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tvn 알뜰신잡
선거가 가까워져 오면서 후보뿐 아니라 후보 배우자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오늘 선거 관련 유튜브를 보다가 한 선거 후보 배우자가 역사상 논란이 많은 원균 관련 행사에 참석했다고 한다. 관심 있는 인물 행사에 참석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전에 후보자는 이순신 명언을 발언하기도 했고, 후보자가 속한 당이 이순신 동상 앞에서 삼배 일보를 하기도 했다.
후보자 부인의 잘못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해방 후 한국의 뒤틀린 역사 교육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해방 후 한국은 사실에 근거를 두어야 할 역사가 종교처럼 믿음의 영역이 되어 버린 경우가 많다. 더 심각한 것은 믿음을 과학적으로 만들기 위해 주류 역사학자들이 왜곡한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는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중 하나가 증거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거 자료가 될 고역사서를 파괴하고 고분과 같은 주요 역사적 유물이 있는 무덤을 도굴하기도 했다.
더불어서 식민사관 양성을 했다.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 편수회에는 일본인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중에 조선인도 있었다. 문제는 해방 후 그들이 과거에 대해 사죄하지 않았다. 더 문제는 그 중 일부가 서울대 교수라든지 역사 편찬위원회장이라든지 주요 요직에 앉아서 해방 후 한국 역사와 역사 교육을 좌지우지했다.
원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볼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순신을 존경하는 사람이 원균도 좋아한다면 모순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순신은 ‘난중일기’라 불리는 글을 직접 임진왜란 전인 1592년 1월 1일부터 시작해서 끝날 무렵인 1598년 11월 17일까지 썼다. 난중일기를 읽어 보며 감탄한 것 중 하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썼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라도 좋으니 매일 무언가를 남겼다. 전쟁을 수행하는 바쁜 와중에도 간단하게나마 기록을 남겼다.
난중일기를 읽기 전에는 이순신에 대해서 과장된 평가를 하는 것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군부독재가 길었던 한국에서 군인 관련 인물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은 군인이나 전쟁 인물 관련 동상이 주요 독립운동가나 문화 예술 인물보다 많다. 군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도록 세뇌하는 과정 중 하나로 이순신을 지나치게 영웅시 한 것은 아닌지 의심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난중일기 속 이순신은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당쟁으로 전쟁 준비를 하지 않던 조정과 달리 이순신은 난세를 미리 준비했다. 전쟁은 군인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이 다가 아니다. 무기는 당연히 준비해야 하고, 식량도 미리 비축해야 한다. 자국 땅에서 전쟁하지 않는 경우는 몰라도 전쟁 기간 제대로 된 농사는 어렵게 된다.
조금이라도 전쟁사에 관심 있는 이들은 알겠지만, 조선 시대 이전 전쟁에서 식량 보급은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어떻게 식량 보급을 안전하게 할지도 중요하고, 식량을 뺏거나 없애서 적이 굶게 만드는 것도 작전 중 하나였다.
전쟁을 깊이 공부했던 이순신은 거의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어렵게 비축한 식량이기에 술을 빚는 일은 어려웠다. 당시 조선은 곡주라 해서, 남는 곡식으로 술을 빚었다.
그래서 전쟁 중 술을 마시는 것은 군량을 훔쳐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여러 번 원균이 술 마시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원균의 술주정에 배 안의 모든 장병이 놀라고 분개하니 고약스러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든지 “왜적을 토벌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더니 원균은 ‘술에 취해 정신이 없다’라고 핑계대면서 대답이 없었다.” 등이 있다.
그러나 조정과 잘 맞닿아 있던 원균은 결국 이순신을 감옥에 보내고 직접 삼도수군통제사가 된다. 그리고 배 대부분을 잃어버린다. 그래도 원균은 이순신 권율과 함께 선무공신 1등을 받았다.
당시 왕인 선조가 의주까지 도망갈만큼 조선은 일본에 패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이순신만이 자신이 맡은 지역인 우수영을 지켜서 일본군을 물리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순신이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가고 고문을 받았다. 사형을 간신히 면하고 백의종군했다. 이런 일들이 원균의 모함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원균이라는 인물에 대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후보자가 첫 출근 때 인용했던 ‘서해맹산(誓海盟山)’은 말 그대로 바다에 맹세하고 산에 맹세한다는 말이다. 이순신의 전쟁에 임하는 굳건한 마음가짐을 나타낸 말이다. 이 말은 이순신이 직접 지은 시 ‘陣中吟(진중음)’에 나오는 한 구절을 요약한 것이다. 원래 구절 전체는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로 바다에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이 (마음을) 움직이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안다는 것이다.
지금 나오는 많은 후보자가 어떤 결심으로 나오는지 모른다. 그러나 ‘서해맹산’이라는 말처럼 굳은 결심으로 나오는 후보라면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식민사관 관련 논란이 었던 사건
임진왜란과 선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