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을 보면 반갑다,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
일본 골목을 걸어가다 익숙한 간판을 만났다. 나는 한 적이 없지만 어릴 때 추억 돋는 사람들이 많은 학습지 회사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이걸 만나다니 신기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원래 일본에서 시작된 사교육 법인이다. 쿠몬 도루(公文 公)라는 사람이 아들의 수학 공부를 시키기 위해 만든 학습지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 이 학습지를 잘 푼 아이들이 일본 견학도 갔었나 보다. 일본에서 시작되었지만, 아시아 전역에 진출해 있고 유럽 북미까지 진출해 있다.
어른이 되고 취업 관련 사이트에 등록했을 때, 이 학습지 관련 쪽지가 온 적 있다. 이걸 운영하라 길래 단호히 거절했다. 교육을 전공한 이로 각자가 선호하는 교육 방식이 있는데 나와는 조금 다른 방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원 다니며 초등학교 수준의 아이들에게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교수법은 전신 반응 교수법이었다. 남미 여행 중 미국 교사로 30년 근무하고 은퇴한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분도 이 교수법을 상당히 좋아하였고, 처음 본 이와 카페에서 한 시간 가까이 수다 떨었다.
개인적으로 이해한 것이 맞는다면, 전신 반응 교수법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출단서와도 관련 있고,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가 말한 다중 지능 이론과도 관련 있다.
인출단서는 저장된 정보를 꺼내기 위한 열쇠 같은 것이다. 가끔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뜬금없이 무언가를 떠올린다면, 그 사물이나 상황이 인출단서가 된 것이다.
우리 뇌가 저장하고 있는 정보의 양은 어마하고 이것을 늘 표면에 꺼내서 인식하며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아마 우리는 혼란스러워서 일상을 살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경험하고 배운 것을 나름 구역을 만들어 저장하고, 경험을 많이 할수록 구역은 분명해지고 새로운 입력이 알맞은 구역으로 저장하게 된다.
이렇게 저장된 정보를 필요할 때 꺼내 쓸 때 가끔은 쉽게 기억이 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그런데 인출 단서가 다양하거나 당시 경험이 강렬하면 꺼내기가 더 쉬워진다. 학습할 때, 글이 아닌 그림이나 도표를 만드는 것도 인출단서가 될 수 있다. 또 노래를 부르거나 동작하면서 새로운 내용을 배우면, 나중에 그 노래의 음을 듣거나 몸을 움직이다가 그 배운 내용이 떠오를 수도 있다.
한때 지능지수를 통해 학생들이 똑똑하다거나 부족하다고 낙인 찍은 시절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야만적 시절이라 생각한다. 지능지수는 단편적으로 한 가지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라며, 사람에 따라 다양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 것이 하워드의 다중지능이론이다.
그리고 이 지적 능력에 따라 학습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어 능력이 뛰어나면 글을 통해 학습하는 것이 맞다. 대인 관계 능력이 뛰어나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통해 학습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자기가 가진 장점을 파악해서 그러한 방식으로 배워 나가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그리고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하나의 능력일 뿐, 실제의 세상을 살아가는 데 다양한 능력이 필요하다.
가르치고 배우는 데 한 가지 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생에게 전신 반응 학습법이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장 피아제(Jean Piaget)의 영향력도 있다.
장 피아제의 발달 이론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은 두 가지 단계에 들어 있다. 11살까지는 구체적 조작기이고 이후는 형식적 조작기이다.
구체적 조작기의 아이들은 구체적 사물을 만지고 오감을 느끼고 행동을 통해 주변을 배워 나간다. 고학년 아이들은 형식적 조작기라 직접 사물을 만지고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줄여도 될지 모르지만, 초등학교 저· 중학년 아이들은 직접 체험하며 학습하는 게 좋다고 배웠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취학부터 모든 연령에 걸쳐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10년 정도 전에 비해 박물관도 많아지고, 박물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건 정말 괜찮아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경험을 해 봐야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는 게 쉬워진다. 직접 경험이 부족한 시절 어린 시절을 살았기에 간접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어른이 돼서 직업을 찾을 때도 내 취향을 찾을 때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몸으로 배운 것은 평생 간다는 말이 있듯이 직접 겪은 일은 잊기가 힘들다. 가끔 직접 경험은 간접 경험보다 위험할 수 있다. 낯선 환경에 놓여서 예기치 못한 일을 해결해야만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싫은 사람에게는 간접 경험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어느 것이든 배우고 또 배우면 즐겁지 아니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