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오는 날 이라 더 숙연한 왕산기념관 -약산 소식지 허예주 기자
겨울이 끝나갈 무렵 경산 구미를 연결하는 전철이 생겼다고 해서 구미에 전부터 가고 싶었던 왕산 허위 선생 기념관을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경북은 대중교통으로 다니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난 연재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역임한 석주 이상룡 선생님을 이야기할 때 의병 운동에 참여한 이야기를 했다. 의병 운동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왕산 허위 선생님이시다.
13도 창의군 서울진공작전은 살아있는 돈키호테 이야기이다. 우리가 허구 인물 돈키호테의 무모함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왕산 허위 선생님은 살아 있는 인물로 무모한 서울진공작전을 감행했다. 신식 무기로 무장하고 훈련받은 일본군과 구식 무기와 제대로 된 훈련보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컸던 이들이 모였던 의병이 서울대로 한복판에서 전투했다.
왕산 허위 선생님이 무모함을 몰랐을 리 없지만 그는 목숨을 내걸고 진격했고 은신 중 일본군에 붙잡혀서 1908년 사형을 당했다. 서대문 형무소 개설 후 첫 교수형이란다. 조선말 의병들은 충청도 경상북도 등 산악 지대 전투에서 승리하기도 했고 주민들의 마음을 얻었다. 일제는 협조한 주민들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자행했다.
‘조선의 비극’을 지은 프렌드 맥켄지(Fred Arthur McKenzie) 책에서 읽은 이야기이다. 직접 의병을 찾아가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눈 기자 정신으로 쓴 책이다. 그가 찍은 의병 사진은 지금도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이 책이 좋았던 점은 국제정세를 알고 있던 기자가 한국에 살면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정확하게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다.
왕산 허위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많은 의병은 다른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그를 스승으로 모신 이들도 많았다. 왕산허위선생기념관에서 아쉬웠던 것은 그의 제자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역사책을 읽다 보면 직접적으로 왕산 허위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의병 운동이나 독립운동에 자신을 바친 이도 있고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분도 많다. 이런 이야기가 기념관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책을 읽고 박물관을 다니는 것은 배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책과 달리 박물관은 다양한 형태의 자료가 있고 또 필요한 핵심을 잘 정리해서 전시한다. 요즘은 영상뿐 아니라 관객과 상호소통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활용한 형태의 자료들도 많다. 놀면서 배우는 재미있는 경험이다. 좋은 박물관을 다녀오면 다음 공부할 것을 생각하게 되고 읽을 책 목록이 늘어난다.
왕산 허위 선생님의 모습을 우리는 주로 증손녀 미라가 그린 초상화로 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이름이 아니라 외국 이름이다. 이게 또 우리의 슬픈 역사이다.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를 넘어 연해주로 간 분이 있다. 일제의 등쌀에 못 이겨 강제로 한국을 떠난 왕산 허위 선생님 후손들은 연해주까지 갔다. 그러나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 살던 한국인들은 갑자기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했다. 이 과정에서 죽은 이들도 많다. 그리고 도착한 것은 허허벌판, 농사짓기도 쉽지 않은 땅이었다. 해방 후 이들은 소련 땅에 있었기에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나마 최근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왕산 허위 후손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단다. 그나마 다행이다.
왕산 허위 기념관 옆에는 선생님이 잠들어 계시는 묘가 있다. 인사드리러 갔다가 동네 사람들의 산책로 같은 동네 사람들의 반응에 좀 기분이 묘했다. 독립운동가 묘나 기념관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는 곳도 많기에 남아 있으면 반갑다. 그리고 되도록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인사드리고 오려 한다. 그게 지금 독립된 나라로 사는 후손이 할 일이라 생각한다.
왕산 허위 기념관을 내려와 10분 정도 거리에 왕산 허위 기념공원이 있다. 동네 한 가운데 뜬금없이 공원이 있지만 원래 선생님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생가는 복원 못 하고 공원으로 만든 것 같다. 나름 의병 전쟁을 묘사한 조각상이 있는 공원이다. 여기서도 개똥 안 치운 인간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하필 선생님 조각상 바로 앞에 있어서 인사드리러 갔다가 진짜 화가 났다. 역사적 장소 공원이 아니라도 공공장소에서 자기 개의 대소변은 치우는 게 인간의 기본 할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렇게 공원을 만들어서 기려주면 그분이 어떤 분인지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어떤 분이 저렇게 비장한 각오로 서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는지 생각했으면 좋겠다.
왕산 허위 선생님은 허구가 아닌 실제 돈키호테처럼 살다 간 분이다. 망해가는 조선에서 아니 망한 조선에서 나라를 찾고자 한 분이다. 달걀로 바위를 깨듯 부족한 무기를 기백으로 채우려 한 분이다. 그런 분이 무모하게 먼저 깃발을 들었기에 다음 누군가도 그의 떨어진 깃발을 들고 독립운동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지금의 해방을 맞아 한국에 사는 우리가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