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국 한송이가 남아 있는 자장암 석탑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
여름이 한창일 무렵 통도사 암자 중 하나인 자장암을 가고 싶었다. 통도사는 입구를 조금 지나 소나무가 우거진 길이 좋다. 그래서 일년에 한 번은 가고 싶은데, 최근 통도사 암자들을 우연히 갈 기회가 있어서 몇 군데 가보았고 그 중 자장암이 제일 좋았다.
자장암은 어떻게 보면 통도사보다 더 오래된 건물이다. 통도사를 짓기 전 자장율사가 머물던 암자이다. 자장율사(慈藏律師)는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는 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고, 황룡사 9층 목탑 건립을 주도했다.
주차장에서 자장암 가는 길은 아름답다. 내려서 계단 입구까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올라간다. 출입 금지라고 안내판이 붙은 계곡물은 맑기 그지없다. 눈도 즐겁고 귀도 즐겁고 바람까지 기분 좋은 길이다.
그리고 ‘백팔 번뇌를 잊게 하는 아름다운 계단’이다. 경사가 완만하고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로 올라가는 길이 기분 좋다. 봄에는 불두화, 여름에는 수국이 피어 있다. 중간에 작은 석탑은 주변과 잘 어울려서 좋다. 계단 끝 절 입구는 자연산 돌을 그대로 쌓아 만들어서 정겹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공간이라 조용히 하라고 안내한다. 계단 끝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영축산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길 수 있다. 한국 전통 건축의 툇마루가 정겹다. 방해되지 않게 살짝 앉아서 맞은편 산과 하늘을 바라본다. 높은 건물로 뒤덮인 도시에서 이렇게 걸리는 것 없이 하늘을 보기 어렵다.
왼쪽으로 돌면 유명한 장소가 나온다. 미륵불이 있고 금개구리 전설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출입 금지이다. 앞까지만 와서 보고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안내판이 말한다. 섬세하지 못한 미륵불이 반갑다.
부처는 여러 모습을 하고 있는데, 미륵은 미래의 부처이다. 그리고 미륵이 오는 세계는 이상적인 세계이다. 미륵불은 중생을 구제하러 올 것이라 했고, 이러한 약속은 서민들에게 희망을 줬다. 불교는 개인이 노력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현실 세계에 살며 나쁜 업을 저지르면 계속 이런 세계로 돌아와야 하고, 업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미륵불의 세계인 용화의 세계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 경(經) · 율(律) · 논(論)의 삼장(三藏)을 독송하거나, 옷과 음식을 남에게 보시하거나, 지혜와 계행(戒行)을 닦아 공덕을 쌓거나, 부처님에게 향화(香華)를 공양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자비로운 행위를 하고 공덕을 베풀어야 한다.
좋은 세상에 살기란 쉽지 않다. 공부만 해서도 수양만 해서도 안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잘해야 한다. 주변 사람이 좋으면 사실 그곳이 천국이라 불리는 이상적 사회일 수도 있다.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 모두가 예의를 지키고 배려한다면 오히려 현세가 살기 좋을 것 같다.
이 미륵불을 악용하여 교주 노릇을 하며 사람들을 괴롭힌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궁예가 아니었을까 싶다. 통일신라가 약해지고 지방마다 다양한 세력들이 생겨나고 망했다. 이 과정에서 일반 백성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이, 이런 세력들 싸움 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궁예는 미륵을 자처하여 민중을 현혹했다. 그러나 그가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거나 전쟁하는 모습을 보면 부처가 그랬을지 의심을 해 볼 여지가 많다. 개인적으로 부처를 떠올릴 때 평화로운 모습이 그려지지, 전사의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석가모니는 고행 후 지나친 고행도 필요 없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궁예는 미륵불의 이름을 팔아 나라를 세우고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 자신을 미륵불, 신의 대리자로 내세우며 신정국가를 세웠다. 대부분의 신정국가는 신의 대리인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전체주의적 독재국가가 많다. 현대에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형태가 일반적이다. 한가지 종교만 옳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려 한다. 대신 종교가 정치에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 현대 발전된 국가의 특징이다.
대체로 사회가 혼탁해지면 이런 미륵 신앙과 같은 현실 도피 종교가 유행하는 것 같다. 현세는 힘들지만, 사후는 보상받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사람을 유혹한다. 심하게 그러한 종교에 빠진 경우, 사후 보상 받을 수 있는 일만 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현실 세계의 가치관과 충돌할 수 있는 일을 일으키고,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킨다.
최근 특정 종교 세력이 신정 정치로 회귀하려는 의심이 들어 불편하다. 서구에서 신정 정치에서 벗어나 인본주의 사회로 가던 지난한 여정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신정 정치가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대세가 된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인간을 위안하고 사회의 큰일이 있을 때 어른처럼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특정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싶지는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