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이 불면 울려 퍼지는 종소리, 이슬라 네그라 -허예주 기자
키토 오스왈드 과야사민 미술관처럼 나의 남미 여행은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곳을 찾는 여행이었다. 칠레 여행 중 수도인 산티아고는 가지 않았다. 아타카마 사막에서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서 바로 발파라이소로 향했다. 발파라이소는 항구 도시로 부산과 닮은 점이 많은 칠레 제2의 도시이다.
발파라이소(Valparaiso)에도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집이 있고 조금 떨어진 이슬라 네그라(Isla Negara)에도 네루다의 집이 있다. 수도 산티아고에도 네루다의 집이 있지만 가지 않았다.
남미 여행을 한다면, 아니면 조금이라도 남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파블로 네루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탄 남미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칠레 정치인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이름이 높은 것은 생존 당시 어지러운 상황에서 옳은 목소리를 냈기 때문일 것이다.
네루다의 죽음은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의사가 주사를 놓은 뒤 돌아가셨는데, 그 주사에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을 넣었다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네루다가 죽을 무렵 칠레에 큰 정변이 일어났다. 민중의 지지를 받은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Guillermo Allende Gossens) 대통령을 살해하고 독재자 피노체트( Augusto Pinochet)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아옌데 이전에 칠레는 독재와 식민 통치 여파가 남아 민중이 힘든 시기였고, 민중과 같이 싸워 온 아옌데가 열심히 문제를 풀어가던 중이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칠레는 남미 나라 중 잘 사는 것 같고 상식적인 것 같다. 아마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대통령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어서가 아닌지 추측해 본다. 나의 남미 여행은 불의 고리라 불리는 서해안을 따라가는 여행이었다. 그래서 동쪽에 있는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등은 가지 않았다. 내가 본 남미 나라는 서해안에 한정되어 있지만 여행한 나라 중에서 칠레가 그나마 상식적이었던 것 같다.
혼란스러운 시기, 칠레 시인 네루다는 민중을 대표해서 민중 앞에서 연설했고 외교관이 되어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나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틈틈이 시를 써서 작품을 남겼다.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 검은 섬이라는 뜻의 지명이다. 이 장소에 대한 시도 몇 편 남아 있고 책도 있다. ‘Memorial de Isla Negra’로 이슬라 네그라에 대한 추억이나 ‘Isla Negra: A Notebook’ 이슬라 네그라 기록 정도 될 것이다.
시 하나를 살펴보면 네루다가 이슬라 네그라에 대한 느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의역하지 않고 영어 원문을 보고 직역한 것이다.
칠레 해안을 따라, 추운 겨울에
비가 주말을 씻어내며 떨어질 때
들어 봐라, 고독이 다시 한 번 음악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저 하늘 비의 모습 같다,
당시의, 파도와 날개를 가진 무언가, 지나가고
커 간다, 그리고 하프가 망각에서 깨어난다.
출처: Pablo Neruda, Isla Negra: A Notebook 중 일부 허예주 기자 번역
집 자체도 멋있지만, 집 바로 앞에 있는 바다도 멋있다. 바다와 너무 가까워서 산다면 무서울 것 같다. 가을 무렵에 갔는데 짙은 색의 바다와 파도는 무섭기까지 했다. 바다는 지역마다 색이 다를 뿐 아니라 같은 바다도 계절에 따라 색이 다르다. 여름에는 조금 옅어지다 겨울이 되면 짙어진다.
파블로 네루다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살았던 것 같다. 물건을 적게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고 많은 것을 수집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집은 그가 수집한 물건으로 여기저기 꽉 찬 느낌이다. 그의 다양한 취미를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이다. 특히 이슬라 네그라는 네루다의 기차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발파라이소에서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었다. 발파라이소에는 지하철도 있고 근교로 가는 버스도 잘 되어 있어서 대중교통으로 다니기 편했다. 칠레는 한국에서 가기는 너무도 먼 나라이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조금 더 여유롭게 가고 싶은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