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이응노미술관 내부 모습 ( 사진출처: 허예주 기자 )
항상 시간 나면 가고 싶은 미술관으로 처음 떠오르는 곳이 이응노 미술관이다.
대전 둔산동 정부 청사 북쪽 한밭수목원 앞에 위치한 단아한 미술관이다.
미술관 입구는 소나무가 맞아주고 깨끗한 흰색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안내하는 곳과 상품 파는 곳이 있다.
안내된 동선대로 한 바퀴 돌면 전시를 모두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서구나 일본을 여행할 때 유명 관광지를 가면 관람 동선에 신경을 많이 쓴다. 처음 방문한 이도 모든 곳을 다 보고 놓치지 않도록 관람동선을 계획한다. 그게 처음 이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인상깊었다.
이 미술관을 만든 건축가는 프랑스인 로랑 보두엥이다. 이미 많은 미술관 박물관을 지은 경력자이다.
미술관 안내를 지나면 그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응노 화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군상일 것이다.
군상이란 주제로 여러 작품을 남겼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서예나 전각도 인상 깊다. 태어난 시기가 일제강점기이고 한학을 부모님에게 배웠기에 한학에 대한 조예도 있고 서예도 뛰어나다. 그게 옛 작가들에게 부러운 점이기도 하다.
서예를 일상이 아닌 어쩌다 접하는 것으로 아는 세대라 서예가 아름답지만 도전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미술관 전시 중 인상 깊었던 작품 중 하나가 밥풀로 만든 작품이었다.
이응노 화백은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뤘고 그 동안 작품을 만들 재료를 구하지 못해 밥알을 남겼다 뭉치고 해서 작품을 만들었다. 예술가의 혼이란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아프며 감명 깊었다.
서머셋 몸의 소설 면도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베토벤이 영광을 위해 교향곡을 작곡했을까. 그렇지 않다. 그의 영혼이 요구했기에 만든 것이고 그가 한 모든 것은 그가 아는 한 완전하게 만들려 하는 것 뿐이다. ( 출처: The Razor's Edge by William Somerset Maugham 허예주 기자 번역 )
예술가들은 누구든 다 그런 게 아닐까. 내가 이렇게 작품을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 그러기보다 내 안에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가 흘러 나와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그 흘러 나오는 것을 막는 것은 예술가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참고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동백림 사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중앙정보부는 1967년 7월 8일부터 17일까지 7차에 걸쳐 ‘동백림(당시 동독의 수도인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 적화 공작단’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앙정보부는 “문화예술계의 윤이상·이응로, 학계의 황성모·임석진 등 194명이 대남 적화공작을 벌이다 적발되었다”고 발표했다. 중앙정보부의 발표에 따르면 사건 관계자들은 1958년 9월부터 동백림 소재 북한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利敵)활동을 한 데 이어 일부는 입북 또는 노동당에 입당하고 국내에 잠입하여 간첩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중앙정보부는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민족주의비교연구회도 여기에 관련된 반국가단체라고 발표했다.
이후 사법부는 동백림 및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을 별도 심리하기로 결정하고 1969년 3월까지 동백림사건 관련 재판을 완료하여 사형 2명을 포함한 실형 15명, 집행유예 15명, 선고유예 1명, 형 면제 3명을 선고했다.
중앙정보부의 발표와 달리 동백림사건 관련자 중 실제로 한국에 돌아와서 간첩행위를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복이 두려워서 또는 단순한 호기심에 북한에 잘 도착했다는 신호를 보낸 정도였다. 중앙정보부는 대규모 간첩단이라고 하여 무려 203명의 관련자들을 조사했지만, 실제 검찰에 송치한 사람 중 검찰이 간첩죄나 간첩미수죄를 적용한 것은 23명에 불과하였다. 더구나 실제 최종심에서 간첩죄가 인정된 사람은 1명도 없었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응노 미술관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느긋하게 여행하기 좋기 때문이다.
크지 않은 미술관은 한 바퀴 둘러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보고 나서 한밭 수목원을 잠시 걸으며 봤던 작품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아니면 지하철 타러 가는 길에 공원을 지나며 아름다운 햇볕을 느끼며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참고로 미술관은 지하철역에서 걷기에는 조금 먼데 버스를 타고 가기에는 버스 간격이 조금 있다.
한 대를 놓치면 꽤 기다려야 한다. 대중교통으로 여행 다니면 늘 느끼는 불편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버스가
잘 맞지 않을 때이다. 그런 순간을 느긋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책을 한 권 들고 다니는 걸 추천한다. 기다리며
읽은 책 한 구절에서 힘들었던 한 주를 위로할 문구 하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위로 받은 기분으로 또 새로운 주 힘든 일상을 버틸 수 있다.
이응노 미술관을 나와 잠시 걸을때면 '버틴다' 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저 분도 힘든 시기를 버티고 예술꽃을 피웠다.
나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다니기 싫은 회사와 힘든 일상을 버티고 어떻게 아름다운 인생꽃을 피울까 늘 생각했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없지만 아름다운 인생은 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