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해 회전교차로, 백범 김구 선생님을 기리는 공간 - 약산 소식지 허예주 기자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다 알 순 없지만, 10명 정도 꼭 알아야 한다면 백범 김구 선생님이 들어가지 않을지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서울 효창공원 안에 백범김구 기념관이 있다. 또 경남 진해에 가면 백범 김구를 기리는 공간이 있다.
해방 후 어렵게 귀국한 김구 선생님은 전국을 돌며 동포를 만나고 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 감옥살이했던 인천을 시작으로 공주에 갔다가 삼남지방을 돌았다. 제주도를 갔다가 부산으로 한산도로 진해로 갔다.
진해는 일제강점기 일제가 해군을 주둔시키며 발달한 도시이다. 그래서 진해 일대가 벚꽃이 많고 일제강점기 관련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임진왜란 때 왜성이 웅천, 안골포, 명동 등에 남아 있어 방어에 있어 지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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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에 대해서는 원산지가 우리나라니까 우리나라 꽃이라 말하는 것도 있고 일본인이 즐기는 꽃이니까 일본 꽃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일본은 국화(國花), 나라에서 지정한 꽃이 법적으로 없지만 대개 국화(菊花)나 벚꽃이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다.
제주 봉개동에 왕벚나무 자생지에 몇 그루에 나무가 남아 있는데, 일본 꽃이라 하여 베어지는 수모를 당했다고 한다. 이게 다 해방 후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하는 사람의 잘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해방 후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했으면 지금까지 한민족이 불편함을 느낄 이유가 없을 거로 생각한다. 일본이 독일처럼 제대로 전범이 재판받고 한국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다면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지금과 사뭇 달랐을 것으로 생각한다.
진해 시외터미널 근처 남원로터리에 ‘백범 김구 선생 친필 시비’라는 글자가 눈에 띄는 작은 전시 공간이 있다. 회전교차로 공간을 백범 김구 선생님의 친필 시비뿐 아니라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새겨서 전시하고 있다.
이 시비는 부침의 역사가 있다. 원래 남원 교차로가 아닌 북원로터리 광장에 있었다. 그러나 백범 암살 이후 이승만에 충성스러운 어떤 해군 장성이 북원 광장에서 시비를 뽑아서 진해역 근방에 버렸다고 한다.
학암 이관술 독립운동가 유적비가 상이군인들에 의해 파손되어 땅에 묻혔듯이 백범 김구 선생님의 시비도 한국 현대사 흐름과 같은 역사를 가졌다. 1960년 시비가 수습되어 현재의 남원로터리로 옮겨져 세워졌다. 이때 깨어진 조각을 붙이고, 없는 부분은 시멘트로 보완하였다고 한다.
한쪽은 백범 김구 연표가 있고 다른 쪽은 백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다. 별거 아닌 ‘독립만세’ 글자에서 코끝이 찡했다. 저 한마디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했는지 역사를 알수록 서글프다.
백범 김구 선생님이 말한 것 중 ‘높은 문화의 힘’이란 글을 보면 얼마나 세상을 앞서 살았는지 느끼게 된다. 자주독립 된 나라를 꿈꿨고 그 꿈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바쳤던 분, 백범 김구 선생님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 분이 전국 순회를 하며 들렀던 장소를 모아 ‘산티아고 순례길’같은 독립운동가의 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성 야고보를 기리는 길이다. 그 길 덕분에 많은 이들이 성 야고보의 순교를 기억하고 천주교인들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성찰한 시간을 갖기 위해 떠난다. 한민족에게 의미 있는 백범 김구를 기리는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독립된 나라에서 문지기를 꿈꾸었던 그 마음을 기억하며 걸을 수 있다면 독립된 나라에 사는 것에 더 감사해할 것 같다.
공주 마곡사에 백범 김구가 심은 향나무가 있다. 또 전국 순회 중 했던 연설은 많은 사람 가슴을 울렸다. 그런 연설문을 읽어 볼 수 있는 그 지역만의 공간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님이 남긴 유산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한 것을 잘 활용해서 알찬 내용으로 우리만의 문화 예술 여행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발 ‘콘텐츠(contents)’라는 영어 대신할 좋은 우리말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