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진 유튜버 뮤지컬 영웅 동양평화
광복절을 맞아 유튜버 최형진이 뮤지컬 ‘영웅’ 노래 중 ‘동양평화’를 불렀다. 최형진 유튜버는 원래 아나운서 출신이라 그런지 목소리 자체가 매력적이고 노래도 잘 불렀다. 그리고 우연히 영상 댓글을 통해 최형진 유튜버가 워낭소리에 나온 분의 손자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정말 소를 사랑하고 자연 순리에 따라 사는 것 같았던 그 분의 손자가 최형진 유튜버라니 노래를 그냥 고른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동양평화’ 가사를 들어보면 안중근의 미완성 논문 ‘동양평화론’에 기반을 두고 만든 노래이기 때문이다. 가사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꽃이 지면 그 자리에 열매가 맺듯이
자연의 섭리 그대로 어울려서 사는 것
서로서로 인정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
서로 자리를 지키며 조화롭게 사는 것
그게 바로 동양 평화 모두가 더불어 사는 지혜
작은 평화 큰 평화가 어찌 다를 수 있겠는가
-뮤지컬 영웅 중 동양평화 일부-
안중근의 의거를 생각하면 폭력적이라 볼 수 있지만 그는 깊은 평화주의자였다. 하지만 평화는 주변의 선의를 믿고 내가 힘을 키우지 않는다면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개인에게도 그렇고 국가를 비롯한 집단은 힘이 없다면 더욱 평화를 가지기 어렵다. 영구중립국 스위스도 중세 시대 용병으로 이름을 떨친 나라이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영구중립국이 가능하다.
‘동양평화론’은 미완성 논문이다. 일제는 논문을 완성할 때까지 사형일을 늦출 테니 공소권을 포기하라 했고 안중근은 믿었다. 그러나 일제는 배반했고 논문을 다 쓰지 못한 채 사형일을 맞았다.
‘동양평화론’은 미완이기에 길지 않고 부족한 면이 있다. 논문의 초고 정도 수준을 가지고 헐뜯는 이들도 있다. 노래 가사처럼 안중근은 공존과 평화를 원했다. 일본이 강대국이라 생각했던 러시아와 맞서 전쟁에서 이긴 것에 놀랐고, 식민지 전쟁에 돌입한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강해진 이유를 분열이 멈춘 것에서 찾았다.
한때 강했던 청나라도 내부의 분열과 부패로 종이호랑이 같은 존재가 되었고, 조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섭다고 이야기한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공론화를 통해 좋은 의견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것이 분열되는 이유는 성숙하지 못한 시민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너는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의견 제시는 감정이 아니라 제대로 된 논리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누구보다 한국과 동양의 평화를 바랐던 안중근은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때 아니 지금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왜 핵무기를 가지기 위해 난리 쳤다. 당장 쓸 일도 없고 쓴다면 지구가 망할 그 무기를 왜 많은 나라들이 원하는지 생각해 보면 안중근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안중근과 여러 의열 투쟁 덕분에 세계는 이름이 없는 우리나라를 주목했다. 조선시대 우리의 공식 언어는 한자였기에 많은 세계 나라들이 청의 속국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우며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는 것에 간섭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독립운동가들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
당시 영국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종군기자였던 프래더릭 맥켄지(Frederick Arthur McKenzie)는 ‘Korea’s Fight For Freedom'이라는 책에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The murder of Prince Ito was a cruel blow for Korea. It was followed by an attempt to assassinate the Korean Premier, the man who had handed his country over to Japan. For some time the military party in Japan had been clamouring for a more severe policy in the Peninsula. Now it was to have its way. General Count Terauchi was appointed Resident-General.
이토를 암살한 것은 한국에 굉장한 충격이었다. 이후 나라를 일본에 넘긴 이완용을 암살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일본 군부는 한반도에 더 혹독한 정책을 주장했다. 그래서 데라유치 육군대장이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다시 여행이야기로 돌아가기 전 광복절 여운이 남은 데다 최형진 유튜버 노래 덕에 많은 것을 생각한 하루였다. 여행 가기 힘들면 영웅 뮤지컬 영화라도 보며 연휴를 마무리 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