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동강을 바라 보고 있는 이육사 문학관
안동 이육사 문학관
안동시 도산면 산골짜기 굽이굽이 깊은 곳에 있는 이육사 문학관, 퇴계 이황 종택을 지나 더 들어가면 낙동강을 바라보고 서 있다. 이육사 고향 바로 옆에 있는 문학관, 생가가 있던 곳은 공원이 있다.
겨울에 가서 그가 노래하던 청포도는 보지 못했다.
광야, 초인 등 이육사 하면 많은 시와 구절들이 떠오른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독립운동가이다. 지난 회 일본 선불교를 널리 알린 스즈키 다이세츠를 쓰고 철학적인 장소나 그런 인물을 찾아 고민했다.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광야 일부분 발췌-
초인, 사람을 넘어선 사람, 요즘은 슈퍼맨(superman)이라는 영어가 더 익숙할 것이다. 예전 시들은 우리말이 살아 있어서 좋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말이 영어로 도배되기 시작한 문학작품이 불편하다.
이육사 시인이 말하는 초인이 누구일까. 학교 문학 시간에 내 생각 없이 답 외우듯 배운 초인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한다. 시험 치고 나서 잊어 버렸다. 니체도 초인에 대해 말했고,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해 줄 초인을 이야기한다.
일제강점기 조국을 뺏긴 시인은 조국을 되찾기 위해 시만 쓴 게 아니라 독립운동도 했다. 그래서 감옥에도 여러 번 갔다. 무려 17번 수감 되었다.
철학가는 아니지만, 자기 생각대로 살다 젊은 나이에 순국한 이육사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육사 시인의 본명은 이원록이다. 독립운동가 장진홍이 일으키려다 실패한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 감옥에 수감됬고, 그때 받은 번호가 264이다.
퇴계 이황의 후손으로 어릴 때 한학 교육을 받았던 이육사 시인은 자기 뜻에 따라 여러 가지 한자로 ‘264’를 표기했다. 그의 시에 쓰인 어휘나 생각에도 한학 교육 흔적이 남아 있다.
17차례 옥고를 치렀고 마지막 베이징 감옥에서 40에 순국하셨다. 일제강점기 17차례 옥고를 치렀다는 것은 아주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독립운동가 중 고문받다 순국한 분도 많고 감옥에서 병을 얻어 돌아가신 분도 많다. 간신히 병으로 가석방돼도 얼마 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도 많다.
문학관 지하에 의열단 활동 자료와 감옥을 재구성한 공간이 있다. 감옥을 재구성한 공간은 숨겨진 공간 같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면 놓칠뻔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흑인 노예 중 같은 노예를 감시하는 사람으로 길들어진 이들이 있다. 조선 시대나 일제강점기 농촌 지역에 마름 같은 존재 같다. 같은 흑인 노예를 때리고 괴롭히며 일을 시키는 일을 백인 주인을 대신해서 한다. 이들이 원래 백인 주인보다 더 잔인하다.
일제강점기 일본 출신 순사나 검사보다 더 무서운 이들이 조선 출신 순사나 검사 밀정들이다. 더 악랄한 고문을 개발해서 고문 기술자라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동네를 잘 알기에 독립운동가 가족이나 지인을 괴롭히는 일을 도맡아 했다.
이육사의 가족도 편하게 살지 못했다. 6형제 중 장진홍 사건 때 네 명이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고 셋째는 심각한 고문 후유증으로 병을 얻었다. 이육사 부인도 남편 활동 때문에 끌려가 수모를 당한다.
문학관은 시인의 무덤 옆에 있다. 박물관 옆 소나무 사이로 난 조그만 산길을 따라 가면 알 수 없는 무덤이 있다. 거기서 좀 더 가면 시인의 무덤이 있다. 찾아가는 길은 야자매트가 깔려 있지만, 조금 더 안내가 잘 되어 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내려올 무렵 해가 져서 어둑어둑했다. 시인의 고향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오지 못한 아쉬움이 든다. 깊고 깊은 곳에 있는 이육사 문학관, 언제 또 갈지 모르겠다. 하늘과 낙동강을 바라보고 시를 천천히 읽는 여유로운 여행을 다음에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