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정부 정리해고 시작]
김대중 정부 노동시장 유연화, 비정규직 확대의 출발점이었나
외환위기 속 정리해고·파견근로 제도화
경제위기 극복 위한 선택이었지만 고용 불안 심화 논란 남겨
[약산소식지 = 권용진 알리미]
1997년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노동시장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체제에서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기업·금융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시장을 보다 유연하게 만드는 정책도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1998년, 노동시장의 큰 변화
김대중 대통령 취임 직전인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요청으로 노·사·정 협의체가 출범했다. 정부 기록에서도 당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계와 경제계, 정부가 구조조정과 고용 문제를 논의한 사실이 확인된다.
특히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가 파견근로의 법제화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1998년 2월 20일 제정됐고 같은 해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기업이 직접 고용하지 않고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를 일정한 업무에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법적으로 마련된 것이다.
정리해고 제도 역시 외환위기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요한 노동 문제로 떠올랐다.
경제 회복과 일자리 안정 사이당시 정부가 노동시장 변화를 추진했던 배경에는 심각한 경제위기가 있었다.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정부는 경제를 살리고 기업 경쟁력을 회복해야 일자리도 지킬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국무회의에서도 경제와 기업을 살려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당시 정책을 단순히 ‘비정규직을 만들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노동시장 유연화가 장기적으로 고용 형태를 변화시키고 고용 안정성을 약화시켰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실제 비정규직은 얼마나 늘었나여기에서는 통계를 조심해서 봐야 한다.
현재와 비교 가능한 정부의 비정규직 공식 통계는 1998년부터 동일한 기준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통계청의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는 2002년 노사정위원회가 합의한 비정규직 정의와 범주를 기준으로 집계해 왔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2001년 8월 약 363만5천 명, 2002년 8월에는 약 383만9천 명으로 집계됐다. 이후 2003년 약 460만6천 명, 2004년 약 539만4천 명으로 증가했다.
다만 이 증가를 모두 김대중 정부 정책 하나의 결과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외환위기, 기업 구조조정, 산업구조 변화와 이후 정부의 노동정책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다.
평가는 공과를 함께 봐야 한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경제위기 속에서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파견근로가 법제화되고 기업의 인력 운용 방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당시의 절박한 상황은 함께 살펴봐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제도 변화가 이후 한국 사회의 비정규·불안정 노동 확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가 비정규직을 양산했다”고 단순하게 결론 내리기보다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제도화했고, 이것이 이후 비정규직 확대 문제와 연결됐다는 비판을 받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더 가깝다.
근거 및 1차 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 1998년 2월 20일 제정, 7월 1일 시행.
통계청 「비정규직 고용 동향 분석」 — 2001년 이후 비정규직 규모 변화 자료.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1998년 당시 국정신문 및 노사정위원회 관련 정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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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담당 기자가 사실확인 및 최종 기사심의를 거쳐 발행했습니다.


