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JTBC 보도연맹을 잘 설명한 영상
문화해설사 덕에 또 공부할 거리가 생겼다. 문화해설사가 말하길 ‘6.25 때 김원봉이 앞장서서 남침했다.’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앞뒤 없는 이야기인지 듣는 순간 황당했다. 의열단장 김원봉은 월북했고 그래서 남한에 남아있던 가족이 보도연맹 때 몰살을 당했다.
그렇다고 김원봉 독립운동가가 북한에서 인정받았던 것도 아니다. 김일성에게 숙청되었다고도 하고 여러 설이 있지만 어쨌든 권력에서 밀려나 1958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김원봉은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버림받은 독립운동가이다.
문화해설사는 역사를 전공할 만큼 공부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다 해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야기했으면 좋겠는데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교육을 받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야기한다면 김일성이 김원봉에게 권력을 줄 수가 없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이 김원봉에게 권력을 줄리가 만무하다. 6.25 사변 때 앞장서서 내려오려면 군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어느 왕조나 정부든 군권은 믿을만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체시킨 것이 노덕술과 같은 친일 경찰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고, 김창룡을 위해 현충원에 군인이 묻히도록 했다는 말이 있다. 이승만이 독립운동가 대신 친일파 노덕술과 김창룡에게 경찰권과 군권을 준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상식적인 한국인이라면 본인이 독립운동했고 한국을 생각한다면 독립운동가가 군권과 경찰권을 가지도록 하는 게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은 대통령 지위에서 독립운동가 대신 친일파가 군권과 경찰권을 가지도록 했다.
이 지점이 항상 의문이었다. 왜 이승만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잘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인간적 상식에서 이승만은 독립운동가보다 친일파 인물이 자기를 더 잘 지켜주리라 믿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나라나 국민적 정서보다는 자신을 더 중심에 두고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닌지 추정해볼 뿐이다.
소련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조만식 선생님 대신 김일성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북한 대표로 앉혔다. 그리고 월북한 김원봉이 맡은 직책은 월북 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여 국가검열상과 내각 노동상 등의 고위직이었다. 이 두 직책 모두 군과 아무런 관련 없는 직책이다.
북한에 월북한 대부분 독립운동가는 김일성 유일 체계 구축 과정에 숙청당했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은 월북한 독립운동가의 비참한 최후를 알고 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위험이 되는 요소를 다 제거한 것이다.
김일성은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를 택한 인물이다. 월북한 독립운동가 중에는 일제강점기 소련의 도움을 받아 독립운동 하거나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독립한 인물도 있다. 그러나 김일성이 겉으로는 공산주의를 내세웠을지 몰라도 자식에게 자신의 권력을 넘겨주려 했다.
공산주의(共產主義)는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공동 생산주의이다. 영어로는 ‘Communism’이다. 공동체를 의미하는 ‘community'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개인적 자산보다 사회적 자산을 중요시하며 공동 생산해서 공동 분배하자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처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을 때, 많은 지식인은 식민 자본주의 폐해를 딛고 뭔가 새로운 좋은 체제가 생길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버트런드 러셀은 레닌을 만나고 와서 책에서 말했던 이상적 체제는 구현되지 않으리라고 파악했다. 그리고 ’Why I Am Not A Communist(나는 왜 공산주의자가 아닌가)'라는 글에서 생각을 밝혔다.
The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 thus came to be the dictatorship of a small committee, and ultimately of one man - Stalin. As the sole class-conscious proletarian, Stalin condemned millions of peasants to death by starvation and millions of others to forced labour in concentration camps. He even went so far as to decree that the laws of heredity are henceforth to be different from what they used to be, and that the germ-plasm is to obey Soviet decrees but that that reactionary priest Mendel. I am completely at a loss to understand how it came about that some people who are both humane and intelligent could find something to admire in the vast slave camp produced by Stalin.
출처: 버트란드 러셀 ‘Why I Am Not A Communist’
버트런드 러셀은 공산주의를 내세우지만, 독재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공산주의를 구현하겠다는 많은 나라들은 독재가 되었다. 공산주의와 독재를 동의어로 쓰는 사람이 가끔 있는데 이 둘은 다른 어휘이다.
국립국어원 표준 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와 레닌에 의하여 체계화된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에 입각한 사상. 재산의 공동 소유가 옳다고 주장하며 생산 수단의 사회화와 무계급 사회를 지향한다.
그리고 독재는 다음과 같다.
특정한 개인, 단체, 계급, 당파 따위가 어떤 분야에서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함
그래서 독재의 반대말은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 다수의 민중이 주인이 되어 결정해 나가는 체제가 민주주의이다. 한 명이나 한 당이 독단적으로 일을 결정해서 국가를 운영하면 독재이다.
단지 '월북자' 김원봉의 형제라는 이유만으로 네 동생인 김구봉·김용봉·김봉기·김덕봉 형제는 밀양 지역에서 예비검속으로 체포된 국민보도연맹원 300여 명과 함께 집단 학살당했다. 같은 시기 사촌형제 5명 역시 같은 시기 보도연맹 사건으로 총살당했다. 보도연맹은 국가에서 앞으로 북한과 협조할지도 모른다고 국민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이다. 끌려간 김원봉의 네 형제는 보도연맹에 가입한 적도 없었다.
김원봉 일가의 비극은 이게 끝이 아니다. 이후 분단의 역사 속에서 사상 검증이라는 이유로 살아남은 소수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었다. 월북했다는 이유로 독립운동 공훈도 못 받는데, 6.25 사변 때 남침에 앞장섰다는 누명까지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해방 후 친일파는 김원봉 독립운동가를 지우고 싶은 이유를 모르겠다.
친일파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님이 연구하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해방 후 친구에게 백범 김구를 어떻게 생각하냐 했더니 중국 사람이라고 해서 자기도 그렇게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김구 선생님의 독립 업적을 알고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연구에 전념했다고 한다. 일반인은 떠돌아다니는 말을 그냥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남에게 알려주는 일을 한다면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원봉 일가 보도연맹
https://www.minjok.or.kr/archives/77038
남과 북에서 외면 받은 김원
https://v.daum.net/v/4jwuQpmezO?f=p
반민특위 와해시킨 이승
김창룡
노덕술
노덕술을 풀어준 이승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