에 힘을 모았다.참가자들은 학교 정문과 주변 통학로에서 어린이 교통안전 수칙을 볼펜과 부채를 나눠주며 홍보하고, 횡단보도 안전하게 건너기,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자제, 교통신호 준수 등 생활 속 안전수칙을 안내했다.​또한 학교 주변 우범지역CCTV미설치지역파악과 통학로를 중심으로 위험시설물 점검등 합동 순찰을 실시하며 범죄예방 환경을 점검하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안전한 학교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했다특히 이번 캠페인은 경찰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사회 협력 치안활동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았다.​참여자들은 어린이들의 밝은 웃음과 학부모들의 격려 속에서 안전문화 확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중부경찰서 관계자는 &quot;어린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지속적으로 협력해 예방 중심의 치안활동을 펼쳐 나가겠다&quot;고 밝혔다.​한편 시민경찰연합회, 안전지킴이, 자율방범대는 평소에도 지역 순찰과 범죄예방 활동, 교통안전 캠페인 등을 통해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경찰과 협력하여 안전하고 행복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탤 예정이다.​​장대식기자#인천신흥초등학교 #중부경찰서 #시민경찰 #자율방범대 #안전지킴이 #어린이교통안전 #교통안전캠페인 #범죄예방 #합동순찰 #지역사회안전 #학교안전 #통학로안전 #안전문화 #민관협력 #인천중부경찰서 #시민안전 #어린이보호구역 #등굣길안전 #생활안전]]></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16:59:27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부산저축은행 사태와 문재인 의혹… 20년 공방의 실체와 팩트체크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2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수많은 서민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부산저축은행 금융 비리 사태'는 한국 금융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이름은 2012년 대선 정국부터 현재까지 정치권의 단골 공방 소재로 등장해 왔습니다.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했던 문 전 대통령과 부산저축은행 사이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요?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간 제기된 핵심 의혹과 당사자들의 입장, 검찰의 최종 결론을 일목요연하게 짚어봤습니다.1. ‘조사 무마’ 압력인가, ‘부작용 우려’ 협조인가의혹의 시작은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금융감독원(금감원)이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강도 높은 특별조사에 착수하자, 위기감을 느낀 은행 경영진이 청와대 인맥을 동원해 로비를 시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의혹의 핵심: 당시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금감원 담당 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조사를 느슨하게 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거나 비리를 묵인했다는 의혹입니다.당사자 해명: 문 전 대통령 측은 국회 증언 등에서 &quot;압력을 가한 사실이 전혀 없다&quot;고 선을 그었습니다. 다만 &quot;조사는 철저히 하되, 부실 소문이 퍼져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돈을 빼는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이 발생하면 서민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으니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고 신중하게 처리해 달라는 취지의 통화였다&quot;고 맥락을 설명했습니다.2. ‘59억 원 수임료’는 특혜인가, 단순 대행인가가장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 지점은 문 전 대통령이 공동대표이자 지분 25%를 소유하고 있던 '법무법인 부산'의 수임 내역이었습니다 [지식]. 부산저축은행이 금감원 조사를 받은 직후인 2004년부터 2007년 사이, 법무법인 부산은 해당 은행으로부터 총 59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수임료를 받았습니다.야당의 공세: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은 &quot;일개 지방 법무법인이 수십억 원의 수임료를 챙긴 것은 과거 청와대가 조사를 무마해 준 것에 대한 대가성 특혜이자 '뇌물성 수임'&quot;이라고 거세게 비판했습니다.법무법인의 반박: 법무법인 부산 측은 대가성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통계의 착시를 지적했습니다. 대형 사건 하나로 거액을 챙긴 것이 아니라, 은행 측이 회수해야 하는 서민들의 부실채권 지급명령 신청 등 건당 10만~20만 원짜리 소액 사건 수만 건을 단순 대행한 결과 합산 금액이 커진 것뿐이라는 입장입니다. 다른 법무법인의 제안으로 일거리를 나눠 처리한 정상적인 영업 활동이었다고 반박했습니다.3. 검찰의 무혐의 처분, 그리고 가시지 않는 정치적 공방정치적 공방이 고조되자 저축은행 피해자 단체 등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문 전 대통령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검찰의 결론: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은 2013년 공식적으로 문 전 대통령에게 '무혐의(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습니다. 금감원에 전화를 걸어 청탁을 하거나 외압을 행사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고, 법무법인의 수임 역시 정상적인 수임 계약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불씨로 남은 의혹: 사법적 판단은 종결됐지만, 정치적 불씨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터졌을 당시에도 국민의힘은 &quot;부산저축은행 비리 은폐의 원천은 문재인 민정수석 시절&quot;이라며 공세를 재개했고, 더불어민주당은 &quot;이미 해소된 해묵은 폭로를 선거용 물타기로 악용하고 있다&quot;고 맞받아치며 평행선을 달렸습니다.결과적으로 부산저축은행 사태 속 문재인 전 대통령 관련 의혹은 사법적으로는 '무혐의'로 규명되었으나 [지식],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인물과 부실 정황이 가득했던 금융기관 간의 미묘한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여전히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가장 민감하게 다뤄지는 역사적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11:17:38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히라가나를 써서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지극히 일본식 표기법을 따라 한 것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2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대한민국 독재를 한 이승만과 전범 앞잡이 박정희 사진을 걸어놓은 보수 정당의 중심인 ‘국민의힘’ 당명과 일본의 집권 여당인 ‘자유민주당(자민당)’의 슬로건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지난 2020년 국민의힘이 미래통합당에서 현재의 당명으로 개명할 당시, 일본 극우 단체의 슬로건을 표절했다는 의혹과 국내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명칭을 도용했다는 논란이 동시에 터지며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두 정당의 명칭 역사와 인물들의 발언을 통해 당시 논란의 실체를 재조명해 본다.1. 70년간 당명 고수한 日 자민당, 최근 구호는 ‘정치 개혁’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은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보수합동)하면서 창당된 이후 약 70년간 단 한 번도 당명을 바꾸지 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반면, 한국의 보수 정당은 정치적 국면마다 당명을 수차례 바꾸는 행보를 보여 대조를 이룬다.자민당은 선거철마다 새로운 구호(슬로건)를 내걸고 있다. 최근 자민당은 비자금 스캔들 등으로 인한 당내 위기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 &quot;정치 개혁, 확실하게 단행한다(政治改革、確実に断行する)&quot;를 전면에 내세웠다. 