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 바퀴야, 넌 왜 거기 있니?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
인상파 그림이 좋아서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뉴욕 연수 중에도 틈날 때마다 미술관을 다녔다. 뉴욕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다.
문화적 용광로라 표현하지만, 개인적으로 샐러드 그릇(Salad Bowl)이라는 표현이 더 마음에 든다. 문화적 용광로는 다른 것이 섞여 하나로 녹은 상태이다. 하지만 샐러드 그릇 안에는 소스가 묻은 다양한 채소와 과일들이 원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담겨 있다. 뉴욕은 그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살아 있는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다. 그래서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인 도시일 거로 생각한다.
특히 뉴욕은 현대미술을 느끼기에 좋다. 모마(Museum of Modern Art)라 불리는 현대미술관에는 현대를 대표하는 모든 작품이 다 있다. 그리고 길거리에는 변해가는 예술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고풍적인 건물에 현대가 담겨 있다. 그런 분위기가 유럽 여행할 때 묘미 중 하나인데 뉴욕도 200년 정도밖에 안 된 역사이지만 오래된 건물을 잘 보존하고 있고 잘 활용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 박물관이 된 곳이 꽤 많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뒤샹은 꼭 봐야 할 것 같았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뒤샹을 시작으로 예술이 한 번 변한 것 같다. 뒤샹 이전에는 열심히 만들어 낸 무언가를 예술가들은 전시해야 했다. 사진이 나오고 이전처럼 똑같이 재현하는 것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하는 실험이 이루어졌다. 어쨌든 일단 그림이든 조각이든 예술가들은 만들어야 했다.
뒤샹은 기성품인 남성용 변기를 들고 와 전시장에 놓았고 ‘샘’이라는 작품이라 했다. 너무 충격적이었고 비난도 많았다. 뒤샹의 ‘샘’만 알고 있지만, 그 후에도 뒤샹은 다양한 기성품을 가져와 작품으로 만들었다.
내가 뉴욕 현대미술관에 갔을 때 ‘자전거 바퀴(Bicycle Wheel) 작품이 있었다. 자전거 바퀴 하나가 의자에 꽂힌 채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여운이 상당히 오래 갔다. 뒤샹이 무슨 의도로 만들었는지 모른 채 나름 상상을 하고 의미 부여를 했다. 저렇게 자전거 바퀴 하나만 있으면 굴러갈까? 제대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앉는 의자에 부착된 채 저 바퀴는 뭘 하는 걸까?
이 두 사물은 우연히 만난 게 아니다. 원래 작품이 사라지고 40년 후에 다시 만들어졌다. 뒤샹은 자기가 생각했을 때 맞는 기성품을 기다렸고 다시 만들었다. 굳이 저 두 조합이어야 했다.
뒤샹 이후 많은 예술가가 뒤샹처럼 충격을 주려 했다. 개인적으로 뒤샹은 예술을 이해하면서 충격을 주려 했다면, 후에 예술가들은 충격만 주려 하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보수적 예술감상자인 나는 현대미술이 불편한 때도 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때 의도가 있을 것이 고 일부러 미가 아닌 추를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의미가 없고 거부감이 드는 것도 예술이라 부를지 늘 의문이 든다. 작품 전시장에만 가져다 놓았다고 그 모든 걸 예술이라 불러야 하는지도 생각한다.
예술은 일방적인 활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술을 창조한 이도 존재하지만, 그걸 수용하고 이해하는 감상자도 있다. 만약 받아들이는 이가 하나도 없다면 실패한 예술이지 않을지 생각한다.
언어처럼 예술도 소통의 수단이다. 예술가는 무언가를 표현하고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일상에서 놓친 것을 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게 일상의 숨은 아름다움일 수도 있고 내가 무심히 놓쳤던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뒤샹처럼 웃음일 수도 있다.
뒤샹의 작품을 처음 보고 혼자 킥킥거렸다. 너무 엉뚱해서 조심스럽게 웃다가 찬찬히 보면서 생각했다. 어떤 이야기를 나에게 하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했다.
글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있듯이 예술 작품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양하다. 같은 사람이 같은 작품을 봐도 당시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저 작품이 왜 오랫동안 내게 남아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뒤샹 작품을 실제로 보기 전까지 게으른 작가가 아닐지 생각한 적도 있다. 예술가로 훈련 받은 뒤샹은 그림 실력이 뛰어나고 조각 솜씨도 뛰어나다. 그가 기성품을 예술의 장에 들고 온 것은 실력의 부족이 아니다. 의도가 있었다. 그 의도를 생각하는 게 그의 기성품 작품을 보는 감상자의 몫일 것이다.
뒤샹 덕분에 보수적인 감상자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게 되어서 좋다. 조금은 넓은 시야에서 예술을 보려고 노력하게 된 것 같다. 여러분도 조금 낯선 작품을 만나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거부하던가, 대화하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