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한국 군대를 주도한 이는 독립운동가였을까, 친일파였을까

독립운동 관련 문화해설사가 던진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서

출처: 오마이TV '천황에게 충성하자'던 이가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

 

 독립운동 관련 시설에 갔을 때, 전시 내용을 보다가 동행에게 친일파가 해방 후 국군 창설자가 되지 않았냐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걸 어떻게 들었는지 해당 시설 문화해설사가 해방 후 독립운동가가 국군을 창설했다고 했다. 

 

 군사영어학교라든지 몇 가지 사실을 알지만, 짧은 시간에 설명하기도 그렇고 굳이 논쟁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그렇냐고 하고 넘어갔다. 독립운동 관련 시설에 친일파 위주 역사를 알고 있는 문화해설사를 볼 때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그래도 제대로 된 역사를 알고 있거나 알려고 하는 사람이면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데, 아예 친일파 옹호 발언을 하거나 맥락 없이 얕은 지식을 외워서 앵무새처럼 말하면 그냥 포기를 하게 된다. 혹시 필자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그냥 기회가 되면 더 공부해서 기사나 쓸 생각으로 대화를 종료했다.

 

 임종국 선생님의 ‘실록 친일파’를 읽다가 조금 오래 묵혀놓은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다. 책에 나온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군 창설의 원로 이응준(李應俊) 장군과 전범으로 처형된 홍사익 중장이 제26기생(일본 육사)으로 1914년 졸업, 김석원 장군이 제27기로 1915년이라 하면, 병합 전의 일본육사 졸업생들의 계보상 위치가 대략 짐작될 것이다.

 -출처: 임종국 실록친일파

 

출처: 일본어 위키피디아 이응준에 대한 설명

 

 일본 육사를 졸업했다고 모두 일제를 위해 일한 것은 아니다. 소수지만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김광서, 노백린, 류동열, 이갑 같은 항일운동에 자신들의 배움을 활용한 분도 계신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제를 위해 자신의 지식을 썼고 전범으로 처형된 이도 있었다. 독립운동 한 분들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자세히 알리는 기사를 쓰고 싶다.

 

 먼저 이응준 장군이라는 이는 가야마 다케토시(香山武俊)로 창씨개명을 했다. 1937년 중일전쟁에서 중국전선에 출정하여 제20사단 사령부에서 근무했다. 1938년 1월 중국 베이징 주둔 일본군 북지파견군(北支派遣軍) 사령부에 근무하면서 난위안〔南苑〕 전투, 스자좡〔石家莊〕 전투, 산시성〔山西省〕 전투에 참전하고, 선무공작을 맡아 ‘대동아건설정신’을 중국인에게 선전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1939년 1월 훈3등 서보장을 받았다. 훈3등은 총 8등급 중 상위 3번째 등급이다. 훈3등 서보장을 받은 다른 친일 인물로 김석원이 있다. 1931년 9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할 때 제20사단 제78연대 기관총대 대장으로 출전하여 흑룡강성[黑龍江省] 방면에서 마점산[馬占山] 군과 싸워 전투를 벌였다. 이때 싸운 공적으로 상금(賞金) 700원을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 일반 노동자의 하루 일당은 약 1원~2.5원 수준이었으니 대략 1년 반정도 월급이라 봐도 무방하다.

 

  해방 후 김석원은 월남하여 과거 일본군 출신을 규합해 1946년 10월 육해공군동지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설립허가를 받아 1938년 3월 성남고보를 만들었는데, 해방 후 성남중고등학교 이사장으로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가르쳐 논란이 되었다. 

 

  1948년 12월 육군사관학교를 특임 8기로 졸업하고 대령으로 임관하여 제1사단장이 되었다. 1949년 3월 육군 준장이 되었다. 1949년 10월 관할구역인 1사단 한국군이 북한산 북어를 밀무역해 이익을 챙긴 ‘북어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두고 국방부 총참모장인 채병덕(蔡秉德)과 대립하다 예편하고 성남중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출처: 한국일보 채병덕과 무역(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199606240084427543)

 

  참고로 ‘북어사건’은 상관이었던 채병덕에게 한국의 전략물자를 북한에 주고, 북한의 북어를 들여오는 무역을 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다 벌어진 사건이라고 한다.