아울러 국가 안보와 미래 비전을 강조하는 &quot;일본을 지키다, 미래를 창조하다(日本を守る、未来を創る)&quot; 등의 슬로건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2. &quot;일본 극우의 소굴에서 따왔다&quot;… 학계·여당의 파상 공세지난 2020년 9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의 미래통합당은 새 당명으로 ‘국민의힘’을 확정했다. 그러나 새 당명이 공개되자마자 일본 자민당이 아닌, 일본 최대 규모의 극우 성향 민간 단체인 '일본회의(日本会議)'의 슬로건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정치권에 파장이 일었다.학계에서는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가 총대를 멨다. 강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quot;미래통합당의 새 당명은 일본 극우파의 본산인 일본회의의 슬로건 '국민의 힘(일본어: 고쿠민노 치카라)'과 같다&quot;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quot;우리나라 어법상 '국민의 힘'이라고 띄어 써야 하는데도 붙여서 쓰는 것은 명사는 한자를 쓰고 조사는 히라가나를 써서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지극히 일본식 표기법을 따라 한 것&quot;이라고 지적했다.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도 즉각 공세에 가담했다. 김남국 당시 민주당 의원은 &quot;정말 부끄럽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의힘 지지 기반이 극우 단체임을 몰래 인정하는 꼴&quot;이라며 거칠게 비판했다.3. 정청래 &quot;내 시민단체 이름 훔쳐&quot; vs 김수민 &quot;질투심에 깎아내리기&quot;표절 시비는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 역사적 배경과도 얽히며 복잡해졌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이라는 명칭이 과거 자신이 이끌던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이름이라고 폭로했다.정청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quot;‘국민의힘’은 나와 많은 회원들이 2003년에 발족한 시민단체 이름이며 내가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던 단체&quot;라며 &quot;명백한 이름 훔치기다. '국민의 힘'에 의해 탄핵당한 세력들이 이 이름을 당명으로 사용하는 코미디가 어디 있느냐&quot;고 유감과 불쾌감을 쏟아냈다.이에 대해 당명 개정 작업을 주도했던 김수민 국민의힘 홍보본부장은 MBC 라디오 인터뷰 등에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김 본부장은 &quot;몇몇 사람들이 재미 아니면 질투심 때문에 상대방의 열정을 깎아내리려 갈등을 조장하는 것&quot;이라며 &quot;소위 '원조'를 주장했던 정청래 의원도 그러면 과거에 극우 단체 이름을 딴 것이냐,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quot;고 맞받아쳤다. 또한, '국민의힘'이라는 단어 조합은 2012년에도 정치권에서 사용된 적이 있는 보편적인 언어라고 선을 그었다.4. 정치적 해프닝으로 끝난 공방의 결론결과적으로 '국민의힘'이라는 당명은 대국민 공모에서 접수된 1만 6,941건의 제안 중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인 '국민'을 바탕으로 전문가 심사를 거쳐 제정된 명칭으로 확인되었다.일본회의가 사용한 문구 역시 확인 결과 &quot;자랑스러운 나라 만들기에 국민의 힘을!&quot;이라는 통상적인 문장의 일부분에 불과했으며, 띄어쓰기를 생략한 것 또한 시각적 로고 디자인과 정당법상 정식 등록을 위한 브랜드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점이 인정받았다. 결국 일본 자민당이나 특정 극우 단체의 구호를 모방했다는 주장은 치열한 여야 대치 정국 속에서 번진 정치적 낙인찍기성 해프닝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11:04:30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책 읽는 대한민국 -온책방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619</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자책과 소리책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전자도서관 서비스https://m.blog.naver.com/mcstkorea/224303937546]]></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10:34:02 +0900</pubDate>
                        <image> 
              <title>책 읽는 대한민국 -온책방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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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스타벅스 사태와 한국식 영어 - 오너 리스크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59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구글 검색에 뜨는 오너 리스크 단어스타벅스 사태에서‘오너 리스크’라는 외국어를 쓰는 이들을 보면서,우리는 아직도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너’는 영어‘owner'에서 온 말로 소유주라는 우리말이 존재한다.어떤 기업을 소유한 주인을 뜻하는 말로 한국에서’오너‘라는 말을 쓰는 것 같은데 언론이 이렇게 한국말 대신 영어를 남발하는 것부터 사대주의 같다.더 문제는 자본주의 관점에서’오너‘라는 말이 틀렸다는 것이다.대부분 한국 기업은 주식회사로 대주주가 있고,소액 주주가 있을 수 있지만 소유주는 주식을 가진 사람이지 창업자의 후손이 아니다.한국이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든 이유 중 하나는 소유주와 경영인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지점이다.창업자의 후손으로 조상으로부터 주식을 물려받아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이 과정에서 정상적인 세금만 낸다면 후손이 조상 덕에 배당금을 얼마를 받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창업자 후손이라고 경영을 무조건 이어받는 것은 독재 시절 만들어진 한국식 기업 탄생의 어두운 면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한국은 오너 리스크라는 말을 맥락 없이 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영어에서는 ‘key person risk’라는 말이 가장 비슷할 것이다. 회사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인물에 의해 초래되는 위험이다. 주로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경우 쓰인다. 그리고 오너 리스크와 가장 닮은 말인, ‘owner’s risk'는 책임을 포함한 말이다. 캠브리지 영어 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Owner's risk generally means that the responsibility for any loss, damage, or liability falls entirely on the property or cargo owner rather than a third party, carrier, or venue어떠한 손해 손구글 검색에 뜨는 오너 리스크 단어스타벅스 사태에서 ‘오너 리스크’라는 외국어를 쓰는 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아직도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너’는 영어 ‘owner'에서 온 말로 소유주라는 우리말이 존재한다. 어떤 기업을 소유한 주인을 뜻하는 말로 한국에서 ’오너‘라는 말을 쓰는 것 같은데 언론이 이렇게 한국말 대신 영어를 남발하는 것부터 사대주의 같다.더 문제는 자본주의 관점에서 ’오너‘라는 말이 틀렸다는 것이다. 대부분 한국 기업은 주식회사로 대주주가 있고, 소액 주주가 있을 수 있지만 소유주는 주식을 가진 사람이지 창업자의 후손이 아니다.한국이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든 이유 중 하나는 소유주와 경영인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지점이다. 창업자의 후손으로 조상으로부터 주식을 물려받아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상적인 세금만 낸다면 후손이 조상 덕에 배당금을 얼마를 받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창업자 후손이라고 경영을 무조건 이어받는 것은 독재 시절 만들어진 한국식 기업 탄생의 어두운 면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한국은 오너 리스크라는 말을 맥락 없이 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영어에서는 ‘key person risk’라는 말이 가장 비슷할 것이다. 회사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인물에 의해 초래되는 위험이다. 주로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경우 쓰인다. 