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평 조용한 마을에 위풍 당당 서 있는 상해 임시정부 청사 -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
지난 연재에서 우산 윤현진을 소개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사진을 올렸다. 이 사지진에서 해공 신익희 뒤 뒷줄 왼쪽에 훤칠한 분이 일강(一江) 김철(金澈) 선생님이다.
임시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분인데 몇 년 전까지 그 존재조차 몰랐다. 우연히 나주 함평 영광 일대를 여행하다 알게 되었다. 역사 관련 장소를 찾다 보니 함평에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 선생님 기념관과 상해임시정부청사를 재현한 건물이 있었다.
전라남도 함평 시골 마을 같은 곳에 제법 규모가 있는 건물이라 놀랐다. 이 기념관을 방문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독립운동가 김철 선생님은 임시 정부에서 중요한 일을 했고 많은 요직을 거쳤다.
학교를 영광에 있는 광흥학교를 졸업했고 어릴 때 외가가 있는 영광에서 공부했기에 영광 독립운동가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태어나고 자란 곳이 함평이라 함평 독립운동가로 보는 것 같다.
이 장소를 방문해서 제일 마음이 아팠고 지금도 이 기념관을 생각할 때마다 떠올리는 것이 단심송(丹心松)이다. 기념관에서 언덕을 약간 오르면 멋진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이 소나무 앞에 담긴 사연이 적혀 있다. 1917년 조국광복에 투신하기 위해 일강 김철 선생께서 "나는 조국 독립을 위해 기꺼이 이 한 몸 조국에 바쳤으니 더 이상 찾지도 기다리지도 말고 부인께서는 앞날을 알아서 처신하시오"라는 서신을 받고 일가 김철 선생님 부인이 남편 앞길을 막지 않기 위해 자결한 나무이다.
앞 연재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독립운동가 가족들이 겪은 고초는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독립운동가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일제와 부역자들은 가족을 감시하는 것뿐 아니라 정보를 얻기 위해 고문도 서슴지 않았다. 여천 홍범도와 결혼했던 단양 이씨도 의병 활동을 하는 남편을 회유하는 일에 협조하지 않아서 고문받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알았던 일강 김철 부인 김해 김씨는 고문을 견딜 자신도 없고 남편을 배신할 수도 없기에 죽음을 택했다고 한다. 당시 독립운동가 가족이 겪어야 했던 일면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상해 임시 정부를 재현한 건물 입구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맞아 준다. 임시 정부 건물이라 해도 2층 건물에 1층은 사무실로 2층은 살림집으로 임정의 힘겨운 삶을 잘 보여준다. 넓지 않은 건물에 많은 이들이 모여 살기도 했고 많은 일을 이루기도 했다.
일본에서 법학을 공부한 김철은 상해 임시 정부에서 만든 육군 무관학교에서 교관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또 임시 정부에서 전라도 대표와 군무장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군무장이었던 김철은 백범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활동을 지원하였다. 김철은 국무위원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하여 김구의 한인애국단 조직과 이봉창·윤봉길 의거 등을 사전에 승인하여 실행케 하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임정은 의견이 분열되어 하나가 되어 독립운동 활동이 힘든 상황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강 김철 선생님은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하는 등 하나가 된 독립운동이 되도록 노력했다. 이 와중에 급성 폐렴으로 쓰러져 항주 소재 광자병원(廣慈病院)에서 입원 치료하였으나 1934년 6월 29일 4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선생님의 장례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국장으로 치러졌고 항주 공동묘지에 묻혔다. 문제는 해방 후 선생님의 유해를 빨리 찾아오지 않아서 공동묘지가 아파트로 개발되면서 선생님의 유해가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많아서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오래된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두는 것에 온 말로 사람이 죽을 때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한민족은 이러한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타국에서 오랫동안 독립운동 활동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분들은 모두 해방이 되면 고향에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이야기했다. 안중근 의사께서도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다오"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일제는 그의 시신조차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언젠가 조국에 돌아갈 꿈을 꾸며 타지에서 순국하신 많은 독립운동가가 있다. 하지만 해방 후 고국은 빠르게 이 일을 진행하지 않았고 순국하신 분이 묻힌 위치를 증언할 분들이 많이 돌아가셨다. 게다가 중국의 개발로 사라진 유해들이 많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는 라이언 일병이라는 한 미국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군인들의 이야기이다. 미국만큼 자국민을 소중히 여겨 지구 끝까지라도 가서 구하겠다는 못하더라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유해를 찾아서 본국으로 모셔 오는 일을 더 빠르게 진행했으면 좋겠다. 한 명이라도 더 고향으로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게 해방된 한국에서 사는 후손들이 할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