 

   이응준은 8월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병사구(兵事區) 사령부를 거쳐 1940년 8월부터 일제 조선군 대구사령부에서 근무했다. 1941년 육군 대좌로 승진했다. 1942년 5월 일본군 북지 독립 제7여단으로 배속되었다가 1943년 초 중국 칭다오〔靑島〕 교육대 대장으로 5개월간 현지 신병 보충과 교육에 종사했다.

 이응준은 장교로 전쟁에만 참전한 것이 아니라 선전 활동도 했다. 전쟁 끝무렵인 1945년 6월 원산항 수송부로 배속되어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소련이 진주하기 전 서울로 탈출했다고 한다.

 

 해방 후 11월 전조선임시군사준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조선임시군사준비위원이라 불리는 이 단체는 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군대 창설을 준비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친일파 중심이라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했지만, 한미군정이 국방사령부를 설치했을 때 이응준 등이 고문으로 참여하면서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가 되는 국방경비대 창설의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응준은 미군정청의 요청으로 원용덕(元容德)과 함께 같은 해 12월 군사영어학교 생도 모집을 주도했다고 한다. 군사영어학교는 백범 김구 암살에 대해 공부하다가 알게 되었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백범 김구 암살범은 안두희지만 그를 도와준 많은 이들이 있다는 설이 있다. 그 도와준 이들 중 군사영어학교 출신이 꽤 있었다.

출처: 이강수 해방 직후 대한민국 國軍의 창군과 그 역사성 (file:///C:/Users/82105/Downloads/KCI_FI001802487.pdf)

 

 미군정은 영어에 능통한 원용덕에게 경찰 예비대 창설을 부탁했다고 한다. 초반에는 광복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계열도 참여하려 했으나 주도하는 이가 주로 친일이니 거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원웅 광복회장이 ‘이승만이 집권하여 국군을 창설하던 초대 육군참모총장부터 무려 21대까지 한 명도 예외 없이 일제에 빌붙어 독립군을 토벌하던 자가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라는 발언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 같다.

 

 미군정이 군사영어학교 업무를 맡긴 원용덕은 의사 출신이다. 1931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졸업 후 강릉에서 병원을 개업했다가, 1933년 만주국군 군의 특임으로 부임해 군인의 길에 들어섰다. 1936년 봉천의 흥아협회((興亞協會))에 참여했다. 흥아협회는 아시아를 흥하게 한다는 뜻을 가졌다. 일제가 내세웠던 대아시아주의와 맥이 닿아 있는 작명이다. 1936년 4월 만주 봉천에서 재만 조선인의 사상 통제 및 독립운동 교란을 목적으로 결성된 대표적인 친일 단체이다.

 

 해방 후 월남해서 군사영어학교 보좌관 겸 부교장이 되었고, 1946년 국방경비대 참령으로 임관했다. 1949년 백범 김구 살해범 안두희에 대해 검찰이 구형한 사형 대신 종신형을 선고했다.

 1952년 현역으로 복귀해서 1953년 중장으로 승진, 군사영어학교 보좌관 겸 부교장, 여단장이 되었다. 1960년 4·19혁명 뒤 이승만 암살 음모 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김성주를 권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어 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박정희 정권에 의해 특사로 석방되었다.

출처: 민족문제연구소 : [오마이뉴스] [“육참총장 친일파” 파문] 초대~10대는 명백… 11~21대는 논란

 

 초대 육군참모총장은 친일파 이응준은 김백일, 백선엽, 채병덕 등 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 군인들을 미군정이 운영하는 군사영어학교에 입학하도록 주선했다. 이 중 채병덕은 2대 4대, 백선엽은 7대, 10대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참고로 만주군은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존재했던 일본 제국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정규 군대이다. 이들이 주요 역할 중 하나가 항일 무장 세력 진압이었다. 