그리고 오너 리스크와 가장 닮은 말인, ‘owner’s risk'는 책임을 포함한 말이다. 캠브리지 영어 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Owner's risk generally means that the responsibility for any loss, damage, or liability falls entirely on the property or cargo owner rather than a third party, carrier, or venue어떠한 손해 손상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가 전적으로 제 3자가 아닌 재산을 소유한 이에게 있다고 할 때 쓰는 단어이다. 국립국어원에서 ‘경영자발 악재’라는 단어로 ‘오너 리스크’를 순화하고 있다. 경영자가 초래한 악재라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고, 문제 접근에 쉬워진다. 가끔 영어 남발하는 글을 읽으면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일부러 이해하지 말라는 것인지 지식을 뽐내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쉬운 우리말을 썼으면 좋겠다.6.25로 한국의 국토는 황폐해졌고,특히 남한은 제대로 된 산업이 없어 먹고 살기 힘들었다.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미국의 한국원조는1945년9월 미군정에 의한'점령지역 행정구호계획'(GARIOA)원조로 시작되는데 당시 높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긴급구호를 위해 총4억900만 달러가 지원됐다. 또한 당시 값싼 미국농산물이 원조 형태로 들어왔는데 국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기보다 일부가 원조 물자를 이용하여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다.당시 제분회사 사장은‘밀가루 한 포대에56원60전을 남기고 있었는데 밀가루를 팔아 돈을 번다기보다 돈을 시장에서 쓸어모으는 형편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그런 원조 물자를 손에 넣은 기업인 제일모직,제일제당 등이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삼성의 기반을 이루었고,럭키,삼호,대한,동양,쌍용도 이때 한몫 잡게 된다.이런 역사 속에서 커온 재벌이라 불리는 기업은 경영과 소유가 아직도 분리되지 않고 있다.재벌은 영어 사전에도 들어간 한국만의 독특한 기업 형태라고 한다.재벌이라는 단어도 사실 일본에서 먼저 시작된 단어이다.재벌을 한자로 쓰면‘財閥’이고 일본어로 자이바츠(ざい ばつ)로 읽었다.일본 제국 시절 성장한 거대 기업으로,미쓰이,미쓰비시,스미토모가 대표적이다.일본이 패배한 후 이 기업들은 해산되었지만,또 다른 형태인 게이레츠(系列)로 변형되었다.한국에서만 성장해서 경영주와 소유주가 같은 재벌이 당연한 줄 알았다.학창 시절‘정치와 경제’란 과목이 있지만,시험용으로 공부했을 뿐이다.자본주의 원리가 무엇인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지 전혀 배우지 못했다.그러다가2015년 스티브 잡스 영화를 보다가 충격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다.애플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가 주주들에 의해 자기 회사에서 쫓겨나는 장면이었다.창업주면 당연히 주인이고 경영도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주식회사란 주주들의 자본이 모여 만든 것이고,주주들이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경영을 하면 경영자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 자본주의였다.그 이후로 자본주의에서 주식회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그렇다면 한국은 왜 대주주인 창업자 후손을 경영자라 부르기보다 소유주인‘오너’로 부르는지도 궁금했다.역사의 문제인지 잘못 호칭을 붙이는 자들의 문제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그러나 잘못된 용어라는 생각은 든다.그리고 이런 문제가 미국에 비해 기업 배당금이 적은 이유가 되는지도 생각해 본다.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는 장면원조 물자 원조 달러에 기생하며 성장해 온 재벌https://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640https://www.upublic.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63재벌 삼분폭리 사건https://db.history.go.kr/id/tcct_1964_02_01_0020사카린 밀수 사건과 오물 투척 사정경 유착 역사https://www.hyundaenews.com/15906]]></description>
			<pubDate>Wed, 03 Jun 2026 10:34:0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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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타벅스 사태와 한국식 영어 - 오너 리스크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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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596</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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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기획취재] ‘명운을 걸라’던 문재인 청와대, ‘경찰총장’ 유착 앞에서 작아진 사법 정의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56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2019년 초, 대한민국을 뒤흔든 ‘버닝썬 게이트’는 단순한 연예계의 일탈을 넘어 권력의 핵심부까지 칼날을 겨눈 초대형 권력형 유착 스캔들이었다.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라”며 검찰과 경찰에 초강수 지시를 내렸으나, 수사의 종착지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향했고 결국 ‘꼬리 자르기’와 ‘부실 수사’라는 거센 비판 속에 가라앉았다. 대통령의 엄포와 달리 부실하게 마무리된 당시 사건의 정치적 이면과 권력 유착의 실상을 다시 짚어본다.문재인 대통령의 이례적인 긴급 지시, “성역 없는 수사”2019년 3월, 클럽 버닝썬을 둘러싼 마약 투약과 성범죄 의혹이 경찰과의 조직적 유착 정황으로 번지자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이에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긴급 보고를 받은 후 강력한 지시를 하달했다. 문 전 대통령은 “사건의 용기 있는 제보자에 대해 권력기관이 도리어 피해를 주는 일이 있었다”고 지적하며, 이 사건을 사회 특권층의 불법 행위와 권력기관의 비호가 얽힌 적폐로 규정했다. 당시 정권은 과거 정권의 의혹인 ‘고 장자연 사건’,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의혹’을 버닝썬 사건과 동시에 조사하도록 지시하며 엄정 처벌의 의지를 천명했다.베일 벗은 ‘경찰총장’의 정체, 청와대 민정수석실 핵심 인사그러나 성역 없는 수사를 외쳤던 정권의 외침은 범죄 연예인들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경찰총장’으로 불리며 뒤를 봐주던 배후의 실명이 드러나면서 급격히 얼어붙었다. 단톡방 속 비호 세력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윤규근 총경이었다. 윤 총경은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부터 약 1년간 청와대 민정수석실(당시 조국 민정수석)의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인물이었다. 범죄 가해자인 연예인들과 골프 회동을 갖고 유착 관계를 맺은 시기가 그가 청와대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때와 겹치면서, 사건은 연예계 스캔들에서 청와대 기강 해이와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성격이 완전히 전환되었다.‘기획 사정’ 논란과 초라한 ‘솜방망이 처벌’ 마감청와대 인사가 깊숙이 개입된 사실이 드러나자 사법 기관의 칼날은 급격히 무뎌졌다. 경찰은 거액의 배후 의혹을 받던 윤 총경과 가수 승리에 대해 핵심 혐의인 뇌물죄를 입증하지 못했고, 직권남용 등의 가벼운 혐의로만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청와대 실세가 연루되자 정권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의도적으로 수사를 축소하고 꼬리를 자른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윤 총경 의혹을 덮고 여론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공소시효가 임박한 김학의·장자연 사건을 무리하게 엮어 대대적으로 부각했다는 ‘기획 사정 의혹’까지 제기되었다.결국 윤 총경은 재판 과정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및 직권남용 등의 혐의 중 상당 부분에 대해 무죄 및 가벼운 벌금형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대통령이 직접 조직의 운명을 걸라고 주문했던 수사는 결국 권력의 벽 앞에서 초라한 결과를 남겼다. 버닝썬 게이트는 자본과 공권력의 결탁을 엄단하겠다던 외침이 정작 자당의 핵심 권력을 향했을 때 어떻게 무력화되는지를 보여준 뼈아픈 권력형 잔혹사로 기록되어 있다.]]></description>
