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새로운 신조어는 아니지만 ‘staycation’이라는 단어가 있다. 머물다 ‘stay’와 휴가 ‘vacation’이 합쳐진 말이다. 우리말로 굳이 하면 ‘머무는 휴가’ 정도가 된다.
코로나 이후 유행하는 새로운 휴가 방식이다. 멀리 가지 않고 사는 지역에 괜찮은 호텔을 예약해서 즐긴다든지, 집에서 즐기는 방식이다. 호캉스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꼭 고급스러운 곳에서 돈을 쓰면서 나를 위로하는 휴가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멀리 이동하지 않고 시간적 체력적 낭비를 줄이고 실리적으로 휴가를 보낸다.
여행을 다니면서 만난 서구인들은 여행 방식이 한국인인 나와 달랐다. 나의 첫 유럽여행을 ‘찍고 턴’ 이라 불렀다. 유명한 관광지 가서 사진 찍고 돌아서서 또 새로운 곳 가서 사진 찍고 턴했다. 하루에 최대한 많이 유명한 곳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늦게까지 돌아다녔다. 그리고 숙소에 오면 나가떨어져서 자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종일 돌아다녔다. 강행군에 가까운 일정은 갔다 와서 몇 날 며칠을 자야 피로가 풀릴 정도였다.
이런 나의 여행 방식은 다양한 여행자를 만나고 대화하며 조금씩 바꾸어 갔다. 저렴한 여행을 다니기 위해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 많이 머물렀고 공용 공간에서 만나는 여행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았다. 온종일 숙소 밖에 나가지 않고 즐기는 여행자들, 자기의 특정한 취미를 즐기기 위해 돌아다니는 여행자들, 꼭 관광지를 가지 않아도 즐겁게 여행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또 휴가를 매 해 같은 곳을 가는 이들도 있었다. 매르켈 총리가 10년간 남티롤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기사가 나온 적 있다. 사실 그런 독일인이 꽤 있다. 내가 여행 중 만난 한 독일인도 매해 같은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일한다고 농담 반으로 이야기했다. 그 축제가 뭐가 특별하냐 했더니 락콘서트가 특별하단다. 그 공연을 보기 위해 매년 돈을 모으고 친구들과 숙소비를 아끼기 위해 캠핑하며 긴 시간 즐긴다고 했다. 독일에서 상당히 큰 그 축제는 락공연만 있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행사가 있다.
왜 나는 뭔가에 쫓기든 여행을 다니는 것인지 늘 묻고 있다. 본전 생각일까, 살아온 방식이 성과 위주라 그런 것일까. 아직도 예전보다 낫지만 뭔가 많이 하지 않으면 내 여행이 불완전하게 느껴진다.
현재 50여개 나라를 다녀온 이후 내 나라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 국내 여행을 다니고 있다. 스테이케이션 까지는 아니지만 욕심을 내지 않으려 한다. 가까운 곳에 가서 한 두 개 정도 천천히 보려 한다. 혹사하듯이 여행하지 말고 하나의 장소라도 충분히 봐야지 늘 나에게 새긴다. 사진으로만 여행을 담지 말고 마음으로 담으려 노력한다.
많은 여행책 중 유명한 에세이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쓴 ‘내 방을 여행하는 법’이 있다. 꼭 멀리 가야 하는 여행이 아니라 내 방이라도 잘 보면 여행이 될 수 있다. ‘낯설게 하기’ 라는 문학 예술 방식이 적용된 것 같다. 늘 익숙하게 보던 사물도 고정관념을 깨고 보면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한다. 내가 늘 보던 내 방이나 내 방에 있는 어떤 물건도 찬찬히 살펴보면 이전에 보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재밌는 발견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만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아니면 늘 다니는 내 동네도 자세히 보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전 직장에서 출근길에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는 화단이 있었다. 정말 회사 코 앞이었고, 회사 가기 싫은 날 그 꽃들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식물이 좋은 것은 계절 변화를 말해 주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은 보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말해 준다. 그러나 ** 꽃 피었다고 동료들에게 말하면 대부분 어디에 꽃이 피는지 전혀 몰랐다. 같은 길로 출근해도 누군가는 발견하고 누군가는 발견하지 못한다. 같은 길을 지나다녀도 누군가는 보고 누군가는 보지 못한다. 내 동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만큼 크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름 모르는 아름다운 꽃이 핀 것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가끔은 목적지만 향해 가기 보다 길가에 핀 꽃에게 시선을 한 번 던져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