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모]
"75년 만에 되찾은 무죄, 이제는 편히 잠드소서"… 독립운동가 학암 이관술 선생 서거 76주기
조국 독립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항일투사… 전쟁의 비극 속 희생, 뒤늦게 되찾은 역사적 명예
억울한 누명은 벗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삶… 서거 76주기 맞아 독립운동 정신 다시 새긴다.
[약산소식지 = 권용진 기자]
1950년 7월 3일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생을 마감한 항일독립운동가 학암(鶴巖) 이관술 선생이 2026년 7월 3일 서거 76주기를 맞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선생은 해방 이후 시대의 혼란 속에서 억울한 희생을 당했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사법적 명예를 회복했다.
이관술 선생은 울산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안락한 삶 대신 조국의 독립을 선택했다. 교사 생활을 하며 민족의식을 키웠고, 이후 비밀 항일조직 활동과 경성콤그룹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에 참여하며 일제가 가장 경계한 항일운동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수차례 체포와 투옥, 혹독한 고문을 겪으면서도 독립운동의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자신의 재산과 청춘을 모두 조국을 위해 바쳤다. 독립을 향한 신념은 어떤 탄압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광복은 선생에게 새로운 희망이 아닌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졌다.
1946년 미군정 시기 발생한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핵심 인물로 기소된 선생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7월 3일,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적법한 재판 절차 없이 희생됐다.
그 뒤 수십 년 동안 이관술 선생은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주모자'라는 오명을 안은 채 역사 속에 남겨졌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법원은 재심에서 당시 수사와 재판 과정의 위법성을 인정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를 통해 선생은 서거 75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고 역사적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
이번 재심은 한 독립운동가 개인의 명예 회복을 넘어 국가권력에 의해 왜곡될 수 있었던 역사를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관술 선생의 삶은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항일운동가의 헌신과 해방 이후 이어진 국가폭력의 비극, 그리고 뒤늦게 실현된 사법 정의를 함께 보여주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상징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역사는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바로 서지 않는다. 객관적인 사료와 법적 판단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이어질 때 비로소 정의는 완성된다.
서거 76주기를 맞아 약산소식지는 조국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학암 이관술 선생의 숭고한 희생과 정신을 깊이 기리며, 그 이름이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한 페이지에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사료 및 근거
대한민국 법원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재심 판결
국가보훈부 독립운동 공훈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국가기록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관련 기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관련 조사자료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 사건 관련 조사자료
#이관술 #학암이관술 #독립운동가 #서거76주기 #항일독립운동 #골령골 #조선정판사사건 #재심무죄 #역사정의 #약산소식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