			<pubDate>Tue, 02 Jun 2026 20:06:1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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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기획취재] 침묵을 깨는 진실, '버닝썬 게이트'가 한국 사회에 남긴 거대한 균열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563</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2018년 말, 서울 강남의 한 유명 클럽에서 발생한 단순 폭행 사건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연예계·권력 유착 스캔들로 번졌다.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는 K-POP의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져 있던 마약, 성착취, 경찰 유착, 디지털 성범죄의 거대한 카르텔을 세상에 폭로하며 한국 사회에 씻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겼다.폭행 피해자의 고발, 카르텔의 서막을 열다사건의 시작은 미미했다. 클럽 버닝썬에서 성추행당하던 여성을 도우려다 클럽 관계자와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도리어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김상교 씨의 폭로가 시발점이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한 정황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대중은 클럽과 공권력 사이의 유착 의혹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작은 균열은 곧 클럽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되던 이른바 '물뽕(GHB)'을 이용한 약물 성범죄와 조직적 마약 유통이라는 거대한 진실을 끌어내는 마중물이 되었다.화려한 K-POP 스타들의 추악한 민낯, '정준영 단톡방'수사가 확대되면서 버닝썬의 핵심 사내이사이자 그룹 빅뱅의 멤버였던 승리(이승현)를 비롯해 가수 정준영, 최종훈 등이 연루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이 공익 제보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대화방의 실상은 참혹했다. 이들은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것을 넘어, 불법으로 촬영한 성관계 영상과 사진을 상습적으로 공유하며 유희거리로 삼았다. 심지어 의식을 잃은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정황까지 확인되며, 대중이 사랑했던 스타들의 비인간적인 범죄 행각에 전 세계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묻힐 뻔한 진실을 깨운 숨은 영웅들이 사건이 세상 밖으로 완전히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은 목숨을 건 취재 기자들과 숨은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뒤늦게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당시 연예인들과 '경찰총장'으로 불린 고위 경찰 간부 사이의 유착 고리를 푸는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한 인물은 다름 아닌 故 구하라 씨였다. 그녀의 용기 있는 제보가 없었다면 버닝썬의 핵심 권력 유착 범죄는 영원히 베일 속에 가려졌을지도 모른다.'솜방망이 처벌' 논란, 그리고 마르지 않는 분노사건의 핵심 인물들은 성매매 알선, 불법 촬영 및 유포, 집단 준강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들이 받은 형량은 고작 수년에 불과했다. 죄질에 비해 턱없이 가벼운 판결에 국민적 공분이 일었으며, 출소 후 이들의 근황이 전해질 때마다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는 커졌다.시간이 흘렀음에도 버닝썬의 잔상은 여전히 짙다. 외신인 영국 BBC가 이 사건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한국 사회의 성범죄 처벌 수위와 사법 체계의 한계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버닝썬 게이트는 단순한 연예계 스캔들이 아니다. 법과 정의가 자본과 권력 앞에서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뼈아픈 기록이자,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디지털 성범죄와 권력 유착 척결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남긴 현재 진행형의 역사다.]]></description>
			<pubDate>Tue, 02 Jun 2026 19:58:22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22년 전 밀양을 뒤흔든 잔혹한 이름 '밀양연합'... 그들이 남긴 한국 사법사의 얼룩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558</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2004년 대한민국을 큰 충격에 빠뜨렸던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지 22년이 지난 지금도 대중의 분노는 식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가해자들의 신상 폭로와 이 과정에서 파생된 사적 제재 논란이 지속되면서, 당시 끔찍한 집단 범죄의 중심에 있었던 가해자들의 비공식 불량 서클 '밀양연합'의 실체가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다.◇ 지역 일진들의 결성... 고3 남학생들이 주축이 된 '밀양연합''밀양연합'은 범행 당시인 2004년, 밀양과 창원 지역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86년생(당시 만 18세,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지역 일진 연합 조직이다. 이들은 주로 밀양공업고등학교, 밀양밀성고등학교, 밀양세종고등학교 및 창원 지역의 직업전문학교에 다니며 세력을 과시했고, 평소에도 주변 학생들을 상대로 학교 폭력과 금품 갈취를 일삼던 불량 서클이었다.◇ 조직적 네트워크 악용한 집단 범죄... 배후 인물만 110여 명이들의 폭력성은 단순한 교내 일탈에 그치지 않고 잔혹한 강력범죄로 이어졌다. '밀양연합'은 조직적인 네트워크를 악용해 울산에 거주하던 피해 여중생을 밀양으로 유인했다. 이후 여인숙과 축사 등지를 돌며 1년 가까이 집단 성폭행, 둔기 폭행, 불법 촬영 및 협박을 자행했다.당시 수사 결과에 따르면 직접 성폭행에 가담해 구속되거나 조사받은 인원은 44명이었으나, 범행 현장에서 망을 보거나 범죄를 방조하고 피해자를 조롱한 배후 인물(지역 여학생 포함)까지 합치면 총 110여 명에 달하는 무리가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단 한 명도 전과 안 남은 '밀양연합'... 사법부 온정주의가 낳은 괴물범죄의 잔혹성과 조직성에도 불구하고 '밀양연합' 소속 가해자들은 사법부의 온정주의적 처분 덕분에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갔다. 당시 사법당국은 가해자들이 미성년자이고 반성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기소된 10명을 소년부로 송치하고 20명에게는 봉사활동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가해자 44명 전원이 전과기록조차 남지 않는 형사 처벌 면제를 받으며 사건은 종결됐다.◇ 22년이 지난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법적인 면죄부를 받은 '밀양연합' 회원들은 이후 신분 세탁을 거쳐 평범한 직장인, 자영업자, 가장으로 사회에 녹아들었다. 그러나 이들이 제대로 된 법적 처벌이나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은 20년이 지난 오늘날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대대적인 신상 폭로라는 '사적 제재'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사법 정의가 실현되지 못했을 때 사회적 공분이 어떻게 폭발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이 된 '밀양연합'. 이 이름은 대한민국 소년 범죄 잔혹사의 가장 어두운 단면이자, 사법 신뢰를 무너뜨린 뼈아픈 기록으로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description>
