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PBS NEWS 파우치 박사 청문회
미국 국회는 2026년 7월 29일 코로나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랜드 폴(Rand Paul) 상원의원이 의장이 되어 국가 안전과 정부 일 위원회( Homeland Security and Governmental Affairs Committee)에서 전 알레르기와 전염병 위원회장(director of the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s)인 증인 파우치 박사(Anthony Fauci)를 불러 코로나 관련해서 미국이 개입했는지를 확인했다.
청문회를 생방송으로 보며 느낀 것은 미국은 자국민의 안전과 신뢰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사실을 숨기면 신뢰가 무너진다는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중요한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그리고 이런 기본적 사실을 지키지 않은 파우치 박사를 비롯한 관계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랜드 폴 상원의원은 강조한다.
우한 바이러스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기존 바이러스와 달라서 많은 설이 있었다. 일부러 변형시켜서 만든 바이러스가 아닌지, 연구실에서 생화학 실험을 하다가 유출되었다든지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출처: Unit 731 and the Japanese Imperial Army’s Biological Warfare Program by Tsuneishi Keiichi
(https://apjjf.org/tsuneishi-keiichi/2194/article)
1차 세계대전 당시 생화학무기로 다수의 안타까운 목숨을 잃으면서, 1925년 제네바 의정서가 맺어졌다. 질식성·독성 가스 및 세균학적 전쟁 수단의 전시 사용을 금지하는 생화학전 금지 조약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이런 제네바 의정서 이후 은밀히 흔히 마루타라 불리는 731부대를 이시이 시로 지휘 아래 하얼빈 외곽에 만들었다. 731 부대에 이어서 북경, 싱가포르 등 곳곳에 생화학무기를 연구하고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출처: Unit 731 and the Japanese Imperial Army’s Biological Warfare Program by Tsuneishi Keiichi
그 와중에 일제는 중국의 도시에 일부러 균을 가진 벼룩을 공중에서 살포해서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실험하기도 했다. 벼룩에 균이 오래 살아 있도록 변형했고, 원래 전염병과 다른 형태의 전염병이 돌아서 많은 중국인 희생자가 나왔다고 한다.
이런 과거 역사를 보면 우한 바이러스가 기존 바이러스와 달랐다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기존 바이러스보다 강한 바이러스를 만들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변형이 일어났을 것이다.

출처: 워싱턴 포스터 - 니담 보고서 기사 (https://www.washingtonpost.com/outlook/2022/03/29/russia-china-have-history-bogus-claims-about-us-biological-warfare/)
731 부대를 비롯한 일제의 생화학 연구 자료를 미군은 넘겨 받았고,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731부대 연구원들은 사면과 함께 미국 포트 데트릭으로 가 이어서 연구했다. 그러니 미국이 생화학 무기 자료가 방대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공교롭게 한국은 바로 하루 전 2026년 7월 28일 오후 5시 37분부터 K-55 미군기지 내 백린 누출로 인한 주민 대피명령이 내려졌다. 같은 날 6시 13분 해제되어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놀란 가슴은 아직 진정되지 않는다.

출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무연구위원 이종철의 군 훈련장에서의 백린의 지속성 및 환경 위해
백린은 ‘白燐’ 하얀 인으로 인의 동소체로 연막, 예광탄, 조명탄, 특히 소이탄의 원료로 쓰인다. 독성이 강해서 백린을 사용하는 사격장 주변 동물이 폐사한 보고서가 여럿 있다. 군부대가 사용한 땅은 사용 후 철저한 토양 수질 조사가 필요한데, 백린뿐 아니라 여러 화학물질의 사용되기 때문이다.
731부대를 이끌었던 이시이 시로든 우한 연구소 관련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앤터니 파우치든 둘 다 의학을 전공한 박사라는 게 필자는 제일 신경이 쓰였다. 아픈 사람을 낫게 하거나 사람을 덜 아프게 도와야 할 의학 전문가가 사람을 죽이는 일에 관여했다는 거 자체가 뭔가 인간 사회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배워서 남주냐’는 말로 자식을 공부시키는 부모가 있다. 하지만 인간 문명 사회가 발전해 온 것은 ‘배워서 남주기’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구두로 선대의 삶을 후대가 배울 수 있었다. 구술로 전술해 온 그리스 신화와 같은 많은 문학이 현대까지 서구뿐 아니라 전 세계 정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뛰어나거나 부지런한 과학자든 연구가가 남긴 업적 덕분에 후대는 그 연구 결과나 지식을 바탕으로 더 나은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특히 핵무기 발명으로 인간 이성과 문명의 긍정적 발전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뛰어난 지식과 기술이 인류 문명을 쓰인 게 아니라 인간을 죽이는 데 사용된 것에 많은 생각 있는 이가 국경을 넘어서 분노했다.
그리고 제네바 협약을 비롯해 국가 간 약속을 통해 다시는 그런 악몽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국제연맹(United Nation)이라는 초국가간 단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전쟁 뒤에도 잘 나갔던 731 부대 의사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31516303486094
미군이 모셔간 731 부대 의사
https://v.daum.net/v/FGuf8NqyBK
일제로부터 배운 세균전을 6.25 사변에 사용한 미군
주한 미군 부대 생화학 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