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하는 중 웃는 사람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쿠바’를 찾아 떠났다. ‘그들은 과연 행복할까?’에 대한 나의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havana)에서는 행복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시골로 갈수록 행복한 사람들이 많다. 거리에서 마주친 그들은 활짝 웃는다.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라 어른들도 그렇다.
아바나에서 벗어나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일주했다. 아바나에서 멀어질수록 웃는 사람이 많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다가와 사진을 찍어 달란다. 동생이나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그들은 환하게 웃는다. 그들은 보며 나도 웃는다.
40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은 맞다. 내가 오랫동안 사용한 얼굴 표정 근육은 40이 넘어가면 굳어져서 얼굴에 인상을 남긴다. 늘 웃고 살던 사람은 얼굴이 웃는 상이 된다. 자연스럽고 선한 얼굴이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직업상 인상 쓰고 찌푸리다 보니 이상한 주름이 얼굴에 잡혔다. 잘 웃지 않으니 웃어도 예전만큼 환하지 않다. 그런데, 쿠바를 다니며 자연스레 미소를 짓는 일이 많았다.
사진을 찍은 이날도 무지 더운데 뭐 좀 볼 거라고 돌아다녔다. 쿠바는 유럽의 식민지였기에 도시 구조가 유럽과 비슷하다. 도심에 광장이 있고 광장 주변에 관공서를 비롯한 주요 기반 시설이 있다. 유럽을 여행할 때도 길을 잃어버리면 중심 광장을 찾아서 해결했다. 쿠바에서도 뭔가 확신이 없으면 가장 큰 광장에 가서 관광안내센터나 그 비슷한 역할을 할 곳을 찾았다.
광장을 따라 걸어가는데 일하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냥 아이처럼 활짝 웃어주신다. 그리고 사진 찍어 달라고 하신다. 처음엔 당황했는데, 그때는 여행을 좀 다녔던 때라 웃으며 사진 찍어 드렸다.
스페인어를 잘 못해서 이럴 때 안타까웠다. 내 스페인어가 깊이가 있었다면 지방 사는 이들과 대화하며 그들 일상의 행복을 들었을 텐데.. 자연스러운 미소 하나로 행복하구나 추측할 뿐이다.
자본주의 물자 풍족한 곳에 살던 이들은 쿠바를 여행하면 불편하다. 쿠바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이다. 학교 다닐 때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사회 시간에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아서 사실 잘 모른다. 그냥 경제체제가 다른 정도로만 안다.
쿠바는 사회주의(Unitary Marxist–Leninist one-party socialist republic)로 배급제 사회이다. 보데가(bodega)라 불리는 배급소에서 정해진 기본 물품을 배급받고, 가게에서 개인적 수익에 따라 필요한 물건을 더 구매한다.
미국과 국교를 맺지 않아 미국 우방국을 포함한 대부분 나라와 공식적 외교를 맺지 않았다. 그래서 무역이 제한적이고 물자가 부족하다. 석유가 부족해서 자동차나 버스 등 석유 사용 교통수단이 제한적이고 버스를 타면 깨진 의자도 있다. 그리고 시골로 갈수록 동물을 이용한 탈 거리를 많이 구경한다.
아바나 수도에는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현지인들이 이런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관광 관련 종사자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관광객이 신고 다니는 나이키 신발이나 물건이 갖고 싶지만, 그의 월급으로 사기에는 너무 비쌌다.
명품에 그다지 관심 없는 나로서는 그 갖고 싶은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른다. 질 좋은 물건을 가지고 싶지만 내 분수에 넘치는 비싼 물건을 가지면 그 후폭풍이 더 클 것을 안다. 그런데 공산주의에서 해방된 초창기 동유럽을 여행할 때 이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자본주의 국가가 가진 물건을 탐내는 이들은 특정 회사 제품에 집착했다. 그런 특정 회사 제품은 자본주의 나라에 사는 나 같은 이가 가지기에도 상당히 비싼 물건이다.
보수적인 우리 집은 정해진 수입이나 예산안에서 분수에 맞게 사는 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쳤다. 유명회사 제품은커녕 가지고 싶은 물건 전부를 살 수 없다고 배웠다. 늘 선택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어쩌다 약간의 사치로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면 행복했다.
유명회사 제품을 가진 경우는 그 회사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내구성이 좋거나 길게 봤을 때 경제적으로 합당한 이유가 있기에 샀다. 자본주의가 갑자기 들어온 나라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큰 경제적 격차를 모르는 것 같았다.
유명 관광지에서 멀어질수록 자기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가족과 지인들과 보내는 삶을 즐긴다. 남미 대부분이 그랬지만 삶이 가족 중심으로 돌아간다. 가족과 같이 밥 먹고 광장에 춤추러 간다. 거리에는 소파나 의자가 나와 이웃들과 교류하고 아이들은 골목에서 공을 차고 논다. 가톨릭 관련 성 축일을 비롯한 자그마한 지역 축제들도 있다. 모든 동네 사람이 어우러져 즐겁게 논다.
밤늦게까지 즐겁게 놀고 다음 날 아침 출근한다. 일상과 일이 균형된 삶이 존재한다. 병원은 아프면 가는 곳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의사가 와서 문진한다. 쿠바는 예방 의학이 발달한 곳이다.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어떻게 보면 좋아 보이지만 누군가는 이 정도에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물질적으로 너무 부족한 것이 많다. 내가 갔을 무렵 미국은 쿠바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신호를 보냈다. 미국과 사이좋게 되면 아바나는 더 자본주의가 강하게 들어올 것이다. 지방에도 그 물결이 흘러 들어갈 것이다.
내가 좋아했던 쿠바의 모습이 사라질지 모른다. 많은 쿠바인이 내게 주었던 미소가 아련한 과거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쿠바 여행 중 불편했던 것은 줄어들 것이다. 물질적으로 풍족해지는 것과 정신적으로 풍족해지는 것의 균형 잡기, 그게 어디나 필요한 것 같다.
물질적으로 풍요해도 아귀처럼 돈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고, 최소 생활이 안 될 만큼 가난하지만 견뎌내고 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선진국일수록 인간 중심적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잘 돼 있어서 자기 나라 국민이나 자기 나라에 사는 사람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준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