			<pubDate>Tue, 02 Jun 2026 19:41:48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밀양사건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2004년 경남 밀양 지역의 남고생 44명이 여중생을 1년 가까이 집단으로 성폭행, 폭행, 불법 촬영 및 협박한 끔찍한 강력범죄입니다. 당시 가해자들이 미성년자라는 이유 등으로 전과가 남는 형사 처벌을 단 한 명도 받지 않아 국민적 공분을 샀으며, 사건 발생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556</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2004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피해자와 가해자의 운명은 여전히 비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당시 가해자 전원이 단 한 명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금 부각되면서, 법이 실현하지 못한 정의를 사적으로 해결하려는 '사적 제재' 논란과 함께 피해자의 끝나지 않는 고통이 재조명되고 있다.◇ 2004년의 비극... 가해자 44명 '전원 형사 처벌 면제''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밀양 지역 고등학생 44명이 울산 지역의 여중생을 유인해 집단으로 성폭행하고 폭행 및 협박을 일삼은 강력범죄다. 가해자들은 불법 촬영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범행을 지속했다. 수사 과정 역시 참혹했다. 경찰의 폭언과 가해자 대면 수사 등 심각한 2차 가해가 발생해 국가배상 판결까지 내려졌다. 그러나 결과는 허망했다. 기소된 가해자들은 소년부 송치나 기소유예 처분에 그쳤고, 결국 가해자 44명 전원의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 무죄에 가까운 결과로 사건은 종결됐다.◇ 20년 뒤 터진 유튜버들의 신상 폭로... '사적 제재'의 명과 암대중의 기억 속에 묻혀가던 사건은 지난 2024년 6월, 유튜버들이 가해자들의 이름, 얼굴, 직장 등 근황을 무단으로 공개하면서 다시 불타올랐다. 평범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로 살아가는 가해자들의 모습에 대중은 분노했고, 해당 직장 퇴출 및 식당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하지만 부작용도 컸다. 사건과 무관한 일반인의 신상이 잘못 공개되는 등 2차 피해가 속출했다. 결국 무분별한 폭로를 이어간 유튜버 '전투토끼'(징역 2년 6개월), '나락보관소'(징역 1년 6개월) 운영자 등은 명예훼손 혐의로 잇달아 실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 자매의 입건... &quot;평생 피눈물 흘린 분함에&quot;사건 발발 2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피해자의 삶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최근 피해자 자매가 가해자의 신상 정보를 유튜버에게 넘겨 유포하게 한 혐의(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피해자 측은 조사에서 &quot;평생을 피눈물 흘리며 살아온 분함에 가해자를 알렸다&quot;고 호소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시민들의 연대와 과제비극적인 현실 속에서도 대중의 연대는 이어지고 있다. 사건 재조명 이후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을 통해 진행된 시민 모금 운동에는 1억 원이 넘는 후원금이 모여 피해자에게 전달됐다. 피해자는 &quot;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국민에게 감사하다&quot;는 뜻을 전했다. 법이 처벌하지 못한 가해자들의 평온한 삶과, 20년이 지나서도 법적 피의자가 되어야 하는 피해자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사법 정의와 피해자 보호 체계에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description>
			<pubDate>Tue, 02 Jun 2026 19:28:57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기획] ‘솜방망이 처벌’이 낳은 비극… 밀양 성폭행 피해자 자매, 22년 만에 범법자 처지 몰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55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기획 호외 ] 2004년 대한민국을 큰 충격에 빠뜨렸던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지 22년이 지난 지금, 사건의 피해자가 가해자들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형사 입건되는 또 다른 비극적 사태가 발생했다. 공적 사법 체계의 미흡한 처벌이 어떻게 사적 제재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피해자를 다시 범법자로 내모는 악순환을 낳았는지 보여주는 뼈아픈 단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 처벌 0명’의 얼룩… 20년 만에 터진 사적 제재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2004년 경남 밀양 지역의 고등학생 44명이 울산에 거주하던 여중생 1명을 약 1년간 지속해서 집단 성폭행하고 폭행한 반인륜적 범죄다. 당시 울산지검은 가해자 44명 중 10명만 기소하고 20명은 소년부 보호처분으로 송치했으나, 소년법 적용과 피해자 측과의 합의 등을 이유로 전과가 남는 형사 처벌을 받은 가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관이 피해자에게 비하 발언을 하는 등 극심한 2차 가해까지 더해지며 사법당국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이러한 사법 체계의 공백 속에 쌓인 대중의 분노는 2024년 유튜브 등 온라인 공간을 통해 ‘사적 제재’라는 형태로 폭발했다. 이른바 사이버 렉카 유튜버들이 가해자들의 실명, 주소, 현재 직장 등을 연이어 폭로하며 국민적 관심이 다시 집중됐다.■ 피해자 자매의 입건과 검찰 송치… 화근이 된 ‘판결문’그러나 2026년 5월, 이 폭로전의 불꽃이 도리어 피해자 본인에게 향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인천 삼산경찰서는 당사자 동의 없이 판결문을 유튜버들에게 전달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로 피해자 A씨와 그의 동생을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 자매는 2023~2024년경 신상 공개 유튜버들에게 과거 확보했던 판결문을 제공하여 가해자들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관한 제3자의 정보까지 유출된 정황이 확인되었으며, 경찰은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자매를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폭로 유튜버들의 실형 선고와 사적 제재의 한계피해자 자매로부터 정보를 받아 폭로를 진행한 유튜버들 또한 법의 심판을 받았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2026년 기준 '전투토끼' 운영자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나락보관소' 운영자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폭로 과정에서 무고한 일반인이 가해자로 오인받는 등 사적 보복의 부작용도 심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description>
			<pubDate>Tue, 02 Jun 2026 19:06:0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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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획] ‘솜방망이 처벌’이 낳은 비극… 밀양 성폭행 피해자 자매, 22년 만에 범법자 처지 몰려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chosun.com/national/regional/2026/05/19/QOSV2YNCX5FP7O4R4SSQY232GM/</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554</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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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DATA[서울대와  중국 칭화대학교중국보다  못한 서울대!!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550</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서울대와 중국 칭화대학교중국보다 못한 서울대!!중국칭화대학교이공계 중심의 강력한 테크노크라트 학풍과 국가적 차원의 천문학적인 자본 투자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글로벌 '탑티어' 대학이다.서울대학교는 국내 최고 대학으로서 인재 밀집도와 평판은 최고 수준이나, 글로벌 무대에서 칭화대와 경쟁하기에는 정부·사회적 재정 지원의 한계와 국제화 지표의 부재라는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다.]]></description>