 

김백일

https://www.minjok.or.kr/archives/76236

 

채병덕

https://www.minjok.or.kr/archives/136611

 

독립군 토벌한 만주군

 

백선엽

 

 

김석원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85865

 

 

 

작성 2026.08.13 17:51 수정 2026.08.13 17:51
Copyrights ⓒ 약산소식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허예주기자 뉴스보기
댓글 1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최용준님 (2026.08.14 11:52) 
아유, 영 포티 감성...히피, 너드...그 부류들이 넘쳐나는 그 구간 ㄹㅇㅋㅋ | 밸류 체인 창출 아닌 세분화의 서비스업, 이너 서클, 고환율, 그나마의 서방 선방 나비 효과...이런데, 누가 국장에 진지? ㄹㅇㅋㅋ | 그냥 야ㅇ노ㅁ 싫다는 마인드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쿠팡 사태 대처 ㄹㅇㅋㅋ | 반일 팔이까지 ㄹㅇㅋㅋ | 분위기 단속 통해 관련 지수 좋게 관리하는 표면적 브랜딩들 ㄹㅇㅋㅋ
댓글 수정-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Shorts NEWS 더보기
선무도 #골굴사 #전통무예 #친일반민특위
독립 운동가 김시현
선무도 골굴사 #반민특위 #korean #독창성 #골굴사 #선무도 #..
골굴사선무도 #전통계승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독립운동을 방해한 밀정 엄인섭 l 홍범도와 홍범도 연..
경북안동 #독립운동가 #독립운동 #친일반민특위 #반민특위 #친일척결 #친..
#경북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경북독립운동가 #반민특위 #친일척결 #애..
경북안동독립운동가 #경북 #독립 #독립운동가 #친일반민특위 #반민특위
#안동독립운동가 #반민특위 #친일반민특위 #과거청산
창원독립운동가 #경남창원 #독립운동가 #여행 # 독립운동가사당 #친일반민..
#왕산 #허위 #허훈 #항일운동가 #애국의열단 #친일반민특위 #보수 #..
#왕산 #허위 #항일운동가 #친일반민특위 #애국의열단 #애국여행 #나라..
#친일반민족자 #창설 #해병대 #불편한진실 #역사는기억한다 #친일 #흔적..
#김시현 #독립운동가 #김시현
#애국의열단 #친일반민특위 #반민특위 #척결
#항일운동가 #독립운동가 #왕산허위 #반민특위 #친일반민특위
#항일운동가분들 #독립운동가 #과거역사 # 한국전통 # 한국의빛나는역..
#광복의그날 #애국의열단 #대한독립만세 #반민특위 #을사늑약 #3,1절 ..
#기장 #독립운동가 #항일운동가 #친일반민특위 #반민특위 # 과거청산 #..
#허당 #명도석 #독립운동가 #항일운동가 # 친일반민특위 #반민특위 #..
#일본고문기술 #친일반민특위 #반민특위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일본 #고문기술 #반민특위 #일제강점기고문기술
#일제강점기 #일제만행 #친일반민특위 #반민특위 #의열단 #애국 #매국 ..
#안용복 #장군 # 독도는 #한국땅 #막부시대 #조선땅 #인정 #독도는한..
조선항일운동한 항일운동가 #애국의열단 #애국 #의열단 #독립운동가 #반민..
의용제인비 #애국의열단 #애국 #의열단 #독립운동가 #반민특위 #친일반..
조선의용단 힝일운동 #애국의열단 #애국 #의열단 #독립운동가 #반민특위 ..
#친일반민특위 #친일반민특위
유튜브 NEWS 더보기

Sewol Memorial Forest_Message from Sean Hepburn

[내가역사의증인이다] 9. 학도특별지원병 故 정기영 할아버지

[국악콘서트 판] 서용석류 아쟁산조 - 서영호

대한민국의 광복을 기리며 | ‘내나라 대한’ | 8.15 광복절 기념 대금 연주 2시간

[시시각각] "기억 전쟁 71년, 골령골의 아픔"

[공연영상] 벽사(噼邪)판-탈속에서 바라본 세상 | #이수자지원사업 (5월 25일)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완주시리즈: 수어지교(水魚之交) - 풍류와 시나위[2013.03.22.]

[예인열전 1회] 진도씻김굿, 송순단 명인 (1)

Banned in Europe, sold in Canada. What’s in your food? (Mark...

초상집에서 멋진 연희로 웃음을 줬던 진도의 광대들; 강준섭의 진도 다시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