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두운 성당 속 하얗게 빛나는 키스 해링 작품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는 날, 비행기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아침 산책을 다녀왔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놉힐(Nob Hill)에 있는 그레이스 대성당(Grace Cathedral)에 있는 키스 해링( Keith Haring)의 작품을 보러 아침 일찍 혼자 갔다 왔다.
샌프란시스코는 언덕의 동네이다. 언덕을 올라 집들이 있고 마을이 형성돼서 거리가 가깝더라도 경사를 신경 써서 난이도를 측정해야 한다. 또 시내 한복판에 심각한 우범지대가 있어서 피해서 다녀야 한다. 텐더로인(The Tenderloin)이라 부르는 지역이 있는데, 절대 얼씬도 거리지 말아야 한다.
놉힐은 샌프란시스코 초창기 흥했던 동네로 과거의 영광,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는 동네이다. 그중 하나가 그레이스 대성당이다.
그레이스 대성당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키스 해링을 비롯한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키스 해링은 마지막을 맞이하기 얼마 전 종교적 작품인 제단화 예수의 생애(The Life of Christ)를 9개를 만들었다. 제일 대표적인 작품은 그의 추모제가 열린 뉴욕존 대성당(the Cathedral of St. John the Divine)이다.
제단 위에 놓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은 그가 흔히 그리던 노랑 빨강 파랑 등이 섞여 있는 밝은색은 아니다. 백금을 도금한 청동판 위에 칼로 긁어서 만든 작품이다. 얼핏 보면 이중섭의 은지화가 생각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림을 알아보기 힘들다.
중세 시대 많은 종교화처럼 세 폭 제단화다. 가운데 그림과 날개 같은 양면의 그림이 펼쳐져 있다. 가운데 중심에는 하늘에 성모자상이 있다. 그리고 천사들이 주변에 있고 아래에 군중들이 있다.
등장인물들은 키스 해링 특유 인물이다. 보는 순간 키스해링 작품이라고 외칠만한 특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덩어리에 가깝게 사람들 얼굴과 사지를 묘사한다. 마치 굵은 붓으로 두껍게 그리고 그 외곽선을 펜으로 진하게 표시한 것 같은 그림이다. 주먹을 쥔 듯한 모습의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치는 것 같은 자세가 많다. 아니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의 작품은 그림이나 조각 모두 존재한다. 우리는 흔히 옷에 그려진 그림이나 인쇄된 그의 작품을 많이 본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드영 미술관(de Young Fine Arts Museum) 정원 등에 그의 조각이 있다. 모두 강렬한 색채로 사람들의 신나는 기분이 느껴진다. 그들의 춤추는 모습을 보면 오윤 화가가 그린 어깨를 들썩이며 춤추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 떠오르기도 한다.
키스 해링은 에이즈에 걸려 고통스러운 마지막을 보낸다. 그러나 그 가운데 나온 작품이 9점의 종교화이고, 작품이 자기처럼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다. 서구 예술가 중 마지막을 종교 작품에 바치며 보낸 이들이 꽤 있다. 또 우리가 아는 최초 세례 받은 비잔틴 제국 왕 콘스탄티누스는 임종 직전에 세례를 받았다.
마지막에 종교에 귀의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특히 당당하게 자기 위주로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인류 최초 서사 문학도 영생을 꿈꾸는 길가메시의 이야기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달린다고 아는 분이 말해준 적이 있다. 태어나면 성장하고 쇠퇴하고 소멸한다. 인간뿐 아니라 지구상에 있는 거의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이 그렇다. 다만 인간은 그 과정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생각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사람이 다수이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이나 호기심 많은 인간은 각자의 전문 분야 안에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며 평생을 보낸다. 또 일부는 가끔이라도 생각하면서 보낸다.
책을 읽을수록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사람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대부분 영원히 살 것처럼 살다가 죽음이 다가오면 화들짝 놀라고 소란을 떤다. 그런데 아주 일부지만 끝을 알고 준비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삶도 마지막도 고요하다. 그렇게 평화로운 마지막을 맞이한다면 행복할 것 같다.
그리스 말 중에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단어가 있다. 보통 행복이나 복지로 번역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잘 살았다’로 느껴지는 단어이다. 죽을 때 후회가 없이 행복하면 쓰는 말이라고 알고 있다. 죽을 때 에우다이모니아를 외칠 수 있는 사는 사람은 일부러 그 단어를 의식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 뿐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