			<pubDate>Tue, 02 Jun 2026 18:23:57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북한을 잡으라고 했더니 남한 사람 60%이상 죽인미국인들  6.25  전쟁의 진실!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54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북한을 잡으라고 했더니남한 사람 60%이상 죽인미국인들 6.25 전쟁의 진실!1950년 7월 3일은 미군이 북한군 보급로 차단을 위해 용산 대폭격을 기획·준비한 결정적인 기점* 7월 3일 (폭격 준비)미군 정보참모부가 용산기지 내 북한군 집결 정보를 파악하고, 제8전술정찰대대가 용산 일대를 정밀 항공 촬영하며 폭격 작전을 수립했습니다.* 7월 16일 (대폭격 실행)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B-29 폭격기 47대가 동원되어 용산 일대에 폭탄 1,504발을 투하하는 대규모 융단폭격을 감행했습니다.* 민간인 피해용산역과 군사기지 주변(원효로, 서빙고, 해방촌 등)이 초토화되었으며, 서울 지역 폭격 사망자의 60% 이상인 2,700여 명의 용산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description>
			<pubDate>Tue, 02 Jun 2026 18:13:51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독립운동가 박열을 도운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 사후 100주년 기념 영화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472</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영화 상영 안내 가네코 후미코 서거 10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영화를 제작했다. 일본에서 2026년 2월에 개봉했지만 한국은 아직 개봉하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영화이다. 가네코 후미코가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여화는 가네코 후미코가 사형 판결을 받은 날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121일 간의 싸움을 다루고 있다. 나하나가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았고, 코마야시 카츠야가 박열 역을 맡았다.독립운동가 박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연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식민지 조선인을 돕기 위해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와 후세 다츠지 변호사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최선을 다했다.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옳지 않다고 느끼는 일본인이 존재했다는 것이 놀랐고 실제로 도와 준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놀랍다. 인간 대 인간의 연대, 인간으로써 지켜야 할 무언가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연대의 좋은 사례인 것 같다.]]></description>
			<pubDate>Tue, 02 Jun 2026 14:45:0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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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독립운동가 박열을 도운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 사후 100주년 기념 영화 - 약산소식지</title> 
              <url>https://www.youtube.com/watch?v=j05kpZijNNQ</url>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47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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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DATA[선거철 이런저런 이야기 -봉사직에서 보수직으로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387</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인상적인 현수막현수막 덕분에 내 지역구가 아닌 곳의 공약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공약 중 하나가‘구의원 해외연수부터 중단하겠습니다.’였다.1991년지방의회 의원 선거가 다시 치러지고1995년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실시된지30년이 넘어가고 있다.지방 자치의 처음 취지가 잘 실현되고 있는지 질문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중앙과 지방 정부는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미국처럼 연방 정부는 아니라도,각 지역은 나름의 특색이 있는데 중앙은 국가 전체 입장에서 정책을 결정하다 보면 이런 지역의 특징을 감안하기 어렵다.그래서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지역자치단체를 꾸려서 운영하길 바라는 취지에서 시작했을 것이다.한국은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지방자치단체 구성원이나 장이 되는 일도 있지만,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있다.그래서인지 선거 현수막 중 내가 이 동네 토박이일 것을 강조하는 당연한 사항이 명시되어 있는 일도 있다.어렸을 때 그 지역에 살다가 다른 지역에 오랫동안 살았던 후보가 지역 사람이라 강조하는 경우는 그나마 인정할 만하다.왜냐하면 한 번도 살지 않은 지역이 아닌 부모님의 고향이나 배우자의 고향에 출마하는 예도 있다.그래서 어느 지역의 아들,어느 지역의 사위라는 말로 자신을 그 지역과 연결하기도 한다.지방자치단체 관련 논란이 되는 문제는 그 외에도 많다.하지만 그중 가장 세금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문제가 외유성 해외연수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한국이 예전처럼 후진국이라면 선진국에 가서 배우는 것이 당연하다.일제강점기 일제는 지역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만한 군수나 지역 유지를 일본에 일부러 견학시켜서 일본 선진문물을 자랑했다.갔다 온 이들은 일본의 선진문물을 찬양하고 조선의 후진성을 비난하기까지 했다.일제가 무료로 일본을 보여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그러나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강조하는 요즘,선진문물 견학을 이유로 해외에 갈 필요가 있는지부터 생각할 시기이다.혹시 가더라도 정확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제대로 된 보고서를 쓰는 것이 필수일 것이다.일반 공무원 특히 하위공무원이 세금으로 사업을 진행하려면 허가를 맡기까지 결재를 받기가 쉽지 않다.사업에 대한 필요성을 상사에게 납득시키고 예산을 어떻게 쓸지도 정확히 보고해야 한다.사업 후에도 예산에 대한 정확한 정산은 필수이다.일원까지도 정확하게 맞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사업을 진행하는 공무원은 시작하기 전부터 완료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2025년 경실련 분석에 따르면,민선8기 전국17개 광역의회의 해외출장 전수조사 결과 총558건, 3,282명(중복 포함)이 참여한 출장에 무려128억4,616만 원의 예산이 쓰였음에도 사후 출장보고서에 비용까지 포함해 공개한 비율은16%에 불과했다.원래 지방의회 의원직은 많은 선진국이 그러하듯이 봉사직이었다.그러나 한국은2006년 지방의원 유급제가 도입되면서 기존 무보수 명예직이던 지방의원에게 월정수당(기본급 성격)과 의정활동비가 지급되기 시작했다.문제는 처음에 보수가 지자체 의정비심의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하지만2008년 일부 지역의 과다한 월정수당 인상과 부적절한 결정이 문제가 되자,행정안전부가 제동을 걸었다.그리고2024년 전국 지방의회 의원 연봉은 대부분6천만 원을 넘었고, 7천만 원을 넘긴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2006년까지 무보수였다가, 2024년18년 만에6천만 원이 된 것이 현실이다.  출처: 투명 사회를 위한 정보 공개 센터(https://cfoi.or.kr/16551)이도 모자라 지방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모르는 해외연수까지 다니고 있으니 지방 자치 단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시기라고 생각한다.유권자들이 현명해져서 월급 받는 것보다 지역을 위하는 후보자를 잘 찾았으면 좋겠다.진짜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았으면 좋겠다.의정비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982172해외연수에 목숨 거는 지방자치단체https://www.kbmaeil.com/article/20251122500028보고서에 제대로 쓰지 않은 해외 연수 예산https://peopleciety.com/archives/20458]]></description>
