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후인 ‘아르페지오’ 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은 갤러리
몇 년 전 여행을 많이 다니는 지인과 멀리 가지 않기 위해 일본 여행을 가보기로 했다. 관광지로 유명한 나가사키, 유후인 등을 가보기로 했다.
유후인에서 관광지와 떨어진 농촌 마을에 있는 민슈쿠(民宿)에 머물고 온천보다는 동네 구경 다녔다. 유후인은 역을 중심으로 주요 관광지가 다 몰려 있어서 관광하기 좋다.
하지만, 여행하는 지인과 나는 관광지에서 나름 여행하기를 시도했다. 그래서 아르페지오 박물관이 조금 멀긴 하지만 가보기로 했다. 시내와 떨어진 산 위에 있는데 마땅한 대중교통 수단도 없었다. 그래서 제일 만만한 걷기를 시도했다.
아르페지오는 음악과 미술이 만난 독특한 박물관이다. 음악을 좋아하고 또 미술을 좋아한다면 권하고 싶은 장소이다. 하지만, 꽤 걸어 올라가야 하니 각오하고 가야 할 곳이다.
숲이 우거진 길이라 더워도 기분 좋았다. 올라가는 길에 갑자기 한글이 나타나서 지인과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정동주 갤러리, 윤동주가 생각나는 이름이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윤동주 덕에 ‘동주’라는 이름은 아름답다. 윤동주 시인이 읊은 아름다운 우리말도 생각나고 젊음을 독립운동에 오롯이 바친 순수한 청년도 생각난다.
윤동주 갤러리는 나무 그늘을 가진 깔끔한 건물이다. 건물도 아름답고 예술에 관심 많기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2층으로 이루어진 갤러리는 개인 전시 공간 치고는 컸다.
화가분이 직접 맞이해 주셨는데 친절하셨다. 화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전시 공간이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예술가라면 자기만의 공간도 필요할 것이다. 내 작품을 내가 원하는 데로 배치하고, 배치하는 장소도 내가 원하는 대로 설정해서 내 작품을 더 돋보이게 하고 싶은 것이다.
약간 인상파 느낌도 나고 기분 좋은 작품이 많았다. 가장 기억 나는 건 에펠탑이 있는 파리 그림이었다. 해질 때 드물게 보는 아름다운 색감을 잘 살린 그림이었다.
일본에 사는 재일 교포들에 대한 나름의 선입견이 있다. 몇 년 전 이산(Diaspora) 문학과 관련되어서 강의를 듣고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산(離散)은 흩어져서 뿌려진다는 것으로 직역된다. 말 그대로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 다른 곳에 살아가는 이들이 풀어낸 이야기이다. 원해서 떠난 사람도 있지만 상황이 떠날 수밖에 없어서 강제로 떠난 사람들도 있다. 원하지 않았는데 살던 곳에서 떠난 사람 문학가 중 재일 교포 문학가들도 있었다.
당시 읽었던 책이 김석범의 ‘화산도’와 김시종의 ‘조선과 일본에 살다’ 등이었다. 해방 후 일본에 살던 한국인들은 돌아오기도 했지만 남아 있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돌아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일본 국적을 취득하기 어려웠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외칠 때, 내는 일본인들을, 선은 조선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제는 두 개의 다른 민족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지만, 자신들은 안이고 조선인은 바깥이었다. 일제강점기에만 차별이 존재한 게 아니라 해방 후에도 존재했다.
물론, 일부지만 일본 국적을 얻고 일본에서 잘 산 조선인 출신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거의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고 자신의 정체성을 일본인으로 간주한 사람일 것이라 개인적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정동주 갤러리가 더 반가웠다. 왜냐하면 한국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을 한국인으로 본다는 것일 것 같아서다. 우리말과 우리 이름은 한민족 정체성의 중요한 표현이고 얼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우리나라에 순우리말 이름 가지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가람, 솔 등 한자어로만 알던 단어들이 순우리말이 존재하는 것에 놀란 적도 있다. 그런 이름을 자녀에게 주거나 가진 ᄉᆞᆱ은 우리말을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이름이 아름답다 느끼는 게 내가 한민족이라서 그런 것 같다.
화가분이 자기 이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까지 해 보았다. 하지만 그림에 관한 이야기만 주고받았을 뿐, 사적인 부분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에서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예의 같아서이다. 예술가라면 누군가 자기 작품을 알아준다면 행복할 것이다.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열심히 한 결과물에 누군가 칭찬하면 기분 좋지 않은가? 그런데 평생을 해 온 작업을 멋진 공간에 전시한다면 더 그렇지 않을까.
혹시나 유후인에 놀러 가서 조금 일정이 여유롭다면 산책을 권한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조금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숲길을 걷는 즐거움, 아름다운 하늘을 보는 즐거움,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아름다운 작품을 보는 것도 소소한 추억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