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풍당당 국무령 이상룡 생가 -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
광복 80주년을 맞아 ‘약산소식지’는 8월 1일부터 15일까지 독립운동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이야기하려 한다. 누구를 제일 먼저 찾아갈지 고민하다가 ‘석주 이상룡’ 선생님부터 시작합니다.
안동 임청각은 석주 이상룡 선생님이 태어난 곳이자 문화적 가치가 있는 종가 고택이다. 독립운동을 위해 종가는 팔렸다가 문중 사람이 힘을 합쳐 다시 사들이기도 했다. 이 종가의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는 반쪽 난 집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을 역임할 정도로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명망도 높고 헌신했던 석주 이상룡 선생님을 일제는 미워했다. 그리고 그 미워하는 마음을 철도를 내며 임청각을 반쪽 내는 것으로 보여줬다. 일제강점기 철도 만든 것을 식민사관론자는 근대 산업의 근간으로 보지만 역사적 기록은 아주 다르다. 99칸 집은 50칸으로 줄어 버렸다. 일제는 개인의 집을 마음대로 부수면서까지 억지로 기찻길을 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이 됐다는 것은 그의 높은 명망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모이다 보니 늘 시끄러웠다. 독립에 대한 목표는 같으나 방법은 다양했다. 그래서 조금 화합시킬 수 있는 인물로 이상룡 선생님을 모신 것이다. 그만큼 이상룡 선생님은 많은 일을 이루어왔고 대부분 사람들과 관계가 좋았다.
석주 이상룡 선생님은 적잖은 재산을 처분해서 만주로 이주했고 독립운동에 바쳤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석주 이상룡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이들이 그의 집을 방문했다.
이때 밥을 챙기고 그들을 돌봐준 눈물 나는 이야기가 손주며느리 허은 선생님의 책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에 잘 나와 있다. 한국과 기후가 다른 땅에서 농사를 짓기로 쉽지 않고 처분한 재산은 줄어 들고 점점 살림은 어려워지고 그래도 손님은 계속 오는 상황에서 살림을 꾸려나가는 여성들의 한이 느껴진다. 석주 이상룡에게 만나러 온 이들은 대부분 빈손으로 왔고 살림을 보태 주긴 힘든 사람들이었다.
석주 이상룡 선생님은 이회영 이시영 형제 이동녕과 함께 독립운동을 이루기 위해 교육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했다. 어릴 때부터 유교를 배우고 자란 석주 이상룡 선생님은 의병 운동에도 참여했고 지원했다. 하지만 과거의 학문에 머물기보다 필요에 따라 새로운 학문을 잘 배워서 한민족이 잘 살기를 마음으로 교육사업을 추진했다.
석주 이상룡 선생님은 만주로 망명하기 전 노비문서를 불태웠다. 그리고 후에 자유도설(自由圖說)이라는 글에서 노비 철폐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우리가 미국의 흑인 노예해방운동은 알면서 우당 이회영 선생님이나 석주 이상룡 선생님의 노비 해방운동은 잘 모른다는 게 부끄럽다.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중 철저한 유교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제대로 된 교육으로 인권을 알고 노비도 사람으로 대한 뛰어난 분들이 많다.
그들이 받은 유교 교육은 서화와 문화 작품 아니면 일상의 풍류로 남아 있다. 그의 생가 ‘임청각’도 유교를 공부했기에 나온 이름이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는 말이다.
登東皐而舒嘯 臨淸流而賦詩
등동고이서소 임청류이부시
동쪽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내에 임하여 시를 짓는다
‘임청’은 말 그대로 맑은 내가 임한 곳이다. 임청각은 낙동강을 마주 보고 있다. 그 낙동강과 임청각 사이 큰 길은 석주로이다. 그리고 임청각 바로 앞에 길은 임청각길이다. 기찻길이 새로 나면서 예전 기찻길은 사라졌다. 그러나 길은 남아 있다. 집 앞에 맨날 기차가 다닌다면 사람이 살 수 있었을까. 일제가 저항하는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에게 어떤 만행을 저질렀을지 짐작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해방 후 한참 동안 기차는 달렸다. 왜 우리는 해방 후 독립운동가에게 이런 보상 하나 해주지 못했을까. 겨우 몇 년 전에야 기차는 멈췄다. 국민 1인당 소득 높아졌다고 언론에서 떠들 때마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대우를 보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임청각 복원을 시작했다니 잘 되었으면 좋겠다. 시멘트만 바르는 무식한 복원 말고 고증을 잘해서 똑같지는 않더라도 최대한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우리가 자유롭게 우리말을 쓰고 일상을 살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가족 재산을 희생한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늘 고마워해야 하지만 일상에 묻혀 힘들 것이다.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그런 분들에게 잠시나마 고마운 마음을 가져보자. 시간이 되면 가까운 곳에 고마움을 표하러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