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옵티콘의 전형을 보여주는 감옥, 프레시디오 모델로 - 허예주 기자
머무르다, 철학하다 하면 제일 생각나는 여행지가 쿠바 남쪽 본섬에서 멀리 떨어진 후벤투트섬(Isla de la Juventud)이 생각난다.
쿠바를 매우 사랑하는 분이 있어서 가게 된 여행지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그분은 늘 그렇게 쿠바를 이야기했다. 행복을 찾고 있던 나를 궁금했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으면, 적게 가지고도 행복한 법을 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을 찾아 쿠바 여행을 했다. 그 방법을 찾았는지 아닌지는 다음 편 언젠가 연재해보려 한다.
그분 덕에 알게 된 장소가 프레시디오 모델로(Presidio Modelo)이다. 쿠바 혁명을 이끌었든 젊은이들을 가뒀던 장소이다. 그래서 원래 이름은 ‘Isla de Pinos’, 소나무섬이었으나 혁명을 성공한 후 피델 카스트로가 젊은이의 섬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쿠바 역사를 잘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건물 자체에 더 흥미로웠다.
미셸 푸코가 말하던 ‘파놉티콘(panopticon)’ 전형을 보여주는 감옥이었다. 원래는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 감옥이었고 미셸 푸코는 현대 감시 체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다.
원형 감옥 가운데 감시탑이 하나 있고, 감시탑에서 모든 죄수를 감시할 수 있는 건축 구조이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많은 죄수를 감시할 수 있는 구조이다.
감옥은 5개 동그란 건물이다. 세월의 흔적에 따라 건물은 무너지고 있다. 누군가 청소하고 지키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서대문 형무소 같은 장소이다. 억지로 미화시키거나 꾸미지 않는다. 그냥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맞아 가며 건물은 사용되지 않는 많은 건물처럼 무너져 가고 있다. 언젠가 건물이 사라질 것 같다. 그때쯤이면 아픈 역사에 대한 상처도 아물 것이다.
그런 건물 중 하나를 우리는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오래된 건물 속 지키는 사람은 무심하게 자기 할 일을 한다. 감시탑 주변 넓은 공간은 염소가 풀을 뜯고 있다. 2층부터 감방이 있고 1층은 공동 공간이다. 2층에는 고문하기 위한 1인실이 있다. 독립운동가 기념 장소 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서 있기도 힘든 좁디 좁은 공간이다. 체험하라고 만들어 놓았지만 들어가기도 문조차 열기도 싫은 공간이다. 여기나 저기나 인간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일상에 묻혀 가는 텅 빈 공간에 한 사람이 있었다. 깊은 생각에 빠져 사진 찍고 여기저기 구경하는 우리의 시선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었다. 어찌 거기까지 올라갔는지 꽤 높은 곳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아주 잠시 여기에 머물렀을 사람들 그리고 우리 독립운동가를 생각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제대로 된 식사나 잠과 같은 기본 인간 욕구도 채우지 못했을 것이다. 옆에 사람과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쿠바 감옥을 알기보다 독립운동가들이 겪었던 감옥 일지를 보며 상상했다.
그리고 이런 감옥 만든 인간을 증오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나쁘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쿠바를 점령하고 식민지 만들고 약탈했다. 그리고 그것에 저항한 사람들을 가두었다. 조금만 덜 욕심을 부리면 되는 것을,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남미 역사를 보면 실제 식민지에 살면서 수탈하는 지배자보다 부재하면서, 즉 원래 자기 고국에 살면서 농장에서 이익을 얻어가는 농장주들이 많았다. 실제 농장 일꾼 또는 노예들과 마주하며 그들의 고통을 봤다면 처우가 나아졌을까?
같이 간 분이 갈 곳이 많아 조금 서두르듯 나왔다. 나도 그 생각에 잠긴 분처럼 잠시 앉아 있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닌 여행은 맞춰 가야 한다. 세상에 ‘나’만 존재하는 줄 아는 인간보다 ‘나와 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인간이 많으면 조금 평화로워질까?
늘 이런 장소에 오면 인간이 서로 사이좋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내 주변 사람은 주로 남과 싸우기보다 양보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본인이 좀 힘들더라도 평화롭게 주변 사람과 어울려 살아간다. 근데 아주 가끔 이런 평화를 깰 정도로 욕심을 부리는 인간들이 있다. 그런 인간들이 없는 사회에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