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진 산을 바라보고 있는 단재 신채호 생가 -약산 소식지 허예주 기자
미국 초등학교 연수할 때 역사 교육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그들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의 일화를 가져와 자신들의 가치를 어릴 때부터 생각하게 했다. 미국 사대주의자들이 한국 아이들에게 미국 초등 교과서로 영어 가르친다고 할 때마다 두렵기까지 하다. 그런 걸 가르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서두가 길었다. 이렇게 우리나라 인물을 일제강점기 알리려 한 단재 신채호 선생님 이야기하려다 서두가 길어져 버렸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현대 미국 초등학교 교육과정처럼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역사 인물을 통해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을지문덕전이나 이순신전을 쓰셨다. 한민족 영웅 이야기를 통해 한민족이 가져야 할 정신에 대해 곳곳에 쓰고 있다.
가끔 궁금한 게 있다. 미완이지만 선생님의 대표적인 역사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를 읽은 한국인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고 싶다. 원래 조선사 전체를 쓰시려 했으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에서 멈췄다. 남의 나라 삼국지는 읽으면서 우리의 삼국지는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질문해 보고 싶다.
조선상고사를 민족주의적 역사서라 부정적으로 말하는 인간들이 가끔 있는데 그들이 한민족인지 궁금하다. 에드워드 헬릿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기록하는 사람의 관점이 들어가는 기록이라 이야기했다. 식민사관으로 쓴 역사서는 괜찮고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쓴 역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은 한민족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꿈꿨던 독립 후 한국은 자주독립일 것이다. 어떠한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한민족이 나라를 이끄는 한국을 꿈꾸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국사든 세계사든 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외부 권력에 의존한 나라의 끝을 알 것이다. 그래서 외세에 의존해서 독립운동하자는 독립운동가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은 자란 말이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이 말은, 역사학자로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신채호 선생님의 말로 유명한 이 격언은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를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조금은 다르게 변행해서 쓴 말이다.
“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 from The Life of Reason, 1905. From the series Great Ideas of Western Man by George Santayana,
과거를 잊은 자들은 그것을 되풀이하게 된다 – 이성의 삶, 인류 진보의 단계에서 조지 산타야나 –허예주 기자 번역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일제에 쫓기면서 독립운동을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자료를 모으고 글을 썼다. 중국에서 독립운동하며 고구려 발해와 같은 고대 국가 역사의 장소를 가고 중국에 있는 고대 서적을 찾아 필요한 자료를 찾아 정리했다. 그래서 실증적 토대를 가지고 역사서를 쓸 수 있었다.
또 독립운동을 위해 많은 글을 여러 곳에 썼다. 고국을 떠나서는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위장한 항일운동 단체 권업회(勸業會)의 소식지 ‘권업신문’에서 주필로 활동하고, 의열단의 요청을 받고 ‘조선혁명선언’과 같이 한 단체를 대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역사학자 또는 가르치는 교사로서만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활동한 것이 아니다. 철저한 민족주의적 역사의식을 가지고 독립운동을 위해 무장투쟁도 서슴지 않았다. 호 단재(丹齋)에서 말하듯 그는 조국에 일편단심이었다.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한 활동을 하다 일제에 잡혀 여순감옥에 수감되었고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선생님의 생가는 대전 중구,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산속에 있다. 생가 주변은 깨끗이 단장되어 기분이 좋았다. 소박한 초가집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조금 늦게 가서 때마침 해 질 녘이었다. 그때만이 주는 아름다운 색감에 한국 산이 물들어 가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에게 작별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