			<pubDate>Tue, 02 Jun 2026 13:41:3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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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선거철 이런저런 이야기 -봉사직에서 보수직으로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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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선거철 이런저런 이야기 - 인간에 대한 예의 - 약산소식지]]></title>
			<link>http://www.yaksannews.co.kr/news/437244</link>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오마이티비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열기가 가열되면서 여러가지 일이 발생하고 있다. 후보자든 지지자든 열심히 하다 보니 가끔 선을 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 중 유세중인 후보자에게 다가가 친한 척 사진을 찍다가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젊은 여성으로 추정되는데, ‘남친이냐 북침이냐’는 질문을 한 것도 모자라, 그 후보자가 속한 당은 제대로 답을 못한다는 식으로 어떤 당을 싸잡아서 몰고 가려고 한다. 당연히 그 장면은 생방송으로 유튜브를 통해 나갔다. 오마이 티비에서 그 여성의 10분 전 행적을 찾아서 상대편 진영 지지자가 아닐지 추측했다.그녀가 던지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교육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교육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던 서구나, 조선시대 서당과 같은 교육기관에서 교수법은 간단히 말해 ‘따라하기’있다. 가르치는 사람이 읽는 문장을 학생이 따라 읽고 교사는 설명한다. 교사는 일방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학생들은 거의 질문을 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이런 교수법은 특히 일제강점기와 독재 시절에 심했는데 단순 암기로 생각하는 힘을 뺏아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일방적인 주입에서 생각하는 힘은 키우기 어렵다.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학생들은 교사가 외우라는 데로 외우고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할 여지를 갖지 못한다.시험도 사지선다형이라 불리는 객관식 위주라 핵심 내용만 외우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시험이 많이 칠수록 일방적으로 강요된 생각은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되고 잘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다.문제는 이런 일방적 생각을 주입하는 교수법이 철학이나 역사에도 적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해결중심 학습법이 10년도 전에 들어왔는데 여전히 교수법이 과거에 머문 가르치는 이들이 있다. 대부분 공교육이나 제대로 교육을 받은 선생님은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학생들을 자신의 생각을 세뇌시키려 하는 비정상적인 무리들이 이런 방법을 쓴다고 생각하고 싶다.독일은 역사 시간에 생각할 수 있는 문제를 던져준다. 이런 상황에서 너라면 어떻게 할 지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와 너가 있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생각말하기이다.논술과 토론 도입 후 세대 중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는 것만 옳다고 생각하고, 이기기 위해 토론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토론의 원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고, 이기적이기까지 할 수 있다.선진국에서 논술이라 토론이 발달하고 활발하게 하는 이유는 나 외에 너라는 존재가 있고 나는 사회 속에 살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주의 가치를 잘 아는 선진국일수록 토론은 더 중요하다. 나의 생각과 너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너의 생각을 듣고 내 생각보다 더 괜찮거나 받아들일 것이 있으면 나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남의 생각을 드는 것이 토론의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이다. 그리고 여러 사회적 연결망 댓글을 보면 본래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댓글을 다는 이들도 있다. 남과 의사소통할 생각 없이 자기 생각만 이야기하고 싶은 류인 것 같다. 글에 관심도 가지지 않으면서 왜 그 글에 댓글을 다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의외로 그렇게 본 내용과 관련 없는 자기 이야기를 뱉듯이 올리는 이들이 간혹 있다.그리고 ‘남침이냐 북침이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많다고 생각한다. 한민족이라면 원래 하나의 나라였던 한국이 왜 남한과 북한의 나누어졌는지부터 질문이 시작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분단 이후 우리는 비극적인 6.25도 겪고 이념에 휩싸여서 같은 민족이 싸우는 경우도 많았다.해방 후 한국은 전범국이 아니었다. 전범국인 독일은 미국과 소련이 동서로 분단해서 관리했다. 이런 맥락이라면 전범국인 일본이 분단되는 게 더 맞지 않는지라는 질문이 생긴다. 게다가 미군정은 한국에는 직접 들어와 통치했지만, 일본 정부는 그대로 유지하고 게다가 전범 일왕까지 살려주면서 간접 통치를 했다. 왜 일본이 아닌 한국을 전범국 취급했는지 궁금하지 않는가.한국의 역사 교육은 아직도 연도와 사건 인물을 외우기 바쁘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 전무후무하다. 그러다 보니 시험이 끝나고 대부분 역사에 관련해 잊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배우는 원래 취지에 맞지도 않다. 인문학적으로 역사는 과거의 일을 알아서 미래를 대비하는 데 있다.인류는 살고 있는 환경과 시대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인간의 본능은 크게 바뀌지 않을 지라도 주변에 따라서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예측이 쉽지 않다. 사소한 사건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은 무수히 많아. 이런 인간이 모여서 사는 사회도 사소한 사건들이 모여서 나중에 큰 역사가 되기도 한다. 별 거 아닌 사건이 후대에 보면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그런 것을 아는 이들이 역사를 가르치려 한다. 역사를 알고 과거의 실수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준비이다. 그러나 암기식 역사 교육을 배운 자 중 지식을 뽐내거나 단답형 지식을 역사의 전체로 알면서 앵무새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서울 안가 본 사람이 서울 간 사람 이긴다’는 말이 있다.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은 쉽게 ‘예’ ‘아니오’를 답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 어떨 때는 그럴 수도 어떨 때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앵무새들은 이런 경우 조차 자기들이 이겼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다.서구 학문이 발달하면서 바뀐 것 중 하나가 ‘오류의 가능성 인정’이다. 대표적인 예로 ‘백조는 하얗다’라고 서구인들은 믿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검은 백조를 발견하고 그들은 예외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지금 진리라고 믿고 있더라도, 반박할 증거가 나오면 수정될 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그리고 오류가 최소가 되기 위해 학문에 대한 검증을 더 철저히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문학에서도 한나 아렌트나 많은 철학자가 그랬듯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가정을 해서 입증을 철저히 하는 절차를 거친다. 기존 이론으로 실제 사례를 설명할 때 들어맞지 않는다면 새로운 이론을 찾아간다.한국은 앵무새처럼 남의 이론을 말하는 학자는 많다. 그러나 자기 이론을 만들거나 한국의 사례로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경우는 서구보다 적은 것 같다. 한국 근현대사 다양한 사건을 봤을 때 충분히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될 다양한 이론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 학자들이 이런 역할을 충분히 하는지 늘 의심이 든다.그래서 저렇게 무례하게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나와 너가 사는 곳이지 나만 사는 곳이 아니다. 저런 건 ‘우문현답’도 아니다.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해 하는 질문이지 몰라서 하는 어리석은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을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독일 역사교육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음 침공은 어디 중)세뇌식 교육한국 교육을 파괴한 일제일제강점기 강제노동까지 한 학생들문제 많은 역사 교과서 집필진들자격 논란 역사교과 집필진https://www.minjok.or.kr/archives/77288]]></description>
