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공유마당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216248&menuNo=200018)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외교부 장관 청문회에서 ‘몽유도원도’가 나왔다.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재 몽유도원도, 현재 덴리 대학(天理大學)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안견의 그림이다. 덴리 대학은 천리의 일본식 발음이다. 우리나라 여기저기 보이는 천리교가 운영하는 대학이다.
어떻게 ‘몽유도원도’가 덴리 대학이 소장하게 되었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다만, 임진왜란 중 약탈당한 많은 문화재 중 ‘몽유도원도’가 있었고 많은 손을 거쳐 1950년대 덴리 대학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여러 자료를 찾다 보니, 해방 후 ‘몽유도원도’를 팔려고 한국으로 가져왔는데 살 사람이 없어서 다시 일본으로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제는 반환도 매매도 어려운 것 같은데 안타깝다.
외교 통상위원회에서 최혁진 국회의원이 김충식이라는 개인이 우리나라에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검과 몽유도원도를 교환하려는 일을 추진하려 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https://www.youtube.com/watch?v=Im2IOcaZk1s 영상에 나와 있다.
몽유도원도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많은 문화재 전문가가 있다. 관련된 책이나 글이 많은데 유홍준 선생님과 우리역사넷 자료를 위주로 간단히 정리해 보려 한다.
몽유도원도는 한자로 ‘夢遊桃園圖’이다. 꿈에서 복숭아밭 또는 과수원에서 노닌 그림이다. 안평대군이라는 분이 꿈 꾼을 안견이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이다. 조선 시대 많은 그림이 그렇듯, 그림만 존재하는 작품이 아닌 안평대군과 주변 인물들이 쓴 멋진 글이 함께 하는 작품이다.
안평대군을 간단히 소개하면 세종의 셋째 아들이다. 세종의 첫째 아들은 문종, 둘째 아들은 그 유명한 수양대군 세조이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안평대군은 무사하지 못했다. 그가 썼던 글은 역모를 꾀하는 글로 오해받았고 같이 어울렸던 지인들은 역모의 누명을 쓰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안평대군과 가까웠던 안견은 살아남았다. 유홍준의 ‘안목’에는 상황을 파악한 안견이 일부러 안평대군의 소중한 벼루를 훔치다 들킨 척했다. 이에 안평대군과 멀어졌다. 그리고 그는 수양대군의 칼날을 비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평대군과 안견은 서로의 예술을 인정하는 가까운 사이였고 같이 한 작품도 몇 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물이 남아 있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고 한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꾼 꿈을 그린 것이다. 꿈에서 복숭아밭, 도원을 간 기분을 남기고 싶었던 안평대군은 가장 잘 그릴 수 있는 안견을 찾았다. 안평대군 시대에 복숭아밭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릉도원과 관련 있을 것이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은 이상적인 장소이다. 신선이 사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이 가고 싶은 장소이다.
이 그림의 특징 중 하나는 그림의 구성이다. 현실,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 도원 세 가지 장소가 한 그림에 있다. 그런데 배치가 일반적인 조선 시대 그림과 다르다. 조선 시대 그림을 감상하려면 오른쪽 위부터 아래로 해서 왼쪽으로 와야 한다. 당시 글을 쓰는 방향이 오른쪽에서 시작하는 세로쓰기였기 때문에, 그림도 그러한 순서로 구성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왼쪽 아래부터 봐야 한다. 현실에서 도원으로 가는 여정이 왼쪽 아래부터 시작한다. 목적지가 오른쪽 위에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남다르게 보는 미술사학자들도 있다.

나는 이 그림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2009년에 국내에 한 번 전시되었지만, 당시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그림을 실물로 본 적이 없다. 책이나 화면에서 한눈에 보는 방식으로 봤을 뿐이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기암괴석이다. 화면 여기저기 뚫고 나올 것 같은 바위들이 강렬했다. 그리고 오른쪽 위에 분홍색 점으로 표시된 복숭아나무들이 보였다.
기회가 된다면 ‘몽유도원도’를 실제로 보고 싶다. 덴리 대학교 소장인 것을 알고, 혹시 실물을 볼 수 있는지 찾아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개방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작품을 소장한 이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나만 고이고이 보던가, 많은 이들과 공유하던가. 어느 것이든 소장한 이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림 보기 좋아하는 나는 소중한 작품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이들에게 감사하다. 그런 분들 덕에 좋은 작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언제 기회 되면 그런 분들을 한 번 소개하는 기사를 쓰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