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당히 독립운동의 선봉에 선 고헌 박상진 의사 -약산 소식지 허예주 기자
지난 연재에서 이야기했듯이 전국의병연합군의 군사장 왕산 허위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을 꼭 이야기해야 한다면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고헌(固軒) 박상진 의사이다. 왕산 허위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첫 사형수로 돌아가시고 시신을 수습한 이가 바로 고헌 박상진 의사이다.
제자로서 도리를 다했을 뿐 아니라 스승을 이어 독립운동에도 헌신했다. 1915년 대한광복회를 만들고 총사령관이 되어 독립군 양성에 힘을 썼다. 독립에 있어서 군사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군사훈련 뿐 아니라 군자금 마련에도 힘썼다.
이를 위해 부호들에게 군자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배신하거나 강하게 거부하는 친일파를 처단하기도 했다. 이 중 한 명이 장승원이라는 인물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나 같은 평범한 한국인은 이 대단한 인물을 모르고 살았다.
왜냐하면 장승원의 아들 장택상을 비롯하여 장승원의 후손은 해방 후에도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박상진 의사의 후손은 힘이 약했다. 오히려 장승원 후손들의 괴롭힘으로 상당히 힘든 시기를 보낸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이렇게 묻혀 버린 독립운동가가 꽤 많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친일파 처단을 한 것이 악연이 되어 해방 후 힘을 가진 친일파 등살에 한국을 떠난 독립운동가 후손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래도 박상진 의사를 기억하는 이들과 후손이 힘을 모아 박상진 의사 생가 공원을 울산 북구에 만들었다. 주변 길 이름도 박상진로이고 근처에 호수 이름도 박상진 호수공원으로 명명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독립운동을 하던 수많은 이를 우리는 다 기억할 순 없어도 최대한 많이 기억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후손이 할 일이다. 생가나 사시던 집을 복원하는 것을 못 하면 제대로 기념비라도 세워줄 수 있다. 아니면 유럽처럼 건물 앞에 현판 하나를 붙여서 독립운동가가 관련 장소인 것을 알릴 수 있다. 또 길 이름이나 근처 주요 장소에 이름을 붙여서 기억할 수도 있다.
프랑스 파리 관문 공항 이름은 ‘샤를 드골’ 공항이다.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은 비쉬 정권 후 프랑스 대통령이자 나치가 만든 꼭두각시 비쉬 정권과 나치와 싸운 레지스탕스 운동가이다. 그렇게 매국노와 맞서 독립운동을 한 후 샤를 드골 대통령은 매국노를 철저히 응징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는 자국 언어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것 같다. 만약에 우리도 해방 후 제대로 독립운동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었다면 백범 김구 선생님이 말했던 문화강국이 되었을지 늘 궁금하다.
이렇게 미국이나 유럽은 공항과 같이 대표적인 장소에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결국 후손에게 기억하도록 만드는 것은 앞 세대의 의지인 것 같다. 직접 역사적 사건을 겪지 못한 세대에게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도록 돕는 것이 겪은 세대가 할 일인 것 같다.
박상진 의사 생가 공원은 생가와 함께 아름다운 공원과 같이 있다. 그래서 한 바퀴 천천히 돌며 사진 찍기 좋다. 그런데 갈 때마다 참 불편한 일을 겪는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박상진 의사와 함께 사진을 찍도록 긴 의자에 박상진 의사 조각상이 있다. 어떤 어린아이가 킥보드로 계속 조각상을 찍어댔다. 사진 하나 찍으려다 그 모습에 나는 얼음이 되어 버렸다. 아이어머니는 하지 말라고 짜증을 내는데 아이는 영어로 ‘Don’t touch’를 반복하며 어머니를 놀렸다.
다른 때는 중학생 정도 보이는 학생들 여럿이 봉산정을 점령한 일이다. 안방에 있듯이 툇마루에 드러눕고 꺌꺌거리며 노는 모습은 너무 불편했다. 봉산정 안에 전시된 것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이 점령해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모두가 편하게 와서 보기를 마음으로 관계자는 개방했을 것이다. 그러나 편하게 보는 것도 좋은데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의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인지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고민이 든다.
고헌 박상진 의사는 일제가 노리는 것을 알았지만 자식으로 어머니 장례를 무시할 수 없어 참석했다가 일경에 잡힌다. 스승과 어머니를 대하는 것으로 짐작하건대 박상진 의사는 진정한 보수 같다. 진정한 보수이기에 나라를 사랑했고 자기 목숨과 재산을 독립운동을 위해 바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나라의 지배를 벗어나 자주독립국으로 살게 해 준 독립운동가에게 감사할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