			<pubDate>Tue, 02 Jun 2026 13:41:3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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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선거철 이런저런 이야기 - 인간에 대한 예의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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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독립운동가 기념관에서 만난 진짜 보수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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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출처: 연합뉴스(https://www.yna.co.kr/view/AKR20161217043900004)독립운동가 관련 장소를 찾아다니다가 보면 그곳을 지키는 다양한 분을 만난다.해방 후 친일파가 주류가 된 한국에서 독립운동가보다 주류 의견을 좇아가는 왜곡된 역사를 이야기하는 이도 있고,정말 그 독립운동가를 좋아하고 이해하여 알리려는 어른도 있다.한 말 의병 운동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으로 이어졌고,그 과정에서 중요한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을 만나는 날이었다.지키는 분 말대로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지만,그분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켰다.워낙 바르게 살던 분이라 이야깃거리가 없어서인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적이 없는 게 매우 안타깝다고 하셨다.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더라도 영화나 드라마 덕분에 유명해진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느껴져서 필자도 안타까웠다.그렇게 독립운동가를 지키는 분과 이야기하다 보니,이분이6.10민주항쟁에 참여한 분이셨다.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6.10민주항쟁을 직접 하신 분을10일 남겨두고 만나다니 참 반갑고도 묘했다.전두환 독재에 맞서‘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던 깨어있는 시민들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기폭제가 되었다.게다가6월9일 이한열 열사가 진압하던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져서 불길은 더 거세졌다.그분 말로는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시위했다고 한다.본인도 앞에 나서지는 않았지만,현장에 앉아 있었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다.겸손하게 말씀하는 가운데 얼마나 열심히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는지 느껴졌다.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이 진짜 열심히 했던 사람은 겸손하다.직접 현장에서 다른 이들과 같이 있었기에 같이 한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또한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면 남의 인정이 필요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여담으로 당시 경찰이 진압을 최루탄을 너무 쏘아 대어서, 학생들도 나름 대책을 세웠다고 한다. 주방에서 쓰는 랩을 눈에 붙이면 최루탄을 쏘아도 눈에 들어가지 않고 시야도 확보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랩을 붙여주며 돈을 벌었던 사람도 민주항쟁 때 있었다고 농담삼아 이야기하셨다.6.10민주항쟁 후 선거 때는 야당 후보 지지를 위해 기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서 현장 유세에 참여했다고 한다.당시 기차 속도를 생각해보면 그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아니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열매는 엉뚱한 사람이 따먹어버렸다.김영삼이라는 독재와 싸워 보였던 야당 인물이 삼당합당을 해 버렸다.대통령이 되기 위해 독재와 한편이 되어버린 것이다.삼당 합당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필자는 부마항쟁 정신을 죽여 버린 원흉으로 김영삼을 지목하게 된다.그러나 그 어른은 김영삼을 미워하기보다 그가 한 일에 대해 평가한다.선거는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그러니 대통령을 하기 위해 독재와 손을 잡을 수 있다.그러나 대통령이 된 후 민주주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이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줬어야 한다고 했다.자기 아들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많은 그의 지지자가 민주주의와 반하는 길을 가게 했다고 말씀하셨다.그를 따라 독재를 지지하게 된 민주 시민이 다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당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그래서 독립운동과 민주주의가 활발했던 경북 대구 부산 경남 사람들이 갈 곳이 없게 되고 무지성 지지자로 변해버렸다.그리고 태극기를 땅바닥에 버리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이가 보수가 되어버렸다.보수라면 태극기를 태극기함에 보관하고 버릴 때도 수거함에 넣어 버려야 한다.그런데 태극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이가 보수라고 하고,배운 이도 이런 류를 보수라고 부른다.이렇게 잘못된 용어는 독립운동가를 지키는 분조차 헷갈리게 하고,진짜 보수인 그분이 자신을 보수라고 말 못 하게 되게 만들어버렸다.보수는 기본적으로 한국을 사랑하고 한민족을 사랑하는 이들이다.그 사랑하는 마음은 한민족 말인 한글과 문화에 관한 관심으로 나타난다.그래서 한민족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지키려고 한다.많은 독립운동가가 일제강점기 억압 속에서도 역사를 공부하고 한글을 지키려 노력했다.보수라면 이런 정신을 본받는 게 당연하다.필자는 보수로 사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게다가 한국 보수는 더 힘들 수 있다.보수에 대해 제대로 알려줘야 할 이들이 용어조차 혼동해서 쓰기 때문이다.그래도 가끔 한민족의 말을 지키고 문화를 사랑하고 얼을 가지고 있는 보수 어른들이 가끔 있다.그런 분들이 당당하게 보수로써 목소리를 내고,자기 삶의 이야기를 후손에게 들려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이한열 열사호헌철폐 독재타도삼당 합당]]></description>
			<pubDate>Mon, 01 Jun 2026 15:13:5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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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독립운동가 기념관에서 만난 진짜 보수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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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민족 음악 - 편시춘 - 약산소식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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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통합뉴스</category>
						<description><![CDATA[백석의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 구절아서라 세상사는 이 단가에서 가져온 것]]></description>
			<pubDate>Mon, 01 Jun 2026 15:13:5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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