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즈키 다이세츠 박물관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불교와 관련된 강의를 들었다. 선종과 교종으로 나누는 것은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선종이 이전의 종파를 교종으로 부른 것에서 나왔다고 해서 놀랐다. 역사 교과서에서 배운 것을 기억하면 이렇다. 고려 시대에 선종이 유행했고, 이는 이전의 교종의 부패에 반대하여 불교의 새로운 흐름이다. 그러나 불교의 시작인 인도는 종파가 존재하지 않았고, 중국으로 넘어온 불교에서 종파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마지막 만들어진 종파가 선종이다. ‘선종이 더 뛰어난 것도 아니고 다른 종파일 뿐이다.’라고 강의자는 말했다.
개인적으로 선불교에 관심이 많다. 불교 자체를 잘 모르고 종교적으로 관심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와 그 속에 담긴 철학에 관심이 많다. ‘선의 황금시대’나 ‘벽암록’ 같은 몇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고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선사들이 말한 어떤 구절들이 살다가 문득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서구인들에게 선불교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아마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일 것이다. 일본 출신 승려이지만 세계 곳곳에서 강의를 많이 했고 일본 선불교를 널리 퍼뜨린 인물이다. 선불교 관련 책을 읽다 우연히 발견한 승려이다.
카나자와에 가고 싶은 미술관이 있어서 알아보다 보니 스즈키 다이세츠 박물관이 있었다. 가고 싶었던 미술관에서 멀지 않아서 일정에 넣었다.
박물관은 선불교에 관심 많은 나에게 흥미로웠다. 고요한 가운데 동적인 느낌이 들었다. 물에 비친 명상하는 장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스즈키 다이세츠라는 인물은 한국인인 나로서는 조금 불편한 면도 있다. 그냥 선불교 학자로는 배울 점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알아갈수록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풀리지 않은 앙금 때문이지 찝찝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래서 보통 박물관을 방문하면 관련 책을 사거나 구해서 읽는데 스즈키 다이세츠는 박물관 건물로만 기억하려 한다.
이 박물관을 만든 건축가는 타니구치 요시오(谷口吉生)이다. 일본 여행을 다니면, 특히 미술관을 다니면 그의 건물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나도 벌써 몇 개 본 적이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간다면 증축한 건물을 지은이가 타니구치 요시오이다. 기회 되면 그의 군더더기 없는 다른 건물을 소개해 보려 한다.
겨울에 방문한 박물관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관광객은 나 외에도 외국인이 있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있기에는 주변 사람이 신경 쓰였다. 군더더기 없는 건물이 물 앞에 조용히 서 있다. 고요한 수면은 잔잔하게 흐르고 잘 살펴보면 물이 나가는 작은 출구가 있다.
명상까지는 아니라도 조용히 앉아 생각하기에 내 마음이 시끄러웠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여기저기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아이들처럼 내 마음도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한 가지 생각에 머물지 않고 여러 가지 생각에 돌아다녔다. 생각은 끝까지 가지 못하고 소란스럽게 돌아다니다 사라졌다.
사람들이 종교나 명상을 쫓는 이유가 마음의 평화 때문이 아닐까. 바깥이 평화로워도 내 마음이 지옥일 수 있다. 밖이 소란스러워도 내면이 평온할 수 있다. 그런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하다. 명상과 같은 수련을 열심히 하면 열락에 들 수 있다. 외부 자극 없이 나 홀로 즐거울 수 있다.
존경하는 철학자분 말로는 그렇게 되기까지는 정말 많이 제대로 명상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를 버리고 가벼워지는 그 느낌이 좋다 하셨다. 속세에 살면서 그렇게 사는 분도 있다. 범인은 속세에 살면서 그 정도는 아니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